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산의 노변정담'에 해당되는 글 49건

  1. 2009.09.28 :: 의자
  2. 2009.09.28 :: 장동에서 일곡동까지 걷다
  3. 2009.09.28 :: 삼복 서점이 문을 닫다
  4. 2009.09.12 :: 수시 풍경
추월산의 노변정담 2009. 9. 28. 21:37

의자


의자에는 사람들이 앉아있다.

이것은 얼마나 낯익은 풍경인가?

사람들이 앉지 않은 텅빈 의자는 왠지 쓸쓸함을 자아낸다.

길을 지나가다가 아무도 앉아 있는 사람이 없는 커피숍을 볼 때

그리고 한참 북적일 시간인데도 앉아 있는 사람이 없는 식당을 볼 때

쓸쓸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불편한 마음이 앞선다.

미용실에서 수건을 둘러쓴 여인들이 의자에 가득 앉아 있을 때

영화관에서 벨이 울리고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빈자리가 하나도 없을 때

우리는 안심하게 된다.

이렇듯 의자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어야 한다.

교실에서도 의자가 비어 있으면 괜히 걱정이다.

저 의자의 주인은 무슨 일로 자리를 비웠을까?

출석을 확인하고 결석 사유를 알고 나서도 불안은 계속된다.


그런데 우리 반에는 의자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언제인가부터 아이들이 의자를 가져와서 책을 앉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았는데 이제는 10개가 넘는 것 같다.

다른 반 아이들은 종이 상자에 책을 담는데

우리 반 아이들은 참 이상하다.

아니 어떻게 의자에 책을 앉힐 줄 알았을까?

의자에는 사람만 앉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러고 보니까 의자에 앉아있는 사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땅히 놓일 자리를 잡지 못한 것들이

의자에 앉아 있곤 했었다.

그렇겠지.

아이들의 책들도 의자에 앉아서 쉬고 싶었겠지.

의자에 앉아 있는 책들이 이제는 편안하게 보인다.


'추월산의 노변정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등학교에서 뺨 맞기  (0) 2009.10.01
나도 대학생  (0) 2009.09.28
장동에서 일곡동까지 걷다  (0) 2009.09.28
삼복 서점이 문을 닫다  (0) 2009.09.28
수시 풍경  (0) 2009.09.12
posted by 추월산
:
추월산의 노변정담 2009. 9. 28. 21:18

장동에서 일곡동까지 걷다


어느 날인가 밤 10시 10분에 교문을 나서서 7번 버스를 타려고 금남로4가역으로 갔다. 버스정류장에는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기다리던 7번 버스가 왔지만 만원이었다. 나는 집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걸어가면서 보니까 7번 버스가 점점 한가해지고 있었다. 유동4거리에서 망설였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임동 전남방직 쪽으로 가고 있었다. 가다가 보니까 다리가 아팠다. 무등경기장 근처에서 집으로 가는 38번 버스가 보였다. 그 버스를 타고 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얼만데 하면서 집까지 걸어가기로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10여년 전까지 살았던 운암동 대주아파트(옛 숭일고 자리)를 지나고 태봉초등학교를 지나니 용봉지구의 화려한 불빛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저기에서 한 잔을 하고 갈거나. 아뿔싸! 지금까지 걸어왔는데 어서 길을 재촉하자고 다짐한다. 동현활어집을 지나고 현대아파트를 지나고 맥주를 만들어 파는 집을 지나니 용봉 아이씨다. 북부경찰서까지 온 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집이다. 고려고를 지난다. 국제고를 지나니 일곡병원의 불빛이 보인다. 일곡사거리 신호등에서 잠시 다리를 쉰다. 집에 들어가니 12시 5분이다. 다리가 많이 아프다. 내가 괜히 걸어왔나 싶었다. 하지만 두 시간을 걸어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 다음날도 걷기로 했다. 밤 8시에 학교를 출발하여 대인시장을 지나 동계천에서 구호전 방향으로 걸어간다. 일방로를 따라 걷다보니 북구청이 나온다. 전남대 후문을 지나고 대신파크 앞이다. 7번 버스가 자주 지나간다. 저 버스를 타면 집에 가는데, 잠시 마음이 흔들린다. 계속 걸어서 한전을 지나 오치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틀어서 북부경찰서 쪽으로 간다. 진미감자탕 건널목을 건너서 초원문고를 지나니 고려고다. 다리가 뻣뻣하다. 집에 가서 시원한 물을 한 잔 하자며 마음을 달랜다. 집에 도착하니까 9시 55분이다. 학교에서 집까지 2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 다음날 일어나니까 다리가 쑤신다. 이것도 다 차가 없으니까 가능한 것이다. 차가 있었으면 걸어가려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걸으면서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런 저런 생각도 해보았다.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도 없었다. 갑자기 끼어드는 차를 향해 욕을 해댈 일도 없었다. 그렇다. 걱정할 일이 없었다.

