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굴러가는 모습 2008. 5. 9. 17:54

미국 유학생의 발언

아! 안디바 / 2008-05-09 오후 4: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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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을팔지마라(2008.05 .08 09:10)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버클리(샌프란시스코 바로 윗동네)에서 2년째 유학하면서 지내고 있는 학생입니다. 지난 대선 전후로 틈나는대로 들어와 네티즌들의 전문적이고 파워넘치는 비판을 읽으면서 한국의 답답한 상황에 대해 속풀이를 잘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번 글을 남기고 싶었지만 기회가 안 되었는데 이번 미국 쇠고기 협상 사태를 바라보면서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글 남깁니다. 광우병이 무엇이고 왜 위험한 것이며, 그렇기에 한국정부의 협상이 얼마나 어이없고 굴욕적인 것이었는지는 이미 많은 분들께서 지적해주셔서 굳이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한국에 있었다면 당장 촛불 문화제의 자리로 나갔을텐데...마음은 거기에 가있네요.


최근에 정부가 미국 교민들과 유학생을 들먹이면서 그들이 수십년 간 미국 소를 먹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근거로 미국소의 안전성과 수입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불어 어제 청문회에서 보셨듯이 미국 내 한인회장들이 기자회에 참석도 하고 성명서도 내는 등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문제 제기를 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대학원생으로 지금 아내와 1살 된 아이와 함께 가정을 이룬 채로 공부하고 있기에 시장을 자주 가고 미국에 서 팔리는 고기들을 사 봤고, 그래서 거기서 느낀 제 경험과 정부와 한인회장들의 주장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의 문제제기를 하고 싶습니다.


첫째, 정말 미국인들은 미국의 모든 소에 대해 안심하고 먹고 있는가?

제 경험상 그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사실, 미국에 와서 놀라웠던 것은 미국의 식료품 값이 한국 보다 싸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 비쌌던 쌀과 쇠고기 등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쌉니다. 어차피 한국 것을 먹을 수 없고 돈 없는 유학생 처지이다 보니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생각에 싸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별 생각없이 소고기를 2년동안 먹어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불거진 쇠고기 협상 사태를 접하게 되었고 관련된 기사와 블로그, 아고라에 올라와 있는 네티즌들의 전문적인 글들은 거의 다 읽으면서 (사실 타지에 있다보니 한국 소식에 더 관심이 많이 가네요) 광우병의 심각성과 소고기의 안전성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저희 가족이 평소에 자주 가는 동네의 미국인 마트에 장을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고기를 사야는 하는데, 뉴스를 보니 미국 고기를 먹어야 할지 고민 되었고, 그래서 고기 파는 곳을 평소와 달리 눈여겨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에는 몰랐던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고기를 파는 브랜드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각 브랜드마다 동물사료를 안 먹인다는 점, 방목한다는 점, 유기농 고기라는 점 등을 강조하고 선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소고기 뿐만 아니라 돼지고기와 닭고기의 브랜드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동물사료는 광우병 발생의 핵심입니다.


방목을 하고 동물사료를 먹이지 않는다면 광우병은 일어날 수 없지요. (개인적으로 광우병은 인간의 욕심이 자초한 악이라고 봅니다.) 그러한 점을 표방하지 않은 고기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였지요. 미국인들은 비싸지만 그것을 꼼꼼히 살펴보고 사가고 있엇습니다. 자, 거꾸로 말하면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먹는 소고기의 안정성에 대해 굉장히 신경쓰고 있고, 그래서 유기농을 키우는 업자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비싸서 부담은 됐지만 그 고기를 샀습니다. 미국에 정말 그러한 브랜드가 있는가 의심하실까봐 싸이트 주소를 여기에 써놓겠습니다.


(www.panoramameats.com , www.certified-organic-beef.com)


더불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저희 가족을 비롯해 제 주변에 있는 유학생 가족들은 미국 소고기의 안전성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랬고 제가 알던 분도 갖고 있던 사골(미국에서는 사실 정말 싸죠)을 그냥 다 버렸습니다.


미국 소의 안전성이 문제라면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요? 걱정하지 않는다면 미국인들이 왜 비싼데도 유기농 소를 찾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에 대해 우리나라 당국자들은 알고 있고 또 설명할 수 있습니까?


