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2006. 9. 11. 10:40

금강산 답사기

아름드리 미인송이 나그네를 반기고
김 성 중(광주제일고)


문영미씨 억류사건, 서해교전, 북한의 미사일 발사 계획 등을 겪으면서 금강산을 가고자 하는 나의 마음은 실망으로 가득찼다. 이러다가 금강산을 가지 못하는 게 아닐까? 1999년 8월 14일. 광주시교육청에서 사전 교육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금강산에 간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1996년 8월에 을지전망대에서 아무리 망원경을 들이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금강산을 이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다니.

8월 23일 저녁 6시20분. 교원 연수단을 싣고 동해항을 떠난 현대봉래호는 밤새 동해의 검푸른 물살을 가르며 8월 24일 아침 7시에 장전항에 닻을 내렸다. 밤새 뒤척이던 우리는 우르르 갑판으로 올라가 장전항 너머 금강산을 바라보았다. 아, 꿈에도 그리던 금강. 우리는 탄성을 질러대며 어서 빨리 북녘 땅에 발을 딛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그러나, 우리는 장전호로 갈아타고 1시간이나 지난 9시 30분에야 비로소 꿈에 그리던 북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우리를 반기는 "금강산 관광객을 동포애의 심정으로 환영한다"는 붉은색 글씨가 쓰인 간판을 바라보며 입국수속을 마치고, 본격적인 금강산 관광을 위하여 35인승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장전항에서 버스를 타고 온정리로 가는 새길을 따라 양옆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었고, 철조망 옆으로 경원선 철로가 한가롭게 누워 있었다. 군데 군데 정복 차림의 인민군이 부동자세로 우리를 감시했고, 우리는 또다른 휴전선 철책을 보는 것 같아 우울하고 답답했다. 철조망 너머로 북녘의 마을을 보면서 한가로운 농촌을 생각하다가, 벌거숭이로 멱을 감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자, 천진난만하게 손을 흔드는 조무래기들. 그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이 떠오르며 진한 동포애를 느낀다.

온정리. 철조망 사이로 난 길을 달려 도착한 곳. 금강산 관광의 중심지. 장전항에 호텔이 들어서면 비로봉을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면서 '김정숙 휴양소' 앞에 쓰인 '가는 길 힘들어도 웃으며 가자'는 글귀를 읽으며 버스는 구룡연 구역을 향해 달린다. 길 옆으로 빽빽히 들어찬 아름드리 미인송이 나그네를 반기고 구불구불 길을 달려 버스는 목란관 주차장에 닿았다.

산행을 하면서 우리는 금강산의 경관에 넋을 잃었고, 사진을 찍으랴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랴 다리가 아플 새가 없었다. 금강산 관광의 시작이라는 금강문을 지나자 옥류동 계곡. 옥처럼 맑은 물이 담긴 옥류담을 탄성을 지르며 비봉폭포 무봉폭포를 지나 구룡연으로 가는 길을 접어두고 상팔담을 찾아서 가파르고 팍팍한 돌계단을 오르니 구정봉. 구룡대에서 상팔담을 내려다 본다. 산을 휘돌아 수정처럼 맑은 물이 여덟 개의 못을 적시며 구룡폭포로 떨어진다. 금방이라도 선녀가 내려와 목욕할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전망대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오르던 길을 되돌아 관폭정에서 바라보는 구룡폭포는 장관이다. 높이 80m, 너비 4m의 물이 용틀임을 하면서 절벽을 타고 구룡연으로 떨어지는데, 과연 금강 제일 폭포답다. 보고 또 보아도 장관인 구룡폭포. 아쉬움을 남기고 하산하면서 한 잔을 마시면 십년이 젊어진다는 삼록수를 마시며 갈증을 달랬다. 덤으로 온정리에서 모란봉교예단의 서커스공연을 관람했다. 공훈배우나 인민배우로 구성된 교예단의 서커스는 참으로 아슬아슬했다. 묘기를 선보일 때마다 터져나오는 박수소리. 풍선이 터지면서 '우리는 하나'라는 글씨가 튀어나오자 장내는 용광로처럼 뜨거워졌고, 우리는 마치 통일이 된 듯한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공연을 관람한 뒤 왔던 길을 되돌아 배호텔에서 아픈 다리를 쉬었다.

