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어요'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10.01.21 :: 가난 / 문장대백과사전(금성판)
  2. 2009.11.20 :: 영화 : 빠삐용(Papillon)은?
  3. 2009.11.07 :: 쑥대머리
  4. 2009.08.17 :: `대니 보이`에 얽힌 애달픈 이야기
알고 싶어요 2010. 1. 21. 14:03

가난


【어록】

[1]가난이 부랑배처럼 들이닥치고 빈곤이 거지처럼 달려든다. 《구약성서 잠언 6:11》

[2]가난하면 부자의 지배를 받고, 빚지면 빚쟁이의 종이 된다. 《구약성서 잠언 22:7》

[3]가난하면 이웃도 싫어한다. 《구약성서 잠언 14:20》

[4]가난한 사람을 억누름은 그를 지으신 이를 모욕함이다. 《구약성서 잠언 14:31》

[5]가난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그의 지혜가 빛을 못 보는구나! 《구약성서 전도서 9:16》

[6]가난하다는 말은 너무 적게 가진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L.A.세네카》

[7]가난은 가난하다고만 하여 결코 불명예로 여길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가난의 원인이다. 가난이 나태나 제멋대로의 고집, 어리석음의 결과가 아닌가를 잘 생각해 보라. 그러했을 때야말로 진실로 수치(羞恥)로 여겨도 괜찮을 일이다. 《플루타르크 英雄傳》

[8]가난이 살며시 집 안에 들어오면 거짓 우정(友情)은 부랴부랴 창 밖으로 도망간다. 《F.M.뮐러/시집 詩集》

[9]가난뱅이가 제일이다. 누구도 너의 그 가난을 훔치려 하지는 않을 테니까. 《W.셰익스피어/겨울 이야기》

[10]가난뱅이에게 아첨하는 인간은 없다. 《W.셰익스피어》

[11]가난은 죄악이 아니다. 《G.허버트》

[12]진실로 가난하다 함은 정신도 돈도 가지고 있지 못한 인간을 말함이다. 《B.슈테르나우》

[13]빵이 없는 자에게 정신적 자유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야심적인 이론가나 정치가에게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J.M.머리》

[14]보라! 신이 만드신 이 샘물 가에서 얻은 한 모금의 물과, 자비심있는 사람에게서 얻은 한 조각의 빵과, 그리고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천장(天障)으로 삼은 이 잠자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그것의 즐거움을…… 《성(聖) 프란시스》

[15]괴로움이 없는 가난함은 비참한 부유(富裕)보다 오히려 낫다. 《메난드로스/단편 斷片》

[16]가난한 자는, 가령 진실을 말한다 해도 믿어 주지 않는다. 《메난드로스/단편 斷片》

[17]가난에 쫓기는 생활은 삶이라 할 수 없다. 《메난드로스/단편 斷片》

[18]가난뱅이는 부자처럼 과거를 가질 자격도 없다. 《R.롤랑/장 크리스토프》

[19]가난은 죄가 아니라 진리이다. 음주가 선행이 아닌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이것은 한층 더 명백한 진리이다. 그러나 빈곤도 동전 한푼 없는 빈곤은 죄악이다. 가난할 때만 해도 아직 점잔을 빼고 있을 수 있지만한푼 없는 빈털터리가 되는 날엔 스스로 자신을 모욕할 각오가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술집이란 것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F.M.도스토예프스키/죄(罪)와 벌(罰)》

[20]가난뱅이란 원래가 변덕스럽기 마련이다. 가난뱅이란 뒤틀린 성미를 가지고 있는 법이다. 《F.M.도스토예프스키/가난한 사람들》

[21]가난뱅이란 호주머니 속을 뒤집어 보이듯이 자기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하나도 숨김 없이 남에게 보여 주어야만 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절대로 자신의 비밀을 가져서는 안 되고 더욱이 자존심 같은 건 손톱만큼도 가져서는 안 되게 돼 있기 때문이다. 《F.M.도스토예프스키/가난한 사람들》

[22]가난뱅이는 프라이드를 가질 것조차 금지당하고 있다. 《L.N.톨스토이》

[23]가난의 괴로움을 면하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자기의재산을 늘리는 것과 자기의 욕망을 줄이는 것으로, 전자는 우리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지만 후자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가짐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L.N.톨스토이》

[24]가난이 우리들의 곁에 있어서는 안 된다. 가난은 우리들의 모든 적과 한편이다. 모든 죽음의 싹과 한편이다. 《J.아누이/담비의 모피(毛皮)》

