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야기 2009. 4. 8. 08:50

<대표시 1>'이야기가 있는 시집'(푸른길,2006.11.1.)수록시

이름 부르기

나태주



순이야, 부르면

입속이 싱그러워지고

순이야, 또 부르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순이야, 부를 때마다

내 가슴속 풀잎은 푸르러지고

순이야, 부를 때마다

내 가슴속 나무는 튼튼해진다


너는 나의 눈빛이

다스리는 영토

나는 너의 기도로

자라나는 풀이거나 나무거나


순이야, 한 번씩 부를 때마다

너는 한 번씩 순해지고

순이야, 또 한 번씩 부를 때마다

너는 또 한 번씩 아름다워진다.



<발문>

1.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있는가?

2. 누군가 다정하게 나를 불러줄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3. 내가 그/그녀를 불러주었 을 때 그/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4. 만약, 내가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없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5. 아무도 나를 불러주지 않는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6. 시의 화자는 순이를 부르면서 왜 입속이 싱그러워지고 가슴이 따듯해질까?

7. 순이는 왜 내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순해지고 아름다워지는가?

8. 이 시에서 이름부르기는 어떤 효과를 불러오는가?



<감상>

누군가를 다정하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다정하게 부를 사람이 없는 사람은 얼마나 쓸쓸할까? 아이는 엄마를 부르고, 엄마는 아이를 부르고, 아내는 남편을 부르고, 지아비는 지어미를 부르고, 제자는 스승을 부르고, 연인끼리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이 서로를 부르고, 새들도 서로 짝을 부르고, 매미도 애처롭게 짝을 부르고, 개구리도 개굴개굴 짝을 부르고....... 소월의 ‘초혼’의 화자는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을 부른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유리왕은 서로를 정답게 부르며 노래하는 꾀꼬리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짝잃은 자신의 처지를 슬퍼한다.

이 시의 화자는 행복하다. 다정하게 불러줄 순이가 있으니까. 순이가 연인이거나, 누이이거나, 제자이거나, 그 누구이거나, 화자는 순이를 부름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순이를 부름으로써 화자는 싱그러워지고, 따뜻해지고, 푸르러지고, 튼튼해진다. 순이는 화자가 불러줌으로써 순해지고 아름다워진다. 순이는 화자의 눈빛이 닿는 곳에 있음으로써 안전하고, 화자는 순이의 기도로 나무가 되고 풀이 된다. 그리하여 푸르른 풀잎이 되고 튼튼한 나무가 되어 순이가 쉴 수 있는 곳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누군가가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행복하다. 너와 나는 서로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사람이 되자.



<대표시 2>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발문>

1. 풀꽃은 왜 자세히 보아야 예쁜가?

2. 풀꽃은 왜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가?

3. 너는 누구인가?




<감상>

풀꽃을 보지 못하고 사는 도시의 삶은 얼마나 삭막한가? 시멘트로 발라버린 땅을 뚫고 올라와서는 기어코 꽃망울을 터트리고야 마는 저 고집스러움을 보라. 풀이 뚫지 못할 것은 없는 것 같다. 풀의 강인한 생명력 앞에서 우리들은 경건하게 머리를 조아려야 할 것이다.

꽃을 보려고 하지 않아도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자연의 품이 그립다. 그 자연의 품안에 안겨서 오래오래 그리고 자세하게 풀꽃을 보고 싶다. 그새를 못 참고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거하고는.

리모컨을 쥐고 텔레비전 화면을 이리저리 돌리는 그 조급함과 진득하지 못함은 현대인의 특성인가? 첫인상만으로 사람을 평가해버리고 마는 것은 아닌가? 조금 낡은 것은 버려야 속이 편한 것은 아닌가?

오래 묵은 김치나 된장 맛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못생기고 냄새나는 메주가 맛있는 된장을 만든다. 이곳 저곳 뜯어 고친 성형미인들이 활개치는 세상에서 오래오래 보고 있어도 물리지 않는 너의 평범한 모습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소개시>


행복2

나태주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감상>

돌아갈 집, 생각할 사람,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집에서 사람을 생각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저녁이 되어 돌아가서 편히 쉴 수 있는 집,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사람, 외로울 때 그 노래를 부르면서 외로움을 달랠 수 있게 해 주는 노래. 이런 것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학식이 풍부해도, 아무리 권력이 커도 이와 같은 것이 없다면, 인생은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추천시>


