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2006. 9. 23. 07:32
주옥이 형님, 형님답습니다. 어느 시러배자식들이, 고3선생들이 형님같이 이야기 합니까? 정말로 실력향상이 눈에 보일 정도로 팍팍 나타나야 할 텐데, 학생들의 실력이라고 하는 것이 고무줄을 늘이듯이 쉽게 향상이 되는 것입니까? 종합반 수업을 하듯이 수업을 하든, 학생들의 선택을 존중해서 선택중심 수업을 하든, 수능이 자격시험이 아닌 이상 학생들은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만 공부를 하지, 그외 다른 무엇이 있겟습니까?

형님, 참으로 답답한 세월입니다. 고3전문가라고 하는 작자들이 고작 하는 것이 불쌍한 고3들 간수처럼 감시나 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수십년 동안 변하지 않고 있으니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니겠소. 고등학교 시절은 유보된 인생이란 말입니까? 꿈과 낭만은 그저 개뼉다귀나 한가지지요. 한심한 교육현실을 생각하기만 하면 너무나 참담하답니다.

형님, 힘내세요. 저의 푸념이 형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다면 다행입니다.

아무런 부담도 없이 한 잔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일곡아카데미아에서 김성중 올림

posted by 추월산
:
그리움 2006. 9. 23. 07:26
아이들에게

지금은 세상이 고요히 잠든 일요일 밤이구나. 내일을 위해서 편히 잠을 자는 시간이란다. 내일이 없다면 사람들은 오늘을 맘껏 즐기겠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내일의 희망이 사람들을 절망에서 구해내는구나.
나는 지금 지난 주에 너희 반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한다. 그리고 1 학기 동안 너희 반에서 했던 나의 수업을 떠올려 본다. 아니, 다른 인문계고등학교에 가는 것을 마다하고 예술고등학교에 오게 된 것을 새삼스레 생각한다. 나의 선택이 잘못 된 것은 아니었는지, 내가 만용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한다. 예술을 한다는 너희들을 내가 너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너희들의 끼를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생각이 내 머리 속을 맴돈다.
1980년부터 분필을 잡기 시작하여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숱한 아이들을 겪으면서 내가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을 베푼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한다. 나는 그저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로만 떠든 위선자가 아닌지 생각한다. 20년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이 우리 학교가 변했고, 아이들도 변했고, 사회도 변했는가? 그리고 분필을 쥔 내 손도 변했는가?
정말 좋은 선생이 되려고 나는 얼마나 노력했는가? 단지 몇 푼 받는 월급에 취해서 단순한 직업인으로 전락했는지? 정말 나는 선생 자격이 있는 것인지? 이 시대에 내가 선생으로서 어떻게 해야만 진정 선생다운 선생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밤이구나.
나는 교육이 인간을 변하게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단다.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학생이 인격적으로 만나 서로를 감화시키는 교육을 꿈꾸어 왔단다. 그런데 너희 반에서 나의 꿈은 번번이 배반을 당하는구나. 그래서 나는 점점 힘을 잃었고, 때로는 절망하고 때로는 분노하면서 너희들을 원망했구나. 원망이 지나치면 저주가 된단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을 더 이상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선생이 제자를 저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고 싶구나. 제자를 사랑하지 않는 선생은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가? 그런 선생이라면 교단을 떠나야 되겠지? 나는 사랑을 전해주는 그런 선생이고 싶단다. 내가 교단에 서 있는 날까지 이 생각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단다.
나는 학생을 믿어왔고 앞으로도 믿고 싶구나. 너희들도 나에게 믿음을 주길 바란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믿음이 없다면, 그 사회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단다.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지 솔직하게 말해주는 그런 너희들이기를 바란다.
미래에 훌륭한 무용가가 되었을 때,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을 기쁜 마음으로 회상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만 줄인다.

2001년 9월 10일 0시 10분
일곡아카데미아에서 김성중
posted by 추월산
:
그리움 2006. 9. 23. 07:14

존경하는 진리탐구자께 보내는 3류 철학자의 두 번째 서신

선생님, 선생님께 장문의 장광설을 늘어놓은 후 선생님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걱정하고 고민했었는데 이렇게 답장을 통해 극찬을 들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서 극찬하신만큼 저는 그렇게 대단한 인간은 아닙니다. 아직 지식도 부족하고 읽은 책도 변변치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추천하신 <인간의 얼굴>이라는 책은 당장 서점에서 구입해서 일독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세상은 과연 살만한 곳인가?>라고 하는 아주 중요한 철학적 명제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과연 세상은 살만한 곳일까요? 저는 아주 단호하게 <그렇다!>라고 큰소리치고 싶습니다. 세상은 살만한 곳입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그렇습니다. 너무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세상이 살만한 이유는 철학과 음악, 그리고 여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미학의 탐구대상으로 철학과 음악, 그리고 여자를 택했습니다. 철학에 있어서는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에 그 범위에 제한이 거의 없고 음악으로는 <바하>를, 여자에 있어서는 여성학과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철학은 정말 해도 해도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습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철학이란 학문을 정복하기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그리고 음악에 있어서 저는 바하의 음악을 가장 좋아하는데 바하의 작품 중에서 <나의 기쁨이 되신 주>나 <토카타와 푸가 D단조>, <첼로협주곡>, <위풍당당행진곡>과 같은 곡은 선생님께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기회가 되시면 한번 들어보십시오. 저는 정말 훌륭한 음악이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음악이 모더니즘 미술처럼 가사로부터 해방을 선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슬릭>이라는 음악미학자가 음악의 독립선언을 했다는데 저 또한 그 견해에 동의합니다. 음악은 순수한 음들로만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선생님께서 기분이 우울하시거나 의기소침하실 때 혹은 아침에 기상하셨을 때 <위풍당당행진곡>을 들어보시길 권유합니다. 그 곡은 니체의 미학 그 자체입니다. 힘이 증대하는 느낌, 저항이 극복되었다는 느낌을 그 곡을 통해 느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니체가 주장한 삶의 자극제로서의 예술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클래식에 대해서는 그 세세한 이론까지는 모르지만 많이는 들어서 이제 귀에 익숙합니다. 클래식이야말로 가장 고상하고 가장 귀족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저는 <여자>에 관심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물으셨는데 저는 다음과 같은 논증을 제시합니다.