[25]가난은 우리의 내부로부터 솟아나는 위대한 빛이다. 《R.M.릴케》

[26]가난한 자의 아들이여! 가난하다고 스스로 얕보고 비웃지 말아라! 가난함으로써 그대가 상속한 재산이 있는 것이다. 튼튼한 수족과 굳센 마음! 무슨 일이고 꺼리지 않고 할 수 있는 힘! 가난하기 때문에 그대에게는 참을성이 있고 적은 것도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 가난하기 때문에 슬픔을 가슴에 품고 지그시 견디는 용기! 가난하기 때문에 우정이 두텁고 곤란한 사람을 도울 줄 아는 상냥한 마음씨! 이것들이 그대의 재산이다. 이러한 재산은 임금님도 상속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라. 그대가가난하기 때문에 얻은 고귀한 재산임을 알아라. 《A.로웰》

[27]빈 부대가 똑바로 서기 어려운 것처럼, 가난한 사람의 경우, 끊임없이 정직하게 지낸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B.프랭클린/자서전 自敍傳》

[28]가난하다는 것은 결코 매력적인 것도 교훈적인 것도 아니다. 나의 경우에 있어서 가난은, 부자나 상류계급의 우아함을 과대평가하는 것밖에 가르쳐 주지 않았다. 《C.S.채플린/자서전 自敍傳》

[29]가난은 다른 무엇보다도, 용감한 사나이를 꺾어 놓는다. 사색(思索)의 노년보다도 크로노스여! 또 오한이 엄습(掩襲)하는 열병보다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깊은 바다에라도 몸을 던져야 한다. 설령 깎아지른 것 같은 낭떠러지에서라도. 가난에 쪼들린 인간의 말은 아무 힘이 없고, 무슨 일이든 이루어지지 않으며, 그의 혀는 묶이어 있다. 《테오그니스/엘레게이아》

[30]악덕은 사람의 재물 때문에, 미덕은 가난 때문에 가려져서 안 보인다. 《디오게네스/격언집 格言集》

[31]가난은 인간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독하게 불편한 것이다. 《S.스미스》

[32]인간은 가령 노동자로 전락했더라도, 나의 아들에게 산뜻한 옷을 입히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나름으로 있는 힘을 다하여 자기들의 불행을 숨기려고 한다. 《메르시에/인간(人間)을 찾는 자(者)》

[33]가난에 찌들면 성실하게 살기가 어렵다. 《F.비용/유언집 遺言集》

[34]가난하면 좋은 천성도 부끄러워질 만큼 비굴해진다. 《L.C.보브나르그/잠언(箴言)과 성찰(省察)》

[35]가난한 집에 태어날 때 특히 난처한 것은 자존심 강하게 태어나는 일이다. 《L.C.보브나르그/잠언(箴言)과 성찰(省察)》

[36]가난은 어떠한 재난보다도 선인의 마음을 시들게 한다. 그것은 늙어서 백발이 되거나 신열로 오한에 떨 때보다 훨씬 심하다. 《디오게네스/격언집 格言集》

[37]가난의 재촉을 받아 기술이 늘어난다. 《테오크리토스/전원시 田園詩》

[38]지금 가난하면 언제까지나 가난할 것이다. 부(富)는 부자에게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M.V.마르티알리스/풍자시집 諷刺詩集》

[39]가난이 범죄의 어머니라고 하면 정신적 결함은 그 아버지이다. 《J.라 브뤼예르/인간(人間)에 관하여》

[40]지갑에 돈이 없는 사람은 입에 꿀을 담아야 한다. 《블레즈 드 몽뤼크/주해집 註解集》

[41]가난은 범죄의 어머니다. 《F.M.A.카시오도루스/집주본 集註本》

[42]가난은 인내하는 것보다 그것을 찬양하며 사는 것이 더 편안하다. 《J.헤이우드/영국 속담》

[43]돈주머니가 줄어들면 마음이 넓어진다. 《노엘 뒤 파유/외트라펠 소화(小話)》

[44]가난한 자는 언제나 미래에 보상을 받는다. 당장 보상을 받는 건 부자뿐이다. 《C.V.게오르규/마호메트의 생애(生涯)》

[45]사람이 가난한 것은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속박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소유물에 완전히 매달려 있을 때에 가난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 수 없고 자기 자신을 줄 수 없을 때에 가난한 것입니다.(*로마의 토루로 교회에서의 강론 중에서)《요한 바오로 2세》

[46]자유사회가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부자인 몇 사람도 구제할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 취임사 중에서) 《J.F.케네디》

[47]이 나라에는 유산으로 물려받은 부(富)가 있고, 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가난이 있습니다. (*암허스트 대학에서의 연설 중에서)《J.F.케네디》

[48]가난은 많은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 뿌리는 무식입니다. (*교육에 관해서 국회로 보낸 메시지 중에서) 《L.B.존슨》

[49]우리 정부는 지금 이 자리에서 미국 내의 가난을 없애기 위해 무조건 전쟁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1964년도 연두교서 중에서) 《L.B.존슨》

