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기 2006. 9. 11. 10:54
[연극]오월의 신부 / 김성중

황지우 원작. 오성환 연출. 극단 푸른 연극 마을
때 : 2003년 5월 17-18 16:00, 19:00 4회 공연
곳 : 광주문화예술회관 소극장

오늘은 광주민중항쟁 23주년 기념일이다. 5.18이 국가기념일이 되고, 망월동에서 기념식을 하고, 대통령이 기념사를 읽고, 텔레비전이 전국으로 생방송을 하고, 너무나도 변했다. 폭도로 몰린 지 23년이 지난 지금, 겉으로는 광주의 명예가 회복된 것 같아 보이지만, 아직도 광주의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교육이 부족해서 그런가? 그럴까?

전남대사대부고 2학년 학생들이 [오월의 신부]라는 연극을 단체로 관람했다. 이들 중에는 연극을 처음 보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연극을 보여줄 생각을 한 문학담당 박안수 선생님의 그 열정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음악교사가 음악회에, 미술교사가 미술 전시회에 학생들을 인솔하고 다니는 것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듯이, 문학교사가 연극공연장에 학생들을 인솔하고 다니는 모습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전대사대부고의 박안수 선생님 너무 멋지다. 나는 박안수 선생님의 부탁을 받고 연극을 보러가는 입장이 되었고, 정확하게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알지 못했는데, 공연장에 와서야 비로소 4회에 걸쳐서 나누어 관람을 한다고 들었다. 나의 무관심에 스스로 화가 나기도 하고, 박안수 선생님께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나의 뻔뻔함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모처럼만에 연극을 보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연극을 외면했었다. 80년대에는 마당극 형식의 연극을 자주 보았는데, 90년대에 들어와서 연극을 본 기억이 없다. 나는 연극을 말할 자격도 없는 놈이다. 연극교사모임에서 주최한 연수에 참가했던 게 1999년 1월초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연극반을 만들어서 지도해볼까도 생각을 했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연극을 잊어버렸다. 아, 세월의 무상함이여! 고등학교 교사의 무지함이여! 애처로움이여!

무대에 불이 들어오면서 미친 허인호와 장요한 신부가 등장한다. 허인호는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찬송가를 부르며 사다리를 올라가고, 장요한 신부는 허인호가 장요한신부 자신의 순교의 기회를 빼앗았고, 허인호가 성인이 되었다며 갑옷 같은 자신의 사제복을 잡으며, 자괴감이 들어있는 목소리로 절규한다.

광주민중항쟁의 시작. 들불야학의 학생과 교사. 들불야학의 강학 김현식과 오민정 그리고 강혁. 들불야학의 학생 김혜숙과 그 친구들. 계엄군이 광주를 무자비하게 짓밟으며 혜숙이 죽어가고 자발적으로 시민군이 조직되고, 해방광주의 소식을 들불야학은 투사회보로 전하며 해방광주는 모두가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된다. 그것도 잠시 무기를 회수하라는 계엄군의 최후통첩과 함께 도청으로 계엄군이 진격해온다는 다급한 소식이 전해지고 시민군들은 불안에 떤다. 서로가 복면을 벗고 본명과 나이를 밝히면서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가 되며 최후의 만찬으로 삽립빵을 하나씩 나누어 먹는다. 그리고 최후의 유언을 남기면서 후회가 없는 삶을 살았노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강혁과 함께 떠났던 오민정이 도청으로 들어오고 김현식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둘은 포옹하며 시간이 없음을 절규한다. 이때 시민군들이 면사포를 준비해서 들어오며 두 사람의 결혼식이 시작된다. 장요한 신부의 주례로 말이다. 절박한 상황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오민정이 도청을 떠나고 잠시 후 계엄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시민군들은 모두 죽는다. 이 현장에서 살아남은 다리를 저는 허민호는 미쳐버렸고 허민호에게 떠밀려 빠져나온 장요한 신부는 끝없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갑옷 같은 사제복에 갇혀버린 불쌍한 자신을 저주하는 장요한 신부, 광주민중항쟁이 끝난 지 23년이 지난 뒤에도 동지들이 잠시 잠을 자고 있다고 믿고 있는 미친 허인호. 무대에 불이 환히 밝혀지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배우들이 인사한다. 힘차게 박수를 친다. 그리고 극장을 빠져 나온다.

오월의 신부. 장요한 신부와 오민정.

시를 읊고 있는 배우들이 낯설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극이라는 형식이 낯설지도 모른다. 원작을 읽어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빛의 면사포를 쓰고
새벽 창가에 서 있던 오월의 신부여!
우리, 눈부신 광주의 누이여!
저 바람재 푸른 새벽바람을 간직한 붉은 화관,
그대 이마에 얹지노니
먼 훗날 바람 불어 바람꽃 피면
남쪽으로 뻗은 비단길, 금남로에 뿌린 우리의 피,
부글부글 끓는 그 피, 바람꽃 되면,
우리가 눈뜨고 맞은 이 새벽의 피 묻은 말들, 전하라.
하여, 우리가 이 새벽에 쏟아낸 피,
불꽃 되고 빛 되시라!
그리하여 먼 훗날 넋 나간 이 역사,
믿을 수 없는 역사가 멍한 잠에서 깨어났을 때
혹시 아는가?
문득 눈에 띄는 이 새벽의 이름들,
불멸의 광채로 깜박거리고 있을지를.
-배우들이 읊은 시의 일부분-


언제 들어도 가슴이 아프고 저려오는 5.18 광주민중항쟁, 정부에서 부르는 5.18민주화운동. 23년이 지난 지금도 진실은커녕 폭도들의 난동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세력이 분명히 있다. 그렇게 믿고 싶고 믿어야 안심이 되는 세력이 있다. 슬프다. 5.18을 광주의 학생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다른 지역 학생들은 말해서 무엇하랴. 교사들의 책임이 클까?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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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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