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고 싶은 책'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0.12.29 :: 바다를 떠돈다는 것
  2. 2010.12.24 :: 김성중의 추천도서 목록 2
  3. 2010.01.29 :: [만화]내가 살던 용산 / 김성희외 5인 / 보리 1
  4. 2009.11.23 :: 남도빨치산(전 6권, 매직하우스, 2008)
함께 읽고 싶은 책 2010. 12. 29. 13:15

바다를 떠돈다는 것

표류란 바다를 항해하다가 폭풍을 만나서 항로를 이탈하여 조류에 떠밀려 가는 것을 말한다. 바람을 맞을 돛대가 부러지거나 키가 부러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그 배는 정처 없이 흘러가야 한다. 운이 나쁘면 거대한 파도에 맞아 침몰할 수도 있다. 동력을 자연에 의존하던 시대에 이러한 표류는 늘 있어왔다.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최신식 엔진이 개발되어 성능이 아주 뛰어난 배라고 하더라도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항해를 준비하는 자들은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인다.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흑산도(우이도) 홍어장수 문순득은 표류한 지 3년 만(1801.12-1805.1)에 집으로 돌아왔다. 류큐(오키나와)까지 떠내려갔다가 중국으로 송환되던 도중에 다시 여송국(필리핀)으로 떠밀려 갔다. 필리핀에서 송환을 기다리다가 마카오를 거쳐서 베이징으로 갔다. 거기서 조선 사신을 만나서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고향에 돌아와서 그가 보고 들은 것을 정약전(유배중)에게 구술하였는데, 이를 정약전이 정리하여 ‘표해시말(漂海始末)’이 태어난다.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어도 비상한 관찰력과 기억력의 소유자인 문순득은 마치 눈앞에 그 현장이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류큐나 여송국의 풍습, 언어, 배에 대해서 아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망하거나 의욕을 잃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순득은 글자는 몰랐지만 왕성한 호기심으로 그가 본 것을 기억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이도에 유배와 있던 정약전(1758-1816)에게 그 시말을 알렸고 시대를 앞서갔던 실학자 정약전은 일자무식의 어부의 이야기를 ‘표해시말’로 정리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를 원한다. 그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밀려나면 불안해한다. 내일도 오늘 같기를 늘 원한다. 그러나 세상 일이 어디 뜻대로만 되는가? 나는 가만히 있고 싶은데 바람이 파도가 나를 떠미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조금 이동하면 그나마 위안이겠지만 엉뚱한 곳으로 밀려가버린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지금 나는 이곳에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보수주의자가 되어버린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무엇인가? 변화를 꿈꾸고 실천하는 사람을 진보주의자라고 부르는가? 그런데 변화를 꿈꾸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보수주의자다. 그래서 보수주의는 수구파다. 묵수주의자다. 나는 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2010년이 저물어가는 이때에 새삼스럽게 200년 전에 동아시아를 떠돌았던 국제인 문순득을 떠올리며 ‘변화’ 앞에서 두려워하는 나 자신을 반성한다.

*(조선 최초의 세계인 문순득 표류기)홍어장수 문순득, 조선을 깨우다(역사를 바꾼 신안 홍어장수와 조선 실학자들과의 만남),서미경 지음,북스토리(2010.12.15. 발행:279쪽:13,800원)

posted by 추월산
:
함께 읽고 싶은 책 2010. 12. 24. 09:06

김성중의 추천도서 목록

1.문학

-태백산맥(전10권),조정래,해냄,2007

-한강(전10권),조정래,해냄,2003

-아리랑(전12권),조정래,해냄,2003

-토지(전21권),박경리,나남출판,2002

-녹두장군(전12권),송기숙,시대의창,2008

-임꺽정(전10권),홍명희,사계절,2008

-혼불(전10권),최명희,매안,2009.

-봄날(전5권),임철우,문학과지성사,1997

-엄마의 말뚝,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

-축제,이청준

-인문주의자 무소작씨의 종생기,이청준,열림원,2000.

-허수아비춤, 조정래

-소설 목민심서(전3권),황인경,랜덤하우스,1992.

-국역 청장관전서(전13권),이덕무,민족문화추진회편,솔,1997.

-정유각집(전3권),박제가,정민 외 옮김,돌베개,2010.

-완역 이옥전집(전5권),이옥,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기고 엮음,휴머니스트,2009.

-만인보(전30권),고은,창비,2010.

-열하일기(전3권),박지원,김혈조 옮김,돌베개,2009.

-왕오천축국전(혜초, 천축 다섯 나라를 순례하다),혜초,지안 옮김,불광,2010.

-향수, 정지용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도스토예프스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테네시 윌리암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민음사, 2004.(영화 일포티노의 원작 소설)

-폭포는 돼지가 다 먹었지요,유몽인외,김찬순 옮김,보리,2006(670쪽:25,000원)

-신곡,단테 알리기에리

-파우스트,요한 볼프강 폰 괴테

-돈키호테,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베드라

-캉디드,볼테르

-오만과 편견,제인 오스틴

-선과 모터싸이클 관리술-가치에 대한 탐구,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장경렬 옮김,문학과지성사,2010(800쪽:18,000원).

-모비 딕,허만 벨빌,모리스 포비에 그림,김석희 옮김,2010(817쪽:48,000원)

-구운몽,김만중

-채봉감별곡,작자미상

-인도로 가는 길,E.M.포스터

-(조지 오웰 에세이)나는 왜 쓰는가,조지 오웰,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2010.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위건 부두 가는 길,조지 오웰,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2010.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베르톨트 브레히트

-그리스 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이윤기 옮김,열린책들.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프란츠 카프카

-성․변신,프란츠 카프카

-걸리버 여행기, 조너선 스위프트

-금오신화,김시습

-고전산문산책(조선의 문장을 만나다),안대회,휴머니스트,2008(30,000원).

-백석의 맛(시에 담긴 음식,음식에 담긴 마음),소래섭,프로네시스,2009.

2.인문사회

-서포만필(상․하),김만중,심경호 옮김,문학동네,2010.

-목민심서,정약용

-역주 흠흠신서,정약용,박석무․정해렴 역주,현대실학사,1999

-오리엔탈리즘,에드워드 사이드,박홍규 옮김,교보문고,2005.

-슬픈 열대,레비 스트로스,

-고전의 향연,이진경 외,한겨레출판,2007.

-책을 읽을 자유, 이현우,현암사,2010.

-로쟈의 인문학 서재(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이현우,산책자 ,2009.

-평생독서계획, 크리프턴 패디먼․존 메이저,이종인 옮김,연암서가,2010.

-죽음과 죽어감,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이진 옮김,이레,2008(439쪽:18,000원)

-노암 촘스키의 저작물

-박홍규(영남대 법학과 교수)의 저작물

-지방은 식민지다,강준만,개마고원,2008.

-유러피안 드림,제러미 리프킨,이원기 옮김,민음사,2005.

-마셜 맥루언,미디어의 이해

-관용론,볼테르

-국화와 칼,루스 베네딕트

-독서일기(1-7),장정일

-나의 레종 데뜨르(쿨한 남자 김갑수의 종횡무진 독서 오디세이),김갑수,미래인,2007(364쪽:12,000원).

-4천원 인생,안수찬 외,한겨레출판,2010.

-시에서 아이디어를 얻다,황인원,흐름출판,2010.

-비평고원10,비평고원,도서출판b,2010(1072쪽:25,000원).

-고추장,책으로 세상을 말하다,고병권,그린비,2007.

-코끼리를 들어올린 개미,빈스 포센트,유윤한 옮김,21세기북스,2006.

-내 어머니와 누이와 남동생 … 을 죽인 나, 피에르 리비에르, 미셸 푸코,심세광 옮김,앨피,2008.

-50번째 법칙,로버트 그린․피프티 센트,안진환 옮김,살림Biz,2009(343쪽:15,000원)

3.자연과학

-코스모스,칼 세이건,홍승수 옮김,2006(719쪽:15,000원)

-종의 기원,찰스 다윈

-다윈 평전,에이드리언 데스먼드 외,뿌리와이파리,2009(1295쪽:50,000원)

-종의 기원(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박성관,그린비,2010.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홍영남 옮김,을유문화사,2006(472쪽:15,000원).

-눈먼 시계공,리처드 도킨스,이용철 옮김,사이언스북스,2004(558쪽:25,000원)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전3권),리처드 파인만 외,박병철 옮김,승산,2004.

-과학혁명의 구조,토머스 새뮤얼 쿤,까치글방,2002

-16세기 문화혁명,야마모토 요시타카,남윤호 옮김,동아시아,2010(36,000원).

-과학의 탄생(자력과 중력의 발견, 그 위대한 힘의 역사),야마모토 요시타카,이영기 옮김,동아시아,2005(38,000원).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리처드 파인만,김희봉 옮김,사이언스북스,2000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정재승,동아시아,2003

-핀치의 부리-갈라파고스에서 보내온 ‘생명진화에 대한 보고서’,조너던 와이너,이한음 옮김,이끌리오,2002.

4.정치․경제

-자본,카를 마르크스,강신준 옮김,길,2010.

