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시 2007. 3. 27. 11:25

봄은

진헌성

봄은

들향기에 메인 아가씨같이

겨우내 안자락으로 내리깔던 꽃망울들을

홀연 하늘로 펴들어

뒷 돌담가 아지랑이 불꽃에 휩싸여서

들에 산에 쏘다니는 소녀들의 철이다.

먼 바람의 끝자락을 끌어다 잡고

겨우내안결에 검게 그을리던

가지마다의 눈망울들을 드디어

발그레 불 덩구어 아린 철.

만상의 처음과 영원의 끝을 출렁이는 바닷가

저승의 옥두레박줄 같은 애틋한 깊이의

속눈썹에 사로 잡혀

지옥의 염원들이 가라앉았다

이승의 꽃들로 타들 듯 피어오르는 봄은

지난 회오리바람에 부러진 날개들을 펼쳐서는

살아남은 기쁨들을 얼싸안고

수풀들 쳐들어가 다시 불타오르는 철.

꽃이야, 꽃이야, 불타는 꽃이야

그립던 세상의 네 눈꼭지

네 눈꼭지에 멍울져 피어나서

내 영혼마저 들어올린

저승결 불타는 꽃숭어리야.

봄은 이제

내 이승의 꽃망울 가지로 치든

수미산 그 어디 맞꼭지서 피어나다

이마의 눈매 높이

영원연 듯 끄덕이는 꽃봉오리

꽃봉오리 피어나서 새소리도 아스라히 멍울져라

내 봄에는.

*진헌성 시전집 제1권 [물성의 시, 공간의 시](문학과현실사/2004.3.15. 1쇄 발행)624-625쪽에서

*진헌성(陳憲成) : 1932년 12월 19일 광주에서 태어남. 1968년 전남대 의대 조교수. 1970년 광주 진내과 개원. 2004년에 문학과 현실사에서 진헌성 시전집 간행. 제1권 [물성의 시, 공간의 시](2004.3.15. 1쇄 발행), 제2권 [하늘 그리고 시), 제3권 [쇠풍경을 실은 달구지], 제4권 [생각하는 나무들 외]. 표현문학상, 광주 시문학상, 해동문학상 수상.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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