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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8.10.06 :: 가난한 장남 외 21편
  3. 2018.01.12 :: 2018 금시 겨울연수
  4. 2017.12.09 :: 2017 금시 송년시
추월산의 시 2019. 1. 1. 20:31
통합 게시판

[김성중 10월 토론작품] 부드러운 'ㄴ' 외 21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0.19  조회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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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시-2018-10-채선당.hwp


부드러운 'ㄴ' 외 21편

김성중

 

 

나는 난 네가 정말 좋아.

너는 넌 내가 정말 좋니?

 

'ㄴ'이 들어간 낱말을 찾는다.

 

나라 나리 놈 님 남 누리 눈 논 노리개

‘-ㄴ다’는 동사 현재형 산다 운다 논다 본다 잔다

형용사 활용형은 아름다운 고운 예쁜 사랑스러운

 

'ㄴ'이 엎어지면 'ㄱ'이 되고

혹이 하나 붙으면 'ㄷ'이 된다.

 

여자 이름에는 'ㄴ'이 많기도 많다.

민지 지민 지은 서윤 윤지 지윤 노라

 

시험 감독을 하면서 좌석표를 보니까

어느 여자반은 서른 한 명 중에서

스물 일곱 명의 이름에 'ㄴ'이 들어 있다.

 

남자 이름 중에도 'ㄴ'이 많다.

승권 안수 찬흠 성윤 선빈 선형 형선

만호 호만 민준 유준 민호 민수

수민 주민 우권 권호 호연 준태 태준

 

그래 그래 ㄴ을 넣으면

뭐든지 부드러워진다.

 

 

 

해직수첩 사진

 

 

어느 해직 선배가 보내온

해직교사 수첩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눈물이 난다.

서른 즈음의 사진

사진 속 사내의 얼굴

세상을 날카롭게 쏘아보는 눈

지금은 세파에 닳아서

두루뭉술해진 눈.




단오반텃밭 구억배추와 무

 

 

이슬을 머금은 이파리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다.

 

대지에 단단히 뿌리 박은

저 구억배추와 무의 당당함

 

벌레마저 범접하지 못 할

저 카리스마를 본다.

 

나의 다리는 흔들리는데

텃밭의 무와 배추는 강철 같다.

 


수다

 

 

너를 만나면

무슨 얘기든 하고 싶다.

 

네가 무슨 얘기를 해도

나는 재미가 있다.

 

내가 하는 얘기가 재미 없어도

너는 재미 있게 들어준다.

 

내 얘기는 늘 썰렁하지만

너는 늘 웃음보를 터뜨린다.

 

너를 만나면

늘 수다를 떨고 싶다.

 

 


첨단대교 풍경

 

 

바람이 서늘한 영산강에서

가을을 온몸으로 느낀다.

맑은 하늘과 맑은 공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진다면

내 걱정은 기우이리라.

 

강가 버드나무 옆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서

세월을 낚는 강태공을 보았다.

가을이 물든 강물을 보면서

가을 강처럼 말라야하리라

다짐을 한다.

 

친구가 운영하는 골프연습장을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내가 골프를 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복도 순회 감독

 

끊임없이 복도를 왔다 갔다 한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풀고 있다.

감독교사는 매의 눈으로 학생들을 감시한다.

불공정정행위를 없애려고 한다.

 

나는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복도를 걷고 또 걷는다.

끝종이 울릴 때까지

 

화장실에 가는 학생이 있는가?

시험지에 이상은 없는가?

OMR카드는 부족하지 않는가?

 

시험문제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러 다니는

출제교사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시험을 보는 동안 학교는 초긴장 상태다.

무사히 시험이 끝나기를 기도한다.

 

시험 종료 10분전임을 알리는 방송이 반갑다.

 

시험지를 넘기는 소리

마킹하는 소리

서술형 답을 고치는 소리

기침소리

한숨소리

 

드디어 시험 끝종이 울린다.



가을바람

 

 

어젯밤에 비가 내리고

지금 가을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창문 틈으로 들려오는

요란한 바람소리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

 

배롱나무꽃은 시들어 가고

금목서꽃도 가을비에 시들고

성급한 나뭇잎은 벌써 단풍으로 물들고

 

내 마음에도

가을바람이 불어오는가

왠지 허전한 마음

 

 

 

목련 열매와 새

 

전교조 분회모임 때 찾아간

담양 황금소나무 정원

백목련 자목련 나무에 빨간 열매가 열려 있다.

 

열매 꼬투리가 벌어진 사이로

빠알간 씨가 보인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얼른 씨를 빼물고

가지에 앉아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지난 봄날 화려하게 꽃피어

벌나비를 부르던 백목련과 자목련

 

이 가을에는 빠알간 열매로

빠알갛게 익은 씨로

새들을 유혹한다.

 

 

동백씨

 

빠알간 동백꽃이 지고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

동백 열매 붉게 익어서 마음이 설레는데

동백 열매의 꼬투리가 세 쪽으로

벌어지면 둥그렇게 모여 있던

까만 동백씨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동백 열매 하나에

까만 씨가 다섯 개에서 여덟 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있다.

 

 

 



 

 

까만 밤이다.

등불을 훤하게 켜고 책을 읽는다.

 

텔레비전을 꺼버린 밤은 고요하다.

이 고요한 밤에 명상에 잠기리라.

 

대낮의 소음은 맹렬하다.

온갖 소리들이 귓청을 때린다.

그러나 밤이 되면 소음도 잠이 든다.

 

밤은 차분해지는 시간이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이다.

 

 

어떤 시화전

 

 

네모 반듯한 판넬이 아니고

이상한 모양의 판넬에 시를 적었다.

 

어떤 학생들은

엄마 몸빼에 시를 써서

세워 놓은 나무 가지에 걸었다.

 

설립자 묘소 앞에 전시한 작품들

국어과 출신 교감선생님은 오시지 않고

 

나는 문학써클 지도교사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았던

1988년 가을

시화전이 열리던

금호고등학교 교정

 

 

축시를 쓰던 시절

 

축하하는 마음이 넘쳐나거나

간절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나는 축시를 여러 편 썼지.

 

고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동창회 프로그램에

처음 축시를 썼지.

 

전교조 죽회분회 창립식 때

번창하라는 축시를 읽었지.

 

서울 미아리에서 선배 결혼식 때

다방에서 축시를 다듬었지.

서울 강남에서 친구 결혼식에서 축시를 읽었지.

 

KBC 방송국홀에서

후배인 미술교사 결혼식 축시를

읽으며 하객들을 웃겼지.

 

광주 어느 예식장에서

국어과 후배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의미심장한 축시를 읽었지.

 

2003년인가에는 신양파크호텔 홀에서

신부인 선배 국어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나마스테를 넣은

축시를 낭독해서

식장 분위기를 띄웠지.

 

의정부에서

선배 부친 팔순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가족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지.

 

광주일고 개교 70주년을 기념하여

'일고여,일고인이여'라는 장시를

학생들에게 낭독하게 하여

기념식장을 뜨겁게 달궜지.

 

2012년인가

전교조 성덕고등학교 분회 창립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행사를

빚나게 했었지.

 

나는 축시를 쓰고 낭독할 때마다

축하하는 마음과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뿍 담았지.

 

언제 축시를 쓸지

알 수 없는 요즘

축시를 쓰던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은행

 

출근길에 향토박물관 정류소로

시내버스를 타러 가는데

길바닥에 은행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은행을

사람들은 피한다.

나는 수억 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를

냄새가 난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그 놀라운 생명력 앞에서

겸허하게 고개를 숙였다.

 

 

한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내가 자랑스러울 수 있게 해주는

그리하여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언제라도 너를 불러내어 멋진 글을 쓸 수 있어서

나는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만약 내가 너를 몰랐다면

내 삶의 대부분은 어두운 터널

너와 더불어 나의 인생은 늘 즐거웠으니

이제 나는 너에게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하겠다.

 

내가 너를 만난 어린 꼬마였던 때부터

날마다 눈을 부릅뜨고 침발라 책장을 넘기는 지금까지

너에 대한 자부심이 무장 커졌고

너를 더 잘 쓰려고 노력했는데

날마다 아파하고 망가지는 너를 보면서

나는 더욱 더 너를 사랑할 것을 다짐한다.

 

 

생명력

 

가지가 사정없이 잘려나간

첨단우물살구나무가 잘려나간

가지 바로 앞에서 새로운

가지를 내밀었다.

잘려나간 가지를 그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살구나무는 이 가을에

새로운 가지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여리지만 올 겨울을

넘기고 새봄이 오면

가지에 화사한 꽃등을 달고

우리 앞에 환하게 웃으리라.

 

 

 

 

돌멩이 두 개

 

 

운명이었을까?

그 돌멩이는 왜 내 손을 떠났을까?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나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페퍼포그차를 향해

돌멩이 두 개를 힘차게 던졌다.

 

1981년 9월 29일

중앙도서관 앞에서 시작된 시위는

엄청나게 격렬했다.

담을 넘어서 시내로 진출하기도 했다.

반제 반파쇼 민중 민주 결의대회

내가 던진 돌멩이는 분노하는 돌멩이였다.

나는 붙잡혀서 닭장차에 실려

서부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돌멩이 두 개는 운명이었을까?



뿌리

 

 

고추는 뿌리가 얕아서

비바람이 치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래서 반드시 지줏대를 세우고 고

춧대를 묶어주어야 한다.

 

가지는 뿌리가 깊어서

1미터까지 땅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짓대를 뽑으려면 몹시 힘이 든다.

 

식물도 사람도 뿌리가 다 다르다.

 


가지 뿌리

 

어제 베어낸 가지의

밑둥을 잡고

흔들어서

가지 뿌리를 뽑았다.

뿌리가 단단히

흙을 쥐고 있어서

뽑는데 애를 먹었다.

대지에 굳게

뿌리를 박은 가지는

숱하게 꽃을 피우고

가지를 매달았었다.



영산포장

 

 

영산포장에 갔다.

생조기가 싸다.

3만원에 30마리다.

다른 해산물도 싸다.

시장 앞 금강식당에서

조기매운탕에 점심을 먹었다.

2인분에 12,000원이다.

조기가 10마리나 들어있다.

점심상이 푸짐하다.

영산포 인심이 푸짐하다.



고추

 

 

오늘 저녁에 상추쌈밥을 먹었다. 학교 텃밭에서 따온 상추에 밥과 고추와 가지볶음과 김치를 싸서 먹었다. 아, 매워! 고추가 너무 매워서 눈물을 한참이나 흘렸다. 눈물을 흘리고 났더니 카타르시다. 정화다.

 

가끔씩 눈물을 흘려야 하겠다. 요새 울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 울고 싶을 때는 체면 차리지 말고 울어버리자.

 

오늘 매운 고추가 내 생의 감각을 살려놓았다.



노각

 

 

일곡동 한새봉 농업생태공원 단오텃밭에서 가지 두 주를 베어내고 오이 넝쿨을 옮기면서 노각을 만났다. 폭염이 대지를 달굴 때 오이 모종을 옮겨 심으면서 제대로 살 수 있을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가지 잎에 가려진 덕분에 이 오이는 노각이 되었던 것이다.

 

주목 받지 못 하면서도 착실히 내실을 다지는 존재들이 많다.




동백씨

 

 

교정을 산책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동백씨를 발견했다.

동백꽃이 피었다 지면서 열매가

붉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열매가 익고 벌어져서

씨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동백열매는 지난 폭염 속에서도

부지런히 익었던 모양이다.