이튿날. 만물상 구역. 만상정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조금 오르니 귀신 형상의 귀면암이다. 7층암, 절부암을 지나며 기기묘묘한 만물의 형상을 닮은 만물상이 눈 앞에 펼쳐진다. 보는 사람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만 가지의 물상들이 살아 꿈틀댄다. 안심대를 거쳐 쇠사다리를 밟고 오르니 1,2,3 망양대. 망양대에서는 동해를 볼 수 있다는데, 오늘은 구름 때문에 보이지 않고, 발 아래 펼쳐진 만물상을 다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산길. 온정리에서 달러로 기념품을 샀다. 장전항에 떠있는 봉래호로 돌아와서도 좀처럼 흥분은 가라앉을 줄 모르고, 우리는 밤새도록 금강을 찬양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언제 다시 금강산을 찾아가나. 급한 환자 때문에 봉래호는 전속력으로 달려 8월 26일 새벽 2시에 동해항에 도착했고, 우리 일행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아침 8시에 봉래호에서 내렸다.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나는 금강산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나는 지금 금강산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으며, 내가 누군가에게 금강산의 실체를 얼마나 잘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본 것은 금강산의 만분의 일도 되지 않은 것을. 아, 조금 보고서도 전부를 본 것처럼 말해야 하는 이 어색함. 그리고 혼자만 갔다왔다는 미안함이 겹치면서 함부로 말하지 않아야 하겠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깨끗한 금강산 뒤에 숨어 있는 우리들의 이기심을. 벌금을 물지 않기 위해서 옥처럼 맑은 물에 손을 담그지도 못한 나의 소심함. 한편으론 통제를 하지 않으면 금방 망가뜨려 버리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화를. 그렇다. 금강산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인간의 더러운 욕망을 꾸짖는다. 금강산에 '가고 가지 않고'가 중요한 건 아니리라. 우리들의 찌든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야 비로소 금강산은 우리에게 다가 오는 것이 아닐까?


<금강산1>

을지전망대에 올라
금강산을 바라본다.
아스라히 떠 있는 섬처럼
그대는 내게서 달아나고
나는 그대를 붙안으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가로놓인 철책을 어찌할 수 없구나.
새까만 나비 한 마리가
철책을 넘으려 애쓰지만
결국 넘지 못하고
하염없이 날개만 파닥인다.
금강산 일만이천 봉이며
만물상을 머리속 그리며
망원경을 들이대도
그대의 속살은 보이지 않고
내 이마엔 진땀만 밴다.
반백년 세월 동안
침묵을 지켜온 비무장지대 디엠지
성내천은 남과 북의 물을 모아
소양강으로 흐르는데
지금도 남녘과 북녘 초병들은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며
시뻘겋게 충혈된 눈엔
살기만이 번뜩이는구나. (1996.8.27)


<금강산2>

금강산
이름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산.

얼마나 아름답기에
시인묵객들의 찬양을 받았을까
금단의 산.

겨레의 핏방울
파랗게 빨갛게 물들이더니
갈 수 없는 산이 되었네.

반백년 비원으로
오늘 금강산에 오르네
가슴 벅차 눈물 흘리네.

망양대에 올라
비로봉을 바라보다
안개 속에 갇히고

아쉬움 달래고 내려오는길
다리가 팍팍한 건
겨레의 현실일까?(1999.9.30)

<금강산3>

꿈 속에서도 그리던 금강산
오늘에야 비로소 네 품에 안긴다
이렇게 올 수도 있는데
반세기를 기다려야 했던가
너를 만난 기쁨에
들떠 있다가도
가슴 속 치밀어 오르는 노여움을
어찌할 수가 없구나
끊어진 철길은 언제 이어지나
비무장지대 동서로 걸친
철조망은 언제쯤 걷히나
남쪽 관광객들은 날마다 수천명씩
네 순결한 흙가슴을 밟고
또 밟고 밟아
가슴에 피멍이 든 너를
자랑하고 또 자랑하겠지
순결한 네가 달라 벌이에 이용되고
탐욕에 눈이 먼 사람들은 너를
보는 것만으론 부족할 거야
네 순결한 흙가슴 돌가슴을
통째로 담아가고 싶은 욕망을 감춘 채
웃음을 흘리는 사람들
금강산을 찾아가지 마라
일만이천봉을 그대로 놔두자(1999.9.30)

<금강산4>

지금쯤 금강산에도
한가위 달이 둥실 떠 있겠지
상팔담에 달빛이 어리면
선녀들은 홀랑 벗고 목욕할 시간
나무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녀들은 목욕을 끝낼 줄 모르고
나무꾼의 굳어서 돌멩이가 되었다는
슬픈 전설을 오늘도
금강산의 달은 아는지 모르는지
상팔담에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을까?(1999.9.21)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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