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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1.08.31 :: 금호철화 / 조정권
  3. 2011.07.06 :: 시가 내게 오지 않았다 / 권지숙
  4. 2011.04.28 :: 어처구니가 산다 / 천양희
함께 읽는 시 2012. 6. 1. 14:17

모퉁이

안도현

모퉁이가 없다면

그리운 게 뭐가 있겠어

비행기 활주로, 고속도로, 그리고 모든 막대기들과

모퉁이 없는 남자들만 있다면

뭐가 그립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계집애들의 고무줄 끊고 숨을 일도 없었겠지

빨간 사과처럼 팔딱이는 심장을 쓸어내릴 일도 없었을테고

하굣길에 그 계집애네 집을 힐끔거리며 바라볼 일도 없었겠지

인생이 운동장처럼 막막했을 거야

모퉁이가 없다면

자전거 핸들을 어떻게 멋지게 꺾었겠어

너하고 어떻게 담벼락에서 키스할 수 있었겠어

예비군 훈련 가서 어떻게 맘대로 오줌을 내갈겼겠어

먼 훗날, 내가 너를 배반해볼 꿈을 꾸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말이야

골목이 아냐 그리움이 모퉁이를 만든 거야

남자가 아냐 여자들이 모퉁이를 만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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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
함께 읽는 시 2011. 8. 31. 20:33

금호철화 / 조정권

아, 이 금호철화(金號鐵花)

어려운 식물이지요 쇠꽃을 피웁니다

이 선인장의 성깔을 잘 알지 못하면 키우지 말아야 합니다

콘도르가 사막의 하늘을 맴돌다가 급강하해 앉은 모습

골 깊고 진녹색의 단단한 몸체엔 솟구치고 뻗친 가시들 보세요, 화살촉처럼 무장하고 있어요

가시들은 원산지에서 지나가는 말의 편자까지도 뚫고 올라옵니다

조심하세요 손

이놈들은, 뿌리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가시가 생명이지요

숨을 가시로 쉽니다 가시가 부러지면 썩기 시작하지요

어찌나 지독한지 뿌리를 몽땅 잘라 삼년을 말려두었다가

모래에 다시 심으면, 서너 달이면 제 몸에서 스스로 새 뿌리를 내립니다

흙 나르는 수레바퀴에 구멍을 내는 것도 이놈들입니다

조심하세요, 가시가 살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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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
함께 읽는 시 2011. 7. 6. 22:56

시가 내게 오지 않았다

권지숙

1975년, 말이 아니던 시절

비분강개 하나로

어린 미혼모처럼 덜컥

들어선 시의 길

내 경솔의 댓가는 이날까지

무수한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일이다

시 안 쓸 거야

시 좀 쓰세요

시도 안 쓰고 뭐 해

'시가 내게로 왔다'는

네루다의 말은 거짓말이다

-권지숙 시집, 오래 들여다본다, 창비, 2010,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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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
함께 읽는 시 2011. 4. 28. 10:50

어처구니가 산다

천양희

나 먹자고 살을 씻나

우두커니 서 있다가

겨우 봄이 간다는 걸 알겠습니다

꽃 다 지니까

세상의 삼고(三苦)가

그야말로 시들시들합니다

나 살자고 못할 짓 했나

우두커니 서 있다가

겨우 봄이 간다는 걸 알겟습니다

잚못 다 뉘우치니까

세상의 삼독(三毒)이

그야말로 욱신욱신합니다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우두커니 서 있다가

겨우 봄이 간다는 걸 알겠습니다

욕심 다 버리니까

세상의 삼충(三蟲)이

그야말로 우글우글합니다

오늘밤

전갈자리별 하늘에

여름이 왔음을 알립니다

*천양희,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창비시선326),창비,2011. 86-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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