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산의 시 2018. 10. 6. 06:51
통합 게시판

[김성중 9월 토론작품] 가난한 장남 외 21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09.28  조회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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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2018-9-금시-현대옥).hwp


가난한 장남 외 21편

김성중

 

 

아버지께 용돈을 두둑히 드리지 못 하는

가난한 장남이 할 일은 별로 없다.

일곡도서관에 가서 책이나 읽을 일이다.

무등산에 가끔 오를 일이다.

 

결혼식장에 가서 축의금을

낼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장례식장에 가서 망자의 편안한

저승길을 기원할 일이다.

 

사람들과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할 일이다.

막걸리 값을 가끔씩 낼 일이다.

조국의 평화통일을 날마다 빌 일이다.

 

가난한 장남이 할 일은

한새봉 농업생태공원에서 놀다가

영산강변 폐가를 찾아가서

텃밭을 일굴 일이다.

 

 

중국단풍나무 아래

 

 

한가위라 풍성한 날

중국단풍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생각에 잠긴다.

 

인생이란?

부모란?

효도란?

사랑이란?

 

중국단풍나무 아래

나긋한 벤치에서

나의 가을이 익어간다.

 


광주송정역

 

 

추석을 쇠고

떠나는 사람들

 

웃는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만나나

우리 이제 함께 가는 거죠

만나고 헤어지고

 

새벽 여섯 시 이십 분

딸아이를 실은 SRT열차는

철로를 미끄러지며

저 멀리 달아나고

 

새벽잠을 깬 내 눈은

금방이라도 감길 듯.

 

 

 

 

한가윗달

 

 

소원을 빌어요.

 

한반도의 평화

세계의 평화

전쟁 없는 세상

빈부 없는 세상

 

질투는 저리 가고

칭찬만 남고

실업자는 없고

노동자가 넘치는 거리

 

금강산에도 가고

묘향산에도 가고

개마고원에도 가고

백두산 천지에도 가고

 

만월대도 가고

을밀대도 가고

박연폭포도 가고

가고

가고

또 가고

 

비무장지대는 저리 가고

우린 평화지대로 가고

 



 

 

나는 나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고민하며 세상을 살아가는가?

 

나는 뼈와 살과 피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영혼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내 사유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가?

 

조상을 그리워하며 수확의 기쁨을 함께 하는 한가위 명절, 조상의 피가 내 핏줄을 타고 흐른다. 기억할 수도 없는 조상들의 은덕을 생각한다.

 

나는 다시 내 존재의 이유를 생각한다. 뵌 적이 없는 6.25때 돌아가신 두 분의 큰아버지를 생각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뵌 적이 없는 증조할머니와 증조할아버지를 생각한다.

 

아직 건강하게 생존해 계시는 부모님을 생각한다. 내일이 추석인데 나는 내 존재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한다.



타이어 바람 주의

 

 

내가 세피아를 몰던 시절, 동네 카센터에서 타이어를 네 짝 모두 교체했다. 다음날 아버지를 모시고 춘천으로 사돈 조문을 가는 길, 운전을 하는데 자꾸 차가 한 쪽으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정읍휴게소 근처에서 누군가 손짓을 해서 휴게소에 들러서 확인해보니까 운전석 쪽 바퀴의 바람이 많이도 빠져 있었다. 타이어를 교체하면서 "타이어 바람구멍"을 닫지 않은 것이었다.

 

문득 떠오르는 잊지 못할 일이다.

 

 

다시 무씨 뿌리기

 

 

단오반 텃밭에 조심스럽게 뿌린

무씨가 싹이 트지 않았다.

 

말바우장에서 사온 무씨를

단오반 텃밭에 다시 뿌렸다.

 

추석 쇠고 가서 보니까

예쁜 싹이 솟아나 있었다.

 

무가 잘 자라게

잘 속아 주고

벌레도 잡아줘야겠다.

 

 

 

명옥헌 원림

 

창평 가는 길 후산리

명옥헌을 찾아갔더니

배롱나무꽃이

시원치 않다.

 

올 여름 폭염에

배롱나무도 지쳤나보다.

 

후산리 입구 왕버드나무 뚝방

수련이 피어있는 연못을 지나서

달팽이 걸음으로 걸어가서

 

명옥헌 마루에 앉아

배롱나무 연못을 바라보며

잠시 세상을 잊어버리는 것도

좋을 것 같은 가을.

 


무씨

 

 

텃밭에 무씨를 뿌리고

싹이 나오기를

마음 졸이며 기다렸다.