-야성적 충동,조지 애커로프․로버트 쉴러,김태훈 옮김,랜덤하우스,2009.

-(위험,기회,미래가 공존하는)리스크,피터 L.번스타인,한국경제신문,2008.

-거꾸로 읽는 경제사

-경제학 카페,유시민,

-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

-거대한 전환,칼 폴라니,홍기빈 옮김,길,2009.

-미국의 민주주의,알렉시스 드 토크빌,임효선․박지동 옮김,한길사,1997.

-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사회평론,2010.

5.기술(테크놀로지)

-정재승+진중권 크로스(무한 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정재승․진중권,웅진지식하우스,2009(342쪽:13,800원)

-(춤추는 분자들이 펼치는)나노기술의 세계,테드 사전트,차민철․심용희 옮김,허원미디어,2008.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 헬레나 노르베라-호지,양희승 옮김,중앙북스,2007.

-트위터-140자로 소통하는 신인터넷혁명,조엘 컴․켄 버지,신기라,예문,2009.

6.역사

-자치통감(전 32권),사마광,권중달 옮김,도서출판 삼화,2010.

-사기,사마천

-삼국유사,일연

-삼국사기,김부식

-미국민중사(2권),하워드 진,유강은 옮김,이후,2008

-김대중 자서전, 삼인, 2010.

-체 게바라 혁명적 인간,존 리 앤더슨,허진․안성렬 옮김, 플래닛, 2010(1172쪽, 48,000원)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시오노 나나미,오정환 옮김,한길사, 1996.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박노자․허동현,푸른역사,2009.

-(민족과 국가의 경계 너머 한반도 고대사 이야기) 거꾸로 보는 고대사,박노자,한겨레출판,2010

-나는 고발한다,니콜라스 할라즈,황의방 옮김,한길사(드레퓌스사건 연구서)

-노무현 자서전,노무현재단 엮음,유시민 정리,돌베개,2010.

-역사가의 시간,강만길 자서전,창비,2010.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카이 버드․마틴 셔윈,최형섭 옮김,사이언스북스,2010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마르크스 평전,자크 아탈리,이효숙 옮김,예담,2006

-엥겔스 평전-프록코트를 입은 공산주의자,트리스트럼 헌트,이광일 옮김,글항아리,2010(680쪽:32,000원)

-광기의 역사,미셸 푸코,이규현 옮김,나남,2003(868쪽:38,000원)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파블로 네루다,박병규 옮김,2008(537쪽:25,000원)

-총,균,쇠,제러드 다이아몬드,김진준 옮김,문학사상사,2010.1.14(2판18쇄,751쪽:25,000원)

7.예술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전4권), 아르놀트 하우저,반성완․백낙청․염무웅 옮김,창비,1999

-서양미술사,에른스트 H. 곰브리치,백승길․이종승 옮김,예경,2003

-미학 오디세이(전3권),진중권,휴머니스트,2004

-불멸의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김주희,이룸,2008.

-존 레논,존 블래니,서강석․조소영 옮김,오픈하우스,2010

-밥 딜런 평전,마이크 마퀴스,김백리 옮김,실천문학,2008

-이사도라 던컨,이사도라 던컨,구히서 옮김,경당,2003

- 고흐,영혼의 편지,빈센트 반 고흐,신성림 옮김,예담,2005

-봉인된 시간,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김창우 옮김,분도출판사,2005.

-영화관 옆 철학카페,김용규,이론과실천,2002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최순우,학고재,2008

8.철학

-세계 철학사,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박민수 옮김,이룸,2008(1205쪽:39,900원)

-철학과 굴뚝 청소부,이진경,그린비,2005

-철학콘서트,황광우,웅진지식하우스,2006.

9.종교

-예수 평전,조철수,김영사,2010(912쪽:30,000원).

-예수는 신화다,티모시 프리크․피터 캔디,승영조 옮김,미지북스,2009(545쪽:23,000원)

-우주에는 신이 없다,데이비드 밀스,권혁 옮김,돋을 새김,2010.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에른스트 블로흐,박설호 옮김,열린책들,2009(531쪽).

-주문을 깨다,대니얼 데닛,김한영 옮김,동녘사이언스,2010(560쪽:22,000원)

-사산된 신,마크 릴라,마리 오 옮김,바다출판사,2009.

-소설 콘스탄티누스-신이 된 사나이,류상태,인물과사상사,2008

10. 청소년

-완득이,김려령,창작과비평사,2008

-합체,박지리,사계절,2010.

-봄바람,박상률,사계절,1997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양철북,2010

-아기참새 찌꾸, 곽재구, 주니어파랑새, 2003.

-앵무새죽이기,하퍼 리,김욱동 옮김,문예출판사,2002(542쪽:9,800원)

-오체불만족,오토다케 히로타다,전경빈 옮김,창해,2002

-장기려(의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난쏘공),조세희,이성과 힘,2000

-반지의 제왕,톨킨

-블라인드 스쿨,정강철,휴먼앤북스,2010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루이스 캐럴

-해리 포터 시리즈,조앤 K. 롤링

-나니아 연대기,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닉 부이치치의 허그(한계를 껴안다),닉 부이치치, 두란노,2010.

-호밀밭의 파수꾼,제롬 D. 샐린저

-데미안,헤르만 헤세

-아홉살 인생,위기철,청년사,2001.

-꽃섬 고개 친구들,김중미,검둥소,2008.

-괭이부리말 아이들,김중미,창비,2001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최시한,문학과지성사,2008

-마당을 나온 암탉,황선미,사계절,2002

-그리운 메이 아줌마,신시아 라일런트,햇살과나무꾼 옮김,사계절,2005

posted by 추월산
:
함께 읽고 싶은 책 2010. 1. 29. 14:29
희귀한 만화책 <내가 살던 용산> / 송경동(시인)

용산 장례를 치룬 날 나는 다시 엉망으로 취해 망가졌다. 열사 추도시를 쓰고 나면 꼭 한번씩 의식을 잃을 정도가 된다. 사람들은 쉽게 추도시를 말하지만 무슨 접신이라도 된 양, 떠나기 싫은 어떤 영혼이 내게 마지막 패악이거나 앙탈이라도 부리는 양 난 한번씩 푸닥거리를 해야 했다. 모두 충분히 만신의 지경이 될 수 없는 부족한 놈이 버거운 영혼들의 이야기를 떠안았기 때문이었다. 돌아가신 분들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였다.

▲ 책 표지
그리곤 근 몇일동안 두터운 잠바를 입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래 그랬다고 솔직히 얘기하자. 부족한 시집 출판기념식 때 부러 찾아와주신 백기완 선생께서, 시인은 싸우던가, 그것을 못하겠으면 괴로워 술이라도 처먹다 죽던가 둘 중의 하나밖에 없어, 라고 호령을 하셨는데 그렇다면 나는 다행이라고 할까. 깨어 있는 의식이 싫고 두려워 멍하니 몇 시간이고 앉아 있다가 술을 찾곤 했다.

보일러를 켜둔 방안에 있는데도, 솜이불을 덮고 자는데도 온 몸이 떨려 왔다. 자다보면 온 몸이 흥건히 젖고 베개 앞뒤와 누운 자리가 모두 흠씬 젖어 있었다. 그래도 나는 끝내 잠바를 벗지 못했다. 안타까운지 아내는 잠바를 벗고 자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나는 무슨 동면에라도 드는 겨울 곰처럼 잠바를 벗고 눕지 못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했지만 돌이켜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다시 열흘 정도가 지나 늦은 밤 나도 모르게 용산으로 갔다. 그곳밖에 갈 곳이 없기도 했다. 1월 20일, 용산1주기 추도의 밤. 1년이라니. 1년이 벌써 지나갔다니. 1년전 그날 새벽까지 인터넷으로 용산 상황을 보면서도 갈 수가 없었다. 자주 만나던 전철연 인태순 동지와 총무님 얼굴이 떠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새벽 다섯 삼십 분. 원고를 송고하곤 이제라도 나가봐야 하지 않을까 했다. 저 정도면 무조건 진압한다는 이야기이고, 아침 출근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아마도 작전을 마무리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난 일어서지 못했다. 너무도 피곤하다는 핑계였다. 맞고 끌려가는 게 어디 한두번인가 하는 체념의 마음이기도 했다. 근 20여년 보아 온 것은 때가 되면 늘 맞고 끌려가는 노동자, 빈민들의 모습이었다. 무슨 큰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여섯 명이 불태워져 죽었다고 했다. 마침 콜트콜텍 기타만드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문화예술인들 회의가 있던 날이었지만 나는 어느새 용산으로 달리고 있었다. 달리면서 광우병 대책위와 기륭전자 때부터 함께 해왔던 촛불시민들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무조건 7시에 청계광장에서 모이자고.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가 갔다. 무수히 달려오던 사람들. 금세 대책위가 꾸려지고, 첫날을 준비했다. 오후 6시 철도노조 사무실에서 회의가 끝나고 7시 첫 규탄 집회를 준비하며, 프로그램이 없다고 시를 한편만 낭송하자고 했다.

