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시 2006. 9. 19. 21:46
태풍 지나가고

조향미





다시 태어난 산천

하이얀 햇살에선 뽀득뽀득

새로 씻은 고무신 소리가 난다

하늘은 푸른 징처럼 혼자서도 쟁쟁거린다

대낮에도 커튼 내리고 형광등 켜고

알 속에 갇힌 듯 웅크려 있던 아이들도

방금 껍질 깨고 나온 애벌레처럼

첫 법문들은 동승처럼 화안한 얼굴이다

얘들아 책을 덮어라

온 천지 구구절절 눈부신 경전인데

종이책 하찮은 주석이나 듣고 있을까보냐

햇살 범벅 바람 범벅 흙내음 꽃향기 범벅인

저 앞산 언덕에서 뒹굴뒹굴 굴러보자

오늘을 위하여 어젯밤 그 폭풍우 몸서리치고

툭툭 소나무 가지는 부러지지 않았느냐

벚나무는 뿌리째 넘어지지 않았느냐

이 터질 듯한 향유(享有)가 없다면

상처와 죽음이 어이 있으랴

오늘 이 천지의 축복을 맞지 않으면

불경이다 신성모독이다

아이들아 너희 투명한 살과 혼을 열어라

저기 저, 벌써!

나비 되어 승천하려는 애벌레들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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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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