 

배추 모종은

배추 모양을 갖춰가는데

무싹은 영영

싹아지가 보이지 않는다.

 

거름이 과했나?

그래서 녹았을까?

씨앗이 불량인가?

참새들이 쪼아 먹었을까?

 

무싹은 영영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슬

 

 

새벽에 텃밭에 가면 밭둑에

밤새 내린 이슬에 젖은

풀들이 나를 반긴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온 세상이 불타던 폭염의 새벽에도

어김없이 이슬을 머금은 풀을 만났다.

 

풀은 한 밤중이 지나는 시간까지 기다릴 줄 안다.

한낮의 땡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시들어가면서도

새벽녘에 맺힐 이슬을 기다릴 줄 안다.

 

보이지 않으면서도 존재하는

땅 위에서 숨을 쉬는 것들의 생명수

 

이슬의 공덕을 말을 하면서도

나는 이슬의 이슬이 되지 못하면서

이슬을 따라갈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오늘도 하루를 보낼 일을 걱정하기만 한다.

 

보이지 않는 이슬은

시들어가는 풀과 나무를 살려내는

화타보다 더 신통한 명의.



스무 살 선생

 

 

담양야간중학교는

담양동초등학교 교실을 빌려

낮에 일한 청소년들을 불러 모았지.

나는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강학이었네.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살 먹은 중학생들에게

형 같은 오빠 같은 선생이었네.

교지 "등불"에

「돌을 깨는 사람」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했었지.

스무 살 어린 선생이었던 난

순하디 순한

영혼을 만났었네.




소동파를 만나다

 

 

18년 전 광주제일고에서

적벽부를 가르치면서

동파를 만났지.

 

전라도닷컴 기자가 수업을 참관했었지.

전라도닷컴에 내 이야기가 실렸었지.

책을 여러 권 들고 교실에 들어갔었지.

지리 김선생이 그려준

적벽지도를 걸고 수업을 했었지.

 

6년 전에는

항저우 시호에서 동파를 만났지.

시호에서 배를 타고 유람하면서

시호를 보수하던 동파를 생각했지.

 

오늘 나는 임어당이 지은

소동파 평전

"쾌활한 천재"를 읽으며

동파를 더 깊이 알아간다.



안마기

 

 

내 자동차는 정비중

나는 안마기에 앉아서 안마중

안마기는 내 삭신을

밀고 당기고 조이며

신바람을 내는데

내 삭신은 모처럼만에 호강중

가을비 내리는 카센터

가을맞이 정비가 한창




자동차 정비소

 

 

수리하려는 자동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은

이렇게 정비를 한 차들이다.

자동차는 때가 되면

정비를 해야 한다.

우리네 인생도 가끔씩

정비를 해야 한다.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답게 살려면...

 


죽염

 

점심을 먹고

죽염으로 양치한 다음에

병뚜껑을 닫고 서랍에

넣으려다가 병을 놓쳤는데

죽염이 바닥에 흩어졌다.

얼른 종이에 쓸어

담아 병에 담고

나머지는 화장지에

물을 묻혀서 닦아냈다.

방심은 늘 화를 부른다.

긴장의 끈을 놓더라도

정신 줄을 놓지는 말아야지.




생채기

 

무정한 전정 톱에

가지를 몽땅 잃어버린

첨단 우물살구나무가

가을비를 맞고 서 있다.

갑자기 잘려나간

팔다리가 그리운 모양이다.

내년 봄에 어떤 모습일까?

아, 정원수의 비애여!



볼펜

 

 

머리를 누르면 심이 나오고 또 누르면 심이 들어가는 똑딱볼펜을 사랑해서 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글을 쓰거나 싸인을 했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볼펜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심을 꺼내보니까 잉크가 다 닳아져 있었다. 볼펜 껍데기는 멀쩡한데, 심만 갈아 끼우면 되는데, 나는 과감하게 나오지 않는 볼펜을 버렸다.

 

나는 그 볼펜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썼던 것 같다. 뭐든 쓰다보면 닳아지는데 말이다. 내 몸도 오랫동안 쓰다보니까 많이 닳아졌다. 눈도 닳아졌고, 팔도 닳아졌다. 어깨를 잘못 움직이면 통증이 심하다.



신새벽

 

 

나는 새벽 네 시에 신문이 왔는지 보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이 동네에서 새벽 네 시가 되면 어김없이 신문이 우리 집 현관 앞에 놓인 지 20년이 되었다. 신문배달원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우리 집 현관 앞에 신문을 던지고 간다.

 

나는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 눈을 떠서 신문을 읽는다.