[50]풍요 속의 가난이라는 모순은 풍요를 없앤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다. (*뉴욕 시에서의 연설 중에서) 《D.O.밀스》

[51]가난은 가난하다고 느끼는 데에 있다. 《R.W.에머슨/사회(社會)와 고독(孤獨)》

[52]나는 가난해 본 적이 없다. 단지 돈이 떨어졌을 뿐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그렇다는 마음가짐이다. 돈이 떨어졌다는 것은 일시적인 상황이다. (*「뉴스위크」誌에서) 《M.토드》

[53]교육받은 지식인들 사이에 만연되고 있는 가난에 대한 공포는 우리의 문명이 앓고 있는 최악의 도덕적인 질병이다. 《W.제임스/종교적(宗敎的)인 경험(經驗)의 다양성(多樣性)》

[54]가난할지라도 인생을 사랑하라. 구빈원(救貧院)에 살아도 기쁘고 자극적이며 즐거운 일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석양(夕陽)은 양로원의 창문에도 부자의 거처에 못지않게 밝게 비추어 준다.《H.D.소로/월든》

[55]일정한 수입이나 재산이 없는 자는 가난하기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기 쉽다. 《맹자 孟子》

[56]빈천(貧賤)하면 벗이 적다. 《사마천 司馬遷/사기 史記》

[57]집이 가난하면 형제도 멀어진다. 《신자 愼子》

[58]지겹다 가난이여! 살아 계실 때에는 봉양을 못 했는데 돌아가서는 예(禮)를 베풀 수가 없구나. 《단궁 檀弓》

[59]가난한 것이 어찌 교우(交友)에만 관계되겠는가? 집안 식구도 업신여기는 것이다. 《안연지 顔延之》

[60]집안이 가난하여지면 사랑하는 사람도 흩어지고 몸이 병들면 교유도 파하게 된다. 《백씨문집 白氏文集》

[61]뭐니 뭐니 해도 가난처럼 괴로운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여하간 가난뱅이 노릇 하나만은 피하고 싶은 일이다. 《김억 金億/문사(文士)와 빈궁(貧窮)》

[62]먹을 만큼 살게 되면 지난날의 가난을 잊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가 보다. 가난은 결코 환영할 만한 게 못 되니, 빨리 잊을수록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김소운 金素雲/가난한 날의행복(幸福)》

[63]가난한 것이 비극이 아니라 가난한 것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비극이다. 《윤오영 尹五榮/처빈난 處貧難》

[64]가난한 사람은 꿈의 부자다. 《이어령 李御寧/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시· 묘사】

[65]가난과의 첫 접촉, 그것은 아주 묘했다. 가난에 대해서 그토록 많이 생각을 해 보았고, 가난을 항상 두려워했으며, 머지않아 언제인가는 닥쳐오리라는 걸 예측하고 있었더라도, 막상 닥치고 보니 너무나 철저하고 뚜렷하게 달랐다. 상당히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은 놀랄 만큼 복잡했다. 끔찍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추하고 권태로울 따름이었다. 환경의 변화, 복잡해진 야비함, 바닥까지 박박 긁어먹기 따위, 가난의 독특한 비천함을 제일 먼저 깨닫게 된다. 《G.오웰/파리와 런던의 가난한 시절(時節)》

[66]송곳 세울 땅도 없이 끝까지 깨끗하여

도자(道者)의 깨끗한 가난은 진실로 진여(眞如)에 합하네.

아마 선생은 가난의 즐거움을 얻었는가 하나니.

소나무의 바람과 강물의 달을 집으로 삼았도다. 《기화 己和/함허화상어록 涵虛和尙語錄》

[67]개 꼬리 같은 산조 이삭 세 줄기와

닭 창자같이 비틀어진 고추 한 꿰미

깨어진 항아리는 헝겊으로 때웠으며

찌그러진 선반대는 새끼줄로 얽었도다.

구리 수저 벌써부터 이정한테 빼앗기고

무쇠 솥은 옆집 부자 빚돈 대신 가져 갔네. 《정약용 丁若鏞/봉지염찰도적성촌사작 奉旨廉察到積城村舍作》

[68]뒷집에 술쌀을 꾸니 거친 보리 말 못 찬다

즈는 것 마구 찧어 쥐빚어 괴어 내니

여러 날 주렸던 입이니 다나 쓰나 어이리. 《김광욱 金光煜》

[69]가난이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서정주 徐廷柱/무등(無等)을 보며》

[70]누군 팔자 좋아 대광보국 숭록대부 삼공육사 고대광실 좋은 집에 부귀공명 누리면서 금의옥식에 싸여 있고 이 몸 팔자 어이 이리 곤궁하여 말[斗]만한 오막살이에 이 한 몸을 못 담으니 지붕 마루로 별이 뵈고……문 밖에서 가랑비 내리면 방 안에는 굵은 비요. 앞문은 살이 없고 뒷문은 외만 남아 동지섣달 눈바람이 살 쏘듯이 들어오고, 어린 자식 젖 달라고, ……밥 달라니 차마 서러워 못살겠다. 《흥부전 興夫傳》

