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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10.08 :: 새벽 가래
  2. 2019.01.01 :: 2018년 12월 토론작품
  3. 2019.01.01 :: 2018년 11월 토론작품
  4. 2019.01.01 :: 2018년 10월 토론작품
추월산의 노변정담 2022. 10. 8. 14:03

*새벽 가래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강신보로 달려갔습니다. 눈 앞에 그득하게 널려 있을 가래를 생각하면서. 그러나 눈에 띄는 가래는 몇 개. 휴대폰 손전등을 비추며 찾아도 몇 개. 집으로 돌아와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 연장통 장을 조금 읽다가 침대에 누웠습니다.

7시 30분에 일어나서 까만 봉지에 담긴 가래를 꺼내어 껍질을 벗기고 알맹이를 빡빡 문질러 깨끗이 씻고나서 세어보았더니 15개입니다.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가래나무가 내게 준 선물입니다.

강신보 가래나무를 주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알게 모르게 가래를 주워가는 사람들입니다. 가래를 시장에 내다팔려고 가래를 줍지는 않을 겁니다. 호두처럼 알멩이가 풍성하지도 않아서 깨서 먹으려고 줍는 것도 아닐 겁니다.

아마도 가래가 좋아서 줍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길에 떨어진 가래를 그냥 두면 자동차 바퀴가 으깨어버립니다. 박살나버린 가래를 보는 마음이 아픕니다. 가래가 땅에 떨어져서 운이 좋으면 싹이 터서 가래나무가 될 겁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가래는 썩거나 벌레의 밥이 됩니다.

제가 이렇게 가래줍기에 열을 내는 것은 가래를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입니다. 돈을 들이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할 일이 그렇게 없냐고 물을 사람이 있을 겁니다. 가래를 줍는 날이 가을 한철인데 좀 이해해 주시면 안됩니까.

제가 강신보 가래나무와 가래를 이야기하다보니까 강신보가 가래나무의 성지가 된 듯합니다. 그리고 가래나무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가래나무가 있을 겁니다. 광주천변에도 가래나무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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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
추월산의 시 2019. 1. 1. 20:36
통합 게시판

[김성중 12월 토론 작품] 똥 한덩이 외 13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2.14  조회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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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2018-금시-송년.hwp


똥 한 덩이 외 13편
김성중


창체실 앞 복도를 구부러져 지나 계단을 내려가서 화장실 문을 여는데 역한 냄새가 났다. 문을 열고 비데가 설치된 변기 뚜껑을 열어보니까 팔뚝만한 똥 한 덩이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누워 있었다. 심한 변비를 앓고 있는 자의 똥이었다. 나는 힘차게 물을 내렸으나 똥은 그대로 있었다. 나는 코를 막고 변기솔로 똥덩이를 잘디잘게 으깨고는 다시 물을 내렸다. 똥이 시원하게 내려갔다. 

똥을 싸면서 너는 이미 알고 있었다. 너는 너의 변비만 생각했었다. 네 뒤에 올 사람은 네 머릿속에는 없었다.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탈출하듯이 너만 쏙 빠져나갔다.

언제부턴가 똥은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시골에선 퇴비가 되었지만 도시에서는 냄새나는 쓰레기가 되었다. 수세식 화장실이 대세가 되면서 이제 똥은 보이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변기가 막히면 똥은 쌓인다. 

인간이 남기는 똥덩이는 화장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오늘도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저 쓰레기를 보라. 플라스틱 병을 먹은 아귀의 터질 것 같은 배를 보라. 쓰레기로 가득 찬 고래의 뱃속을 들여다보라. 플라스틱으로 가득 찬 바다를 보라. 지구별 여기저기에 똥만 싸지르는 이상한 동물이 있다.




얼어버린 일곡파초


어젯밤 추위에 일곡배수지 가는 
길에 서 있는 일곡파초가 얼어버렸다. 

뜨거운 여름날 
커다란 부채를 흔들며
시원한 바람을 선물하곤 했는데
동장군의 기세에 힘없이 무너져버렸다.

고향을 떠나온 지 까마득한데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지으며
남국을 그리워하는 너를
나는 바라만 볼 뿐

그러나 너의 구근은 살아서 
내년 봄에 힘차게 
줄기를 하늘 높이 밀어 올리리라.



시집

시집이 없으면 시인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시집을 내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만의 시풍을 갖춘 시집을 낼 것이다. 

시집을 내려고 하니
고쳐야할 시들이 많구나.
마음에 차는 시는 별로 없고
버려야할 시들만 시들시들하구나.

진술보다는 묘사를
상투적이기보다는 참신하게
한 줄을 쓰더라도 새롭게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벼리고 벼린 시를 
시집으로 묶는 거다.

전화

일요일 아침 일곱 시가 조금 넘어서 전화가 걸려왔다. ㄱ선생이었다. ㅅ시인의 페이스북에서 보았다고 한다. 내가 명퇴를 신청한 것을.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의 부인은 2년 전에 명퇴를 했다고 한다. 자기 친구들에게는 정말 좋다고 하면서도 그가 명퇴한다고 하니까 얼굴색을 싹 바꾸더라는 이야기와 더불어 딸이 아직 어리니까!

시골에 농가주택을 사놓았다고, 새로 뚫리는 고속도로 나들목이 바로 근처라 접근성이 좋다고, 집에서 1시간이면 간다고

전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가 한여름 땡볕 아래 호박잎처럼 풀이 죽어 있었다.




남북군사도로 연결

2018년11월 22일
정전협정 뒤 처음 
철원 화살머리 고지
DMZ 관통
경남 남해-평북 초산 국도 3호선
70년 전 남북 교통로 단절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2019년 4월부터 공동 유해발굴을 위한 
비포장 전술도로
너비 12미터

끊어진 길이 이어지고
끊어진 핏줄이 이어지고
끊어진 강물이 이어지고
끊어진 말이 이어지고
끊어진 백두대간이 이어지고

2018년 12월 12일 
남과 북의 병사가 악수하고
이미 철수하고 폭파한 상대방
지피 10개씩을 검증하였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새와 산수유

첨단지구 무양서원 뒤
무양공원 산수유나무에 
산수유 열매를 따러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든다. 
산수유나무는 지금 
흐뭇한 웃음을 
흘리고 있다. 
새들이 멀리 씨를 
날라줄 테니까.
산수유열매가 겨울바람에 흔들린다.
겨울새가 산수유를 따고 있다.



사과 몇 알

어제 사과를 몇 조각 싸와서 간식으로 먹고는 남은 두 조각을 옆 동료와 나누어 먹었다. 그때 그 옆 동료의 옆 동료가 “왜 나는 안 주느냐?”고 해서 한바탕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한방병원에 다녀오는 아내를 첨단2지구에서 태우고 집으로 가면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한살림에서 사과 한 상자(5kg)를 사오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에 사과상자를 교무실 탁자에 올려놓았다. 웬 사과냐는 물음에 “사연이 있는 사과”라고 말하면서 연막을 피웠다. 어제 그렇게 말했던 동료가 출근해서 “어제 두 사람이 몰래 사과를 먹는 것을 적발하기”를 잘 했다고 한다. 

작은 사과 몇 알이 교무실을 훈훈하게 덥혀놓았다.


갈전마을

조문을 마치고 화순으로 차를 몰았다. "만연산 치유의 숲"에 들렀다가 "수만리-안양산휴양림-이서-금호리조트-갈전-창평-고서로컬푸드-장등터널-일곡동 한새봉농업생태공원", 이렇게 거쳐서 집에 들어오니까 캄캄했다. 

말로만 듣고 궁금했던 갈전마을에 들렀다가 멀리 마을 입구에서 마을을 사진으로 담았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정겹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나 살 만하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빨간 피가 더웁다. 어디나 똑 같다, 사람살이는. 제 잘난 맛에 사는 것이다. 

전원주택이든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 사람이 살고 있다.




담양교 새떼

담양교 위 전깃줄에 
새들이 앉아 있다. 
저 새들의 머리에는 
무슨 생각이 들어있을까? 
나는 뚝방 앞 국숫집에서
댓잎국수를 먹으면서도 
새떼들 생각 뿐이다. 
국수를 먹고 나왔어도 
새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새들도 나를 지켜본다.
강가의 억새들도 새들을 쳐다본다.
조금 아래 수바래에서
햇살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아낌없이 주는 단오반텃밭



단오반텃밭은 
모든 것을 다 주고 
이제 휴식에 들어갔다. 
지난여름에는 상추, 고추, 방울토마토, 가지를 
마구 마구 주더니 
이 가을에는 무와 배추를 주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마지막으로 배추끌텅을 주었다. 
아낌없이 주는 단오반텃밭이여, 아듀~~~


나목

출근길에 이파리를 다 떨구어버린 
벌거벗은 느티나무를 만났다.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린 건너편의 태산목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0년을 마주 보며 살아왔었는데, 
태산목이 서 있던 
그 자리는 텅 비어 있다. 

20년 지기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는
느티나무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키 작은 철쭉이 느티를 위로하고 있었다.




습관

출근하려고 아파트 뒤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찾는데 차가 없다. 
앞으로 가서 
찾아도 없다. 
다시 뒤로 가서 
찾아도 없다. 
아, 지하주차장 
옆길에 세워두었지. 

습관은 호랑이보다 무섭다.

백동 삼거리 방죽


소쇄원 옆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강쟁리로 가서 찔레나무를 쳐내며 마당을 조금 정리했다. 그리고는 천변리 책방 죽림재를 살펴본 다음에 관방제림으로 차를 몰았다. 길을 걸으며 여유롭게 계석대, 백진각, 담세정을 차례대로 둘러보았다. 관방제림을 걷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담양읍 백동 사거리를 지나며 옛날에 놀았던 미리산 앞 삼거리 마을 가운데에 있던 방죽을 떠올렸다.

그 저수지를 메워서 담양경찰서를 지었다. 그 뒤에 백동 사거리 주변에 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제 백동 삼거리 방죽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생활의 편리만을 좆는 사람들에게 그 작은 방죽이 대수겠는가.

예전 태봉산을 헐어서 광주역을 만들고 그 흙으로 경양방죽을 메워서 중흥동 시청사를 지었다. 시청은 다시 상무지구로 옮겨갔고 그 자리엔 대형할인점이 들어섰다. 경양방죽이 지금 남아있다면 광주시민들의 휴식처가 될 텐데...

산을 깎고 논과 밭을 다져서 집이나 공장을 짓는 일이 너무나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밤안개

어젯밤에 본촌산단 뒤 양지마을에 있는 칼국수 전문 식당에서 동지죽을 맛있게 먹었다. 식당문이 닫히기 직전 마지막 손님이었다. 동지죽을 먹고 나서 안개 자욱한 밤길을 달렸다. 북부순환로 장등터널을 지나자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차들도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다. 담양으로 가는 29번 국도를 달리는데 송강정 근처 유산교 쌍교다리에 이르자 안개가 옅어졌다. 

담양읍내 길을 천천히 달리면서 보니까 백동 사거리에서 터미널까지는 상가에 불이 켜져 있었다. 중심가를 지나서 담양교 양각다리 근처로 가니까 피시방 말고는 가게가 다 닫혀 있어서 거리가 쓸쓸했다. 관방제림을 따라 시장을 지나 국수거리로 들어섰는데 가게가 문을 닫은 거리는 고즈넉했다. 향교다리를 지나서 죽녹원 쪽으로 차를 몰았다. "천년담양" 불빛만 봉황루 아래에서 빛나고 있었다. 밤 아홉시인데 관방제림을 걷는 사람이 있었다. 