 

앞으로는 저녁에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는 생활을 할 것 같다. 새벽의 고요함이 내 영혼을 맑게 하고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독서하고 사색하는 생활을 하고 싶으니까.




가을에

 

 

바람이 달라졌다.

구름이 달라졌다.

매미 울음이 그쳤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하늘이 달라졌다.

들판의 곡식이 익어간다.

나무들의 이파리가 달라졌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달라졌다.

 

텃밭에 배추모종을 옮겨 심었다.

무씨도 뿌렸다.

텃밭에 물을 주면서 느낀다.

새들의 날갯짓이 달라졌다.

 

가지치기를 한 나무들이 똠방하다.

가을은 달라지는 계절이다.

가을에는 달라져야 한다.

 

 

수료

 

 

나는 한때 교육대학원생이었지

시창작교육을 고민했었지

석사학위 청구 논문 예비발표까지 마쳤으나

논문을 준비해가는 과정에서 콱 막혀버렸지

수많은 석사학위 논문을 읽으면서

시창작교육이 매우 활발하다고 생각했었지

나는 아직도 시창작교육을 생각하고 있지

탈고 안될 논문을 구상하고 있지

 


사유

 

 

나는 가끔 우주를 사유한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을 먼저 사유한다.

지구를 돌고 있는 달을 사유한다.

지구가 돌고 있는 태양을 사유한다.

태양계의 다른 행성을 사유한다.

태양계가 속한 은하를 사유한다.

 

나는 무엇이든 사유한다.

천둥과 번개를

비와 눈과 이슬을 구름을

신과 사탄을

천국과 지옥을

부귀영화와 간난신고를

늘 사유한다.

 

인간은 소우주다.

인간을 존중해야 한다.

나는 반성한다.

나는 인간다운 인간인가?

 

 

거리에서

 

 

일곡동 식자재마트 옆

쉼터 앞 가로수에서

매미가 마지막으로

숨가쁜 울음을 토해내는

일요일 오후

바쁠 것 없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가하다.

일곡 청소년의 집

일곡 요양병원

북광주우체국

시방 일곡동은 한바탕

건축바람이 불고 있는데

오랫동안 이름을 날리던

봉창이 칼국수 집은 어디로 갔나.

그 자리에 ‘파도소리’ 들리는

횟집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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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9월 토론작품] 가난한 장남 외 21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09.28  조회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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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2018-9-금시-현대옥).hwp


가난한 장남 외 21편

김성중

 

 

아버지께 용돈을 두둑히 드리지 못 하는

가난한 장남이 할 일은 별로 없다.

일곡도서관에 가서 책이나 읽을 일이다.

무등산에 가끔 오를 일이다.

 

결혼식장에 가서 축의금을

낼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장례식장에 가서 망자의 편안한

저승길을 기원할 일이다.

 

사람들과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할 일이다.

막걸리 값을 가끔씩 낼 일이다.

조국의 평화통일을 날마다 빌 일이다.

 

가난한 장남이 할 일은

한새봉 농업생태공원에서 놀다가

영산강변 폐가를 찾아가서

텃밭을 일굴 일이다.

 

 

중국단풍나무 아래

 

 

한가위라 풍성한 날

중국단풍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생각에 잠긴다.

 

인생이란?

부모란?

효도란?

사랑이란?

 

중국단풍나무 아래

나긋한 벤치에서

나의 가을이 익어간다.

 


광주송정역

 

 

추석을 쇠고

떠나는 사람들

 

웃는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만나나

우리 이제 함께 가는 거죠

만나고 헤어지고

 

새벽 여섯 시 이십 분

딸아이를 실은 SRT열차는

철로를 미끄러지며

저 멀리 달아나고

 

새벽잠을 깬 내 눈은

금방이라도 감길 듯.

 

 

 

 

한가윗달

 

 

소원을 빌어요.

 

한반도의 평화

세계의 평화

전쟁 없는 세상

빈부 없는 세상

 

질투는 저리 가고

칭찬만 남고

실업자는 없고

노동자가 넘치는 거리

 

금강산에도 가고

묘향산에도 가고

개마고원에도 가고

백두산 천지에도 가고

 

만월대도 가고

을밀대도 가고

박연폭포도 가고

가고

가고

또 가고

 

비무장지대는 저리 가고

우린 평화지대로 가고

 



 

 

나는 나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고민하며 세상을 살아가는가?

 

나는 뼈와 살과 피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영혼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내 사유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가?

