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산의 노변정담 2010. 5. 19. 13:27

시집과 사진 편지

스승의 날 1교시, 교실에 들어갔더니 교탁 위에 떡을 쌓아놓고는 촛불을 켜놓았다. 촛불을 끄고는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교탁 위에 놓인 사진 묶음과 책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책은 놀랍게도 아이들이 묶어낸 책이었다. 내 블로그에 있는 시를 손으로 써서 한 권의 책을 엮었다. 나는 그만 정신이 아찔하였다. 정신을 차리고 ‘담임선생’이란 시를 읽고는 황급히 교무실로 돌아왔다.

정신을 수습하고 끈으로 묶인 사진을 풀었다. 한껏 멋을 내서 찍은 독사진이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우연히 사진 뒷면을 보게 되었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사진 뒷면에 편지를 쓴 것이었다. 세상에 사진 뒷면에 편지를 쓰다니. 편지 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편지를 쓰다니 놀라운 일이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독사진을 찍고, 그 사진 뒤에 편지를 썼으리라. 백만금을 들인 선물보다 값진 스승의 날 선물이다. 사연마다 그 사진의 주인공의 고운 마음씨가 담겨 있다. 편지의 내용대로 이번 학년이 끝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으리라. 갈수록 메말라 가는 세태 속에서도 아이들은 이런 순수한 면을 지니고 있었구나.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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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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