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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11 :: 태풍과 나 그리고 미사일
  2. 2006.09.11 :: 더위 떨치기
  3. 2006.09.11 :: 오랜만에 글을 쓰는구나
  4. 2006.09.11 :: 국어교사의 길 찾기
풍경사진으로 세상보기 2006. 9. 11. 10:48
태풍과 나 그리고 미사일

독일월드컵 준결승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북한은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북한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에 대한 주변 열강들의 반응은 자기네의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달랐다. 유엔 안보리의 북한결의안이 일본 주도로 추진되는 와중에 북한이 도 미사일을 쏘아올릴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지금은 중형급 태풍 에위니아가 진도지방으로 상륙하여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서해안을 타고 북상하면서 한반도에 많은 비를 뿌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태풍의 진로가 동쪽으로 틀어지는 바람에 한시름을 놓게 된 것이다.

나는 오늘 태풍이 어지간만 하면 교사연구회(지역문화연구회) 답사를 가려고 준비를 했다. 태풍이 불면서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강풍으로 피해를 입는 지역과 사람들이 늘어가도 나와는 무관한 일로 치부했던 것이다. 지독히도 이기적으로 변해버린 내 모습을 나는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나를 다시 점검해야할 필요를 느낀다. 직접적으로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무심한 나, 공동체를 말하고, 공동체의 발전을 말하고, 공동운명체를 말하고, 가소롭게도 제 한 몸만 생각하는 나를 보면서 소름이 돋는다.

예전에 사람들은 조금 덜 먹더라도 나눠먹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배가 불러도 계속 먹어대고 있다. 배가 불룩하게 솟아야 게트림을 하면서 ‘잘 먹었다’며 흡족해 한다. 물론 피하지방의 두께가 두꺼워지면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내 배가 꽉 차서 느끼는 즐거움이 나쁠 것은 없다는 태도다.

왜 이렇게 많이 먹게 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피하지방을 채우려고 그렇게 그악스럽게 먹어대는 것은 아니겠지. 그냥 습관적으로 먹어대는 것 같다. 맛있으니까 먹고, 먹다 보니까 많이 먹게 되고, 많이 먹다 보니까 더 많이 먹게 되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

다시 나를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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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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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사진으로 세상보기 2006. 9. 11. 10:46
더위 떨치기

김성중


뜨겁다. 에어컨을 틀어야 겨우 숨을 쉴 수 있다.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 대학원 수업은 어김없이 진행되고 있다. 자료를 찾아서 이 곳 저 곳을 일개미처럼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 학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동시에 느낀다.

식구들은 대학원 수업이 언제 끝나느냐고 아우성이다. 남들은 다 피서를 떠나는데 성냥곽 같은 아파트에서 선풍기나 돌리고 있으려니 부아가 치미는 모양이다. 아내는 아예 포기한 것 같다. 물론 종강이 된다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공부한답시고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아빠나 남편을 식구들은 이해하는 눈치다.

주말에 담양 관방천이라도 다녀와야 할 것 같다. 관방천을 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시원해진다. 내 어린시절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관방제림의 시원한 그늘이 눈에 선하다. 팽나무, 느티나무, 푸조나무 들은 수령이 200년이 넘었다. 그 나무 숲에서 지칠 줄 모르고 울어대던 매미들의 울음소리는 꼬맹이들에게는 자장가였다. 더위에 지친 아이들은 관사포에 몸을 던졌고 입술이 파래지고 온몸에 소름이 돋을 때쯤 물에서 나와 햇볕을 쐬곤 했다. 그 시절에 우리들의 피서지는 미역을 감는 곳이었다. 양각산이나 수바래도 빼놓을 수 없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영산강 상류인 관방천의 품에서 나의 꿈은 영글어 갔다.

더위가 하도 기승을 부리니까 나는 자꾸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내가 태어난 곳은 전남 담양군 용면 쌍태리 세칭 물통골이다. 물통골 약수는 물맛이 하도 좋아서 광주사람들이 물통을 들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 내 고향마을은 전라북도 순창 복흥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담양군내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늘어나는 곳이라고 한다. 별장을 짓거나 아예 살러 들어오는 곳이란다. 오래 전에 고향을 떠난 내게 쌍태리는 아련한 추억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해에 ‘산불’이라는 영화를 고향 마을에서 촬영했다. 비행기가 하늘에 떠 있을 때 나와 동생은 외가집 감나무 뒤에서 숨어서 두려움에 떨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어른들 말에서 도금봉이나 신성일이라는 배우의 이름을 들었고, 신성일이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마을 앞 냇물에 뛰어드는 장면이 기억난다.