둘째, 미국인들은 다같은 미국소를 먹고 있는가?

이것에 대한 대답도 제 경험상 아니다 입니다.


제가 2년동안 버클리에 있으면서 주로 이용하고 있는 마트는 위에서 언급한 동네 미국인 마트와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한인 마트입니다. 동네의 미국인 마트는 주로 중산층 이상 백인들이 이용하는 곳이고 고기 뿐 아니라 야채와 과일 등에서도 유기농제품들을 많이 판매하는 곳이죠.


반면에 한인 마트는 한국인들의 특성에 따라 한국에 있는 마트와 유사하게 상품을 공급하고 판매하는 곳이죠. 이 근방 1시간 이상의 거리에서 이만한 한국 마트가 없기에 제가 사는 지역 한인들에게는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한 곳이죠.


그런데 어제 그 한인 마트에 들러서 고기 파는 쪽을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미국인 마트와의 현격한 차이를 발견하였습니다. 미국인 마트의 유기농 소고기 가격은 파운드(약 453g)당 6.99달러, 한인 마트의 소고기 가격은 2.99달러. 가격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한인 마트에는 유기농 소고기는 커녕, 방목 소고기나 동물사료를 먹이지 않는 소 조차 없었다는 것입니다.


요즘의 사태를 의식한듯 보이지 않던 광고하나만 달랑 있더군요. 자기 가게의 소는 도축된지 12개월 이상된 고기를 팔 지 않으며 (나이가 12개월이 아님) 리콜된 적이 없는 고기라는 점만 얘기하더군요. 미국인 마트와는 질적으로 달랐습니다. 한마디로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한인회장들이 미국교포들이 먹는 소는 한국에 수입될 소와 같은 것이다 라고 언급한 것이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닐꺼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시 말하면 같은 미국 사회에서도 미국인 사회와 한인 사회에 공급되는 소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면, 미국의 월마트나 코스코(Cotsco) 같은 대형 마트에서 유기농 소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가격이 싸기 때문에 소매업자나 주머니 사정이 궁한 소비자들이 주로 이곳에 사게 되죠. 자, 이제 명확해 집니다. 미국에서 소비자들에게 공급되는 소는 다 같은 소가 아니며 사람들은 경제 사정에 따라 다른 소를 먹게 됩니다.


미국 백인 중산층은 광우병 등의 우려가 있는 소를 사지 않을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정보력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어쩔수 없이 (마트 뿐 아니라, 급식, 패스트 푸드 등에 의해 ....미국 학교는 사립과 공립에 따라 철저히 다름. 아마 급식체계도 다르지 않을까 추측) 먹게 됩니다. 자....그러면 한국에 들어오는 소고기는 어떤 소고기일까요?


파운드등 7달러 가까이 되는 소고기가 들어올까요? 이명박 대통령이 얘기한 미국소가 수입되는 이유 중 하나가 값싸고 질좋은(?) 고기를 국내 소비자에게 공급한다는 것인데.....그 값싼 고기는 제가 위해서 말씀드린대로 품질이 확인되지 않을 뿐더러 미국인 소비자들에게 차별적으로 공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인들이 먹는 똑같은 고기가 우리나라에도 공급된다는 얘기는 미국 국내에서도 통하지 않는 얘기입니다. 미국인들에게도 경제사정, 사회계층에 따라 다르게 공급되는데 과연 우리나라에게 최상품의 고기가....글쎄요~