【격언·속담】

[71]눈은 풍년이나 입은 흉년이라. (*눈에 보이는 것은 많아도 정작 자기가 먹을 것은 없다는 뜻) 《한국 韓國》

[72]산 사람의 목구멍에 거미줄 치랴.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먹고 살아 갈 수는 있다는 뜻)《한국 韓國》

[73]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 한다. (*남의 가난한 살림을 구제하여 주기는 끝이 없어서 국가의 힘으로도 못 한다는 뜻) 《한국 韓國》

[74]가난한 집 신주 굶듯 한다. (*너무 가난하여 줄곧 굶는다는 뜻) 《한국 韓國》

[75]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 (*치르기 힘든 일이 자주 닥쳐온다는 뜻) 《한국 韓國》

[76]물에 빠져도 주머니밖에 뜰 것이 없다. (*돈이 한푼도 없음을 이르는 말) 《한국 韓國》

[77]노래기 족통도 없다. (*노래기 발은 가늘고 아주 작은데, 살림이 빈곤하여 그와 같이 남은 것이 없게 되었다는 말) 《한국 韓國》

[78]노름 뒤는 대어도 먹는 뒤는 못 댄다. 《한국 韓國》

[79]가난한 집에 자식이 많다. 《한국 韓國》

[80]불고 쓴 듯하다. (*매우 가난하여 집 안이 휑하니 비었다는 말) 《한국 韓國》

[81]꼴뚜기 장수. (*거액의 자본을 다 없애고 빈한한 살림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 《한국 韓國》

[82]책력 보아 가며 밥 먹는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하여 吉日만을 택하여 밥을 먹는다는 말) 《한국 韓國》

[83]가난의 도둑질. (*필요하면 어떤 일도 한다는 뜻) 《일본 日本》

[84]가난은 가장된 축복이다. *Poverty is a blessing in disguise. 《영국 英國》

[85]궁핍은 매섭지만 좋은 교사이다. *Want is severe but an efficient teacher. 《영국 英國》

[86]누구나 가난하면 거지 근성이 나타난다. *When a man is reduced to want, the beggar will come out. 《영국 英國》

[87]가난은 사람을 분발하게 한다. *Poverty breeds strife. 《영국 英國》

[88]가난은 모든 예능과 장사의 어머니이다. *Poverty is the mother of all arts trades. 《영국 英國》

[89]가난은 친구를 멀어지게 한다. *Poverty parts friends. 《영국 英國》

[90]부귀로운 때는 벗이 많이 모이지만 가난해지면 하나도 남지 않는다. *In time of prosperity friends will be plenty, in time of adversity not one. 《영국 英國》

[91]가난한 사람의 요리에는 독이 없다. 《미국 美國》

[92]돈 없는 사람은 이빨 없는 늑대와 같다. 《프랑스 혁명(革命)》

[93]가난은 사랑의 죽음. 《독일 獨逸》

[94]가난의 신이 문을 두드리면 사랑은 창문으로 도망친다. 《독일 獨逸》

[95]가장 나쁜 우박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의 밭에 떨어진다. 《라트비아》

[96]가난하면 훔치고 궁하면 거짓말을 한다. 《스페인》

[97]가난에서 부자로 가는 거리는 두 팔 길이고, 부자에서 가난으로 가는 거리는 두 손가락 폭이다. 《스페인》

[98]가난과 사랑은 감추기 어렵다. 《스웨덴》

[99]부자가 넘어지면 재난이라고 말하고 가난한 자가 넘어지면 술에 취했다고 한다. 《터키》

[100]가난은 악덕(惡德)일 수는 없지만 미덕(美德)일 수도 없다. 《이스라엘》

[101]가난한 사람은 사계절밖에는 고생하지 않는다. 즉 춘(春), 하(夏), 추(秋), 동(冬)이다. 《이스라엘》

[102]가난한 사람이 암탉 한 마리를 잡아먹는 때는 그가 병에 걸렸거나 아니면 암탉이 병에 걸렸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이스라엘》

[103]가난이 없으면 태양도 또한 비치지 않으리라. 《유고슬라비아》

[104]가난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는 것보다 쇠뭉치나 돌덩이를 지는 것이 훨씬 가볍다. 《아라비아》

【고사·일화】

[105]대다수의 리비에라 사람들은 끔찍할 정도로 가난하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평균 일당은 25센트다. 어느 미국인 실업가는 원주민 수석 점원에게서 어느 날 아침 이런 쪽지를 받았다. 「죄송합니다. 우산이나 모자를 하나 사 주십시오. 우비는 있지만 우산과 모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지각했습니다.」 《J.건서》

[106]피카소는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해서 몹시 가난했던 시절에도 고양이를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나 가난하였던지 고양이도 저희들이 먹을 식량을 스스로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언젠가는 고양이가 어디서인지 길게 이어진 소시지를 끌고 왔는데, 주림에 견디다 못한 피카소도 함께 그것을 나눠 먹었던 것이다.