우리 꼬맹이들은 당산나무 아래 냇물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놀았다. 신나게 헤엄을 쳤던 곳에는 ‘영화 산불 촬영지’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동네 위쪽에 저수지를 막은 뒤부터 냇물이 보타버렸다. 어린 시절 헤엄치던 곳은 너무나도 작아져 있다. 어떻게 그런 곳에서 헤엄을 치며 놀았을까? 세월은 이렇게 강산을 변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새삼 세월이 무섭게 흘렀음을 실감한다. 문득 마을에 군인들이 들어와서 초소가 생기고 야간통행금지가 있었던 시절이 떠오른다. 군용트럭을 타고 면소재지까지 갔던 일이며 잠자리비행기를 보았던 일이 꼭 어제일 같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렸다. 외삼촌의 죽음을 느낄 나이가 아니었다.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기습했던 그해, 울진 삼척지구에 무장간첩이 나타났던 그해에 우리 마을에도 무장공비가 나타나 내 외삼촌을 살해한 것이다. 마을 뒷산에 갔다가 공비들에게 허리띠로 목이 졸려 죽임을 당하고 암매장이 되었던 것이다. 내 어머니나 외숙모님의 슬픔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도 나는 외삼촌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 그 무렵 나는 두 번의 죽음을 더 보았다. 내 사촌 형님이 갑자기 죽었다. 새벽에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에 나는 형이 죽었고 그냥 길가에 묻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나이였다. 내 친구 중기는 앞을 못 보는 봉사였다. 그 아이는 다리가 새다리인데 머리만 컸다. 우리들은 그런 중기를 가분수라고 불렀다. 우리 집 바로 아래 살던 중기는 하루 종일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도리도리만 했다. 나는 중기를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는 중기를 바라만 보아야 했다. 중기는 도리도리만 할 뿐 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중기는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만을 내게 들려주었다. 이런 중기가 죽었다. 나는 친구가 보이지 않아서 그가 먼 세상으로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덥다고 아우성이다. 광주에 사는 사람들은 사실 열섬에 살고 있는 것이다. 대구보다도 더 더운 도시가 광주라고 한다. 대구는 오래전부터 나무를 심어서 그늘을 만들었는데 광주는 녹지공간을 택지로 개발하면서 나무를 베어냈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어제 아스팔트 바로 위의 온도를 측정하니까 40도를 웃돌았다고 한다. 나무를 심어야 한다. 도심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만들어내는 복사열을 흡수할 녹지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까 사람들은 더위를 먹는 것이다.

더우면 나무그늘을 찾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에게는 언제라도 달려갈 관방천이 있다. 내 유년의 꿈이 묻어있는 관방천은 언제나 싱그럽다. ‘관방천 품안에 포근히 안겨 옥녀봉 바라보는 담양남학교.....’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가의 일부분이다. 사람들이여, 사람들에게 부대끼며 열 받고 더위 먹었을 때 내 고향 담양의 관방천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른지.

200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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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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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사진으로 세상보기 2006. 9. 11. 10:45
오랜만에 글을 쓰는구나(2002년 9월 13일부터)

참으로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구나. 그동안 흐트러진 내 마음을 다잡아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너무나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구나. 글아, 미안하구나. 책을 읽는다고 핑계를 대고 글을 쓰지 않더니 이제는 글을 쓰는 솜씨가 녹이 슬지 않았는지 걱정이 되는구나. 글을 쓰는 것만 피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피하지 않았는가? 동창회에 왜 나가지 않았으며, 바구리 친구들에게도 왜 연락을 하지 않는 거니? 혼자 살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겠지?

전교조 일은 어떻고? 학교, 자율학교 일은 잘 하고 있는지 몰라. 수업은? 수업을 하기 싫어하는 표정이 역력한데? 그래가지고 어찌 선생이라 할 수 있어? 학생들 핑계는 이제 그만. 수업기술이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기술을 연마해야 되는 것 아니야? 예술고 다니는 학생들이 전공 말고 다른 교과에 신경을 안 쓰는 거야 어제오늘이겠어? 애들에게 내년에 떠난다고 얘기하는 것은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떠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계속 얘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정리해야 하겠지. 어느 학교로 갈 것인지도 미리 정해야 하고. 인문계, 실업계, 과학고, 사대부고, 중학교...... 갈 데는 많잖아? 그래 내 수업을 들어주는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 아니 수업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 어딜까?