담양 중심가를 가만히 지나서 국도 29호선을 타고 달리는데 안개가 옅어져 있었다. 장등터널을 지나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여 2주 전에 트렁크에 넣어둔 대봉시를 꺼내어 집으로 올라왔다. 

안개는 어둔 밤이 외로울까봐 밤과 함께 밤을 지새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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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
추월산의 시 2019. 1. 1. 20:34
통합 게시판

[김성중 11월 토론작품]:출발 외 26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1.23  조회수:2

댓글0


 출발(금시-등촌-2018-11).hwp


1.출발

김성중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행성이 잘 돌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그대와 어깨를 곁고 걸어간다는 것은

인생이 살 만하다는 것.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고

겨울나무가 이파리를 떨구듯

나는 이제 한 구비를 돌아서 간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

앞으로 걸어갈 길만 걱정할 뿐

길을 걸으며 만날 벗들이 궁금할 뿐

이제 나는 새로운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2.자유

 

 

내가 떠나도

살구꽃, 벚꽃, 산수유꽃은

피고 지고

 

살구가 열리고

버찌가 열리고

산수유가 열리고

 

살구가 익고

버찌가 익고

산수유가 익고

 

그리고

살구나무에 살구잼이 열리고

벚나무에 버찌젤리가 열리고

산수유나무에 산수유차가 열리고

 

내가 떠나도

산수유나무는 살구나무는 벚나무는

멋지게 살아갈 것이고

 

3.찔레나무 작전

 

강쟁리에서 네 번째 찔레나무 제거 작전을 펼쳤다. 몇 년 들여다보지 않았더니 찔레나무가 마당을 점령하고 덤불을 이루었다.

 

찔레나무 가시는 강하다. 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끼고 찔레나무를 잘라내는데 계속 내 손을 가시가 찌른다. 하지만 나도 독하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새들의 천국이었을 찔레덤불을 제거하게 되어 새들에게 살짝 미안하다. 그동안 찔레덤불을 보면서 혀를 찼을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제는 면목이 서겠다.

 

4.시를 쓰기 위한 메모

 

.종로 고시원 불

.양구 전방 초소(GP) 총상 일병 후송중 사망

.삼바 분식회계-삼성바이오로직스

.찔레덤불

.쥐똥나무-새들이 싼 똥

.파라칸사-빨간 열매가 매혹적이다.

.남천:이파리가 물드는 상록수, 붉게 익은 열매가 아름다운 나무. 조경수로 심는다. 울타리로 심어도 좋다. 열매를 말려서 달여 먹으면 감기 예방에 좋다고 한다. 나무는 알면 알수록 매력이 있다.

.느릅나무: 관방제림 끄트머리에서 만나다. 숱한 열매를 달고서 당당하게 서 있다. 약으로 쓰려고 껍질을 벗기고, 뿌리를 뽑이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수난을 당하는 나무. 전대사대부고 뒤에도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광주지하철 2호선:달랑 2칸 달고 달리는 지하철, 적자가 눈에 뻔한데도 추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얀 코끼리가 아닌가?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는 사람이 1일 몇 명인가?

 

5.산수유까기

 

산수유열매에서 씨를 빼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산수유열매를 일주일 정도 꾸들꾸들하게 말린 다음에 열매를 손바닥에서 살짝 돌린 뒤에 꼭지를 살짝 딴 뒤에 반대쪽 꼭지를 누르면 신기하게도 씨가 쑥 빠져 나온다.

 

산수유열매를 2-3일 말려서 꼭지를 살짝 따고 반대쪽 꼭지를 눌러도 씨가 쉽게 빠져 나온다. 산수유껍질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마르면 산수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겠지만 말이다.

 

산수유나무 한 그루에서 수확하는 산수유 열매가 몇 개나 될까?

 

파리똥나무 열매보다 작은 산수유열매 씨를 빼려면 인내의 화신이 되어야 한다.

 

6.일곡 파초의 안부

 

일곡배수지 가는 길 자미원 식당 건너편에서 일곡동의 명물 파초가 늦가을을 즐기고 있다. 겨울에 파초의 줄기는 얼어버린다. 구근은 추운 겨울을 지내고 따뜻한 봄에 새순을 밀어올린다. 온실이나 실내라면 겨울에도 푸르른 파초를 볼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이게 일곡 파초의 운명이다.

 

예전에 전남사대부고의 얼어버린 파초를 보면서 울먹이는 시를 썼는데 어느 시인으로터 감정의 과잉이라는 호된 비판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스러지는 자연을 보면서 겸허해질 일이다.

 

7.화살나무 열매

 

고서벌 곧서농원 쥔장이

일곡동으로 화살을 쏘았는데

쏜살 같이 빨간 화살촉이 도착했다.

나는 누구를 겨냥해서

화살을 날릴까.

빨간 화살나무열매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곧서:考ㄷ書



8.왜요?

 

 

네 자리로 돌아가라

왜요?

 

네 자리가 어디냐?

요-기요.

손가락으로 교실 바닥을 가리킨다.

 

어디?

요-기.

바로 뒤에 학생이 앉아 있다.

 

1학기말 시험이 끝난 다음날

자습 안 하냐는 학생들

수업을 진행하려는 교사

 

학생들은 짜증이 나 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네 자리가 어디?

-저-기요.(맨 뒤)

 

네 자리로 돌아가라.

-왜요?

 

한숨만 쉬는 선생

 

 

 

9.나목

 

이파리를 떨군

교정의 나무들이

홀가분하다.

수능시험장 준비로 분주한

교사 안과는 다르게

나무들은 느긋하다.

어디선가 깍깍대는

까치의 울음소리도

한가롭다.

내 마음도

한없이 늘어졌다.

 

 

10.담세정

 

 

늦가을 비를 맞으며

담양 관방제림 아래

담세정이 나를 반긴다.

정자 앞 이파리를 다 떨궈버린

은행나무가 홀가분하다.

가을은 홀로움의 계절이다.

나를 직시하는 시간이다.

가을바람이 내 영혼을 맑힌다.

 

 

11.산수유

 

 

이른 봄에 노란 꽃망울 좁쌀만 하더니

따스한 봄볕 받아 노란 병아리로 깨어나

온 세상을 노랗게 물들인다.

노오란 꽃이 절정에 이를 때

파릇한 이파리 빼꼼 고개를 내민다.

벌과 나비들의 바지런한 날갯짓 뒤에

눈꼽 만한 열매가 맺혀서

여름날 폭풍우를 견디며

무더위 폭염을 양분 삼아

매미 울음소리를 응원가로 들으며

무던히도 열매를 키웠다.

산수유,

시월이 가는 게 아쉬워서

잘 익은 고추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12.종로, 재림예수

 

 

종로5가에서 용산역까지 걸었다.

 

광장시장, 세운상가를 지나

종묘에 들러서 왕들의 위엄을 보았다.

 

종묘 근처에서 짜장면을 먹고서

탑골 공원에 들렀다가

국보2호 원각사지 10층석탑을 구경했다.

 

차없는 종로거리를 걸어서

교보문고에 들렀지.

 

덕수궁 대한문에서 가을비를 맞기도 했다.

 

서울시청 부근에서 "재림예수를 믿으라"는 광신도들을 만났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살아서 가는 곳이라고 한다.

피켓 속 재림예수를 보니 한국인이다.

 

13.징계혐의자로 살아가기

 

 

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

 

징계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사람.

 

학교에서 사실확인서를 쓰고

감사관실에서 조사를 받고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여

최후진술을 하였다.

 

나와 같은 불행한 교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이 사건을 잘 정리하여 학교에 사례로 전파하기 바란다.

점수로만 남은 학교를 바꾸어야 한다.

 

나는 징계혐의자로

두 달을 살아왔다.



14.교무실 산수유

 

 

운동장가에서 따온

산수유가 교무실 창가에서

재미진 표정으로 마르고 있다.

 

교무실에 들르는 사람들은 눈동자가 커지고

산수유가 마르는 교무실은

산수유 향기로 가득하다.

 

1학년실 사람들이

항꾸네 씨를 빼서 말린

산수유차는 어떤 맛일까?

 

이 가을 교무실을

빨갛게 물들이며

항꾸네 씨를 뺀 산수유가

빠알갛게 마르고 있다.

 

15.남자 교직원 모임

 

 

오늘은 남자들이 만나는 날

학교에서 소수족으로 밀려난

남자들이 회포를 푸는 날

 

일이 바빠서 만날 짬도 못냈지

학교 앞 선술집이 그립기도 했지

퇴근길이 바빠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지

떡애기 키우느라 정신줄 놓았지

육아독박 무서운 말이 될 줄 몰랐지

 

오늘은 남자들이 만나는 날

지금껏 외로움 떨쳐내는 날

술잔을 부딪치면 도타운 정이 솟구치고

술김에 툭툭 부딪는 어깨가 정다웁고

오늘은 서로서로 에너지가 되는 날

 

 

16.고라니 새끼 한 마리

 

 

단오반텃밭에 물을 주고 있으니까 눈앞에 무엇인가가 잽싸게 지나간다. 가만히 보니까 고라니 새끼다. 족구를 하던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언덕으로 올라서자 고라니는 울타리 주변을 달리며 울타리를 넘어가려고 한다. 결국 울타리를 넘지 못 한 고라니는 급식실 쪽 울타리 쪽으로 달려간다. 조금 있으니까 다시 텃밭 쪽으로 달려 왔다가 다시 급식실 쪽으로 달려갔다. 고라니는 지금 제 정신이 아니다. 나는 고라니 새끼가 남부대쪽으로 달아나기를 바라며 교무실로 올라 왔다.

 

교무실에서 고라니 얘기를 했더니 어떤 선생님이 행정실에 구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한다. 고라니가 교문을 거쳐서 나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걱정이다. 도로 쪽으로 나간다면 자동차에 치이기 십상인데 말이다. 고라니가 무사히 숲으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17.집주인 고양이

 

모처럼만에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더니 고양이가 마루에 떡하니 앉아서 주인이 방문객을 맞듯이 나를 쳐다본다. 대문이 열리도록 파리똥나무를 톱으로 베어내고 보았더니 그 위풍당당한 고양이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몇 년 동안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살았던 고양이에게 나는 침입자가 분명하다. 나는 쥐똥나무 가지를 잘라내고 찔레나무를 베어내고 담쟁이 넝쿨을 걷어내면서 대충 길을 텄다. 마당을 점령해버린 찔레나무와 쥐똥나무를 하나씩 베어내다 보면 텃밭을 일굴 날이 오리라.

 

뭐든 그대로 두면 자연이 돼버린다. 집주인 행세를 해온 고양이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18.우측통행

 

조례에 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급하게 올라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는 계단 난간쪽으로 우측통행을 하며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있는데 올라오던 어떤 남학생이 내 발을 밟았다. 그 학생은 좌측통행을 하고 있었다. 그 학생(이름을 알지만)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똑바로 걸어라"고 말하고서는 교실로 급히 걸어갔다.

 

우측통행은 중요한 규칙이다. 복도에서 학생과 부딪쳐 부웅 날아가 버린 선생도 있었다. 그 선생은 쉬는 시간에는 복도를 걷지 않는다. 선생과 부딪쳐 골절상을 입은 학생도 있다.

 

 

 

19.얼굴 흉터

 

 

내 얼굴에는 흉터가 있다. 내가 이등병일 때 생긴 흉터다. 국가가 내 흉터를 지워줘야 한다.