그러마고 했다. 내가 무슨 말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앉아 1시간 만에 <너희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라는 첫 번째 추도시를 썼고, 악을 지르며 낭송을 했다. 사람들은 경찰벽을 못 뚫을 거라 했지만, 어느새 우리는 전경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밤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급히 쫒아갔지만 이미 선두는 시청 광장 앞에서 명동성당 쪽으로 회군한 후였다.

이 정도면 됐다는 사람들, 어떻게 이렇게 갈 수가 있냐는 사람들로 나뉘어 험악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미안하지만 이 정도면 됐다는 사람들은 주로 흔히 말하는 운동권들이었고, 이렇게 갈 수 없다는 사람들은 평범한 촛불시민들이었다. 광화문 촛불 때도 그랬고, 용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늘 대중은 개념없고 대책없이 과격하기만 한 사람들로 가르쳐 주어야 할 사람들이었다.

나는 차마 그들을 버려두고 갈 수가 없어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가 순천향병원으로 넘어 갔다. 그런 일은 미안하지만 내가 아는 한, 광화문 촛불항쟁 때도, 기륭비정규직 투쟁에서도, 용산 투쟁에서도 내내 숱하게 있어 왔다. 이명박은 그런 우리의 불철저와 적당함이 만들어가고 있는 어떤 허상인지도 모른다.

▲ 그림=김홍모

그런데 벌써 1년이 지났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떠나야 할 때라고 한다. 생각하니 그렇게 싸우고도 반성해야 할 일로만 1년을 보낸 셈이었다. 가끔은 내 자신이 불쌍할 때도 있다. 넌 왜 그렇게 너의 삶을 힘든 쪽으로만 몰아가는 거니. 왜 그러지 않아도 될 곳에 너의 모든 것을 거는 거니. 왜 그렇게 스스로를 학대하고, 망가지며 괴로워하는 거니.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조금씩은 견디며 살아가는 이곳에서 왜 넌 자꾸 못견뎌하는 거니. 자고 일어나 보니 새벽 4시 레아 2층 난로 곁에서 혼자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돌아와 가방을 보니 한 친구가 챙겨 준 만화책 한 권과 그림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사실 보기 힘들었다. 이제 다시 떠나야 할 때. 나는 정말이지 남들처럼 이젠 그만 용산을 잊고, 나도 조금은 행복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며칠, 다시 동굴 속에 든 것처럼 웅크려 있다가 어느 순간 <내가 살던 용산> 만화책과 그림책 <파란집>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보았다. 만드는 과정에 추천사를 쓸 사람 한 분을 소개해 주고, 고맙게 서평을 하나 써달라는 부탁을 거절하고 난 후였다. 내가 뭐라고 하는 마음이었다.

몇 페이지 보니 대략의 기획 방향을 알 것 같았다. 평전 쓰듯 돌아가신 한 분 한 분들의 삶을 기록하는 형식이구나. 그래서 여섯 명의 만화가들이었구나. 작년 4월 경부터 작업을 한 것으로 아는데 그럼 근 9개월 동안 이렇게 남모르게 또 용산과 함께 해 온 사람들이 있구나. 우선 싸움에 바빠 아무도 기록하지 못했던 철거민 열사들의 구체적인 삶들을 찾아 나선 이들이 있었구나. 그럼 내가 현장에 있으면서도 못내 얘기 듣길 꺼려했던 열사들의 생애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겠구나 싶어 꼼꼼이 보기 시작했다.

끝장까지를 그렇게 단숨에 보았다. 근 9개월 동안 모두가 거리에서 분통을 터트릴 때 자신만의 골방에서 숱한 번민을 겪으며 한 획 한 획을 사랑으로, 분노로, 꿈으로 그려 왔을 여섯 만화가 분들께 미안하기까지 했다. 난 3류 시인이지만 모두 1류 만화가들이었다.

참 아름다운 만화책이었다. 참 눈물겨운 만화책이었다. 정말이지 반성과 분노가 다시 치솟는 만화책이었다. 이런 사람들의 죽음을 이렇게까지 밖에 싸워내지 못했구나 생각하니 유가족들에게 미안한 책이었다. 좀 더 빨리 나왔더라면 우리 시대 양심 있는 모든 자들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무기로, 자성의 계기로, 내일에 대한 꿈의 거울로 삼았을 책이었다.

▲ 그림=김홍모

몇 년 전까지 순화동에서 조그만 동네 소고기 뷔페를 했다는 윤용헌 열사네 가족.
주말이면 한강에 나가 애들이랑 농구하고 축구하기를 즐겼다는 그. 설이면 춘천 고향에 가 아이들과 빙어낚시하는 걸 제일 좋아했다는 그. 사람들에게 술내기, 밥내기를 좋아해 실속 없었다는 그. 2층 방에서 자다 새벽 몰래 들어와 집기를 뜯어가던 용역깡패들에게 얻어맞던 그. 2007년 겨울 강제 철거를 당하고 북아현동 높은 달동네에 열 평 남짓한 집을 얻어 살았다는 그들. ‘가기 싫지만 가야 돼. 도와야지.’ 하며 ‘닷새 있으면 올 거야.’라고 말하고 사고 전날 나갔던 그. 망루에 불이 붙고, 같은 순화동 철거민 출신으로 지금도 병원에 있는 지석준 씨가 망루에서 뛰어내려 혼절했을 때 “승우(지석준 씨의 아들 이름)야! 이렇게 있으면 너 죽는다. 빨리 피하자.”고 불이 안 나는 쪽으로 지석준 씨를 옮겨주고 옥상에서 내려가는 문 쪽으로 달려갔다는 그. 그런데 웬 영문인지 망루 4층에서 아랫도리만 불탄 채 발견된 그. 열 두시간만에 강제부검 당한 그. 부검 후에도 장갑을 끼고 있던 그. 지문은 선명이 남아 있는데, 신원 확인을 위해 강제부검당했다는 그. “연대 온 동지들은 가시죠.” 했을 때 “우리도 갈까.”하는 표정이기도 하고, “우린 여기 남자.”라는 표정이기도 했다는 그의 눈빛.(김수박 「철거민」 중에서)

▲ 그림=김수박

그리곤, 한대성 열사네 가족.
강원도에서 수원 변두리 신동으로 이사 와 결혼 십 년만에 월세 단칸방에서 목련나무가 있는 조그만 전셋집으로 옮겨 다시 십여년을 한 동네에서만 살았다는 사람들. 20년 다니던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하고, 사는 게 막막할 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 온 재개발. 2007년 12월 군대가는 큰 아들을 배웅하며 문 밖에 서서 내내 울더라는 그. 아내인 신숙자 씨는 건물 청소용역 비정규직으로 일해야 했다고 한다. 그런 아내가 걱정할까봐 문자로만 ‘며칠 못 들어갈 거 같아. 정말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라고 남기고 떠난 그. 1월 20일, 일을 갔다 오니 동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고, 병원으로 가니 영정 사진을 달라하고, 새벽 경찰이 찾아와 DNA검사를 해가는 동안에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그의 죽음. 눈물도 나오지 않더라는 신숙자씨. 고향 화천으로 내려가 뭐든 심으면서 다시 살아보자고 했다는 그들.(유승하 「잃어버린 고향」 중에서)

▲ 그림=유승하

두 아들과 함께 용산 4가 뒷골목에서 ‘삼호복집’이라는 일식집을 하던 양회성 열사네.
배운 건 요리 기술뿐이라 평생 주방만 오갔던 인생. 한땐 독립한 가게가 잘 돼 조금은 여유로웠던 때도 있었지만, 그만 다시 IMF 외환위기 당시 가게문을 닫아야 했던 그들. 봉천동으로 가서 다시 가게를 열었다가 그나마 있는 돈마저 거개를 날리고, 용산 4가 뒷골목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빚을 끌어와 열었다는 가게. 중학교 때부터 야구를 했지만 끝내 꿈을 접고 일식 주방장 기술을 배우게 된 둘째 아들 종민이, 큰 아들 종원이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정말이지 네 식구 모두가 결사의 마음으로 열었다는 마지막 가게. “내일 모레가 설인데, 누나 목소리도 듣고 싶”지만 “목소리 들으면 눈물날 것 같아 그냥 갈란다.”고 간 사람.(신성식 「던질 수 없는 공」 중에서)

▲ 그림=신성식

용산에서만, 지금의 레아호프 자리에서만 1983년에 이사 와 26년 동안 장사를 했던 고 이상림 열사네.
일흔 둘 나이에 이제 결혼한 지 3년여밖에 안된 둘째 아들 이ㅜ 씨와 함께 망루로 올랐던 그. 새벽 5시면 일어나 기도를 드리고 나서야 모든 일을 할 수 있던 그. 손자를 자전거에 태우고 다니길 좋아했다는 그. 2006년 10월, 강변역과 용산에서 노점을 하던 둘째 아들 내외와 함께 20여년 하던 갈비집을 들어내고 호프집을 만들던 그. 인테리어 비용 마련을 위해 집조차 빼서 레아호프 4층 옥탑방에 살던 그. 길가 화분에 생강도 키우던 그. 제일 오래 살았다고 철대위 위원장을 떠밀려 맡았던 그. 프랑 하나 걸려다가 용역깡패 다섯에게 두들겨 맞고도 오히려 폭행으로 수배 생활을 해야 했던 그. 둘째 아들이 다시 그 자리 물려받아 철대위 위원장을 맡아야 했던 기구한 삶들. 그는 죽고 아들은 아버지를 불태워 죽인 죄목으로 갇혀야 했던 비운의 가족들.(김성희 「레아호프, 그들이 만든 희망」 중에서)

