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고 싶은 책'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09.10.14 :: 말테의 수기 / 릴케
  2. 2009.06.20 :: 접속의 시대 / 제러미 리프킨
  3. 2009.06.20 ::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도스또예프스키 1
  4. 2009.06.20 :: 생존의 비용 / 아룬다티 로이
함께 읽고 싶은 책 2009. 10. 14. 09:20

『말테의 수기』: 릴케 전집 12권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용민 옮김, 책세상, 초판 3쇄 2005년 3월 10일

9월 11일 툴리에 거리.


그러니까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 도시로 온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밖에 나갔다 왔다. 많은 병원을 보았다. 어떤 사람이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기에 그 후의 일은 보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임신한 여인을 보았다. 그 여인은 따사로운 높은 담을 따라 힘들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마치 담이 거기에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그녀는 여러 번 담을 만져보고는 했다. 물론 담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담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도를 찾아보았다. 산부인과병원. 그래 그녀는 곧 해산을 하겠지――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좀더 가니 생 자크 거리가 나오고, 둥근 지붕의 커다란 건물이 나왔다. 지도에는 발 드 그라스 육군병원이라 나와 있었다. 사실 이런 것을 알 필요는 없었지만 안다고 나쁠 것도 없다. 골목길 사방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요오드포름, 감자튀김 기름 그리고 불안의 냄새를 분간할 수 있었다. 여름이면 모든 도시에서 냄새가 난다.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은 그 집 현관문 위에는 아직은 제법 두렷하게 ‘간이 숙박소’라 씌어 있었다. 문 옆에 요금이 붙어 있었다. 읽어 보았다. 별로 비싸지 않았다.

그리고 또 무엇을 보았던가? 세워놓은 유모차 안에 있는 아이를 보았다. 그 아이는 통통했고 피부는 푸르스름했으며, 이마에는 오롯하게 종기가 나 있었다. 종기는 거의 다 나아서 이제 아프지 않아 보였다. 아이는 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는 입을 벌린 채 요오드포름과 감자튀김, 그리고 불안의 냄새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이런 것들을 나는 보았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중요했다. (9-10쪽)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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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고 싶은 책 2009. 6. 20. 15:42

제러미 리프킨, 접속의 시대(소유의 종말, 9-12쪽, 민음사)


재산의 역할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급 효과는 엄청나게 크다. 근대 이후로 재산과 시장은 줄곧 동의어로 쓰였다. 실제로 자본주의 경제는 재산을 시장에서 교환한다는 발상 위에서 성립한 것이다. ‘시장’이라는 단어가 영어에 처음 등장한 것은 12세기였다. 시장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상품이나 가축을 교환할 수 있도록 마련된 물리적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18세기 말이 되면 시장이라는 용어는 공간적 지시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서 물건을 사고 파는 추상적 과정을 묘사하는 데 쓰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과정에 너무 깊이 얽혀 있어, 이제 우리는 인간사를 시장이 아닌 다른 틀로 이해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시장은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으로 파고 들어오는 힘이다. 우리 모두는 시장의 분위기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 시장이 잘 굴러가면 우리의 생활도 잘 굴러가는 것 같다. 시장이 건강하면 우리 마음도 밝아진다. 시장이 맥을 못 추면 우리는 상심한다. 시장은 우리 삶의 안내자이자 상담자이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시장은 어른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린아이도 시장에서 낯선 것과 처음으로 마주칠 때가 있다. 상점 진열장을 들여다보면서 ‘저거 얼마예요?’ 하고 수줍게 물어본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모든 물건에는 가격이 있다. 물건은 팔려고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배운다. 시장에는 어두운 면이 있다는 것도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된다. 그래서 ‘구매자 위험 부담’이라는 구절이 나오면 당장 촉각을 곤두세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장 시장의 규칙에 따라 살아간다. 싸게 사들이고 비싸게 팔라치우는 것을 금과옥조로 삼아 우리의 생활을 끊임없이 담금질한다. 재산을 모으는 것은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커가면서 배운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운다. 이 세상은 상품을 교환하고 남부럽지 않을 만큼 재산을 누려보겠다는 원초적 충동에 의해 굴러간다. 이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가진 생각이다.