[107]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슈베르트는 늘 돈에 궁하였다. 그는 한푼도 없으면 바지 주머니를 뒤집어 창 밖에 걸어 두곤 하였다. 「나는 외출을 못 한다. 호주머니는 텅텅 비었다. 나를 괴롭히지 말라.」는 뜻이었다. 어느 날 그의 친구 바우에른펠트는 페룬나돌 극장 옆의 커피 숍에서 밀크 커피 한 잔과 빵을 여섯 개 먹었다. 잠시 후 슈베르트가 왔다. 그리하여 역시 밀크 커피 한 잔과 빵 여섯 개를 먹었다. 이것을 본 바우에른펠트는 슈베르트의 엄청난 식욕에 깜짝 놀랐다. 슈베르트는 좀 거북한 얼굴을 하며 말하였다. 「여보게, 실은 내가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그러네.」 바우에른펠트는 슈베르트의 손을 잡으며 말하였다. 「실은 나도 그러네.」 「응? 자네도?」 두 사람은 서로 가난한 웃음을 교환했다.

[108]부호인 단목사(端木賜)는 친구인 원헌(原憲)을 찾아 봉고산(蓬蒿山)으로 갔다. 원헌은 굶주림을 참고 학문에만 열심이었다. 그것을 본 단목사는 「이것은 그대의 병」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원헌은, 「듣자 하니 재물이 없는 것을 빈(貧)이라 하고 도(道)를 배우다가 행하지 못한 것을 병이라고 하는데 나를 가난하다고 하는 것은 당연하나 병이라 하는 것은 잘못일세.」 했다. 《공자 孔子》

[109]노자가 위(衛)나라에서 곤(困)을 당했을 때 삼 일간 밥을 끓이지 못하고 십 년 동안을 옷을 해 입지 못했다. 이불을 덮고 있으면서도 늠름하게 앉아서 상송(商頌)의 노래를 불렀다. 그 소리 천지에 가득하여 금석성(金石聲)과 같았다고 한다. 《장자 莊子》

[110]장자가 어느 날, 군데군데 꿰맨 베옷을 입고 띠를 띠고 해어진 짚신을 신고 위나라의 혜왕(惠王)을 찾았을 때 혜왕은 물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처럼 피폐(疲弊)하십니까?」 장자가 「이것은 가난한 것이지, 피폐한 것이 아닙니다. 선비로서 도덕을 가지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피폐한 것이지마는, 옷이 해어지고 신이 뚫어진 것은 가난한 것이지 피폐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이른바 때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장자 산목편 莊子 山木篇》

[111]신라 자비왕 때, 경주 낭산(狼山) 동리(東里)에 가난한 선비 백결(百結) 선생이있었다. 어찌나 가난한지 옷은 백 군데나 꿰맨 것을 걸쳤다 한다. 섣달 그믐에 이웃집에서는 떡방아 찧는 소리가 들려 오는데 백결 선생 집에는 찬바람뿐, 빈 손을 만지는 아내에게 떡방아 찧는 소리를 거문고로 타서 방아타령을 들려 주었다 한다.《김부식 金富軾/삼국사기 三國史記》