 

내가 GOP 철책에서 보초를 설 때이다. 잠을 자다가 깨서 후반야 보초를 서러 가려고 교통호를 통해서 초소로 이동하는 도중에 발을 헛디뎌 넘어져서 교통호를 지탱하는 철항(U자형 쇠말뚝)에 얼굴을 찧었다. 나는 순간 정신을 잃었고 왼쪽 눈밑이 철항에 부딪쳐 찢어졌고 피가 철철 흘렀다. 나는 왼쪽 눈이 철항에 찔려서 실명을 한 줄 알았다. 다행이 눈을 떠보니 앞이 보였다. 위생병이 달려오고 소초에 비상이 걸렸다. 조선대 생물과 출신 위생병이 눈 밑 상처를 꿰맸다. 마취도 하지 않고 열한 바늘을 꿰맸다. 나는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1982년 봄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내 얼굴의 흉터는 세월이 흘러서 희미해졌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그 때의 아찔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20.핀셋과 배추벌레

 

 

아침에 단오반텃밭에서

배춧잎 위에 숨어 있는

애벌레를 발견하고서는

집에서 가져온 핀셋으로 녀석을

집어서 흙바닥에 던지고 나서

신발로 짓뭉개버렸다.

오늘 아침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졌다.

 

 

21.찌부까다

 

며칠 전 초등학교동창회에 가서 물어보았다. 찌부까다를 아느냐고. 전국에서 모인 동창생들 모두 알고 있었다. 찌부까다는 꼬집다의 담양 사투리다.

 

나는 추월산자락에 살다가 읍내로 전학을 갔다. 어떤 여학생이 꼬집길래 "너 왜 꼬집냐?"고 했더니 아이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쟤는 찌부까다도 모른다“고 하면서.

 

나는 어려서부터 추월산자락에서 표준어가 무엇인지를 생각했었다.

 

 

22.왜 나만 갖고 그래요!

 

무언가 잘못을 지적하면 학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요?" "나"만 그런게 아닌데 왜 "나"만 지적하느냐는 항변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나"만 재수가 없다는 얘기다. 많은 학생들이 교사의 눈을 속이며 규칙을 어기고 있다는 얘기다. 어쩌다가 학교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나"만 알고 "너"나 "우리"는 모르는 아이들이 주류인 학교풍경이다.

 

 

23.지금은 잊혀진

 

 

구라파-유럽

와사등-가스등

정말-덴마크

화란-네덜란드

토이기-터키

이태리-이탈리아

서반아-스페인

포두아-포르투칼

덕국,독일-도이칠란드

법국,불란서-프랑스

영국-잉글랜드

애란-아일랜드

나성-로스앤젤레스

화성돈-워싱턴

서서-스위스

서전-스웨덴

오지리-오스트리아

 

 

 

24.부여 정림사지

 

 

사비성이 함락되고 불타버린 잿더미에

정림사 오층석탑만 남았다.

치욕의 세월을 견디며 서 있는

저 오층석탑에는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했다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네.

하늘은 푸르디푸르기만 한데

망국의 서울 사비성은 오늘도

슬픔에 젖어 있는 듯

부여의자를 부르고 있다.

 

 

25.낙화암에 올라

 

 

부소산성을 오르다가 살짝 내려가

천사백년 백제의 한 서린 낙화암

망국의 궁인들 쫓기다 몸을 던진

작은 바위

난간을 붙잡고 그 바위 위에 서서

그날 여인들의 눈빛을 떠올린다.

당나라 소정방 군대가 사비성을 짓밟을 때

터져나오는 울음 제대로 울지도 못 했으리라.

단풍이 붉게 물든 부소산성 낙화암에서

백마강 푸른 물에 꽃잎처럼 뚝뚝 떨어지던

백제여인들의 절규를 듣는다.

 

 

 

 

26.줄탁동시*(10.22)

 

 

너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함께 살 수 있다면

나는 너를 기다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네.

네가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한동안 우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고

파란 가을하늘처럼 웃을 수 있겠네.

네가 오지 않아도

나는 네가 온 것처럼 생각하려네.

 

*시교육청 2층 상황실 앞 대회의실에 걸려 있는 "줄탁동시" 액자다. 징계위원회에 출석하기 전에 대기하면서 보았다.

 

 

 

27.수업자료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

첨단고 산수유 열매는

계절에 어울리는 수업자료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산수유 열매를 나눠주고

맛을 보라고 하면

매우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씨까지 우두둑 씹다가는

정신없이 내뱉으며 세면대로

달려가서 입을 헹구는 학생

 

오만상을 쓰면서

보기에는 맛있어 보이는데

겉만 보고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학생

 

신맛 쓴맛 떫은맛 단맛을 즐기며

미소 짓는 학생

 

산수유 열매는

멋진 수업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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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11월 토론작품]:출발 외 26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1.23  조회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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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금시-등촌-2018-11).hwp


1.출발

김성중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행성이 잘 돌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그대와 어깨를 곁고 걸어간다는 것은

인생이 살 만하다는 것.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고

겨울나무가 이파리를 떨구듯

나는 이제 한 구비를 돌아서 간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

앞으로 걸어갈 길만 걱정할 뿐

길을 걸으며 만날 벗들이 궁금할 뿐

이제 나는 새로운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2.자유

 

 

내가 떠나도

살구꽃, 벚꽃, 산수유꽃은

피고 지고

 

살구가 열리고

버찌가 열리고

산수유가 열리고

 

살구가 익고

버찌가 익고

산수유가 익고

 

그리고

살구나무에 살구잼이 열리고

벚나무에 버찌젤리가 열리고

산수유나무에 산수유차가 열리고

 

내가 떠나도

산수유나무는 살구나무는 벚나무는

멋지게 살아갈 것이고

 

3.찔레나무 작전

 

강쟁리에서 네 번째 찔레나무 제거 작전을 펼쳤다. 몇 년 들여다보지 않았더니 찔레나무가 마당을 점령하고 덤불을 이루었다.

 

찔레나무 가시는 강하다. 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끼고 찔레나무를 잘라내는데 계속 내 손을 가시가 찌른다. 하지만 나도 독하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새들의 천국이었을 찔레덤불을 제거하게 되어 새들에게 살짝 미안하다. 그동안 찔레덤불을 보면서 혀를 찼을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제는 면목이 서겠다.

 

4.시를 쓰기 위한 메모

 

.종로 고시원 불

.양구 전방 초소(GP) 총상 일병 후송중 사망

.삼바 분식회계-삼성바이오로직스

.찔레덤불

.쥐똥나무-새들이 싼 똥

.파라칸사-빨간 열매가 매혹적이다.

.남천:이파리가 물드는 상록수, 붉게 익은 열매가 아름다운 나무. 조경수로 심는다. 울타리로 심어도 좋다. 열매를 말려서 달여 먹으면 감기 예방에 좋다고 한다. 나무는 알면 알수록 매력이 있다.

.느릅나무: 관방제림 끄트머리에서 만나다. 숱한 열매를 달고서 당당하게 서 있다. 약으로 쓰려고 껍질을 벗기고, 뿌리를 뽑이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수난을 당하는 나무. 전대사대부고 뒤에도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광주지하철 2호선:달랑 2칸 달고 달리는 지하철, 적자가 눈에 뻔한데도 추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얀 코끼리가 아닌가?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는 사람이 1일 몇 명인가?

 

5.산수유까기

 

산수유열매에서 씨를 빼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산수유열매를 일주일 정도 꾸들꾸들하게 말린 다음에 열매를 손바닥에서 살짝 돌린 뒤에 꼭지를 살짝 딴 뒤에 반대쪽 꼭지를 누르면 신기하게도 씨가 쑥 빠져 나온다.

 

산수유열매를 2-3일 말려서 꼭지를 살짝 따고 반대쪽 꼭지를 눌러도 씨가 쉽게 빠져 나온다. 산수유껍질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마르면 산수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겠지만 말이다.

 

산수유나무 한 그루에서 수확하는 산수유 열매가 몇 개나 될까?

 

파리똥나무 열매보다 작은 산수유열매 씨를 빼려면 인내의 화신이 되어야 한다.

 

6.일곡 파초의 안부

 

일곡배수지 가는 길 자미원 식당 건너편에서 일곡동의 명물 파초가 늦가을을 즐기고 있다. 겨울에 파초의 줄기는 얼어버린다. 구근은 추운 겨울을 지내고 따뜻한 봄에 새순을 밀어올린다. 온실이나 실내라면 겨울에도 푸르른 파초를 볼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이게 일곡 파초의 운명이다.

 

예전에 전남사대부고의 얼어버린 파초를 보면서 울먹이는 시를 썼는데 어느 시인으로터 감정의 과잉이라는 호된 비판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스러지는 자연을 보면서 겸허해질 일이다.

 

7.화살나무 열매

 

고서벌 곧서농원 쥔장이

일곡동으로 화살을 쏘았는데

쏜살 같이 빨간 화살촉이 도착했다.

나는 누구를 겨냥해서

화살을 날릴까.

빨간 화살나무열매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곧서:考ㄷ書



8.왜요?

 

 

네 자리로 돌아가라

왜요?

 

네 자리가 어디냐?

요-기요.

손가락으로 교실 바닥을 가리킨다.

 

어디?

요-기.

바로 뒤에 학생이 앉아 있다.

 

1학기말 시험이 끝난 다음날

자습 안 하냐는 학생들

수업을 진행하려는 교사

 

학생들은 짜증이 나 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네 자리가 어디?

-저-기요.(맨 뒤)

 

네 자리로 돌아가라.

-왜요?

 

한숨만 쉬는 선생

 

 

 

9.나목

 

이파리를 떨군

교정의 나무들이

홀가분하다.

수능시험장 준비로 분주한

교사 안과는 다르게

나무들은 느긋하다.

어디선가 깍깍대는

까치의 울음소리도

한가롭다.

내 마음도

한없이 늘어졌다.

 

 

10.담세정

 

 

늦가을 비를 맞으며

담양 관방제림 아래

담세정이 나를 반긴다.

정자 앞 이파리를 다 떨궈버린

은행나무가 홀가분하다.

가을은 홀로움의 계절이다.

나를 직시하는 시간이다.

가을바람이 내 영혼을 맑힌다.

 

 

11.산수유

 

 

이른 봄에 노란 꽃망울 좁쌀만 하더니

따스한 봄볕 받아 노란 병아리로 깨어나

온 세상을 노랗게 물들인다.

노오란 꽃이 절정에 이를 때

파릇한 이파리 빼꼼 고개를 내민다.

벌과 나비들의 바지런한 날갯짓 뒤에

눈꼽 만한 열매가 맺혀서

여름날 폭풍우를 견디며

무더위 폭염을 양분 삼아

매미 울음소리를 응원가로 들으며

무던히도 열매를 키웠다.

산수유,

시월이 가는 게 아쉬워서

잘 익은 고추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12.종로, 재림예수

 

 

종로5가에서 용산역까지 걸었다.

 

광장시장, 세운상가를 지나

종묘에 들러서 왕들의 위엄을 보았다.

 

종묘 근처에서 짜장면을 먹고서

탑골 공원에 들렀다가

국보2호 원각사지 10층석탑을 구경했다.

 

차없는 종로거리를 걸어서

교보문고에 들렀지.

 

덕수궁 대한문에서 가을비를 맞기도 했다.

 

서울시청 부근에서 "재림예수를 믿으라"는 광신도들을 만났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살아서 가는 곳이라고 한다.

피켓 속 재림예수를 보니 한국인이다.

 

13.징계혐의자로 살아가기

 

 

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

 

징계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사람.

 

학교에서 사실확인서를 쓰고

감사관실에서 조사를 받고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여

최후진술을 하였다.

 

나와 같은 불행한 교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이 사건을 잘 정리하여 학교에 사례로 전파하기 바란다.

