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시 2010. 9. 24. 16:19

조인선

안성시 일죽면에 아주 작은 카센터 젊은 사장의 손을 본 적이 있다

장갑을 벗자 기름 때에 찌든 손이 번들거렸다

악수를 해보면 알겠지만

몸으로 먹고사는 이들의 손은 대체로 크고 굵다

세상을 이루는 바닥이다

젖소 십오 년 사과밭 십이 년

지금은 몰락한 부잣집 막내로 태어나

고생하신 어머니 손가락은

마디마디 뼈가 튕그러져 있다

집을 떠나고 싶을 때 어머니는 그 손으로 나를 잡으셨다

가만히 보니

담배에 찌든 가운뎃손가락 끝마디는

펜을 쥘 때도 일치하는데

내 정신이 시가 되는 곳도 이 자리였다

*조인선 시집 [노래](문학과지성 시인선 378, 2010.7.12 1쇄)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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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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