【어휘·명칭】

[어휘] (1)안빈일표(顔貧一瓢) : 안회(顔回)의 가난함을 이른 말. (2)빈이무원(貧而無怨):가난하면서도 원망함이 없음. (3)천한백옥빈(天寒白屋貧):춥고 집이 가난함. (4)구목위소(構木爲巢):나무를 얽어 집을 만듦. (5)안빈낙도(安貧樂道):구차하고 가난한 속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道)를 즐김. (6)절식다시(絶食多時):굶을 때가 많음. (7)곡굉이침지(曲肱而枕之):팔을 굽혀 베개로 삼고 잠을 잔다는 뜻으로, 가난한 생활을 비유한 말/論語 述而篇. (8)가사부무곤호(可使婦無乎):부인으로서 속옷도 없을 수 있느냐는 뜻으로, 몹시 빈궁함을 이름. (9)옹유승추(甕繩樞):깨어진 항아리의 구멍 있는 데를 벽에 끼워 대서 창(窓)으로 하고 새끼를 가지고 문지도리를 동여맨다는 뜻으로, 가난한집의 형용/禮記 儒行篇. (10)위귀소소(爲鬼所笑):가난의 신이 비웃는다는 뜻으로, 가난을면치 못함을 이름/南史 劉粹傳. (11)조제모염(朝薺暮鹽):아침밥은 냉이, 저녁밥은 소금을 찬으로 하여 먹는다는 말로서, 가난한 생활을 이름/韓愈·送窮文. (12)벽립지세(壁立之勢):바람벽만 있고 다른 세간은 없는 가난한 모양을 말함. (13)적빈여세(赤貧如洗):몹시 가난하여 물로 씻은 듯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음. (14)적시재상(赤屍在床):몹시 가난하여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지 못함. (15)철빈(鐵貧):아주 가난함. (16)영체(零替):가난하여 너무 구차하게 됨. (17)산한(酸寒):가난하고 괴로움. *故人留欲慰酸寒/蘇軾. (18)빈루(貧):가난하여 파리해짐. (19)빈가(貧家):가난한 집을 말함. (20)악의악식(惡衣惡食):궁하여 나쁜 옷과 맛없는 음식을 먹는다는 말. (21)삼순구식(三旬九食):서른 날에 아홉 끼밖에 먹지 못한다 함이니, 몹시 가난함을 이르는 말. (22)조강불포(糟糠不飽):지극히 가난하여 술찌꺼기와 쌀겨도 배부르게 먹을 수 없음을 이름/韓非子. (23)동곽리(東郭履):동곽(東郭) 선생의 신은 밑창이 다 닳아 없어져서 발바닥으로 땅을 밟았다는 말로, 몹시 가난함을 비유한 말/史記 滑稽傳. (24)상가지구(喪家之狗):상가의 개. 여위고 기운 없이 수척한 사람을 빈정거리는 말/史記. (25)단한(單寒):천하고 가난함. 운명이단박(單薄)하고 가도(家道)가 한미(寒微)하다는 뜻/後漢書 高彪傳. (26)박려(剝廬):몸 둘 곳조차 없는 빈궁함을 이름/易經 剝卦. (27)빈도골(貧到骨):몹시 빈한함을 이름/杜甫. (28)조다담반(粗茶淡飯):가난을 이름/楊萬里.


출전 : 『문장대백과사전』(이어령 편저, 금성출판사. 1988) 3-7쪽

'알고 싶어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 레논의 이매진  (0) 2010.04.02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2) 2010.01.22
영화 : 빠삐용(Papillon)은?  (0) 2009.11.20
쑥대머리  (0) 2009.11.07
`대니 보이`에 얽힌 애달픈 이야기  (0) 2009.08.17
posted by 추월산
:
알고 싶어요 2009. 11. 20. 15:09

빠삐용(Papillon)


1972년 작품/ 감독 : 프랭클린 J. 샤프너 / 주연 : 스티브 맥퀸(1930년생) , 더스틴 호프만(1937년생) / 상영시간 150분 / 오디오:영어


20세기 최고의 모험가로 알려진 앙리 샤리에의 상상을 초월한 모험담을 그린 원작을 토대로 남미 프랑스령 기니아 감옥을 탈출하는 주인공 '빠삐용' 의 자유에 대한 동경과 '드가'와의 우정이 감동적으로 묘사된 명작으로, 단순한 스펙터클이나 스릴러에 그치지 않고 인간으로서 한 남자의 심리묘사를 치밀하고 감동적으로 그렸다. 특히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의 열연과 주제가 <Free as the wind>의 감미로운 선율이 영화를 걸작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1931년,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고 남미 프랑스령 기니아 형무소에 수감된 앙리 샤리에르는 가슴에 나비의 문신을 하고 있어 '빠삐용'으로 통한다.


기니아로 향하던 수송선에서 빠삐용(스티브 맥퀸 분)과 드가(더스틴 호프만 분)는 처음 만난다. 드가는 지폐 위조범이다. 끔찍한 감옥생활을 견디며 빠삐용과 드가 사이에는 짙은 동료애와 우정이 싹튼다. 빠삐용은 혹서와 독충, 가혹한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을 살인범으로 기소한 검사와, 자신을 배신한 아내에 대한 복수심으로 치밀한 탈출을 준비한다.


어느날 간수에게 구타당하는 드가를 구하려다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2년 동안 독방에 갇히게 된다.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서 습기와 고독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빠삐용. 그러나 강철 같은 의지로 견뎌낸다.


다시 생로랑으로 돌아온 그는 위조범 드가와 또 탈옥을 계획한다. 두 사람은 비인간적인 감옥에서도 진한 우정을 나누면서 자유를 향한 갈망을 멈추지 않는다. 두 번째 탈옥을 시도하는 두 사람, 그러나 또다시 실패로 돌아가고 끔찍한 독방에서 또 2년을 보낸다. 그 곳에서 드가로부터 코코넛 열매를 받은 사실이 탄로 나고, 누가 주었는지 불면 독방에서 풀어주겠다는 회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드가 이름을 불지 않는다. 하지만 빠삐용은 탈출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세 번째 탈주를 시도한 빠삐용은 또다시 붙잡혀 이번에는 5년 동안 독방생활을 하게 된다.


