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굴러가는 모습 2007. 3. 20. 18:47

한국어가 소멸한다고?

<기고>"언어 소멸 속도 빨라…문자언어 중심 교육정책 필요"

2007-03-20 오후 3:01:36 / 프레시안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淸)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언어인 만주어가 사멸 위기에 놓여 있다고 <뉴욕타임즈>가 최근 보도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세기 말까지 전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6800개의 언어 가운데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한국어도 크게 예외는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한국사회에서 '영어'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제 특정계층에서 영어는 '외국어'가 아닌 '공용어'의 위치를 차지한 듯 보이기까지 한다. 또 인터넷 공간에서 구어체 중심의 '쓰기 문화'가 10-20대 계층에 일반화되면서 한글 맞춤법과 문법의 파괴 속도 역시 가속화되고 있다.

따라서 '만주어 사멸' 뉴스를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수많은 민족어 중 하나인 한국어도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이를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굳이 패권주의적인 민족주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해 온 이들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나 발명된 '과학적 문자'인 한글은 세계 모든 언어를 음성기호로 표기할 수 있는 매우 수용성이 높은 언어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인하대 국어교육과 박덕유 교수가 기고한 글을 싣는다. 박 교수는 이 글에서 한국어 파괴의 징후들을 거론하면서 이를 막기 위한 교육적 대처 방안 수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편집자>

인구 규모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출산율은 2.08명인데, 최근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08명이다. 이러한 출산율이 계속 유지된다면 2050년에 3000만 명으로, 2200년이면 500만 명으로 줄어들다가 2800년이면 완전히 멸종될 것이라는 'UN미래보고서'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시급한 것은 한국어에 대한 소홀이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한국어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학생들의 문법 지식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서 서울, 인천, 천안 등 3개 도시의 6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게 하였다. 40분의 시간을 주고 제목은 학교마다 다르게 다양한 주제를 주었다. 아래 예문은 학생들이 쓴 문장 중 일부만 제시한 것이다.

학생들이 잘못 쓴 문장 → 수정한 문장

한국가 일본사이에 애매하게 위치해 있는 독도→한국과 일본 사이에 애매하게 위치해 있는 독도

휴전선을 없에고 통일을 한다면 →휴전선을 없애고 통일을 한다면

올림픽과 월드컵까지 개최한 세계적인 국가가 됬다. → 월드컵을 개최한 세계적인 국가가 되었다(됐다).

노력 할꺼고 좋은 아빠가 될꺼다. 노력할 것이고 좋은 아빠가 될 것이다

내 서적에도 안돼고 → ? 안 되고

독도는 자기꺼라고 할 때 기분이 나뻤다. → 독도를 자기나라 거(영토)라고 할 때 기분이 나빴다.

독도의 대해 찾아볼것이다.독도에 대해 찾아볼 것이다.

저번해 뉴스에서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보았습니다. → 저번에 뉴스에서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꿈은 수도없이 밖였다. → 지금까지 꿈은 수없이 바뀌었다.

그리고우리동뇨는그리고 우리 동료는

독도는 어면히우리땅인데 일본을 그렇게 실어했는데 →독도는 엄연히 우리땅이므로 일본을 그렇게 싫어했는데

그때잘했을껄그 때 잘 했을 걸

원레 1학년 때는 왼쪽무릎의 쓸개골에 염증이 생겨 깊스를 했었습니다. → 원래 1학년 때는 왼쪽무릎의 쓸개골에 염증이 생겨 깁스를 했었습니다.

작년이나 제작년에는 → 작년이나 재작년에는

그집은 자매나 형재고그 집은 자매나 형제나

시험이끊나고 단합대회를 했으면 좋겠어요. → 시험이 끝나고 단합대회를 했으면 좋겠어요.

가장 기뻣던일 → 가장 기뻤던 일

이빨이 않좋은게 아니라 → 이가 안 좋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나쁜 날은 아마 업을겁니다. → 이렇게 나쁜 날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자기소게자기소개

용서가 돼지 않을만한 것이다. → 용서가 되지 않을 만한 것이다.

뜨거운 포웅 → 뜨거운 포옹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이 않되었을때 →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이 안 되었을

언른 나으셔서 오래오래 사시게 해주세요. → 얼른 나으셔서 오래오래 사시게 해주세요.

조은꿈만...조겠다.좋은 꿈만 -- 좋겠다.