▲ 그림=김성희

용인에서 13년 살던 집을 철거당하고, 옮겨간 성남에서 다시 철거를 당해 네 식구가 천막에서 살던 이성수 열사네 가족 이야기.
장례식장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던 그의 아들 상현이. 어느 날 겨울 친구 진성이네에서 자고 와라 해서 왜 그런가 하고 가봤더니 지붕도 없이 무너진 집에서 촛불을 켜고 앉아 있던 엄마 아빠. 천막에서 자고 다니며 고물트럭 노점을 하는 아빠를 도우려 미안한 마음에 피자 배달을 다니던 상현이. 또 그렇게 길거리에서 붕어빵 노점을 하던 엄마. 여름이면 음식이 썩어나가던 천막 안의 아이스박스, 장마 때면 책이 모두 젖어 있던 천막, 겨울이면 물이 없어 진성이네에서 씻고 다니던 나날. 얼음빙판에 넘어져 피자배달 오토바이를 모두 깨먹고 얼굴이 긁혀 왔던 상현이. 눈 내리는 고물트럭 노점에 앉아, “상현아 아버지는 평생을 정직하게 살려고 애썼다. 우리가 서로를 돕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도와주겠니.”라고 알 듯 모를 듯한 얘기를 남기고 용산으로 갔던 그. “우리가 바랬던 게 너무 큰 거였을까요. 우리는, 아빠와 엄마와 나는 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어요”라는 상현이.(앙꼬 「상현이의 편지」 중에서)

▲ 그림=앙꼬

아, 이런 이들이 2009년 한해를 떠들썩하게 했던 도심 테러리스트였다. 도심 부유 상인들로, 개발 이익을 노린 브로커들로 찍혔던 이들이었다. 사회 불안을 야기시키려고 의식적으로 모인 불온 단체의 회원들이었다.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는 위험한 이들이었다.

옳지. 소설가인 김연수 씨가 추천사에서 적실히 밝혀 두고 있다.

“철거민들도 사람이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이렇게 한 권의 책까지 만들었다. 다른 노력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사람이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야만 하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니, 증명해도 믿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다. 하지만 믿는 믿지 않든, 사람은 사람이다. 그것만은 너무나 확실하다. 그리고 그들이 사람인 한, 당신들은 틀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다.”

그리곤 1년, 혹자에 따라선 용산은 이제 끝났다고 하기도 하고, 이제 그만 아쉬워도 접어야 할 때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다시 묻는다. 무엇이 시작이었고, 무엇이 끝이였냐고, 우리는 도대체 용산을 제대로 알기나 한 것이었냐고. 당신은 무슨 목적과 생각으로 그 처참한 현장에 서 있었냐고.
유가족이 시신을 확인하고 싶다고 울부짖자, 지금 당신들 폭동하려는 거야라고 묻는 나라?
두 여성이 흉폭한 폭력기계들인 용역 셋을 때렸다고 오히려 고소당하는 나라?
가난한 이들의 생존권과 주거권을 짓밟고 수조원의 건설이익을 챙기는 자본은 합법인데, 거기에 저항하다 끌려가고, 죽은 자들은 불법이 되는 나라?
그 폭력과 착취의 철거가 어디 비단 전국 600군데 철거 현장에서만 일어날까?
노동 현장에서는 일어나지 않는가? 하루 아침에 일터에서 철거당하고, 정규직에서 쫒겨나고, 비정규직으로 일해야 하는 860만 비정규직들의 삶은 철거당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 초등학교 도덕교과서만도 못한 세상을 언제까지 우리는 용인해야 하는가?

용산에서 쫓겨난 우리는 다시 마포 어디로, 왕십리 어디로, 작가회의 회원이기도 한 소설가 유채림이 혼자 남아 촛불 지키고 있다는 홍대 앞 어느 철거 현장으로 이 소중한 연대의 마음을 가지고 달려가면 되는가? 다시 또 어느 고립된 섬과 같은 민중 소외의 현장에서 측은지심으로 눈물짓고, 분노하면 되는가?

안타까운 말이지만 그래서 다시 신부님들 몇 분이 거룩해지고, 다시 또 몇 명의 박래군 형과 이종회 형과 남경남 의장이 시대의 고행자로 태어나고, 시인 몇이 무슨 보살처럼 불려지고, 미술인들 몇의 작품이 빛나면 되는가? 그럼 세상이 조금은 따뜻해지는가? 자 이런 복마전의 사회 속에서 당신은 어떤 죽음의 현장, 은폐의 현장을 이제 다시 선택해 갈 것인가? 용기가 있는가? 저들의 문어발 한 쪽이 아니라 먹물만 들어 있는 저 흉악한 대가리를 물어뜯으며 당신은 절규할 수 있는가?

그래서 오늘 소개하는 이 책은 2009년과 10년을 아울러 한국사회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책 중의 하나이면서 가장 무서운 책 중의 하나다. 무수한 질문들을 우리에게 던지는 수많은 상상력의 집산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때로 어떤 책은 그 안에 쓰여진 텍스트의 내용을 넘어 그 자체가 한 시대의 기념비가 되어 세월의 풍상에 깎이더라도 꼿꼿하게 그곳에 서 있는 책들이 있다.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어떤 상징, 푯대가 되기도 한다. 나는 감히 이 책들이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의 산 속 게릴라 시절, 모든 것을 내려놓고도 배낭 속에 간직한 책 한 권처럼. 스페인 공화파 시민들이 왕정파 파시스트들에게 쫓겨 피레네 산맥을 넘어 후퇴하면서도 배낭 속에 꼭 넣어 왔다는 저항의 책 한 권처럼, 어떤 책들은 그 안에 기록된 내용을 넘어 그 자체가 하나의 발언이 되고, 질문이 되고, 물러설 수 없는 하나의 집념이 되기도 한다. 이 희귀한 만화책 <내가 살던 용산>이 그럴 것이며, 그림책 <파란집>이 그럴 것이며, 곧 나오게 될 미술인들의 기록집 <끝나지 않는 미술전>이 그럴 것이며, 이미 나온 르뽀집 <여기 사람이 있다>와 <이번에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가, 조약골의 음반 <용산에 가면 시대가 보인다>가 그럴 것이다.

참교육에 쓸 교재가 마땅치 않다고, 이 책을 보라.
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이 책을 읽고 토론해 보라. 먼저 누군가를 선도하겠다는 자신부터 제발 이 책을 보라. 정화의 눈물을 한소끔 정도 흘리고 나면 정신이 조금은 맑아지리라. 우리가 다가가야 할 꿈의 세계가 사실은 무척이나 단순한 꿈에 있음을 알게 되리라.

고맙고 정말 좋은 책 잘 보고도, 사실 글까지를 쓸 생각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어느 시인이 당신 시집이 알라딘에서 팔리는 듯한데 무슨 이벤트까지 해주더라고 했다. 들어가 볼 일 없었던 알라딘에 가 보니 보리 출판사에서 <내가 살던 용산> 만화책과 그림책 <파란집>을 알리기 위해 용산 관련 한정판 엽서를 끼어주는 이벤트인 듯한데, 거기에 내 부끄러운 시집도 포함을 시켜놓았다. 잠시 황망했다. 내 책을 내준 출판사도 아니거니와, 다른 책들은 정말이지 용산을 위해 나온 연대의 책들인 반면 내 책은 그야말로 사사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맙고 영광이지만 말할 수 없이 부끄러운 일. 그런 마음들에 무어라도 보태야 한다는 어떤 빚짐과 책무를 느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책을 준비해 온 여섯 만화가분들과, 기획을 해 온 숨은 벗들, 그리고 용산 1주기인 1월 20일에 맞춰 이 책만을 위해 한겨레신문에 전면 광고를 내주며, 다시 수많은 사람들이 용산을 기억하게끔 해준 고마운 보리출판사 분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어줍짢은 글로라나마 세상에 알려라는, 그것이 앞으로도 내내 내가 써야 할 용산과 관련한 반성문이라는 생각이었다.

차지하고, 얕은 감식안이지만 이 책은 미학적으로도 히틀러와 나치의 광기를 다룬 아트 슈피겔만의 <쥐>나 팔레스타인 학살 현장과 보스니아 내전의 참혹함을 다룬 조사코의 <팔레스타인>, <안전지대 고라즈데>와 같은 세계적인 명작들에도 손색이 없다. 그것이 더 아프고 눈물난다. 그 끔찍했던 용산의 기억을,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의 꿈으로 다시 만나야 한다는 것이 가슴 아픈 책이다.

