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고 싶은 책 2010. 12. 29. 13:15

바다를 떠돈다는 것

표류란 바다를 항해하다가 폭풍을 만나서 항로를 이탈하여 조류에 떠밀려 가는 것을 말한다. 바람을 맞을 돛대가 부러지거나 키가 부러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그 배는 정처 없이 흘러가야 한다. 운이 나쁘면 거대한 파도에 맞아 침몰할 수도 있다. 동력을 자연에 의존하던 시대에 이러한 표류는 늘 있어왔다.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최신식 엔진이 개발되어 성능이 아주 뛰어난 배라고 하더라도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항해를 준비하는 자들은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인다.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흑산도(우이도) 홍어장수 문순득은 표류한 지 3년 만(1801.12-1805.1)에 집으로 돌아왔다. 류큐(오키나와)까지 떠내려갔다가 중국으로 송환되던 도중에 다시 여송국(필리핀)으로 떠밀려 갔다. 필리핀에서 송환을 기다리다가 마카오를 거쳐서 베이징으로 갔다. 거기서 조선 사신을 만나서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고향에 돌아와서 그가 보고 들은 것을 정약전(유배중)에게 구술하였는데, 이를 정약전이 정리하여 ‘표해시말(漂海始末)’이 태어난다.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어도 비상한 관찰력과 기억력의 소유자인 문순득은 마치 눈앞에 그 현장이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류큐나 여송국의 풍습, 언어, 배에 대해서 아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망하거나 의욕을 잃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순득은 글자는 몰랐지만 왕성한 호기심으로 그가 본 것을 기억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이도에 유배와 있던 정약전(1758-1816)에게 그 시말을 알렸고 시대를 앞서갔던 실학자 정약전은 일자무식의 어부의 이야기를 ‘표해시말’로 정리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를 원한다. 그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밀려나면 불안해한다. 내일도 오늘 같기를 늘 원한다. 그러나 세상 일이 어디 뜻대로만 되는가? 나는 가만히 있고 싶은데 바람이 파도가 나를 떠미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조금 이동하면 그나마 위안이겠지만 엉뚱한 곳으로 밀려가버린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지금 나는 이곳에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보수주의자가 되어버린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무엇인가? 변화를 꿈꾸고 실천하는 사람을 진보주의자라고 부르는가? 그런데 변화를 꿈꾸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보수주의자다. 그래서 보수주의는 수구파다. 묵수주의자다. 나는 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2010년이 저물어가는 이때에 새삼스럽게 200년 전에 동아시아를 떠돌았던 국제인 문순득을 떠올리며 ‘변화’ 앞에서 두려워하는 나 자신을 반성한다.

*(조선 최초의 세계인 문순득 표류기)홍어장수 문순득, 조선을 깨우다(역사를 바꾼 신안 홍어장수와 조선 실학자들과의 만남),서미경 지음,북스토리(2010.12.15. 발행:279쪽:13,800원)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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