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야기 2010. 7. 31. 09:23

나의 시 <그룹섹스>를 최영미 시인이 표절하였다 / 송명호(오마이뉴스 블로거 고들빼기)


나의 시 <그룹섹스>가 최영미의 시 <지하철에서>로 표절 당하였다. 이 분노를 기록해 둔다. 먼저 자작시 그룹섹스를 소개한다. 덧붙인다. 내 책을 팔기 위한 수작이라고? 천만에, 내 시집은 어디서도 구하지 못한다. 단지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있을 뿐이다.



그룹 섹스 - 宋明鎬



가지고 싶지 모조리 뺏어 가

어차피 우리들이야

몸뚱아리 한 쪽 팔아 한 세상 바꾼 놈들이니

새벽부터 불법주차할 곳을 찾아다니며

걸어 다닐 자유마저 야금야금 말아서 먹고

강변도로의 으스름 안개까지 삼켜 버리는

자가용족들아

너희들에게도 별 볼일없는 것이 있다

아침 8시 신도림 지하철족

못난 어깨와 어깨를 맞부딪칠 때마다 평등해지고

김치 트림과 된장 트림이 만나서

탄산가스와 탄산가스를 나누어 가지면

호흡이 가빠질수록 황홀해진다

오늘따라 끗발이 좋구나

손잡이 대신에 몸과 몸으로 묶이었구나

방방한 엉덩이와 숫기 좋은 사타구니가 만나서

살과 살을 부비며 알맞은 사랑을 나눈다

때 맞추어 전동차는 새로운 회원을 빨아 들이고

왈칵거릴 때마다 짜릿한 오르가즘을 준비한다

캄캄하다 캄캄해

무표정한 콘크리트 벽만 희끗거리는

저리도 막막한 차창에 걸린 맥박소리여

희미한 눈동자 썩은 가슴을 타고 무엇을 바라 빨라지는가

지상에서는 걸어 다니는 자유가 점점 차단되리라

네깐놈들은 알 턱이 없지

수십 미터 지하 속에서 뒤집기를 꿈꾸며

하나됨의 운명이 그룹 섹스로 맺어질 적마다

이 어둠 속 노려보는 눈조리개들이 커진다는 것을

시문학 1989년 8월호 발표

// 1990년 8월 15일 새물결에서 시집 『바람에 찍은 혜초의 쉬임표』//



위의 시는 자작시이다. 당시로는 알고 지내던 출판사 대표(안광국)의 배려로 1990년에 책을 세상에 내었다. 그로부터 만 2년 후에 베스트셀러 시집이라는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읽다가 온 몸이 닭털처럼 뽑히는 기분을 맛보았다. 당시에 나는 분노하였다. 최영미의 시집 속에서 나의 시를 표절하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시를 발견하였기 때문이었다. 표절이란 무엇인가. 표현, 내용, 발상 등에서 유사한 구절이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법에다 호소해야 하는가. 한국인에게 법은 멀다. 분노가 숙지기를 기다렸다. 나의 시는 알려지지 않고 내 시를 표절한 시는 유명세를 타고 있을 때의 기분을 알겠는가. 이건 세월이 흐른다고 가라앉을 문제가 아니었다.

그 후에 창작과 비평에서 웹사이트를 운영할 때에 나의 시를 표절하였다고 문제를 제기하였다. 최영미에게서도 창작과 비평사에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에게 남은 방법은 이런 거다. 내 시와 최영미의 시를 나란히 올리는 거다. 그리고 독자들과 평론가들에게 맡겨 두는 거다.

이 사이트의 흰흰산님이 최영미의 시와 에즈라파운드의 시를 비교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또 야릇한 기분이었다. 최영미의 시집 중 다른 작품도 아니고 내가 문제로 삼는 표절시로 논문을 쓴단다.

시인은 누구나 같다. 황금도 권세도 싫어한다. 당시에 나는 문명(文名)이라는 것에 목숨을 건 편에 속하였다. 지금은 아니다만, 문명이 따라오지 ㅇ낳음을 알고 포기한 것이기는 하다만... 내 시는 알아주지 않고 내 시를 표절한 시가 유명하다면 그 시인의 마음이 편하겠는가.

당신의 시는 문학적으로 성공하지 못하였다고. 천만에, 서울대 국문학과에서 시를 가르치는 교수 김용직이 내 시집에서 딱 한 편을 칭찬하였다. 바로 문제의 시, <그룹섹스>이다. 김용직 교수는 안동이 고향이며 부친이 애국지사였다. 이만큼이나 보수적인 분께서 걸작이라고 평가 받은 시이다.