교육부나리들께서 학교평가를 하러 오신다? 학교평가 잘 받아야 하겠지. 자율학교라. 학생들을 자율적으로 뽑는 것 말고 도 무엇이 자율적일까? 무늬만 자율이라, 자율학교가 필요하지. 모든 것을 학교 구성원들이 협의해서 운영하면 좋은 학교가 되겠지. 그러나 지금의 자율학교는 무언가를 노리고 있단 말이야. 그래 발톱을 감추고 있어. 지금은 예술계학교, 체육계학교, 농어촌계 학교뿐인데, 국립사범대부속고등학교를 자율학교로 지정하면, 평준화가 흔들거릴 텐데. 아하, 그러면 평준화를 해제하기 위한 사전 조치가 자율학교란 말인가? 자립형사립학교는 어떻고? 이게 모두다 입시를 위한 학교지, 무슨 얼어 죽은 자율학교란 말인가? 아, 입시를 위해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고등학교들이여!

인간 김성중이여, 당신은 세상을 너무 어영부영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몰라. 괜히 어줍잖게 개폼잡지 말고 똑바로 살란 말이여. 당신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좀 꺼내보란 말이여. 당신은 회색 분자 같단 말이여. 안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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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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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기 2006. 9. 11. 10:43
국어교사의 길 찾기
김 성 중(전남대사대부고)


1. 시작하며

교사들은 학생들을 올바르게 가르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교단에 섭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대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할 때 기대했던 학생들과 지금 만나고 있는 학생들은 어떠한 차이가 있습니까?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납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걸으시겠습니까? 참된 교사의 길을 걷고자 하겠지요. 지금 전국에서 30만 명이 넘는 교사들이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만족하면서 교편을 잡고 있는 교사들은 몇 명이나 될까요? 교육학 책에서 배웠던 이론을 그대로 실천하는 교사는 몇 명이나 될까요? 입시위주의 교육풍토 속에서 교육의 본질에 따라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2. 참깨를 털 듯이 재미있는 학교를 그리며

국어교사들은 다른 교과의 교사들보다 학생들을 지도하기가 더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우리말과 우리 글을 잘 알고 잘 쓰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우리말이나 글로 된 자료가 너무나도 광범위하거든요. 그래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먼저, 김준태의 시를 함께 읽어봅시다.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김준태, [참깨를 털면서]<시인, 1970> 전문

우리네 삶에서 털어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스스로들 위안하고 살지만,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고고한 삶을 사는 사람은 얼마나 존경스럽습니까?

김준태의 [참깨를 털면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3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이 시는 그가 1970년에 《시인》이라는 잡지에 발표했던 것인데, 그의 첫시집『참깨를 털면서』(창작과 비평사, 1977)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이 시를 발표하고 얼마 뒤에 시인은 더러운 제국주의자의 전쟁인 베트남 전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가 전쟁의 비참함을 털어댑니다.

시인은 '희한하게도' 참깨를 털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세상사에서 느끼기 어려운 쾌감'을 참깨를 털면서 느끼는 것입니다. 이는 도시생활(대학생활)에서는 느끼지 못하고 시골에서만 느끼는 즐거움입니다. 시골은 시인에게 어머니의 품 같은 고향입니다. 도시의 삭막함이나 비정함이 아니라 푸근한 할머니의 인정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신바람이 나고, 참깨를 작신작신 두들겨 패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입니다. 물론 할머니의 꾸중을 들으면서 삶의 지혜를 배우기도 하지만, 시인은 참깨를 터는 것만으로도 세상사의 온갖 잡다한 번뇌를 잊어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이지요. 물론 시인은 이 시에서 '인간을 두들겨 패고 고문하고 쥐어짜서' 정보를 얻어내려는 사악한 정권의 음모를 알레고리 수법을 써서 고발하고 있기도 합니다.

도시는 인간을 비정하게 만듭니다. 시골의 논과 밭에서 느끼는 따뜻함이나 정직함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오직 효율성만을 지고의 가치인 양 우리들을 세뇌시키며 무한경쟁의 속도전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습니다. 우리의 학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 모순이 학교라는 공간에 들어와 있습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처럼 금방 성과가 드러나지 않으면 무능력한 교사나 뒤처진 학생으로 낙인을 찍어버립니다.

