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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12월 토론 작품] 똥 한덩이 외 13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2.14  조회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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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한 덩이 외 13편
김성중


창체실 앞 복도를 구부러져 지나 계단을 내려가서 화장실 문을 여는데 역한 냄새가 났다. 문을 열고 비데가 설치된 변기 뚜껑을 열어보니까 팔뚝만한 똥 한 덩이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누워 있었다. 심한 변비를 앓고 있는 자의 똥이었다. 나는 힘차게 물을 내렸으나 똥은 그대로 있었다. 나는 코를 막고 변기솔로 똥덩이를 잘디잘게 으깨고는 다시 물을 내렸다. 똥이 시원하게 내려갔다. 

똥을 싸면서 너는 이미 알고 있었다. 너는 너의 변비만 생각했었다. 네 뒤에 올 사람은 네 머릿속에는 없었다.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탈출하듯이 너만 쏙 빠져나갔다.

언제부턴가 똥은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시골에선 퇴비가 되었지만 도시에서는 냄새나는 쓰레기가 되었다. 수세식 화장실이 대세가 되면서 이제 똥은 보이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변기가 막히면 똥은 쌓인다. 

인간이 남기는 똥덩이는 화장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오늘도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저 쓰레기를 보라. 플라스틱 병을 먹은 아귀의 터질 것 같은 배를 보라. 쓰레기로 가득 찬 고래의 뱃속을 들여다보라. 플라스틱으로 가득 찬 바다를 보라. 지구별 여기저기에 똥만 싸지르는 이상한 동물이 있다.




얼어버린 일곡파초


어젯밤 추위에 일곡배수지 가는 
길에 서 있는 일곡파초가 얼어버렸다. 

뜨거운 여름날 
커다란 부채를 흔들며
시원한 바람을 선물하곤 했는데
동장군의 기세에 힘없이 무너져버렸다.

고향을 떠나온 지 까마득한데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지으며
남국을 그리워하는 너를
나는 바라만 볼 뿐

그러나 너의 구근은 살아서 
내년 봄에 힘차게 
줄기를 하늘 높이 밀어 올리리라.



시집

시집이 없으면 시인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시집을 내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만의 시풍을 갖춘 시집을 낼 것이다. 

시집을 내려고 하니
고쳐야할 시들이 많구나.
마음에 차는 시는 별로 없고
버려야할 시들만 시들시들하구나.

진술보다는 묘사를
상투적이기보다는 참신하게
한 줄을 쓰더라도 새롭게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벼리고 벼린 시를 
시집으로 묶는 거다.

전화

일요일 아침 일곱 시가 조금 넘어서 전화가 걸려왔다. ㄱ선생이었다. ㅅ시인의 페이스북에서 보았다고 한다. 내가 명퇴를 신청한 것을.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의 부인은 2년 전에 명퇴를 했다고 한다. 자기 친구들에게는 정말 좋다고 하면서도 그가 명퇴한다고 하니까 얼굴색을 싹 바꾸더라는 이야기와 더불어 딸이 아직 어리니까!

시골에 농가주택을 사놓았다고, 새로 뚫리는 고속도로 나들목이 바로 근처라 접근성이 좋다고, 집에서 1시간이면 간다고

전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가 한여름 땡볕 아래 호박잎처럼 풀이 죽어 있었다.




남북군사도로 연결

2018년11월 22일
정전협정 뒤 처음 
철원 화살머리 고지
DMZ 관통
경남 남해-평북 초산 국도 3호선
70년 전 남북 교통로 단절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2019년 4월부터 공동 유해발굴을 위한 
비포장 전술도로
너비 12미터

끊어진 길이 이어지고
끊어진 핏줄이 이어지고
끊어진 강물이 이어지고
끊어진 말이 이어지고
끊어진 백두대간이 이어지고

2018년 12월 12일 
남과 북의 병사가 악수하고
이미 철수하고 폭파한 상대방
지피 10개씩을 검증하였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새와 산수유

첨단지구 무양서원 뒤
무양공원 산수유나무에 
산수유 열매를 따러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든다. 
산수유나무는 지금 
흐뭇한 웃음을 
흘리고 있다. 
새들이 멀리 씨를 
날라줄 테니까.
산수유열매가 겨울바람에 흔들린다.
겨울새가 산수유를 따고 있다.



사과 몇 알

어제 사과를 몇 조각 싸와서 간식으로 먹고는 남은 두 조각을 옆 동료와 나누어 먹었다. 그때 그 옆 동료의 옆 동료가 “왜 나는 안 주느냐?”고 해서 한바탕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한방병원에 다녀오는 아내를 첨단2지구에서 태우고 집으로 가면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한살림에서 사과 한 상자(5kg)를 사오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에 사과상자를 교무실 탁자에 올려놓았다. 웬 사과냐는 물음에 “사연이 있는 사과”라고 말하면서 연막을 피웠다. 어제 그렇게 말했던 동료가 출근해서 “어제 두 사람이 몰래 사과를 먹는 것을 적발하기”를 잘 했다고 한다. 