오, 자연의 위대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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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0.19  조회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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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시-2018-10-채선당.hwp


부드러운 'ㄴ' 외 21편

김성중

 

 

나는 난 네가 정말 좋아.

너는 넌 내가 정말 좋니?

 

'ㄴ'이 들어간 낱말을 찾는다.

 

나라 나리 놈 님 남 누리 눈 논 노리개

‘-ㄴ다’는 동사 현재형 산다 운다 논다 본다 잔다

형용사 활용형은 아름다운 고운 예쁜 사랑스러운

 

'ㄴ'이 엎어지면 'ㄱ'이 되고

혹이 하나 붙으면 'ㄷ'이 된다.

 

여자 이름에는 'ㄴ'이 많기도 많다.

민지 지민 지은 서윤 윤지 지윤 노라

 

시험 감독을 하면서 좌석표를 보니까

어느 여자반은 서른 한 명 중에서

스물 일곱 명의 이름에 'ㄴ'이 들어 있다.

 

남자 이름 중에도 'ㄴ'이 많다.

승권 안수 찬흠 성윤 선빈 선형 형선

만호 호만 민준 유준 민호 민수

수민 주민 우권 권호 호연 준태 태준

 

그래 그래 ㄴ을 넣으면

뭐든지 부드러워진다.

 

 

 

해직수첩 사진

 

 

어느 해직 선배가 보내온

해직교사 수첩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눈물이 난다.

서른 즈음의 사진

사진 속 사내의 얼굴

세상을 날카롭게 쏘아보는 눈

지금은 세파에 닳아서

두루뭉술해진 눈.




단오반텃밭 구억배추와 무

 

 

이슬을 머금은 이파리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다.

 

대지에 단단히 뿌리 박은

저 구억배추와 무의 당당함

 

벌레마저 범접하지 못 할

저 카리스마를 본다.

 

나의 다리는 흔들리는데

텃밭의 무와 배추는 강철 같다.

 


수다

 

 

너를 만나면

무슨 얘기든 하고 싶다.

 

네가 무슨 얘기를 해도

나는 재미가 있다.

 

내가 하는 얘기가 재미 없어도

너는 재미 있게 들어준다.

 

내 얘기는 늘 썰렁하지만

너는 늘 웃음보를 터뜨린다.

 

너를 만나면

늘 수다를 떨고 싶다.

 

 


첨단대교 풍경

 

 

바람이 서늘한 영산강에서

가을을 온몸으로 느낀다.

맑은 하늘과 맑은 공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진다면

내 걱정은 기우이리라.

 

강가 버드나무 옆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서

세월을 낚는 강태공을 보았다.

가을이 물든 강물을 보면서

가을 강처럼 말라야하리라

다짐을 한다.

 

친구가 운영하는 골프연습장을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내가 골프를 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복도 순회 감독

 

끊임없이 복도를 왔다 갔다 한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풀고 있다.

감독교사는 매의 눈으로 학생들을 감시한다.

불공정정행위를 없애려고 한다.

 

나는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복도를 걷고 또 걷는다.

끝종이 울릴 때까지

 

화장실에 가는 학생이 있는가?

시험지에 이상은 없는가?

OMR카드는 부족하지 않는가?

 

시험문제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러 다니는

출제교사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시험을 보는 동안 학교는 초긴장 상태다.

무사히 시험이 끝나기를 기도한다.

 

시험 종료 10분전임을 알리는 방송이 반갑다.

 

시험지를 넘기는 소리

마킹하는 소리

서술형 답을 고치는 소리

기침소리

한숨소리

 

드디어 시험 끝종이 울린다.



가을바람

 

 

어젯밤에 비가 내리고

지금 가을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창문 틈으로 들려오는

요란한 바람소리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

 

배롱나무꽃은 시들어 가고

금목서꽃도 가을비에 시들고

성급한 나뭇잎은 벌써 단풍으로 물들고

 

내 마음에도

가을바람이 불어오는가

왠지 허전한 마음

 

 

 

목련 열매와 새

 

전교조 분회모임 때 찾아간

담양 황금소나무 정원

백목련 자목련 나무에 빨간 열매가 열려 있다.

 

열매 꼬투리가 벌어진 사이로

빠알간 씨가 보인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얼른 씨를 빼물고

가지에 앉아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지난 봄날 화려하게 꽃피어

벌나비를 부르던 백목련과 자목련

 

이 가을에는 빠알간 열매로

빠알갛게 익은 씨로

새들을 유혹한다.

 

 

동백씨

 

빠알간 동백꽃이 지고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

동백 열매 붉게 익어서 마음이 설레는데

동백 열매의 꼬투리가 세 쪽으로

벌어지면 둥그렇게 모여 있던

까만 동백씨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동백 열매 하나에

까만 씨가 다섯 개에서 여덟 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있다.

 

 

 



 

 

까만 밤이다.

등불을 훤하게 켜고 책을 읽는다.

 

텔레비전을 꺼버린 밤은 고요하다.

이 고요한 밤에 명상에 잠기리라.

 

대낮의 소음은 맹렬하다.

온갖 소리들이 귓청을 때린다.

그러나 밤이 되면 소음도 잠이 든다.

 

밤은 차분해지는 시간이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이다.

 

 

어떤 시화전

 

 

네모 반듯한 판넬이 아니고

이상한 모양의 판넬에 시를 적었다.

 

어떤 학생들은

엄마 몸빼에 시를 써서

세워 놓은 나무 가지에 걸었다.

 

설립자 묘소 앞에 전시한 작품들

국어과 출신 교감선생님은 오시지 않고

 

나는 문학써클 지도교사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았던

1988년 가을

시화전이 열리던

금호고등학교 교정

 

 

축시를 쓰던 시절

 

축하하는 마음이 넘쳐나거나

간절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나는 축시를 여러 편 썼지.

 

고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동창회 프로그램에

처음 축시를 썼지.

 

전교조 죽회분회 창립식 때

번창하라는 축시를 읽었지.

 

서울 미아리에서 선배 결혼식 때

다방에서 축시를 다듬었지.

서울 강남에서 친구 결혼식에서 축시를 읽었지.

 

KBC 방송국홀에서

후배인 미술교사 결혼식 축시를

읽으며 하객들을 웃겼지.

 

광주 어느 예식장에서

국어과 후배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의미심장한 축시를 읽었지.

 

2003년인가에는 신양파크호텔 홀에서

신부인 선배 국어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나마스테를 넣은

축시를 낭독해서

식장 분위기를 띄웠지.

 

의정부에서

선배 부친 팔순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가족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지.

 

광주일고 개교 70주년을 기념하여

'일고여,일고인이여'라는 장시를

학생들에게 낭독하게 하여

기념식장을 뜨겁게 달궜지.

 

2012년인가

전교조 성덕고등학교 분회 창립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행사를

빚나게 했었지.

 

나는 축시를 쓰고 낭독할 때마다

축하하는 마음과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뿍 담았지.

 

언제 축시를 쓸지

알 수 없는 요즘

축시를 쓰던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은행

 

출근길에 향토박물관 정류소로

시내버스를 타러 가는데

길바닥에 은행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은행을

사람들은 피한다.

나는 수억 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를

냄새가 난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그 놀라운 생명력 앞에서

겸허하게 고개를 숙였다.

 

 

한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내가 자랑스러울 수 있게 해주는

그리하여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언제라도 너를 불러내어 멋진 글을 쓸 수 있어서

나는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만약 내가 너를 몰랐다면

내 삶의 대부분은 어두운 터널

너와 더불어 나의 인생은 늘 즐거웠으니

이제 나는 너에게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하겠다.

 

내가 너를 만난 어린 꼬마였던 때부터

날마다 눈을 부릅뜨고 침발라 책장을 넘기는 지금까지

너에 대한 자부심이 무장 커졌고

너를 더 잘 쓰려고 노력했는데

날마다 아파하고 망가지는 너를 보면서

나는 더욱 더 너를 사랑할 것을 다짐한다.

 

 

생명력

 

가지가 사정없이 잘려나간

첨단우물살구나무가 잘려나간

가지 바로 앞에서 새로운

가지를 내밀었다.

잘려나간 가지를 그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살구나무는 이 가을에

새로운 가지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여리지만 올 겨울을

넘기고 새봄이 오면

가지에 화사한 꽃등을 달고

우리 앞에 환하게 웃으리라.

 

 

 

 

돌멩이 두 개

 

 

운명이었을까?

그 돌멩이는 왜 내 손을 떠났을까?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나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페퍼포그차를 향해

돌멩이 두 개를 힘차게 던졌다.

 

1981년 9월 29일

중앙도서관 앞에서 시작된 시위는

엄청나게 격렬했다.

담을 넘어서 시내로 진출하기도 했다.

반제 반파쇼 민중 민주 결의대회

내가 던진 돌멩이는 분노하는 돌멩이였다.

나는 붙잡혀서 닭장차에 실려

서부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돌멩이 두 개는 운명이었을까?



뿌리

 

 

고추는 뿌리가 얕아서

비바람이 치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래서 반드시 지줏대를 세우고 고

춧대를 묶어주어야 한다.

 

가지는 뿌리가 깊어서

1미터까지 땅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짓대를 뽑으려면 몹시 힘이 든다.

 

식물도 사람도 뿌리가 다 다르다.

 


가지 뿌리

 

어제 베어낸 가지의

밑둥을 잡고

흔들어서

가지 뿌리를 뽑았다.

뿌리가 단단히

흙을 쥐고 있어서

뽑는데 애를 먹었다.

대지에 굳게

뿌리를 박은 가지는

숱하게 꽃을 피우고

가지를 매달았었다.



영산포장

 

 

영산포장에 갔다.

생조기가 싸다.

3만원에 30마리다.

다른 해산물도 싸다.

시장 앞 금강식당에서

조기매운탕에 점심을 먹었다.

2인분에 12,000원이다.

조기가 10마리나 들어있다.

점심상이 푸짐하다.

영산포 인심이 푸짐하다.



고추

 

 

오늘 저녁에 상추쌈밥을 먹었다. 학교 텃밭에서 따온 상추에 밥과 고추와 가지볶음과 김치를 싸서 먹었다. 아, 매워! 고추가 너무 매워서 눈물을 한참이나 흘렸다. 눈물을 흘리고 났더니 카타르시다. 정화다.

 

가끔씩 눈물을 흘려야 하겠다. 요새 울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 울고 싶을 때는 체면 차리지 말고 울어버리자.

 

오늘 매운 고추가 내 생의 감각을 살려놓았다.



노각

 

 

일곡동 한새봉 농업생태공원 단오텃밭에서 가지 두 주를 베어내고 오이 넝쿨을 옮기면서 노각을 만났다. 폭염이 대지를 달굴 때 오이 모종을 옮겨 심으면서 제대로 살 수 있을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가지 잎에 가려진 덕분에 이 오이는 노각이 되었던 것이다.

 

주목 받지 못 하면서도 착실히 내실을 다지는 존재들이 많다.




동백씨

 

 

교정을 산책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동백씨를 발견했다.

동백꽃이 피었다 지면서 열매가

붉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열매가 익고 벌어져서

씨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동백열매는 지난 폭염 속에서도

부지런히 익었던 모양이다.

오, 자연의 위대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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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10월 토론작품] 부드러운 'ㄴ' 외 21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0.19  조회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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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시-2018-10-채선당.hwp


부드러운 'ㄴ' 외 21편

김성중

 

 

나는 난 네가 정말 좋아.

너는 넌 내가 정말 좋니?