1. 우아한 것은 아름답다.

2. 여성미의 극치는 아름답다.

3. 우아하면서 여성적인 것은 아름답다.


1. 곡선은 디오니소스적, 여성적 선이다.

2. 직선은 아폴론적, 남성적 선이다.

3. 여성의 곡선은 남성의 직선보다 아름답다.

4. 여성적인 것이 남성적인 것보다 아름답다.

5. 곡선이 직선보다 아름답다.


1. <우아미>는 귀족적이며 아름답다.

2. <데카당스적 퇴폐미>는 지나치게 천박하지만 아름답다.

3. 우아한 미인의 도도함은 아름답다.

4. 퇴폐적 미인의 지나친 천박함과 음란함은 아름답다.

5. 최고의 미로 우아미와 퇴폐미 양자 모두를 동일한 자격으로 추대한다.

6. 우아미의 대표로 바로크 시대의 귀부인을, 데카당스적 퇴폐미의 대표로 현대의 소위 <오봉>들을 추대한다.

저는 아름다운 것이란 여성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논증이 비록 어설프고 남자와 여자라고 하는 性이나, 곡선과 직선이라고 하는 線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제 나름대로 논증을 제시하여 보았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는데 기초가 되는 논리학을 제 나름대로 공부한 후 어설프게 논증을 제시하여 본 것인데 제가 봐도 참 우스꽝스럽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추구하십니까. 선생님도 혹시 <철학자>는 아니십니까? 니체의 명언을 끝으로 두 번째 서신을 마치고자 합니다.

"철학자가 희귀한 종자라는 것은 필연적이고 아마도 바람직한 사실이다."

2002.5.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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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
그리움 2006. 9. 11. 17:51
호만아, 반갑구나.

이렇게 살아서 서로의 소식을 전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너의 메일을 읽고 머리가 많이 아팠단다. 그리고 참으로 오랫만에 제자로부터 받은 아주 긴 글을 읽느라고 고생깨나 했구나. 호만이가 살아온 세상을 상상하면서 호만이가 많이 힘들었겠구나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호만이가 부쩍 컸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단다.

호만아, 너의 지적 편력을 읽으면서 나는 너무나 부러웠단다. 내가 너의 나이에 읽은 책들을 생각해보니 너무나 한심스럽더구나. 내가 보기에 너는 지금 철학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어차피 철학도로서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섭렵해야 하겠지만, 네가 평생 갈 철학의 길을 정하는 것도 급한 일이 아닐까? 네가 갈 길이 미학자라면 더욱 섬세한 예술에 대한 감식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공부라는 것이 금방 끝나는 것이 아니고 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호만이가 박사학위를 따려고 공부를 한다고 하니까 나는 호만이가 부럽고 질투까지 나는구나. 그래 열심히 공부하거라.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브루노,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쯔, 볼테르, 칸트, 헤겔, 포이에르바흐, 마륵스, 쇼펜하우어, 니체, 프로이트,가스통 바슐라르, 버트란드 러셀, 비트겐슈타인, 칼 포퍼, 사르트르, 까뮈, 앙드레 말로,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크 라캉, 피에르 부르디외 등등 알고 싶은 사상가들이 너무너무 많은데, 아아 우리네 삶이란 왜 이리 번거로운지.... 동양사상은 또 어떻고..... 영화는..... 우리식 철학을 모색하는 이정우(서강대 철학교수를 때려치우고 철학아카데미원장을 하고 있음)의 '인간의 얼굴'(민음사)을 읽으면 현대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알 수 있을런지.... 진중권의 재기발랄함과 신랄함은 내가 좋아하는 미덕일 테고.... 이진경의 치밀함과 박학엔 입이 벌어지고....

호만아, 세상이 살만한 곳인지는 좀 더 지켜 보아야 되지 않겠니? 아름다움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일까?

호만이가 그리는 세상과 내가 그리는 세상이 같은 세상인지 확인해 보기로 하자. 만나서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나는 시내에 나갈 일이 별로 없고 .......혹시 영화 보러 갈 일이 있을려나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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