동그라미

이대흠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오느냐 가느냐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가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은 장가 상가가 된다 나무의 잎도 그저 푸른 것만은 아니어서 밤낭구 잎은 푸르딩딩해지고 밭에서 일 하는 사람을 보면 일 항가 댕가 하기에 장가 가는가라는 말은 장가 강가가 되고 애기 낳는가라는 말은 아 낭가가 된다


강가 낭가 당가 랑가 망가가 수시로 사용되는 어머니의 말에는

한사코 ㅇ이 다른 것들을 떠받들고 있다


남한테 해꼬지 한 번 안하고 살았다는 어머니

일생을 흙 속에서 산,


무장 허리가 굽어져 한쪽만 뚫린 동그라미 꼴이 된 몸으로

어머니는 아직도 당신이 가진 것을 퍼주신다

머리가 발에 닿아 둥글어질 때까지

c자의 열린 구멍에서는 살리는 것들이 쏟아질 것이다


우리들의 받침인 어머니

어머니는 한사코

오손도순 살어라이 당부를 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이대흠 시집 『물속의 불』(시작시인선 0080/천년의 시작/2007.1.30.) 37-38쪽


<감상>

어머니는 이렇게 부드럽게 퍼주신다. 어머니는 이렇게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posted by 추월산
:
시 이야기 2009. 1. 25. 00:12

부서진 벼루 먹기

창비주간논평. 2009-01-21 오전 9:40:24 Comments (0)


고은 / 시인


1


시조(始祖)새가 있다. 까마귀만한 크기에 대가리는 작고 대가리에 달린 눈은 어쩌자고 크다.


새의 가장 오래된 조상인 이 시조새란 녀석 ― 조상쯤의 생물을 이 녀석 저 녀석이라고 낮추는 것 실례이지만 ― 은 텃새로나 철새로 펄펄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화석으로 박혀 있다. 나는 그 화석 사진을 본 적이 있을 따름인데 그때 새의 조상인 시조새 화석이 있다면 시의 조상인 시조시(始祖詩)의 화석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유치한 노릇이다.


시란 이런 유치한 천지창조론 근처와는 아무 상관없으리라는 사실을 짐작하면서도 나의 소년적인 고고학 충동은 시의 어떤 생성 기점을 만들고 싶었던가?


상고시대 수메르의 점토판에 남겨진 카노슈 카드로라는 시인이 쓴 시 한편이 굳이 시조시 노릇을 할지 모른다. 아니면 5천 5백년 전의 그것보다 더 앞선 어떤 아득한 선사시대 그림글씨로 한편의 시가가 어느 암벽에 새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공상 끝에 한국 시문학사의 처음은 한반도 동남의 한 암각화에 있지 않고 훨씬 뒤의 고구려 유리왕의 '꾀꼬리 노래'라든가 고대 중국으로 건너가서 그곳 한자로도 남겨진 '공후의 노래'라든가에 생각이 미치면 차라리 우리의 시조시는 숫제 아침이슬이거니 공중에서 노니는 티끌이거니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다.


허나 시의 시작이 호젓이 나오는 노래이기도 하고 여럿이 더불어 누리는 노래이기도 한 것이 고대시가의 삶이라면 굳이 화석으로, 점토판이나 돌에 새기는 낙서로 남아 있지 않고 그 노래가 노래 뒤의 허공에 스러지는 것이 더 시다운 일이기도 하겠다. 김시습이 시를 쓰는 대로 개울물에 흘려보낸 일을 떠올려보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조시는 5천년 전이나 1만년 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지금 누군가가 쓰는 그 시의 지금이 바로 시의 조상이라는 근본시학의 비약에 이르는지 모른다.


모든 시는 지금의 시이므로!



2


어제 나는 우연찮게 김기림전집을 읽었다. 전집이라고 하지만 그이의 품격 그대로 시와 수필, 시론을 망라한 한권의 전집이다. 그것도 1988년 3월 당시 문공부장관이던 시인 정한모가 해금조치한 이후 10년쯤 지나서야 나온 것이었다.


6녀 1남의 막내 외동아들인 김기림의 막내누나 김선덕이 미국 이민생활의 노경에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로 서문을 삼았다. 김기림의 아들 세환의 고모 역시 지난날 동생 기림과 함께 일본 유학을 한 여성이라 그동안 접어둔 글솜씨가 퍽이나 높은 수준이다.


