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어요'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09.01.21 :: 저항의 연극 `크루서블` / 김수현 기자
  2. 2008.12.23 :: 동백나무를 알고 싶어요
  3. 2007.05.14 :: 개가 풀을 뜯어 먹는다?
  4. 2007.05.13 :: 블로그(Blog)란 무엇인가?
알고 싶어요 2009. 1. 21. 21:54

추억 속의 보물상자(http://cafe.daum.net/ajbit/3D4k/4)에서 가져온 글


저항의 연극 '크루서블'2006-05-02



지난번 영국 출장에서 본 공연 중에 아서 밀러 원작의 연극 '크루서블(The Crucible. 시련)'이 있었습니다. (마릴린 먼로와 결혼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던 아서 밀러는 ‘크루서블’ 외에도 ‘모두가 나의 아들’ ‘세일즈맨의 죽음’ 같은 걸작을 남긴 20세기 미국 문학의 거장으로 지난해 타계했습니다.)


취재 때문에 런던 극장가를 돌아다니다, 길거드 극장에 내걸린 이 간판에 호기심을 느꼈습니다. 영화 '크루서블(1996)'을 봤기 때문에 연극은 어떨까 궁금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노래와 춤이 곁들여지는 뮤지컬과는 달리, 줄줄이 대사가 이어지는 연극을 외국어로 본다는 게 부담스러워서 볼 생각은 없었죠. 그런데 숙소에 비치된 공연 정보지 '타임 아웃'(이런 정보지가 한국에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 주의 모든 공연들이 장르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데다, 중요한 공연들은 평도 실렸거든요.


재미있는 것은 '게이&레즈비언' 섹션이 있어 동성애자들의 '문화생활' 혹은 '생활정보'까지

제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을 보고 구미가 당기기 시작했습니다. '크루서블'이 받은 평점이 별 6개였거든요!! (보통은 아주 뛰어나다고 하는 작품도 별 4개 정도랍니다.) 공연평의 첫 문장은 "Yes, that's six stars."로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타임 아웃의 평점은 꽤 영향력이 있다는데, 대체 어떤 작품인데 그럴까.


또 하나 구미를 당긴 것은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가 제작했다는 점이었죠. 제가 특별히 셰익스피어를 좋아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 유명한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RSC'라니, 연극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이름이거든요. 여기에 런던에서 우연히 만난 연출가 손진책 씨의 권유가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는'보통 런던에 오면 시차 적응이 되기 전에는 조금 졸아도 관계없는 작품을 보는데, 이번에는 보통 때와는 달리 '크루서블'을 하루라도 빨리보고 싶어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봤다'며, 이 작품을 꼭 보라고 했습니다.


손진책 씨도 그렇고, 요즘은 뮤지컬 연출을 주로 하지만 예전에는 정극 연출도 많이 하던 윤호진 씨도 그렇고, 이 작품을 한국에서 너무나 하고 싶었는데, 아직까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곁들였습니다. ‘크루서블’은 1970년대 국내 공연이 금지된 작품이었다 합니다.


팽팽한 긴장감 넘치는 무대


결국 '크루서블'을 보기로 마음을 굳히고 표를 샀습니다. 31파운드. 우리 돈으로 5만원 조금 넘는 돈인데, 1층 객석의 뒤쪽이었습니다. 공연 시간은3시간. 졸리면 까짓 자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흰 색을 주조로 한 모노톤의 무대장치는 간결했지만,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되며 마을 사람들의 집과 법정, 그리고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숲을 형상화하고 있었습니다.


대사는 물론 다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하나도 졸리지 않았습니다. 출장 막바지라 무척 피곤한 상황이었는데도 저는 내내 귀를 쫑긋 세우고 무대를 주시할 수 있었습니다. 거의 10년 전이긴 해도 영화를 봐서 줄거리를 대략 알고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됐겠지요. 무엇보다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뿜어내는 에너지가 너무 압도적인 데다, 작품 자체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서 졸고 싶어도 졸 수가 없었습니다. (위노나 라이더와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나왔던 영화 ‘크루서블’의 감독은 니콜라스 하이트너입니다. 셰익스피어 전문가로 이름났고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초연 연출을 맡았던 연출가이기도 하지요. )