점수로만 남은 학교를 바꾸어야 한다.

 

나는 징계혐의자로

두 달을 살아왔다.



14.교무실 산수유

 

 

운동장가에서 따온

산수유가 교무실 창가에서

재미진 표정으로 마르고 있다.

 

교무실에 들르는 사람들은 눈동자가 커지고

산수유가 마르는 교무실은

산수유 향기로 가득하다.

 

1학년실 사람들이

항꾸네 씨를 빼서 말린

산수유차는 어떤 맛일까?

 

이 가을 교무실을

빨갛게 물들이며

항꾸네 씨를 뺀 산수유가

빠알갛게 마르고 있다.

 

15.남자 교직원 모임

 

 

오늘은 남자들이 만나는 날

학교에서 소수족으로 밀려난

남자들이 회포를 푸는 날

 

일이 바빠서 만날 짬도 못냈지

학교 앞 선술집이 그립기도 했지

퇴근길이 바빠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지

떡애기 키우느라 정신줄 놓았지

육아독박 무서운 말이 될 줄 몰랐지

 

오늘은 남자들이 만나는 날

지금껏 외로움 떨쳐내는 날

술잔을 부딪치면 도타운 정이 솟구치고

술김에 툭툭 부딪는 어깨가 정다웁고

오늘은 서로서로 에너지가 되는 날

 

 

16.고라니 새끼 한 마리

 

 

단오반텃밭에 물을 주고 있으니까 눈앞에 무엇인가가 잽싸게 지나간다. 가만히 보니까 고라니 새끼다. 족구를 하던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언덕으로 올라서자 고라니는 울타리 주변을 달리며 울타리를 넘어가려고 한다. 결국 울타리를 넘지 못 한 고라니는 급식실 쪽 울타리 쪽으로 달려간다. 조금 있으니까 다시 텃밭 쪽으로 달려 왔다가 다시 급식실 쪽으로 달려갔다. 고라니는 지금 제 정신이 아니다. 나는 고라니 새끼가 남부대쪽으로 달아나기를 바라며 교무실로 올라 왔다.

 

교무실에서 고라니 얘기를 했더니 어떤 선생님이 행정실에 구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한다. 고라니가 교문을 거쳐서 나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걱정이다. 도로 쪽으로 나간다면 자동차에 치이기 십상인데 말이다. 고라니가 무사히 숲으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17.집주인 고양이

 

모처럼만에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더니 고양이가 마루에 떡하니 앉아서 주인이 방문객을 맞듯이 나를 쳐다본다. 대문이 열리도록 파리똥나무를 톱으로 베어내고 보았더니 그 위풍당당한 고양이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몇 년 동안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살았던 고양이에게 나는 침입자가 분명하다. 나는 쥐똥나무 가지를 잘라내고 찔레나무를 베어내고 담쟁이 넝쿨을 걷어내면서 대충 길을 텄다. 마당을 점령해버린 찔레나무와 쥐똥나무를 하나씩 베어내다 보면 텃밭을 일굴 날이 오리라.

 

뭐든 그대로 두면 자연이 돼버린다. 집주인 행세를 해온 고양이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18.우측통행

 

조례에 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급하게 올라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는 계단 난간쪽으로 우측통행을 하며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있는데 올라오던 어떤 남학생이 내 발을 밟았다. 그 학생은 좌측통행을 하고 있었다. 그 학생(이름을 알지만)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똑바로 걸어라"고 말하고서는 교실로 급히 걸어갔다.

 

우측통행은 중요한 규칙이다. 복도에서 학생과 부딪쳐 부웅 날아가 버린 선생도 있었다. 그 선생은 쉬는 시간에는 복도를 걷지 않는다. 선생과 부딪쳐 골절상을 입은 학생도 있다.

 

 

 

19.얼굴 흉터

 

 

내 얼굴에는 흉터가 있다. 내가 이등병일 때 생긴 흉터다. 국가가 내 흉터를 지워줘야 한다.

 

내가 GOP 철책에서 보초를 설 때이다. 잠을 자다가 깨서 후반야 보초를 서러 가려고 교통호를 통해서 초소로 이동하는 도중에 발을 헛디뎌 넘어져서 교통호를 지탱하는 철항(U자형 쇠말뚝)에 얼굴을 찧었다. 나는 순간 정신을 잃었고 왼쪽 눈밑이 철항에 부딪쳐 찢어졌고 피가 철철 흘렀다. 나는 왼쪽 눈이 철항에 찔려서 실명을 한 줄 알았다. 다행이 눈을 떠보니 앞이 보였다. 위생병이 달려오고 소초에 비상이 걸렸다. 조선대 생물과 출신 위생병이 눈 밑 상처를 꿰맸다. 마취도 하지 않고 열한 바늘을 꿰맸다. 나는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1982년 봄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내 얼굴의 흉터는 세월이 흘러서 희미해졌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그 때의 아찔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20.핀셋과 배추벌레

 

 

아침에 단오반텃밭에서

배춧잎 위에 숨어 있는

애벌레를 발견하고서는

집에서 가져온 핀셋으로 녀석을

집어서 흙바닥에 던지고 나서

신발로 짓뭉개버렸다.

오늘 아침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졌다.

 

 

21.찌부까다

 

며칠 전 초등학교동창회에 가서 물어보았다. 찌부까다를 아느냐고. 전국에서 모인 동창생들 모두 알고 있었다. 찌부까다는 꼬집다의 담양 사투리다.

 

나는 추월산자락에 살다가 읍내로 전학을 갔다. 어떤 여학생이 꼬집길래 "너 왜 꼬집냐?"고 했더니 아이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쟤는 찌부까다도 모른다“고 하면서.

 

나는 어려서부터 추월산자락에서 표준어가 무엇인지를 생각했었다.

 

 

22.왜 나만 갖고 그래요!

 

무언가 잘못을 지적하면 학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요?" "나"만 그런게 아닌데 왜 "나"만 지적하느냐는 항변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나"만 재수가 없다는 얘기다. 많은 학생들이 교사의 눈을 속이며 규칙을 어기고 있다는 얘기다. 어쩌다가 학교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나"만 알고 "너"나 "우리"는 모르는 아이들이 주류인 학교풍경이다.

 

 

23.지금은 잊혀진

 

 

구라파-유럽

와사등-가스등

정말-덴마크

화란-네덜란드

토이기-터키

이태리-이탈리아

서반아-스페인

포두아-포르투칼

덕국,독일-도이칠란드

법국,불란서-프랑스

영국-잉글랜드

애란-아일랜드

나성-로스앤젤레스

화성돈-워싱턴

서서-스위스

서전-스웨덴

오지리-오스트리아

 

 

 

24.부여 정림사지

 

 

사비성이 함락되고 불타버린 잿더미에

정림사 오층석탑만 남았다.

치욕의 세월을 견디며 서 있는

저 오층석탑에는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했다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네.

하늘은 푸르디푸르기만 한데

망국의 서울 사비성은 오늘도

슬픔에 젖어 있는 듯

부여의자를 부르고 있다.

 

 

25.낙화암에 올라

 

 

부소산성을 오르다가 살짝 내려가

천사백년 백제의 한 서린 낙화암

망국의 궁인들 쫓기다 몸을 던진

작은 바위

난간을 붙잡고 그 바위 위에 서서

그날 여인들의 눈빛을 떠올린다.

당나라 소정방 군대가 사비성을 짓밟을 때

터져나오는 울음 제대로 울지도 못 했으리라.

단풍이 붉게 물든 부소산성 낙화암에서

백마강 푸른 물에 꽃잎처럼 뚝뚝 떨어지던

백제여인들의 절규를 듣는다.

 

 

 

 

26.줄탁동시*(10.22)

 

 

너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함께 살 수 있다면

나는 너를 기다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네.

네가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한동안 우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고

파란 가을하늘처럼 웃을 수 있겠네.

네가 오지 않아도

나는 네가 온 것처럼 생각하려네.

 

*시교육청 2층 상황실 앞 대회의실에 걸려 있는 "줄탁동시" 액자다. 징계위원회에 출석하기 전에 대기하면서 보았다.

 

 

 

27.수업자료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

첨단고 산수유 열매는

계절에 어울리는 수업자료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산수유 열매를 나눠주고

맛을 보라고 하면

매우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씨까지 우두둑 씹다가는

정신없이 내뱉으며 세면대로

달려가서 입을 헹구는 학생

 

오만상을 쓰면서

보기에는 맛있어 보이는데

겉만 보고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학생

 

신맛 쓴맛 떫은맛 단맛을 즐기며

미소 짓는 학생

 

산수유 열매는

멋진 수업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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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11월 토론작품]:출발 외 26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1.23  조회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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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금시-등촌-2018-11).hwp


1.출발

김성중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행성이 잘 돌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그대와 어깨를 곁고 걸어간다는 것은

인생이 살 만하다는 것.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고

겨울나무가 이파리를 떨구듯

나는 이제 한 구비를 돌아서 간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

앞으로 걸어갈 길만 걱정할 뿐

길을 걸으며 만날 벗들이 궁금할 뿐

이제 나는 새로운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2.자유

 

 

내가 떠나도

살구꽃, 벚꽃, 산수유꽃은

피고 지고

 

살구가 열리고

버찌가 열리고

산수유가 열리고

 

살구가 익고

버찌가 익고

산수유가 익고

 

그리고

살구나무에 살구잼이 열리고

벚나무에 버찌젤리가 열리고

산수유나무에 산수유차가 열리고

 

내가 떠나도

산수유나무는 살구나무는 벚나무는

멋지게 살아갈 것이고

 

3.찔레나무 작전

 

강쟁리에서 네 번째 찔레나무 제거 작전을 펼쳤다. 몇 년 들여다보지 않았더니 찔레나무가 마당을 점령하고 덤불을 이루었다.

 

찔레나무 가시는 강하다. 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끼고 찔레나무를 잘라내는데 계속 내 손을 가시가 찌른다. 하지만 나도 독하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새들의 천국이었을 찔레덤불을 제거하게 되어 새들에게 살짝 미안하다. 그동안 찔레덤불을 보면서 혀를 찼을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제는 면목이 서겠다.

 

4.시를 쓰기 위한 메모

 

.종로 고시원 불

.양구 전방 초소(GP) 총상 일병 후송중 사망

.삼바 분식회계-삼성바이오로직스

.찔레덤불

.쥐똥나무-새들이 싼 똥

.파라칸사-빨간 열매가 매혹적이다.

.남천:이파리가 물드는 상록수, 붉게 익은 열매가 아름다운 나무. 조경수로 심는다. 울타리로 심어도 좋다. 열매를 말려서 달여 먹으면 감기 예방에 좋다고 한다. 나무는 알면 알수록 매력이 있다.

.느릅나무: 관방제림 끄트머리에서 만나다. 숱한 열매를 달고서 당당하게 서 있다. 약으로 쓰려고 껍질을 벗기고, 뿌리를 뽑이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수난을 당하는 나무. 전대사대부고 뒤에도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광주지하철 2호선:달랑 2칸 달고 달리는 지하철, 적자가 눈에 뻔한데도 추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얀 코끼리가 아닌가?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는 사람이 1일 몇 명인가?

 

5.산수유까기

 

산수유열매에서 씨를 빼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산수유열매를 일주일 정도 꾸들꾸들하게 말린 다음에 열매를 손바닥에서 살짝 돌린 뒤에 꼭지를 살짝 딴 뒤에 반대쪽 꼭지를 누르면 신기하게도 씨가 쑥 빠져 나온다.

 

산수유열매를 2-3일 말려서 꼭지를 살짝 따고 반대쪽 꼭지를 눌러도 씨가 쉽게 빠져 나온다. 산수유껍질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마르면 산수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겠지만 말이다.