(…) 38년이란 긴 세월 동안 억울한 사형수가 재심에 지쳐서 무죄판결을 받고 출옥했을 때의 그 기쁨보다는 비정했던 세대를 응시하면서 첫발을 디뎠을 적에 하늘도 땅도 울어주지 않겠는가?


이런 애끊는 한을 품고 동생의 문학 사면에 대한 처절한 감회를 담고 있다.

나는 〈기상도〉 〈태양의 풍속〉 〈바다와 나비〉 등의 시편들을 소년의 마음으로 읽었다. 그런 다음 〈시와 문화에 부치는 노래〉라는 시도 읽었다. 이것은 신석정이 해방 연간 전국문학인대회에서 지은 즉흥시와도 얼핏 맞닿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과 같다.


손을 벌리면 산 넘어서 바다 건너서

사방에서 붙잡히는 뜨거운 체온

초면이면서두 만나자마자 가슴이 열려

하는 얘기가 진리와 미의 근방만 싸고돎이 자랑일세


그대 모자 구멍이 뚫려 남루가 더욱 좋구려

거즛과 의롭지 못한 것 우에 서리는 눈초리

노염 속에 감추인 인정의 불도가니

나라나라마다 우리들 소리 외롭지 않어 미뿌이


나기 전부터도 시의 맥으로 이낀 어리석은 종족

피 아닌 계보가 보석처럼 빛나서 더욱 영롱타

도연명과 한용운과 노신과 타골

단테와 뽀들레르와 고리키와 오닐


포대와 국경을 비웃으며 마음마음의 고집은 뚜껑을 녹이며

강처럼 계절처럼 퍼져오는 거부할 수 없는 물리

메마른 사막을 축이는 샘 어둠 속에 차오는 빛

세계와 고금에 넘쳐흐르는 것 아― 시여 문화여


이런 시의 마음 순종(純種)이 한국시의 오늘을 낳았다는 생생한 감회 앞에서 시 1백년 그다음의 시대를 여는 오늘이 벌써 열렸다.



3


김기림의 절창 〈바다와 나비〉의 그 어눌한 진정을 읽다가 건너뛰니 어쩌면 그의 본령이기도 한 해박한 시론에 사로잡혀야 했다. 심지어 〈시론〉이라는 시까지 쓴 그이가 아니던가.


이 시가 1930년대에 씌어진 것과 함께 〈1933년 시단의 회고〉라는 시 총평은 이를테면 김안서 등을 비판한 나머지 정지용 등을 상찬함으로써 그의 풍부한 시학적 진폭을 내보이고 있다. 요컨대 쎈티멘털리즘과 과거에 대한 노예적 맹종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시의 지점에 그이가 서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더 나아가 현대 한국시사에서 가장 중요한 그 30년대를 마감하는 시론에서도 한층 더 강렬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는 동양시의 오랜 관습대로 조선시대 양반시단 여항시단(閭巷詩壇)의 풍속이었던 시회(詩會)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당대의 주도적 모더니스트 김기림이 보기에 이런 시인행태는 시적 발전과정에서 하나의 시대정신을 만나는 일 따위와는 상관없이 오랜 정체 속의 되풀이로 단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행태로서의 시가 보여주는 장식성밖에 다른 여지가 없고 골동으로서의 언어유희밖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지탄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그가 강조하는 바가 곧 시정신이다. 그것은 안이한 시인적 기질의 동의어가 아니라 '한 시대가 품고 있는 문화의욕을 자신 속에 나누어 가지고 그것을 시에 구현해가는 창조적 정신'이라는 것. 사실 전통시대의 시회는 고대 중국의 남북조시대와 당․송시대를 이어오는 시단의 풍류 아류이다. 고려시대 해좌파(海左波)나 죽림(竹林) 강변(江邊) 군상들이나 조선후기 여러 시회 시사(詩社)에 이르기까지 그 관행은 자못 뿌리가 깊다.