다음은 최영미 시인의 인적 사항과 문제의 시를 올린다. <지하철에서>는 5편이면 이 중에서 <지하철에서 5>에서 표절이 가장 심하다. 이를 먼저 올리고 모두 올린다.

대개 비슷한 시가 문제가 될 때 먼저 발표한 시를 뒤에 발표한 시가 표절한 것으로 간주한다. 나의 시는 1989년에 발표하였고 최영미의 시는 1994년에 첫 시집이 나왔다. 1989년 이전에 최영미 시인이 <지하철에서 1> 이하 5편을 발표하였다면 이를 증거물로 제시해 달라. 그 경우에 최영미 시인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법적 도덕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덧붙인다면 최영미 시인의 시는 <지하철에서> 시리즈가 가장 뛰어날 수도 있고, 이보다 다른 시들이 더 뛰어나서 고평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나의 표절 제기와 무관하게 평단의 평가를 받을 만한 시를 썼다고 생각한다.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근거
1. 소재 _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빼곡하게 타는 상황과 서민들의 삶
2. 주제 - 지하철을 이용하는 서민들의 애환을 통한 계층적 대립
3. 표현 - 음식물 냄새나 트림 등
위의 3가지 측면에서 <그룹섹스>와 <지하철에서>는 동일하거나 유사하다.
시에서 이만큼 유사하게 쓸 수 있을까.



최영미

데뷔 1992년 창작과 비평

1992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등 8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1994년 첫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지하철에서 5 - 최영미


그의 엉덩이와

나의 가슴이 기대며 벽을 쌓고

그의 신문과

나의 소설이 함께 흔들린다

그의 근심과

나의 불만이 차례로 혀를 차고

그의 하품과

나의 한숨이 나란히 입을 벌린다

그의 짜장면과

나의 비빔밥이 엇갈려 꾸륵대고


그의 고독과

나의 외로움이 서로 옷깃 여미는

오전 8시 지하철에선 아무도 말을 걸지 않지만


그의 시계와

나의 시계가 서로 줄을 맞추고

그의 인생과

나의 살이가 바둥대다 섞이며

천천히 우리는 늙어간다


그의 부처님과

나의 하느님이 함께 내려다 보시며

맙소사

나무관세음보살 ***




지하철에서 1 - 최영미


나는 보았다

밥벌레들이 순대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지하철에서 2 - 최영미


다음 역은 신림 新林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 옳은 쪽입니다

다음 역은....

안내방송이 이바구하는데 문득 나는

굳게 다문 왼쪽 입口로 나가고 싶어졌다

한번 그렇게 생각을 만드니

생각이 어설픈 욕망으로

욕망이 확실한 신념으로

휙휙 건너뛰는

왼쪽으로 왼쪽으로

돌아가는 고개,되돌리려는 아침

지각 10분 전,5분 전,아아 1분 전,

얼굴 없는 시간에 쫓겨

헤어무쓰 땀내 방귀 정액의 끈끈한

주소 없는 냄새들에 떠밀려

이리 흔들 저리 뒤뚱

그래도 악 ! 생각할 한뼘 공간 찾아

두 눈 흡뜨고 아둥바둥 무게잡는

나 혼자만 유배된 게 아닐까

지상에서 지하로

지옥철로 외로이 밀려난 게 아닐까

이런 의심 날마다 출근하듯 밥먹듯 가볍게 해치우며

가볍게 잊어버리며

철커덕,

다음 역은 신림 新林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 옳은 쪽입니다

다음 역은.....


지하철에서 3 - 최영미

땅 속에서 눌린 돼지 머릿고기처럼 포개진 너와 나, 우리는 원래 이곳의 주인이었던 돌과 흙만큼 단단히 서로를 붙잡을 수 있을까? 어머니인 대지, 마그마의 뜨거운 자궁에서 잉태된 돌보다 더 뜨거운 피로 지금 사랑하려는 사람들아 - 우리 위에도 땅이 있고 우리 밑에도 땅이 있다 우리 위에서 우리를 밟고 우리 밑을 우리가 밟는다 흑흑흑 우리는 너희를 밟았다 돌돌돌 우리는 너희를 깨부쉈다 죽였다 다시 살렸다 반듯하게 새옷을 입혀 계단을 깔고 벽을 세운 우리는, 이 땅의 주인들을 짓밟고 그들의 시체로 신도시를 건설한 우리는, 그들만큼 철저히 서로를 망가뜨릴 수 있을까 그들만큼 완벽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그들, 돌과 흙보다 깊이 서로를 간직할 수 있을까?