몇일전 너무나 어이없고 → 며칠 전 너무나 어이없고

무슨일을하던, 무슨꿈을위해달리던 구지 하나만 고집했다가 →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꿈을 위해 달리든(지) 굳이 하나만 고집했다가

기술시간의 배운 생명공학이라는 → 기술 시간에 배운 생명공학이라는

일본이 실습니다. → 일본이 싫습니다.

지금 난리라고 함니다. → 지금 난리라고 합니다

채벌을 하지 않겠다. → 체벌을 하지 않겠다.

충격을 바드셨습니다. →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차이가 다소 있지만, 남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0% 정도가 맞춤법을 제대로 모르고 위의 예문과 같이 사용하는 게 현실이다. 이는 무엇보다 문법 지식이 부족한 데서 오는 것으로 보다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문법 지식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20대 이상의 일반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일반인들의 어문규정(맞춤법, 표준어) 인지(認知)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실제 언어생활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는 단어 100개에 대해 서울, 인천 지역에 거주하는 일반인 57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했다. 100문항 중 정답률이 40% 이하인 단어는 모두 29개였다. 이 중 몇 가지를 보면 다음와 같다.

오답 → 정답 (괄호 안은 정답률)

닐리리(15.3%) → 늴리리
쌍용(18.6%) → 쌍룡
오뚜기(25.3%) → 오뚝이
산수갑산(26.1%) → 삼수갑산
서슴치(27%) → 서슴지
풍지박산(27.8%) → 풍비박산
생각컨대(29.4%) → 생각건대
흐리멍텅하다(31.1%) → 흐리멍덩하다
숫소[황소](32.0%) → 수소
개나리봇짐(32.7%) → 괴나리봇짐
우뢰(32.8%) → 우레
숫놈(32.8%) → 수놈
설걷이(32.9%) → 설거지
곱배기(33.6%) → 곱빼기
집에 갈께(33.6%) → 집에 갈게
햇님(34.4%) → 해님
윗층(36.1%) → 위층
삯월세(37.8%) → 사글세
주초(37.8%) → 주추
홀홀단신(38.4%) → 혈혈단신
촛점(38.6%) → 초점
개발새발(39.4%) → 괴발개발


연령별로 살펴보면, 나이가 많을수록 성적이 떨어졌다. 20대는 58.1점, 30대는 56.3점, 40대는 54.5점, 50대는 53.9점으로, 1989년 어문규정이 새로 적용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학력별 성적은 반드시 교육적 효과와 비례하지 않았다. 대재 및 대졸자가 57.1점이지만, 중졸이 55.8점으로 고졸 55.0점보다 오히려 성적이 높았다. 따라서 어문규정이 개정된 이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어문규정의 교육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100년 후 지구상의 언어 절반으로 줄어들 것

지구상에는 약 1만여 개의 언어가 존재했었다. '에스놀로그(Ethnologue)'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6912개이며, 이들 언어 가운데 언어 전수 기능이 가능한 언어는 300개 미만으로 세계인의 96%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도 100년 후에는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며,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 일부 언어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소멸될 것이라고 한다. 과학적으로도 훌륭한 문자라고 자랑하는 우리 한국어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온통 영어로 난리법석이다. 각종 중고등학교 입학시험이나 평가시험, 대학 입학시험, 취업 시험 등 영어 점수가 낮으면 그 어디에도 들어갈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게다가 앞 다투어 경쟁이라도 하듯이 각 지방자치마다 영어마을 선포식을 갖는 등 영어는 어느새 우리 민족의 얼과 문화를 잠식해 가고 있다. 특히, 2009년부터는 초등학교 1학년에서 영어를 가르치도록 되어 있어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영어공용어 바람이 거세게 불어 한국어의 위기는 갈수록 심각할 것이다.

한글은 실질적 의미를 나타내는 어근에 문법적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소가 붙어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형태적 특징의 언어로 첨가어(添加語) 또는 교착어(膠着語)이며, 자음과 모음 40개의 음소문자로 발음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당글자로 사용하는 표음문자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언어는 한국어 외에 일본어, 터키어, 몽골어, 헝가리어 등 우랄 알타이어계 언어들이다. 표음문자에는 단어의 음절 전체를 한 단위로 나타내는 문자인 음절문자와 음소적 단위의 음을 표기하는 음소문자(자모문자)로 나뉜다. 전자의 예로 일본의 가나 문자를, 후자의 예로 로마자와 우리 한국어를 들 수 있다.