 

조상을 그리워하며 수확의 기쁨을 함께 하는 한가위 명절, 조상의 피가 내 핏줄을 타고 흐른다. 기억할 수도 없는 조상들의 은덕을 생각한다.

 

나는 다시 내 존재의 이유를 생각한다. 뵌 적이 없는 6.25때 돌아가신 두 분의 큰아버지를 생각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뵌 적이 없는 증조할머니와 증조할아버지를 생각한다.

 

아직 건강하게 생존해 계시는 부모님을 생각한다. 내일이 추석인데 나는 내 존재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한다.



타이어 바람 주의

 

 

내가 세피아를 몰던 시절, 동네 카센터에서 타이어를 네 짝 모두 교체했다. 다음날 아버지를 모시고 춘천으로 사돈 조문을 가는 길, 운전을 하는데 자꾸 차가 한 쪽으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정읍휴게소 근처에서 누군가 손짓을 해서 휴게소에 들러서 확인해보니까 운전석 쪽 바퀴의 바람이 많이도 빠져 있었다. 타이어를 교체하면서 "타이어 바람구멍"을 닫지 않은 것이었다.

 

문득 떠오르는 잊지 못할 일이다.

 

 

다시 무씨 뿌리기

 

 

단오반 텃밭에 조심스럽게 뿌린

무씨가 싹이 트지 않았다.

 

말바우장에서 사온 무씨를

단오반 텃밭에 다시 뿌렸다.

 

추석 쇠고 가서 보니까

예쁜 싹이 솟아나 있었다.

 

무가 잘 자라게

잘 속아 주고

벌레도 잡아줘야겠다.

 

 

 

명옥헌 원림

 

창평 가는 길 후산리

명옥헌을 찾아갔더니

배롱나무꽃이

시원치 않다.

 

올 여름 폭염에

배롱나무도 지쳤나보다.

 

후산리 입구 왕버드나무 뚝방

수련이 피어있는 연못을 지나서

달팽이 걸음으로 걸어가서

 

명옥헌 마루에 앉아

배롱나무 연못을 바라보며

잠시 세상을 잊어버리는 것도

좋을 것 같은 가을.

 


무씨

 

 

텃밭에 무씨를 뿌리고

싹이 나오기를

마음 졸이며 기다렸다.

 

배추 모종은

배추 모양을 갖춰가는데

무싹은 영영

싹아지가 보이지 않는다.

 

거름이 과했나?

그래서 녹았을까?

씨앗이 불량인가?

참새들이 쪼아 먹었을까?

 

무싹은 영영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슬

 

 

새벽에 텃밭에 가면 밭둑에

밤새 내린 이슬에 젖은

풀들이 나를 반긴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온 세상이 불타던 폭염의 새벽에도

어김없이 이슬을 머금은 풀을 만났다.

 

풀은 한 밤중이 지나는 시간까지 기다릴 줄 안다.

한낮의 땡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시들어가면서도

새벽녘에 맺힐 이슬을 기다릴 줄 안다.

 

보이지 않으면서도 존재하는

땅 위에서 숨을 쉬는 것들의 생명수

 

이슬의 공덕을 말을 하면서도

나는 이슬의 이슬이 되지 못하면서

이슬을 따라갈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오늘도 하루를 보낼 일을 걱정하기만 한다.

 

보이지 않는 이슬은

시들어가는 풀과 나무를 살려내는

화타보다 더 신통한 명의.



스무 살 선생

 

 

담양야간중학교는

담양동초등학교 교실을 빌려

낮에 일한 청소년들을 불러 모았지.

나는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강학이었네.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살 먹은 중학생들에게

형 같은 오빠 같은 선생이었네.

교지 "등불"에

「돌을 깨는 사람」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했었지.

스무 살 어린 선생이었던 난

순하디 순한

영혼을 만났었네.




소동파를 만나다

 

 

18년 전 광주제일고에서

적벽부를 가르치면서

동파를 만났지.

 

전라도닷컴 기자가 수업을 참관했었지.

전라도닷컴에 내 이야기가 실렸었지.

책을 여러 권 들고 교실에 들어갔었지.

지리 김선생이 그려준

적벽지도를 걸고 수업을 했었지.

 

6년 전에는

항저우 시호에서 동파를 만났지.

시호에서 배를 타고 유람하면서

시호를 보수하던 동파를 생각했지.

 

오늘 나는 임어당이 지은

소동파 평전

"쾌활한 천재"를 읽으며

동파를 더 깊이 알아간다.