지하철에서 4 - 최영미

세 여인이 졸고 있다

한 여인의 머리가 한 여인의 어깨에

한 여인의 어깨가 한 여인의 가슴에

한 여인의 피곤이 또 한 여인의 시름에 기대

도레미 나란히

세 남자가 오고 있다

순대 속 같은 지하철

데친 듯 풀죽은 눈알들 헤집고

삶은 듯 늘어진 살덩이 타넘고

먼저, 거지가 손을 내민다

다음, 장님의 노래 부른다

그 뒤를 예언자의 숱 많은 머리

휴거를 준비하라 사람들아!

외치며 깨우며 돌아다니지만

세 여인이 졸고 있다

세 남자가 오고 있다

오전 11시 지하철은

실업자로 만원이다

posted by 추월산
:
시 이야기 2010. 1. 21. 13:29

시집살이요 읽기

교사 김성중


대표적인 민요인 ‘시집살이요’를 읽고 수업에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보기로 한다. 충남 예산지방과 경북 봉화지방 그리고 전남 여천지방의 시집살이요를 읽어보기로 한다. 아래 민요는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임동권편,『한국민요집Ⅰ』(집문당/초판1961.6.30./4판 1993.1.20.)에서 뽑았다.



1. 시집살이요-예산지방



꼬댁꼬댁 꼬댁각씨

한살먹어 어멈죽어

두살먹어 아버지죽어

세살먹어 말을 배워

네살먹어 걸음배워

다섯살먹어 삼촌집에찾아가니

삼촌이라 마당쓸다

비자락으로 내려쫒네

들어가니

삼촌숙모 불때다가

부수대로 내쫒네

아이고 답답스런지고

요내팔자 왜이런고


방이라고 들어가니

사촌오빠 공부하다

서상대로 내어쫒네

아이고 답답스런지고

요내팔자 왜이런가


밥이라고 주는것이

굽이굽이사발구비 부쳐주네

건거니라고 주는것이

삼년묵은 된장에다

굽이굽이접시구비 부쳐주네

아이고 답답스런지고

요내팔자 왜이런가


사주라고 받는것이

가랑잎사구 받었고나

옷이라고 해준것이

짓만남은 삼베적삼

치마라고 해준것이

허리만남은 삼베치마

속옷이라고 해준것이

허리만남은 삼베고쟁이

아이고 답답스런지고

요내팔자 왜이런고


시집이라고 가서보니

고재랑군 얻었고나

아이고 답답스런지고

요내팔자 왜이런고


부엌에라 들어가보니

믿빠진 솥만남았더라

디란이라 가서보니

믿빠진 바구니하나걸였네

그바구니 옆에끼고

뒷동산에 올라가니

양지쪽에 발고사리

음지쪽에 먹고사리

디듬디듬 꺾어다가

국끓이고 밥을지어

열두반상 봐다가

시금시금 시아버지

이만저만 주무시고

아침밥상 밥상받으세요

예라요년 목먹겠다

네가먹고 개나줘라


*임동권편,『한국민요집Ⅰ』(집문당/초판1961.6.30./4판 1993.1.20.)144쪽(작품번호 561번)