아우슈비치와 가자의 난민촌과 보스니아 전장의 무너져가는 공동체들과, 현재만 보더라도 세계적 공황 위기 속에서 일부 자본의 안락을 위해 고통을 전담하며 또 그렇게 수없이 ‘철거당해 가는’ 세계 민중들의 역사 속에서 용산의 참사가 세계적 보편성을 띠고 다시 만난다는 것도 슬픈 일이다. 하지만 다행이다. 30여년전 가난한 이들의 ‘철거’를 막기 위해 넘어선 안될 선으로 쳐진 문화적 전선이 조세희의 <난쏘공>과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나이> 정도였다면, 이제 우리는 만화와 그림과 시와 노래와 연극과, 미디어 등이 연대하여 총체적으로 학살의 징후에 대항하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다시 이런 연대의 문화를 살려가는 것. 어떤 문화 상품보다 이들 책들이 고귀하게 만드는 것. 그것 또한 아직 끝나지 않은 용산을 향한 우리 모두의 투쟁이어야 할 것이다. <내가 살던 용산> 만화책과 그 자매 책들이 우리들의 소중한 서가에 더 많이, 곧게 꽂혀 있을 때, 그만큼 저 흉악한 독재자가 2009년 용산 학살의 책임을 지고 역사의 단두대에 서게 될 날은 그만큼 짧아질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제2의 용산, 제3의 학살을 막는 사회적 저항선이 될 것이다. 우리는 책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약속을 가슴 속에 새기는 것이다.

용산의 진실과 학살의 진상규명이 비로소 이루어지는 날, 그날이 오면 우리는 이 책들을 꺼내 그림 한 점, 글 한 줄씩을 어루만져보며 긴 소회에 잠겨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로서 이 만화책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2009년 용산참사 열사들에 대한 어떤 약속과 반성과 추모의 마음들을 고이 접어 저 하늘로 날려 보낼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01월 27일 (수) 20:38:32송경동 / 시인 redian@redian.org
posted by 추월산
:
함께 읽고 싶은 책 2009. 11. 23. 11:16

남도빨치산(전 6권, 매직하우스, 2008)

정관호(1925- ) 지음


[책소개]- 알라딘

6.25를 배경으로 영호남 지방에서 벌어졌던 무장유격투쟁을 다룬 소설. 당시의 문헌과 기사들을 곳곳에 차용해 그 시대의 역사적 기록성을 존중하고 있다. 소논문인 정사(正史)를 바탕으로 실제로 있었던 일들을 보다 사실적으로 다루었다. 때문에 작가는 빨치산의 생태를 그들 내부 시각으로, 그들 일원이 되어서 그려내고 있다. 주 무대인 전남 지방에서 영호남 일대와 전선의 배후까지 돌며 전쟁의 비극을 담아낸다.


남도빨치산 1 -후퇴하는 군상

머리말

제1장 후퇴하는 군상

제2장 하나의 구심점으로

제3장 드디어 사령기 오르다


남도빨치산 2 -보복의 회오리

제4장 보복의 회오리

제5장 침공에 맞서서

제6장 자기지역 자체해방


남도빨치산 3 - 산에 핀 진달래꽃

제7장 삼각고지

제8장 무등산 안팎

제9장 아, 화학산


남도빨치산 4 - 그해 여름 백아산

제10장 그해 여름 백아산

제11장 산에서 맞는 8?15

제12장 파송작전


남도빨치산 5 - 불타는 백운산

제13장 제1차 대침공

제14장 불타는 백운산

제15장 수난의 해


남도빨치산 6 - 괴멸

제16장 평화의 외침

제17장 정전으로 가는 길

뒷가지


부대를 이끌고 유치내산 어귀인 도동에 들어서 보니, 그곳은 완전한 해방구여서 모든 것이 합법 때의 평화로운 정경 그대로였다. 입산자들은 주민들을 거들어 가을걷이를 하기도 하고, 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노래도 부르고 있다. 집집의 처마 밑에 곶감 줄이 발처럼 드리웠고, 남은 감나무마다 가지가 휘게 먹감을 달고 있다. 그저 한적한 산촌일 뿐이다. -1권 62-63쪽


백아산 봉우리들은 하얗게 반짝인다. 그래서 ‘흰갈가마귀산’이라고 불린 듯한데, 인근에 적벽과 서드레바위 등 기암군과 맑게 흐르는 냇물이 어울려 고운 산천을 이룬다. 그래서 선녀들이 놀러 내려왔다가 돌아갈 날을 잊어버렸고, 그들을 데려오라고 보낸 사자들까지 함께 어울려 귀환을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런 설화에 걸맞게, 이 근방에서는 고인돌을 비롯한 고총들이 많이 발견되었고, 이곳저곳 볼 만한 경치가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끈다. 그 옛날 선비나 호족들이 살고 묻히기를 원했던 골다운 데가 역력하다.

그러나 해방 후의 백아산 일대는 그 빼어난 경관과는 사뭇 무관하게 상잔의 유혈이 낭자했다. 그 까닭은 그곳이 차지하는 위치와 그 형국, 그리고 그를 에워싼 군면들의 인민성 때문이다. - 2권 62-63쪽


삼각고지 불탄 자리는 아직 뜨겁다. 그 속을 앙감발을 짚다시피 하면서 시신들을 건져낸다. 새까만 숯이 된 시신은 누구인지조차 분간이 안 갈 만큼 망가졌다. 사지가 타서 뚝뚝 부러져 동강이 난다. 한마디로 끔찍하다.

곡성 군당 성원들이 달려들어 시신 수습에 나선다. 그들은 검장산 쪽에서 대피하면서 제트기가 네이팜탄 공격을 퍼붓는 광경을 목도했다. 그림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바, 화염방사기가 하늘에서 마구 불을 뿜어대는 것 같았다. - 3권 56쪽 -


“계절 도망은 못 간다.”

어김없이 찾아든다는 비유로 쓰이는 말이다. 팔자 도망, 나이 도망도 그와 같다고 대꾸삼아 더불어 쓴다.

우리는 계절이 분명한 땅에서 오랜 동안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24절기를 죄다 외지는 못할지라도, 입춘이니 하지니 소한․

대한쯤은 꼽아보고 넘어가는 것이 우리네 계절 감각이다.

봄이면 씨앗을 뿌리고, 가을이면 곡식을 거두어들인다. 그리고 긴 겨울은 장만한 것을 먹으면서 연명한다. 거의 한 해의 절반은 갇혀서 산다. 북쪽으로 갈수록 그 기간은 더 길다.

자연이 이러하니 숲 또한 그러하다. 봄이면 잎이 피고 가을이면 다 진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인 이 땅에 잎이 지지 않는 나무는 적고, 태반이 잎이 지는 나무들로 이뤄져있다. 특히 남조선의 숲은 그 특징을 두드러지게 보이며, 남쪽으로 갈수록 갈잎나무 천지다. 남해안과 도서 지방에 늘푸른넓은잎나무 숲이 조금 띠를 이루고 있을 정도다.

산사람들이 웅거하고 있는 남도의 산. 저 불갑산을 비롯해서 화학산?말봉산?모후산?무등산?백아산?백운산 등은 예외 없이 다 잎 지는 나무들로 덮여있다. 더군다나 함부로 불을 질러서, 불에 약한 소나무 종류는 다 타죽고 맹아력이 강한 참나무류만 주로 남아서 비탈과 골짜기를 메우고 있다.

산사람들은 그런 지표에서 벗어날 수 없다. 4월이면 숲은 아래로부터 싹을 틔우는데, 사람 움직임을 가릴 정도가 되려면 5월이 지나야 된다. 이른바 녹음기라고 하는 시기는 6월에서 10월까지의 기간인데, 11월이면 벌써 숲이 설피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1년의 절반은 잎이 없거나 성긴 상태다. - 5권 7-8쪽 - 알라딘산에 눈이 깔렸다고는 하지만, 워낙 강력한 그 화력 때문에 밤낮을 이어 불길이 번졌다. 온 산이 불붙는 것 같았다. 진입할 때 아예 저항하지 못하게끔 철저히 두들겨놓겠다는 속셈 같았다. 네이팜탄의 위력은 접근을 허락지 않는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그때 진상골에는 백운산 지구와 광양 군당 성원들이 거점을 잡고 있었다. 침공 기미를 알아차리고 대피차 골짜기 위쪽으로 올라와 있다가, 이 뜻하지 않은 화공을 받아 심한 손실을 입었다.

이렇게 대량살상 무기까지 동원해서 공격하는 한편, 고성능 확성기로 투항하라고 외치며 무시로 공중 가득 전단을 뿌려댔다. 공세 초기에 생포된 사람들의 사진까지 곁들여, 투항하고 나오면 그들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선전했다.

‘자수증’이란 것까지 만들어 뿌렸다. 그 쪽지를 들고 침공군 초소로 오면 귀순자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 5권 134-135쪽


저자 : 정관호


1925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남. 원산교원대학 교원으로 재직하던 중 6·25전쟁으로 전라남도 강진에 내려왔다가 후퇴하지 못하고 빨치산 대열에 가담. 1954년 4월 전남 백운산에서 생포되어 형을 삶.