 

'ㄴ'이 들어간 낱말을 찾는다.

 

나라 나리 놈 님 남 누리 눈 논 노리개

‘-ㄴ다’는 동사 현재형 산다 운다 논다 본다 잔다

형용사 활용형은 아름다운 고운 예쁜 사랑스러운

 

'ㄴ'이 엎어지면 'ㄱ'이 되고

혹이 하나 붙으면 'ㄷ'이 된다.

 

여자 이름에는 'ㄴ'이 많기도 많다.

민지 지민 지은 서윤 윤지 지윤 노라

 

시험 감독을 하면서 좌석표를 보니까

어느 여자반은 서른 한 명 중에서

스물 일곱 명의 이름에 'ㄴ'이 들어 있다.

 

남자 이름 중에도 'ㄴ'이 많다.

승권 안수 찬흠 성윤 선빈 선형 형선

만호 호만 민준 유준 민호 민수

수민 주민 우권 권호 호연 준태 태준

 

그래 그래 ㄴ을 넣으면

뭐든지 부드러워진다.

 

 

 

해직수첩 사진

 

 

어느 해직 선배가 보내온

해직교사 수첩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눈물이 난다.

서른 즈음의 사진

사진 속 사내의 얼굴

세상을 날카롭게 쏘아보는 눈

지금은 세파에 닳아서

두루뭉술해진 눈.




단오반텃밭 구억배추와 무

 

 

이슬을 머금은 이파리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다.

 

대지에 단단히 뿌리 박은

저 구억배추와 무의 당당함

 

벌레마저 범접하지 못 할

저 카리스마를 본다.

 

나의 다리는 흔들리는데

텃밭의 무와 배추는 강철 같다.

 


수다

 

 

너를 만나면

무슨 얘기든 하고 싶다.

 

네가 무슨 얘기를 해도

나는 재미가 있다.

 

내가 하는 얘기가 재미 없어도

너는 재미 있게 들어준다.

 

내 얘기는 늘 썰렁하지만

너는 늘 웃음보를 터뜨린다.

 

너를 만나면

늘 수다를 떨고 싶다.

 

 


첨단대교 풍경

 

 

바람이 서늘한 영산강에서

가을을 온몸으로 느낀다.

맑은 하늘과 맑은 공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진다면

내 걱정은 기우이리라.

 

강가 버드나무 옆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서

세월을 낚는 강태공을 보았다.

가을이 물든 강물을 보면서

가을 강처럼 말라야하리라

다짐을 한다.

 

친구가 운영하는 골프연습장을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내가 골프를 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복도 순회 감독

 

끊임없이 복도를 왔다 갔다 한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풀고 있다.

감독교사는 매의 눈으로 학생들을 감시한다.

불공정정행위를 없애려고 한다.

 

나는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복도를 걷고 또 걷는다.

끝종이 울릴 때까지

 

화장실에 가는 학생이 있는가?

시험지에 이상은 없는가?

OMR카드는 부족하지 않는가?

 

시험문제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러 다니는

출제교사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시험을 보는 동안 학교는 초긴장 상태다.

무사히 시험이 끝나기를 기도한다.

 

시험 종료 10분전임을 알리는 방송이 반갑다.

 

시험지를 넘기는 소리

마킹하는 소리

서술형 답을 고치는 소리

기침소리

한숨소리

 

드디어 시험 끝종이 울린다.



가을바람

 

 

어젯밤에 비가 내리고

지금 가을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창문 틈으로 들려오는

요란한 바람소리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

 

배롱나무꽃은 시들어 가고

금목서꽃도 가을비에 시들고

성급한 나뭇잎은 벌써 단풍으로 물들고

 

내 마음에도

가을바람이 불어오는가

왠지 허전한 마음

 

 

 

목련 열매와 새

 

전교조 분회모임 때 찾아간

담양 황금소나무 정원

백목련 자목련 나무에 빨간 열매가 열려 있다.

 

열매 꼬투리가 벌어진 사이로

빠알간 씨가 보인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얼른 씨를 빼물고

가지에 앉아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지난 봄날 화려하게 꽃피어

벌나비를 부르던 백목련과 자목련

 

이 가을에는 빠알간 열매로

빠알갛게 익은 씨로

새들을 유혹한다.

 

 

동백씨

 

빠알간 동백꽃이 지고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

동백 열매 붉게 익어서 마음이 설레는데

동백 열매의 꼬투리가 세 쪽으로

벌어지면 둥그렇게 모여 있던

까만 동백씨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동백 열매 하나에

까만 씨가 다섯 개에서 여덟 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있다.

 

 

 



 

 

까만 밤이다.

등불을 훤하게 켜고 책을 읽는다.

 

텔레비전을 꺼버린 밤은 고요하다.

이 고요한 밤에 명상에 잠기리라.

 

대낮의 소음은 맹렬하다.

온갖 소리들이 귓청을 때린다.

그러나 밤이 되면 소음도 잠이 든다.

 

밤은 차분해지는 시간이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이다.

 

 

어떤 시화전

 

 

네모 반듯한 판넬이 아니고

이상한 모양의 판넬에 시를 적었다.

 

어떤 학생들은

엄마 몸빼에 시를 써서

세워 놓은 나무 가지에 걸었다.

 

설립자 묘소 앞에 전시한 작품들

국어과 출신 교감선생님은 오시지 않고

 

나는 문학써클 지도교사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았던

1988년 가을

시화전이 열리던

금호고등학교 교정

 

 

축시를 쓰던 시절

 

축하하는 마음이 넘쳐나거나

간절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나는 축시를 여러 편 썼지.

 

고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동창회 프로그램에

처음 축시를 썼지.

 

전교조 죽회분회 창립식 때

번창하라는 축시를 읽었지.

 

서울 미아리에서 선배 결혼식 때

다방에서 축시를 다듬었지.

서울 강남에서 친구 결혼식에서 축시를 읽었지.

 

KBC 방송국홀에서

후배인 미술교사 결혼식 축시를

읽으며 하객들을 웃겼지.

 

광주 어느 예식장에서

국어과 후배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의미심장한 축시를 읽었지.

 

2003년인가에는 신양파크호텔 홀에서

신부인 선배 국어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나마스테를 넣은

축시를 낭독해서

식장 분위기를 띄웠지.

 

의정부에서

선배 부친 팔순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가족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지.

 

광주일고 개교 70주년을 기념하여

'일고여,일고인이여'라는 장시를

학생들에게 낭독하게 하여

기념식장을 뜨겁게 달궜지.

 

2012년인가

전교조 성덕고등학교 분회 창립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행사를

빚나게 했었지.

 

나는 축시를 쓰고 낭독할 때마다

축하하는 마음과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뿍 담았지.

 

언제 축시를 쓸지

알 수 없는 요즘

축시를 쓰던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은행

 

출근길에 향토박물관 정류소로

시내버스를 타러 가는데

길바닥에 은행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은행을

사람들은 피한다.

나는 수억 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를

냄새가 난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그 놀라운 생명력 앞에서

겸허하게 고개를 숙였다.

 

 

한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내가 자랑스러울 수 있게 해주는

그리하여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언제라도 너를 불러내어 멋진 글을 쓸 수 있어서

나는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만약 내가 너를 몰랐다면

내 삶의 대부분은 어두운 터널

너와 더불어 나의 인생은 늘 즐거웠으니

이제 나는 너에게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하겠다.

 

내가 너를 만난 어린 꼬마였던 때부터

날마다 눈을 부릅뜨고 침발라 책장을 넘기는 지금까지

너에 대한 자부심이 무장 커졌고

너를 더 잘 쓰려고 노력했는데

날마다 아파하고 망가지는 너를 보면서

나는 더욱 더 너를 사랑할 것을 다짐한다.

 

 

생명력

 

가지가 사정없이 잘려나간

첨단우물살구나무가 잘려나간

가지 바로 앞에서 새로운

가지를 내밀었다.

잘려나간 가지를 그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살구나무는 이 가을에

새로운 가지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여리지만 올 겨울을

넘기고 새봄이 오면

가지에 화사한 꽃등을 달고

우리 앞에 환하게 웃으리라.

 

 

 

 

돌멩이 두 개

 

 

운명이었을까?

그 돌멩이는 왜 내 손을 떠났을까?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나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페퍼포그차를 향해

돌멩이 두 개를 힘차게 던졌다.

 

1981년 9월 29일

중앙도서관 앞에서 시작된 시위는

엄청나게 격렬했다.

담을 넘어서 시내로 진출하기도 했다.

반제 반파쇼 민중 민주 결의대회

내가 던진 돌멩이는 분노하는 돌멩이였다.

나는 붙잡혀서 닭장차에 실려

서부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돌멩이 두 개는 운명이었을까?



뿌리

 

 

고추는 뿌리가 얕아서

비바람이 치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래서 반드시 지줏대를 세우고 고

춧대를 묶어주어야 한다.

 

가지는 뿌리가 깊어서

1미터까지 땅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짓대를 뽑으려면 몹시 힘이 든다.

 

식물도 사람도 뿌리가 다 다르다.

 


가지 뿌리

 

어제 베어낸 가지의

밑둥을 잡고

흔들어서

가지 뿌리를 뽑았다.

뿌리가 단단히

흙을 쥐고 있어서

뽑는데 애를 먹었다.

대지에 굳게

뿌리를 박은 가지는

숱하게 꽃을 피우고

가지를 매달았었다.



영산포장

 

 

영산포장에 갔다.

생조기가 싸다.

3만원에 30마리다.

다른 해산물도 싸다.

시장 앞 금강식당에서

조기매운탕에 점심을 먹었다.

2인분에 12,000원이다.

조기가 10마리나 들어있다.

점심상이 푸짐하다.

영산포 인심이 푸짐하다.



고추

 

 

오늘 저녁에 상추쌈밥을 먹었다. 학교 텃밭에서 따온 상추에 밥과 고추와 가지볶음과 김치를 싸서 먹었다. 아, 매워! 고추가 너무 매워서 눈물을 한참이나 흘렸다. 눈물을 흘리고 났더니 카타르시다. 정화다.

 

가끔씩 눈물을 흘려야 하겠다. 요새 울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 울고 싶을 때는 체면 차리지 말고 울어버리자.

 

오늘 매운 고추가 내 생의 감각을 살려놓았다.



노각

 

 

일곡동 한새봉 농업생태공원 단오텃밭에서 가지 두 주를 베어내고 오이 넝쿨을 옮기면서 노각을 만났다. 폭염이 대지를 달굴 때 오이 모종을 옮겨 심으면서 제대로 살 수 있을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가지 잎에 가려진 덕분에 이 오이는 노각이 되었던 것이다.

 

주목 받지 못 하면서도 착실히 내실을 다지는 존재들이 많다.




동백씨

 

 

교정을 산책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동백씨를 발견했다.

동백꽃이 피었다 지면서 열매가

붉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열매가 익고 벌어져서

씨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동백열매는 지난 폭염 속에서도

부지런히 익었던 모양이다.

오, 자연의 위대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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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
추월산의 시 2018. 10. 6. 06:51
통합 게시판

[김성중 9월 토론작품] 가난한 장남 외 21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09.28  조회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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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2018-9-금시-현대옥).hwp


가난한 장남 외 21편

김성중

 

 

아버지께 용돈을 두둑히 드리지 못 하는

가난한 장남이 할 일은 별로 없다.

일곡도서관에 가서 책이나 읽을 일이다.

무등산에 가끔 오를 일이다.

 

결혼식장에 가서 축의금을

낼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장례식장에 가서 망자의 편안한

저승길을 기원할 일이다.