그런데 한글은 단순히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음운자질을 반영하는 글자이다. 즉, 발음기관을 본 따 만든 기본 글자(ㄱ,ㄷ,ㅂ,ㅈ)에 가획의 원리(ㅋ,ㅌ,ㅍ,ㅊ)와 병서의 원리(ㄲ,ㄸ,ㅃ,ㅉ)로 거센 글자와 된소리 글자를 만들어 냈다. 따라서 로마자가 무성음과 유성음의 2분법적인데 반해 우리 한글은 3분법적의 음운적 특징으로 세계 모든 언어를 음성기호로 표기할 수 있는 아주 우수한 문자이다.

한국어 교재 보내달랬더니 대통령 자서전 보내?

영국과 미국이 50여 개 이상의 연방국가로 세계를 장악하고, 중국이 50여개 이상의 소수민족을 연합하여 거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또한 아랍국이 연합하고 유럽이 연합하고 있다. 이제 언어도 영어, 중국어, 유럽어, 아랍어 등 몇 개 언어로 좁혀질 것이다.

'언어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우리도 남북통일은 물론 일본, 몽골, 중앙아시아, 터키 등을 연결하는 알타이어계의 중심어로 자리 잡아 나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여러 가지 한국어교육 정책이 필요하겠지만 그 중 대외적으로는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 700만 한민족 동포가 180여 개국에 산재되어 있다. 이들을 기저로 한국어교육 정책을 펼칠 전문기관이 필요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국어교육에 관련된 교재를 정부에 보내달라고 하니 김대중 대통령 자서전을 보냈다는 웃지 못 할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내국인에게 말하기-듣기 중심의 기능주의에서 벗어나 정확한 언어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문자언어 중심의 교육 정책이 필요하다. 언어 소멸 속도는 굉장히 빠르다. 갑자기 한두 세대 만에 사라질 정도로 우리는 '언어 전쟁' 속에 살아가고 있다. 세계의 언어 경쟁력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문법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한국어가 소멸된다'는 가설은 곧 현실로 다가올지 모른다.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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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굴러가는 모습 2007. 3. 8. 13:24

"보드리야르는 '호기심' 그 자체였다"

'통찰력의 새 지평을 연' 보드리야르 서거에 부쳐

2007-03-08 오전 10:06:12

10년 전 미국의 물리학자 앨런 소칼과 벨기에의 물리학자 장 브리크몽은 <지적 사기>라는 책을 통해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장 보드리야르, 쥘리야 크리스테바, 자크 라캉, 질 들뢰즈, 펠릭스 카타리 등이 집중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통칭되는 프랑스 철학은 겉치레와 수사, 현학을 빼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지적인 사기라는 독설을 퍼부었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자신들의 상대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학철학의 개념을 오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프랑스 철학자들은 "과학의 단선적 객관성을 잣대로 인문학을 바라보려는 과학주의자들의 시각이야말로 또 다른 권위주의"라고 반박했다. 이렇게 해서 촉발된 것이 이른바 '과학전쟁'이다. 당시 소칼과 브리크몽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았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지식인의 비굴함과 나태는 우리시대의 올림픽 종목이 돼버렸다"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 현대 프랑스 철학을 풍미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대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지난 3월 6일 향년 7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자크 라캉(81년 사망), 질 들뢰즈(95년 사망), 자크 데리다(2004년 사망)에 이어 현대 프랑스 철학의 또 하나의 큰 별이 진 것이다. 프랑스 최고권위의 일간지 르 몽드와 지식인들이 즐겨보는 리베라시옹은 3월 7일자 1면 톱기사로 보드리야르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프랑스 사회에서 보드리야르의 비중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섹스, 언어, 기호, 상품, 전쟁 등 그 어떤 것도 이 사회학자의 역설적인 분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호기심 그 자체였다." 리베라시옹은 보드리야르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학문적 업적을 기렸다.