교실마다 들어와 있는 컴퓨터를 등에 업은 멀티시스템이 우리 교사들을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학급공동체를 이야기하는 교사는 시대에 뒤떨어진 촌놈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탐욕스런 자본의 논리가 아니라 인간의 체취가 풍겨나는 교실을 만들어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김준태는 '참깨를 털면서'라는 시에서 우리에게 신바람 나는 참깨털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털면 끝없이 쏟아지는 참깨는 우리를 고소하게 합니다. 전영택의 소설「화수분」에 나오는 화수분, 아무리 끄집어내도 끝없이 재물이 나온다는 단지처럼, 우리 교사들이 털어내야 할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 교육'이 아닐까요?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참깨처럼 쏟아지는' 정말로 우리 사회를 살맛 나게 하는 그 무엇으로 가득찬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을 우리들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꾸 물음표만 던지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김준태의 시에 나오는 할머니처럼, 서두르지 않으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들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으로 이 시를 읽습니다.


우리가 숨을 쉬며 사는 현대의 도시는 얼마나 삭막합니까? 우리는 얼마나 뜀박질하면서 하루해를 보내고 있습니까? 제동장치가 풀린 자동차처럼 무한 질주하는 문명속에서 인간존재의 의의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안타깝지만 산업화와 도시화가 우리 인간을 편안하게 하기보다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간다는 느낌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여유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 실업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학생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공부에 찌들고, 부모들은 명문대 진학말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우리 교사들은 엉거주춤해 있습니다. 학교가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성취감을 주어야 하는데......


3. 국어시간에

이제 국어수업시간입니다.

하나, 아이들이 왜 책을 읽어야하는지를 알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책을 읽는 교사의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고전 중심의 독서지도보다는 아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흥미를 잃어버린 뒤에는 아무리 좋은 책도 읽으려고 하지 않지요.

둘, 아이들이 글을 쓰는 것을 즐거워하도록 해야 합니다. 생활글을 쓰도록 해야 합니다. 시를 쓰도록 해야 합니다. 교사는 학생들의 생활을 시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교사가 시를 써서 학생들에게 읽어주면 학생들은 금방 시쓰기를 재미있어 합니다. 글을 쓸 때는 다음 사항에 유의하도록 지도하면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①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한다.
②메모하는 습관을 갖는다.
③내가 누구인지 물어본다.
④우주의 본질을 캐묻는다.
⑤사람살이에 애정을 갖는다.
⑥사건의 원인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⑥발로, 몸으로 세상을 경험한다.
⑦자신의 감정에 충실한다.
⑧비겁은 나의 적이다.
⑨양시론이나 양비론을 배격한다.
⑩끊임없이 독서하고 사색한다.
⑪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즐긴다.
⑫'왜?'가 습관이 되어야 한다.
⑬역사와 신화에 정통해야 한다.
⑭글을 쓰고, 고치고, 또 쓴다.

셋, 문제를 풀어주는 것도 정도껏 해야 하겠지요. 학생들을 믿어야 합니다. 인내하면서 학생들이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지요.

넷, 학생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해야 합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만 바라보면 학생들을 수업의 도구로 여길 수 있습니다.

다섯, 교사는 자신감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교사를 지치게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단련해야 하겠지요.

여섯, 교사의 본질은 수업하는 데에 있습니다. 수업을 준비하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승진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다면 참교사라고 할 수 없겠지요. 수업을 떠난 교사는 물을 떠난 물고기와 같습니다.

일곱, 진실을 말하지 않는 교사가 있겠습니까? '드레퓌스는 죄가 없다'고 외친 에밀 졸라를 생각해봅시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기꾼을 길러내는 일을 국어교사들이 할 리는 없겠지요?.

4. 마치며

교사가 실천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 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항상 시범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쓴 시 '바퀴를 굴리며'를 읽겠습니다.

굴렁쇠를 굴리던 시절
세상을 굴리고 싶었던 시절
둥근 지구가 둥글어서
굴렁쇠는 잘도 굴렀지.

왼종일 굴려도
또 굴리고 싶던 굴렁쇠
지금은 자동차 바퀴를 굴린다.

붕붕 시동을 걸고
변속기를 조작하면서
가속 페달을 밟으면
신기하게도 바퀴가 굴러간다.
혼자서 잘도 굴러간다.
제동페달을 밟을 때까지.

세상도 이와 같아서
미친 듯이 굴러갈 땐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빨간 신호등 앞에서는. <1996.6>

여러분들 모두 훌륭한 교사,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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