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고 싶은 책 2009. 6. 20. 15:42

제러미 리프킨, 접속의 시대(소유의 종말, 9-12쪽, 민음사)


재산의 역할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급 효과는 엄청나게 크다. 근대 이후로 재산과 시장은 줄곧 동의어로 쓰였다. 실제로 자본주의 경제는 재산을 시장에서 교환한다는 발상 위에서 성립한 것이다. ‘시장’이라는 단어가 영어에 처음 등장한 것은 12세기였다. 시장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상품이나 가축을 교환할 수 있도록 마련된 물리적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18세기 말이 되면 시장이라는 용어는 공간적 지시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서 물건을 사고 파는 추상적 과정을 묘사하는 데 쓰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과정에 너무 깊이 얽혀 있어, 이제 우리는 인간사를 시장이 아닌 다른 틀로 이해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시장은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으로 파고 들어오는 힘이다. 우리 모두는 시장의 분위기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 시장이 잘 굴러가면 우리의 생활도 잘 굴러가는 것 같다. 시장이 건강하면 우리 마음도 밝아진다. 시장이 맥을 못 추면 우리는 상심한다. 시장은 우리 삶의 안내자이자 상담자이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시장은 어른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린아이도 시장에서 낯선 것과 처음으로 마주칠 때가 있다. 상점 진열장을 들여다보면서 ‘저거 얼마예요?’ 하고 수줍게 물어본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모든 물건에는 가격이 있다. 물건은 팔려고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배운다. 시장에는 어두운 면이 있다는 것도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된다. 그래서 ‘구매자 위험 부담’이라는 구절이 나오면 당장 촉각을 곤두세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장 시장의 규칙에 따라 살아간다. 싸게 사들이고 비싸게 팔라치우는 것을 금과옥조로 삼아 우리의 생활을 끊임없이 담금질한다. 재산을 모으는 것은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커가면서 배운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운다. 이 세상은 상품을 교환하고 남부럽지 않을 만큼 재산을 누려보겠다는 원초적 충동에 의해 굴러간다. 이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가진 생각이다.

우리는 확고부동하게 시장을 끌어안는다. 시장에 대해 악담을 퍼붓는 사람을 훈계하면서 시장의 찬가를 부른다. 사유재산과 시장의 미덕을 한번쯤 열렬히 찬양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개인의 자유, 천부인권, 사회계약이라는 관념도 알고 보면 모두 시장이라는 완강한 사회 제도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현대 생활의 기초가 허물어지는 조짐이 보인다. 한때 인간을 이념투쟁과 혁명, 전쟁으로 몰고 갔던 체제가 서서히 막을 내리면서 경제현실도 새롭게 바뀌고 있다. 달라지는 경제현실 앞에서 사회는 새로운 시대의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결속과 경계선의 유형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시장은 네트워크에게 자리를 내주며 소유는 접속으로 바뀌는 추세다. 기업과 소비자는 판매자와 구매자로서 시장에서 재산을 교환하던 근대경제의 기본구도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재산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천만의 말씀이다. 재산은 엄존한다. 하지만 재산이 시장에서 교환되는 빈도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새로운 경제에서 재산을 장악한 공급자는 재산을 빌려주거나 사용료를 물린다. 도는 입장료, 가입비, 회비를 받고 단기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근대경제의 중요한 특징이었던 판매자와 구매자의 재산교환은 네트워크 관계로 이루어지는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단기접속으로 바뀐다. 시장은 여전히 살아남겠지만 사회에서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네트워크 경제에서 기업은 물적 재산이건 지적 재산이건 교환하기보다는 접속하는 쪽을 택한다. 물적 자본의 소유권이 한때는 산업사회의 근간이었지만 이제는 점점 주변적 지위로 밀려난다. 기업은 물적 자본을 자산이 아닌 단순한 경상비로 취급하게 된다. 가급적 소유하지 말고 빌리자는 인식이 뿌리내린다. 반면 지적 자본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선망의 대상이다. 새로운 경제에서는 물건이 아니라 개념, 아이디어, 이미지가 실리를 가져온다. 부는 이제 물적 자본에서 나오지 않는다. 부는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에서 나온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적 자본은 여간해서는 교환되지 않는다. 공급자는 지적 자본을 단단히 거머쥔 채 제한적으로 임대하거나 사용권을 빌려준다.

이미 기업은 소유보다는 접속으로 궤도를 수정하고 저만큼 나가 있다. 부동산을 팔아치우고 재고를 줄이고 시설을 빌리고 아웃소싱을 맹렬히 추진하고 있다. 기업들은 물적 소유를 무조건 털어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감으로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확확 바뀌는 21세기 경제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시대에 뒤진 생각이다.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생산에 필요한 것은 대부분 빌려 쓰는 추세로 이미 세상은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시장의 주역이었지만 이제는 공급자와 사용자가 주역이다.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시장을 통한 거래는 줄어들고 전략적 제휴, 외부 자원의 공유, 이익 공유가 활성화된다. 기업들은 이제 서로에게 물건을 파는 것보다는 집합자원을 공유하여 광범위한 공급자-사용자 네트워크를 통한 공동경영을 선호한다.



***아웃소싱(outsourcing)은 기업의 내부 프로젝트나 제품의 생산, 유통, 용역 등을 외부의 제3자에게 위탁,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미국 기업이 제조업 분야에서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경리, 인사, 신제품 개발, 영업 등 모든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기업은 핵심사업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부수적인 부문은 외주에 의존함으로써 생산성 향상을 극대화할 수 있다.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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