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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15 :: 꼴린다 / 이봉환 / [사람의문학] 2004년 봄호
  2. 2006.09.15 :: 겨울 느티 / 최승권
함께 읽는 시 2006. 9. 15. 10:38

꼴린다


그때 나는 "사실"과 "의견"을 설명하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었다. 자, 손가락이 몇 개냐? 하나요! 모두가 그렇게 대답했다. 응, 그건 사실이지. 그럼 넌 이 엄지손가락이 무엇으로 보이냐? 예, 최고라는 듯한데요? 그래? 넌? 그때 그 아인 약간 머뭇거렸다. 선생님, 자지가 꼴려 있는 것 같습니다! 장난꾼 그 아이가 말했다. 순간, 나는 당황했으나, 침착을 가장하고 얼른 몸을 돌린 후 칠판에 "꼴린다"를 한가운데 아주 크게 썼다. 그리고 글씨를 쓰는 몇 초간 전광석화와 같이 머리를 굴렸다. 꼴린다, 꼴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 꼴린다는 것은 팽팽하게 긴장하는 것이란다. 내가 바라보는 사물에 대하여 기타 줄처럼 끊어질듯 긴장한다는 뜻이야. 나무를 볼 때, 돌멩이를 볼 때, 자꾸 짧아지는 햇살을 볼 때 그래서 난 꼴린단다. 와하하하하 - 선생님도 꼴린대. 여자를 봐도 꼴려요? 당연하지. 여자를 보면 난, 아 ,저 여자 참 사랑스러웠겠구나. 저 여자 할머니가 되려고 얼마나 많은 이쁨이 몸 속에서 빠져나갔을까, 생각하며 난 꼴린단다. 그 순간, 나도 아이들도 교실도 하늘도 구름도 모두 꼴려서 팽팽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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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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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시 2006. 9. 15. 10:34
겨울 느티 / 최승권


네 나이 열일곱 살,
운동장 쪽 금간 유리창가에서
입김 불며 두 팔 벌리고
어둑한 농구장을 한없이 바라보던
겨울 느티 한 그루.

단풍잎 모두 내어주고
빈 몸으로 소낙눈을 맞듯,
젊은 날의 꿈이 책갈피 속에서만
형광불빛으로 하얗게 꿈틀거린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침묵의 전투,
쏟아지는 무수한 지식의 사각형 화살에도
쓰러지지 않고 너를 있게 한 건
검은 구름 틈에서 잠깐 본 푸른 별빛.

오늘도 벚꽃잎 같은 눈발이 내려
운동장을 모두 지우고 있는데
교실 밖으로, 세상 속으로
뛰쳐나가지 못한 정열의 책가방이
마루바닥에 엎드려 씩씩거리고 있다.

저 멀리 새매 한 마리는
농구공처럼 하늘로 튀어 오르는데
열일곱의 느티는 눈발에 외발로 손들고 서있다.
남국(南國)을 그리는 해오라기처럼.

-함께여는 국어교육 2005년 겨울호(통권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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