1929년 7월 20일 랭스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독일어를 공부했고 브레히트나 맑스의 번역자이기도 했던 보드리야르는 1966년 파리 10대학 낭테르의 강단에 서면서 사회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여러 학위들을 고려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965년 사회학만이 유일하게 개방적인 학문이었다."사회학을 선택했던 이유를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그의 박사논문이자 첫 번째 저작인 <사물의 체계(1968)>와 1970년에 출간한 <소비의 사회>는 그를 일약 대철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현대인의 일상을 소비라는 측면에서 해부한 보드리야르는 현대인들이 물건의 본연의 기능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위세와 권위, 즉 기호를 소비한다고 주장해 큰 반향을 얻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1981)에서는 독창적인 분석을 통해 포스트모던 사회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실재가 아닌 파생실재로 전환되는 작업이 시뮐라시옹(Simulation)이고 모든 실재의 인위적 대체물이 '시뮐라크르(Simulacre)'인데, 그에 의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모사와 복제에 의한 가상실재, 즉 시뮐라크르의 미혹이라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는 복제의 시대라는 그의 독특한 분석과 이론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 허물기를 시도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흐름을 이끌었고 미디어와 예술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일상생활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81)의 제자로 초기에는 맑시즘을 신봉했으나 1973년 <생산의 거울>이라는 책을 통해 맑시즘과 결별하고 구조주의와 기호학에 관심을 쏟았으며 그 뒤 줄곧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회이론을 전개해 왔다. <상징적 교환과 죽음>(1976), <푸코 잊기>(1977), <침묵하는 다수의 그늘 아래서>(1978), <유혹에 대하여>(1979),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1981), <차가운 기억들 1,2,3>(1987~95), <아메리카>(1986), <악의 투명성>(1990), <완전범죄>(1994), <이타성의 형태들>(1994) 등 50편에 이르는 저작을 남겼고 그의 책의 한국에서도 20여 권이 번역되었다.

그의 포스트모니즘은 1991년 걸프전 당시에도 지성계를 뒤흔들어놓았다. 걸프전이 한창일 때 그는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사일이 정확히 투하돼 목표물이 파괴되는 장면은 실제 아주 무섭고 비참한 것이지만 안방에서 TV를 보는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 속 가상현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토모던 현실 속에서는 일상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모사된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5년 한국을 방한했던 보드리야르는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복제실험은 자연현실의 부정이라는 점에서 시뮐라시옹의 극단적 사례"라고 주장했고, "문화와 예술, 행동양식에서 기호를 통한 현실의 재현을 가리켰던 근대의 시뮐라시옹과 달리 현대의 시뮐라시옹은 급격한 변화와 전이, 도약을 통해 더 이상 재현이 아니라 가상현실로 넘어간다"고 설명하며 '극단적 현실 청산에 대한 두려운 전망'을 언급한 바 있다.


그의 자취는 현대사회학과 철학에 큰 족적이 아닐 수 없다.

"소비는 일종의 신화이자 현대사회 스스로에 대한 표현이며 (…) 충만한 자기예언적인 담론이고 (…) 총체적인 해석체계이자 사회가 스스로를 극도로 향유하는 거울이며, 예견을 통해서 사회가 스스로 성찰하는 유토피아이다."

소비에 대한 탁월한 분석과 통찰력을 담은 <소비의 사회>는 그의 학문적 입지를 단숨에 다져놓았다. 이 책의 서문에서 리딩대학교 토크빌연구소 메이어 교수는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는 뒤르카임의 <사회분업론>, 베블렌의 <유한계급론>,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과 같은 책의 대열에 자리 잡고 있다"고 격찬했다. 모더니티에 대한 분석, 현대사회의 작동기제와 이면에 대한 독특한 해석은 우리시대 지성의 폭을 크게 넓혀놓았고, 무한한 통찰력의 새 지평을 열었다.

'참여하지 않는 지식인', '유토피아적 망상가'라는 그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장 보드리야르의 인문학적 상상력과 자유로운 통찰력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인류의 지적 자산을 풍성하게 하는 자양분이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프랑스 현대철학자들이 하나둘씩 떠나간 빈 공간에 그가 우려한 바와 같이 지식인의 무기력과 나태함이 자리잡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 때문에 그가 떠난 빈 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최연구/기획위원·프랑스 마르느 라 발레 대학교 국제관계학 박사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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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굴러가는 모습 2007. 3. 7. 10:25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 타계
2007-03-07 오전 9:18:35
프랑스의 저명 철학자이자 사회 이론가인 장 보드리야르가 6일 파리의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시뮐라시옹'(거짓 꾸밈.위장) 이론으로 유명한 고인은 1929년 서부도시 랭스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교사를 지낸 뒤 파리 10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며 50권 이상의 저서를 남겼다.

