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시
2006. 9. 15. 10:38
꼴린다
그때 나는 "사실"과 "의견"을 설명하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었다. 자, 손가락이 몇 개냐? 하나요! 모두가 그렇게 대답했다. 응, 그건 사실이지. 그럼 넌 이 엄지손가락이 무엇으로 보이냐? 예, 최고라는 듯한데요? 그래? 넌? 그때 그 아인 약간 머뭇거렸다. 선생님, 자지가 꼴려 있는 것 같습니다! 장난꾼 그 아이가 말했다. 순간, 나는 당황했으나, 침착을 가장하고 얼른 몸을 돌린 후 칠판에 "꼴린다"를 한가운데 아주 크게 썼다. 그리고 글씨를 쓰는 몇 초간 전광석화와 같이 머리를 굴렸다. 꼴린다, 꼴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 꼴린다는 것은 팽팽하게 긴장하는 것이란다. 내가 바라보는 사물에 대하여 기타 줄처럼 끊어질듯 긴장한다는 뜻이야. 나무를 볼 때, 돌멩이를 볼 때, 자꾸 짧아지는 햇살을 볼 때 그래서 난 꼴린단다. 와하하하하 - 선생님도 꼴린대. 여자를 봐도 꼴려요? 당연하지. 여자를 보면 난, 아 ,저 여자 참 사랑스러웠겠구나. 저 여자 할머니가 되려고 얼마나 많은 이쁨이 몸 속에서 빠져나갔을까, 생각하며 난 꼴린단다. 그 순간, 나도 아이들도 교실도 하늘도 구름도 모두 꼴려서 팽팽해지고 있었다.
'함께 읽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녁숲 / 도종환 (0) | 2006.09.17 |
---|---|
은밀한 사랑 / 고재종 (0) | 2006.09.17 |
이팝나무 수난사 / 정양주 (0) | 2006.09.15 |
옛집 / 김민휴 (0) | 2006.09.15 |
겨울 느티 / 최승권 (0) | 2006.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