이규보의 시화(詩話) 〈백운소설〉에는 4, 5인이 각각 말을 타고 느적느적 가며 이른바 마상시회(馬上詩會)를 베푸는 광경이 나온다. 누가 맨 먼저 운을 달고 나오면 그 운에 따라 즉흥작품을 읊어가는 것이다. 그런 시의 한두편이 송나라에까지 건너가 그곳 시단에 탄상(歎賞)되는 경우도 있었다니 그 역량이 상당한 경지였을 것이다. 이런 행운의 다른 편에 이규보 등과 한 시기 동인이던 임춘(林椿)의 불운이 있다. 그의 시에서 보듯 임춘은 '갈아먹을 밭뙈기 없어 부서진 벼루를 갈아 먹어야' 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런 풍류가 기운생동의 작품을 자아내는 드문 경우 말고는 그 상투성에 떨어지고 마는 사례가 허다했다. 그런데 이 고질적이기까지 한 시놀이가 끝난 것은 근대시 1백년 단초일 것이다.



4


그간 식민지 시기의 근대시 분야의 인구는 서로 간담을 비출 만큼 형제적이고 동인적이었다. 그런 시기는 전근대의 시회 시사의 분위기와는 같지 않더라도 시인사회의 여러 관계들을 거의 혈연에 가깝게 만들었다. 그런 우정이 한국시의 행로에 얼마나 기여하는 생산성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거기서 움트는 연민과 선린의 미덕은 오랜 농경사회의 인정과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닌 향토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사실 시는 일종의 농업이었다. 척박한 현실이나 곤궁한 일상을 견디어내는 그들의 시적 무능이 곧 시의 가능이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이후의 시인 증가율은 급수증가를 거듭하는 도시적 다중화로 치달았다. 시인 5천명 내지 1만 5천명 이상이라는 오늘의 시단 상황은 거의 대책 불능의 비농촌적인 한계상황이다. 가위 시단의 아파트대단지이다. 날마다 시집과 시지, 시동인지들이 간행 배포되고 있다. 이를테면 한해의 마감날짜인 12월 31일에도 새해의 시작인 1월 3일쯤에도 가장 먼저 오는 것은 연하장 못지않은 시집의 우편배달이다.


외국 시인들이 한국은 시집이 2백만부나 팔리는 나라라 부러워하고 이웃 나라에서는 시가 죽었는데 한국에서는 시가 살아 넘친다는 기적론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덕담의 안쪽인 한국시에서의 완강한 시적 절망이 자리잡고 있는 내상(內傷)은 그런 상황에서 정작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같은 시의 남획 남발과 시의 초과생산의 한쪽에서는 현세적 이기주의와 배타주의 출세주의로 얼룩져 있는 현실이 탐욕적으로 표상되는 것과 동행한다. 그러므로 이로부터의 한국시는 시적 탐구의 고향만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질적 품성을 배양하는 일과 자본사회에서의 궁핍한 심신의 존엄성을 지켜내는 일이 어찌 나 자신의 몫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이전의 시회놀이와는 또다른 전우감(戰友感)의 시인사회를 개척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태어난 해인 1933년 새해에 김기림은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너는 황금과 지위와 그리고 민중의 아첨의 달콤한 유혹을 돌보지 말고 나를 따를 수는 없느냐?" 이 말은 〈파랑새〉라는 시의 이상을 의인화(擬人化)해 그 '파랑새'가 화자인 나-김기림에게 하는 경종이다.


그로부터 76년 뒤의 나에게 오는 경종이다.


2009.1.21 ⓒ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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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
시 이야기 2008. 12. 4. 08:59

대표시

예천 태평추

안도현



어릴 적 예천 외갓집에서 겨울에만 먹던 태평추라는 음식이 있었다


객지를 떠돌면서 나는 태평추를 잊지 않았으나 때로 식당에서 메밀묵무침 같은 게 나오면 머리로 떠올려보기는 했으나 삼십년이 넘도록 입에 대보지 못하였다


태평추채로 썬 묵에다 뜨끈한 멸치국물 육수를 붓고 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와 김가루와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음식인데 눈 많이 오는 추운 날 점심때쯤 먹으면 더할 수 없이 맛이 좋았다 입가에 묻은 김가루를 혀끝으로 떼어먹으며 한번도 가보지 않은 바다며 갯내를 혼자 상상해본 것도 그 수더분하고 매끄러운 음식을 먹을 때였다


