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한 상자
토요일(5/30) 오후 아이들 종례 후에 교무실에 와보니까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와 있었다. 단추를 눌러 통화해 보니까 우리 반 학부모였다. 나는 긴장했다. 혹시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는가 해서 말이다. 학부모는 자녀를 맡겨 놓고 부탁만 드려서 죄송하다고 하면서 교문에 와 있으니까 뵈었으면 한다고 했다. 나는 무슨 부탁을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부담스러운 것을 들고 온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워 하면서 교문으로 나갔다. 조금 있으니까 그 학부모가 스티로폼 상자를 들고 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의아해하면서 기다렸다. 학부모의 말씀이 시골에서 생선을 취급하는데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고 가져왔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그 학부모에게 그 생선 상자를 받으면 그 아이를 지도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 마음만은 받겠다고 이야기하고는 그 생선상자를 가지고 가시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 학부모는 그냥 상자를 가져가게 되면 뒤꼭지가 부끄럽다고 하면서 내 차의 트렁크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나는 얼른 학교 안으로 뛰어들어 와버렸다. 그 학부모가 뒤꼭지가 뜨겁든 말든 나는 피해버린 것이다.
나는 학기 초에 분명히 말했다. 선물을 가져오는 사람은 반성문을 써야 한다.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너희들이 나에게 주는 최대의 선물은 원하는 대학에 가는 것이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다. 작은 선물로 나를 귀찮게 하지 말라. 고3 아이들이라 다 알아들었다. 스승의 날에는 자기들의 사진을 넣은 책갈피를 하나씩 만들어서 선물이라고 가져왔었다. 그런데 그날(5/30) 느닷없이 생선 상자를 가져올 줄 미처 몰랐다.
물론 그 학부모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 선물을 받는 순간 나는 그 아이 뿐만 아니라 학급의 다른 아이들도 지도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말만 앞세우는 비열한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늘 강조했던 학행일치, 언행일치에 벗어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것만이라도 가르쳐주고 싶은데 말이다. 선물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런 욕망을 눌러버림으로써 공평무사하게 아이들을 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학부모로부터 선물이나 받는 그런 교사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이런 나를 너무 야박하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지키지 않는 나란 결코 나일 수 없는 걸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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