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어요 2010. 1. 22. 10:17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 글쓴이-김슬옹(?)


우리가 남의 나라 글을 따라서 쓰고, 그렇게 쓰는 글을 따라서 말을 하게 된다면, 그 말이 다시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우리 삶을 움직인다고 보아야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그러하다면 어떻게 그것을 가리켜 말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의 모두 걸린 정신병이 무엇인가? 이런 물음을 품은 이 오덕님은 유식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쉬운 말을 하면 무식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남들이 잘 안 하는 말, 어려운 말, 유식한 말을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우리 신문은 사건이 발발했다고 쓰지 일이 일어났다고 쓴다거나 언어를 사용한다고 하지 말을 한다고 쓰지 않는다. 쉬운 말로 글을 쓰면 무식한 사람들이 만드는 신문이라고 말할까봐 그렇게 쓰는 것이다. 유식한 척하려고, 학문이 있고 똑똑한 사람들이 만드는 신문임을 내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말을 할 때도 만나서 들어서 봐서 라고 할 것을 접해서라 말하는 것이 모두 유식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놀이가 오락으로 레크리에이션으로 바뀌듯 우리말에서 중국글자말로, 중국글자말에서 서양말로-이것이 우리말이 변질한 과정이요, 이 과정이 우리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요, 또 이것이 우리들 정신이 변질한 역사다.

유식함을 내보이려 하는 것을 좋게 생각할 편도 있다고 할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이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투어 글을 배우고 책을 읽고, 그래서 이른바 학문이 나아간다고.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 어느 나라에도 그 보기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학교 공부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 유식병 때문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공부를 하고 학문을 하는 목표가 유식함을 내보이는 데 있어서야 어찌 그 학습이며 학문이 제대로 되겠는가?

유식함을 자랑삼고, 유식함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다른 쪽에서 보면 무식함을 부끄러워하고 멸시하는 것이 된다. 무식한 것과 무식한 말을 하는 사람들의 삶이야말로 가장 깨끗하고 바른 우리 겨레의 것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 것을 부끄러워하고 멸시하는 마음이 그대로 유식을 뽐내는 마음이 되어 있다.

유식한 말을 써야 권위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광고 한 줄, 표어 한 마디도 권위가 있어 보이는 말을 찾아 쓰게 된다. 이런 태도는 공공 기관이나 행정관청에서 더 잘 보여주고 있다. 무슨 표어든지 광고물이든지 어려운 말을 써놓으면 근사하게 여겨서 그 앞에 머리를 숙이는 기분이 되거나 순종하는 몸가짐이 되지만,아주 쉬운 말로 써놓으면 별 볼일 없는 사람, 아무 힘도 없는 사람이 하는 짓으로 얕보고 멸시하는 경향까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식민지 백성들의 종살이 본성이다. 글이 지배하는 역사가 우리의 생각과 삶을 이렇게 만들고 있다고 나는 본다. 그리고 이런 백성들의 정신 상태를 행정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아차리고 있어서, 몇 해 전부터는 관공서의 건물마다 나붙은 행정 구호를 우리 글에서 중국글자를 섞은 글로 모두 바꿔 놓았던 것이다.

말을 살리는 글을 어떻게 하면 쓸 수 있는가? 한자말 일본말 서양말 같은,밖에서 들어온 말을 안 쓰고, 쉬운 말과 순수한 우리말을 찾아 쓰면 된다. 글을 모르는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쓰면 된다. 이렇게 말하면 문제는 아주 쉬어 보인다. 그런데 쉬운 말을 쓴다는 것, 시골에 사는 노인들도 알 수 있는 말을 쓴다는 것이 잘 안 된다. 그게 더 어렵다. 우리 모두가 어려운 말을 쓰는 버릇이 아주 굳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글말의 세계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그런 삶에 푹 빠져 있다. 우리가 겨레말을 도로 찾아가지려고 하면 무엇보다도 글말의 세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글말의 세계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나?

우리겨레가 쓰는 배달말이 어째서 생겨나고 전해왔는가, 그 특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부터 알아야 한다. 우리 배달말은 농사일에 쓰이는 말이 많고, 사람과 자연의 모습과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이 중심으로 되어 있다. 우리 배달글은 세종대왕이 지었다기보다 풍성한 말을 가진 우리 온 겨레가 지어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 같다.