저서로는 음악 오디오 에세이집 ≪영원의 소리 하늘의 소리≫, ≪소리의 고향≫이 있고, 시집들 ≪꽃 되고 바람 되어≫, ≪남대천 연어≫, ≪풀친구 나무친구≫, ≪한재≫, ≪아구사리 연가≫가 있다. 역사서로는 ≪전남 유격투쟁사≫가 있으며, 기타 역편저가 다수 있다.


정관호의 한 마디


이 글을 배고 낳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일이 걸렸다. 그냥 몇 해 걸렸다고 잘라 말할 수 없는 긴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 오랜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그 싹을 지우려 한 적은 없다. 내가 그 대열에 몸담았기에 배게 된 생명은, 또 그랬기에 키우고 낳는 데 그토록 긴 세월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조선호랑이는 동강난 허리를 부여잡느라 포효하지 못했다!


일본에 의해 점령되어 주권을 빼앗긴 지 35년. 그래도 해방을 맞았으나 그 기쁨을 누리지도 못하고 외세에 의한 반도의 분할. 한국은 그 이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남한과 북한이라는 반쪽짜리 나라로 시작하여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국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6?25. 3년 1개월간 지속된 전쟁으로 인해 이 땅에서 죽어간 전사자만 해도 민간인을 포함 450만 명이다. 공식 기록만으로도 북한군 54만 명, 한국군 22만 7,748명, 미군 3만 3629명, 기타 UN군 3,194명, 중공군 90만 명으로 추산된다.

60여 년 전 이 땅을 피로 물들인 전쟁! 도대체 호랑이의 형상을 한 한반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국전쟁 59년!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래서 산으로 들어갔고, 생존을 위해 살며 싸웠고, 그 본디 사명을 다하다가 끝내는 괴멸되었다.”는 것을 나는 실상 그대로 알리고 싶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어떻게 싸우다가, 어떻게 죽어갔는가 하는 것을 있었던 그대로 기록으로서 남겨두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그들의 삶 자체가 처절함 그것이었음으로 있었던 그대로 쓰면 될 일이었다.

그들의 한결같았던 지향은 겨레의 완전독립이요, 억압받는 자의 자주권 회복이었다. 그것은 인류 공통의 욕구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그런 그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그들의 잔영을 좇았다. 이제는 화석으로 굳어진 그 발자국을 더듬어 남도 천지를 누비고 다녔다. 묻혀버린 것들을 캐내고 조각조각 모았다.

지금의 나는 그들을 역성들고 있다는 지적 앞에서 털끝만큼도 부끄럽거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노라고 강변할 것도 없다. 나와 함께 있었던 그 형제들의 이야기요, 새파란 젊음으로 산화한 자매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평탄하게 생각하면 그것은 또 ‘우리’ 당대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살아남은 몸으로 그들에게 진 빚을 갚고자 했다. 내 능력이 모자라서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전하지 못할까 저어할 뿐이다.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미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일이 걸렸다. 그냥 몇 해 걸렸다고 잘라 말할 수 없는 긴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 오랜 동안 작가는 단 한 번도 그 싹을 지우려 한 적은 없다. 작가 스스로가 그 대열에 몸담았기에 배게 된 생명은, 또 그랬기에 키우고 낳는 데 그토록 긴 세월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험한 시대가 판을 치고 있었기에 앉힐 자리가 없었고, 담고 싶은 이야기가 절실해서 함부로 깃을 틀지 못했다. 편안한 시대가 오면 쓰려니. 그때 가서 아주 잘 쓰려니.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며 달래다가 훌쩍 여든 고개를 넘기고 말았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지금에 와서 무슨 빨치산 소설이냐, 하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아무아무개가 쓴 무슨무슨 책들을 들먹이면서, 그것들이 쓸고 지나간 뒤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겠느냐 하는 목소리.

낳기는 지금이지만, 배기는 50년도 더 되었는데 말이다. 작가는 생애의 막바지에야 가까스로 늦둥이를 낳고 이런 비판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이 소설 《남도빨치산》은 어디까지나 당시성을 문제 삼았다. 그때로 돌아가 국내외의 제반 정황들을 다시 재생시키면서 그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 속의 ‘아기’를 키웠다. 시대감각에 맞지 않는다는 지청구를 예상하였지만, 그저 우악스레 부둥켜안고 이 50살 먹은 글 《남도빨치산》에 매달렸다. 실은 좀 더 써야 제대로 마무리가 되는데,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 또 촉급한 나머지 서둘러서 매듭을 지었다. 늘게 잡고 되게 챈 꼴이 되었다. 그래놓고 보니, 다음 일은 고사하고 이 일 자체가 마지막 일이 되게 생겼다.

소설 《남도빨치산》은 조국의 변혁기인 6ㆍ25를 계기로 영호남 지방, 특히 전라남도 지방에서 벌어졌던 무장유격투쟁을 그 무대로 하고 있다. 그 때문에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그 시대성, 역사적 기록성을 존중했다. 당시의 여러 문헌과 기사들을 곳곳에 차용한 것도 그런 데 연유한다.

무릇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서사물이 이디 있으랴마는 사건 사실 그 자체만으로 문학작품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들에 근거하여, 그 무대에 등장 명멸하는 인물들을 배치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추적 형상화하는 것이 소설 창작의 방법론이다. 이것은 극히 원론적인 이야기다.

그리하여 《남도빨치산》은 실지로 있었던 일들을 뼈대로 하고 있으므로 그 어떤 역사물보다 사실적(事實的)이다. 사실 그 자체만으로 엮은 것이 역사라면, 사실로 증명되지 않는 일들, 즉 미처 모르는 일들은 그 서술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남도빨치산》은 그 미처 모르는 일들에 허구(虛構), 즉 진실의 다리를 걸쳤다. 똑같게 많은 것은 줄이고, 성글게 적은 것은 보태면서 사실이 닿지 않는 허방을 예술적 진실로 메웠다. 그럼으로써 보다 사실적(寫實的)이고자 했다. 이 글이 소설 형식을 취한 이유다.

그래서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극소수 몇몇 사람을 제하고는 다 실명이 아니다. 실지로 활동했던 인물들을 끌어들이기는 했지만, 그 인물들에 ‘진실’의 옷을 덧입힌 것이 캐릭터의 이름들이다. 그러므로 어떤 등장인물에 굳이 실명을 대입시키려 하지는 말아야 한다. 공연한 헛수고다.

원고 단계에서 이 글을 본 이들은 이렇게 묻는다. “작중 인물 아무개가 실지로는 누구인가?” 또 이런 요구도 한다. “실명을 노출시키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말하자면 실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는 정사(正史)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그 소논문이 이 소설의 모태가 되었음을 고백해 둔다. 이 글이 갖는 두 번째 특색이다.

세 번째로 명토를 박아 둘 것은, 이 글이 빨치산 소설이라는 점이다. 주 무대는 전남 지방이지만, 더 넓게는 영호남 일대, 더 나아가서는 주전선 배후에서 벌어졌던 일까지 다루고 있다.

이제까지 빨치산 활동을 다룬 문학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들을 일률적으로 어떻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 태반이 편견을 가진 시각에서 대상을 바라봄으로써 서술에 객관성을 잃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작가는 작가 자신이 겪었던 빨치산의 생태를 그들 내부 시각으로, 그들 일원이 되어서 그리려고 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당파성 시비가 거론될 수 있다. 의도적으로 어느 편을 든 것이 아니냐, 하고 생먹어 들어오는 일이다.

작가는 이 《남도빨치산》을 내놓음에 있어, 이 글이 어떤 ‘색깔’로 매대기쳐지거나 ‘마녀사냥’ 감으로 다루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항차 기존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몰아붙인다면, 그것은 실로 어불성설이요 상식에도 어긋나는 미숙한 태도다.

역사의 양지나 음지, 승자나 패자, 그 어느 면에 대해서도 조명할 수 있는 것이 문학 창작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라면 그런 면들을 다 다룰 수 있다. 즉 표현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이 글은 패잔의 기록이고, 그 패잔의 대열 속에 있었던 사람이 겨레의 역사와 동시대인들 앞에 내놓는 일종의 보고서다.


그림씨, 이름씨, 꾸밈씨, 움직씨, 북녘 말, 남녘 말, 쉴새없이 너나들이하는 우리 본딧말!


