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산의 노변정담 2009. 9. 28. 21:37

의자


의자에는 사람들이 앉아있다.

이것은 얼마나 낯익은 풍경인가?

사람들이 앉지 않은 텅빈 의자는 왠지 쓸쓸함을 자아낸다.

길을 지나가다가 아무도 앉아 있는 사람이 없는 커피숍을 볼 때

그리고 한참 북적일 시간인데도 앉아 있는 사람이 없는 식당을 볼 때

쓸쓸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불편한 마음이 앞선다.

미용실에서 수건을 둘러쓴 여인들이 의자에 가득 앉아 있을 때

영화관에서 벨이 울리고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빈자리가 하나도 없을 때

우리는 안심하게 된다.

이렇듯 의자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어야 한다.

교실에서도 의자가 비어 있으면 괜히 걱정이다.

저 의자의 주인은 무슨 일로 자리를 비웠을까?

출석을 확인하고 결석 사유를 알고 나서도 불안은 계속된다.


그런데 우리 반에는 의자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언제인가부터 아이들이 의자를 가져와서 책을 앉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았는데 이제는 10개가 넘는 것 같다.

다른 반 아이들은 종이 상자에 책을 담는데

우리 반 아이들은 참 이상하다.

아니 어떻게 의자에 책을 앉힐 줄 알았을까?

의자에는 사람만 앉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러고 보니까 의자에 앉아있는 사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땅히 놓일 자리를 잡지 못한 것들이

의자에 앉아 있곤 했었다.

그렇겠지.

아이들의 책들도 의자에 앉아서 쉬고 싶었겠지.

의자에 앉아 있는 책들이 이제는 편안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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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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