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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20 :: 시인이 된다는 것은 / 밀란 쿤데라
  2. 2006.09.20 ::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3. 2006.09.19 :: 선생님, 집에 다녀 오겠습니다 / 최승권
  4. 2006.09.19 :: 황사 / 맹문재
함께 읽는 시 2006. 9. 20. 15:24
시인이 된다는 것은 / 밀란 쿤데라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하지



행동의 끝까지
희망의 끝까지
열정의 끝까지
절망의 끝까지



그 다음 처음으로 셈을 해보는 것,
그 전엔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



왜냐하면 삶이라는 셈이 그대에게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낮게 계산될 수 있기 때문이지



그렇게 어린애처럼 작은 곱셈 구구단 속에서
영원히 머뭇거리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지



시인이 된다는 것은
항상 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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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
함께 읽는 시 2006. 9. 20. 09:55

슬픔이 기쁨에게/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1978]

posted by 추월산
:
함께 읽는 시 2006. 9. 19. 22:02
선생님, 집에 다녀 오겠습니다 / 최승권


선생님,
사월 무등산 영산홍이 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낡은 책가방 속에
불타는 정열과 자유의 시집을 구겨 넣고
사지선다형의 보이스 엠비셔스를 찾기 위해
책상과 걸상 사이로 사라지는
우리들의 빛나는 꿈을
먹장구름보다 더 시커멓게 연습지에 써놓았습니다.
선생님,
눈시울 뜨거운 사월 영산홍이 지고 있습니다.
교실 창문 틈으로 보이는 우리들의 봄은
영산홍 발뿌리를 적시는 폭포수로 흐르지 못하고
칠판에는 누군가 급히 써놓은
스프링 해스 컴! 영문자가 새겨져 있을 뿐입니다.
선생님,
이제 영산홍의 화사한 웃음마저 볼 수 없습니다.
형광등 불빛이 두꺼운 책장을 넘기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무등산 폭포수가 힘차게 힘차게
은하수로 흘러넘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은하수 안 다른 별에도]
푸른 폭포수가 계곡을 흘러넘쳐
영산홍 꽃잎을 하염없이 적시는
우리들의 봄이 울타리도 없이 피고 있겠지요.
우리들의 침묵이 깊은 산맥 속에서
콸콸콸 쏟아지는 폭포 하나를 만들고 있겠지요.
그럼
선생님,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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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
함께 읽는 시 2006. 9. 19. 22:00
황사 / 맹문재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황사가 몰려왔다고
아무리 뉴스가 야단스러워도
나는 눈을 감을 수 없다



이자를 한 짐 잔뜩 진 동생이
이자를 갚지 못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 채
짙은 황사 속에서 헤매는 모습



나는 길을 열어줄 삽 한 자루 쥔 것 없고
표지를 세워줄 정보 하나 가진 것 없기에
동생을 품어주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자를 갚지 못해 미안하다고
나도 술 취한 듯 고개를 숙인 채
황사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황사가 몰려왔다고
이 봄날 뉴스가 야단스러워도
나는 눈을 감을 수 없다
posted by 추월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