 

산수유나무 한 그루에서 수확하는 산수유 열매가 몇 개나 될까?

 

파리똥나무 열매보다 작은 산수유열매 씨를 빼려면 인내의 화신이 되어야 한다.

 

6.일곡 파초의 안부

 

일곡배수지 가는 길 자미원 식당 건너편에서 일곡동의 명물 파초가 늦가을을 즐기고 있다. 겨울에 파초의 줄기는 얼어버린다. 구근은 추운 겨울을 지내고 따뜻한 봄에 새순을 밀어올린다. 온실이나 실내라면 겨울에도 푸르른 파초를 볼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이게 일곡 파초의 운명이다.

 

예전에 전남사대부고의 얼어버린 파초를 보면서 울먹이는 시를 썼는데 어느 시인으로터 감정의 과잉이라는 호된 비판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스러지는 자연을 보면서 겸허해질 일이다.

 

7.화살나무 열매

 

고서벌 곧서농원 쥔장이

일곡동으로 화살을 쏘았는데

쏜살 같이 빨간 화살촉이 도착했다.

나는 누구를 겨냥해서

화살을 날릴까.

빨간 화살나무열매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곧서:考ㄷ書



8.왜요?

 

 

네 자리로 돌아가라

왜요?

 

네 자리가 어디냐?

요-기요.

손가락으로 교실 바닥을 가리킨다.

 

어디?

요-기.

바로 뒤에 학생이 앉아 있다.

 

1학기말 시험이 끝난 다음날

자습 안 하냐는 학생들

수업을 진행하려는 교사

 

학생들은 짜증이 나 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네 자리가 어디?

-저-기요.(맨 뒤)

 

네 자리로 돌아가라.

-왜요?

 

한숨만 쉬는 선생

 

 

 

9.나목

 

이파리를 떨군

교정의 나무들이

홀가분하다.

수능시험장 준비로 분주한

교사 안과는 다르게

나무들은 느긋하다.

어디선가 깍깍대는

까치의 울음소리도

한가롭다.

내 마음도

한없이 늘어졌다.

 

 

10.담세정

 

 

늦가을 비를 맞으며

담양 관방제림 아래

담세정이 나를 반긴다.

정자 앞 이파리를 다 떨궈버린

은행나무가 홀가분하다.

가을은 홀로움의 계절이다.

나를 직시하는 시간이다.

가을바람이 내 영혼을 맑힌다.

 

 

11.산수유

 

 

이른 봄에 노란 꽃망울 좁쌀만 하더니

따스한 봄볕 받아 노란 병아리로 깨어나

온 세상을 노랗게 물들인다.

노오란 꽃이 절정에 이를 때

파릇한 이파리 빼꼼 고개를 내민다.

벌과 나비들의 바지런한 날갯짓 뒤에

눈꼽 만한 열매가 맺혀서

여름날 폭풍우를 견디며

무더위 폭염을 양분 삼아

매미 울음소리를 응원가로 들으며

무던히도 열매를 키웠다.

산수유,

시월이 가는 게 아쉬워서

잘 익은 고추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12.종로, 재림예수

 

 

종로5가에서 용산역까지 걸었다.

 

광장시장, 세운상가를 지나

종묘에 들러서 왕들의 위엄을 보았다.

 

종묘 근처에서 짜장면을 먹고서

탑골 공원에 들렀다가

국보2호 원각사지 10층석탑을 구경했다.

 

차없는 종로거리를 걸어서

교보문고에 들렀지.

 

덕수궁 대한문에서 가을비를 맞기도 했다.

 

서울시청 부근에서 "재림예수를 믿으라"는 광신도들을 만났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살아서 가는 곳이라고 한다.

피켓 속 재림예수를 보니 한국인이다.

 

13.징계혐의자로 살아가기

 

 

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

 

징계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사람.

 

학교에서 사실확인서를 쓰고

감사관실에서 조사를 받고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여

최후진술을 하였다.

 

나와 같은 불행한 교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이 사건을 잘 정리하여 학교에 사례로 전파하기 바란다.

점수로만 남은 학교를 바꾸어야 한다.

 

나는 징계혐의자로

두 달을 살아왔다.



14.교무실 산수유

 

 

운동장가에서 따온

산수유가 교무실 창가에서

재미진 표정으로 마르고 있다.

 

교무실에 들르는 사람들은 눈동자가 커지고

산수유가 마르는 교무실은

산수유 향기로 가득하다.

 

1학년실 사람들이

항꾸네 씨를 빼서 말린

산수유차는 어떤 맛일까?

 

이 가을 교무실을

빨갛게 물들이며

항꾸네 씨를 뺀 산수유가

빠알갛게 마르고 있다.

 

15.남자 교직원 모임

 

 

오늘은 남자들이 만나는 날

학교에서 소수족으로 밀려난

남자들이 회포를 푸는 날

 

일이 바빠서 만날 짬도 못냈지

학교 앞 선술집이 그립기도 했지

퇴근길이 바빠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지

떡애기 키우느라 정신줄 놓았지

육아독박 무서운 말이 될 줄 몰랐지

 

오늘은 남자들이 만나는 날

지금껏 외로움 떨쳐내는 날

술잔을 부딪치면 도타운 정이 솟구치고

술김에 툭툭 부딪는 어깨가 정다웁고

오늘은 서로서로 에너지가 되는 날

 

 

16.고라니 새끼 한 마리

 

 

단오반텃밭에 물을 주고 있으니까 눈앞에 무엇인가가 잽싸게 지나간다. 가만히 보니까 고라니 새끼다. 족구를 하던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언덕으로 올라서자 고라니는 울타리 주변을 달리며 울타리를 넘어가려고 한다. 결국 울타리를 넘지 못 한 고라니는 급식실 쪽 울타리 쪽으로 달려간다. 조금 있으니까 다시 텃밭 쪽으로 달려 왔다가 다시 급식실 쪽으로 달려갔다. 고라니는 지금 제 정신이 아니다. 나는 고라니 새끼가 남부대쪽으로 달아나기를 바라며 교무실로 올라 왔다.

 

교무실에서 고라니 얘기를 했더니 어떤 선생님이 행정실에 구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한다. 고라니가 교문을 거쳐서 나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걱정이다. 도로 쪽으로 나간다면 자동차에 치이기 십상인데 말이다. 고라니가 무사히 숲으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17.집주인 고양이

 

모처럼만에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더니 고양이가 마루에 떡하니 앉아서 주인이 방문객을 맞듯이 나를 쳐다본다. 대문이 열리도록 파리똥나무를 톱으로 베어내고 보았더니 그 위풍당당한 고양이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몇 년 동안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살았던 고양이에게 나는 침입자가 분명하다. 나는 쥐똥나무 가지를 잘라내고 찔레나무를 베어내고 담쟁이 넝쿨을 걷어내면서 대충 길을 텄다. 마당을 점령해버린 찔레나무와 쥐똥나무를 하나씩 베어내다 보면 텃밭을 일굴 날이 오리라.

 

뭐든 그대로 두면 자연이 돼버린다. 집주인 행세를 해온 고양이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18.우측통행

 

조례에 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급하게 올라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는 계단 난간쪽으로 우측통행을 하며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있는데 올라오던 어떤 남학생이 내 발을 밟았다. 그 학생은 좌측통행을 하고 있었다. 그 학생(이름을 알지만)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똑바로 걸어라"고 말하고서는 교실로 급히 걸어갔다.

 

우측통행은 중요한 규칙이다. 복도에서 학생과 부딪쳐 부웅 날아가 버린 선생도 있었다. 그 선생은 쉬는 시간에는 복도를 걷지 않는다. 선생과 부딪쳐 골절상을 입은 학생도 있다.

 

 

 

19.얼굴 흉터

 

 

내 얼굴에는 흉터가 있다. 내가 이등병일 때 생긴 흉터다. 국가가 내 흉터를 지워줘야 한다.

 

내가 GOP 철책에서 보초를 설 때이다. 잠을 자다가 깨서 후반야 보초를 서러 가려고 교통호를 통해서 초소로 이동하는 도중에 발을 헛디뎌 넘어져서 교통호를 지탱하는 철항(U자형 쇠말뚝)에 얼굴을 찧었다. 나는 순간 정신을 잃었고 왼쪽 눈밑이 철항에 부딪쳐 찢어졌고 피가 철철 흘렀다. 나는 왼쪽 눈이 철항에 찔려서 실명을 한 줄 알았다. 다행이 눈을 떠보니 앞이 보였다. 위생병이 달려오고 소초에 비상이 걸렸다. 조선대 생물과 출신 위생병이 눈 밑 상처를 꿰맸다. 마취도 하지 않고 열한 바늘을 꿰맸다. 나는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1982년 봄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내 얼굴의 흉터는 세월이 흘러서 희미해졌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그 때의 아찔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20.핀셋과 배추벌레

 

 

아침에 단오반텃밭에서

배춧잎 위에 숨어 있는

애벌레를 발견하고서는

집에서 가져온 핀셋으로 녀석을

집어서 흙바닥에 던지고 나서

신발로 짓뭉개버렸다.

오늘 아침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졌다.

 

 

21.찌부까다

 

며칠 전 초등학교동창회에 가서 물어보았다. 찌부까다를 아느냐고. 전국에서 모인 동창생들 모두 알고 있었다. 찌부까다는 꼬집다의 담양 사투리다.

 

나는 추월산자락에 살다가 읍내로 전학을 갔다. 어떤 여학생이 꼬집길래 "너 왜 꼬집냐?"고 했더니 아이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쟤는 찌부까다도 모른다“고 하면서.

 

나는 어려서부터 추월산자락에서 표준어가 무엇인지를 생각했었다.

 

 

22.왜 나만 갖고 그래요!

 

무언가 잘못을 지적하면 학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요?" "나"만 그런게 아닌데 왜 "나"만 지적하느냐는 항변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나"만 재수가 없다는 얘기다. 많은 학생들이 교사의 눈을 속이며 규칙을 어기고 있다는 얘기다. 어쩌다가 학교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나"만 알고 "너"나 "우리"는 모르는 아이들이 주류인 학교풍경이다.

 

 

23.지금은 잊혀진

 

 

구라파-유럽

와사등-가스등

정말-덴마크

화란-네덜란드

토이기-터키

이태리-이탈리아

서반아-스페인

포두아-포르투칼

덕국,독일-도이칠란드

법국,불란서-프랑스

영국-잉글랜드

애란-아일랜드

나성-로스앤젤레스

화성돈-워싱턴

서서-스위스

서전-스웨덴

오지리-오스트리아

 

 

 

24.부여 정림사지

 

 

사비성이 함락되고 불타버린 잿더미에

정림사 오층석탑만 남았다.

치욕의 세월을 견디며 서 있는

저 오층석탑에는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했다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네.

하늘은 푸르디푸르기만 한데

망국의 서울 사비성은 오늘도

슬픔에 젖어 있는 듯

부여의자를 부르고 있다.

 

 

25.낙화암에 올라

 

 

부소산성을 오르다가 살짝 내려가

천사백년 백제의 한 서린 낙화암

망국의 궁인들 쫓기다 몸을 던진

작은 바위

난간을 붙잡고 그 바위 위에 서서

그날 여인들의 눈빛을 떠올린다.

당나라 소정방 군대가 사비성을 짓밟을 때

터져나오는 울음 제대로 울지도 못 했으리라.

단풍이 붉게 물든 부소산성 낙화암에서

백마강 푸른 물에 꽃잎처럼 뚝뚝 떨어지던

백제여인들의 절규를 듣는다.