셋째, 한인회장들은 왜 미국소의 안전성을 변호하며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저는 현재 한 두명의 한인회장들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한인회장들이 미국 소의 안전성을 변호하고 나선 것에 그것도 다른 교포들이 아닌 한인회장들이 나선 데에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햇듯이 제가 사는 지역의 한인 마트는 한인들이 먹고 살려면 이용해야 하기에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몰랐는데 제가 다니는 미국인 마트에 비해서 물건의 질도 좋지 않고 신선하지도 않고 가격도 비싼 것을 알게 되어서 요즘에는 미국인 마트에서 살 수 없는 것만 한해서 사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사는 지역처럼 좋은 미국인 마트가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나 영어가 안되는 분들(이민 1세대의 노인분들 중에는 그런 분들이 많죠), 그리고 한국적인 것을 사야하는 분들에게는 한인 마트를 이용해야만 합니다. 2시간 넘는데에서 달려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갖는 재력이나 독점권은 어마어마 할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도 이런데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같이 한인들이 집중되어 있는 곳은 어떨가 상상하기도 힘드네요. 그리고 제가 알기로 한인회에서 그렇게 권력이 큰 유통업자들이 여러 자리를 차지하거나 큰 목소리를 낸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미국 소의 안전성을 변호하고 나선 한인회장 중 하나가 미국소 수출업자인가 유통업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거 모종의 커넥션이 있지 않나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농림수산부에서 가진 2차 기자회견에서 로스앤젤레스 한인회장이 갑작스럽게 그리고 사실 뜬금없이 참여하게 된 것도 뭔가 개운치가 않더군요.


미국소 협상 문제에 비판적인 정치권이나 언론 그리고 가장 무서운 우리의 넷검에서 무언가 냄새나는 이 문제를 밝혀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한인회장의 목소리가 미국 내에 있는 전체 한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한인회장들이 미국에 있는 한인들이 100년의 이민역사에서 미국 소고기를 먹었는데 아무 문제가 없지 않는냐는 발언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농림수산부 장관조차 청문회에서 그러한 요지의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실망, 대실망하였습니다.


그러한 주장은 광우병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광우병이 처음 문제된 것은 영국에서 1986년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뒤, 1996년에 인간 광우병이 발생되었습니다. 광우병이 인간 광우병으로 전이되는 기간이 최소 10년이상이라는 것은 요즘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 광우병은? 2003년에 최초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10년이 안 되었습니다. 이러한 광우병 발생 과정을 도외시 한 채 이민 역사 100년을 들먹거리면서 한인은 안전하다라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인간 광우병이 현재까지 없어서 안전한 것이 아니라 아직 10년이라는 기간이 안되었고 발생될지 안될지 모르기에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광우병의 핵심인 동물 사료(소 사료만 제외)를 미국은 여전히 소에게 먹이고 있습니다. 위의 첫번째에 언급한 유기농 소의 예는 일부에 불과할 것입니다. 현재 시스템에서 그렇게 비싼 고기를 고급 레스토랑을 제외하면 식당, 패스트푸드 점 등에서 대량으로 취급하기는 불가능 합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안전이 보장안된 소고기를 최대한 안전하게 들여오기 위해 노력하고 미국과 협상테이블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누가 미국정부인지, 미국의 축산업자인지도 모르게 미국 소고기의 안전성에 대해서만 변론하고 변명만 하는 그들을 보면서 분노를 금치 못하겟습니다. (오죽하면 내가 잠도 안자고 페이퍼도 많은 데 여기에 글을 쓰고 있을까? 여기는 지금 새벽 4시 21분...윽)


마지막으로 이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먹거리에 대해 보다 심각한 고민을 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국민의 저항과 뜻이 잘 받아들여져서 재협상에 성공하고 보다 안전한 먹거리가 보장된다면 다행이겠지만 여전히 국민의 목소리에 눈과 귀를 닫고 수입을 감행한다면 우리가 최종적으로 할 수 있는 선택은 미국 소고기를 사지 않는 것입니다.


아마 저처럼, 미국 국내에서처럼 비싸지만 좋은 유기농 미국 소고기를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예 사지 않고 먹지 않는다면 수입업자들은 망하지 않기 위해 수입을 포기하겠죠. 그것이 어쩌면 현실적으로 효과적일지도 모릅니다. 소비자 저항 운동이죠. 벌써 아웃백 등의 레스토랑 업체에서 미국 소고기를 쓰지 않겠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내 가족의 식탁은 내가 먼저 챙겨야 합니다. 부지런히 정보도 모으고 무엇이 더 건강한 식품(새우깡 사건 이후로 식품에 대해 민감해졌죠?)이고 음식인지 선택해서 구매를 해야 할 것입니다. 단지 미국소만 사지 않고 먹지 않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농가를 살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한우 또한 안전한가...소비자 입장에서 점검해 봐야 합니다.