크루서블'은 1692년 청교도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던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작은 마을 세일럼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마녀 사냥을 소재로 쓰였습니다. 당시 19명의 남녀가 교수형을 당했으며, 체포된 사람이 140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아서 밀러는 마녀로 몰려 화형당하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을 마녀로 몰아야 하는 상황을 풀어나가면서, 195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매카시즘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저항의 연극'


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서 밀러 전문가 크리스토퍼 빅스비의 글에 따르면, 1952년 4월, 아서 밀러는 절친한 친구였던 엘리아 카잔으로부터 자신의 작품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출한 친구 엘리아 카잔으로부터, 의회 비미(非美)활동 특별조사위원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에서 1930년대 공산당 모임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댔다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아서 밀러는 카잔이 자신의 이름도 지목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세일럼으로 달려가 ‘크루서블’의 자료 수집에 들어갑니다. (연극 연출가이며 영화감독인 엘리아 카잔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1948년 연출했으며, 후에 ‘에덴의 동쪽’ ‘워터프론트’ 등의 영화를 감독했습니다.


그는 1950년대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광고를 뉴욕 타임스에 게재하기도 했으나, 세월이 흐른 뒤인 1972년,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는 것(naming names)'은 역겨운 일이었으며, 인간적으로 후회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엘리아 카잔은 1999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았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내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200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


1953년, ‘크루서블’은 뉴욕의 마틴 벡 극장에서 막을 올렸습니다. 아서 밀러 자신의 표현대로, 이 초연 프로덕션은 ‘An Act of Resistance(저항의 연극)'이 됐습니다.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 힘겹게 지속됐던 공연은 몇 주 만에 막을 내렸고, 주역으로 출연했던 배우들은 모두 ‘블랙리스트’에 올라 고초를 겪었습니다. 아서 밀러 자신도 이 작품이 이후 벨기에에서 공연될 때 여권 갱신을 거부당했습니다. 1956년 ‘위원회’에 출석한 아서 밀러는 ‘이름을 댈 것’을 거부하고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내 이름을 지키기 위해


“I am trying to, and I will, protect my sense of myself. I could not use the name of another. I take responsibility for everything I have ever done, but I cannot take responsibility for another human being."


자신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진실을 지키기 위해, ‘악마가 이웃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봤다‘는 거짓 고백을 거부하고 형장으로 끌려가는 ‘크루서블’의 주인공 존 프록터의 대사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뜨거운 것이 가슴 속에 치밀어 오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초연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나 같은 이방인에게도 이럴진대, 당시 관객들에게는 이 대사가 얼마나 심장 깊숙이 파고들었을까. 아서 밀러가 위원회 앞에서 증언을 거부하며 했던 진술 역시 이 대사였다고 합니다.


RSC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


제가 본 연극에서는 포스터에 나온 이안 글렌(Iain Glen)이라는 배우가 순박하고 강직한 농부 존 프록터 역을 맡았습니다. 자신과 불륜관계를 맺었던 소녀 아비게일의 복수심에서 비롯된 거짓말이 온 마을을 휩쓰는 마녀 사냥의 광풍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은 그 광풍 속에 희생되는 역입니다. 영화의 존 프록터, 다니엘 데이 루이스도 훌륭했지만, 바로 제 눈앞 무대에서 펼쳐지는 배우의 연기는 더욱 압도적이었습니다. 존 프록터가 아비게일의 거짓말을 밝혀내기 위해 법정에서 서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마는 심문 장면은 영화에서도 그랬지만, 긴장을 한시도 늦출 수 없는 명장면이었습니다. 특히 존 프록터의 설득으로 아비게일의 거짓말을 증언하기 위해 나왔던 소녀 메리가,악마가 보인다며 발작하는 다른 소녀들의 광기에 질려 ‘진실을 말하는 소수’가 되기를 포기하고 ‘거짓말하는 다수’에 속하기를 간청할 때, 그리고 아비게일이 마녀로 지목한 존 프록터의 아내 엘리자베스가 재판관 앞에 끌려나와 남편과 아비게일의 관계를 추궁 당할 때, 무대가 뿜어내는 열기는 제대로 숨 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마녀 사냥’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끌고 가려는 권력자들, 거짓말을 은폐하기 위해 광적인 발작 연기도 서슴지 않는 소녀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용기 있게 진실을 택하는 보통 사람들...... 아서 밀러는 ‘배신은 인간이 타고난 본능이지만, 이 본능에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것 또한 인간 본능‘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다시 볼 날을 기다리며


