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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11 :: 국어교사의 길 찾기
멀리 보기 2006. 9. 11. 10:43
국어교사의 길 찾기
김 성 중(전남대사대부고)


1. 시작하며

교사들은 학생들을 올바르게 가르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교단에 섭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대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할 때 기대했던 학생들과 지금 만나고 있는 학생들은 어떠한 차이가 있습니까?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납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걸으시겠습니까? 참된 교사의 길을 걷고자 하겠지요. 지금 전국에서 30만 명이 넘는 교사들이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만족하면서 교편을 잡고 있는 교사들은 몇 명이나 될까요? 교육학 책에서 배웠던 이론을 그대로 실천하는 교사는 몇 명이나 될까요? 입시위주의 교육풍토 속에서 교육의 본질에 따라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2. 참깨를 털 듯이 재미있는 학교를 그리며

국어교사들은 다른 교과의 교사들보다 학생들을 지도하기가 더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우리말과 우리 글을 잘 알고 잘 쓰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우리말이나 글로 된 자료가 너무나도 광범위하거든요. 그래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먼저, 김준태의 시를 함께 읽어봅시다.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김준태, [참깨를 털면서]<시인, 1970> 전문

우리네 삶에서 털어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스스로들 위안하고 살지만,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고고한 삶을 사는 사람은 얼마나 존경스럽습니까?

김준태의 [참깨를 털면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3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이 시는 그가 1970년에 《시인》이라는 잡지에 발표했던 것인데, 그의 첫시집『참깨를 털면서』(창작과 비평사, 1977)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이 시를 발표하고 얼마 뒤에 시인은 더러운 제국주의자의 전쟁인 베트남 전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가 전쟁의 비참함을 털어댑니다.

시인은 '희한하게도' 참깨를 털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세상사에서 느끼기 어려운 쾌감'을 참깨를 털면서 느끼는 것입니다. 이는 도시생활(대학생활)에서는 느끼지 못하고 시골에서만 느끼는 즐거움입니다. 시골은 시인에게 어머니의 품 같은 고향입니다. 도시의 삭막함이나 비정함이 아니라 푸근한 할머니의 인정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신바람이 나고, 참깨를 작신작신 두들겨 패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입니다. 물론 할머니의 꾸중을 들으면서 삶의 지혜를 배우기도 하지만, 시인은 참깨를 터는 것만으로도 세상사의 온갖 잡다한 번뇌를 잊어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이지요. 물론 시인은 이 시에서 '인간을 두들겨 패고 고문하고 쥐어짜서' 정보를 얻어내려는 사악한 정권의 음모를 알레고리 수법을 써서 고발하고 있기도 합니다.

도시는 인간을 비정하게 만듭니다. 시골의 논과 밭에서 느끼는 따뜻함이나 정직함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오직 효율성만을 지고의 가치인 양 우리들을 세뇌시키며 무한경쟁의 속도전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습니다. 우리의 학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 모순이 학교라는 공간에 들어와 있습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처럼 금방 성과가 드러나지 않으면 무능력한 교사나 뒤처진 학생으로 낙인을 찍어버립니다.

교실마다 들어와 있는 컴퓨터를 등에 업은 멀티시스템이 우리 교사들을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학급공동체를 이야기하는 교사는 시대에 뒤떨어진 촌놈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탐욕스런 자본의 논리가 아니라 인간의 체취가 풍겨나는 교실을 만들어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김준태는 '참깨를 털면서'라는 시에서 우리에게 신바람 나는 참깨털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털면 끝없이 쏟아지는 참깨는 우리를 고소하게 합니다. 전영택의 소설「화수분」에 나오는 화수분, 아무리 끄집어내도 끝없이 재물이 나온다는 단지처럼, 우리 교사들이 털어내야 할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 교육'이 아닐까요?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참깨처럼 쏟아지는' 정말로 우리 사회를 살맛 나게 하는 그 무엇으로 가득찬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을 우리들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꾸 물음표만 던지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김준태의 시에 나오는 할머니처럼, 서두르지 않으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들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으로 이 시를 읽습니다.


우리가 숨을 쉬며 사는 현대의 도시는 얼마나 삭막합니까? 우리는 얼마나 뜀박질하면서 하루해를 보내고 있습니까? 제동장치가 풀린 자동차처럼 무한 질주하는 문명속에서 인간존재의 의의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안타깝지만 산업화와 도시화가 우리 인간을 편안하게 하기보다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간다는 느낌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여유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 실업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학생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공부에 찌들고, 부모들은 명문대 진학말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우리 교사들은 엉거주춤해 있습니다. 학교가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성취감을 주어야 하는데......


3. 국어시간에

이제 국어수업시간입니다.

하나, 아이들이 왜 책을 읽어야하는지를 알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책을 읽는 교사의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고전 중심의 독서지도보다는 아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흥미를 잃어버린 뒤에는 아무리 좋은 책도 읽으려고 하지 않지요.

둘, 아이들이 글을 쓰는 것을 즐거워하도록 해야 합니다. 생활글을 쓰도록 해야 합니다. 시를 쓰도록 해야 합니다. 교사는 학생들의 생활을 시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교사가 시를 써서 학생들에게 읽어주면 학생들은 금방 시쓰기를 재미있어 합니다. 글을 쓸 때는 다음 사항에 유의하도록 지도하면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①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한다.
②메모하는 습관을 갖는다.
③내가 누구인지 물어본다.
④우주의 본질을 캐묻는다.
⑤사람살이에 애정을 갖는다.
⑥사건의 원인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⑥발로, 몸으로 세상을 경험한다.
⑦자신의 감정에 충실한다.
⑧비겁은 나의 적이다.
⑨양시론이나 양비론을 배격한다.
⑩끊임없이 독서하고 사색한다.
⑪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즐긴다.
⑫'왜?'가 습관이 되어야 한다.
⑬역사와 신화에 정통해야 한다.
⑭글을 쓰고, 고치고, 또 쓴다.

셋, 문제를 풀어주는 것도 정도껏 해야 하겠지요. 학생들을 믿어야 합니다. 인내하면서 학생들이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지요.

넷, 학생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해야 합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만 바라보면 학생들을 수업의 도구로 여길 수 있습니다.

다섯, 교사는 자신감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교사를 지치게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단련해야 하겠지요.

여섯, 교사의 본질은 수업하는 데에 있습니다. 수업을 준비하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승진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다면 참교사라고 할 수 없겠지요. 수업을 떠난 교사는 물을 떠난 물고기와 같습니다.

일곱, 진실을 말하지 않는 교사가 있겠습니까? '드레퓌스는 죄가 없다'고 외친 에밀 졸라를 생각해봅시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기꾼을 길러내는 일을 국어교사들이 할 리는 없겠지요?.

4. 마치며

교사가 실천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 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항상 시범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쓴 시 '바퀴를 굴리며'를 읽겠습니다.

굴렁쇠를 굴리던 시절
세상을 굴리고 싶었던 시절
둥근 지구가 둥글어서
굴렁쇠는 잘도 굴렀지.

왼종일 굴려도
또 굴리고 싶던 굴렁쇠
지금은 자동차 바퀴를 굴린다.

붕붕 시동을 걸고
변속기를 조작하면서
가속 페달을 밟으면
신기하게도 바퀴가 굴러간다.
혼자서 잘도 굴러간다.
제동페달을 밟을 때까지.

세상도 이와 같아서
미친 듯이 굴러갈 땐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빨간 신호등 앞에서는. <1996.6>

여러분들 모두 훌륭한 교사,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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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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