한우는 과연 동물 사료를 안 먹이고 자연 상태로 방목을 하는가? 소 뿐입니까? 수많은 닭들이 죽을 때까지 호르몬 주사 맞으면서 닭장 안에서 달걀만 낳다가 죽고 그러한 닭들이 또 고기로 팔려나가는 현실도 있습니다. 지금 광우병에 묻혀 위험성이 덜 부각되고 있는 조류독감 (서울까지 상륙했다지요? 무섭습니다)도 닭들의 집단 사육 때문에 문제가 커진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미국인 마트에서는 닭장안에서 안 키우는 닭의 달걀, 호르몬, 항생제 안맞힌 유기농 닭고기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2년전 한국에 있을 때 대형마트에서 그런 것 찾기 어려웠는데...요즘은 어떤지.


광우병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고 조류독감의 위험성을 안은 소와 닭들 그외에도 다른 위험들을 가진 식품들 보다는, 비싸지만 보다 안전한 식품과 음식을 소비자들이 찾을 때 그 위험의 구조가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비싸면 덜 사먹게 되죠.


그러면 성인병의 위험에도 덜 노출되고 안전 뿐 아니라 건강도 챙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다 보면 광우병도 조류 독감도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요?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병, 인간의 윤리적 결단으로 끊어내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미국 소고기 협상 파동이 계기가 되어 우리의 식탁의 안전성 우리 자신의 건강을 지켜내고 광우병도 몰아내고 사실 우리의 먹거리의 수단이라기 보다 우리의 친구들인 동물들에게도 보다 낳은 삶 까지도 제공할 수 있는 그런 날을 꿈꾸어 봅니다.


처음 쓰는 글이라 너무 길어졌네요.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 청문회에서 밣혀진 분명한 사실.. 미국인이 먹는 소는 20개월 미만 소가 95%이상을 차지 한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에 파는 30개월이상짜리 소와는 질적으로..다르다는 겁니다.......

posted by 추월산
:
세상 굴러가는 모습 2007. 4. 20. 10:51

조승희와 유나버머의 '메니페스토'

'우편물 폭탄'과 '총기난사'... 단절된 세상과의 '위험한 소통'

민경진(jean) 기자 / 오마이뉴스

1995년 9월19일. 조간 신문을 펴 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독자들은 장문의 낯선 기고문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3만5000단어에 달하는 칼럼의 제목은 '산업사회와 그 미래'.


후일 소위 '유나버머 메니페스토(선언,성명)'로 알려진 문건이 세상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멸망을 앞당길 것이라고 확신하고 수 년에 걸쳐 주로 대학교 연구소와 민간항공사를 겨냥해 우편물 폭탄을 지속적으로 발송해 온 무정부주의자. 그의 폭탄테러로 3명이 목숨을 잃고 2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이런 범죄의 특징때문에 FBI는 '대학교(University)'와 '항공사(Airline)'의 첫자를 따 그를 '유나버머(Unabomber)'라는 별명으로 불러왔다.


하지만 '유나버머 메니페스토'가 미국의 양대 일간지에 실리기까지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FBI는 후일 비슷한 동기를 지닌 다른 범죄자가 자신의 주장을 알리는 수단으로 유력 언론을 악용하는 선례가 생길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자신의 글이 두 신문에 실리지 않으면 폭탄테러를 재개하겠다는 유나바머의 협박에 굴복해 결국 그의 글이 실리게 된 것.


세상을 향해 강렬하게 외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고, 언론의 생리를 잘 알고 이를 이용할 줄 알았다는 점에서 유나바머와 조승희는 닮은 점이 많다.


NBC를 통해 공개돼 세상을 또 놀라게 한 조승희의 동영상 메시지는 UCC 시대에 잠재적 증오범죄자가 어떻게 세상과 자멸적으로 소통하려 할 지 그 미래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조승희는 아침 7시 기숙사에서 1차 살해를 저지른 뒤 그의 방으로 돌아가 웹캠을 통해 무려 27개에 달하는 퀵타임 동영상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FBI가 만든 '유나바머' 몽타쥬

조승희의 발언은 물론 그를 배신했다는 신원미상의 연인에 대한 사적 증오와 분노로 가득하다. 하지만 자신을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과 동일시 했고, 또 예수 그리스도처럼 세상의 힘없고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들을 위해 순교한다고 말했다는 점에서 조승희의 동영상은 어쨌든 세상에 보내는 '메니페스토'라고 할 수 있다.