공연이 끝나고 극장을 나오면서, 저는 계속 가슴이 벅찼습니다. 작품에 감동했고, 배우들의 연기에 감동했고, 평일인데도 객석을 꽉 메운 관객들에게 감동했고, 이 작품을 선택해서 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에 제 자신이 대견스러워졌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지난 2002년 서울시극단이 ‘크루서블’을 공연한 기록이 있더군요. 당시 존 프록터 역을 강신구 씨가 했다는데, 대단한 호연이었다고 합니다. 왜 그 때는 이 작품을 놓쳤을까 뒤늦게 후회했습니다. 손진책 씨는 제가 볼 때 이 작품을 두 번째로 관람했습니다. 다시 봐도 역시 좋다고 했습니다. 언젠가는 손진책 씨가 연출하는 연극 ‘크루서블’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다시 ‘크루서블’을 보게 될 날을 기다립니다.



김수현기자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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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어요 2008. 12. 23. 13:05

해풍에 실어 보내는 남국의 그리움 : 동백나무 (Camellia japonica L)



동백나무는 찬바람이 불 때 비로소 꽃망울을 부풀린다. 다른 대부분의 꽃들이 시들고 잎마저 말라죽고 나면 동백은 오히려 푸른 잎을 반짝인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다소곳이 고개 숙인 동백꽃의 그 붉은 색깔은 겨울에 피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닷가에서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그리움의 꽃이다.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 도서지방과 서쪽으로는 대청도와 동쪽의 울릉도까지 바닷가를 끼고 자란다. 특히 서해 대청도의 동백나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 66호로 지정된 곳이다. 지구 위에서 위도상 가장 북쪽에 위치한 관계로 추위에 강하다.

문일평(文一平)은 《화하만필(花下漫筆)》에서 “동백은 속명(俗名)이요, 원명(原名)은 산다(山茶)이니 산다란 동백의 잎이 차나무와 비슷하여 생긴 이름이다. 일본에서는 춘(椿)이라 하며, 중국(中國)에서는 해홍화(海紅花)라 한다.”고 썼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의 동백꽃은 멀리 중국에도 잘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이태백(李太白) 시집에도 “해홍화는 신라국에 자라는데 꽃이 매우 선명하다.(海紅花 出新羅國 甚鮮)”고 했다. 또 《유서찬요(類書纂要)》에는 “신라국의 해홍화는 곧 산다를 말한다. 12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면 이듬해 2월 매화가 필 때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다매(茶梅)라고도 한다.(新羅國海紅 卽淺山茶 而差小 自十二月開 至月 與梅同時 一名茶梅)”고 했다.

지봉(芝峰) 이수광(李수光)이 지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옛 사람의 글을 인용하면서 “꽃이 큰 것을 산다(山茶)라 하고 작은 것을 해홍(海紅)이라 한다.”고 했다. 또 동백꽃에서 꿀을 빠는 동박새를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동백나무는 남쪽지방에서 난다. 잎은 겨울에도 푸르고 10월 이후에나 꽃이 핀다. 꽃색은 진홍빛이고 오래되어도 시들지 않는다. 이것은 옛날 사람들이 말하던 바로 그 산다(山茶)이다. 꽃이 필 때마다 푸른 새가 날아와서 그 꽃순을 먹으며 밤이 되면 그 나무에서 자기도 한다.



지봉은 동박새가 꽃순을 먹는다고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꿀을 빨기 위해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녔던 것이다. 현대인이라면 동백꽃이야말로 동박새가 꽃가루를 옮기는 조매화(鳥媒花)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동박새가 깃들지 않는다면 곤충이 없는 겨울에 동백꽃이 필 턱이 없다.

