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산의 시
2019. 1. 1. 20:34
통합 게시판
[김성중 11월 토론작품]:출발 외 26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1.23 조회수:2
댓글0
 출발(금시-등촌-2018-11).hwp
1.출발
김성중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행성이 잘 돌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그대와 어깨를 곁고 걸어간다는 것은
인생이 살 만하다는 것.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고
겨울나무가 이파리를 떨구듯
나는 이제 한 구비를 돌아서 간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
앞으로 걸어갈 길만 걱정할 뿐
길을 걸으며 만날 벗들이 궁금할 뿐
이제 나는 새로운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2.자유
내가 떠나도
살구꽃, 벚꽃, 산수유꽃은
피고 지고
살구가 열리고
버찌가 열리고
산수유가 열리고
살구가 익고
버찌가 익고
산수유가 익고
그리고
살구나무에 살구잼이 열리고
벚나무에 버찌젤리가 열리고
산수유나무에 산수유차가 열리고
내가 떠나도
산수유나무는 살구나무는 벚나무는
멋지게 살아갈 것이고
3.찔레나무 작전
강쟁리에서 네 번째 찔레나무 제거 작전을 펼쳤다. 몇 년 들여다보지 않았더니 찔레나무가 마당을 점령하고 덤불을 이루었다.
찔레나무 가시는 강하다. 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끼고 찔레나무를 잘라내는데 계속 내 손을 가시가 찌른다. 하지만 나도 독하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새들의 천국이었을 찔레덤불을 제거하게 되어 새들에게 살짝 미안하다. 그동안 찔레덤불을 보면서 혀를 찼을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제는 면목이 서겠다.
4.시를 쓰기 위한 메모
.종로 고시원 불
.양구 전방 초소(GP) 총상 일병 후송중 사망
.삼바 분식회계-삼성바이오로직스
.찔레덤불
.쥐똥나무-새들이 싼 똥
.파라칸사-빨간 열매가 매혹적이다.
.남천:이파리가 물드는 상록수, 붉게 익은 열매가 아름다운 나무. 조경수로 심는다. 울타리로 심어도 좋다. 열매를 말려서 달여 먹으면 감기 예방에 좋다고 한다. 나무는 알면 알수록 매력이 있다.
.느릅나무: 관방제림 끄트머리에서 만나다. 숱한 열매를 달고서 당당하게 서 있다. 약으로 쓰려고 껍질을 벗기고, 뿌리를 뽑이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수난을 당하는 나무. 전대사대부고 뒤에도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광주지하철 2호선:달랑 2칸 달고 달리는 지하철, 적자가 눈에 뻔한데도 추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얀 코끼리가 아닌가?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는 사람이 1일 몇 명인가?
5.산수유까기
산수유열매에서 씨를 빼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산수유열매를 일주일 정도 꾸들꾸들하게 말린 다음에 열매를 손바닥에서 살짝 돌린 뒤에 꼭지를 살짝 딴 뒤에 반대쪽 꼭지를 누르면 신기하게도 씨가 쑥 빠져 나온다.
산수유열매를 2-3일 말려서 꼭지를 살짝 따고 반대쪽 꼭지를 눌러도 씨가 쉽게 빠져 나온다. 산수유껍질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마르면 산수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겠지만 말이다.
산수유나무 한 그루에서 수확하는 산수유 열매가 몇 개나 될까?
파리똥나무 열매보다 작은 산수유열매 씨를 빼려면 인내의 화신이 되어야 한다.
6.일곡 파초의 안부
일곡배수지 가는 길 자미원 식당 건너편에서 일곡동의 명물 파초가 늦가을을 즐기고 있다. 겨울에 파초의 줄기는 얼어버린다. 구근은 추운 겨울을 지내고 따뜻한 봄에 새순을 밀어올린다. 온실이나 실내라면 겨울에도 푸르른 파초를 볼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이게 일곡 파초의 운명이다.
예전에 전남사대부고의 얼어버린 파초를 보면서 울먹이는 시를 썼는데 어느 시인으로터 감정의 과잉이라는 호된 비판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스러지는 자연을 보면서 겸허해질 일이다.
