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굴러가는 모습 2008. 8. 3. 20:27

돈만 벌어라


정 지 창(영남대 독문과 교수)


개같이 벌으랬다 돈만 벌어라

더러운 돈 좋아하네 돈만 벌어라

새돈 헌돈 따로 있나 돈만 벌어라

아무거나 시키세요 돈만 벌어라

인정 찾고 양심 찾고

개소리를 허들 마라

정승처럼 쓰면 됐지

돈 벌어 돈만 벌어 돈


이 노래는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에 나오는 깡패들의 노래로 강렬한 록 음악으로 당시의 세태를 질타하고 있다. 알다시피 「공장의 불빛」은 1978년 인천의 동일방직 노동조합 사건을 노래와 대사로 엮은 한국 최초의 노동 현장 뮤지컬인 셈인데, 유신시대의 검열과 통제를 피하기 위해 게릴라 작전처럼 하룻밤새 이화여대 방송반에서 몰래 녹음을 하였다고 한다.

당시로선 최첨단 매체인 카세트로 2천개를 복사하여 후배에게 맡기고 김민기는 지하로 잠적했고, 이 테이프는 손에서 손으로 알음알음으로 전국에 배포되었다. 특히 뒷면은 공연할 때 활용하라고 반주만 녹음돼 있어 많은 노동 현장에서 이 테이프를 틀어놓고 공연을 했다고 한다.

그 무렵 동교동의 어느 건물 지하실에서 숨죽이며 지켜본 공연의 충격과 감동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후 어찌어찌 해서 손에 들어온 테이프를 30년 가까이 듣다보니 이제는 거의 소음 수준으로 음질이 떨어져, 뒤늦게나마 2004년에 복각된 CD를 사려고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맛보기로 들어본 새 CD의 음악은 웬일인지 성형미인처럼 매끈하기만 해서 선뜻 주문할 맘이 내키지 않는다.

최근에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이 김민기의 노래들을 다시 부르는 기획 공연을 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것이 바로 ‘돈만 벌어라’였다. “대통령이 씨이오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대한민국 주식회사/ 돈 벌어 돈만 벌어…” 가사를 요즘 세태에 맞추어 일부 바꾸어 부른 것이 관객들의 공감을 얻은 모양이다.

1970년대 개발독재 시대의 노래가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돈만 벌어라’의 주술에 갇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백주 대낮에 동일방직 여공들에게 똥물을 퍼붓던 ‘구사대’는 깔끔한 양복 차림의 ‘용역’으로 바뀌었지만, “새 돈 헌 돈 따로 있나 돈만 벌어라/ 아무거나 시키세요 돈만 벌어라/ 인정 찾고 양심 찾고/ 개소리를 허들 마라”는 그들의 주제가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이 노래는 이제 ‘깡패’나 ‘용역’들만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부르는 애창곡이 되었다. 물론 일부는 ‘노찾사’처럼 냉소적 반어법으로 부르지만, 다수는 진정으로 감정이입이 되어 열창을 한다. “민주주의 짜증난다/ 돈만 벌어라”

그래서인지 ▲ 제주 영리병원 허용 등 의료민영화정책 폐기 ▲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병원급식 금지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간 보건의료노조에서 내건 “돈보다 생명”이라는 구호가 신선하게 와 닿는다. 누구 말처럼 촛불이 바깥세상의 어둠을 밝히면서 우리 마음 속의 돈 욕심을 태우는 자성의 계기로 타오르기를 간절히 바란다.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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