원예학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동백꽃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자생하는 동백꽃과 애기동백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동백은 겨울에 꽃이 피어 봄까지 계속된다. 남부 도서지방에서는 11월부터 꽃이 피는데 비해 북쪽으로 가면서 개화기간이 늦어진다. 내륙의 최북단 자생지인 전북 고창의 선운사 뒷산 동백은 4월초에 개화한다. 또 지구상 가장 북쪽 자생지인 대청도 동백 자생지는 4월 중순이 절정기이다. 이를 두고 볼 때 동백이 반드시 겨울에 피는 꽃이라고는 말 할 수 없다.

옛 사람들이 말한 해홍화가 곧 동백이고 산다화란 애기동백을 말한다. 애기동백은 잎이 좁고 길며 가을에 서리가 내릴 때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겨울에 절정을 이룬다. 수많은 원예품종이 있다. 동백이 아교목이고 내한성이 강한데 비해 애기동백은 관목 상태로 자라는 것이 보통이다. 애기동백은 내한성도 약해서 주로 남부 도서지방에서 재배한다.

《양화소록(養花小錄)》의 부록 〈화암수록(花菴隨錄)〉에는 꽃을 9등급으로 나누었는데 동백은 선우(仙友) 또는 산다(山茶)라 하여 3등에 올려놓았다. 또 꽃이 피는 나무를 9품으로 나누었는데 동백은 작약, 서향(瑞香), 노송(老松), 단풍, 수양(垂楊)과 함께 4품에 들어있다.

성현(成俔)의 《용제총화(용齋叢話)》에는 그 지방에서 잘 자라고 맛이 좋으며 알이 큰 과일을 소개하고 있다. 정선에서는 배나무, 영춘의 대추나무, 밀양 밤나무, 함양 감나무라 적고 구례에서는 동백나무가 잘 자란다고 했다. 지금도 화엄사 뒤 대숲에는 붉은 동백꽃이 맨 먼저 봄을 알린다.

아무리 아름다운 동백꽃이라도 숲을 이룰 때에 가치가 있다. 한 그루만 달랑 서 있으면 외롭게 보이는 가 보다. 제주에서 불리는 동백꽃 노래이다.



낭기 존 딘 그늘이 좋고

동싱 한 딘 위품이 좋다

외론 낭게 외 돔박 ?이

외로 나난 설와라 ?다.



나무숲이 우거진 데는 그늘이 좋고 동생이 많으면 위엄이 있어서 좋다. 외톨박이로 서 있는 동백나무 같이 혼자 태어난 나는 서럽다 서러워. 나무꾼이 자신의 지게에 기대앉아 외로운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종이로 조화를 만들어 의식에 널리 쓰였다. 고려 때부터 불교의식이나 민속신앙 의식에서 지화(紙花)를 쓰게 되면서 일반 가정에서도 지화를 장식하는 일이 유행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때 만든 종이꽃을 보면 모란, 국화, 연꽃을 많이 만들었고 매화와 동백, 무궁화, 진달래도 불단이나 제단을 장식하는 데 쓰였다. 동백은 꽃이 크고 색깔이 선명하여 지화를 만들었을 때 다른 꽃보다 사실감이 있고 만들기도 쉬웠다.

동백은 사철 푸른 잎을 하고 있어 불사(不死)의 대상으로 보았다. 남해 도서 지방에서는 새로 담은 장독에 새끼줄을 걸고 소나무 가지와 동백 가지를 꽂는다. 잡귀와 역질이 들지 않기를 바라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풍습은 일본에도 남아있다. 정월달 집 대문 양쪽에 장대를 세우고 새끼로 연결하여 솔가지와 동백가지를 꽂는다. 이러한 장대를 가도마쓰(鬼木)라 하는 데 귀신이 얼씬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부산에는 동백나무 이름을 딴 동백시장이 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중고품 시장을 열어 성공한 곳이 부산의 동백시장이다. 가정에서 안 입는 옷가지를 모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싼값에 넘겨주는 재활용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미망인이나 노동자 부인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옷이며, 밑반찬, 수공예품, 장난감 같은 것들을 들고 나와 서로 교환하기도 했고 팔고 사기도 했다. 지난 80년 초에 시작된 이 일이 부산의 각 구청별로 확산되었고 물자 절약은 물론 전국적인 사회 생활운동으로 정착돼 가고 있다.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가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불로초(不老草)와 불사약(不死藥)을 구하기 위해 동해로 사람을 보냈다는 전설이 있다. 그 사신이 우리나라의 제주도에 와서 가져간 불사약이 바로 동백기름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일본 교토의 쓰바키사(椿寺)에는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우리나라 울산성에서 훔쳐 그들의 괴수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바친 오색동백(五色椿)이 아직도 살아있다. 히데요시는 이 나무에 감시자를 두어 아무도 접근을 못하게 했다. 그리고 젊어지기 위해 씨에서 짠 기름을 혼자만 먹었다고 한다.