7.화살나무 열매
고서벌 곧서농원 쥔장이
일곡동으로 화살을 쏘았는데
쏜살 같이 빨간 화살촉이 도착했다.
나는 누구를 겨냥해서
화살을 날릴까.
빨간 화살나무열매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곧서:考ㄷ書
8.왜요?
네 자리로 돌아가라
왜요?
네 자리가 어디냐?
요-기요.
손가락으로 교실 바닥을 가리킨다.
어디?
요-기.
바로 뒤에 학생이 앉아 있다.
1학기말 시험이 끝난 다음날
자습 안 하냐는 학생들
수업을 진행하려는 교사
학생들은 짜증이 나 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네 자리가 어디?
-저-기요.(맨 뒤)
네 자리로 돌아가라.
-왜요?
한숨만 쉬는 선생
9.나목
이파리를 떨군
교정의 나무들이
홀가분하다.
수능시험장 준비로 분주한
교사 안과는 다르게
나무들은 느긋하다.
어디선가 깍깍대는
까치의 울음소리도
한가롭다.
내 마음도
한없이 늘어졌다.
10.담세정
늦가을 비를 맞으며
담양 관방제림 아래
담세정이 나를 반긴다.
정자 앞 이파리를 다 떨궈버린
은행나무가 홀가분하다.
가을은 홀로움의 계절이다.
나를 직시하는 시간이다.
가을바람이 내 영혼을 맑힌다.
11.산수유
이른 봄에 노란 꽃망울 좁쌀만 하더니
따스한 봄볕 받아 노란 병아리로 깨어나
온 세상을 노랗게 물들인다.
노오란 꽃이 절정에 이를 때
파릇한 이파리 빼꼼 고개를 내민다.
벌과 나비들의 바지런한 날갯짓 뒤에
눈꼽 만한 열매가 맺혀서
여름날 폭풍우를 견디며
무더위 폭염을 양분 삼아
매미 울음소리를 응원가로 들으며
무던히도 열매를 키웠다.
산수유,
시월이 가는 게 아쉬워서
잘 익은 고추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12.종로, 재림예수
종로5가에서 용산역까지 걸었다.
광장시장, 세운상가를 지나
종묘에 들러서 왕들의 위엄을 보았다.
종묘 근처에서 짜장면을 먹고서
탑골 공원에 들렀다가
국보2호 원각사지 10층석탑을 구경했다.
차없는 종로거리를 걸어서
교보문고에 들렀지.
덕수궁 대한문에서 가을비를 맞기도 했다.
서울시청 부근에서 "재림예수를 믿으라"는 광신도들을 만났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살아서 가는 곳이라고 한다.
피켓 속 재림예수를 보니 한국인이다.
13.징계혐의자로 살아가기
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
징계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사람.
학교에서 사실확인서를 쓰고
감사관실에서 조사를 받고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여
최후진술을 하였다.
나와 같은 불행한 교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이 사건을 잘 정리하여 학교에 사례로 전파하기 바란다.
점수로만 남은 학교를 바꾸어야 한다.
나는 징계혐의자로
두 달을 살아왔다.
14.교무실 산수유
운동장가에서 따온
산수유가 교무실 창가에서
재미진 표정으로 마르고 있다.
교무실에 들르는 사람들은 눈동자가 커지고
산수유가 마르는 교무실은
산수유 향기로 가득하다.
1학년실 사람들이
항꾸네 씨를 빼서 말린
산수유차는 어떤 맛일까?
이 가을 교무실을
빨갛게 물들이며
항꾸네 씨를 뺀 산수유가
빠알갛게 마르고 있다.
