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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17 :: 저녁숲 / 도종환
  2. 2006.09.17 :: 은밀한 사랑 / 고재종
  3. 2006.09.17 :: [Re] : 이정의님을 위한 반론
  4. 2006.09.17 :: 수학여행을 다녀온 벗들에게
함께 읽는 시 2006. 9. 17. 19:12
저녁숲

-스콧 니어링을 그리며

도종환

모란꽃도 천천히 몸을 닫는 저녁입니다

같은 소리로 우는 새들이 서로 부르며

나뭇가지에 깃들이는 걸 보며 도끼질을 멈춥니다

숲도 오늘은 여기쯤에서

마지막 향기를 거두어들이는 시간엔

나무 쪼개지는 소리가 어제 심은 강낭콩과 감자에게도

다람쥐와 고라니에게도 편하지 않을 듯싶습니다

흩어진 장작을 추녀 밑에 가지런히 쌓으며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주류사회에서 두 번씩이나 쫓겨난 뒤

버몬트 숲속으로 들어갈 때는

진보에 대한 희망도 길도 잃었고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지만

그 대신 거대한 광기와 파괴와 황폐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흐르는 물에 이마를 씻고

바위 위에 앉아 생각해보니

당신처럼 오늘 하루 노동하고 읽고 쓰고

자연과 사람의 좋은 만남을 가지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흩어진 나무토막과 잔가지들을

차곡차곡 쌓듯 내 삶도 이제는

흐트러지지 않고 질서가 잡힐 것이며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천천히 그리고 간소하게 저녁을 맞이할 것입니다

어둠이 숲과 계곡을 덮어오자

땅 위에 있는 풀과 나무들이 일제히 별을 향해

손을 모읍니다

우리 모두 똑같은 생명을 지닌 한 가족이며

크고 완전하고 넓은 우주의 품에 들어

넉넉하고 평온해지기를 소망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오늘 밤은 아직 구름에 가린 별들이 많고

내 마음에도 밤안개 다 걷히지 않았지만

점차 간결한 삶의 단순성에 익숙해지고

일관성을 잃지 않으며

내 눈동자가 우주의 빛을 되찾으면

별들이 이 골짜기에 가득가득 몰려올 것임을 믿습니다

내 안에 가득 차 있던 것들 중에

빠져나갈 것은 빠져나가고

제자리로 돌아올 것은 돌아와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얼굴도 웃음도 제 본래 모습을 되찾고

의로움도 선함도 몸속에서 원융하여

당신처럼 균형잡힌 인격이 되어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여름산도 가을숲도 다 기뻐할 것입니다

생의 후반에 당신을 알게 되어서 기쁩니다

생사의 바다를 건넌 곳에서도 편안하시길 빕니다

숲속에서도 별밭에서도 늘

완성을 향해 가고 있을 당신을 그리며

-도종환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 (문학동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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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
함께 읽는 시 2006. 9. 17. 19:03



은밀한 사랑 / 고재종

신의 전언(傳言)인 양 반짝이던 잎새들이
마지막 것까지 져버린 저녁이다.
이제 뜨락 가득 어둠이 내리고, 마음은
애기 업고 동구에 나간 노인네처럼 서성거린다.
이제 집이 없는 자들은 사랑밖에 없나니
먼 데서 안 오는 말씀을 기다리지 말고
잠들지 말 것, 잠들면 두 연인은 다른 꿈을 꾸지,*
말하지 말 것, 말하면 엿듣는 자가 나타나지,
보지 말 것, 빛은 어둠을 갈라 결합을 떼어놓지,
소리 나지 않는 피아노를 연주하듯
한밤중 손가락들로 더듬어 찾는 사랑만이
영혼의 탄성을 발하고, 그것만이
하나 둘, 신의 음률 속에 별로 튀긴다는군.
시방 여기저기 켜지는 불빛일랑은
이제 소슬하고 차가운 인동의 광휘일 뿐,
저무는 풍광의 뱃속으로 몰래 들어가
그 속에 내연(內燃)하는 잉걸불을 일굴 것.

*8~9행은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에서 전용


출처 : 정자나무 그늘 아래 원문보기 글쓴이 : 바람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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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
멀리 보기 2006. 9. 17. 18:50
[Re] : 이정의님을 위한 반론 / 김성중

이정의님, 님은 진정 이름값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님이 "정의"를 본명이든 가명이든 아니면 그냥 심심풀이로 붙여본 이름이든, 님은 "정의"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님은 지금 게시판에서 정의를 이야기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교사가 아무런 걱정도 없이 교육에만 전념해야 하는"데도 그런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현실에 애써 눈을 감음으로써 님은 님의 감정을 엉뚱한 곳으로 분출하고 있군요. "성과상여금"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지급되는 줄 뻔히 알고 있는 님은 엉뚱하게도 전교조 간부들을 비난하면서 본질로부터 애써 도망치려하는군요. "아이들을 올바르게 지도하려고 하기보다는 전교조일만을 하는 간부들이 못마땅하다면", 님이 앞장 서서 전교조 간부일을 하면 될 게 아닌가요? 혹시 전교조 조합원이라면 말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발을 딛고 있는 학교 현장이 어떤 꼬라지며, 앞으로 학교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본다면, 님의 불만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정의님, 이 시대에도 계몽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님께서는 정의가 살아 숨쉬는 세상을 원하십니까? "성과금" 몇 푼과 "s등급 교사"에 만족하면서 계약제나 연봉제 그리고 비인간적인 경쟁만이 판치는 그런 황폐화된 교단에서 "해맑은' 아이들의 눈동자를 핑계삼으며 봉급날이나 기다리는 샐러리맨으로 남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정의님, 냉정하게 판단합시다. 궁리정심(窮理正心)! 사물의 본질을 파헤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실천하는 사람이 됩시다.


2001년 10월 7일 일곡아카데미아에서 김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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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
멀리 보기 2006. 9. 17. 18:47
수학여행을 다녀온 벗들에게 / 김성중


노란 유채꽃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벗들의 모습이 너무나 정겹습니다. 꽉 짜인 학교를 벗어나 자연 속에 파묻혀 지낸 나흘 동안, 벗들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자유를 느꼈을 겁니다. 시간이 멈추기를 기대해 보지만 시간은 흘러가고 벗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벗들은 시계추처럼 집과 학교를 왔다 갔다 하면서 또 스트레스를 받겠지요? 스트레스를 먹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주에서 벗들이 즐겼던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스트레스를 줄여야 하겠어요.

나는 벗들에게 아름다운 제주의 겉모습 뒤에 숨어있는 아픔을 느껴보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 4.3항쟁을 느껴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벗들이 억울하게 죽어간 혼령들을 위로해 주었으리라 믿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유배살이를 했던 추사적거지(秋史謫居趾)를 둘러보면서 조선시대 후기를 고민했던 추사 김정희의 고뇌를 읽어보기를 기대했습니다. 추사가 유배지에서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세한도(歲寒圖)를 추사기념관에서 감상한 다음, 근처 가게에서 복사본을 일만 원에 사서 부모님이나 친지들에게 선물하기를 바랬습니다. 우리 학교 중앙현관에 학행일치(學行一致)라는 글귀가 새겨진 현판이 있습니다. 나는 벗들이 배운 대로 실천하는 멋쟁이이길 바랍니다.

젊은 벗들, 여행은 되돌아옴을 전제로 떠나는 겁니다. 되돌아왔을 때는 여행을 떠날 때와는 달라져야 하겠지요. 이번 수학여행이 밑거름이 되어 벗들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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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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