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2006. 9. 23. 07:14

존경하는 진리탐구자께 보내는 3류 철학자의 두 번째 서신

선생님, 선생님께 장문의 장광설을 늘어놓은 후 선생님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걱정하고 고민했었는데 이렇게 답장을 통해 극찬을 들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서 극찬하신만큼 저는 그렇게 대단한 인간은 아닙니다. 아직 지식도 부족하고 읽은 책도 변변치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추천하신 <인간의 얼굴>이라는 책은 당장 서점에서 구입해서 일독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세상은 과연 살만한 곳인가?>라고 하는 아주 중요한 철학적 명제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과연 세상은 살만한 곳일까요? 저는 아주 단호하게 <그렇다!>라고 큰소리치고 싶습니다. 세상은 살만한 곳입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그렇습니다. 너무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세상이 살만한 이유는 철학과 음악, 그리고 여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미학의 탐구대상으로 철학과 음악, 그리고 여자를 택했습니다. 철학에 있어서는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에 그 범위에 제한이 거의 없고 음악으로는 <바하>를, 여자에 있어서는 여성학과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철학은 정말 해도 해도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습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철학이란 학문을 정복하기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그리고 음악에 있어서 저는 바하의 음악을 가장 좋아하는데 바하의 작품 중에서 <나의 기쁨이 되신 주>나 <토카타와 푸가 D단조>, <첼로협주곡>, <위풍당당행진곡>과 같은 곡은 선생님께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기회가 되시면 한번 들어보십시오. 저는 정말 훌륭한 음악이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음악이 모더니즘 미술처럼 가사로부터 해방을 선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슬릭>이라는 음악미학자가 음악의 독립선언을 했다는데 저 또한 그 견해에 동의합니다. 음악은 순수한 음들로만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선생님께서 기분이 우울하시거나 의기소침하실 때 혹은 아침에 기상하셨을 때 <위풍당당행진곡>을 들어보시길 권유합니다. 그 곡은 니체의 미학 그 자체입니다. 힘이 증대하는 느낌, 저항이 극복되었다는 느낌을 그 곡을 통해 느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니체가 주장한 삶의 자극제로서의 예술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클래식에 대해서는 그 세세한 이론까지는 모르지만 많이는 들어서 이제 귀에 익숙합니다. 클래식이야말로 가장 고상하고 가장 귀족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저는 <여자>에 관심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물으셨는데 저는 다음과 같은 논증을 제시합니다.

1. 우아한 것은 아름답다.

2. 여성미의 극치는 아름답다.

3. 우아하면서 여성적인 것은 아름답다.


1. 곡선은 디오니소스적, 여성적 선이다.

2. 직선은 아폴론적, 남성적 선이다.

3. 여성의 곡선은 남성의 직선보다 아름답다.

4. 여성적인 것이 남성적인 것보다 아름답다.

5. 곡선이 직선보다 아름답다.


1. <우아미>는 귀족적이며 아름답다.

2. <데카당스적 퇴폐미>는 지나치게 천박하지만 아름답다.

3. 우아한 미인의 도도함은 아름답다.

4. 퇴폐적 미인의 지나친 천박함과 음란함은 아름답다.

5. 최고의 미로 우아미와 퇴폐미 양자 모두를 동일한 자격으로 추대한다.

6. 우아미의 대표로 바로크 시대의 귀부인을, 데카당스적 퇴폐미의 대표로 현대의 소위 <오봉>들을 추대한다.

저는 아름다운 것이란 여성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논증이 비록 어설프고 남자와 여자라고 하는 性이나, 곡선과 직선이라고 하는 線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제 나름대로 논증을 제시하여 보았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는데 기초가 되는 논리학을 제 나름대로 공부한 후 어설프게 논증을 제시하여 본 것인데 제가 봐도 참 우스꽝스럽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추구하십니까. 선생님도 혹시 <철학자>는 아니십니까? 니체의 명언을 끝으로 두 번째 서신을 마치고자 합니다.

"철학자가 희귀한 종자라는 것은 필연적이고 아마도 바람직한 사실이다."

2002.5.22(수)

'그리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정윤 선생님께/ 2000.10.16.  (0) 2006.09.23
계란으로 바위를 쳐도 깨지는 법입니다 / 2002.3.23.  (0) 2006.09.23
아이들에게  (0) 2006.09.23
호만아, 반갑구나.  (0) 2006.09.11
금강산 답사기  (0) 2006.09.11
posted by 추월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