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기 2008. 10. 16. 13:53

한 ‘어머니의 죽음’을 생각한다

길위에서 2008/10/15 16:56 돛과닻 (운영자) / 오마이뉴스 블로그 - 이 풍진 세상에 -



한글날 아침 식탁에서 나는 그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두 자녀를 기르며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젊은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였다. 입안에 든 밥을 머금은 채 나는 잠깐 숨을 죽였다. 눈시울만큼이나 뜨겁게 가슴 한편이 서늘해져 왔다. 이게, 무슨……. 나는 간신히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


“먼저 가서 미안해. 신발이 작아 발이 아프다는데도 사주지 못해 미안해.”


그게 스물일곱 살, 젊은 엄마가 7살, 5살배기 철부지 아들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이는 8일 오전 자신의 원룸 창고의 가스배관에 목을 매었다. 그녀는 사업에 실패한 남편과 이혼한 후, 두 아이를 데리고 식당에서 일하면서 원룸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그이는 자신의 일기장에다 남긴 마지막 말을 통해 남편에게 ‘아이들을 부탁한다’고 했다. 세상을 마감하면서 그녀에게 가장 아프게 박힌 상처는 ‘못 사준 신발’이었을까. 신발이 작아서 ‘발이 아프다’고 투정한 녀석은 7살짜리 큰놈이었을까, 다섯 살배기 막내였을까.


문학 시간에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을 가르치다가 잠깐 그 이야길 했다. 그럴 뜻은 없었는데, 내 목소리가 좀 젖어 있었나 보다. 여자아이들은 예민하다. 어떡해…….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여자들의 감각이 이 세상의 무심을 새삼스럽게 환기해 주었다.


그 젊은 어머니의 죽음 앞에 나는 불현듯 1990년에 일어난 한 사고를, 그 사고로 목숨을 잃은 오누이를 기억해 냈다. 맞벌이 영세민 부부가 문을 걸고 일을 나간 사이, 집에서 놀던 어린 남매가 불장난 끝에 방안에서 질식해 숨진 사고였다. 그 아이들의 죽음은 가수 정태춘의 노래 <우리들의 죽음>으로 숱한 이들을 분노와 슬픔으로 떨게 했다. 그 때 그 어린것들은 다섯 살, 세 살이었다.


그 사고는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가를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증명해 주었다. 일을 나가면서 방문을 걸었던 어버이는 아이를 잃은 아픔만큼이나 고통스럽게 문을 잠근 자신의 손을 저주하였으리라. ‘아, 대한민국’을 노래하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가난한 사람의 몫이 아니었다.


그리고 18년, 세상은 얼마나 변했던가. 1인당 국민소득 2만 불과 세계 십몇 위의 경제 규모로도, ‘경제 대통령’의 ‘선진화 원년’의 조국도 생활고에 지친 한 가정을 구하지 못했다. 다섯 살 혜영이와 세 살 영철이의 죽음으로도 이 나라의 ‘위민(爲民)의 그물’은 고단하게 살아가는 서민 가정의 단란한 행복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 아이들은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젊은 어머니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자기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두 죽음은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안전판의 현주소이면서 이 땅의 천박한 자본주의의 한 징표처럼 보인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세상은 저 혼자 돌아가고 그런 죽음 따위야 절로 잊히기 마련이라는 세상의 패배주의조차 닮았다.


굳이 이 땅의 육아 환경을, 한부모 가정 지원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가정 복지 수준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아니 이것은 그보다 더 원초적인 문제다. 때로, 경우에 따라 아이들은 불의의 사고로, 어른은 자신의 결단에 따라, 얼마든지 목숨을 잃거나 버릴 수 있다.


그러나 18년이란 세월의 이쪽저쪽에 외롭게 자리한 이 두 죽음이 가진 함의는 남다르다. 90년이라면 마지막 군부정권이 이른바 ‘3당 합당’으로 공룡 민자당을 출범시킨 해다. 이 야합의 정국은 결국 국내 상황을 5공 시절로 퇴행시켰다.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다수의 횡포만 남은 시간이었다.


굳건히 땅을 딛고 선 음유시인 정태춘은 그 슬픈 죽음을 노래했다. 분노와 슬픔을 갈무리하면서 시민들은 다시 거리로 나서곤 했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아주 익숙하던 시대였다. 그런 현실 속에 오누이의 죽음은 잊혀졌다. 요컨대 그것은 정치적 자유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권위주의 정부 시대의 슬픈 삽화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 오윤 판화 <봄의 소리>

그리고 18년, 시대가 변했다면 변했다. 현대사 초유의 정권교체가 있었고, 남북화해를 위한 잰 걸음들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듯하였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목 놓아 부르짖어 온 보수세력이 재집권하면서 세상은 다시 변했다.