15.남자 교직원 모임
오늘은 남자들이 만나는 날
학교에서 소수족으로 밀려난
남자들이 회포를 푸는 날
일이 바빠서 만날 짬도 못냈지
학교 앞 선술집이 그립기도 했지
퇴근길이 바빠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지
떡애기 키우느라 정신줄 놓았지
육아독박 무서운 말이 될 줄 몰랐지
오늘은 남자들이 만나는 날
지금껏 외로움 떨쳐내는 날
술잔을 부딪치면 도타운 정이 솟구치고
술김에 툭툭 부딪는 어깨가 정다웁고
오늘은 서로서로 에너지가 되는 날
16.고라니 새끼 한 마리
단오반텃밭에 물을 주고 있으니까 눈앞에 무엇인가가 잽싸게 지나간다. 가만히 보니까 고라니 새끼다. 족구를 하던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언덕으로 올라서자 고라니는 울타리 주변을 달리며 울타리를 넘어가려고 한다. 결국 울타리를 넘지 못 한 고라니는 급식실 쪽 울타리 쪽으로 달려간다. 조금 있으니까 다시 텃밭 쪽으로 달려 왔다가 다시 급식실 쪽으로 달려갔다. 고라니는 지금 제 정신이 아니다. 나는 고라니 새끼가 남부대쪽으로 달아나기를 바라며 교무실로 올라 왔다.
교무실에서 고라니 얘기를 했더니 어떤 선생님이 행정실에 구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한다. 고라니가 교문을 거쳐서 나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걱정이다. 도로 쪽으로 나간다면 자동차에 치이기 십상인데 말이다. 고라니가 무사히 숲으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17.집주인 고양이
모처럼만에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더니 고양이가 마루에 떡하니 앉아서 주인이 방문객을 맞듯이 나를 쳐다본다. 대문이 열리도록 파리똥나무를 톱으로 베어내고 보았더니 그 위풍당당한 고양이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몇 년 동안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살았던 고양이에게 나는 침입자가 분명하다. 나는 쥐똥나무 가지를 잘라내고 찔레나무를 베어내고 담쟁이 넝쿨을 걷어내면서 대충 길을 텄다. 마당을 점령해버린 찔레나무와 쥐똥나무를 하나씩 베어내다 보면 텃밭을 일굴 날이 오리라.
뭐든 그대로 두면 자연이 돼버린다. 집주인 행세를 해온 고양이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18.우측통행
조례에 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급하게 올라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는 계단 난간쪽으로 우측통행을 하며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있는데 올라오던 어떤 남학생이 내 발을 밟았다. 그 학생은 좌측통행을 하고 있었다. 그 학생(이름을 알지만)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똑바로 걸어라"고 말하고서는 교실로 급히 걸어갔다.
우측통행은 중요한 규칙이다. 복도에서 학생과 부딪쳐 부웅 날아가 버린 선생도 있었다. 그 선생은 쉬는 시간에는 복도를 걷지 않는다. 선생과 부딪쳐 골절상을 입은 학생도 있다.
19.얼굴 흉터
내 얼굴에는 흉터가 있다. 내가 이등병일 때 생긴 흉터다. 국가가 내 흉터를 지워줘야 한다.
내가 GOP 철책에서 보초를 설 때이다. 잠을 자다가 깨서 후반야 보초를 서러 가려고 교통호를 통해서 초소로 이동하는 도중에 발을 헛디뎌 넘어져서 교통호를 지탱하는 철항(U자형 쇠말뚝)에 얼굴을 찧었다. 나는 순간 정신을 잃었고 왼쪽 눈밑이 철항에 부딪쳐 찢어졌고 피가 철철 흘렀다. 나는 왼쪽 눈이 철항에 찔려서 실명을 한 줄 알았다. 다행이 눈을 떠보니 앞이 보였다. 위생병이 달려오고 소초에 비상이 걸렸다. 조선대 생물과 출신 위생병이 눈 밑 상처를 꿰맸다. 마취도 하지 않고 열한 바늘을 꿰맸다. 나는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1982년 봄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내 얼굴의 흉터는 세월이 흘러서 희미해졌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그 때의 아찔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20.핀셋과 배추벌레
아침에 단오반텃밭에서
배춧잎 위에 숨어 있는
애벌레를 발견하고서는
집에서 가져온 핀셋으로 녀석을
집어서 흙바닥에 던지고 나서
신발로 짓뭉개버렸다.
오늘 아침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졌다.
21.찌부까다
며칠 전 초등학교동창회에 가서 물어보았다. 찌부까다를 아느냐고. 전국에서 모인 동창생들 모두 알고 있었다. 찌부까다는 꼬집다의 담양 사투리다.
