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산의 시 2023. 4. 5. 16:24

[우리시 20233월호 김성중 신작 소시집](수정본)

 

1. 가래를 굴리는 시인 5

 

 

작년 가을에 시인은/

가래를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손의 감각을 살려보고 싶다고 했지요/

페이스북에서 만나 얼굴만 아는 시인/

새점을 치는 노인이 나오는 시집을 낸 시인에게/

나는 가래 50개를 택배로 보냈지요//

 

뇌수술을 한다고 들었어요/

나는 그이의 쾌유를 기원했어요/

페이스북에서 가끔 소식을 들었는데/

강신보 가래나무가 가래를 우수수 떨구던 어제/

문자메시지와 카톡으로 부고를 받았지요//

 

시인이 하늘나라로 떠나고/

강신보 가래의 계절 가을이 지나고/

십 몇 년 만에 폭설이 내리고 있는데/

시인은 하늘나라에서 가래를 굴리고 있겠지요/

나는 오늘도 강신보 가래나무 아래에서/

가래꽃이 필 봄날을 기다리며 서성이는데//

 

 

 

2. 지음

 

 

철학자 김수영을 펴낸 시인/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문예비평가/

페이스북에 네거리의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글을 올렸을 때/

그이가 페이스북 전화를 걸어와서 알게 된 사이/

전화로 몇 번 통화하면서 안부를 묻곤 했는데/

최근에 그이가 전화를 걸어와서는/

나를 지음이라고 부른다./

그이가 쓴 책을 읽으며/

나는 박수를 치고 또 무릎을 쳐대지 않을 수 없었다./

팔리지 않는 책을 쓰느라 10년은 늙어버렸다는/

그이의 탄식을 천리만리 떨어져서 들으며 마음이 아팠는데/

새로 청년 임화를 쓰는 작업에 몰두하는 걸 보면서/

나도 시작에 매진하리라 다짐하다가/

세밑에 문래동에 꼭 가야 할 일이 있어서/

고속도를 달리고 달려서 양화대교 건너/

한강시민공원 근처에 자동차를 세워두고/

경복궁 옆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신학철 전시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전에 가서/

낯익은 그이를 처음으로 만나서 굳세게 악수했다./

뒤풀이 장소인 서촌 어느 식당에서/

최근에 완성한 청년 임화 서문을 받았는데/

조선학 정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이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원하고 기원하였다./

종로3가역 근처에서 막걸릿잔이 비틀거리며/

수육을 집는 밤이 시나브로 깊어갔는데

만남의 감동이 내 왼손가락에 통증으로 남았다.//

 

 

 

3. 살구나무 옆에서 불을 피우며

 

 

 

장독대 앞 살구나무 옆에서/

곡정보에서 주워온 나무를 태운다//

 

땔나무는 가끔 비를 맞기도 했는데/

장을 달일 때 조금 태웠고/

코로나 퇴치를 위해 불을 피우기도 했다//

 

내 마음이 울적할 때/

처마 밑에 쌓아둔 땔나무를/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화덕에 넣고/

불을 피우며 불기운을 맞으며/

냉갈 냄새를 맡으며 활기를 되찾곤 했다//

 

살구나무 옆에서 불을 피운다/

내 마음의 찌꺼기를 태운다/

이 세상의 불합리를 태운다/

세상의 평화를 기원한다//

 

 

4. 백두산

 

 

천지의 파란 물이 따뜻하다./
하늘에서 환웅이 소나기를 타고 내려온다./
천지는 몸을 비틀고/
빗방울과 몸을 섞는다.//

발가벗은 곰 한 마리를 따라/

호랑이 한 마리가 천지로 뛰어들고/
나무꾼이 가죽을 챙겨간다.//

햇살이 비치면 천지는 시치미를 떼고/
발가숭이 곰이며 호랑이가 울며불며/
가죽옷을 돌려달라고 애원할 때/
환웅은 마늘 한 쪽과 쑥 한 줌을 던져주고/
구름 뒤로 숨는다.//

나는 소낙비에 흠뻑 젖어/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를 떠올리며/
윤동주의 시인을 따라간다.//

 

 

5. 추월산

 

 

거인은 담양호 푸른 물을 베게 삼아/

보리암 목탁 소리 자장가로 들으며/

밤이나 낮이나 잠만 자고 있다//

 

거인이 잠에서 깨어나는 날/

천지가 개벽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미륵불의 도래를/

기원하고 또 기원하는데//

 

강쟁들에서 바라보면 여유롭고/

월산들에서 바라보면 친근하고/

수양재 내려오며 바라보면 달려오는 듯하고/

추성리 청량골에서는 눈앞에 머리가 보이고/

금성산성에서 바라보면 곧 일어날 것 같은데//

 

내 할머니가 호랑이등을 타고/

상월마을에서 물통골을 지나/

보리암에 다녀왔다는 전설도 있고//

 

임진왜란 때/

김덕령 장군의 부인이/

보리암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는 산//

 

구상암이 있어 유네스코 지질공원이 된 산/

담양역사문화공원 잔디밭에 앉아서/

꿈을 꾸듯 바라보는/

무릉도원이 있는 산//

 

 

 

6. 강쟁리 남근석

 

 

우리 마을 서편 모정 앞 들판에/

언제부터 그이가 서 있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 그이 옆에 건조장이 들어섰고/

그이의 아랫도리를 시멘트로 발라버렸다/

건조장에 가로막힌 시선이 답답하여/

째려보고 쏘아 보아도/

건조장은 눈도 깜짝 않는데/

그이는 그 옛날을 떠올린다/

풍년 농사를 기원하던 발길이 이어지던 때/

모심을 받으며 행복했는데/

이제는 가끔 길냥이나 쳐다볼 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옛날을 잃어버렸다/

혹시 동티가 날까봐/

아직은 그대로 두고 있는데/

언제 망치를 맞을지 몰라/

그이는 잠을 못 이루고 야위어간다//

 

 

 

[시작노트]

 

광주에서 30년을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으니까 햇수로 5년째다. 이제 조금 도시의 물이 빠진 듯하다. 고향의 삶은 번거롭지 않고 하루가 무리 없이 지나간다. 우리 마을에서 나는 청년이다.

집을 나서면 바로 드넓은 강쟁들이다. 선돌길을 걸어서 곡정보로 가면 바로 영산강 자전거길이다. 수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곡정보를 지나서 강신보를 향해 달린다. 나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아니면 자동차를 타고 강신보로 가서 가래나무를 만난다. 가래나무 아래에서 가래나무와 대화를 나누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강신보 가래나무의 근황을 알린다. 가래나무에 꽃이 피고 지고 가래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고향살이가 무르익고 있다. 강신보 가래나무를 알게 된 것은 나에게 커다란 행운이다.

두곡길에는 아내의 삼밭이 있는데 사철 작물이 잘 자라고 있다. 이곳에서 담양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둘러본다. 북쪽에는 추월산과 산성산이 버티고 섰다. 왼쪽에는 병풍산과 삼인산이 병풍처럼 서 있다. 남쪽으로는 멀리 무등산이 보이고 가까이에는 면앙정이 있는 제월봉이 보인다. 그리고 동쪽에는 남산과 고비산 그리고 금산이 있다. 나는 산으로 둘러싸인 담양 강쟁리에서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다.

고향의 품은 아늑하다. 나는 이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페이스북에 기록한다. 그리고 시상을 정리하여 시를 쓴다. 내 고향 담양은 내 시작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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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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