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버린 파초의 꿈
김성중
넓직한 잎을 자랑하던 파초가
영하의 날씨에 얼어버렸다.
물기를 많이 머금은 이파리와 줄기가
얼어서 시들어버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파리를
힘차게 내밀던 파초였는데,
영하의 겨울은 파초에게 너무 가혹하다.
새로 올라온 파초의 여린 줄기도 얼어버렸다.
한 번 만져 보니까 물이 흥건하게 흐른다.
파초는 진정 남국이 그리울 것이다.
한겨울의 추위를 너는 몰랐을 것이다.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오래오래
꽃을 피우길 기대했는데,
초라하게 시들어버린 너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럽구나.
겨울을 모르는 너를 화단에 심어놓고 여름내
네 푸른 잎을 좋아했으면서도
정작 네가 시들어서야,
네가 추위를 못 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구나.
오, 나의 무지여. 나의 게으름이여.
바나나 나무를 닮은 너의 모습.
바나나 비슷한 열매를 맺은
자랑스런 너를 보고 싶구나.
너를 너무 몰라서 미안해.
김동명 시인의 '파초'나 수와진이 부른
'파초의 꿈을 아오'에서나 듣던 너의 이름,
오늘 나는 너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면서
한없는 자책을 하는구나.
알량한 나의 지식에 기대어 세상을 희롱하는 것은 아닌지,
인간의 지식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남국을 향한 파초의 꿈.
남극대륙 세종기지에서 대원들을 구하고 얼어죽은
전재규 대원이 떠오른다.
2003년 12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