우리는 확고부동하게 시장을 끌어안는다. 시장에 대해 악담을 퍼붓는 사람을 훈계하면서 시장의 찬가를 부른다. 사유재산과 시장의 미덕을 한번쯤 열렬히 찬양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개인의 자유, 천부인권, 사회계약이라는 관념도 알고 보면 모두 시장이라는 완강한 사회 제도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현대 생활의 기초가 허물어지는 조짐이 보인다. 한때 인간을 이념투쟁과 혁명, 전쟁으로 몰고 갔던 체제가 서서히 막을 내리면서 경제현실도 새롭게 바뀌고 있다. 달라지는 경제현실 앞에서 사회는 새로운 시대의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결속과 경계선의 유형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시장은 네트워크에게 자리를 내주며 소유는 접속으로 바뀌는 추세다. 기업과 소비자는 판매자와 구매자로서 시장에서 재산을 교환하던 근대경제의 기본구도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재산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천만의 말씀이다. 재산은 엄존한다. 하지만 재산이 시장에서 교환되는 빈도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새로운 경제에서 재산을 장악한 공급자는 재산을 빌려주거나 사용료를 물린다. 도는 입장료, 가입비, 회비를 받고 단기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근대경제의 중요한 특징이었던 판매자와 구매자의 재산교환은 네트워크 관계로 이루어지는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단기접속으로 바뀐다. 시장은 여전히 살아남겠지만 사회에서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네트워크 경제에서 기업은 물적 재산이건 지적 재산이건 교환하기보다는 접속하는 쪽을 택한다. 물적 자본의 소유권이 한때는 산업사회의 근간이었지만 이제는 점점 주변적 지위로 밀려난다. 기업은 물적 자본을 자산이 아닌 단순한 경상비로 취급하게 된다. 가급적 소유하지 말고 빌리자는 인식이 뿌리내린다. 반면 지적 자본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선망의 대상이다. 새로운 경제에서는 물건이 아니라 개념, 아이디어, 이미지가 실리를 가져온다. 부는 이제 물적 자본에서 나오지 않는다. 부는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에서 나온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적 자본은 여간해서는 교환되지 않는다. 공급자는 지적 자본을 단단히 거머쥔 채 제한적으로 임대하거나 사용권을 빌려준다.

이미 기업은 소유보다는 접속으로 궤도를 수정하고 저만큼 나가 있다. 부동산을 팔아치우고 재고를 줄이고 시설을 빌리고 아웃소싱을 맹렬히 추진하고 있다. 기업들은 물적 소유를 무조건 털어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감으로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확확 바뀌는 21세기 경제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시대에 뒤진 생각이다.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생산에 필요한 것은 대부분 빌려 쓰는 추세로 이미 세상은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시장의 주역이었지만 이제는 공급자와 사용자가 주역이다.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시장을 통한 거래는 줄어들고 전략적 제휴, 외부 자원의 공유, 이익 공유가 활성화된다. 기업들은 이제 서로에게 물건을 파는 것보다는 집합자원을 공유하여 광범위한 공급자-사용자 네트워크를 통한 공동경영을 선호한다.



***아웃소싱(outsourcing)은 기업의 내부 프로젝트나 제품의 생산, 유통, 용역 등을 외부의 제3자에게 위탁,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미국 기업이 제조업 분야에서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경리, 인사, 신제품 개발, 영업 등 모든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기업은 핵심사업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부수적인 부문은 외주에 의존함으로써 생산성 향상을 극대화할 수 있다.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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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고 싶은 책 2009. 6. 20. 15:38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도스또예프스키(상권431-2,열린책들)