시뮐라시옹 이론은 현대사회에서 원본과 복사본,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와 구분이 모호해지고 차이가 없어진다는 해석이다.

그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생산물이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기호가 소비된다. 현대사회는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는 복제의 시대라는 그의 이론은 철학 뿐 아니라 미디어와 예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현대성에 대한 가장 뛰어난 해석자 중 한 사람, 프랑스의 주도적인 포스트모던주의자로 꼽힌다.

'소비의 사회', '기호의 정치 경제학 비판', '푸코 잊기','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 '숭고한 좌파',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메리카' 등이 주요 저서다.

그는 1991년 "걸프전에서 어느 쪽도 승리를 주장할 수 없고 전쟁은 이라크에서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았다"며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도발적인 주장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테러리즘의 정신'이란 에세이에선 2001년 9.11 사태를 '스스로에 맞서 싸우는 승리하는 세계화의 표출'로 묘사해 새로운 논쟁을 유발했었다.

그는 문학 포럼 참석차 2005년 5월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반도가 통일돼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경계가 사라지면 문화적이고 비물질적인 대립과 분쟁이 유발될 수 있다. 한국은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며 조언했었다.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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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굴러가는 모습 2007. 2. 19. 23:00

<1번가의 기적>은 코미디가 아니다

[리뷰]영화 <1번가의 기적> / 오마이뉴스 박정호 기자 / 2007.2.19.



몇 년 전, 서울 은평뉴타운 개발 지역인 진관내동에서 한 아주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이제 좋은 아파트가 들어선다는데 좋으시겠어요?"
"좋긴 뭐가 좋다 그려? 돈이 있어야 가지, 돈이 있어야. 입에 풀질하기도 힘든데 말여."

개발이 되면 동네 주민들에게 좋은 줄만 알았던, 세상 물정 모르던 내게 아주머니는 면박을 줬다. 당장 1000만원도 아쉬운 형편에 임대아파트 입주권이 나와도 입주금을 마련할 길이 없는 상황이었다. '달동네'에서 '전원형 생태도시'로의 탈바꿈은 10평짜리 집이 전부인 아주머니에게 무의미했다. 올해 하반기에 분양이 시작되는 은평뉴타운에서 파출부를 나가며 3남매를 키우던 이 아주머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1번가의 기적>은 코미디가 아니다

솔직해지자. '개발'이라는 이름의 달콤함은 원주민에게는 씁쓸함일 뿐이다. 허름한 달동네가 전망 좋은 아파트촌이 된다고 해도 주민들은 기뻐하지 않는다. 입주금을 마련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애초에 그곳에 자리 잡게 된 것도 가난에 떠밀려서이지 않은가. 멸시받던 동네가 '유러피안 스타일', '전원도시' 같은 미사여구로 포장되는 동안 주민들의 대다수는 정든 곳을 떠나야 한다. 'OO동 재개발', 'OO마을 21세기 뉴타운으로~'라는 축하 플래카드는 그들에게는 퇴출명령이나 다름없다.

이 같은 달콤 씁쓸한 이야기가 영화 <1번가의 기적>에 녹아있다. <1번가의 기적>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장르가 코미디라고 뜬다. <색즉시공>에서 호흡을 맞췄던 윤제균 감독과 임창정, 하지원이라는 이름만으로 영화장르를 구분했다면 모를까, 내가 본 <1번가의 기적>은 가벼운 웃음보다 깊은 한숨을 뱉게 만드는 드라마다.

물론 용역깡패 필제(임창정)와 챔피언을 꿈꾸는 여성복서 명란(하지원)의 엉킴, 그리고 귀여운 사투리의 진수를 선보이는 꼬마들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저절로 폭소가 터진다. 다단계에 빠진 여인(강예원)과 커피 자판기를 운영하는 청년(이훈)의 러브 스토리도 잔잔하게 흐른다.

하지만 이 영화의 중심은 철거 동의서를 받아내려는 건달들과 철거 동의를 거부하는 주민들의 사투다. 사실 스크린에 투영되는 용역건달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비열한 거리>의 병두(조인성)도 출세를 위해 악착같이 산동네를 누볐던 것처럼, 검은 조직은 도시 재개발을 도와주고 땅장사꾼들한테서 돈을 받는다. '영화는 삶을 반영한다'는 말이 있듯이 <비열한 거리>나 <1번가의 기적>은 화려한 개발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의 모습을 들춰낸다.