지난 세월 동안 모두가 힘겹게 싸워서 얻은 민주적 가치들은 ‘실용’과 ‘규제 완화’라는 경제주의의 위세에 눌려 묻히거나 폄하되고 있다.


국민들이 ‘잘살게 해 주리라’는 믿음 하나로 선택한 정권이지만 새 정부와 대통령이 그려 보이는 세상은 어쩐지 낯설기만 하다. ‘복지의 비효율’과 ‘정책 효율성’을 겨냥한 ‘복지-성장 균형 발전론'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여전히 복지는 ’성장‘과 짝을 이루어야 추진되는 비독립적 영역을 면치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부자를 위한 감세는 ‘선심 쓰듯’ 여론의 반발 따위와는 아랑곳없이 독야청청, 그 청사진도 화려하다. 그러나 국회에 제출된 내년 복지예산 가운데 기초생활 보장 및 장애인 수당 등 빈곤·취약계층을 위한 예산은 올해보다 축소되거나 동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영희 의원(보건복지가족위·민주당)의 지적대로 “감세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첫 복지예산은 서민과 빈곤층에 대한 지원의 실질적 감소로 이어”진 것이다.


두 아이를 남기고 스스로 세상과 결별한 한 여인의 죽음이 환기하는 것은 그러한 제도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 사건을 단지 삶에 지친 한 여성의 죽음으로, 한 가정이 다다른 불행으로만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 2008년의 한국과 한국 사회가 두 아이가 숨져 간 1990년과 다르다고 한다면, 아니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면 말이다.


18년이라는 세월은 단순한 시간의 누적이 아니다. 그것을 역사와 문명의 발전이라 이름 붙인다면 그에 걸맞게 인간의 삶도 마땅히 진보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진보란 사회적 모순으로 말미암은 개인의 삶과 그 눈물을 닦아주는 국가의 역할이 포함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온 사회가 그것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성찰의 방식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거듭 말하지만 한 어머니가 죽음을 선택하게 한 고통스런 현실은 단지 그이가 감내해야 할 개인의 몫이 아니어야 한다. 그것은 이 넘치는 풍요와 과도한 낭비의 동시대가, 그리고 동시대인이 나누어 져야 할 짐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어떤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서 그렇게 말했다. “걸인 한 사람이 이 겨울에 얼어 죽어도 그것은 우리의 탓이어야 한다.”(황석영 <아우를 위하여>) 그것은 우리의 삶이 동시대인과 관계의 연대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윤리적 확인이다. 작가가 말하는 ‘저 깊고 수많은 안방들 속의 사생활 뒤에 음울하게 숨어 있는 우리’란 스스로 삶을 마감한 어머니이고, 죽음을 건 단식을 감행하고 철탑에 올라갔던 기륭전자와 KTX의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혜영이와 영철이의 죽음이 잊힌 것과 마찬가지로 저 어머니의 죽음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지다 지워질 것이다. 그렇다. 윤리적 무관심 앞에 모두들 둔감해지면서 우리는 마멸되어 간다.


이 애절한 죽음 앞에 말의 성찬도 넘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어린것들을 두고 죽을 생각을 다 하누……. 제 목을 매다는 독기로 보란 듯이 살아야지……. 맞다. 그러나 산 사람의 입은 깃털처럼 가볍지만 죽은 사람의 짐은 세계만큼이나 무겁다.


그것은 이론이 아니라 실존적 삶의 무게다. 그것은 모든 도덕과 윤리, 관습과 법률 저 너머에 있다. 한갓진 동정과 연민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그 죽음은 한 인간의 실존적 선택이다. 그 죽음에 동의할 수 없는 것과 그 ‘죽음의 절규’를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어머니는 가고 아이들은 남았다. 아버지가 아이들을 거두겠지만, 어쩌면 그 아이들은 이 사회의 몫인지 모른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외롭게 남겨진 자신들을 이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고 거두었는지를 하나둘 확인하게 될 것이다.


나날이 자라나는 발을 옥죄고 있는 낡은 운동화가 주는 통증과 잃어버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2008. 10. 15.>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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