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야기 2009. 4. 8. 08:50

<대표시 1>'이야기가 있는 시집'(푸른길,2006.11.1.)수록시

이름 부르기

나태주



순이야, 부르면

입속이 싱그러워지고

순이야, 또 부르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순이야, 부를 때마다

내 가슴속 풀잎은 푸르러지고

순이야, 부를 때마다

내 가슴속 나무는 튼튼해진다


너는 나의 눈빛이

다스리는 영토

나는 너의 기도로

자라나는 풀이거나 나무거나


순이야, 한 번씩 부를 때마다

너는 한 번씩 순해지고

순이야, 또 한 번씩 부를 때마다

너는 또 한 번씩 아름다워진다.



<발문>

1.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있는가?

2. 누군가 다정하게 나를 불러줄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3. 내가 그/그녀를 불러주었 을 때 그/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4. 만약, 내가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없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5. 아무도 나를 불러주지 않는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6. 시의 화자는 순이를 부르면서 왜 입속이 싱그러워지고 가슴이 따듯해질까?

7. 순이는 왜 내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순해지고 아름다워지는가?

8. 이 시에서 이름부르기는 어떤 효과를 불러오는가?



<감상>

누군가를 다정하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다정하게 부를 사람이 없는 사람은 얼마나 쓸쓸할까? 아이는 엄마를 부르고, 엄마는 아이를 부르고, 아내는 남편을 부르고, 지아비는 지어미를 부르고, 제자는 스승을 부르고, 연인끼리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이 서로를 부르고, 새들도 서로 짝을 부르고, 매미도 애처롭게 짝을 부르고, 개구리도 개굴개굴 짝을 부르고....... 소월의 ‘초혼’의 화자는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을 부른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유리왕은 서로를 정답게 부르며 노래하는 꾀꼬리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짝잃은 자신의 처지를 슬퍼한다.

이 시의 화자는 행복하다. 다정하게 불러줄 순이가 있으니까. 순이가 연인이거나, 누이이거나, 제자이거나, 그 누구이거나, 화자는 순이를 부름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순이를 부름으로써 화자는 싱그러워지고, 따뜻해지고, 푸르러지고, 튼튼해진다. 순이는 화자가 불러줌으로써 순해지고 아름다워진다. 순이는 화자의 눈빛이 닿는 곳에 있음으로써 안전하고, 화자는 순이의 기도로 나무가 되고 풀이 된다. 그리하여 푸르른 풀잎이 되고 튼튼한 나무가 되어 순이가 쉴 수 있는 곳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누군가가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행복하다. 너와 나는 서로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사람이 되자.



<대표시 2>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발문>

1. 풀꽃은 왜 자세히 보아야 예쁜가?

2. 풀꽃은 왜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가?

3. 너는 누구인가?




<감상>

풀꽃을 보지 못하고 사는 도시의 삶은 얼마나 삭막한가? 시멘트로 발라버린 땅을 뚫고 올라와서는 기어코 꽃망울을 터트리고야 마는 저 고집스러움을 보라. 풀이 뚫지 못할 것은 없는 것 같다. 풀의 강인한 생명력 앞에서 우리들은 경건하게 머리를 조아려야 할 것이다.

꽃을 보려고 하지 않아도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자연의 품이 그립다. 그 자연의 품안에 안겨서 오래오래 그리고 자세하게 풀꽃을 보고 싶다. 그새를 못 참고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거하고는.

리모컨을 쥐고 텔레비전 화면을 이리저리 돌리는 그 조급함과 진득하지 못함은 현대인의 특성인가? 첫인상만으로 사람을 평가해버리고 마는 것은 아닌가? 조금 낡은 것은 버려야 속이 편한 것은 아닌가?

오래 묵은 김치나 된장 맛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못생기고 냄새나는 메주가 맛있는 된장을 만든다. 이곳 저곳 뜯어 고친 성형미인들이 활개치는 세상에서 오래오래 보고 있어도 물리지 않는 너의 평범한 모습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소개시>


행복2

나태주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감상>

돌아갈 집, 생각할 사람,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집에서 사람을 생각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저녁이 되어 돌아가서 편히 쉴 수 있는 집,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사람, 외로울 때 그 노래를 부르면서 외로움을 달랠 수 있게 해 주는 노래. 이런 것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학식이 풍부해도, 아무리 권력이 커도 이와 같은 것이 없다면, 인생은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추천시>


동그라미

이대흠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오느냐 가느냐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가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은 장가 상가가 된다 나무의 잎도 그저 푸른 것만은 아니어서 밤낭구 잎은 푸르딩딩해지고 밭에서 일 하는 사람을 보면 일 항가 댕가 하기에 장가 가는가라는 말은 장가 강가가 되고 애기 낳는가라는 말은 아 낭가가 된다


강가 낭가 당가 랑가 망가가 수시로 사용되는 어머니의 말에는

한사코 ㅇ이 다른 것들을 떠받들고 있다


남한테 해꼬지 한 번 안하고 살았다는 어머니

일생을 흙 속에서 산,


무장 허리가 굽어져 한쪽만 뚫린 동그라미 꼴이 된 몸으로

어머니는 아직도 당신이 가진 것을 퍼주신다

머리가 발에 닿아 둥글어질 때까지

c자의 열린 구멍에서는 살리는 것들이 쏟아질 것이다


우리들의 받침인 어머니

어머니는 한사코

오손도순 살어라이 당부를 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이대흠 시집 『물속의 불』(시작시인선 0080/천년의 시작/2007.1.30.) 37-38쪽


<감상>

어머니는 이렇게 부드럽게 퍼주신다. 어머니는 이렇게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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