네 번째 탈출을 시도하는 두 사람... 결국 그들은 악마의 섬(디아블 섬)으로 불리는 가장 끔찍한 감옥으로 보내진다. 드가는 머리는 좋으나 도수 높은 안경에 어리숙한 면이 있는 친구였다. 그들은 다시 탈주를 시도하게 되나, 드가는 부상으로 잡히고 빠삐용은 인디언 마을로 숨어 들어가 얼마 동안 자유를 누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숨어 지내던 수녀원 원장의 고발로 또 다른 교도소에 갇힌다. 결국 그는 상어 떼가 우글거리고 절대로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섬 '악마도'로 가게 되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드가와 재회한다. 사방이 바다로 막힌 작은 섬. 그는 섬을 둘러보며 생각한다. "어딘가 반드시 탈출의 길은 있다." 이미 머리와 이빨은 빠지고 고문으로 다리마저 절지만 빠삐용의 탈출에 대한 집념은 계속된다. 시험 삼아 야자 열매를 채운 포대를 바다에 던져본다. 야자포대는 바다로 나가지 못한 채 파도에 밀려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난다. 하지만 해안 안쪽으로 몰아치던 파도가 주기적으로 한 번씩 바다 쪽으로 밀려나가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도 주기가 아주 일정했다. 빠비용은 드가에게 함께 탈출할 것을 권유하지만 드가는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탈출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빠삐용은 드가를 섬에 남겨 둔 채 여섯 번째 탈출을 시도하는데......


실존인물이었던 빠삐용은 탈출에 성공한 뒤 베네수엘라에 도착해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는 그 곳에서 광산 노동자, 직업도박꾼, 은행털이, 요리사, 호텔지배인등 밑바닥 인생을 보내다가 1973년 스페인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유의 몸이 된 뒤, 딱 한번 꿈에도 그리던 파리를 방문했는데, 1967년 자신에 대한 범죄시효가 만료되자 마침내 니스를 거쳐 파리로 돌아갔다. 불과 8일간 머물렀던 파리에서 그는 유형 생활 14년을 인생의 실패로 인정하면서 자신에게 이렇게 속삭였다고 한다. "너는 이겼다. 친구여 너는 자유롭고 사랑받는 네 미래의 주인으로 여기에 있다." 라고.....


by 차한잔의 여유 | 2006/07/30 14:56 | 영화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image617.egloos.com/tb/3340590


posted by 추월산
:
알고 싶어요 2009. 11. 7. 15:42

http://blog.naver.com/familie4/140005490171

위 주소를 클릭하시면 춘향가 중 '쑥대머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추월산
:
알고 싶어요 2009. 8. 17. 14:19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NFPlayer.swf?vid=FE8AF37D271006DFBF3E9EE4F65E312631F8&outKey=V125534e084cb463e83a1a1f9c4b3f1cb3996026ddff7767ecc34a1f9c4b3f1cb3996

위 주소를 클릭하세요.

"대니 보이"에 얽힌 애달픈 이야기



"대니 보이"는 흑인 테너-섹소폰 주자 "실 오스틴"의 연주로 너무나 유명한 작품.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려 나오고..., 너도 가고 또 나도 가야지'' 이 노랫말은 현제명의 개사로, 우리 모두의 귀에 너무나 익은 가사이다. 이 노래는 북아일랜드 항구 도시 "런던데리"에서 전해지는 민요인 ‘런던데리의 노래 Londonderry Air’가 그 원곡으로, 1855년 조지 페트리(1789-1866)라는 전통민요 수집가가 발행한 ‘Ancient Music of Ireland’에 최초로 그 곡을 수록했다. 조지 페트리는 이 곡을 북아일랜드의 런던데리주의 소읍인 "리마바디"에 살고 있는 제인 로스(1810-1879)라는 여인으로부터 채록했는데, 명확한 제목을 알지 못하자, 그녀의 거주지인 "런던데리"의 이름을 따서, ‘Londonderry Air’(런던데리의 하늘)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런던데리"는 북아일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참나무의 고장’이란 뜻의 데리(derry, doire)는 1604년에 런던의 통치구로 승인되면서 "런던데리"라는 지명으로 바뀌었는데, 1604년부터 8년, 이어 1688년에는 1백 5일간의 시민전쟁을 치른 격전지라고 한다. 따라서 이 같은 전란에 휩싸였던 도시에서 발생했던 민족상잔의 비극의 얘기들이 많이 구전되어 왔다고 한다.


이러한 ‘Londonderry Air’가 후에 ‘Danny Boy’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영국의 변호사 겸 작곡가, 라디오 진행자였던 프레드릭 에드워드 웨덜리(Frederick Edward Weatherly,1848-1929)의 공적이었다.