안마기

 

 

내 자동차는 정비중

나는 안마기에 앉아서 안마중

안마기는 내 삭신을

밀고 당기고 조이며

신바람을 내는데

내 삭신은 모처럼만에 호강중

가을비 내리는 카센터

가을맞이 정비가 한창




자동차 정비소

 

 

수리하려는 자동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은

이렇게 정비를 한 차들이다.

자동차는 때가 되면

정비를 해야 한다.

우리네 인생도 가끔씩

정비를 해야 한다.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답게 살려면...

 


죽염

 

점심을 먹고

죽염으로 양치한 다음에

병뚜껑을 닫고 서랍에

넣으려다가 병을 놓쳤는데

죽염이 바닥에 흩어졌다.

얼른 종이에 쓸어

담아 병에 담고

나머지는 화장지에

물을 묻혀서 닦아냈다.

방심은 늘 화를 부른다.

긴장의 끈을 놓더라도

정신 줄을 놓지는 말아야지.




생채기

 

무정한 전정 톱에

가지를 몽땅 잃어버린

첨단 우물살구나무가

가을비를 맞고 서 있다.

갑자기 잘려나간

팔다리가 그리운 모양이다.

내년 봄에 어떤 모습일까?

아, 정원수의 비애여!



볼펜

 

 

머리를 누르면 심이 나오고 또 누르면 심이 들어가는 똑딱볼펜을 사랑해서 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글을 쓰거나 싸인을 했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볼펜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심을 꺼내보니까 잉크가 다 닳아져 있었다. 볼펜 껍데기는 멀쩡한데, 심만 갈아 끼우면 되는데, 나는 과감하게 나오지 않는 볼펜을 버렸다.

 

나는 그 볼펜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썼던 것 같다. 뭐든 쓰다보면 닳아지는데 말이다. 내 몸도 오랫동안 쓰다보니까 많이 닳아졌다. 눈도 닳아졌고, 팔도 닳아졌다. 어깨를 잘못 움직이면 통증이 심하다.



신새벽

 

 

나는 새벽 네 시에 신문이 왔는지 보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이 동네에서 새벽 네 시가 되면 어김없이 신문이 우리 집 현관 앞에 놓인 지 20년이 되었다. 신문배달원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우리 집 현관 앞에 신문을 던지고 간다.

 

나는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 눈을 떠서 신문을 읽는다.

 

앞으로는 저녁에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는 생활을 할 것 같다. 새벽의 고요함이 내 영혼을 맑게 하고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독서하고 사색하는 생활을 하고 싶으니까.




가을에

 

 

바람이 달라졌다.

구름이 달라졌다.

매미 울음이 그쳤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하늘이 달라졌다.

들판의 곡식이 익어간다.

나무들의 이파리가 달라졌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달라졌다.

 

텃밭에 배추모종을 옮겨 심었다.

무씨도 뿌렸다.

텃밭에 물을 주면서 느낀다.

새들의 날갯짓이 달라졌다.

 

가지치기를 한 나무들이 똠방하다.

가을은 달라지는 계절이다.

가을에는 달라져야 한다.

 

 

수료

 

 

나는 한때 교육대학원생이었지

시창작교육을 고민했었지

석사학위 청구 논문 예비발표까지 마쳤으나

논문을 준비해가는 과정에서 콱 막혀버렸지

수많은 석사학위 논문을 읽으면서

시창작교육이 매우 활발하다고 생각했었지

나는 아직도 시창작교육을 생각하고 있지

탈고 안될 논문을 구상하고 있지

 


사유

 

 

나는 가끔 우주를 사유한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을 먼저 사유한다.

지구를 돌고 있는 달을 사유한다.

지구가 돌고 있는 태양을 사유한다.

태양계의 다른 행성을 사유한다.

태양계가 속한 은하를 사유한다.

 

나는 무엇이든 사유한다.

천둥과 번개를

비와 눈과 이슬을 구름을

신과 사탄을

천국과 지옥을

부귀영화와 간난신고를

늘 사유한다.

 

인간은 소우주다.

인간을 존중해야 한다.

나는 반성한다.

나는 인간다운 인간인가?

 

 

거리에서

 

 

일곡동 식자재마트 옆

쉼터 앞 가로수에서

매미가 마지막으로

숨가쁜 울음을 토해내는

일요일 오후

바쁠 것 없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가하다.

일곡 청소년의 집

일곡 요양병원

북광주우체국

시방 일곡동은 한바탕

건축바람이 불고 있는데

오랫동안 이름을 날리던

봉창이 칼국수 집은 어디로 갔나.

그 자리에 ‘파도소리’ 들리는

횟집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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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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