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산의 노변정담 2009. 9. 28. 21:18

장동에서 일곡동까지 걷다


어느 날인가 밤 10시 10분에 교문을 나서서 7번 버스를 타려고 금남로4가역으로 갔다. 버스정류장에는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기다리던 7번 버스가 왔지만 만원이었다. 나는 집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걸어가면서 보니까 7번 버스가 점점 한가해지고 있었다. 유동4거리에서 망설였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임동 전남방직 쪽으로 가고 있었다. 가다가 보니까 다리가 아팠다. 무등경기장 근처에서 집으로 가는 38번 버스가 보였다. 그 버스를 타고 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얼만데 하면서 집까지 걸어가기로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10여년 전까지 살았던 운암동 대주아파트(옛 숭일고 자리)를 지나고 태봉초등학교를 지나니 용봉지구의 화려한 불빛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저기에서 한 잔을 하고 갈거나. 아뿔싸! 지금까지 걸어왔는데 어서 길을 재촉하자고 다짐한다. 동현활어집을 지나고 현대아파트를 지나고 맥주를 만들어 파는 집을 지나니 용봉 아이씨다. 북부경찰서까지 온 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집이다. 고려고를 지난다. 국제고를 지나니 일곡병원의 불빛이 보인다. 일곡사거리 신호등에서 잠시 다리를 쉰다. 집에 들어가니 12시 5분이다. 다리가 많이 아프다. 내가 괜히 걸어왔나 싶었다. 하지만 두 시간을 걸어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 다음날도 걷기로 했다. 밤 8시에 학교를 출발하여 대인시장을 지나 동계천에서 구호전 방향으로 걸어간다. 일방로를 따라 걷다보니 북구청이 나온다. 전남대 후문을 지나고 대신파크 앞이다. 7번 버스가 자주 지나간다. 저 버스를 타면 집에 가는데, 잠시 마음이 흔들린다. 계속 걸어서 한전을 지나 오치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틀어서 북부경찰서 쪽으로 간다. 진미감자탕 건널목을 건너서 초원문고를 지나니 고려고다. 다리가 뻣뻣하다. 집에 가서 시원한 물을 한 잔 하자며 마음을 달랜다. 집에 도착하니까 9시 55분이다. 학교에서 집까지 2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 다음날 일어나니까 다리가 쑤신다. 이것도 다 차가 없으니까 가능한 것이다. 차가 있었으면 걸어가려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걸으면서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런 저런 생각도 해보았다.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도 없었다. 갑자기 끼어드는 차를 향해 욕을 해댈 일도 없었다. 그렇다. 걱정할 일이 없었다.

언제 또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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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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