그는 이전에 전쟁터로 어린 아들을 보내야 하는 부모들의 비통한 처지를 묘사한 것을 노랫말로 ‘Danny Boy’를 작사해 두었었는데, 우연히 미국에 살고 있던 친척이 전달해 준 ‘Londonderry Air’라는 곡을 입수하고는, 자기가 이미 써 놓은 ‘Danny Boy’의 노랫말을 ‘Londonderry Air’의 곡에 대입시켜, 1913년 드디어 불후의 명곡인 ‘Danny Boy’가 세상에 첫선을 보이게 됐다고 한다.


"오 사랑하는 아들 대니야,

고적대의 소리가 널 부르는 구나,

골짜기에서 산기슭 아래에도,

여름은 갔고 장미들도 다 시드는데,

이제 너는 떠나야만 하고

우리는 여기 남아 널 기다린다..."


이런 노랫말로 개사된 ''대니 보이'' 중 ‘피리소리’는 목동이 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영국군대의 백파이프 악단이 전쟁터에서 진군을 독려하는 멜로디로 쓰이는 것이었다.


‘대니 보이''는 아들이 전사해서 돌아오면 아버지의 무덤 곁에 묻어, 저승에서나마 못 다한 부자의 정을 나누자는 애달픈 사연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팝계에서는 "해리 벨라폰테", "빙 크로스비", "앤디 윌리암스" 등이 잇달아 취입하면서, 크게 호응을 얻었었다.


Danny Boy (아! 목동아)


Oh Danny boy, the pipes, the pipes are calling

From glen to glen and down the mountain side

The summer`s gone and all the roses dying

`Tis you, `tis you must go and I must bye


But come ye back when summer`s in the meadow

Or when the valley`s hushed and white with snow

And I`ll be here in sunshine or in shadow

Oh Danny boy, oh Danny boy I love you so


But if he come and all the roses dying

And I am dead, as dead I well may be

He`ll come here and find the place where I am lying

And kneel and say an ava there for me


And I shall feel, oh soft you tread above me

And then my grave will richer, sweeter be

For you will bend and tell me that you love me

And I shall rest in peace until you come to me.


오, 대니 보이

골짜기에서 저 산 언저리까지 백파이프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단다.

여름은 지나고 장미는 떨어지고 있어

넌 떠나야 하는데 난 그럴 수가 없단다.


꽃들이 시들어 가면 언젠가 아들이 돌아올 거야

그리고 난 싸늘히 죽어 있겠지

네가 돌아와 내가 누워 있는 곳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할 테지

내 곁에 있어 주겠다고


저 초원에 여름이 오면 네가 돌아와 줄까

계곡이 숨을 죽이고 눈으로 뒤덮일 때면 돌아올까

햇빛이 비추어도, 그늘이 드리워도 난 여기 있을 거야

대니 보이, 오 대니 보이 난 정말 널 사랑한단다.



이 노래는 북아일랜드의 런던데리 지방의 민요이다. 아름다운 선율과 무리 없는 느낌으로 우리 정서에 와 닿았던 곡이다. 아일랜드 민요는 자연스럽고 세련된 멜로디가 특징이다. 서정적이고 부르기 쉽기 때문에 애창되는 곡이 많은데, 특히 대니 보이는 더욱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많은 뮤지션들이 대니 보이를 나름대로 느낌을 달리해서 표현했다. 컨추리송과 블루스가 이 노래의 바탕이다.

여러 가지 노랫말로 구전되어 불리어지던 이 곡은 1913년에 프레데릭 에드워드 웨덜리가 "Danny Boy" 라는 제목으로 가사를 쓰고 아일랜드 출신 가수 존 맥코맥이 노래로 불러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시골 목동이 도시로 떠나는 사랑하는 소녀와 헤어지기 안타까워 부르는 이별 노래였다. 원제는 "런던데리의 노래"였는데,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후에 전쟁터에 나가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보내는 애틋한 사랑 노래로 개사되었다.


아일랜드인의 모습은 고되고 힘든 식민통치를 겪은 우리의 정서와 너무도 흡사하다. 억압 속에서 그리는 고향의 평화롭던 옛 정취. 죽어간 남편, 아내, 자식, 친구 들을 땅에 묻으며 부르던 노래...... 이러한 노래의 배경에 깔린 정서가 이 곡이 우리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는 한 요소일 것이다. 이 곡은 아일랜드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상징적 음악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대니는 다니엘의 애칭인데, 아일랜드에서는 장례식에서 이곡을 부르는 게 전통이다. 그것은 외압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며 청춘을 다한 아일랜드 사내는 늘 어린 소년 대니의 모습으로 어머니의 눈시울을 적시며 땅속으로 돌아가는 운명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posted by 추월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