1차 총격의 심리적 충격, 그리고 2차 총기난사라는 참극을 앞 둔 급박한 상황에서 조승희는 왜 굳이 동영상을 제작하고 이를 CD롬에 복사해 NBC 방송국에 우편으로 보내는 주도적인 '언론 플레이'를 했을까? 자신이 저지를 범죄의 '당위성'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묘한 심리가 읽혀진다.


조승희는 그의 총기난사가 반드시 뉴스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고, '영상보도자료'를 만들어 유력 방송사에 보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에 자신의 주장이 방송되리라는 것을 익히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23년의 짧은 생을 통해 평생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던 조승희는 총기난사라는 비극적 뉴스이벤트와 동영상 보도자료라는 극악의 수단을 통해 자신의 분노를 온 세상에 알리는데 마침내 '성공'했다.


유나버머나 조승희나 범죄를 저지른 근본적 이유는 평소 세상과 소통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를 폭발적으로 표출할 기회를 잡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진작에 훨씬 더 부드러운 방식으로 세상과 의사소통할 기회를 마련해 주지 못한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두고 두고 회한으로 남을 것이다.


조승희의 동영상은 인터넷, 멀티미디어 그리고 UCC로 상징되는 미래의 네트워크 사회에서 범죄자가 과연 어떻게 세상과 소통을 시도하려 할지 짐작하게 하는 징조라고도 볼 수 있다. 유나바머는 그 시대의 유력언론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라는 미국의 양대 일간지를 선택했지만, 조승희는 스스로 동영상 UCC를 만들어 NBC에 보냈다.

posted by 추월산
:
세상 굴러가는 모습 2007. 4. 20. 09:29


총기시장의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의 참극

[시론]권력은 시장에서 나온다? 그러면 희생은 누구의 몫?

2007-04-19 오후 12:21:05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 핵심은 총기시장의 권력

미국 "버지니아 텍"의 총기난사 사건은 기본적으로 인종혐오 범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인의 출신지나 인종소속이 사건의 초점이 될 수 없다. 흑인 로드니 킹에 대한 백인 경찰의 무차별 폭력사태가 빚은 LA사건의 와중에서, 흑-백 갈등을 한-흑 갈등으로 교묘하게 교체시켜버렸던 상황과는 다른 요인을 안고 있는 것이다.

사건의 핵심은 총기난사의 당사자가 저지른 행위의 범주를 넘어선, "미국 총기시장의 논리와 여기에 지배당하고 있는 미국 정치권의 책임"에 맞춰져야 한다. 마약은 규제하면서 총과 총알은 쉽게 사고 팔 수 있도록 하는 이 무서운 현실을 바꿀 의지가 없는 사회가 직면한 비극의 되풀이이기 때문이다.

"전국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의 이른바 "로비"라고 하는 "제도화된 뇌물공여"로 정치권은 돈을 타다 쓰고, 그 대가는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으로 전가되는 사태를 막지 않는 한, 이 비극은 거듭될 수 있다. 권력은 그야말로 총구에서 나오고 있다. 그 총구가 거머쥐고 있는 자본의 힘이 미국사회의 진정한 안전과 미래를 잔혹하게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일각과 정부가 보이고 있는 이번 사건에 대한 자세는 자칫 '한국계 범죄'라는 측면을 과도하게 부각시킬 우려가 있어, 도리어 해롭다. 총기규제 논의가 제기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세력에게 이용되어 한국계가 희생양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조문사절단 파견이라니?

"조문사절단 파견"이라는 논의가 있었고, 미국 정부 당국이 난감하다며 거절한 사태는 이 나라 외교의 상식이 어디에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이민 간 사람의 문제는 성인이 된 현재의 시점에서,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문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지, 모국이 책임을 느끼고 머리를 숙일 일이 아니다.

억울하게 죽은 이들에 대한 애도의 표시는 인류적 차원에서 당연하다. 그러나 조문사절단 파견은 총기시장의 권력에 지배당하고 있는 미국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을 어이없게도 같이 떠안는 격이 될 뿐이다.