나는 추월산자락에 살다가 읍내로 전학을 갔다. 어떤 여학생이 꼬집길래 "너 왜 꼬집냐?"고 했더니 아이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쟤는 찌부까다도 모른다“고 하면서.
나는 어려서부터 추월산자락에서 표준어가 무엇인지를 생각했었다.
22.왜 나만 갖고 그래요!
무언가 잘못을 지적하면 학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요?" "나"만 그런게 아닌데 왜 "나"만 지적하느냐는 항변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나"만 재수가 없다는 얘기다. 많은 학생들이 교사의 눈을 속이며 규칙을 어기고 있다는 얘기다. 어쩌다가 학교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나"만 알고 "너"나 "우리"는 모르는 아이들이 주류인 학교풍경이다.
23.지금은 잊혀진
구라파-유럽
와사등-가스등
정말-덴마크
화란-네덜란드
토이기-터키
이태리-이탈리아
서반아-스페인
포두아-포르투칼
덕국,독일-도이칠란드
법국,불란서-프랑스
영국-잉글랜드
애란-아일랜드
나성-로스앤젤레스
화성돈-워싱턴
서서-스위스
서전-스웨덴
오지리-오스트리아
24.부여 정림사지
사비성이 함락되고 불타버린 잿더미에
정림사 오층석탑만 남았다.
치욕의 세월을 견디며 서 있는
저 오층석탑에는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했다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네.
하늘은 푸르디푸르기만 한데
망국의 서울 사비성은 오늘도
슬픔에 젖어 있는 듯
부여의자를 부르고 있다.
25.낙화암에 올라
부소산성을 오르다가 살짝 내려가
천사백년 백제의 한 서린 낙화암
망국의 궁인들 쫓기다 몸을 던진
작은 바위
난간을 붙잡고 그 바위 위에 서서
그날 여인들의 눈빛을 떠올린다.
당나라 소정방 군대가 사비성을 짓밟을 때
터져나오는 울음 제대로 울지도 못 했으리라.
단풍이 붉게 물든 부소산성 낙화암에서
백마강 푸른 물에 꽃잎처럼 뚝뚝 떨어지던
백제여인들의 절규를 듣는다.
26.줄탁동시*(10.22)
너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함께 살 수 있다면
나는 너를 기다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네.
네가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한동안 우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고
파란 가을하늘처럼 웃을 수 있겠네.
네가 오지 않아도
나는 네가 온 것처럼 생각하려네.
*시교육청 2층 상황실 앞 대회의실에 걸려 있는 "줄탁동시" 액자다. 징계위원회에 출석하기 전에 대기하면서 보았다.
27.수업자료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
첨단고 산수유 열매는
계절에 어울리는 수업자료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산수유 열매를 나눠주고
맛을 보라고 하면
매우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씨까지 우두둑 씹다가는
정신없이 내뱉으며 세면대로
달려가서 입을 헹구는 학생
오만상을 쓰면서
보기에는 맛있어 보이는데
겉만 보고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학생
신맛 쓴맛 떫은맛 단맛을 즐기며
미소 짓는 학생
산수유 열매는
멋진 수업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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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11월 토론작품]:출발 외 26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1.23 조회수:2
댓글0
 출발(금시-등촌-2018-11).hwp
1.출발
김성중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행성이 잘 돌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그대와 어깨를 곁고 걸어간다는 것은
인생이 살 만하다는 것.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고
겨울나무가 이파리를 떨구듯
나는 이제 한 구비를 돌아서 간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
앞으로 걸어갈 길만 걱정할 뿐
길을 걸으며 만날 벗들이 궁금할 뿐
이제 나는 새로운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2.자유
내가 떠나도
살구꽃, 벚꽃, 산수유꽃은
피고 지고
살구가 열리고
버찌가 열리고
산수유가 열리고
살구가 익고
버찌가 익고
산수유가 익고
그리고
살구나무에 살구잼이 열리고
벚나무에 버찌젤리가 열리고
산수유나무에 산수유차가 열리고
내가 떠나도
산수유나무는 살구나무는 벚나무는
멋지게 살아갈 것이고
3.찔레나무 작전
강쟁리에서 네 번째 찔레나무 제거 작전을 펼쳤다. 몇 년 들여다보지 않았더니 찔레나무가 마당을 점령하고 덤불을 이루었다.