 

 

 

 

26.줄탁동시*(10.22)

 

 

너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함께 살 수 있다면

나는 너를 기다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네.

네가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한동안 우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고

파란 가을하늘처럼 웃을 수 있겠네.

네가 오지 않아도

나는 네가 온 것처럼 생각하려네.

 

*시교육청 2층 상황실 앞 대회의실에 걸려 있는 "줄탁동시" 액자다. 징계위원회에 출석하기 전에 대기하면서 보았다.

 

 

 

27.수업자료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

첨단고 산수유 열매는

계절에 어울리는 수업자료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산수유 열매를 나눠주고

맛을 보라고 하면

매우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씨까지 우두둑 씹다가는

정신없이 내뱉으며 세면대로

달려가서 입을 헹구는 학생

 

오만상을 쓰면서

보기에는 맛있어 보이는데

겉만 보고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학생

 

신맛 쓴맛 떫은맛 단맛을 즐기며

미소 짓는 학생

 

산수유 열매는

멋진 수업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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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
추월산의 시 2019. 1. 1. 20:31
통합 게시판

[김성중 10월 토론작품] 부드러운 'ㄴ' 외 21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0.19  조회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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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시-2018-10-채선당.hwp


부드러운 'ㄴ' 외 21편

김성중

 

 

나는 난 네가 정말 좋아.

너는 넌 내가 정말 좋니?

 

'ㄴ'이 들어간 낱말을 찾는다.

 

나라 나리 놈 님 남 누리 눈 논 노리개

‘-ㄴ다’는 동사 현재형 산다 운다 논다 본다 잔다

형용사 활용형은 아름다운 고운 예쁜 사랑스러운

 

'ㄴ'이 엎어지면 'ㄱ'이 되고

혹이 하나 붙으면 'ㄷ'이 된다.

 

여자 이름에는 'ㄴ'이 많기도 많다.

민지 지민 지은 서윤 윤지 지윤 노라

 

시험 감독을 하면서 좌석표를 보니까

어느 여자반은 서른 한 명 중에서

스물 일곱 명의 이름에 'ㄴ'이 들어 있다.

 

남자 이름 중에도 'ㄴ'이 많다.

승권 안수 찬흠 성윤 선빈 선형 형선

만호 호만 민준 유준 민호 민수

수민 주민 우권 권호 호연 준태 태준

 

그래 그래 ㄴ을 넣으면

뭐든지 부드러워진다.

 

 

 

해직수첩 사진

 

 

어느 해직 선배가 보내온

해직교사 수첩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눈물이 난다.

서른 즈음의 사진

사진 속 사내의 얼굴

세상을 날카롭게 쏘아보는 눈

지금은 세파에 닳아서

두루뭉술해진 눈.




단오반텃밭 구억배추와 무

 

 

이슬을 머금은 이파리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다.

 

대지에 단단히 뿌리 박은

저 구억배추와 무의 당당함

 

벌레마저 범접하지 못 할

저 카리스마를 본다.

 

나의 다리는 흔들리는데

텃밭의 무와 배추는 강철 같다.

 


수다

 

 

너를 만나면

무슨 얘기든 하고 싶다.

 

네가 무슨 얘기를 해도

나는 재미가 있다.

 

내가 하는 얘기가 재미 없어도

너는 재미 있게 들어준다.

 

내 얘기는 늘 썰렁하지만

너는 늘 웃음보를 터뜨린다.

 

너를 만나면

늘 수다를 떨고 싶다.

 

 


첨단대교 풍경

 

 

바람이 서늘한 영산강에서

가을을 온몸으로 느낀다.

맑은 하늘과 맑은 공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진다면

내 걱정은 기우이리라.

 

강가 버드나무 옆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서

세월을 낚는 강태공을 보았다.

가을이 물든 강물을 보면서

가을 강처럼 말라야하리라

다짐을 한다.

 

친구가 운영하는 골프연습장을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내가 골프를 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복도 순회 감독

 

끊임없이 복도를 왔다 갔다 한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풀고 있다.

감독교사는 매의 눈으로 학생들을 감시한다.

불공정정행위를 없애려고 한다.

 

나는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복도를 걷고 또 걷는다.

끝종이 울릴 때까지

 

화장실에 가는 학생이 있는가?

시험지에 이상은 없는가?

OMR카드는 부족하지 않는가?

 

시험문제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러 다니는

출제교사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시험을 보는 동안 학교는 초긴장 상태다.

무사히 시험이 끝나기를 기도한다.

 

시험 종료 10분전임을 알리는 방송이 반갑다.

 

시험지를 넘기는 소리

마킹하는 소리

서술형 답을 고치는 소리

기침소리

한숨소리

 

드디어 시험 끝종이 울린다.



가을바람

 

 

어젯밤에 비가 내리고

지금 가을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창문 틈으로 들려오는

요란한 바람소리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

 

배롱나무꽃은 시들어 가고

금목서꽃도 가을비에 시들고

성급한 나뭇잎은 벌써 단풍으로 물들고

 

내 마음에도

가을바람이 불어오는가

왠지 허전한 마음

 

 

 

목련 열매와 새

 

전교조 분회모임 때 찾아간

담양 황금소나무 정원

백목련 자목련 나무에 빨간 열매가 열려 있다.

 

열매 꼬투리가 벌어진 사이로

빠알간 씨가 보인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얼른 씨를 빼물고

가지에 앉아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지난 봄날 화려하게 꽃피어

벌나비를 부르던 백목련과 자목련

 

이 가을에는 빠알간 열매로

빠알갛게 익은 씨로

새들을 유혹한다.

 

 

동백씨

 

빠알간 동백꽃이 지고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

동백 열매 붉게 익어서 마음이 설레는데

동백 열매의 꼬투리가 세 쪽으로

벌어지면 둥그렇게 모여 있던

까만 동백씨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동백 열매 하나에

까만 씨가 다섯 개에서 여덟 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있다.

 

 

 



 

 

까만 밤이다.

등불을 훤하게 켜고 책을 읽는다.

 

텔레비전을 꺼버린 밤은 고요하다.

이 고요한 밤에 명상에 잠기리라.

 

대낮의 소음은 맹렬하다.

온갖 소리들이 귓청을 때린다.

그러나 밤이 되면 소음도 잠이 든다.

 

밤은 차분해지는 시간이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이다.

 

 

어떤 시화전

 

 

네모 반듯한 판넬이 아니고

이상한 모양의 판넬에 시를 적었다.

 

어떤 학생들은

엄마 몸빼에 시를 써서

세워 놓은 나무 가지에 걸었다.

 

설립자 묘소 앞에 전시한 작품들

국어과 출신 교감선생님은 오시지 않고

 

나는 문학써클 지도교사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았던

1988년 가을

시화전이 열리던

금호고등학교 교정

 

 

축시를 쓰던 시절

 

축하하는 마음이 넘쳐나거나

간절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나는 축시를 여러 편 썼지.

 

고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동창회 프로그램에

처음 축시를 썼지.

 

전교조 죽회분회 창립식 때

번창하라는 축시를 읽었지.

 

서울 미아리에서 선배 결혼식 때

다방에서 축시를 다듬었지.

서울 강남에서 친구 결혼식에서 축시를 읽었지.

 

KBC 방송국홀에서

후배인 미술교사 결혼식 축시를

읽으며 하객들을 웃겼지.

 

광주 어느 예식장에서

국어과 후배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의미심장한 축시를 읽었지.

 

2003년인가에는 신양파크호텔 홀에서

신부인 선배 국어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나마스테를 넣은

축시를 낭독해서

식장 분위기를 띄웠지.

 

의정부에서

선배 부친 팔순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가족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지.

 

광주일고 개교 70주년을 기념하여

'일고여,일고인이여'라는 장시를

학생들에게 낭독하게 하여

기념식장을 뜨겁게 달궜지.

 

2012년인가

전교조 성덕고등학교 분회 창립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행사를

빚나게 했었지.

 

나는 축시를 쓰고 낭독할 때마다

축하하는 마음과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뿍 담았지.

 

언제 축시를 쓸지

알 수 없는 요즘

축시를 쓰던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은행

 

출근길에 향토박물관 정류소로

시내버스를 타러 가는데

길바닥에 은행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은행을

사람들은 피한다.

나는 수억 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를

냄새가 난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그 놀라운 생명력 앞에서

겸허하게 고개를 숙였다.

 

 

한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내가 자랑스러울 수 있게 해주는

그리하여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언제라도 너를 불러내어 멋진 글을 쓸 수 있어서

나는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만약 내가 너를 몰랐다면

내 삶의 대부분은 어두운 터널

너와 더불어 나의 인생은 늘 즐거웠으니

이제 나는 너에게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하겠다.

 

내가 너를 만난 어린 꼬마였던 때부터

날마다 눈을 부릅뜨고 침발라 책장을 넘기는 지금까지

너에 대한 자부심이 무장 커졌고

너를 더 잘 쓰려고 노력했는데

날마다 아파하고 망가지는 너를 보면서

나는 더욱 더 너를 사랑할 것을 다짐한다.

 

 

생명력

 

가지가 사정없이 잘려나간

첨단우물살구나무가 잘려나간

가지 바로 앞에서 새로운

가지를 내밀었다.

잘려나간 가지를 그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살구나무는 이 가을에

새로운 가지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여리지만 올 겨울을

넘기고 새봄이 오면

가지에 화사한 꽃등을 달고

우리 앞에 환하게 웃으리라.

 

 

 

 

돌멩이 두 개

 

 

운명이었을까?

그 돌멩이는 왜 내 손을 떠났을까?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나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페퍼포그차를 향해

돌멩이 두 개를 힘차게 던졌다.

 

1981년 9월 29일

중앙도서관 앞에서 시작된 시위는

엄청나게 격렬했다.

담을 넘어서 시내로 진출하기도 했다.

반제 반파쇼 민중 민주 결의대회

내가 던진 돌멩이는 분노하는 돌멩이였다.

나는 붙잡혀서 닭장차에 실려

서부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돌멩이 두 개는 운명이었을까?



뿌리

 

 

고추는 뿌리가 얕아서

비바람이 치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래서 반드시 지줏대를 세우고 고

춧대를 묶어주어야 한다.

 

가지는 뿌리가 깊어서

1미터까지 땅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짓대를 뽑으려면 몹시 힘이 든다.

 

식물도 사람도 뿌리가 다 다르다.

 


가지 뿌리

 

어제 베어낸 가지의

밑둥을 잡고

흔들어서

가지 뿌리를 뽑았다.

뿌리가 단단히

흙을 쥐고 있어서

뽑는데 애를 먹었다.

대지에 굳게

뿌리를 박은 가지는

숱하게 꽃을 피우고

가지를 매달았었다.



영산포장

 

 

영산포장에 갔다.

생조기가 싸다.

3만원에 30마리다.

다른 해산물도 싸다.

시장 앞 금강식당에서

조기매운탕에 점심을 먹었다.

2인분에 12,000원이다.

조기가 10마리나 들어있다.

점심상이 푸짐하다.

영산포 인심이 푸짐하다.



고추

 

 

오늘 저녁에 상추쌈밥을 먹었다. 학교 텃밭에서 따온 상추에 밥과 고추와 가지볶음과 김치를 싸서 먹었다. 아, 매워! 고추가 너무 매워서 눈물을 한참이나 흘렸다. 눈물을 흘리고 났더니 카타르시다. 정화다.

 

가끔씩 눈물을 흘려야 하겠다. 요새 울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 울고 싶을 때는 체면 차리지 말고 울어버리자.

 

오늘 매운 고추가 내 생의 감각을 살려놓았다.



