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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6.01 :: 모퉁이
- 2011.08.31 :: 금호철화 / 조정권
- 2011.07.06 :: 시가 내게 오지 않았다 / 권지숙
- 2011.04.28 :: 어처구니가 산다 / 천양희
모퉁이
안도현
모퉁이가 없다면
그리운 게 뭐가 있겠어
비행기 활주로, 고속도로, 그리고 모든 막대기들과
모퉁이 없는 남자들만 있다면
뭐가 그립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계집애들의 고무줄 끊고 숨을 일도 없었겠지
빨간 사과처럼 팔딱이는 심장을 쓸어내릴 일도 없었을테고
하굣길에 그 계집애네 집을 힐끔거리며 바라볼 일도 없었겠지
인생이 운동장처럼 막막했을 거야
모퉁이가 없다면
자전거 핸들을 어떻게 멋지게 꺾었겠어
너하고 어떻게 담벼락에서 키스할 수 있었겠어
예비군 훈련 가서 어떻게 맘대로 오줌을 내갈겼겠어
먼 훗날, 내가 너를 배반해볼 꿈을 꾸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말이야
골목이 아냐 그리움이 모퉁이를 만든 거야
남자가 아냐 여자들이 모퉁이를 만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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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철화 / 조정권
아, 이 금호철화(金號鐵花)
어려운 식물이지요 쇠꽃을 피웁니다
이 선인장의 성깔을 잘 알지 못하면 키우지 말아야 합니다
콘도르가 사막의 하늘을 맴돌다가 급강하해 앉은 모습
골 깊고 진녹색의 단단한 몸체엔 솟구치고 뻗친 가시들 보세요, 화살촉처럼 무장하고 있어요
가시들은 원산지에서 지나가는 말의 편자까지도 뚫고 올라옵니다
조심하세요 손
이놈들은, 뿌리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가시가 생명이지요
숨을 가시로 쉽니다 가시가 부러지면 썩기 시작하지요
어찌나 지독한지 뿌리를 몽땅 잘라 삼년을 말려두었다가
모래에 다시 심으면, 서너 달이면 제 몸에서 스스로 새 뿌리를 내립니다
흙 나르는 수레바퀴에 구멍을 내는 것도 이놈들입니다
조심하세요, 가시가 살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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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내게 오지 않았다
권지숙
1975년, 말이 아니던 시절
비분강개 하나로
어린 미혼모처럼 덜컥
들어선 시의 길
내 경솔의 댓가는 이날까지
무수한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일이다
시 안 쓸 거야
시 좀 쓰세요
시도 안 쓰고 뭐 해
'시가 내게로 왔다'는
네루다의 말은 거짓말이다
-권지숙 시집, 오래 들여다본다, 창비, 2010,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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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가 산다
천양희
나 먹자고 살을 씻나
우두커니 서 있다가
겨우 봄이 간다는 걸 알겠습니다
꽃 다 지니까
세상의 삼고(三苦)가
그야말로 시들시들합니다
나 살자고 못할 짓 했나
우두커니 서 있다가
겨우 봄이 간다는 걸 알겟습니다
잚못 다 뉘우치니까
세상의 삼독(三毒)이
그야말로 욱신욱신합니다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우두커니 서 있다가
겨우 봄이 간다는 걸 알겠습니다
욕심 다 버리니까
세상의 삼충(三蟲)이
그야말로 우글우글합니다
오늘밤
전갈자리별 하늘에
여름이 왔음을 알립니다
*천양희,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창비시선326),창비,2011. 86-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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