이 나라 정부와 정치권은 그런 문제가 발생한 정치사회적 모순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구조적 현실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에 대한 고민이 보다 중요하다. 시장의 논리가 그 사회를 압도하면 어떤 사태가 발생하는지를 매우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총기시장의 자본이 정치를 휘어잡고 미국 시민 자신들을 죽음의 공포에 몰아놓고 있는 사태는, 노무현 정부와 신자유주의세력들이 가지고 있는 "시장논리"라는 주장과 신념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을 확인시켜준다. 공익성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마저, 시장의 논리로 해체시키고 있는 미국 자본의 탐욕이 어디까지 갔는가를 이번 사건에서 혼란 없이 목도해야 한다.

미국 안에서 총을 팔아 사람들의 목숨을 희생시키고 있고, 밖에서는 군수산업이 전쟁경제를 지휘하고 있는 상황이 이번 사건의 근본토대다. 정당방위 논리로 총기시장을 엄호하는 미국 보수 세력의 대외정책은 네오콘의 침략전쟁 정당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총과 시장과 정치, 그리고 인간의 목숨

주(州)마다 차이가 있지만, 21세 이상이면 되고 5일에서 15일 정도의 심사과정만 통과하면 매년 30달러 면허세 내는 것으로 총기소지가 가능한 사회, 그리고 전체 가구의 절반 가량이 총 한 자루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통계가 있는 나라의 총기사고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총기규제 문제가 나올 때마다 기껏 심사기일을 늘일 것이냐 줄일 것이냐 정도의 수준에서 논의가 있을 뿐인 현실에서 대규모 총기사고 발생을 미리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근본적으로 총기소지를 금지하게 한다든가 아니면, 전과조회를 의무화를 한다든가 하는 것도 전국총기협회 (National Rifle Association)의 압박으로 좌절되고, 전과조회는 위헌판결까지 나온 상황이다. 주머니에 600달러 정도만 있으면,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총과 총알을 살 수 있는 나라, 그리고 미국에서 총기구입이 두 번째로 쉬운 주 버지니아는 총기시장의 천국인 셈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난 후 1871년, 평화의 시기가 오면서 민간인의 총기 사용과 소지를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자 총기사업자들이 결속한다. 그 결과가 전국총기협회의 성립이다. 본부는 워싱턴 D.C.에, 그리고 회원은 430만 명 가량 되는 이 조직은 기본적으로 정치조직이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 대선 시기에도 그를 지원하는 등 정치에 매우 깊게 개입하고 있는 단체이다.

총기규제에 대한 법제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60년대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 케네디 대통령 저격살해 등이 계기가 됐지만 별 효력도 없는 방식으로 규제논의를 하는 것에 그쳤다. 케네디 암살 사건 때가 미국사회의 총기문제를 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나 미국 총기시장의 논리는 이를 철저하게 좌절시켰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 암살미수사건 때 유탄을 맞아 반신불수가 된 공보비서 제임스 브래디가 제안해서 통과시킨 브래디 법안이 주목받았지만, 총기 구입 시 5일간 심사기간을 두고 구입이유를 명시하는 수준이었고, 앞서 말했듯이 전과조회는 위헌판정을 받아 있으나 마나 한 규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대선후보로 나설 채비를 하는 공화당의 존 메케인의 경우 벌써부터 이번 사건이 총기규제 논리를 강화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자기방어를 보장한 헌법정신과 총기규제는 서로 충돌한다고 총기시장을 엄호하는 주장을 펴고 있다.

다른 정치인들도 대체로 총기규제에 적극 나서지 않는 모습이고, 다만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현하는 것으로 그치거나 또는 이번 사건의 진상에 대한 정보가 보다 더 확실해야 한다는 식으로 전국총기협회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눈물이 없는 권력

이렇게 보자면, 총기시장의 논리에 휘둘리는 미국사회가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로 가고 있다는 점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나라의 최고 정치 권력자를 비롯한 정치권은 인간의 생명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 다만 계산하고 유불리를 따져 전술적으로 반응할 뿐이다.