저 쌀쌀맞던 80년대에, 눈이 내리면, 저 눈발은 누구를 묶으려고 땅에 저 리 오랏줄을 내리는가? 하고 붉은 적의의 눈으로 겨울을 보내던 때에, 나는 태평추가 혹시 귀한 궁중음식이라는 탕평채가 변해서 생겨난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허나 세상은 줄곧 탕탕평평(蕩蕩平平)하지 않았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탕평해야 태평인 것인데, 세상은 왼쪽 아니면 오른쪽으로 기울기 일쑤였고 그리하여 탕평채도 태평추도 먹어보지 못하고 나는 젊은 날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러다가 술집을 찾아 예천 어느 골목을 삼경(三更)에 쏘다니다가 태평추,라는 세 글자가 적힌 식당의 유리문을 보고 와락 눈시울이 뜨거워진 적 있었던 것인데, 그 앞에서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다가 대신에 때마침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말았던 것인데,


그날밤 하느님이 고맙게도 채 썰어서 내려보내주시는 굵은 눈발을 툭툭 잘라 태평추나 한 그릇 먹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간절하게 참 철없이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안도현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시선 283/창비/2008.1.21. 초판 1쇄/2008.2.5. 초판 2쇄 발행) 59-61쪽


[발문]

1. 태평추는 어떤 음식인가? -

2. 삼십년 동안 태평추를 먹지 못한 이유는? -

3. 80년대에 화자가 태평추를 더올린 이유는? -

4. 세상이 탕평하지 않은 이유는? -

5. 예천에서 태평추라는 간판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진 이유는? -

6. 눈이 오는 밤에 태평추나 한 그릇 간절하게 참 철없이 먹고 싶었던 이유는? -


[감상]

어릴 적에 먹던 음식을 떠올리는 시인은 참 행복할 것이다. 그 시절 궁중음식인 ‘탕평채’가 변한 이름일 ‘태평추’를 겨울에만 먹었던 외갓집은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한 공간일까? 하지만 태평해야할 세상은 언제나 왼쪽이든가 아니면 오른쪽으로 기울어 탕탕평평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은 간절하게, 간절하게 참 철없이도 탕평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시가 가슴으로 다가오는 것은. ‘채로 썬 묵에다 뜨끈한 멸치국물 육수를 붓고 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와 김가루와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음식’인 탕평추를 눈이 오는 날 한 번 먹어보고 싶다. 탕탕평평한 세상을 꿈꾸며.



더 읽을 시

명자꽃

안도현



그해 봄 우리집 마당가에 핀 명자꽃은 별스럽게도 붉었습니다

옆집에 살던 명자 누나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누나의 아랫입술이 다른 여자애들보다 도톰한 것을 생각하고는 혼자 뒷방 담요 위에서 명자나무 이파리처럼 파랗게 뒤척이며

명자꽃을 생각하고 또 문득 누나에게도 낯설었을 초경(初經)이며 누나의 속옷이 받아낸 붉디붉은 꽃잎까지 속속들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꽃잎에 입술을 대보았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내 짝사랑의 어리석은 입술이 칼날처럼 서럽고 차가운 줄을 처음 알게 된

그해는 4월도 반이나 넘긴 중순에 눈이 내렸습니다

하늘 속의 눈송이가 내려와서 혀를 날름거리며 달아나는 일이 애당초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명자 누나의 아버지는 일찍 늙은 명자나무처럼 등짝이 어둡고 먹먹했는데 어쩌다 그 뒷모습만 봐도 벌 받을 것 같아

나는 스스로 먼저 병을 얻었습니다

나의 낙은 자리에 누워 이마로 찬 수건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어린 나를 관통해서 아프게 한 명자꽃,