오늘날 말을 주고받는 것으로 배우지 못하고 듣기만 하는 것으로 배우게 된 까닭은 글이 말을 앞질러 말을 억누르고 부리는 사회가 된 때문이다. 사람들은 신문이나 잡지나 그 밖의 책들을 읽는데, 그것은 끊임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읽는 모든 글을 신문기사든지,논설문이든지,소설이든지,수필이든지,그 모두가 주고받는 말의 형식이 아니고 한쪽에서 제멋대로 쏟아놓기만 하는 글로 되어 있다. -다, -다 하는 이 견딜 수 없는 문체 -모든 읽는이를 벙어리로 만들어놓고 글쓴이 그 자신도 비인간화의 수렁 속에 빠져 있게 하는 문체는 이렇게 해서 씌어졌다. 그리고 이런 글의 횡포가 글을 떠나 있는 듯한 말-연설, 강의, 웅변, 방송, 설교... 들에까지 절대한 힘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을 잃었다는 것은 삶을 잃었다는 것이다. 어른도 아이도, 심지어 유치원에 다니는 아기 때부터 삶을 잃어버렸다. 삶이 없으니 말을 주고받을 수 없다. 삶을 빼앗긴 모든 사람은 그저 주는 말만 듣고, 이야기만 듣고, 노래만 듣고 기계같이 움직인다. 언제나 그렇게 하다 보니 그렇게 듣기만 하는 이야기나 노래가 마치 자기표현인 것처럼 착각하게도 된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고받는 말을 되찾을 수 있을까? 살아 있는 우리들의 말, 사람의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길은 오직 하나 뿐이다. 삶을 찾아 가지는 것이다. 기계가 되지 말고,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아이들을 서로 다투고 해치고 잡아먹게 하는 지옥에서 살려내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주고받는 말을 하고 살아 있는 말을 찾아내어 그것을 글로 써야 한다. 그래서 글을 살려낸 다음에는 다시 글이 횡포를 부리지 않도록, 글이 말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의 밑에 있도록, 말을 살리고 말에 봉사하는 글이 되도록 해야 한다.사람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가? 거의 모두가 삶에서 벗어나 있다. 더구나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방안에 갇혀 글만 쓰는 행위, 끊임없이 무슨 이야기를 머리속에서 만들어내어 남에게 주기만 하려고 애쓰고 있는 짓, 과연 이런 태도가 제대로 된 글쓰기라고 볼 수 있을까? 체험과 행동은 없고 책만 읽어서 이른바 ‘상상’이란 것으로 적어놓은 말들이 살아 있는 겨레말이 될 수 있는가? 절대로 없다.

나는 여기서 오늘날의 우리 문학에 깊은 의심을 품는다. 그 옛날에는 소설가고 시인이고 하는 부류의 사람이 따로 없었다. 농사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살았다. 그래서 삶과 문학은 온전히 하나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모든 삶이 갈기갈기 찢겨버렸다. 일하는 사람은 일만 하고,노는 사람은 놀기만 하고, 글쓰는 사람은 글만 쓰고, 노래만 부르는 사람, 춤만 추는 사람, 공만 차는 사람 ... 이렇게 모두 갈려 나갔다. 이것이 발달이라고 진보라고 말하는 모양인데, 어처구니가 없다. 이제 이렇게 된 세상을 어떻게 하나? 다른 것은 몰라도 글쓰는 짓만은 이래서 안 된다. 글쓰기는 사람의 모든 삶을 뚫어보고 갈 길을 비춰 주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문학이 살아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서간다는 나라들의 이론들을 부지런히 배우고 따라가야 하나? 우리 문학을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서 읽히도록 해야 하나?시인작가들이 더욱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가? 문인들을 우대하는 특별시책을 정부가 세우도록 해야 하나?

아니다. 그런 방법, 그런 시책으로는 결코 우리 문학을 살려낼 수 없다. 나는 우리 문학이 살아나려면 무엇보다도 글을 쓰는 사람들이 방안에 앉아 글만 쓰지 말고 밖에 나와 일을 해야 한다고 본다. 농사일이든 공장일이든, 하다못해 길가에서 장사하는 일이라도 좋으니 온몸으로 일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소설 같은 걸 쓰자면 힘도 시간도 많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한 해에 평균 한두 달은, 글쓰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본다. 한두 달이 아니고 더 많이 일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 이렇게 일을 해야 글이 살아날 수 있다고 믿는다. 한 사람의 작가나 시인뿐 아니라 우리 문학 전체가 살아나는 길도 이것밖에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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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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