언제 또 걸어야겠다.

'추월산의 노변정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도 대학생  (0) 2009.09.28
의자  (0) 2009.09.28
삼복 서점이 문을 닫다  (0) 2009.09.28
수시 풍경  (0) 2009.09.12
폐차유감  (1) 2009.09.08
posted by 추월산
:
추월산의 노변정담 2009. 9. 28. 10:58

삼복 서점이 문을 닫다


오늘 아침 7번 버스를 타려고 삼복서점 앞으로 갔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9월 26일(토)부터 문을 열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붙여 놨다. 점포정리를 한단다. 9월 20일(토)에 들렀던 서점인데, 그날이 마지막이 되어버린 셈이다. 지금까지 삼복서점(일곡동)에 그렇게 많이는 가지 않았어도 가끔씩은 갔었는데 문을 닫아버리니까 너무나도 서운하다.

그랬을 것이다. 온라인 서점에 밀려 삼복서점 본점이 문을 닫을 때부터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온라인 서점이 편하고 마일리지도 주고 하니까 늘상 이용해왔는데 우리 동네 서점이 문을 닫으니까 기분이 묘하다. 사랑방문고가 생겼을 때까지만 해도 오프라인 서점을 이용했었다. 그런데 교보문고가 온라인 서점을 개설하면서 그쪽으로 옮겨갔었다. 그리고 예스24를 거쳐서 지금은 알라딘을 이용하고 있다.

동네 구멍가게가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엔 24시 편의점들이 들어서 있다. 동네 책방이 사라진 자리엔 어떤 서점이 들어설까? 필요한 책이 있어도 사러갈 서점이 없는 동네는 얼마나 삭막할까? 대학가에 서점들이 자리를 감춘지도 오래됐다. 광고 앞 헌책방 골목에도 이젠 헌책방이 몇 군데 남지 않았다. 헌책방이 있어서 아름다운 도시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오늘도 나는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주문했다. ‘김대중의 옥중서신1’이다. 시간을 내서 충장서림에 들러야 할 텐데 언제쯤일지 알 수 없다. 시간을 내서 오프라인 서점에 들러야 하는데…….

'추월산의 노변정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자  (0) 2009.09.28
장동에서 일곡동까지 걷다  (0) 2009.09.28
수시 풍경  (0) 2009.09.12
폐차유감  (1) 2009.09.08
미디어법은 가짜다  (0) 2009.07.23
posted by 추월산
:
추월산의 노변정담 2009. 9. 12. 15:14

수시 풍경


고3 아이들은 수시 원서를 쓰느라고 정신이 없다. 내 옆자리에서는 수시 상담을 하느라고 담임들과 아이들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내신 점수로 대학을 가다보니 영 점 몇 점 가지고 희비가 엇갈린다. 상담을 하고 나서 눈물을 글썽이는 녀석도 있다. 자신의 점수에 만족하면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녀석도 있다. 어떤 녀석은 담임을 만나기가 두려워서 아직 교무실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점수에 맞춰 대학에 가지 말라고 한다. 10년이나 20년 뒤를 생각하면서 결정하라고 한다, 입시전문기관에서 나온 자료집이나 배치표를 교실에 비치해 두었다. 아이들은 그 자료를 보고 자신이 갈 수 있는 대학을 결정한다. 그리고 교무실에 와서 전문프로그램을 통해서 지원가능여부나 모의경쟁률을 확인한다.

아이들은 아직도 현실에 발을 딛고 싶지 않다. 현실은 너무나 냉혹하다.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을 맘대로 선택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내신 등급이 말해준다. 담임인 나는 답답하다. 부모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당사자는 미치고 펄쩍 뛸 일이다.

어서 수시 원서 접수가 끝났으면 좋겠다. 밤잠을 못 자고 수시원서를 쓰는 녀석들의 푸석푸석한 얼굴을 이제 그만 보고 싶다. 한참 멋을 부릴 아이들이 입시에 치어 노랗게 시들어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추월산의 노변정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동에서 일곡동까지 걷다  (0) 2009.09.28
삼복 서점이 문을 닫다  (0) 2009.09.28
폐차유감  (1) 2009.09.08
미디어법은 가짜다  (0) 2009.07.23
문학이라는 이름의 섬(문학섬) 방문 감사  (0) 2009.07.04
posted by 추월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