“금세기(19세기) 초에 세도 당당한 인척들이 많은 부유한 지주였던 어느 장군이 있었는데, 그는 관직에서 물러나 쉬면서 자기 하인들을 죽이고 살릴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믿는 그런 부류들(사실 이미 당시에도 그런 작자들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중의 한 사람이었어. 당시 그런 작자들이 있기는 있었지. 그런데 그 장군은 자기 영지에 2천 명의 농노를 거느리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으므로 이웃한 소지주들은 자기 집 식객이나 어릿광대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던 거야. 거기에는 수백 마리의 개를 기르는 개집이 있었고, 1백 명에 달하는 사냥개지기들은 한결같이 제복을 입고 말을 타고 다녔어. 그런데 하인집 아이가, 겨우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이 놀다가 돌을 잘못 던져서 장군이 아끼던 개의 다리를 다치게 만든 거야. ‘내가 아기는 개가 어째서 다리를 저는 거냐?’ 하고 장군이 묻자, 사람들은 소년이 여차여차 돌을 던져서 다리를 다치게 만들었다고 대답했지. 장군은 ‘바로 네 놈이구나’ 하고 소리쳤지. 하인들은 어머니 품에서 그 소년을 빼앗아서 밤새 헛간에 가두었고, 다음날 동이 트기도 전에 장군은 사냥 채비를 갖추고 말을 타고 나타났어. 말 안장에 앉아 있는 그의 주변에는 식객들, 사냥개들, 사냥개지기들, 몰이꾼들이 말을 탄 채 에워싸고 있었던 거야. 주위에는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하인들이 모여 있었고, 그 맨 앞에는 잘못을 저지른 소년의 어머니가 서 있었지. 마침내 소년이 헛간에서 끌려 나왔어. 음산하고 날씨도 차가운데다가 안개가 낀 가을날이어서 사냥하기에 적당한 날이었지. 장군은 소년의 옷을 벗기라고 명령했고, 소년은 옷을 홀딱 벗긴 채 너무 무서워서 거의 정신이 나간 나머지 찍 소리도 하지 못 했어……. ‘저놈을 끌어내라’ 하고 장군이 명령을 내리자, 사냥개지기들은 ‘뛰어, 어서 뛰어!’ 하고 소리치며 보르조이 사냥개들을 모두 풀어놓은 거야. 바로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물어 죽인 거지. 사냥개들은 아이를 갈기갈기 물어뜯고 말았거든! 그래서 장군은 금고형인가를 선고받았다는 거야. 그렇다면…… 그자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총살을 시킬까? 도덕적 감정을 만족시키기 위해 총살을 시킬까? 말해봐, 알료사!”

“총살을 시켜야죠!”알료사는 하얗게 일그러진 미소를 띤 채 형을 뚫어질 듯 응시하면서 조용히 대답했다.

“브라보!” 이반은 기뻐하며 탄성을 질렀다.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로 봐서 ……, 고행계율을 받은 네가! 그렇다면 네 가슴속에도 어떤 새끼 악마가 들어 있는 거야, 알료사 까라마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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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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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고 싶은 책 2009. 6. 20. 15:32

아룬다티 로이, '생존의 비용'(36-39쪽)


큰 댐의 시작은 좋았지만 끝은 그렇지 않았다. 공산주의자이든 자본주의자이든, 기독교인이든, 회교도이든, 힌두교도이든, 불교도이든, 모든 사람들이 댐을 사랑하고 댐을 갖기를 원했던 시절이 있었다. 큰 댐을 보고 감동받은 시인이 노래를 읊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전 세계에 걸쳐 큰 댐에 대한 반대 운동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큰 댐들은 비난을 받으면서 점차 퇴역하고 있다. 큰 댐으로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짐작이 아니다. 큰 댐은 이제 한물간 유행이다. 별로 멋도 없고 민주주의적인 것도 아니다. 큰 댐들은 정부가 얼마나 많은 물을 어떤 방식으로 어디에, 그리고 누구에게 배분하는가를 결정하기 위한 명분 축적의 방법일 뿐이다. 큰 댐은 농부의 지혜를 그들로부터 앗아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물과 딴, 그리고 관개 시설을 빼앗아 부자들에게 선물하는 파렴치한 수단이다. 저수지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땅을 떠나야 하고 그들은 집 없고 가난한 채로 버려진다.

생태학적으로 보아도 큰 댐들은 영양가가 없다. 큰 댐들은 지구를 쓰레기로 만들어버린다. 홍수를 유발하고 침수 ,염분 축적의 원인이 된다. 병을 퍼뜨리기도 한다. 댐과 지진 사이의 연관에 대한 증거들이 쌓여가고 있다.

큰 댐들은 현대 문명의 기념물,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의 상징으로서 박수 받을 만한 역할을 결코 하지 못했다. 기념물들은 영원해야 하나 댐에는 정해진 수명이 있다. 댐은 자연이 진흙을 채워 넣는 순간에 끝장이다. 큰 댐을 선전하는 사람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큰 댐과 국가적 이익을 위한 지역적 고통이라는 신화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선진국에서 댐 건설 산업은 어려움에 처해 있고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따라서 이 산업은 개발원조라는 이름 아래 재래식 무기, 구닥다리 항공모함, 그리고 금지된 농약과 같은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제 3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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