꽃은 통째로 떨어진다. 시들지 않은 꽃이 떨어지는 식물은 동백 말고는 별로 없을 것이다. 떨어진 꽃을 주워 술을 담가 마시거나 찻잔에다 띄울 수도 있다. 또 꽃잎을 찹쌀 반죽에 적셔 전을 부치면 맛깔스런 요리가 된다. 꽃을 쪄서 말린 것을 빻아 가루로 만들면 지혈제로 효과가 좋다. 외상에 뿌리거나 코피 날 때도 쓴다.

동백씨에서 짠 동백기름은 튀김요리를 할 때 좋고, 머릿기름으로 했던 화장유였다. 목욕 후에는 동백기름을 발라 피부를 매끄럽게 했다. 비누가 없었던 시절에는 잎을 태운 재를 물에 녹여 비누 대신 썼다고 한다. 동백기름은 기계의 윤활유로 쓰였고, 등불을 밝혔으며, 불에 데었을 때 상처 난 곳에 발랐다.

방랑시인 김삿갓(金炳淵)은 자신의 시에서 박물장수가 노파에게 동백기름을 파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연지, 분 등속 안 사시겠어요.

동백기름 향유도 갖고 왔다우

?脂粉等買耶否

東柏香油赤在斯



옛날에는 동백기름이 화장품으로 널리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씨에서 짠 기름을 화상에 바르면 상처가 쉽게 아물고 흉터도 잘 생기지 않는다. 머리에 바르면 머리카락이 세지 않는다고 알려져 부녀자들이 열매가 익는 겨울이면 다투어 동백 숲을 찾았다. 최근 일본에서는 동백기름에 발모 성분이 있다는 것이 알려져 발모제를 합성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봄철에 새로 돋아나는 어린 싹을 나물로 먹는다. 새싹을 따면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찬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다. 이것을 무침, 전 같은 요리에 쓴다.

동백의 목재는 단단하여 최고급 목기를 깎는데 쓰였다. 그러나 지금은 큰 나무가 없으므로 동백목기도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또 동백나무로 구운 목탄은 화력이 세고 불티와 그을음이 생기지 않아 최고급 숯으로 쳤다. 남해 도서지방에서는 겨울철 화로에 담는 숯불로는 반드시 동백숯을 썼다. 그 때문에 동백나무가 수난을 받아 지금은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낭떠러지 같은 곳에만 남아 있다.

동백나무를 태운 재를 동백회(冬柏灰)라 하여 염색할 때 매염제로 썼다. 동백나무 재는 강한 알칼로이드 성분과 철분을 띠고 있어 선명한 붉은색과 보라색을 띤다. 동백회는 도자기의 잿물을 만들 때도 쓰인다. 동백회를 진흙 물에 섞어 유약으로 쓰면 고운 빛깔의 도자기를 구워낼 수 있다. 저 고려청자의 비취색은 동백회를 섞은 유약 때문에 그토록 고운 빛깔이 드러났는지도 모른다. 청자의 비색을 재현해 보는 일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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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어요 2007. 5. 14. 10:17

토끼는 물을 안 먹어도 산다?
절대 아니다. 세상에 물을 안 먹고 사는 동물은 하나도 없다. 간단히 생각해도 동물 몸의 70%이상이 물로 되어 있는데 왜 물이 필요치 않겠는가? 그러나 토끼나 낙타 같은 동물은 확실히 다른 동물들보다 물이 덜 필요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들의 오줌을 보면 아주 농축되어 거의 까만색을 띄고 냄새도 고약하다. 아울러 똥도 거의 수분이 없이 둥그스름하다. 이 정도면 다른 동물들은 이미 신장에 병이 있거나 변비라고 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오줌과 똥을 농축함으로써 수분이 빠져나가는 걸 방지한다. 아마 야생토끼 같으면 며칠동안은 물을 안 먹고도 청초만으로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완토끼의 경우는 주로 건초와 마른 사료를 먹기 때문에 물통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제발 잘 모르는 어른들의 말만 믿고 물을 주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기 바란다.