 

사람들과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할 일이다.

막걸리 값을 가끔씩 낼 일이다.

조국의 평화통일을 날마다 빌 일이다.

 

가난한 장남이 할 일은

한새봉 농업생태공원에서 놀다가

영산강변 폐가를 찾아가서

텃밭을 일굴 일이다.

 

 

중국단풍나무 아래

 

 

한가위라 풍성한 날

중국단풍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생각에 잠긴다.

 

인생이란?

부모란?

효도란?

사랑이란?

 

중국단풍나무 아래

나긋한 벤치에서

나의 가을이 익어간다.

 


광주송정역

 

 

추석을 쇠고

떠나는 사람들

 

웃는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만나나

우리 이제 함께 가는 거죠

만나고 헤어지고

 

새벽 여섯 시 이십 분

딸아이를 실은 SRT열차는

철로를 미끄러지며

저 멀리 달아나고

 

새벽잠을 깬 내 눈은

금방이라도 감길 듯.

 

 

 

 

한가윗달

 

 

소원을 빌어요.

 

한반도의 평화

세계의 평화

전쟁 없는 세상

빈부 없는 세상

 

질투는 저리 가고

칭찬만 남고

실업자는 없고

노동자가 넘치는 거리

 

금강산에도 가고

묘향산에도 가고

개마고원에도 가고

백두산 천지에도 가고

 

만월대도 가고

을밀대도 가고

박연폭포도 가고

가고

가고

또 가고

 

비무장지대는 저리 가고

우린 평화지대로 가고

 



 

 

나는 나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고민하며 세상을 살아가는가?

 

나는 뼈와 살과 피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영혼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내 사유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가?

 

조상을 그리워하며 수확의 기쁨을 함께 하는 한가위 명절, 조상의 피가 내 핏줄을 타고 흐른다. 기억할 수도 없는 조상들의 은덕을 생각한다.

 

나는 다시 내 존재의 이유를 생각한다. 뵌 적이 없는 6.25때 돌아가신 두 분의 큰아버지를 생각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뵌 적이 없는 증조할머니와 증조할아버지를 생각한다.

 

아직 건강하게 생존해 계시는 부모님을 생각한다. 내일이 추석인데 나는 내 존재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한다.



타이어 바람 주의

 

 

내가 세피아를 몰던 시절, 동네 카센터에서 타이어를 네 짝 모두 교체했다. 다음날 아버지를 모시고 춘천으로 사돈 조문을 가는 길, 운전을 하는데 자꾸 차가 한 쪽으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정읍휴게소 근처에서 누군가 손짓을 해서 휴게소에 들러서 확인해보니까 운전석 쪽 바퀴의 바람이 많이도 빠져 있었다. 타이어를 교체하면서 "타이어 바람구멍"을 닫지 않은 것이었다.

 

문득 떠오르는 잊지 못할 일이다.

 

 

다시 무씨 뿌리기

 

 

단오반 텃밭에 조심스럽게 뿌린

무씨가 싹이 트지 않았다.

 

말바우장에서 사온 무씨를

단오반 텃밭에 다시 뿌렸다.

 

추석 쇠고 가서 보니까

예쁜 싹이 솟아나 있었다.

 

무가 잘 자라게

잘 속아 주고

벌레도 잡아줘야겠다.

 

 

 

명옥헌 원림

 

창평 가는 길 후산리

명옥헌을 찾아갔더니

배롱나무꽃이

시원치 않다.

 

올 여름 폭염에

배롱나무도 지쳤나보다.

 

후산리 입구 왕버드나무 뚝방

수련이 피어있는 연못을 지나서

달팽이 걸음으로 걸어가서

 

명옥헌 마루에 앉아

배롱나무 연못을 바라보며

잠시 세상을 잊어버리는 것도

좋을 것 같은 가을.

 


무씨

 

 

텃밭에 무씨를 뿌리고

싹이 나오기를

마음 졸이며 기다렸다.

 

배추 모종은

배추 모양을 갖춰가는데

무싹은 영영

싹아지가 보이지 않는다.

 

거름이 과했나?

그래서 녹았을까?

씨앗이 불량인가?

참새들이 쪼아 먹었을까?

 

무싹은 영영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슬

 

 

새벽에 텃밭에 가면 밭둑에

밤새 내린 이슬에 젖은

풀들이 나를 반긴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온 세상이 불타던 폭염의 새벽에도

어김없이 이슬을 머금은 풀을 만났다.

 

풀은 한 밤중이 지나는 시간까지 기다릴 줄 안다.

한낮의 땡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시들어가면서도

새벽녘에 맺힐 이슬을 기다릴 줄 안다.

 

보이지 않으면서도 존재하는

땅 위에서 숨을 쉬는 것들의 생명수

 

이슬의 공덕을 말을 하면서도

나는 이슬의 이슬이 되지 못하면서

이슬을 따라갈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오늘도 하루를 보낼 일을 걱정하기만 한다.

 

보이지 않는 이슬은

시들어가는 풀과 나무를 살려내는

화타보다 더 신통한 명의.



스무 살 선생

 

 

담양야간중학교는

담양동초등학교 교실을 빌려

낮에 일한 청소년들을 불러 모았지.

나는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강학이었네.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살 먹은 중학생들에게

형 같은 오빠 같은 선생이었네.

교지 "등불"에

「돌을 깨는 사람」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했었지.

스무 살 어린 선생이었던 난

순하디 순한

영혼을 만났었네.




소동파를 만나다

 

 

18년 전 광주제일고에서

적벽부를 가르치면서

동파를 만났지.

 

전라도닷컴 기자가 수업을 참관했었지.

전라도닷컴에 내 이야기가 실렸었지.

책을 여러 권 들고 교실에 들어갔었지.

지리 김선생이 그려준

적벽지도를 걸고 수업을 했었지.

 

6년 전에는

항저우 시호에서 동파를 만났지.

시호에서 배를 타고 유람하면서

시호를 보수하던 동파를 생각했지.

 

오늘 나는 임어당이 지은

소동파 평전

"쾌활한 천재"를 읽으며

동파를 더 깊이 알아간다.



안마기

 

 

내 자동차는 정비중

나는 안마기에 앉아서 안마중

안마기는 내 삭신을

밀고 당기고 조이며

신바람을 내는데

내 삭신은 모처럼만에 호강중

가을비 내리는 카센터

가을맞이 정비가 한창




자동차 정비소

 

 

수리하려는 자동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은

이렇게 정비를 한 차들이다.

자동차는 때가 되면

정비를 해야 한다.

우리네 인생도 가끔씩

정비를 해야 한다.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답게 살려면...

 


죽염

 

점심을 먹고

죽염으로 양치한 다음에

병뚜껑을 닫고 서랍에

넣으려다가 병을 놓쳤는데

죽염이 바닥에 흩어졌다.

얼른 종이에 쓸어

담아 병에 담고

나머지는 화장지에

물을 묻혀서 닦아냈다.

방심은 늘 화를 부른다.

긴장의 끈을 놓더라도

정신 줄을 놓지는 말아야지.




생채기

 

무정한 전정 톱에

가지를 몽땅 잃어버린

첨단 우물살구나무가

가을비를 맞고 서 있다.

갑자기 잘려나간

팔다리가 그리운 모양이다.

내년 봄에 어떤 모습일까?

아, 정원수의 비애여!



볼펜

 

 

머리를 누르면 심이 나오고 또 누르면 심이 들어가는 똑딱볼펜을 사랑해서 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글을 쓰거나 싸인을 했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볼펜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심을 꺼내보니까 잉크가 다 닳아져 있었다. 볼펜 껍데기는 멀쩡한데, 심만 갈아 끼우면 되는데, 나는 과감하게 나오지 않는 볼펜을 버렸다.

 

나는 그 볼펜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썼던 것 같다. 뭐든 쓰다보면 닳아지는데 말이다. 내 몸도 오랫동안 쓰다보니까 많이 닳아졌다. 눈도 닳아졌고, 팔도 닳아졌다. 어깨를 잘못 움직이면 통증이 심하다.



신새벽

 

 

나는 새벽 네 시에 신문이 왔는지 보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이 동네에서 새벽 네 시가 되면 어김없이 신문이 우리 집 현관 앞에 놓인 지 20년이 되었다. 신문배달원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우리 집 현관 앞에 신문을 던지고 간다.

 

나는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 눈을 떠서 신문을 읽는다.

 

앞으로는 저녁에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는 생활을 할 것 같다. 새벽의 고요함이 내 영혼을 맑게 하고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독서하고 사색하는 생활을 하고 싶으니까.




가을에

 

 

바람이 달라졌다.

구름이 달라졌다.

매미 울음이 그쳤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하늘이 달라졌다.

들판의 곡식이 익어간다.

나무들의 이파리가 달라졌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달라졌다.

 

텃밭에 배추모종을 옮겨 심었다.

무씨도 뿌렸다.

텃밭에 물을 주면서 느낀다.

새들의 날갯짓이 달라졌다.

 

가지치기를 한 나무들이 똠방하다.

가을은 달라지는 계절이다.

가을에는 달라져야 한다.

 

 

수료

 

 

나는 한때 교육대학원생이었지

시창작교육을 고민했었지

석사학위 청구 논문 예비발표까지 마쳤으나

논문을 준비해가는 과정에서 콱 막혀버렸지

수많은 석사학위 논문을 읽으면서

시창작교육이 매우 활발하다고 생각했었지

나는 아직도 시창작교육을 생각하고 있지

탈고 안될 논문을 구상하고 있지

 


사유

 

 

나는 가끔 우주를 사유한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을 먼저 사유한다.

지구를 돌고 있는 달을 사유한다.

지구가 돌고 있는 태양을 사유한다.

태양계의 다른 행성을 사유한다.

태양계가 속한 은하를 사유한다.

 

나는 무엇이든 사유한다.

천둥과 번개를

비와 눈과 이슬을 구름을

신과 사탄을

천국과 지옥을

부귀영화와 간난신고를

늘 사유한다.

 

인간은 소우주다.

인간을 존중해야 한다.

나는 반성한다.

나는 인간다운 인간인가?

 

 

거리에서

 

 

일곡동 식자재마트 옆

쉼터 앞 가로수에서

매미가 마지막으로

숨가쁜 울음을 토해내는

일요일 오후

바쁠 것 없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가하다.

일곡 청소년의 집

일곡 요양병원

북광주우체국

시방 일곡동은 한바탕

건축바람이 불고 있는데

오랫동안 이름을 날리던

봉창이 칼국수 집은 어디로 갔나.

그 자리에 ‘파도소리’ 들리는

횟집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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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9월 토론작품] 가난한 장남 외 21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09.28  조회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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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2018-9-금시-현대옥).hwp


가난한 장남 외 21편

김성중

 

 

아버지께 용돈을 두둑히 드리지 못 하는

가난한 장남이 할 일은 별로 없다.

일곡도서관에 가서 책이나 읽을 일이다.

무등산에 가끔 오를 일이다.

 

결혼식장에 가서 축의금을

낼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장례식장에 가서 망자의 편안한

저승길을 기원할 일이다.

 

사람들과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할 일이다.

막걸리 값을 가끔씩 낼 일이다.

조국의 평화통일을 날마다 빌 일이다.

 

가난한 장남이 할 일은

한새봉 농업생태공원에서 놀다가

영산강변 폐가를 찾아가서

텃밭을 일굴 일이다.

 

 

중국단풍나무 아래

 

 

한가위라 풍성한 날

중국단풍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생각에 잠긴다.

