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젖흔들이와 종이묶음틀
내가 만든 말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종이묶음틀이고 다른 하나는 소젖흔들이다. 종이묶음틀은 스테이플러이고 소젖흔들이는 밀크셰이크다. 이 말을 만든 지가 10년이 넘는다. 우리말을 푸대접하는 풍조와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 이 낱말을 시험문제로 내기도 했으니까 꽤나 자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종이묶음틀이라는 말을 내가 쓰는 스테이플러에 적어 두었다. 그것을 쓰는 사람마다 그 말을 쓰기를 바라는 뜻에서였다. 스테이플러를 지철기, 박음쇠, 호치키스 따위로 부르기도 하지만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어색하지만 종이묶음틀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냥 피식 웃고 만다. 묶음틀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종이만이 아니라 헝겊도 묶고 하니까 말이다.
소젖흔들이는 정말 재미있는 말이다. 사람들은 토박이말을 너무나도 우습게 안다. 엄마젖이나 젖보다는 모유를 좋아한다. 젖소라고 부르면서도 소젖보다는 우유를 좋아한다. 우유보다는 밀크를 더 좋아한다. 토박이말은 가장 하층언어다. 영어는 귀족언어다. 밀크셰이크를 알 것이다. 우유에 설탕과 몇 가지를 섞어서 휘저은 음료다. 나는 이 음료의 이름을 소젖흔들이라고 고쳐 불렀다. 아이들은 배꼽을 쥐고 웃으면서도 수긍하려고 하지 않는다. 제과점이나 카페에서“ ‘소젖흔들이’ 한 잔 주세요”라고 말해보라. 주인은 이상한 놈 다 보겠다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당신은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그 주인이 수긍을 할런지도 모른다. 혹시 대박이 날지 누가 알겠는가?
소젖흔들이. ‘젖소부인 바람났네’라는 영화 덕분에 ‘젖’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야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도 문제긴 문제다. 유방이라고 해야 우아하고 젖통이라고 하면 천박한가? 아예 밀크탱크라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가?
이제는 조금 솔직해지자. 내 안의 언어사대주의를 고상하게 포장하지 말자, 이제는 영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자. 알면서도 쓰는 것과 모르면서 쓰는 것은 차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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