그렇기에, 미국의 이번 참사를 일상으로 경험하고 있는 이라크에서 하루에도 그 무수한 생명이 억울하게 죽어나가도 아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곳에 군대를 파견한 나라가 이 나라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면서,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의 논리를 방어하는 일에 정권의 명운을 건 세력이 이 나라 정권 담당자들이다. 한-미 FTA 반대를 외치면서 분신한 허세욱 씨의 죽음에 대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대통령은, 김선일 씨가 이라크에서 희생되었을 때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무고한 죽음을 겪은 미국인들은 범죄의 희생자들이다. 그 범죄에는 총을 쏜 개인의 죄악과 함께, 총기시장의 악마적 탐욕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 탐욕이 도리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니라면, 개인적인 폭력에 그칠 뿐 이런 학살에 가까운 참극은 벌어질 수 없다.

그 사회의 공익성보다 자본의 탐욕을 옹호하고 그것을 발전의 논리로 삼을 때, 억울한 희생자는 생겨난다. 권력이 그 자본의 탐욕에 적극적인 동조자가 될 때, 특히 그 사회의 약자들은 무고한 희생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미국과 함께 가기"의 비극

노무현 정권이 선택한 "미국과 함께 가기"에는, 바로 이러한 비극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벌써부터 농민과 노동자, 그리고 무고한 청년이 목숨을 잃었던 것이 아닌가?

"맥도널드는 맥더글러스(미국의 군수산업)와 함께 간다"는 이 미국 자본시장의 현실과 논리는 이 나라에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 FTA로 구체화될 전망이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단지 소수의 부자들이 독점하는 사회와 다수의 빈곤층이 확대되는 사회적 양극화만이 아니다.

이 갈등의 와중에 당연히 사회적 안정성은 무너지고, 범죄는 늘어나며 인간의 생명은 위협에 더욱 심각하게 노출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기적 탐욕이 일상의 상식이 되면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식은 사회에서 범죄는 더욱 잔혹해질 것이며, 정치는 자기 먹고 살 궁리에만 몰두하게 될 것이다.

전체의 미래를 위해 약한 것들은 죽어나가도 된다는 식의 논리로 이끄는 사회에서 패자들의 가슴에는 무엇이 쌓이게 될까? 허세욱 씨는 이 나라의 비극적 미래를 감지하고 절박하게 저항하면서 자신을 불태웠지만, 만일 누군가가 무차별 다중 폭력을 행사하는 악마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면? 그래서 희망의 출구가 없는 사회로 변해버린 현실에서 모두가 모두에게 늑대일 수밖에 없으며, 자기는 자기가 지킬 수밖에 없다는 식이 된다면 누구도 안전을 장담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

이 진단이 과도하다고 여기는가? 시위 도중에 경찰에게 맞아 죽은 사람이 있는 현실은 그렇다면 안전한 사회일까? 자신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향해 "기껏 700명의 어민들일 뿐인데"라고 호통을 치는 대통령 앞에서 그들 당사자들의 생존은 낙관해도 되는가? 김선일 씨는 자신의 희생을 예감했는가? 허세욱 씨는 분신을 위해 평생을 살아 온 것인가? 우리는 이런 일을 보려고 노무현 정권의 탄생에 그토록 환호했던 것인가?

총은 인간의 목숨을 겨눈다. 총기시장의 존재는 그 목숨의 희생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 성립한다. 비극은 마음 아프다고 하면서도, 총기시장의 권력은 그렇다고 후퇴하지 않는다.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무장한 시장은 누군가의 피를 먹고 자라는 괴물이다.

미국의 침략전쟁에 지지를 보내고, 손익계산에 기초한 냉정한 거래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거래 정도가 아닌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강제할 경제통합을 스스로 받아들이라고 윽박지르는 권력이 이 나라의 진정한 안전을 지켜주고 있는 것일까?

버지니아 총기난사 참극은 한 사회의 생명과 안전이 어떻게 확보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인류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미국은 이미, 총으로 지구촌의 안전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핵심에는 총을 팔아 전쟁으로 살찌는 자본의 존재가 있지 않은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 답은 분명하다. 시장의 권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사회를 방어하는 일이다. 너와 나의 진정한 안전은, 억울하게 희생되지 않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희생의 논리를 정당하게 여기는 순간,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시장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본과 그 권력자까지 포함해서.