 

인생이란?

부모란?

효도란?

사랑이란?

 

중국단풍나무 아래

나긋한 벤치에서

나의 가을이 익어간다.

 


광주송정역

 

 

추석을 쇠고

떠나는 사람들

 

웃는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만나나

우리 이제 함께 가는 거죠

만나고 헤어지고

 

새벽 여섯 시 이십 분

딸아이를 실은 SRT열차는

철로를 미끄러지며

저 멀리 달아나고

 

새벽잠을 깬 내 눈은

금방이라도 감길 듯.

 

 

 

 

한가윗달

 

 

소원을 빌어요.

 

한반도의 평화

세계의 평화

전쟁 없는 세상

빈부 없는 세상

 

질투는 저리 가고

칭찬만 남고

실업자는 없고

노동자가 넘치는 거리

 

금강산에도 가고

묘향산에도 가고

개마고원에도 가고

백두산 천지에도 가고

 

만월대도 가고

을밀대도 가고

박연폭포도 가고

가고

가고

또 가고

 

비무장지대는 저리 가고

우린 평화지대로 가고

 



 

 

나는 나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고민하며 세상을 살아가는가?

 

나는 뼈와 살과 피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영혼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내 사유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가?

 

조상을 그리워하며 수확의 기쁨을 함께 하는 한가위 명절, 조상의 피가 내 핏줄을 타고 흐른다. 기억할 수도 없는 조상들의 은덕을 생각한다.

 

나는 다시 내 존재의 이유를 생각한다. 뵌 적이 없는 6.25때 돌아가신 두 분의 큰아버지를 생각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뵌 적이 없는 증조할머니와 증조할아버지를 생각한다.

 

아직 건강하게 생존해 계시는 부모님을 생각한다. 내일이 추석인데 나는 내 존재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한다.



타이어 바람 주의

 

 

내가 세피아를 몰던 시절, 동네 카센터에서 타이어를 네 짝 모두 교체했다. 다음날 아버지를 모시고 춘천으로 사돈 조문을 가는 길, 운전을 하는데 자꾸 차가 한 쪽으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정읍휴게소 근처에서 누군가 손짓을 해서 휴게소에 들러서 확인해보니까 운전석 쪽 바퀴의 바람이 많이도 빠져 있었다. 타이어를 교체하면서 "타이어 바람구멍"을 닫지 않은 것이었다.

 

문득 떠오르는 잊지 못할 일이다.

 

 

다시 무씨 뿌리기

 

 

단오반 텃밭에 조심스럽게 뿌린

무씨가 싹이 트지 않았다.

 

말바우장에서 사온 무씨를

단오반 텃밭에 다시 뿌렸다.

 

추석 쇠고 가서 보니까

예쁜 싹이 솟아나 있었다.

 

무가 잘 자라게

잘 속아 주고

벌레도 잡아줘야겠다.

 

 

 

명옥헌 원림

 

창평 가는 길 후산리

명옥헌을 찾아갔더니

배롱나무꽃이

시원치 않다.

 

올 여름 폭염에

배롱나무도 지쳤나보다.

 

후산리 입구 왕버드나무 뚝방

수련이 피어있는 연못을 지나서

달팽이 걸음으로 걸어가서

 

명옥헌 마루에 앉아

배롱나무 연못을 바라보며

잠시 세상을 잊어버리는 것도

좋을 것 같은 가을.

 


무씨

 

 

텃밭에 무씨를 뿌리고

싹이 나오기를

마음 졸이며 기다렸다.

 

배추 모종은

배추 모양을 갖춰가는데

무싹은 영영

싹아지가 보이지 않는다.

 

거름이 과했나?

그래서 녹았을까?

씨앗이 불량인가?

참새들이 쪼아 먹었을까?

 

무싹은 영영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슬

 

 

새벽에 텃밭에 가면 밭둑에

밤새 내린 이슬에 젖은

풀들이 나를 반긴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온 세상이 불타던 폭염의 새벽에도

어김없이 이슬을 머금은 풀을 만났다.

 

풀은 한 밤중이 지나는 시간까지 기다릴 줄 안다.

한낮의 땡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시들어가면서도

새벽녘에 맺힐 이슬을 기다릴 줄 안다.

 

보이지 않으면서도 존재하는

땅 위에서 숨을 쉬는 것들의 생명수

 

이슬의 공덕을 말을 하면서도

나는 이슬의 이슬이 되지 못하면서

이슬을 따라갈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오늘도 하루를 보낼 일을 걱정하기만 한다.

 

보이지 않는 이슬은

시들어가는 풀과 나무를 살려내는

화타보다 더 신통한 명의.



스무 살 선생

 

 

담양야간중학교는

담양동초등학교 교실을 빌려

낮에 일한 청소년들을 불러 모았지.

나는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강학이었네.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살 먹은 중학생들에게

형 같은 오빠 같은 선생이었네.

교지 "등불"에

「돌을 깨는 사람」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했었지.

스무 살 어린 선생이었던 난

순하디 순한

영혼을 만났었네.




소동파를 만나다

 

 

18년 전 광주제일고에서

적벽부를 가르치면서

동파를 만났지.

 

전라도닷컴 기자가 수업을 참관했었지.

전라도닷컴에 내 이야기가 실렸었지.

책을 여러 권 들고 교실에 들어갔었지.

지리 김선생이 그려준

적벽지도를 걸고 수업을 했었지.

 

6년 전에는

항저우 시호에서 동파를 만났지.

시호에서 배를 타고 유람하면서

시호를 보수하던 동파를 생각했지.

 

오늘 나는 임어당이 지은

소동파 평전

"쾌활한 천재"를 읽으며

동파를 더 깊이 알아간다.



안마기

 

 

내 자동차는 정비중

나는 안마기에 앉아서 안마중

안마기는 내 삭신을

밀고 당기고 조이며

신바람을 내는데

내 삭신은 모처럼만에 호강중

가을비 내리는 카센터

가을맞이 정비가 한창




자동차 정비소

 

 

수리하려는 자동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은

이렇게 정비를 한 차들이다.

자동차는 때가 되면

정비를 해야 한다.

우리네 인생도 가끔씩

정비를 해야 한다.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답게 살려면...

 


죽염

 

점심을 먹고

죽염으로 양치한 다음에

병뚜껑을 닫고 서랍에

넣으려다가 병을 놓쳤는데

죽염이 바닥에 흩어졌다.

얼른 종이에 쓸어

담아 병에 담고

나머지는 화장지에

물을 묻혀서 닦아냈다.

방심은 늘 화를 부른다.

긴장의 끈을 놓더라도

정신 줄을 놓지는 말아야지.




생채기

 

무정한 전정 톱에

가지를 몽땅 잃어버린

첨단 우물살구나무가

가을비를 맞고 서 있다.

갑자기 잘려나간

팔다리가 그리운 모양이다.

내년 봄에 어떤 모습일까?

아, 정원수의 비애여!



볼펜

 

 

머리를 누르면 심이 나오고 또 누르면 심이 들어가는 똑딱볼펜을 사랑해서 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글을 쓰거나 싸인을 했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볼펜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심을 꺼내보니까 잉크가 다 닳아져 있었다. 볼펜 껍데기는 멀쩡한데, 심만 갈아 끼우면 되는데, 나는 과감하게 나오지 않는 볼펜을 버렸다.

 

나는 그 볼펜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썼던 것 같다. 뭐든 쓰다보면 닳아지는데 말이다. 내 몸도 오랫동안 쓰다보니까 많이 닳아졌다. 눈도 닳아졌고, 팔도 닳아졌다. 어깨를 잘못 움직이면 통증이 심하다.



신새벽

 

 

나는 새벽 네 시에 신문이 왔는지 보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이 동네에서 새벽 네 시가 되면 어김없이 신문이 우리 집 현관 앞에 놓인 지 20년이 되었다. 신문배달원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우리 집 현관 앞에 신문을 던지고 간다.

 

나는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 눈을 떠서 신문을 읽는다.

 

앞으로는 저녁에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는 생활을 할 것 같다. 새벽의 고요함이 내 영혼을 맑게 하고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독서하고 사색하는 생활을 하고 싶으니까.




가을에

 

 

바람이 달라졌다.

구름이 달라졌다.

매미 울음이 그쳤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하늘이 달라졌다.

들판의 곡식이 익어간다.

나무들의 이파리가 달라졌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달라졌다.

 

텃밭에 배추모종을 옮겨 심었다.

무씨도 뿌렸다.

텃밭에 물을 주면서 느낀다.

새들의 날갯짓이 달라졌다.

 

가지치기를 한 나무들이 똠방하다.

가을은 달라지는 계절이다.

가을에는 달라져야 한다.

 

 

수료

 

 

나는 한때 교육대학원생이었지

시창작교육을 고민했었지

석사학위 청구 논문 예비발표까지 마쳤으나

논문을 준비해가는 과정에서 콱 막혀버렸지

수많은 석사학위 논문을 읽으면서

시창작교육이 매우 활발하다고 생각했었지

나는 아직도 시창작교육을 생각하고 있지

탈고 안될 논문을 구상하고 있지

 


사유

 

 

나는 가끔 우주를 사유한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을 먼저 사유한다.

지구를 돌고 있는 달을 사유한다.

지구가 돌고 있는 태양을 사유한다.

태양계의 다른 행성을 사유한다.

태양계가 속한 은하를 사유한다.

 

나는 무엇이든 사유한다.

천둥과 번개를

비와 눈과 이슬을 구름을

신과 사탄을

천국과 지옥을

부귀영화와 간난신고를

늘 사유한다.

 

인간은 소우주다.

인간을 존중해야 한다.

나는 반성한다.

나는 인간다운 인간인가?

 

 

거리에서

 

 

일곡동 식자재마트 옆

쉼터 앞 가로수에서

매미가 마지막으로

숨가쁜 울음을 토해내는

일요일 오후

바쁠 것 없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가하다.

일곡 청소년의 집

일곡 요양병원

북광주우체국

시방 일곡동은 한바탕

건축바람이 불고 있는데

오랫동안 이름을 날리던

봉창이 칼국수 집은 어디로 갔나.

그 자리에 ‘파도소리’ 들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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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
추월산의 시 2018. 1. 12. 07:41
한새봉 청설모

김성중

 

 

한새봉을 걷다가 청설모 두 마리를 만났다.

산책로 옆 감나무에서 감을 따서는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렵하게 날아서는

산책로를 건너서 소나무 속으로 사라진다.

 

청설모는 나무타기의 달인이다.

아주 작은 가지를 밟고서도

다른 나무로 휙 날아간다.

청설모는 몸무게가 없다.

 

청설모는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먹는 모양이다.

그러나 인간을 매우 두려워한다.

인간은 자연계의 무법자니까.

 

신작로처럼 넓어져버린

한새봉 산책로 주변에서

청설모는 힘겹게

겨울을 지나고 있다.




겨울비

 

 

함박눈을 기다리는데

겨울비가 내린다

담양호반 물 빠진 자국 위로

소한 지나 겨울비가 내린다

겨울비가 포근히 내리는 날

대지는 겨우내 목마른 혀를 축이고

그리움에 마음 졸이던 내 가슴도

어느새 따뜻한 봄날을 꿈꾼다

 

 

어제는 비 오늘은 눈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으니

이제 겨울다운 겨울인가

차들도 엉금엉금 기어다니고

세상은 느림보가 되어버렸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송이들

한 송이 두 송이 세다가

아, 눈이 내려서 좋은 아이들 마냥

나는 벌써 눈썰매를 타고 있다

어제는 봄비 같은 겨울비가 내리고

오늘은 천지사방 은세계

각시방에 드리운 순백의 커튼 위로

하얀 눈이 내린다.