쪼뼛하다, 노루막이, 안다미 쓰다, 안다미로, 테메우다, 몰골스럽다, 앙감발, 여든대다, 파겁하다, 곱다시, 배리배리, 도련치다, 마침맞다, 짱짱하다, 말뚝잠, 개잠, 등걸잠, 길잡다, 듣그럽다, 옴살, 존조리, 는개, 뜨덤뜨덤, 잦다, 쳇불, 엇지다, 말랭이, 조근조근, 명주바람, 아구사리, 벙글다, 저녁답, 볕발, 오련하다, 앙갑질, 우내, 나숭개, 궁겁다, 우부룩하다, 께끼다, 말마추, 가마바탕, 고임, 벌룩거리다, 깐지다. 시르죽다, 워낭, 엄벙덤벙, 앗다, 노느매기, 톺다 더넘스럽다, 이무럽다, 초들다, 엉얼, 얘지랑거리다, 헤식다, 극터듬다, 행티, 노박이, 짜장, 들레다, 너볏하다, 갱핏하다, 산내리바람, 귀지다, 곤드라지다, 박그럭, 심바람, 으밀아밀, 뛰뛰하다, 메지, 가멸차다, 바수다, 너덜, 웅긋쭝긋, 너덜강, 투레질, 해사하다, 밤도와, 버꾸, 깔축없다, 설피다, 아퀴, 무르춤하다, 발채, 가즈럽다, 틀지다, 수수꾸다, 벼릿줄, 민틋하다, 휘뚜루, 골마리, 지저깨비, 부라퀴, 자닝하다, 볼만장만, 잡살뱅이, 몽글다, 화라지, 온새미로, 슳다, 솝뜨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우리네 말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 아름다운 글을 사전에서만 찾아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올곧게 살아있던 본딧말이 60여 년의 세월을 넘어서 이제 다시 마을길 정하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니 우리 사회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본문을 한번 살펴보자.


전남 지방에는 ‘곡(谷)’ 자가 붙은 지명이 많다. 그런데 그 본딧말을 더듬어보면 ‘○실’ 또는 ‘○○실’로 되어 있고, 그 지방 사람들은 그 본딧말로 부르고 있다. 아마도 ‘실’이란 ‘골짜기’를 뜻하는 말인 성 부르고, 마을 이름에 ‘실’이 붙는 연유는 이러저러한 골 언저리나 그 들머리에 마을이 이룩되었음을 뜻하는 것 같다. 그토록 예쁜 원래 이름을 두고 어째서 한자 일색으로 매대기를 쳐버렸을까.

그 본딧말과 바꿔버린 한자명 몇 낱만 추린다.

논실―논곡(論谷), 다라실―월곡(月谷), 우무실―정곡(井谷), 숲실―임곡(林谷), 한실―대곡(大谷), 대실―죽곡(竹谷), 곰실―웅곡(熊谷) 등이다. 이 밖에 동(洞) 또는 치(峙)로 마구 바꿔놓은 데도 많다.

후곡(后谷)마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본딧말은 ‘모후실’이었다. ‘모후산 아랫마을’이란 뜻이렷다.

-《남도빨치산》2권 198-199쪽



전운이 감도는 산야, 남도 땅, 해끝마을들! 우리 강산은 이토록 시리도록 아름답건만!


부대를 이끌고 유치내산 어귀인 도동에 들어서 보니, 그곳은 완전한 해방구여서 모든 것이 합법 때의 평화로운 정경 그대로였다. 입산자들은 주민들을 거들어 가을걷이를 하기도 하고, 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노래도 부르고 있다. 집집의 처마 밑에 곶감 줄이 발처럼 드리웠고, 남은 감나무마다 가지가 휘게 먹감을 달고 있다. 그저 한적한 산촌일 뿐이다.

-《남도빨치산》1권 62-63쪽


백아산 봉우리들은 하얗게 반짝인다. 그래서 ‘흰갈가마귀산’이라고 불린 듯한데, 인근에 적벽과 서드레바위 등 기암군과 맑게 흐르는 냇물이 어울려 고운 산천을 이룬다. 그래서 선녀들이 놀러 내려왔다가 돌아갈 날을 잊어버렸고, 그들을 데려오라고 보낸 사자들까지 함께 어울려 귀환을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런 설화에 걸맞게, 이 근방에서는 고인돌을 비롯한 고총들이 많이 발견되었고, 이곳저곳 볼 만한 경치가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끈다. 그 옛날 선비나 호족들이 살고 묻히기를 원했던 골다운 데가 역력하다.

그러나 해방 후의 백아산 일대는 그 빼어난 경관과는 사뭇 무관하게 상잔의 유혈이 낭자했다. 그 까닭은 그곳이 차지하는 위치와 그 형국, 그리고 그를 에워싼 군면들의 인민성 때문이다.

-《남도빨치산》2권 62-63쪽


삼각고지 불탄 자리는 아직 뜨겁다. 그 속을 앙감발을 짚다시피 하면서 시신들을 건져낸다. 새까만 숯이 된 시신은 누구인지조차 분간이 안 갈 만큼 망가졌다. 사지가 타서 뚝뚝 부러져 동강이 난다. 한마디로 끔찍하다.

곡성 군당 성원들이 달려들어 시신 수습에 나선다. 그들은 검장산 쪽에서 대피하면서 제트기가 네이팜탄 공격을 퍼붓는 광경을 목도했다. 그림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바, 화염방사기가 하늘에서 마구 불을 뿜어대는 것 같았다.

-《남도빨치산》3권 56쪽



“계절 도망은 못 간다.”

어김없이 찾아든다는 비유로 쓰이는 말이다. 팔자 도망, 나이 도망도 그와 같다고 대꾸삼아 더불어 쓴다.

우리는 계절이 분명한 땅에서 오랜 동안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24절기를 죄다 외지는 못할지라도, 입춘이니 하지니 소한?대한쯤은 꼽아보고 넘어가는 것이 우리네 계절 감각이다.

봄이면 씨앗을 뿌리고, 가을이면 곡식을 거두어들인다. 그리고 긴 겨울은 장만한 것을 먹으면서 연명한다. 거의 한 해의 절반은 갇혀서 산다. 북쪽으로 갈수록 그 기간은 더 길다.

자연이 이러하니 숲 또한 그러하다. 봄이면 잎이 피고 가을이면 다 진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인 이 땅에 잎이 지지 않는 나무는 적고, 태반이 잎이 지는 나무들로 이뤄져있다. 특히 남조선의 숲은 그 특징을 두드러지게 보이며, 남쪽으로 갈수록 갈잎나무 천지다. 남해안과 도서 지방에 늘푸른넓은잎나무 숲이 조금 띠를 이루고 있을 정도다.

산사람들이 웅거하고 있는 남도의 산. 저 불갑산을 비롯해서 화학산?말봉산?모후산?무등산?백아산?백운산 등은 예외 없이 다 잎 지는 나무들로 덮여있다. 더군다나 함부로 불을 질러서, 불에 약한 소나무 종류는 다 타죽고 맹아력이 강한 참나무류만 주로 남아서 비탈과 골짜기를 메우고 있다.

산사람들은 그런 지표에서 벗어날 수 없다. 4월이면 숲은 아래로부터 싹을 틔우는데, 사람 움직임을 가릴 정도가 되려면 5월이 지나야 된다. 이른바 녹음기라고 하는 시기는 6월에서 10월까지의 기간인데, 11월이면 벌써 숲이 설피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1년의 절반은 잎이 없거나 성긴 상태다.

-《남도빨치산》5권 7-8쪽


산에 눈이 깔렸다고는 하지만, 워낙 강력한 그 화력 때문에 밤낮을 이어 불길이 번졌다. 온 산이 불붙는 것 같았다. 진입할 때 아예 저항하지 못하게끔 철저히 두들겨놓겠다는 속셈 같았다. 네이팜탄의 위력은 접근을 허락지 않는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그때 진상골에는 백운산 지구와 광양 군당 성원들이 거점을 잡고 있었다. 침공 기미를 알아차리고 대피차 골짜기 위쪽으로 올라와 있다가, 이 뜻하지 않은 화공을 받아 심한 손실을 입었다.

이렇게 대량살상 무기까지 동원해서 공격하는 한편, 고성능 확성기로 투항하라고 외치며 무시로 공중 가득 전단을 뿌려댔다. 공세 초기에 생포된 사람들의 사진까지 곁들여, 투항하고 나오면 그들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선전했다.

‘자수증’이란 것까지 만들어 뿌렸다. 그 쪽지를 들고 침공군 초소로 오면 귀순자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남도빨치산》5권 134-135쪽


아아, 겨울이 깊으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라.



빨치산 토벌 작전의 처음과 끝, 미군과 군경의 잔악한 사람 죽이기는 만천하에 드러나고!


한국전쟁 중 조선인민군의 침공을 막고 있던 미국 1기병사단 7기병연대 예하 부대가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의 경부선 철교에 접근하고 있던 한국인 피난민 중에 조선인민군이 섞여 있다고 의심하여, 피난민을 철교 위에 모아 공군기로 기총소사하고, 달아나는 사람은 쫓아가서 사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 때문에 300여 명의 민간인이 피살되었다.

가해자들의 은폐로 오랫동안 덮여 있었지만, 1994년에 살아남은 주민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약 50년 만에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법안이 국회에 통과되었다.

노근리 사건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에서 양민학살사건은 남도 땅에서도 여러 차례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함평사건을 통째로 옮겨보자.


함평 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 보려 하니

제주 어선 빌려 타고

해남으로 건너갈 제


신재효 판 <호남가>의 첫 대목이다. 호남지방의 고을 이름을 빌려 태평세월을 노래한 단가 아니던가. 그런데 어이 할꼬, 인민학살의 서두를 끊은 고장이 함평이니 말이다.