그 꽃을 산당화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될 무렵

홀연 우리 옆집 누나는 혼자 서울로 떠났습니다

떨어진 꽃잎이 쌓인 명자나무 밑동은 추했고, 봄은 느긋한 봄이었기에 지루하였습니다

나는 왜 식물도감을 뒤적여야 하는가,

명자나무는 왜 다닥다닥 홍등(紅燈)을 달았다가 일없이 발등에 떨어뜨리는가,

내 불평은 꽃잎 지는 소리만큼이나 소소한 것이었지마는

명자 누나의 소식은 첫 월급으로 자기 엄마한테 빨간 내복 한 벌 사서 보냈다는 풍문이 전부였습니다

해마다 내가 개근상을 받듯 명자꽃이 피어도 누나는 돌아오지 않았고,

내 눈에는 전에 없던 핏줄이 창궐하였습니다

명자 누나네 집의 내 키만한 창문 틈으로 붉은 울음소리가 새어나오던 저녁이었습니다

그 울음소리는 자진(自盡)할 듯 뜨겁게 쏟아지다가 잦아들고 그러다가는 또 바람벽 치는 소리를 섞으며 밤늦도록 이어졌습니다

그 이튿날, 누나가 집에 다녀갔다고, 애비 없는 갓난애를 업고 왔었다고 수런거리는 소리가

명자나무 가시에 뾰족하게 걸린 것을 나는 보아야 했습니다

잎이 나기 전에 꽃봉우리를 먼저 뱉는 꽃,

그날은 눈이 퉁퉁 붓고 머리가 헝클어진 명자꽃이 그해 첫 꽃을 피우던 날이었습니다


※안도현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시선 283/창비/2008.1.21. 초판 1쇄/2008.2.5. 초판 2쇄 발행) 18-20쪽


[감상]

소년기의 짝사랑이 아프다. 옆집 살던 명자누나와 명자꽃(산당화)이 겹친다. 붉게 핀 명자꽃은 예쁘지만 떨어진 꽃은 추하다. 그러하듯이 애비 없는 자식을 낳아서 고향에 돌아온 망가진 명자누나는 나에게 아픔만을 남겨주었다. 시인의 인생초기에 명자누나가 남긴 아픔은 시인을 시인이 되는 길로 내몰았을 지도 모른다.



추천시

슬픔이 없는 십오 초 / 심보선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도 하다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심보선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지성 시인선 346/문학과지성사/2008.4.18. 초판 1쇄발행) 20-21쪽

[감상]

세상은 온통 슬픔이다. 과거도 미래도 슬프다. 현재는 꽃이 피는 시간이고, 꽃이 지기 때문에 슬픈 시간이다. 그래서 슬픔이 없는 15초간은 짧은 시간이지만, 15초 동안이나마 슬픔이 없어서 다행이다. 슬픔은 살아 있는 존재가 안고 있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 별똥별

posted by 추월산
:
시 이야기 2008. 11. 26. 10:05

대표시

나는야 세컨드1

김경미



누구를 만나든 나는 그들의 세컨드다

,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부모든 남편이든 친구든

봄날 드라이브 나가자던 자든 여자든

그러니까 나는 저들의 세컨드야, 다짐한다

아니, 강변의 모텔의 주차장 같은

숨겨놓은 우윳빛 살결의

세컨드, 가 아니라 그냥 영어로 두번째,

첫번째가 아닌, 순수하게 수학적인

세컨드, 그러니까 이번, 이 아니라 늘 다음, 인

언제나 나중, 인 홍길동 같은 서자, 인 변방, 인

부적합, 인 그러니까 결국 꼴찌,


그러니까 세컨드의 법칙을 아시는지

삶이 본처인 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 것

일상더러 자고 가라고 애원하지 말 것

적자생존을 믿지 말 것 세컨드, 속에서라야

정직함 비로소 처절하니

진실의 아름다움, 그리움의 흡반, 생의 뇌관은,

가 있게 마련이다 더욱 그곳에

그러므로 자주 새끼손가락을 슬쩍슬쩍 올리며

조용히 웃곤 할 것 밀교인 듯


나는야 세상의 이거야 이거



*김경미 시집 『쉿, 나의 세컨드는』(문학동네/1판 1쇄 2001.11.23./ 개정판 1쇄 2006.3.31.)44-45쪽


[발문]

1.세컨드는 무슨 뜻인가? - 두번째

2.사람들은 세컨드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 본처 말고 첩

3.시의 화자는 세컨드를 무엇으로 인식하는가? - 첫번째가 아닌 것, 늘 다음인 것, 홍길동 같은 서자, 변방, 부적합, 꼴찌인 것

4.세컨드의 법칙은? - 삶이 본처인 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 것, 일상더러 자고 가라고 애원하지 말 것, 적자생존을 믿지 말것, 조용히 새끼손가락을 올리며 세상의 세컨드라고 하며 웃을 것

5.진실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가 있다고 하는가?-그곳(세컨드)

6.정직함은 어디에 있다고 하는가?-세컨드

7.‘당신은 세컨드야’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

8.결국 시의 화자가 세컨드가 되고 싶은 이유는? - 정직함, 아름다움, 편안함, 일상에서 벗어남, 삶으로부터 빗겨 섬, 생존경쟁으로부터 일탈.



