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시 2012. 6. 1. 14:17

모퉁이

안도현

모퉁이가 없다면

그리운 게 뭐가 있겠어

비행기 활주로, 고속도로, 그리고 모든 막대기들과

모퉁이 없는 남자들만 있다면

뭐가 그립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계집애들의 고무줄 끊고 숨을 일도 없었겠지

빨간 사과처럼 팔딱이는 심장을 쓸어내릴 일도 없었을테고

하굣길에 그 계집애네 집을 힐끔거리며 바라볼 일도 없었겠지

인생이 운동장처럼 막막했을 거야

모퉁이가 없다면

자전거 핸들을 어떻게 멋지게 꺾었겠어

너하고 어떻게 담벼락에서 키스할 수 있었겠어

예비군 훈련 가서 어떻게 맘대로 오줌을 내갈겼겠어

먼 훗날, 내가 너를 배반해볼 꿈을 꾸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말이야

골목이 아냐 그리움이 모퉁이를 만든 거야

남자가 아냐 여자들이 모퉁이를 만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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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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