함평은 한자로 ‘咸平’이라 적는다. 본디는 ‘두루 평안하다.’는 뜻으로 썼음직하다. 그런데 이 글자 풀이가 ‘싹쓸이로 죽인다.’는 뜻도 된다 하니 참으로 기가 찰 일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함평 천지’에서 6?25를 전후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졌기에 말이다. 더군다나 그 과정은 ‘싹쓸이’ 바로 그것이었으니 더욱 그러하다.

<호남가>에서는 해 돋는 보성, 안개 낀 영광도 들먹이고 있다. 그런데 그토록 이름 좋은 영광과 이웃 장성을 아우른 지대는, 함평과 더불어 전남 도내 어느 군읍보다도 좌우간의 대립이 극심했던 고장이다. 그래서 해방 이후 내리, 실로 처절할 만큼 죽고 죽이는 혈전을 벌여왔다. 그 주 무대가 바로 태청산?불갑산?구수산을 잇는 산줄기 안과 밖 일대였다.

그런데 그 물러설 수 없는 싸움과는 상관없이, 단지 거기에 마을이 있고, 거기서 사람이 산다는 이유만으로 불을 지르고 쏘아 죽이는 일이 무법으로 자행되었다. 단지 총을 들고, 제복을 입었다는 그 역겹고 두려운 행색 그늘에 숨어서 말이다.

이 지방에서는 ‘동삼면’이란 말이 널리 쓰인다. 불갑산 동쪽에 자리한 해보?월야?나산 등 세 개 면을 가리키는데, 이 말이 보복과 집단학살을 상징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거기서 벌어졌던 참극은 글로 기록하기조차 주저스러울 만큼 끔찍한 것들이었다.

왜 그랬을까? 누가 시킨 짓인가? 그 말미암음은 무엇인가? 또 과연 그렇게 밖에는 나아갈 길이 따로 없었던가? 그리고 그런 무자비함이 정말 우리 동족 간의 모순과 갈등만으로 빚어진 것이었던가?

그 일들을 더듬다 보면, 너무나 처참한 사실들에 부딪쳐 마냥 치를 떨게 된다. 그토록 엄청난 줄초상을 치르고도, 아직 우리는 소원의 문턱에도 다다르지 못했다.

동족이란 무엇이며, 계급이란 무엇인가? 그토록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조국이란 또 무엇인가? 살아있는 우리는 당대에 겪은 이 치떨리는 일들을 그냥 모르고 넘어가도 되는가? 잊고 넘겨도 되는 일인가?


함평읍에 군경이 진입한 것은 10월 23일의 일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소수의 무장경찰이 열차편을 이용해서 들락거렸다. 10월 7일과 19일 두 차례에 걸쳐 읍내로 들어왔고, 그때 경찰서에 갇혀 있던 사람들을 풀어주었다. 그대로 눌러 있기에는 힘이 모자라 일단 무안 쪽으로 물러갔다. 그리고 정규군 병력이 진주하는 뒤를 따라 다시 들어온 것이다.

그 사이의 공백기를 빨치산들이 가만 놔두지 않았다. 창황히 후퇴하느라 할 일을 미처 못했던 이들은 재차 읍내로 들어와서 공공건물을 소각하고 통신시설들을 파괴했다. 군경들의 행정 수복을 지연시키려는 작전의 일환이었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풀려난 우익인사들은 경찰들을 앞세워 입산자 가족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며 설치고 다녔다. 또 개별적으로 원한을 품고 지내던 사람들이 때를 만났다는 듯, 제각각 린치를 가하고 살인을 일삼으며 무법으로 날뛰었다. 많은 사람들이 살해되었다.

그러나 밤이면 산사람들이 내려와서 이들과 그 앞잡이들을 응징했다. 죽고 죽이는 앙갚음의 되풀이였다. 이와 같은 상극은 그 뒤에 벌어진 군인들의 집단살육 회오리 속에 마구 휩쓸려 들어가게 된다. 그 무법의 도가 지나쳐 이제는 명분도 목적도 없는 집단학살로 변모되어 가는 것이다. 그 시초는 군인들의 함평읍 진입 때부터다.

1950년 10월 22일 정오쯤. 완전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이 함평읍으로 들어가기 위해 남교 수호리 앞길을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이 학교 사거리 쪽 큰길로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도 무안에서 엄다를 거치는 지름길을 택했던 모양이다. 좁은 길이었다. 벌써 두어 차례 눈이 내려서, 논둑길 그늘이나 벼 포기에는 녹다 만 눈이 허옇게 얼어 있었다.

길 양쪽에 산재한 마을사람들이 길에 나와서 태극기를 흔들며 이들을 환영했다. 그때 흰옷 차림의 중년부인이 그들 앞을 가로질러 해동마을 쪽으로 올라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마을 뒤는 나지막한 언덕이다.

군인들은 그 자리에 멈추었다. 지휘관은 환영 나온 마을사람들을 위협하여 해산시켰다. 그러고는 해동마을을 포위하고, 다짜고짜 마을사람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영문도 모르고 논바닥에 쭈그리고 앉은 그들에게 총탄 세례가 퍼부어졌다. 이유도 묻지 않았고, 해명도 듣지 않았다. 19명의 해동마을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다. 물론 아까 그 부인도 죽었다. 이것이 그 뒤 동삼면 일원으로 번지는 학살극의 서막이다.

소속이 분명치 않은 이들 군인 집단은 이튿날 함평읍에 진입한다. 그러고는 이어서 영광읍을 향해 이동해 갔다. 함평읍을 되찾은 경찰들은 무장기동대를 편성해서 주요 면들의 행정 수복을 꾀한다. 그 과정에서 산간에 자리한 마을 주민들을 강제로 소개시키고, 그들이 떠난 빈 집들은 깡그리 불살랐다. 빨치산의 근거지를 없애고 지지 세력을 격리시키기 위해서다.

산야는 연기로 뒤덮였고 도처에서 학살이 자행되었다. 생활 근거를 빼앗기고 죽음의 공포에 내몰린 인민들은 살 길을 찾아 빨치산 근거지로 들어왔다. 그래서 불갑산 언저리와 태청산 기슭은 이들로 북적거렸다. 보복이 두려워서 산으로 들어온 입산자 가족들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그들 속에 함께 어울린 피난민들의 고초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들을 어루만지고, 이들로 하여금 추위와 굶주림을 극복토록 하려는 공작들이 각 면당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그런 일에는 여맹 등 사회단체 구성원들이 나섰다. 그러나 충분치는 못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준비된 것은 적고, 주어야 할 사람들은 많았다. 게다가 시시각각 조여드는 침공의 위협이 따랐다.

그렇게 극복하고 싸우면서 단속을 강화하고 있을 무렵인 11월 말경에, 정규군 제20연대 제2대대 소속 제5중대 병력이 들어왔다. 이들은 해보면 소재지 금덕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문장 장터 바닥에 지하호를 파고 거기서 기거했다. 그리고 주변에 토치카와 초소들을 구축하고, 거기에 중화기를 배치해놓고 빨치산과 대치하게 되었다. 한편 경찰들도 이들의 엄호를 받으면서, 진주한 면 소재지 지서마다 목책을 두르고 토치카를 만들기에 바빴다. 인민들이 그 노역에 동원되었다.


-《남도빨치산》2권 7-9쪽



지어진 지 52년 만에 2절이 새로 붙어. 빨치산들의 애절한 노래, 부용산가


부용산 오 리 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봉우리에 하늘 푸르러 푸르러


구전가요 <부용산>은 슬픈 가사에 애조 띤 가락이 잘 어우러지는 노래다. 지난 시절 빨치산들이 즐겨 불렀다고 하며, 전남 지역에서는 지금도 입에서 입에서 전해지며 맥이 이어지고 있다. 80년대에는 대학생들 사이에도 꽤 널리 퍼졌다.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노래는 해방 직후 목포 항도여중에 근무하던 음악교사 안성현 과 국어교사 박기동이 이 학교에 다니다가 요절한 여학생의 상여 나가는 소리로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사는 그보다 몇 해 전 박 교사가 전남 벌교에서 그 역시 일찍 죽은 여동생을 추모하고자 쓴 것이다. 최근에 1절이 지어진 지 52년 만에 2절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책 《남도빨치산》전6권에는 그 시작부터 힘차면서도 애절한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남도지역 곳곳마다 조금씩은 차이가 나는 <강강술래>를 시작으로 <인민군 행진곡>, <무등산 빨치산의 노래>, <호남가>, <태백산 빨치산의 노래>, <공화국 선포의 노래>, <아리랑>, <결전가>, <조선은 빛나라>, <쾌지나칭칭>, <가을>, <진도 아리랑>, <육자배기>, <7백의 노래>, <염불가>, <조국찬가>, <백두산 뻐꾸기의 노래>, <적기가>, <출전가>, <당신만 아세요>, <개구리> 등등. 빨치산들은 흥겨운 가락에 맞춰 노는새도 다르다.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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