[감상]

당신은 퍼스트인가? 퍼스트가 되고 싶은가? 그러나 퍼스트는 하나이고, 다음은 세컨드다. 어찌할까나. 아내가 남편의 퍼스트(본처)가 아니고 세컨드(첩)라고 생각하고, 다짐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아내는 남편에게 최선을 다 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퍼스트에 대한 강박관념이 시의 화자를 세컨드에 매혹시켰을 것이다. ‘일등이 아니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는 광고가 말해주듯이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우승열패가 일상이다. 그래서 화자는 퍼스트가 아니라 세컨드에,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 적자가 아니라 서자에, 적합이 아니라 부적합인 것에 애정을 갖는 것이다.

더 읽을 시

헤비메탈을 들으며

김경미



―선배도 이젠 고상한 음악 좀 들으세요.

나이도 있는데…… 온 국민이 다 재즈 팬인데……


돌아와 또 메탈 볼륨을 올린다 드럼 채가 튀어 식탁을

두드리고 신발장 안의 구두들 일제히 날아오른다

미안하다 이웃들이여 나 진심으로 그대들 사랑한

적 없다 서로 사랑하지 말고 묵묵히 멀리 있자고

그것만이 진실이리라고

나도 이렇게 시끄러운 볼륨을 높이니


고백건대 국산도 말고 외제 메탈만 듣는다

멀리 있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

상처가 되지 않는 거리

라벤더와 제라늄 식의 먼 명칭들

고백건데 저녁 무렵이 되면 신데렐라처럼

소리치고 싶어진다 돌아가야 해요 난 실은

사람이 아니에요, 난 식물이란 말예요!


매일 몇 마디씩이라도 하는 내가 때로 시끄러워 견딜 수 없다 침묵과

슬픔과 내향만이 내가 아는 메시아이므로

그러므로 누가 뭐래도 나는 무겁고 묵묵하게

고요하고 슬픈 음악을 들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식물처럼 깊어질 때까지



*김경미 시집 『쉿, 나의 세컨드는』(문학동네/1판 1쇄 2001.11.23./ 개정판 1쇄 2006.3.31.) 80-81쪽


[감상]

당신은 헤비메탈을 좋아하십니까? 시의 화자는 이웃들에게 ‘서로 사랑하지 말고 멀리 있자’고 외치며 메탈 볼륨을 높이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외친다. 그리고 외제 메탈만을 듣는다.

시의 화자는 상처를 많이 받은 모양이다. 그래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헤비메탈을 들으며 인간을 너머 식물이 되고자한다. 식물은 고요하다. 시의 화자 또한 시끄러운 음악속으로 침잠하고자 한다. 침묵과 슬픔과 내향만이 시의 화자를 구할 구세주이므로.



다른 시인의 시

손끝마다

최정규(1951- ) 경남 통영 출생



개구리 입속에서

하아얀 찔레꽃이 피어오르는 날


동네 어른들과

새 주민등록증을 내기 위해

이장님 봉고차를 타고

면사무소로 가는 길에


지문이 안 나와 우짜노 걱정하시는

달티 할머니 한 말씀 앞에

세상천지 어느 입이 맞대답 하리오


종자씨 만들어 가꾸고 키워 온

할머니의 닳아버린 지문 속에서

온 산천이 되살아나고 손끝마다

우담바라 꽃망울이 벙글어 진다


*최정규 시집 『둥지 속에서』(당그래/2004년 3월 13일 초판 인쇄) 21쪽

[감상]


농촌의 삶이다. 지문이 닳아없어지도록 씨를 뿌리던 달티할머니의 손은 생명의 손이며 거룩한 손이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안은 손이며 우담바라(3000년만에 꽃이 피는 꽃)인 것이다.