2. 시집살이요-봉화지방



이서방네 맏딸애기

시집이라 가니라꼬

농두바리 귀두바리

고니닷줄 앞서우고

장안아래 들어서니

종아종아 아해종아

새메느리 길뜨레라

정지치장 둘러보니

동네추발 시굽다리

오롱조롱 덮어놓고

구둘치장 둘러보니

이리닫이 장성롱은

기메둥 치와놓고

집치장을 둘러보니

사무에다 핑경달고

동남풍이 들이부니

핑경소리 요란하다

시집가는 사흘만에

아침에라 일어나서

양동애캉 양등개캉

마주박아 깨였니더

에라요년 요망하다

니몸하나 파났따나

양동애나 사여내라

사랑문을 열리치매

시금시금 시아바님

요강대에 세수하고

아침조반 자부시소

에라요년 요망하다

니나먹고 개나줘라

사랑문을 열리치매

콩꼬따리 시아자바

아적조반 자부시게

아침이사 먹지마는

아지매일이 맹랑하네

큰방문을 열리치매

시금신내 시어마님

요강대에 세수하고

아적조반 자부시소

시집가든 닷새만에

밭매러 가라하니

밭을가 매고보니

몇골이나 매었노

한골매고 두골매고

삼세골 매었내다

마당안에 들어서니

시금신내 시아바님

몇골이나 매었노

한골매고 두골매고

삼세골을 매었내다

에라요년 요망한년

고걸사 일이라고

점심때를 찾아오나

아침에 일어나서

사랑문을 열리치매

시금신내 시아바님

요강대에 세수하고

아적조반 자부시소

큰방문을 열리치매

시금신내 시어마님

요강대에 세수하고

아침조반 자부시소

아침이사 먹지마는

쥔네일이 맹랑하네

아침을 먹고나서

저게오는 저양반요

이내머리 깎아주소

머리사 깎지마는

찾을사람 없을손가

없나이다 깎아주소

여덜폭 팔폭치매

폭폭이도 뜯어서는

두폭뜯어 감발하고

세폭뜯어 바랑짓고

한폭은 고깔하고

머슴머슴 우리머슴

대막대나 하여주소

뒤안에 돌아서서

삼년묵은 술갑대기

짚고나니 부러지네

머슴머슴 우리머슴

대막대나 하여주소

뒷동산 치어달아

잔대랑 축채부고

큰대꺾고 짚고나서

짚고나니 든든하다

친정에라 돌아가서

우리어매 마당에

나오는거

저게있는 저부인요

동냥이나 적어주소

동냥이사 주지마는

우리딸도 같다마는

대천지 한바다에

한모색이 없을손가

우리오빠 마주치다

저게있는 저대사는

우리동생 겉다마는

대천지 한바다에

한모색이 없을손가

밑그무없는 잘게다가

좁살한되 주는걸

여기가 세부니

숟갑대로 낱낱이

조아담아서

다담고나니 해가

석양이데

조아담아 돌아서매

우리오매 날모르네

우리오빠 날모르네

손을잡고 들어가서

웰일이로 웬일이로

우리딸이 웬일이로

삼대독대 외동딸을

이럴줄을 어이알로

원통하고 가련하다

어찌해서 이렇다고

눈물은흘러 강수되고

한숨은퍼져 동남풍이라


*임동권편,『한국민요집Ⅱ』(집문당/초판 1974.12.28./3판 1993.11.20.)332-333쪽(작품번호 980번)



3. 시집살이요(진주낭군가)-여천지방


울도담도 없는집에

시집삼년 살고보니

시어머님 하신말씀

애--아가 며늘아가

진주낭군 볼려거든

진주남강 빨래가라

진주남강 빨래가니

난데없는 발자욱소리

옆눈으로 살짝보니

흰구름같은 갓을쓰고

백말같은 말을타고

못본척하고 지나가네

흰빨레는 희게빨고

검은빨레는 검게빨아

집이라고 돌아오니

시어머님 하신말씀

애--아가 며늘아가

진주낭군 볼려거든

건너방으로 나가봐라

건너방으로 건너가니

오색가지 술을놓고

기생첩을 옆에끼고

권주가를 하는구나

아랫방으로 건너가서

아홉가지 약을먹고

명주수건 석자를

목에다 걸고

황천대학을 입학을 했네

진주 낭군이

이말을 듣고

버선말로 뛰어나와

기생정은 석달이요

본처정은 백년인데

억울하게 죽었구나


*임동권편,『한국민요집Ⅱ』(집문당/초판 1974.12.28./3판 1993.11.20.)384쪽(작품번호 10



시집살이요는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노래한 것으로 여성들의 진솔한 삶에 대한 태도가 엿보인다. 이러한 여성들의 삶과 현대여성들의 삶을 비교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여성들의 권리 신장이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이 민요를 모방해서 학교살이요를 짓도록 해보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시창작 능력을 신장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민요는 백성들의 노래다. 학생들이 민요를 공부함으로써 백성들의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민요를 현대인의 삶에 연결해서 읽어낸다면 우리의 전통예술인 민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민요에 나타난 표현방식을 익혀서 글을 쓴다면 글의 품격이 더 높아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추월산
:
시 이야기 2009. 10. 14. 10:57