작은 사과 몇 알이 교무실을 훈훈하게 덥혀놓았다.


갈전마을

조문을 마치고 화순으로 차를 몰았다. "만연산 치유의 숲"에 들렀다가 "수만리-안양산휴양림-이서-금호리조트-갈전-창평-고서로컬푸드-장등터널-일곡동 한새봉농업생태공원", 이렇게 거쳐서 집에 들어오니까 캄캄했다. 

말로만 듣고 궁금했던 갈전마을에 들렀다가 멀리 마을 입구에서 마을을 사진으로 담았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정겹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나 살 만하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빨간 피가 더웁다. 어디나 똑 같다, 사람살이는. 제 잘난 맛에 사는 것이다. 

전원주택이든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 사람이 살고 있다.




담양교 새떼

담양교 위 전깃줄에 
새들이 앉아 있다. 
저 새들의 머리에는 
무슨 생각이 들어있을까? 
나는 뚝방 앞 국숫집에서
댓잎국수를 먹으면서도 
새떼들 생각 뿐이다. 
국수를 먹고 나왔어도 
새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새들도 나를 지켜본다.
강가의 억새들도 새들을 쳐다본다.
조금 아래 수바래에서
햇살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아낌없이 주는 단오반텃밭



단오반텃밭은 
모든 것을 다 주고 
이제 휴식에 들어갔다. 
지난여름에는 상추, 고추, 방울토마토, 가지를 
마구 마구 주더니 
이 가을에는 무와 배추를 주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마지막으로 배추끌텅을 주었다. 
아낌없이 주는 단오반텃밭이여, 아듀~~~


나목

출근길에 이파리를 다 떨구어버린 
벌거벗은 느티나무를 만났다.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린 건너편의 태산목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0년을 마주 보며 살아왔었는데, 
태산목이 서 있던 
그 자리는 텅 비어 있다. 

20년 지기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는
느티나무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키 작은 철쭉이 느티를 위로하고 있었다.




습관

출근하려고 아파트 뒤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찾는데 차가 없다. 
앞으로 가서 
찾아도 없다. 
다시 뒤로 가서 
찾아도 없다. 
아, 지하주차장 
옆길에 세워두었지. 

습관은 호랑이보다 무섭다.

백동 삼거리 방죽


소쇄원 옆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강쟁리로 가서 찔레나무를 쳐내며 마당을 조금 정리했다. 그리고는 천변리 책방 죽림재를 살펴본 다음에 관방제림으로 차를 몰았다. 길을 걸으며 여유롭게 계석대, 백진각, 담세정을 차례대로 둘러보았다. 관방제림을 걷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담양읍 백동 사거리를 지나며 옛날에 놀았던 미리산 앞 삼거리 마을 가운데에 있던 방죽을 떠올렸다.

그 저수지를 메워서 담양경찰서를 지었다. 그 뒤에 백동 사거리 주변에 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제 백동 삼거리 방죽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생활의 편리만을 좆는 사람들에게 그 작은 방죽이 대수겠는가.

예전 태봉산을 헐어서 광주역을 만들고 그 흙으로 경양방죽을 메워서 중흥동 시청사를 지었다. 시청은 다시 상무지구로 옮겨갔고 그 자리엔 대형할인점이 들어섰다. 경양방죽이 지금 남아있다면 광주시민들의 휴식처가 될 텐데...

산을 깎고 논과 밭을 다져서 집이나 공장을 짓는 일이 너무나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밤안개

어젯밤에 본촌산단 뒤 양지마을에 있는 칼국수 전문 식당에서 동지죽을 맛있게 먹었다. 식당문이 닫히기 직전 마지막 손님이었다. 동지죽을 먹고 나서 안개 자욱한 밤길을 달렸다. 북부순환로 장등터널을 지나자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차들도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다. 담양으로 가는 29번 국도를 달리는데 송강정 근처 유산교 쌍교다리에 이르자 안개가 옅어졌다. 

담양읍내 길을 천천히 달리면서 보니까 백동 사거리에서 터미널까지는 상가에 불이 켜져 있었다. 중심가를 지나서 담양교 양각다리 근처로 가니까 피시방 말고는 가게가 다 닫혀 있어서 거리가 쓸쓸했다. 관방제림을 따라 시장을 지나 국수거리로 들어섰는데 가게가 문을 닫은 거리는 고즈넉했다. 향교다리를 지나서 죽녹원 쪽으로 차를 몰았다. "천년담양" 불빛만 봉황루 아래에서 빛나고 있었다. 밤 아홉시인데 관방제림을 걷는 사람이 있었다. 

담양 중심가를 가만히 지나서 국도 29호선을 타고 달리는데 안개가 옅어져 있었다. 장등터널을 지나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여 2주 전에 트렁크에 넣어둔 대봉시를 꺼내어 집으로 올라왔다. 

안개는 어둔 밤이 외로울까봐 밤과 함께 밤을 지새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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