다른 시인의 시

푸른 제복

이시영(1949- ) 전남 구례 출생



양지다방에서 내려다보면 구례읍 로터리의 교통순경은 늘 그 사람이었다. 푸른색 상의에 남색 바지, 가슴과 등에 ×자로 흘러내리는 흰색 벨트를 메고 챙이 짧은 경찰모에 어깨에 잎사귀 견장을 붙인 그가 원통형의 교통 지휘대에 올라서서 멋진 수신호와 함께 다람쥐처럼 은빛 호각을 불어제끼면 구례읍으로 들어오는 모든 차들은 일단 멈춤을 했다가 그의 손길이 머무는 곳으로 움직였다. 하루에 대여섯 차례씩 들락거리는 광주발 부산행 시외버스나 순천발 남원행 완행버스가 전부이긴 했으나 아침 햇살을 받으며 로터리를 지나 읍내중학교로 등교할 때마다 우리는 고동색 경찰서 정문을 배경으로 들려오는 그의 간단없는 호각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걸음을 빨리 하곤 하였으니, 키가 작달막하고 박정희처럼 뒤꼭지가 툭 튀어나온 그가 거기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장날의 우마차꾼들이나 지게꾼들에겐 큰 위협이었을 것이다. 하루는 어느 나무꾼이 마른 장작짐을 지고 북문쪽으로 길을 건너다 호각소리에 혼비백산하는 것을 보았고 송아지를 달고 나온 농부의 착한 소가 놀라서 아스팔트 위에 푸른 똥을 싸는 것을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모든 질주하는 것들의 안내자이자 길의 활달한 통제사. 로터리의 한쪽은 군청과 병원이고 다른 쪽은 학교였는데 어쩌다 하교길에 교통 지휘대에 선 그가 안 보이면 읍내 거리가 일시에 통제기능을 잃고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20년 뒤 정년퇴직할 때까지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구례읍의 푸른 근대의 상징이자 뒤꼭지가 툭 튀어나온 권력의 작은 집행자. 그의 호각소리가 등뒤에서 들리지 않는 날이면 사나운 개들도 무척 심심하였다.


*이시영 시집 『은빛 호각』(창비시선 230/2003년 11월 20일 초판 1쇄/2004년 9월 20일 초판 3쇄 발행) 34-35쪽


[감상]


한가한 시골읍 로터리에 은빛 호각을 불어제끼는 키가 작달만한 교통순경이 눈 앞에 서있다. 그가 불어제끼는 호각 소리는 읍내의 교통을 통제한다. 사람들의 정신도 통제한다. 그래서 그는 모든 질주하는 것들의 안내자이자 길의 활달한 통제사이다. 작은 박정희를 떠오른다. 그가 없으면 모두가 심심할 정도로 사람들은 그의 호각에 길들여졌으므로.



박봉우 시인

이시영



이가 거의 다 빠진 합죽이 박봉우 시인이 내 손을 잡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시영이 자네를 팔아 술깨나 얻어 먹었네그려!” 생애 후반의 대부분을 전주시립도서관의 따분한 직원으로 얹혀지낸 시인은 술 생각이 간절한 저녁이면 인근의 지인들에게 전화하여 “창비에 있는 이시영이가 자네 시집을 내주기로 했다”고 속여 공술을 자주 대접받았다고 하는데 그중에는 내 고등학교 때의 은사 이 모(某) 선생님도 계셨다.


*이시영 시집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창비시선 277/2007년 6월 15일 초판 1쇄 발행) 26쪽


[감상] 친구를 팔아서 술을 얻어먹는 합죽이 박봉우 시인이 얄밉다.





고향

이시영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은 내 친구 장점현의 고향. 이가 시린 차거운 개울물을 건너면 그의 집이었다. 산 아래에 의젓하게 자리잡은 반듯한 초가집. 마당에 차일을 치고 이웃 마을의 신부를 맞아 혼례를 치르고 며칠 동안 흥겨운 잔치를 벌인 뒤에 우르르 번암면 소재지로 달려가 결혼기념 사진을 찍었던가. 모두들 소년기가 채 가시지 않은 애틋한 얼굴들이었다. 그뒤 생활의 최전선인 서울에서 여러 번 만났다. 오금동 벌판에서 그가 형과 함께 고물 수집상을 하고 있을 때, 봉은사 뒷마을에서 도배꾼을 하고 있을 때, 그리고 느닷없이 대모산 강남구 훈련장에서 또 한 번. 마지막으로 그를 본 것은 연락을 받고 달려간 영동세브란스병원. 대장암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병실로 실려나온 직후였다. 아직 가래를 뱉지 못한 상태였지만 소년처럼 꼭 다문 입술로 한번 보고 싶었노라고 했다. 그날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무슨 말을 했던가.

장수군 번암면은 내 친구 장점현의 고향. 이가 시린 차거운 냇물을 건너면 이제는 따뜻한 그의 무덤. 여러 굽이를 휘어돌기는 했지만 집부터 무덤까지의 거리는 이렇듯 지척이었다.


*이시영 시집 『바다호수』(문학동네/2004.5.20. 초판 1쇄 발행) 38-39쪽


[감상] 이렇듯 삶과 죽음은 늘 지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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