노각

 

 

일곡동 한새봉 농업생태공원 단오텃밭에서 가지 두 주를 베어내고 오이 넝쿨을 옮기면서 노각을 만났다. 폭염이 대지를 달굴 때 오이 모종을 옮겨 심으면서 제대로 살 수 있을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가지 잎에 가려진 덕분에 이 오이는 노각이 되었던 것이다.

 

주목 받지 못 하면서도 착실히 내실을 다지는 존재들이 많다.




동백씨

 

 

교정을 산책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동백씨를 발견했다.

동백꽃이 피었다 지면서 열매가

붉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열매가 익고 벌어져서

씨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동백열매는 지난 폭염 속에서도

부지런히 익었던 모양이다.

오, 자연의 위대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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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10월 토론작품] 부드러운 'ㄴ' 외 21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0.19  조회수:1

댓글0


 금시-2018-10-채선당.hwp


부드러운 'ㄴ' 외 21편

김성중

 

 

나는 난 네가 정말 좋아.

너는 넌 내가 정말 좋니?

 

'ㄴ'이 들어간 낱말을 찾는다.

 

나라 나리 놈 님 남 누리 눈 논 노리개

‘-ㄴ다’는 동사 현재형 산다 운다 논다 본다 잔다

형용사 활용형은 아름다운 고운 예쁜 사랑스러운

 

'ㄴ'이 엎어지면 'ㄱ'이 되고

혹이 하나 붙으면 'ㄷ'이 된다.

 

여자 이름에는 'ㄴ'이 많기도 많다.

민지 지민 지은 서윤 윤지 지윤 노라

 

시험 감독을 하면서 좌석표를 보니까

어느 여자반은 서른 한 명 중에서

스물 일곱 명의 이름에 'ㄴ'이 들어 있다.

 

남자 이름 중에도 'ㄴ'이 많다.

승권 안수 찬흠 성윤 선빈 선형 형선

만호 호만 민준 유준 민호 민수

수민 주민 우권 권호 호연 준태 태준

 

그래 그래 ㄴ을 넣으면

뭐든지 부드러워진다.

 

 

 

해직수첩 사진

 

 

어느 해직 선배가 보내온

해직교사 수첩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눈물이 난다.

서른 즈음의 사진

사진 속 사내의 얼굴

세상을 날카롭게 쏘아보는 눈

지금은 세파에 닳아서

두루뭉술해진 눈.




단오반텃밭 구억배추와 무

 

 

이슬을 머금은 이파리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다.

 

대지에 단단히 뿌리 박은

저 구억배추와 무의 당당함

 

벌레마저 범접하지 못 할

저 카리스마를 본다.

 

나의 다리는 흔들리는데

텃밭의 무와 배추는 강철 같다.

 


수다

 

 

너를 만나면

무슨 얘기든 하고 싶다.

 

네가 무슨 얘기를 해도

나는 재미가 있다.

 

내가 하는 얘기가 재미 없어도

너는 재미 있게 들어준다.

 

내 얘기는 늘 썰렁하지만

너는 늘 웃음보를 터뜨린다.

 

너를 만나면

늘 수다를 떨고 싶다.

 

 


첨단대교 풍경

 

 

바람이 서늘한 영산강에서

가을을 온몸으로 느낀다.

맑은 하늘과 맑은 공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진다면

내 걱정은 기우이리라.

 

강가 버드나무 옆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서

세월을 낚는 강태공을 보았다.

가을이 물든 강물을 보면서

가을 강처럼 말라야하리라

다짐을 한다.

 

친구가 운영하는 골프연습장을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내가 골프를 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복도 순회 감독

 

끊임없이 복도를 왔다 갔다 한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풀고 있다.

감독교사는 매의 눈으로 학생들을 감시한다.

불공정정행위를 없애려고 한다.

 

나는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복도를 걷고 또 걷는다.

끝종이 울릴 때까지

 

화장실에 가는 학생이 있는가?

시험지에 이상은 없는가?

OMR카드는 부족하지 않는가?

 

시험문제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러 다니는

출제교사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시험을 보는 동안 학교는 초긴장 상태다.

무사히 시험이 끝나기를 기도한다.

 

시험 종료 10분전임을 알리는 방송이 반갑다.

 

시험지를 넘기는 소리

마킹하는 소리

서술형 답을 고치는 소리

기침소리

한숨소리

 

드디어 시험 끝종이 울린다.



가을바람

 

 

어젯밤에 비가 내리고

지금 가을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창문 틈으로 들려오는

요란한 바람소리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

 

배롱나무꽃은 시들어 가고

금목서꽃도 가을비에 시들고

성급한 나뭇잎은 벌써 단풍으로 물들고

 

내 마음에도

가을바람이 불어오는가

왠지 허전한 마음

 

 

 

목련 열매와 새

 

전교조 분회모임 때 찾아간

담양 황금소나무 정원

백목련 자목련 나무에 빨간 열매가 열려 있다.

 

열매 꼬투리가 벌어진 사이로

빠알간 씨가 보인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얼른 씨를 빼물고

가지에 앉아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지난 봄날 화려하게 꽃피어

벌나비를 부르던 백목련과 자목련

 

이 가을에는 빠알간 열매로

빠알갛게 익은 씨로

새들을 유혹한다.

 

 

동백씨

 

빠알간 동백꽃이 지고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

동백 열매 붉게 익어서 마음이 설레는데

동백 열매의 꼬투리가 세 쪽으로

벌어지면 둥그렇게 모여 있던

까만 동백씨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동백 열매 하나에

까만 씨가 다섯 개에서 여덟 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있다.

 

 

 



 

 

까만 밤이다.

등불을 훤하게 켜고 책을 읽는다.

 

텔레비전을 꺼버린 밤은 고요하다.

이 고요한 밤에 명상에 잠기리라.

 

대낮의 소음은 맹렬하다.

온갖 소리들이 귓청을 때린다.

그러나 밤이 되면 소음도 잠이 든다.

 

밤은 차분해지는 시간이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이다.

 

 

어떤 시화전

 

 

네모 반듯한 판넬이 아니고

이상한 모양의 판넬에 시를 적었다.

 

어떤 학생들은

엄마 몸빼에 시를 써서

세워 놓은 나무 가지에 걸었다.

 

설립자 묘소 앞에 전시한 작품들

국어과 출신 교감선생님은 오시지 않고

 

나는 문학써클 지도교사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았던

1988년 가을

시화전이 열리던

금호고등학교 교정

 

 

축시를 쓰던 시절

 

축하하는 마음이 넘쳐나거나

간절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나는 축시를 여러 편 썼지.

 

고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동창회 프로그램에

처음 축시를 썼지.

 

전교조 죽회분회 창립식 때

번창하라는 축시를 읽었지.

 

서울 미아리에서 선배 결혼식 때

다방에서 축시를 다듬었지.

서울 강남에서 친구 결혼식에서 축시를 읽었지.

 

KBC 방송국홀에서

후배인 미술교사 결혼식 축시를

읽으며 하객들을 웃겼지.

 

광주 어느 예식장에서

국어과 후배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의미심장한 축시를 읽었지.

 

2003년인가에는 신양파크호텔 홀에서

신부인 선배 국어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나마스테를 넣은

축시를 낭독해서

식장 분위기를 띄웠지.

 

의정부에서

선배 부친 팔순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가족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지.

 

광주일고 개교 70주년을 기념하여

'일고여,일고인이여'라는 장시를

학생들에게 낭독하게 하여

기념식장을 뜨겁게 달궜지.

 

2012년인가

전교조 성덕고등학교 분회 창립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행사를

빚나게 했었지.

 

나는 축시를 쓰고 낭독할 때마다

축하하는 마음과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뿍 담았지.

 

언제 축시를 쓸지

알 수 없는 요즘

축시를 쓰던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은행

 

출근길에 향토박물관 정류소로

시내버스를 타러 가는데

길바닥에 은행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은행을

사람들은 피한다.

나는 수억 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를

냄새가 난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그 놀라운 생명력 앞에서

겸허하게 고개를 숙였다.

 

 

한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내가 자랑스러울 수 있게 해주는

그리하여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언제라도 너를 불러내어 멋진 글을 쓸 수 있어서

나는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만약 내가 너를 몰랐다면

내 삶의 대부분은 어두운 터널

너와 더불어 나의 인생은 늘 즐거웠으니

이제 나는 너에게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하겠다.

 

내가 너를 만난 어린 꼬마였던 때부터

날마다 눈을 부릅뜨고 침발라 책장을 넘기는 지금까지

너에 대한 자부심이 무장 커졌고

너를 더 잘 쓰려고 노력했는데

날마다 아파하고 망가지는 너를 보면서

나는 더욱 더 너를 사랑할 것을 다짐한다.

 

 

생명력

 

가지가 사정없이 잘려나간

첨단우물살구나무가 잘려나간

가지 바로 앞에서 새로운

가지를 내밀었다.

잘려나간 가지를 그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살구나무는 이 가을에

새로운 가지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여리지만 올 겨울을

넘기고 새봄이 오면

가지에 화사한 꽃등을 달고

우리 앞에 환하게 웃으리라.

 

 

 

 

돌멩이 두 개

 

 

운명이었을까?

그 돌멩이는 왜 내 손을 떠났을까?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나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페퍼포그차를 향해

돌멩이 두 개를 힘차게 던졌다.

 

1981년 9월 29일

중앙도서관 앞에서 시작된 시위는

엄청나게 격렬했다.

담을 넘어서 시내로 진출하기도 했다.

반제 반파쇼 민중 민주 결의대회

내가 던진 돌멩이는 분노하는 돌멩이였다.

나는 붙잡혀서 닭장차에 실려

서부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돌멩이 두 개는 운명이었을까?



뿌리

 

 

고추는 뿌리가 얕아서

비바람이 치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래서 반드시 지줏대를 세우고 고

춧대를 묶어주어야 한다.

 

가지는 뿌리가 깊어서

1미터까지 땅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짓대를 뽑으려면 몹시 힘이 든다.

 

식물도 사람도 뿌리가 다 다르다.

 


가지 뿌리

 

어제 베어낸 가지의

밑둥을 잡고

흔들어서

가지 뿌리를 뽑았다.

뿌리가 단단히

흙을 쥐고 있어서

뽑는데 애를 먹었다.

대지에 굳게

뿌리를 박은 가지는

숱하게 꽃을 피우고

가지를 매달았었다.



영산포장

 

 

영산포장에 갔다.

생조기가 싸다.

3만원에 30마리다.

다른 해산물도 싸다.

시장 앞 금강식당에서

조기매운탕에 점심을 먹었다.

2인분에 12,000원이다.

조기가 10마리나 들어있다.

점심상이 푸짐하다.

영산포 인심이 푸짐하다.



고추

 

 

오늘 저녁에 상추쌈밥을 먹었다. 학교 텃밭에서 따온 상추에 밥과 고추와 가지볶음과 김치를 싸서 먹었다. 아, 매워! 고추가 너무 매워서 눈물을 한참이나 흘렸다. 눈물을 흘리고 났더니 카타르시다. 정화다.

 

가끔씩 눈물을 흘려야 하겠다. 요새 울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 울고 싶을 때는 체면 차리지 말고 울어버리자.

 

오늘 매운 고추가 내 생의 감각을 살려놓았다.



노각

 

 

일곡동 한새봉 농업생태공원 단오텃밭에서 가지 두 주를 베어내고 오이 넝쿨을 옮기면서 노각을 만났다. 폭염이 대지를 달굴 때 오이 모종을 옮겨 심으면서 제대로 살 수 있을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가지 잎에 가려진 덕분에 이 오이는 노각이 되었던 것이다.