건우봉에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쑥고개길

현대아파트 바로 뒷산에 오르니

온갖 새들이 아침을 우지진다.

관악산 둘레길을 따라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고도 느긋하다.

나는 여기에 왜 왔는가?

나그네새인가?

바람 따라 흘러가는 구름인가?

이제 곧 부여로 가겠네.

신동엽과 김시습을 만나러...

 


매월당 만나러 가는 길

 

 

부여 만수산 무량사

떠돌던 김시습이 머물다 스러진 곳

생육신 김시습을

내일 만나서

회포나 풀어야겠다.

 

어제는 무량사 가려다가

서울로 와버렸다.

무량사 가는 길이 이리 멀 줄

매월당 선생은 귀띔도 안 해주고

봉천터널 지나 신림동 비탈길

기어기어 올라왔다.

 

내일 내설악 용대리 백담사에 가서

대청봉에서 흘러내린 웅덩이가

백 개인지 세어볼까나

매월당 김시습을 만나고

만해 한용운을 만나고

일해 전두환을 만나고

황태 명태 동태를 만나고

내 스무 살 군영시절을 만나고

 

오늘 옛날 사람을 만났다.

금오신화를 쓴 작가

김시습의 고독을 생각했다.

세상을 등지고 산에 들어

금오신화를 쓰던 시절

걷고 또 걸으며 인생을 곱씹던 시절

매월당의 허허로움을 만났다.

 



물병 잃어버리기

 


요즘 차를 담은 물병을 가지고 다닌다.

어제 연수를 갈 때도 가지고 갔다.

오동도를 걸을 때는 손에 들고 다녔다.

유람선을 탈 때도 가지고 갔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펜션에 갈 때도 가지고 갔을 것이다.

아침에 펜션을 나오면서 확인해보니까

물병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버스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리를 확인해보니까 물병이 없다.

어디로 갔을까?

물병을 담는 주머니가 예뻤는데...

그 물병과 나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앞으로 잃어버릴 것들이 많다.




월담

 

 

아침에 교정을 뛴다.

만보걷기의 시작이다.

 

우리 학교와 남부대 경계에 울타리가 있다.

첨단중과 방통대의 경계에도 울타리가 있다.

농구장과 텃밭 위 첨단2동 둘레길

경계에도 울타리가 있다.

사방이 울타리다.

 

오늘 아침에 급식실 옆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남부대 수영장 쪽에서 담을 넘으려고

울타리로 다가오는 남학생들이 보인다.

나는 소리친다.

"정문으로! 정문으로 돌아가라!!"

학생들은 똥씹은 얼굴로 정문으로 돌아간다.

 

오늘만이 아닐 것이다.

학생들은 지키는 이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담을 넘는다.

지름길이니까.

그러나 허락받지 않은 길이다.




나눔

 

 

누가 인터폰을 누른다.

"엄마가 어디 갔어요." 문을 열자

앞집 아이가 울면서 들어온다.

아이가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있는데

앞집에 인기척이 있다.

그 아이를 집으로 보냈다.

잠시 후에 누가 문을 두드린다.

그 아이의 엄마다.

친정에서 김치를 담갔다면서

배추김치 반포기를 접시에 담아서 건넨다.

 

 


정보와 전언

 

 

수업중에 교실 바닥이 더러워서

"교실이 더럽다"고 얘기하면

학생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정보는 '교실이 더럽다'이고

전언은 '청소좀 해라'이다.

정보를 듣고 전언을 알아채고 있으면서도

학생들은 꼼짝하지 않는다.

왜?

내가 하는 게 귀찮으니까.

귀차니즘이다.

쓰레기가 보이면 줍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

"쓰레기를 주워라"고 말하면

"제가 안 버렸는데요."라고

대답하는 학생도 있다.

내가 버리지 않았는데

내가 왜 주워야 하냐는 얘기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각화동에서

 

 

향년 87세, 유족들의 표정이 밝다.

오랜 투병 생활을 마치고 육신의 옷을 벗은 고인

영정 사진에서 옛날을 읽어낸다.

상주의 모친과 동생, 누나 그리고 아들과 딸들

고인의 손자들이 부지런히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접객실

빈소 영정 사진은 한없이 평화롭고

한 시대가 저무는 시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허무는 곳

 

별세 소천 귀천 돌아가시다 사망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장례식장으로 갈 때마다

마음이 아프기도 하면서

어차피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영정 앞에서 큰절을 하고

상주와도 맞절을 하지만

그뿐 인사는 지나가고

일상의 대화로 복귀하는데...

 

오후 네 시에 집을 출발하여 저녁 일곱 시에 도착

산을 넘고 골목길을 지나고 건널목을 건넜지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나의 순례길

물만 마시며 문상하다가

홀연히 일어서서 배낭을 짊어지고

밤길을 걸어 걸어서

밤 열두 시

삼만 천 일백 걸음만에

귀소했다.




저기요

 

 

학기말 시험을 보는 시간

전광석화처럼 시험지를 나눠주는데

가운데 줄에서 "저기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시험지가 부족한데요?"

 

시험지 한 장을 뒤로 전달하며

시험을 보는 중이라

크게 말하지도 못하고

"여기가 시장이여? 식당이여?"

충격을 받은 내 마음을 다독이다가

시험이 끝나고 교무실에 와서

담임에게 얘기하니까

평소에도 거시기 한 애라고 한다.

 

교실에서

저기요

여기요

나를 부르는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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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한새봉을 걷다가 청설모 두 마리를 만났다.

산책로 옆 감나무에서 감을 따서는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렵하게 날아서는

산책로를 건너서 소나무 속으로 사라진다.

 

청설모는 나무타기의 달인이다.

아주 작은 가지를 밟고서도

다른 나무로 휙 날아간다.

청설모는 몸무게가 없다.

 

청설모는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먹는 모양이다.

그러나 인간을 매우 두려워한다.

인간은 자연계의 무법자니까.

 

신작로처럼 넓어져버린

한새봉 산책로 주변에서

청설모는 힘겹게

겨울을 지나고 있다.




겨울비

 

 

함박눈을 기다리는데

겨울비가 내린다

담양호반 물 빠진 자국 위로

소한 지나 겨울비가 내린다

겨울비가 포근히 내리는 날

대지는 겨우내 목마른 혀를 축이고

그리움에 마음 졸이던 내 가슴도

어느새 따뜻한 봄날을 꿈꾼다

 

 

어제는 비 오늘은 눈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으니

이제 겨울다운 겨울인가

차들도 엉금엉금 기어다니고

세상은 느림보가 되어버렸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송이들

한 송이 두 송이 세다가

아, 눈이 내려서 좋은 아이들 마냥

나는 벌써 눈썰매를 타고 있다

어제는 봄비 같은 겨울비가 내리고

오늘은 천지사방 은세계

각시방에 드리운 순백의 커튼 위로

하얀 눈이 내린다.



건우봉에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쑥고개길

현대아파트 바로 뒷산에 오르니

온갖 새들이 아침을 우지진다.

관악산 둘레길을 따라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고도 느긋하다.

나는 여기에 왜 왔는가?

나그네새인가?

바람 따라 흘러가는 구름인가?

이제 곧 부여로 가겠네.

신동엽과 김시습을 만나러...

 


매월당 만나러 가는 길

 

 

부여 만수산 무량사

떠돌던 김시습이 머물다 스러진 곳

생육신 김시습을

내일 만나서

회포나 풀어야겠다.

 

어제는 무량사 가려다가

서울로 와버렸다.

무량사 가는 길이 이리 멀 줄

매월당 선생은 귀띔도 안 해주고

봉천터널 지나 신림동 비탈길

기어기어 올라왔다.

 

내일 내설악 용대리 백담사에 가서

대청봉에서 흘러내린 웅덩이가

백 개인지 세어볼까나

매월당 김시습을 만나고

만해 한용운을 만나고

일해 전두환을 만나고

황태 명태 동태를 만나고

내 스무 살 군영시절을 만나고

 

오늘 옛날 사람을 만났다.

금오신화를 쓴 작가

김시습의 고독을 생각했다.

세상을 등지고 산에 들어

금오신화를 쓰던 시절

걷고 또 걸으며 인생을 곱씹던 시절

매월당의 허허로움을 만났다.

 



물병 잃어버리기

 


요즘 차를 담은 물병을 가지고 다닌다.

어제 연수를 갈 때도 가지고 갔다.

오동도를 걸을 때는 손에 들고 다녔다.

유람선을 탈 때도 가지고 갔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펜션에 갈 때도 가지고 갔을 것이다.

아침에 펜션을 나오면서 확인해보니까

물병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버스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리를 확인해보니까 물병이 없다.

어디로 갔을까?

물병을 담는 주머니가 예뻤는데...

그 물병과 나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앞으로 잃어버릴 것들이 많다.




월담

 

 

아침에 교정을 뛴다.

만보걷기의 시작이다.

 

우리 학교와 남부대 경계에 울타리가 있다.

첨단중과 방통대의 경계에도 울타리가 있다.

농구장과 텃밭 위 첨단2동 둘레길

경계에도 울타리가 있다.

사방이 울타리다.

 

오늘 아침에 급식실 옆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남부대 수영장 쪽에서 담을 넘으려고

울타리로 다가오는 남학생들이 보인다.

나는 소리친다.

"정문으로! 정문으로 돌아가라!!"

학생들은 똥씹은 얼굴로 정문으로 돌아간다.

 

오늘만이 아닐 것이다.

학생들은 지키는 이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담을 넘는다.

지름길이니까.

그러나 허락받지 않은 길이다.




나눔

 

 

누가 인터폰을 누른다.

"엄마가 어디 갔어요." 문을 열자

앞집 아이가 울면서 들어온다.

아이가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있는데

앞집에 인기척이 있다.

그 아이를 집으로 보냈다.

잠시 후에 누가 문을 두드린다.

그 아이의 엄마다.

친정에서 김치를 담갔다면서

배추김치 반포기를 접시에 담아서 건넨다.

 

 


정보와 전언

 

 

수업중에 교실 바닥이 더러워서

"교실이 더럽다"고 얘기하면

학생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정보는 '교실이 더럽다'이고

전언은 '청소좀 해라'이다.

정보를 듣고 전언을 알아채고 있으면서도

학생들은 꼼짝하지 않는다.

왜?

내가 하는 게 귀찮으니까.

귀차니즘이다.

쓰레기가 보이면 줍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

"쓰레기를 주워라"고 말하면

"제가 안 버렸는데요."라고

대답하는 학생도 있다.

내가 버리지 않았는데

내가 왜 주워야 하냐는 얘기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각화동에서

 

 

향년 87세, 유족들의 표정이 밝다.

오랜 투병 생활을 마치고 육신의 옷을 벗은 고인

영정 사진에서 옛날을 읽어낸다.

상주의 모친과 동생, 누나 그리고 아들과 딸들

고인의 손자들이 부지런히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접객실

빈소 영정 사진은 한없이 평화롭고

한 시대가 저무는 시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허무는 곳

 

별세 소천 귀천 돌아가시다 사망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장례식장으로 갈 때마다

마음이 아프기도 하면서

어차피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영정 앞에서 큰절을 하고

상주와도 맞절을 하지만

그뿐 인사는 지나가고

일상의 대화로 복귀하는데...