"강변 땅값이 얼마인 줄 알아?"

<1번가의 기적>은 섬뜩할 정도로 비극을 잘 묘사한다. 갈 곳을 잃은 아주머니가 분신하고, 아이들과 할아버지의 소박한 아침밥상은 포클레인의 손짓 한 번에 시멘트가루로 뒤덮인다. 마을에 들이닥친 용역직원들의 몽둥이질과 악다구니를 쓰는 주민들의 모습도 생생하게 펼쳐진다. 개발로 이익을 얻게 될 사람들과 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될 사람들의 대결이다. 그 와중에도 포클레인은 멈추지 않았다.

철거 장면뿐만 아니라 감독은 영화 전반에 걸쳐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중간 중간 웃음도 버무린다. 그렇지만 문제의식의 끈은 놓지 않는다. 건달 필제가 '엄마야 누나야'라는 동요를 부르고 있던 아이에게 던진 말이 압권이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야, 너희들 강변에 살고 싶구나, 강변 땅값이 얼마인 줄 알아?"

동요의 강변은 현실에서는 더 이상 아무나 살 수 없는 곳이 됐다. 필제는 아이들과 흙바닥에서 땅따먹기 놀이를 하면서도 "땅따먹기가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이런 필제의 말이 전혀 웃기지 않은 것은 왜일까.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되면서 세 가지 소리가 들린다. 무지막지한 포클레인 소리, 용역직원들과 주민들의 고함소리, 그리고 부서지는 집을 지켜보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다. 마치 상가에서 곡을 하듯 울음소리는 구슬프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곳에 불청객처럼 찾아온 눈물이다. 생경하기까지 하다. 영화는 '개발'이 주민들의 아픔을 먹고 자라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

이미 주민들에게 마음을 뺏긴 필제는 선뜻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필제는 철거 현장을 바라보던 아이들을 뒤돌려 세운 뒤 "좋은 일인데 왜 울어? 헌집 부수고 새집 주려고 그러는 거야"라고 달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동요를 부르게 한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과연 새집을 주려고 그러는 것인가. 도시개발은 원주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개발이 낳는 돈을 위한 것이다. 헌집은 새집이 되지 않고, 주상복합 아파트가 되고 빌딩이 된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에 아이들의 노랫소리는 더욱 구슬프다.



<1번가의 기적>이 '대한민국의 기적'이 되기를...

그렇다면 <1번가의 기적>에서 말하는 기적은 무엇인가. 제목도 비슷한 영화 <8번가의 기적>처럼 외계물체가 부서진 집을 '짠'하고 원래대로 만들어 주는 것일까. 아니다. <패밀리맨>처럼 이 모든 게 꿈이었을까. 아니다. <1번가의 기적>은 좀 더 현실적인 해피엔딩을 그려낸다. 울고 웃고 또 다시 울다가 결국 주인공들은 각자 원하는 것을 이뤄낸다.

특히 가난을 이겨낸 여성복서 명란의 인생역정은 희망을 준다. 고되고 힘든 삶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이루어내는 명란의 꿋꿋함과 열정은 해피엔딩을 만들어낸다. 동양챔피언이던 아버지를 위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명란의 펀치는 모든 슬픔을 날려버린다.

하지만 해피엔딩을 기적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이 있다. <1번가의 기적>에서의 진짜 기적은 필제의 변화다. 피도 눈물도 없던 필제가 따뜻함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필제는 동의서에 도장을 받기 위해 주민들을 협박한다. 그런 필제가 '9시뉴스 기자'를 사칭해 수돗물을 나오게 하고 약을 마신 아저씨를 들쳐 업고 뛰게 된다. 아이들로부터 '슈퍼맨'이라는 칭송을 듣는 필제는 점점 마을 주민들에게 동화돼 간다. 그리고 철거현장에서 주민들 편을 들었다가 몰매까지 맞는다. '개발'의 노예에서 생계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편에 선 필제의 모습에서 기적을 발견한다.

우리는 지금 '개발'의 달콤함에 취해있다. 부동산 광풍에 눈이 멀었다. 우리 사회가 '개발'로 생계를 위협받는 사람들의 아픔에 더 귀 기울이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꿈일까. 필제에게 나타난 기적이 우리에게도 나타날 수 있을까.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1번가의 기적>이 '대한민국의 기적'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본다.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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