개가 풀을 뜯어 먹는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라는 비유는 황당하거나 필요 없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러나 이건 결코 욕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개들은 풀을 뜯어 먹기 때문이다. 특히 연한 새싹을 좋아한다. 이 풀들은 소화는 거의 되지 않지만 개의 소화기를 거치면서 섬유소화 되어 마치 빗자루처럼 장을 말끔히 청소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모양 그대로 뭉쳐서 똥이나 구토로 나온다. 개 뿐만 아니라 호랑이, 사자, 고양이들도 역시 풀을 뜯어먹는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풀을 먹는 것은 장 청소처럼 단순한 것에서부터 항균제, 구충제, 진통제 성분을 찾아 먹을 줄도 알며, 기분이 우울할 땐 알코올이 발효된(의도적으로 씹었다 뱉었다 하며 발효시키기도 함) 열매를 먹고 일부러 취하기도 한다고 한다.

기린이 뼈를 먹는다?
맞는 말이다. 기린은 큰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 미네랄 성분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코끼리 의 경우는 항상 흙을 접하고 살기에 이를 먹음으로써 광물질을 보충하는데 기린의 경우는 목을 숙이는 게 위험해서 흙을 함부로 먹을 수가 없다. 대신에 과량의 미네랄이 농축되어 있는 뼈를 들어서 핥아 먹음으로써 효율적으로 미네랄을 섭취한다. 동물원 같은 경우 핥을 만한 물건이 없으면 벽이고 기둥이고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핥기 때문에 관리가 잘못되면 페인트나 납 중독에 빠지는 일도 생긴다.

초식 동물들이 육식을 할 때도 있다?
이 역시 맞다. 토끼나 많은 초식성 설치류들은 환경(습기나 기온, 스트레스)이 안 좋으면 새끼를 잡아먹기도 한다. 암컷 초식동물들은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에 딸려 나온 태반이나 피 한 방울까지 모든 부산물을 말끔히 먹어치운다. 소의 경우 그 태반의 무게만도 20kg 이상을 넘어간다. 그래도 소화시키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오히려 태반이나 새끼를 먹음으로써 필요한 영양분(단백질 등)을 보충받기도 한다. 광우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런 육류성분이 들어간 사료도 전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이밖에도 고양이는 쵸코렛을 먹으면 안 된다느니, 개는 양파나 오징어를 먹으면 안 된다느니 하는 말은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쵸코렛이나 양파 같은 것은 주로 약용이나 향료로서 약리작용과 독작용을 동시에 한다. 때문에 사람처럼 먹어 버리면 몸에 비해 과량을 섭취하게 되어 부작용(쵸코렛-심장마비나 발작, 양파-용혈성 빈혈)이 따를 수 있고 오징어의 경우, 개는 잘 씹지 않고 삼키는 데다 위장이 작아서 소화 흡수가 잘 안 될 수 있다. 담배도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집안에서 피우면 사람들보다 훨씬 더 빨리 니코틴 중독이 될 수 있다. 경험상 보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이 좋아한다. 단지 동물들은 척박한 생존 경쟁의 환경 속에 살아 남기 위해 나름대로 먹이에 대해 취사선택을 했을 뿐이지, 자연계 최고의 미식가인 사람의 미각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개미핥기는 개미만 먹는다는 선입견은 버려라! 동물원의 개미핥기는 소고기를 더 좋아한다. (글: 최종욱 – 야생동물 수의사)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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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어요 2007. 5. 13. 22:55

블로그 Blog

웹로그(weblog)라고도 함.

관심사에 따라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는 일종의 개인 웹사이트.

인터넷을 의미하는 '웹(web)'과 자료 또는 일지를 뜻하는 '로그(log)'의 합성어인 '웹 로그(weblog)'의 줄임말로 사이트 운영자가 취재·편집·발행을 총괄한다는 점에서 '1인 미디어' 혹은 '뉴스 게릴라'라고도 부름.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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