진정한 안전은, "희생의 불가피성 논리"가 철저하게 거부될 때 가능해진다. 발전은 그걸 출발선으로 해서 이루어질 때 모두에게 정의롭다. 그건, 이 사회가 미국과는 다른 사회적 대안의 상상력을 실현시켜나가는 기초이다.

그 기초를 지키는 운동은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의 존엄한 권리다.

김민웅/프레시안 편집위원,성공회대 교수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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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굴러가는 모습 2007. 4. 19. 01:04
대량살인, 왜? "좌절에 찬 복수의 열망"
연쇄살인과 구별... 미국선 1966년 이래 매년 20여건 발생
텍스트만보기 연합뉴스(yonhap)
(워싱턴 로이터=연합뉴스) 버지니아 공대의 조승희씨처럼 대량살인(mass murder) 혹은 다중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복수심에 불타는 좌절한 외톨이일 경우가 많다고 범죄전문가들은 말한다.

대량살인자들은 자신의 실패 책임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을 부당한 처사의 희생자로 보면서 복수심에 휩싸인다는 것.

보스턴에 있는 노스이스턴대의 제임스 앨런 폭스 교수는 17일 "대량살인자들의 동기는 복수의 열망"이라며 "이들은 자신들을 희생자로 본다. 자신들 주변이 온통 부정으로 차 있으며 자신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폭스 교수는 "이들은 자신들의 실패를 다른 사람들 탓으로 돌리고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보통 자살로 이승을 하직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도 그 길에 같이 데려감으로써 벌도 주고 만족도 느끼려 한다"고 부연했다.

대량살인자들은 대체로 5가지 공통된 점을 보이고 있다고 폭스 교수와 노스이스턴대의 브러드닉 갈등폭력센터 잭 레빈 소장은 지적했다.

즉 오랜 좌절과 실패의 경험, 자신들의 단점이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 사회적으로 고립된 외톨이 경향, 여자친구에게 차이거나 직장에서 해고되는 등 그동안 참고있던 것을 터뜨리게 되는 '격발' 사건의 선행, 화기 그것도 고성능 화기의 입수가 그것들이다.

2005년 '극단 살인:연쇄살인과 대량살인의 이해'라는 책을 공동집필한 두 사람은 대량살인자들의 복수 동기를 3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째는 '특정 복수'로, 자신에게 모욕을 가했다고 생각하는 특정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다. 2000년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한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자 맥더못이 인사부 직원만 7명 살해한 사건이 그러한 예이다.

둘째는 '범주 복수'가 있다. 여성이나 흑인, 아시아계 등 어떤 범주에 든 사람을 모두 범행 목표로 삼는 경우다. 1989년 한 몬트리올 대학에서 마크 레파인이 여성해방론자들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에서 여성만 14명 죽였었다.

셋째는 세상에 대한 복수로 무차별 살해의 경우다. 1991년 텍사스주의 한 식당에서 조지 헤너드가 20명을 무차별 죽였다.

레빈 소장은 "살해 대상이 무차별일수록 살인자의 정신이상이 문제일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대량살인자들은 1995년의 오클라호마 시티 폭파범 티모시 맥베이처럼 폭탄을 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권총사용을 선호한다고 레빈 소장은 설명했다. "이 자들은 자신들이 침착하게 총격을 가한다는 생각을 즐기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한편 1966년 찰스 휘트먼이 텍사스대학 건물에서 총기를 난사해 13명을 죽인 쏘아죽인 것이 미국에서 "대량살인의 시대"를 열었다고 폭스 교수는 말했다.

이 사건 이래, 한꺼번에 4명이상의 희생자를 내는 대량살인이 미국에서 매년 20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

대량살인의 빈도는 지난 40년간 큰 변동이 없지만, 고성능 화기의 입수가 쉬워짐에 따라 사건마다 희생자 숫자는 늘어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대량살인번과 연쇄살인범을 구별한다. 연쇄살인범은 일정기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을 죽이지만, 대량살인범은 이번 버지니아 공대 사건처럼 한번에 많은 사람을 살해하는 경우를 말한다.

또 연쇄살인범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힘을 표현하기 위해 살인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범행 대상도 무작위로 고른다고 메릴랜드대학의 아넷 개스턴 교수는 설명했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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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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