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기 2006. 9. 25. 17:11
서영에게 묻는다.

서영아, 너는 누구냐? 왜 여기 있으며 왜 사느냐?

나의 질문이 당혹스러울지 모르겠다.

나는 너의 담임으로서 너를 미워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아직도 너를 모른다. 아니 잘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나 스스로 궁금할 뿐이다.

몇 달이지만 난 너를 지켜보면서 실망만을 했다. 그러면서도 너에게 야무지게 화를 내지도 않았다.

나는 네가 귀찮은 존재다. 너는 도무지 돼먹지 못한 아이다. 천방지축이란 말은 너에게 너무 고상하구나.

도대체 너는 어떻게 생겨먹은 아이냐? 너의 앞날을 생각해 보았느냐? 왜 이러느냐? 학교가 싫으냐? 사회가 싫으냐? 아니면 집이 싫으냐? 엄마가 싫으냐? 네가 방황하는 이유가 뭐냐? 연애에 푹 빠져 있는 거냐?

너는 너 스스로를 좀 먹고 있는 벌레다. 도무지 생각이 없는 바보 천치 멍텅구리다.

나는 너같은 아이의 담임이라는 것이 서글프다.

네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귀걸이를 차고, 루즈를 칠하고, 손톱과 발톱에 메니큐어나 칠하고, 무스 발라 머리 넘기고, 튀는 옷 입는 것 말고 네가 잘 하는 것이 뭐냐?

무단 결석에 무단 조퇴, 체육 시간엔 아예 무단 결과, 흡연에 본드 흡입까지.

선생님들이 너를 인정해 주지 않아서 네가 삐뚤어진 거냐? 아니면 너의 마음 속에 악마가 들어 있는 거냐?

나는 지금까지 너를 지켜 보았다만, 어려움이 있으면 담임을 찾아야지, 너는 담임이 없는 모양이구나.

나는 이제 네 담임이 아니다. 아니 네 담임이길 포기했다. 왜? 더 이상 너같은 아이에게 신경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바쁜 사람이다. 한 마리 길 잃은 양보다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돌봐야 한다. 나도 나름대로 성취욕구가 있는 사람이다.

이제 너에게 신경을 쓰지 않으마. 수업일수나 채워서 졸업장이나 받거라.

네 인생은 네 것이다. 아무도 네 인생을 대신 살아 주지 않는다.

할 말이 있으면 답장해라.

1996년 9월 20일 새벽 1시 김성중

'멀리 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포 / 김세견의 수채화  (0) 2006.10.25
말 / 김성중  (0) 2006.09.25
썩은 사과 광주리 바꾸기 / 도정일  (0) 2006.09.23
[Re] : 이정의님을 위한 반론  (0) 2006.09.17
수학여행을 다녀온 벗들에게  (0) 2006.09.17
posted by 추월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