 

오후 네 시에 집을 출발하여 저녁 일곱 시에 도착

산을 넘고 골목길을 지나고 건널목을 건넜지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나의 순례길

물만 마시며 문상하다가

홀연히 일어서서 배낭을 짊어지고

밤길을 걸어 걸어서

밤 열두 시

삼만 천 일백 걸음만에

귀소했다.




저기요

 

 

학기말 시험을 보는 시간

전광석화처럼 시험지를 나눠주는데

가운데 줄에서 "저기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시험지가 부족한데요?"

 

시험지 한 장을 뒤로 전달하며

시험을 보는 중이라

크게 말하지도 못하고

"여기가 시장이여? 식당이여?"

충격을 받은 내 마음을 다독이다가

시험이 끝나고 교무실에 와서

담임에게 얘기하니까

평소에도 거시기 한 애라고 한다.

 

교실에서

저기요

여기요

나를 부르는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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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월산의 시 2017. 12. 9. 07:36
통합 게시판

[김성중 12월 토론 작품]:종로에서 낙짓집 찾기 외 17편



단오작성시간2017.12.07  조회수4

0


 김성중-금시-2017-송년회.hwp



1. 종로에서 낙짓집 찾기

 

어제 저녁에 종로1가 르메이에르 스포츠센터

건물 2층에 있는 낙짓집을 찾아서 헤맸다.

교보문고 배움에서 열린 북콘서트가 끝나고

뒤풀이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아무리 여기저기 찾아봐도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안 보인다.

엘리베이터는 5층부터 서고

외부 계단은 막혀 있다.

서울 여자들과 함께 가는데

그녀들도 2층으로 가는 길을 못 찾는다.

다시 처음에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곳으로

돌아가서 눈을 부릅뜨고 보니까

계단으로 올라가는 문이 보인다.

숨을 헐떡이며 낙짓집을 찾아갔더니

일행은 벌써 좌정해 있다.

매운 낙지에 밥을 비벼먹으며

소주 말고 물만 마시다가

화장실에 가면서 보니까

대로변에 에스컬레이터가 떡 하니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2. 병뚜껑 돌리기

 

유리병에 담겨 있는 죽염을

작은 플라스틱병에 덜고 나서

유리병 뚜껑을 돌려서 닫는데,

아무리 돌려도 뚜껑이 닫히지 않는다.

뚜껑을 돌리고 돌려도 닫히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하여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플라스틱병 뚜껑을 돌리고 있었다.

 

이 세상에 짝이 맞지 않는 것들이 많다.

너와 나도 그렇다.

 

3. 신림역 회군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출판기념 토크쇼가 끝난 뒤에

매운 낙지에 찬물만 들이켜다가

신림동 애들 집으로 가려고

종각역에서 1호선 지하철을 탔다.

신도림역에서 환승하여 신림역으로 가다가

옛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어 있다가

급히 내리려고 보니 봉천역이다.

음악을 듣다가 신림역을 놓쳐버린 것이다.

다시 신림역으로 돌아가서

신림역 4번 출구를 나와 관악5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인 신림현대아파트 입구에서 내렸다.

조금 걸어서 내려오니 애들이 사는 골목길이다.

아는 얼굴이 보여서 반가웠다.

이제 안심이다.



4. 한가한 살구나무

 

늦가을 비바람에

살구나무 이파리가 모두 떨어졌다.

이제 살구나무는 겨울잠을 자리라.

 

살구나무는 지금 한가하다.

근심 걱정 다 털어버리고

교무실을 올려다보며 하품을 하고 있다.

 

지금 학생들은 전국연합학력평가

탐구영역 시험지를 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교무실에서

"내편 들어줘 고마워요"를 읽고 있다.

기말고사 출제도 해야 한다.

 

살구나무는 한가하다.



5. 월계동 골목길

 

 

임방울대로 아래쪽 월계동엔 다세대 주택이 많다.

5층짜리 아파트가 월계동 장고분 근처에 있고

대부분의 집들이 다세대주택이다.

규모가 큰 건물은 학교다.

월계초등학교,숭덕고등학교,천곡중학교,

산월초등학교,첨단중학교,첨단고등학교,

방송통신대학교,남부대학교,광주전자공업고등학교

무양서원도 있다.

 

주택이 많으니 골목길도 많다.

골목길을 다 둘러보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학교 주변이야 늘 보아서 익숙하지만

약간만 벗어나도 길을 잃기 십상이다.

학교 주변을 익힐 때쯤이면

어김없이 바람이 분다.

동남풍이 분다.



6. 복판과 가장자리

 

 

가운데, 한가운데, 복판, 한복판, 가, 변두리,

가장자리, 중심, 중앙, 핵심, 변방, 지방, 변경

처음, 중간, 끝, 시작, 종말, 마무리, 시초, 태초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처음과 끝이 똑 같아야 한다.

시종여일.

용두사미는 사절한다.

끝이 좋아야 한다.

 

냄비에 물을 담아 끓이면 어디부터 끓는가?

복판인가, 가장자리인가?

 

나무의 뿌리는 시작인가?

우듬지는 끝인가?

나뭇껍질은 가장자리인가?

 

나의 피부가 가장자리라면 나의 중심은 어디인가?

심장, 간, 뇌인가?

아니면 피인가?

나의 한복판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나라, 지구, 우주, 은하

중심은 어디이고, 무엇인가?

 

내 사유의 핵심은 무엇인가?

내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

 

 

 

 

7. 선생님, 처음 봅니다

 

 

오늘 3교시에 수업을 끝낼 무렵 한 학생이 나를 보며

"선생님, 처음 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도 본 적이 없는 학생이었다.

 

내가 2학기에 수업을 하는 학급이 매우 많다.

그래서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연결 짓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얼굴을 처음 보다니...

 

이 학생은 수업시간마다 잠을 잔 모양이다.

그렇게 잠을 자고도 또 잠을 자는

학생을 보면 기이하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는 참 기이한 곳이다.



8. 2차 후원금 중단

 

 

은행에 가서 여름에 이어서, 늦가을에,

2차로 후원금 자동이체(CMS) 여러 건을 해지하였다.

융자받은 학자금을 갚아야 한다.

이제는 마음밖에 없다.

세월이 빨리 흘러가기를 바란다.

 

내가 해직교사였을 때

나에게 후원금을 전해준

금호고 해직동료들에게 늦게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1989년부터 1994년 2월까지

후원금을 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9. 전공체험학습과 자판기

 

 

첨단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 40명이 광주보건대학교 응급구조학과와 물리치료학과에서 전공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캠퍼스를 이리저리 걷다가 다윗관에서 커피를 한 잔 뽑으려고 1,000원짜리 지폐를 투입하고 버튼을 눌렀습니다. 700원이 남아서 반환 손잡이를 돌렸지만 동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율무차를 눌렀습니다. 그래도 400원이 남길래 코코아를 눌렀습니다. 그러자 100원짜리 동전이 튀어나왔습니다. 갑자기 커피, 코코아, 율무차를 연달아 마시게 되었습니다.

 

10. 만남과 떠남

 

만나면 떠나야 한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물은 썩는다.

바람은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저녁에 만난 친구는 밤에 헤어져야 한다.

아침에 학교에 온 학생들은 방과후에 하교해야 한다.

나무나 풀은 뿌리를 내리고 한평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식물은 씨앗을 바람에 날리거나 물에 띄우거나

동물의 먹이가 되어 이동을 하는 것이다.

 

나는 바람처럼 떠도는 존재다.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는 않다.

때가 되면 떠나는 것이다.

 

11. 슬픈 쪽지

 

학생들이 써낸 쪽지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학생들 모두 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쪽지는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어떤 쪽지는 나를 슬프게 한다.

 

오늘 어떤 쪽지가 나를 슬프게 했다.

수업시간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내용의 쪽지는 나를 슬프게 한다.

수업 내용이 없다는 얘기다.

아니 이럴 수가!

 

수업이 재미가 없다는 쪽지도

나를 슬프게 한다.

어떻게 해야 수업이 재밌을까?

 

그래도 나는 쪽지를 사랑한다.

 

 

12. 교장선생님


오늘 아침에 교정을 산책하다가 교문 쪽으로 가니까 이름을 모르는 여학생들이 "교장선생님!"하고 부른다. 나를 부르는 소리다. 아이들이 장난을 치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농구장 근처 벤치에 앉아 있던 여학생들이 나를 교장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학생들은 날마다 만보걷기를 하는 내가 학교 여기저기를 점검하고 다니는 교장선생님처럼 보였나 보다. 아니면 담배를 피우고 싶은데 피우지 못하는 학생들을 대리하여 나를 놀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나는 "좀머 씨 이야기"의 좀머 씨처럼 걷고 걸을 뿐이다. 걷다가 담배꽁초를 보면 줍고 그럴 뿐이다. 나는 걷자 선생이다. 교정 선생이다.



13. 옷에 몸 맞추기

 

아침에 패딩을 입는데 팔이 답답했다. 나는 못 입겠다고 했다. 아내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작년에도 입은 옷이었다. 작년에도 답답했었다. 팔이 꽉 끼어서 답답한 옷을 판 의류업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홈쇼핑에서 구매했다고 한다.

 

내가 옷에 몸을 맞추어 입을 수는 없다. 옷을 입는 순간 숨이 가빠오는데 날렵하게 보인다고 그 옷을 입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고 패딩을 맞출 수도 없고.

 

소양강변 12사단 훈련소에서 288밀리미터 훈련화를 신고 훈련을 받다가 발뒤꿈치가 홀라당 까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1981년) 훈련화 하나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던 부패한 군대가 수십 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나를 분노하게 한다.

 

나는 옷에 내 몸을 맞출 수 없다.



14. 서울대 앞 큰 길에서

 

나는 그냥 길을 걷고 있었다.

어떤 여인이 강아지를 끌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까 강아지 인형이었다.

그 여인은 하이힐을 손에 들고 있었고

신발을 신지 않았다.

마침 근처 화원의 개는 인형개를 따라가려 하고

화원 주인은 개를 단속하느라 정신이 없고

나도 긴장하면서 흥미롭게 지켜보는데

그녀가 택시를 타고 떠난 자리에

금발 가발이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정신이 나간 여자였을까?

 

15. 안갯길

 

가을이 한창인데

진한 안개가

세상을 다 덮고 있었다.

안개 낀 출근길

앞 차 꽁무니를 따라 가면서

앞차가 서버린다면 어쩌나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용두동 사거리에서 승용차 한 대가 고장이 나서 서 있고

경찰관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영산강 첨단대교를 건너서

임방울대로를 힘겹게 달리면서

월계초 가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학교 주차장에 차를 대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2017년 10월 26일이었다.

 


16. 내 몸

 

 

몸은 쇳덩이가 아니다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는

용불용설을 믿었다

건강검진결과는 경고등

핏속에 기름기가 많고

혈압이 약간 높고

음주 적색경고 발령

금주는 필수

유근피차가 내 생명수

마늘죽염환은

장의 노폐물 가스를 빼주고

 

내 코는 비염을 달고

잠을 잘 때 숨쉬기도 곤란한데

내 몸은 쇳덩이가 아니야

혹사시켜서 미안해

내 몸

 

 

17. 얍삽하다

 

 

얄밉게도 재빠르게 이익을 챙기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얍삽한 사람이라고 한다. 좋은 말은 아니지만 경쟁사회에서는 비난만 할 것도 아니다.

