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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9.09 :: 얼어버린 파초의 꿈
- 2006.09.09 :: 말과 글
- 2006.09.08 :: 태산목
- 2006.09.07 :: 길을 찾아서
얼어버린 파초의 꿈
김성중
넓직한 잎을 자랑하던 파초가
영하의 날씨에 얼어버렸다.
물기를 많이 머금은 이파리와 줄기가
얼어서 시들어버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파리를
힘차게 내밀던 파초였는데,
영하의 겨울은 파초에게 너무 가혹하다.
새로 올라온 파초의 여린 줄기도 얼어버렸다.
한 번 만져 보니까 물이 흥건하게 흐른다.
파초는 진정 남국이 그리울 것이다.
한겨울의 추위를 너는 몰랐을 것이다.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오래오래
꽃을 피우길 기대했는데,
초라하게 시들어버린 너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럽구나.
겨울을 모르는 너를 화단에 심어놓고 여름내
네 푸른 잎을 좋아했으면서도
정작 네가 시들어서야,
네가 추위를 못 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구나.
오, 나의 무지여. 나의 게으름이여.
바나나 나무를 닮은 너의 모습.
바나나 비슷한 열매를 맺은
자랑스런 너를 보고 싶구나.
너를 너무 몰라서 미안해.
김동명 시인의 '파초'나 수와진이 부른
'파초의 꿈을 아오'에서나 듣던 너의 이름,
오늘 나는 너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면서
한없는 자책을 하는구나.
알량한 나의 지식에 기대어 세상을 희롱하는 것은 아닌지,
인간의 지식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남국을 향한 파초의 꿈.
남극대륙 세종기지에서 대원들을 구하고 얼어죽은
전재규 대원이 떠오른다.
2003년 12월 20일
말과 글
김성중
언제부턴가 말이 있었지.
너와 내가 사랑을 주고 받은
사랑의 말이 있었지.
글자로 사랑을 담은 편지를 썼지.
책을 읽고선 새로운 지식을 얻었지.
무장무장 내 지식은 늘었고
내 세치 혀는 자랑스러웠지.
내가 읽은 책의 내용을
과장을 섞어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며 나는 뻐기고 있었지.
무식한 놈들아, 책좀 읽어라.
나의 책장에 책은 쌓여가고
나의 지식은 자꾸 늘어가는데
이제 나는 책에 짓눌려
숨쉬기가 어렵게 되었지.
그래도 책은 쌓여가고
내 지식도 쌓여가고 있지.
끝이 어디일까, 안보이지.(2000년)
태산목
김성중
내 이름은 태산목이구요
늘 푸른 나무랍니다.
목련과 나문데요
목련이 지고 나서
더위가 찾아오면
나는 태산만한 꽃봉오리를
수줍게 터트린답니다.
내 두터운 이파리를 보세요
이파리가 두껍지만
내 꽃은 너무나도 하얘서
눈이 부실 겁니다.
백목련이 꽃샘추위에 얼어서
까만 이파리를 떨굴 때
나는 다짐한답니다.
하얀 목련을 못 보신 당신께
태산목 눈부신 꽃을 보여주리라구요.
내 이름은 태산목이구요
목련과 늘푸른 나무예요. (2006.9.8.)
길을 찾아서
김성중
벗이여, 길을 찾아가세
앞서 걸었던 사람들
이제 우리가 걸어야 하네
그대 들리는가, 님들의 목소리
이름 없는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라도
하냥 바라만 보네
그대 가슴에 살포시 다가오는
마음으로 번지는 기쁨
아무도 이 길을 가지 않아도
우리 걸어가세
영산강 줄기 더듬고 섬진강 지리산자락 휘돌아
한강 건너 대동강 압록강 백두산으로 닫는
그대 발길 머무는 곳
님들이 숨쉬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