(26-27쪽) 시를 쓰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평생을, 가능하다면 오래 살아서 삶의 의미와 달콤함을 모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아마도 마지막에 열 줄의 훌륭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시란 사람들이 말하듯 감정이 아니라(감정은 이미 젊어서부터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은가)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많은 도시와 사람들 그리고 사물을 보아야 하며 동물들을 알아야 한다.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자그마한 꽃들이 아침이면 만들어내는 몸짓을 알아야 한다. 낯선 지방의 길들과 예상치 못한 만남 그리고 오래 전부터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던 이별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아직 해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어린 시절과, 아이를 기쁘게 해주려 했으나 아이가 그것을 알지 못하여 부모가 마음 상한 일과(다른 아이한테는 분명 기쁜 일이었을 것이다), 아주 이상하게 시작되어 몇 번이나 매우 깊고 무겁게 변화해간 어린 날의 병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고요하고 외진 방에서의 나날들과 바닷가에서 맞은 아침, 그리고 바다 그 자체, 이곳 저곳의 바다들, 하늘 높이 올라가 별과 함께 날아가버린 여행 중의 밤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하나하나가 각각 달랐던 사랑의 밤들에 대한 기억과 산고(産苦)의 외침 그리고 산후에 다시 몸을 닫고 가벼워져서 하얗게 잠든 산모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한 죽어가는 사람 곁에 있어보아야 한다. 창문이 열려 있어 이따금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는 방에서 죽은 사람 곁에 앉아 보았어야 한다. 그러나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추억이 많아지면 그것을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커다란 인내심을 가지고 추억이 다시 솟아오르기를 기다려야 한다. 추억 자체로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추억이 우리 몸 속에서 피가 되고 눈짓이 되고 몸짓이 되어 이름을 잃어버리고, 우리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게 될 때에야 비로소 아주 드물게 그 추억의 한가운데에서 시의 첫 단어가 솟아올라 걸어나오게 되는 것이다.

-말테의 수기』(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용민 옮김, 책세상, 초판 3쇄- 2005) 26-27쪽에서

posted by 추월산
:
시 이야기 2009. 8. 6. 15:33

나무

킬머



나무같이 예쁜 시를

나는 다시 못 보리.

대지의 단 젖줄에

주린 입을 꼭 댄 나무.


종일토록 하느님을 보며

무성한 팔을 들어 비는 나무


여름이 되면 머리털 속에

지경새 보금자리를 이는 나무


시는 나같이 바보가 써도

나무는 하느님만이 만드시니.


*지경새 : 지빠귀새.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정신의 깊이와 미적 감동의 세계 이 두 가지 측면을 시적 진실로 본 사람은 엠 아놀드이다. 미적 감동의 심미적 정서라는 측면에서 시인은 모국어에 바쳐진 순장자이며 모국어의 최후 완성자라고 송수권 시인이 말한 시인의 자리에 함부로 앉으려는 모조품 같은 시인들이 시단에 저잣거리처럼 득실거려서야 되겠는가. 시인이여 목숨을 걸고 시를 쓰자..이 세상을 진실의 끈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킬머의 '나무'에서 나무는 제도화된 언어의 나무가 아니다. 시인이 오기 전에 나무는 침묵하고 있었고 시인이 없었으면 나무는 가난한 영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고만 있었을 것이다.

킬머가 재창조한 나무는 이 세상 무엇과도 견줄수 없는 하늘이 쓴 가장 예쁜 시다.


출처 : 이부용의 문학공간(지구가 울고있다) sunnybrook.egloos.com

조이스 킬머 (Alfred) Joyce Kilmer (1886-1918)


미국 시인.

러트거 대학과 콜럼비아 대학에서 공부했다.

1911년에 아일랜드 시인들의 영향을 받은 첫 시집 Summer of Love을 내었고,

카톨릭으로 개종한 다음에는 형이상학파 시인들을 본받았다.

유명한 시 "나무(Trees)"는 1913년에 잡지 Poetry에 발표되었다.

소박한 철학과 감상이 결합된 이 시는 곧 널리 인기를 얻었다.

그가 남긴 중요한 작품은 Trees and Other Poems(1914),

The Circus and Other Essays(1916),

Main Street and Other Poems(1917),

Literature in the Making(1917) 등이 있다.

1913년 뉴욕 타임즈사의 직원이 되었고,

1917년에 현대 카톨릭 시 선집인

Dreams and Images를 편집.

1차 대전 중에 전사하였고 사후 프랑스의 무공십자훈장(Croix de Guerre)를 받았다.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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