 

-수능감독관 추천에서 2학년실 선생님들이 원하는 감독관을 선점했다고 했을 때 내가 한 말

 

-오늘 분회모임에 1학년실 선생님들이 참석하지 않았을 때 내가 한 말

 

-인생은 얍삽할 때가 있다

 

-나 중심으로 세상을 산다. 정말 그래야 한다. 내가 살아야 너를 보살필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야 한다. 너와 더불어.

 

*얍삽하다:사람이 얕은 꾀를 쓰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려는 태도가 있다-국어사전

 

 

 

18. 몬네 몬네

 

 

이 걸 할까

저 걸 할까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확 저질러 버릴까

살짝 해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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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작성시간2017.12.07  조회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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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중-금시-2017-송년회.hwp



1. 종로에서 낙짓집 찾기

 

어제 저녁에 종로1가 르메이에르 스포츠센터

건물 2층에 있는 낙짓집을 찾아서 헤맸다.

교보문고 배움에서 열린 북콘서트가 끝나고

뒤풀이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아무리 여기저기 찾아봐도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안 보인다.

엘리베이터는 5층부터 서고

외부 계단은 막혀 있다.

서울 여자들과 함께 가는데

그녀들도 2층으로 가는 길을 못 찾는다.

다시 처음에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곳으로

돌아가서 눈을 부릅뜨고 보니까

계단으로 올라가는 문이 보인다.

숨을 헐떡이며 낙짓집을 찾아갔더니

일행은 벌써 좌정해 있다.

매운 낙지에 밥을 비벼먹으며

소주 말고 물만 마시다가

화장실에 가면서 보니까

대로변에 에스컬레이터가 떡 하니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2. 병뚜껑 돌리기

 

유리병에 담겨 있는 죽염을

작은 플라스틱병에 덜고 나서

유리병 뚜껑을 돌려서 닫는데,

아무리 돌려도 뚜껑이 닫히지 않는다.

뚜껑을 돌리고 돌려도 닫히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하여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플라스틱병 뚜껑을 돌리고 있었다.

 

이 세상에 짝이 맞지 않는 것들이 많다.

너와 나도 그렇다.

 

3. 신림역 회군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출판기념 토크쇼가 끝난 뒤에

매운 낙지에 찬물만 들이켜다가

신림동 애들 집으로 가려고

종각역에서 1호선 지하철을 탔다.

신도림역에서 환승하여 신림역으로 가다가

옛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어 있다가

급히 내리려고 보니 봉천역이다.

음악을 듣다가 신림역을 놓쳐버린 것이다.

다시 신림역으로 돌아가서

신림역 4번 출구를 나와 관악5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인 신림현대아파트 입구에서 내렸다.

조금 걸어서 내려오니 애들이 사는 골목길이다.

아는 얼굴이 보여서 반가웠다.

이제 안심이다.



4. 한가한 살구나무

 

늦가을 비바람에

살구나무 이파리가 모두 떨어졌다.

이제 살구나무는 겨울잠을 자리라.

 

살구나무는 지금 한가하다.

근심 걱정 다 털어버리고

교무실을 올려다보며 하품을 하고 있다.

 

지금 학생들은 전국연합학력평가

탐구영역 시험지를 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교무실에서

"내편 들어줘 고마워요"를 읽고 있다.

기말고사 출제도 해야 한다.

 

살구나무는 한가하다.



5. 월계동 골목길

 

 

임방울대로 아래쪽 월계동엔 다세대 주택이 많다.

5층짜리 아파트가 월계동 장고분 근처에 있고

대부분의 집들이 다세대주택이다.

규모가 큰 건물은 학교다.

월계초등학교,숭덕고등학교,천곡중학교,

산월초등학교,첨단중학교,첨단고등학교,

방송통신대학교,남부대학교,광주전자공업고등학교

무양서원도 있다.

 

주택이 많으니 골목길도 많다.

골목길을 다 둘러보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학교 주변이야 늘 보아서 익숙하지만

약간만 벗어나도 길을 잃기 십상이다.

학교 주변을 익힐 때쯤이면

어김없이 바람이 분다.

동남풍이 분다.



6. 복판과 가장자리

 

 

가운데, 한가운데, 복판, 한복판, 가, 변두리,

가장자리, 중심, 중앙, 핵심, 변방, 지방, 변경

처음, 중간, 끝, 시작, 종말, 마무리, 시초, 태초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처음과 끝이 똑 같아야 한다.

시종여일.

용두사미는 사절한다.

끝이 좋아야 한다.

 

냄비에 물을 담아 끓이면 어디부터 끓는가?

복판인가, 가장자리인가?

 

나무의 뿌리는 시작인가?

우듬지는 끝인가?

나뭇껍질은 가장자리인가?

 

나의 피부가 가장자리라면 나의 중심은 어디인가?

심장, 간, 뇌인가?

아니면 피인가?

나의 한복판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나라, 지구, 우주, 은하

중심은 어디이고, 무엇인가?

 

내 사유의 핵심은 무엇인가?

내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

 

 

 

 

7. 선생님, 처음 봅니다

 

 

오늘 3교시에 수업을 끝낼 무렵 한 학생이 나를 보며

"선생님, 처음 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도 본 적이 없는 학생이었다.

 

내가 2학기에 수업을 하는 학급이 매우 많다.

그래서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연결 짓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얼굴을 처음 보다니...

 

이 학생은 수업시간마다 잠을 잔 모양이다.

그렇게 잠을 자고도 또 잠을 자는

학생을 보면 기이하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는 참 기이한 곳이다.



8. 2차 후원금 중단

 

 

은행에 가서 여름에 이어서, 늦가을에,

2차로 후원금 자동이체(CMS) 여러 건을 해지하였다.

융자받은 학자금을 갚아야 한다.

이제는 마음밖에 없다.

세월이 빨리 흘러가기를 바란다.

 

내가 해직교사였을 때

나에게 후원금을 전해준

금호고 해직동료들에게 늦게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1989년부터 1994년 2월까지

후원금을 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9. 전공체험학습과 자판기

 

 

첨단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 40명이 광주보건대학교 응급구조학과와 물리치료학과에서 전공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캠퍼스를 이리저리 걷다가 다윗관에서 커피를 한 잔 뽑으려고 1,000원짜리 지폐를 투입하고 버튼을 눌렀습니다. 700원이 남아서 반환 손잡이를 돌렸지만 동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율무차를 눌렀습니다. 그래도 400원이 남길래 코코아를 눌렀습니다. 그러자 100원짜리 동전이 튀어나왔습니다. 갑자기 커피, 코코아, 율무차를 연달아 마시게 되었습니다.

 

10. 만남과 떠남

 

만나면 떠나야 한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물은 썩는다.

바람은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저녁에 만난 친구는 밤에 헤어져야 한다.

아침에 학교에 온 학생들은 방과후에 하교해야 한다.

나무나 풀은 뿌리를 내리고 한평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식물은 씨앗을 바람에 날리거나 물에 띄우거나

동물의 먹이가 되어 이동을 하는 것이다.

 

나는 바람처럼 떠도는 존재다.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는 않다.

때가 되면 떠나는 것이다.

 

11. 슬픈 쪽지

 

학생들이 써낸 쪽지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학생들 모두 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쪽지는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어떤 쪽지는 나를 슬프게 한다.

 

오늘 어떤 쪽지가 나를 슬프게 했다.

수업시간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내용의 쪽지는 나를 슬프게 한다.

수업 내용이 없다는 얘기다.

아니 이럴 수가!

 

수업이 재미가 없다는 쪽지도

나를 슬프게 한다.

어떻게 해야 수업이 재밌을까?

 

그래도 나는 쪽지를 사랑한다.

 

 

12. 교장선생님


오늘 아침에 교정을 산책하다가 교문 쪽으로 가니까 이름을 모르는 여학생들이 "교장선생님!"하고 부른다. 나를 부르는 소리다. 아이들이 장난을 치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농구장 근처 벤치에 앉아 있던 여학생들이 나를 교장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학생들은 날마다 만보걷기를 하는 내가 학교 여기저기를 점검하고 다니는 교장선생님처럼 보였나 보다. 아니면 담배를 피우고 싶은데 피우지 못하는 학생들을 대리하여 나를 놀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나는 "좀머 씨 이야기"의 좀머 씨처럼 걷고 걸을 뿐이다. 걷다가 담배꽁초를 보면 줍고 그럴 뿐이다. 나는 걷자 선생이다. 교정 선생이다.



13. 옷에 몸 맞추기

 

아침에 패딩을 입는데 팔이 답답했다. 나는 못 입겠다고 했다. 아내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작년에도 입은 옷이었다. 작년에도 답답했었다. 팔이 꽉 끼어서 답답한 옷을 판 의류업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홈쇼핑에서 구매했다고 한다.

 

내가 옷에 몸을 맞추어 입을 수는 없다. 옷을 입는 순간 숨이 가빠오는데 날렵하게 보인다고 그 옷을 입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고 패딩을 맞출 수도 없고.

 

소양강변 12사단 훈련소에서 288밀리미터 훈련화를 신고 훈련을 받다가 발뒤꿈치가 홀라당 까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1981년) 훈련화 하나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던 부패한 군대가 수십 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나를 분노하게 한다.

 

나는 옷에 내 몸을 맞출 수 없다.



14. 서울대 앞 큰 길에서

 

나는 그냥 길을 걷고 있었다.

어떤 여인이 강아지를 끌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까 강아지 인형이었다.

그 여인은 하이힐을 손에 들고 있었고

신발을 신지 않았다.

마침 근처 화원의 개는 인형개를 따라가려 하고

화원 주인은 개를 단속하느라 정신이 없고

나도 긴장하면서 흥미롭게 지켜보는데

그녀가 택시를 타고 떠난 자리에

금발 가발이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정신이 나간 여자였을까?

 

15. 안갯길

 

가을이 한창인데

진한 안개가

세상을 다 덮고 있었다.

안개 낀 출근길

앞 차 꽁무니를 따라 가면서

앞차가 서버린다면 어쩌나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용두동 사거리에서 승용차 한 대가 고장이 나서 서 있고

경찰관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영산강 첨단대교를 건너서

임방울대로를 힘겹게 달리면서

월계초 가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학교 주차장에 차를 대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2017년 10월 26일이었다.

 


16. 내 몸

 

 

몸은 쇳덩이가 아니다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는

용불용설을 믿었다

건강검진결과는 경고등

핏속에 기름기가 많고

혈압이 약간 높고

음주 적색경고 발령

금주는 필수

유근피차가 내 생명수

마늘죽염환은

장의 노폐물 가스를 빼주고

 

내 코는 비염을 달고

잠을 잘 때 숨쉬기도 곤란한데

내 몸은 쇳덩이가 아니야

혹사시켜서 미안해

내 몸

 

 

17. 얍삽하다

 

 

얄밉게도 재빠르게 이익을 챙기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얍삽한 사람이라고 한다. 좋은 말은 아니지만 경쟁사회에서는 비난만 할 것도 아니다.

 

-수능감독관 추천에서 2학년실 선생님들이 원하는 감독관을 선점했다고 했을 때 내가 한 말

 

-오늘 분회모임에 1학년실 선생님들이 참석하지 않았을 때 내가 한 말

 

-인생은 얍삽할 때가 있다

 

-나 중심으로 세상을 산다. 정말 그래야 한다. 내가 살아야 너를 보살필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야 한다. 너와 더불어.

 

*얍삽하다:사람이 얕은 꾀를 쓰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려는 태도가 있다-국어사전

 

 

 

18. 몬네 몬네

 

 

이 걸 할까

저 걸 할까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확 저질러 버릴까

살짝 해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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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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