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시 2007. 3. 1. 11:49

유언장

아리엘 도르프만 / 이종숙 옮김

내가 억류자가 아니라고

그들이 말해도

그들을 믿지 말라.

언젠가는

그들도 그것을 인정해야만 하리니.

나를 풀어줬다고

그들이 말해도

그들을 믿지 말라.

언젠가는

그들도 그게 거짓임을

인정해야만하리니.

내가 당을 배반했다고

그들이 말해도

그들을 믿지 말라.

언젠가는

그들도 내가 충성했음을

인정해야만 하리니.

내가 프랑스에 있다고

그들이 말해도

그들을 믿지 말라.

그들을 믿지 말라

내 가짜 신분증을

그들이 보여줘도 그들을 믿지 말라.

그들을 믿지 말라

내 시신을 찍은 사진을

그들이 보여줘도 그들을 믿지 말라.

그들을 믿지 말라 달이 달이라고

그들이 말해도,

달이 달이고,

이것이 내 목소리를 녹음한 것이며,

이것이 내가 자백서에 써넣은 서명이라고

그들이 말한다 할지라도,

나무를 나무라고

그들이 말한다 할지라도

그들을 믿지 말라,

믿지 말라

그들이 당신에게 하는 그 어떤 것도

그들이 당신에게 보여주는 그 어떤 것도,

그들을 믿지 말라.

그리고 마침내

시신을 확인하라고

그들이 당신을 부르는

그날이

와서

당신이 나를 보고

어떤 목소리가

우리가 그를 죽였어

그 불쌍한 새끼가 죽어버렸어

그는 죽었어라고 말해도,

내가

완벽히 완전히 확실히

죽었다고

그들이 당신에게 말해도

그들을 믿지 말라,

그들을 믿지 말라,

그들을 믿지 말라.

*아리엘 도르프만 시집 [싼띠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창작과비평사/이종숙 옮김/1998.4.30 발행) 30-32쪽에서

*아리엘 도르프만 (Ariel Dorfman) :1942년 아르헨띠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냄. 싼띠아고 칠레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창작활동을 하다 1973년 삐노체뜨의 쿠테타로 말미암아 망명. 현재는 미국 듀크대학의 교수로 재직중. 칠레의 척박한 현실을 독특한 수법으로 그린 작품들을 주로 발표함. 장르에 구애됨이 없이 폭넓고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음. 주요 작품으로 시집 [싼띠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 소설집 [우리 집에 불났어], 장편소설 [마누엘 싼데로의 마지막 노래], [과부들], 콘티덴쯔], 희곡 [죽음과 소녀], [가면] 외 다수의 저서가 있음.

*이종숙 : 1952년생.서울대 영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미국 미네쏘타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음. 현재 서울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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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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