 

주목 받지 못 하면서도 착실히 내실을 다지는 존재들이 많다.




동백씨

 

 

교정을 산책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동백씨를 발견했다.

동백꽃이 피었다 지면서 열매가

붉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열매가 익고 벌어져서

씨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동백열매는 지난 폭염 속에서도

부지런히 익었던 모양이다.

오, 자연의 위대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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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0.19  조회수:1

댓글0


 금시-2018-10-채선당.hwp


부드러운 'ㄴ' 외 21편

김성중

 

 

나는 난 네가 정말 좋아.

너는 넌 내가 정말 좋니?

 

'ㄴ'이 들어간 낱말을 찾는다.

 

나라 나리 놈 님 남 누리 눈 논 노리개

‘-ㄴ다’는 동사 현재형 산다 운다 논다 본다 잔다

형용사 활용형은 아름다운 고운 예쁜 사랑스러운

 

'ㄴ'이 엎어지면 'ㄱ'이 되고

혹이 하나 붙으면 'ㄷ'이 된다.

 

여자 이름에는 'ㄴ'이 많기도 많다.

민지 지민 지은 서윤 윤지 지윤 노라

 

시험 감독을 하면서 좌석표를 보니까

어느 여자반은 서른 한 명 중에서

스물 일곱 명의 이름에 'ㄴ'이 들어 있다.

 

남자 이름 중에도 'ㄴ'이 많다.

승권 안수 찬흠 성윤 선빈 선형 형선

만호 호만 민준 유준 민호 민수

수민 주민 우권 권호 호연 준태 태준

 

그래 그래 ㄴ을 넣으면

뭐든지 부드러워진다.

 

 

 

해직수첩 사진

 

 

어느 해직 선배가 보내온

해직교사 수첩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눈물이 난다.

서른 즈음의 사진

사진 속 사내의 얼굴

세상을 날카롭게 쏘아보는 눈

지금은 세파에 닳아서

두루뭉술해진 눈.




단오반텃밭 구억배추와 무

 

 

이슬을 머금은 이파리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다.

 

대지에 단단히 뿌리 박은

저 구억배추와 무의 당당함

 

벌레마저 범접하지 못 할

저 카리스마를 본다.

 

나의 다리는 흔들리는데

텃밭의 무와 배추는 강철 같다.

 


수다

 

 

너를 만나면

무슨 얘기든 하고 싶다.

 

네가 무슨 얘기를 해도

나는 재미가 있다.

 

내가 하는 얘기가 재미 없어도

너는 재미 있게 들어준다.

 

내 얘기는 늘 썰렁하지만

너는 늘 웃음보를 터뜨린다.

 

너를 만나면

늘 수다를 떨고 싶다.

 

 


첨단대교 풍경

 

 

바람이 서늘한 영산강에서

가을을 온몸으로 느낀다.

맑은 하늘과 맑은 공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진다면

내 걱정은 기우이리라.

 

강가 버드나무 옆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서

세월을 낚는 강태공을 보았다.

가을이 물든 강물을 보면서

가을 강처럼 말라야하리라

다짐을 한다.

 

친구가 운영하는 골프연습장을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내가 골프를 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복도 순회 감독

 

끊임없이 복도를 왔다 갔다 한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풀고 있다.

감독교사는 매의 눈으로 학생들을 감시한다.

불공정정행위를 없애려고 한다.

 

나는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복도를 걷고 또 걷는다.

끝종이 울릴 때까지

 

화장실에 가는 학생이 있는가?

시험지에 이상은 없는가?

OMR카드는 부족하지 않는가?

 

시험문제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러 다니는

출제교사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시험을 보는 동안 학교는 초긴장 상태다.

무사히 시험이 끝나기를 기도한다.

 

시험 종료 10분전임을 알리는 방송이 반갑다.

 

시험지를 넘기는 소리

마킹하는 소리

서술형 답을 고치는 소리

기침소리

한숨소리

 

드디어 시험 끝종이 울린다.



가을바람

 

 

어젯밤에 비가 내리고

지금 가을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창문 틈으로 들려오는

요란한 바람소리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

 

배롱나무꽃은 시들어 가고

금목서꽃도 가을비에 시들고

성급한 나뭇잎은 벌써 단풍으로 물들고

 

내 마음에도

가을바람이 불어오는가

왠지 허전한 마음

 

 

 

목련 열매와 새

 

전교조 분회모임 때 찾아간

담양 황금소나무 정원

백목련 자목련 나무에 빨간 열매가 열려 있다.

 

열매 꼬투리가 벌어진 사이로

빠알간 씨가 보인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얼른 씨를 빼물고

가지에 앉아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지난 봄날 화려하게 꽃피어

벌나비를 부르던 백목련과 자목련

 

이 가을에는 빠알간 열매로

빠알갛게 익은 씨로

새들을 유혹한다.

 

 

동백씨

 

빠알간 동백꽃이 지고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

동백 열매 붉게 익어서 마음이 설레는데

동백 열매의 꼬투리가 세 쪽으로

벌어지면 둥그렇게 모여 있던

까만 동백씨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동백 열매 하나에

까만 씨가 다섯 개에서 여덟 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있다.

 

 

 



 

 

까만 밤이다.

등불을 훤하게 켜고 책을 읽는다.

 

텔레비전을 꺼버린 밤은 고요하다.

이 고요한 밤에 명상에 잠기리라.

 

대낮의 소음은 맹렬하다.

온갖 소리들이 귓청을 때린다.

그러나 밤이 되면 소음도 잠이 든다.

 

밤은 차분해지는 시간이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이다.

 

 

어떤 시화전

 

 

네모 반듯한 판넬이 아니고

이상한 모양의 판넬에 시를 적었다.

 

어떤 학생들은

엄마 몸빼에 시를 써서

세워 놓은 나무 가지에 걸었다.

 

설립자 묘소 앞에 전시한 작품들

국어과 출신 교감선생님은 오시지 않고

 

나는 문학써클 지도교사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았던

1988년 가을

시화전이 열리던

금호고등학교 교정

 

 

축시를 쓰던 시절

 

축하하는 마음이 넘쳐나거나

간절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나는 축시를 여러 편 썼지.

 

고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동창회 프로그램에

처음 축시를 썼지.

 

전교조 죽회분회 창립식 때

번창하라는 축시를 읽었지.

 

서울 미아리에서 선배 결혼식 때

다방에서 축시를 다듬었지.

서울 강남에서 친구 결혼식에서 축시를 읽었지.

 

KBC 방송국홀에서

후배인 미술교사 결혼식 축시를

읽으며 하객들을 웃겼지.

 

광주 어느 예식장에서

국어과 후배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의미심장한 축시를 읽었지.

 

2003년인가에는 신양파크호텔 홀에서

신부인 선배 국어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나마스테를 넣은

축시를 낭독해서

식장 분위기를 띄웠지.

 

의정부에서

선배 부친 팔순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가족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지.

 

광주일고 개교 70주년을 기념하여

'일고여,일고인이여'라는 장시를

학생들에게 낭독하게 하여

기념식장을 뜨겁게 달궜지.

 

2012년인가

전교조 성덕고등학교 분회 창립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행사를

빚나게 했었지.

 

나는 축시를 쓰고 낭독할 때마다

축하하는 마음과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뿍 담았지.

 

언제 축시를 쓸지

알 수 없는 요즘

축시를 쓰던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은행

 

출근길에 향토박물관 정류소로

시내버스를 타러 가는데

길바닥에 은행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은행을

사람들은 피한다.

나는 수억 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를

냄새가 난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그 놀라운 생명력 앞에서

겸허하게 고개를 숙였다.

 

 

한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내가 자랑스러울 수 있게 해주는

그리하여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언제라도 너를 불러내어 멋진 글을 쓸 수 있어서

나는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만약 내가 너를 몰랐다면

내 삶의 대부분은 어두운 터널

너와 더불어 나의 인생은 늘 즐거웠으니

이제 나는 너에게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하겠다.

 

내가 너를 만난 어린 꼬마였던 때부터

날마다 눈을 부릅뜨고 침발라 책장을 넘기는 지금까지

너에 대한 자부심이 무장 커졌고

너를 더 잘 쓰려고 노력했는데

날마다 아파하고 망가지는 너를 보면서

나는 더욱 더 너를 사랑할 것을 다짐한다.

 

 

생명력

 

가지가 사정없이 잘려나간

첨단우물살구나무가 잘려나간

가지 바로 앞에서 새로운

가지를 내밀었다.

잘려나간 가지를 그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살구나무는 이 가을에

새로운 가지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여리지만 올 겨울을

넘기고 새봄이 오면

가지에 화사한 꽃등을 달고

우리 앞에 환하게 웃으리라.

 

 

 

 

돌멩이 두 개

 

 

운명이었을까?

그 돌멩이는 왜 내 손을 떠났을까?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나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페퍼포그차를 향해

돌멩이 두 개를 힘차게 던졌다.

 

1981년 9월 29일

중앙도서관 앞에서 시작된 시위는

엄청나게 격렬했다.

담을 넘어서 시내로 진출하기도 했다.

반제 반파쇼 민중 민주 결의대회

내가 던진 돌멩이는 분노하는 돌멩이였다.

나는 붙잡혀서 닭장차에 실려

서부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돌멩이 두 개는 운명이었을까?



뿌리

 

 

고추는 뿌리가 얕아서

비바람이 치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래서 반드시 지줏대를 세우고 고

춧대를 묶어주어야 한다.

 

가지는 뿌리가 깊어서

1미터까지 땅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짓대를 뽑으려면 몹시 힘이 든다.

 

식물도 사람도 뿌리가 다 다르다.

 


가지 뿌리

 

어제 베어낸 가지의

밑둥을 잡고

흔들어서

가지 뿌리를 뽑았다.

뿌리가 단단히

흙을 쥐고 있어서

뽑는데 애를 먹었다.

대지에 굳게

뿌리를 박은 가지는

숱하게 꽃을 피우고

가지를 매달았었다.



영산포장

 

 

영산포장에 갔다.

생조기가 싸다.

3만원에 30마리다.

다른 해산물도 싸다.

시장 앞 금강식당에서

조기매운탕에 점심을 먹었다.

2인분에 12,000원이다.

조기가 10마리나 들어있다.

점심상이 푸짐하다.

영산포 인심이 푸짐하다.



고추

 

 

오늘 저녁에 상추쌈밥을 먹었다. 학교 텃밭에서 따온 상추에 밥과 고추와 가지볶음과 김치를 싸서 먹었다. 아, 매워! 고추가 너무 매워서 눈물을 한참이나 흘렸다. 눈물을 흘리고 났더니 카타르시다. 정화다.

 

가끔씩 눈물을 흘려야 하겠다. 요새 울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 울고 싶을 때는 체면 차리지 말고 울어버리자.

 

오늘 매운 고추가 내 생의 감각을 살려놓았다.



노각

 

 

일곡동 한새봉 농업생태공원 단오텃밭에서 가지 두 주를 베어내고 오이 넝쿨을 옮기면서 노각을 만났다. 폭염이 대지를 달굴 때 오이 모종을 옮겨 심으면서 제대로 살 수 있을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가지 잎에 가려진 덕분에 이 오이는 노각이 되었던 것이다.

 

주목 받지 못 하면서도 착실히 내실을 다지는 존재들이 많다.




동백씨

 

 

교정을 산책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동백씨를 발견했다.

동백꽃이 피었다 지면서 열매가

붉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열매가 익고 벌어져서

씨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동백열매는 지난 폭염 속에서도

부지런히 익었던 모양이다.

오, 자연의 위대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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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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