찔레나무 가시는 강하다. 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끼고 찔레나무를 잘라내는데 계속 내 손을 가시가 찌른다. 하지만 나도 독하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새들의 천국이었을 찔레덤불을 제거하게 되어 새들에게 살짝 미안하다. 그동안 찔레덤불을 보면서 혀를 찼을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제는 면목이 서겠다.
4.시를 쓰기 위한 메모
.종로 고시원 불
.양구 전방 초소(GP) 총상 일병 후송중 사망
.삼바 분식회계-삼성바이오로직스
.찔레덤불
.쥐똥나무-새들이 싼 똥
.파라칸사-빨간 열매가 매혹적이다.
.남천:이파리가 물드는 상록수, 붉게 익은 열매가 아름다운 나무. 조경수로 심는다. 울타리로 심어도 좋다. 열매를 말려서 달여 먹으면 감기 예방에 좋다고 한다. 나무는 알면 알수록 매력이 있다.
.느릅나무: 관방제림 끄트머리에서 만나다. 숱한 열매를 달고서 당당하게 서 있다. 약으로 쓰려고 껍질을 벗기고, 뿌리를 뽑이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수난을 당하는 나무. 전대사대부고 뒤에도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광주지하철 2호선:달랑 2칸 달고 달리는 지하철, 적자가 눈에 뻔한데도 추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얀 코끼리가 아닌가?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는 사람이 1일 몇 명인가?
5.산수유까기
산수유열매에서 씨를 빼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산수유열매를 일주일 정도 꾸들꾸들하게 말린 다음에 열매를 손바닥에서 살짝 돌린 뒤에 꼭지를 살짝 딴 뒤에 반대쪽 꼭지를 누르면 신기하게도 씨가 쑥 빠져 나온다.
산수유열매를 2-3일 말려서 꼭지를 살짝 따고 반대쪽 꼭지를 눌러도 씨가 쉽게 빠져 나온다. 산수유껍질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마르면 산수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겠지만 말이다.
산수유나무 한 그루에서 수확하는 산수유 열매가 몇 개나 될까?
파리똥나무 열매보다 작은 산수유열매 씨를 빼려면 인내의 화신이 되어야 한다.
6.일곡 파초의 안부
일곡배수지 가는 길 자미원 식당 건너편에서 일곡동의 명물 파초가 늦가을을 즐기고 있다. 겨울에 파초의 줄기는 얼어버린다. 구근은 추운 겨울을 지내고 따뜻한 봄에 새순을 밀어올린다. 온실이나 실내라면 겨울에도 푸르른 파초를 볼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이게 일곡 파초의 운명이다.
예전에 전남사대부고의 얼어버린 파초를 보면서 울먹이는 시를 썼는데 어느 시인으로터 감정의 과잉이라는 호된 비판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스러지는 자연을 보면서 겸허해질 일이다.
7.화살나무 열매
고서벌 곧서농원 쥔장이
일곡동으로 화살을 쏘았는데
쏜살 같이 빨간 화살촉이 도착했다.
나는 누구를 겨냥해서
화살을 날릴까.
빨간 화살나무열매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곧서:考ㄷ書
8.왜요?
네 자리로 돌아가라
왜요?
네 자리가 어디냐?
요-기요.
손가락으로 교실 바닥을 가리킨다.
어디?
요-기.
바로 뒤에 학생이 앉아 있다.
1학기말 시험이 끝난 다음날
자습 안 하냐는 학생들
수업을 진행하려는 교사
학생들은 짜증이 나 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네 자리가 어디?
-저-기요.(맨 뒤)
네 자리로 돌아가라.
-왜요?
한숨만 쉬는 선생
9.나목
이파리를 떨군
교정의 나무들이
홀가분하다.
수능시험장 준비로 분주한
교사 안과는 다르게
나무들은 느긋하다.
어디선가 깍깍대는
까치의 울음소리도
한가롭다.
내 마음도
한없이 늘어졌다.
10.담세정
늦가을 비를 맞으며
담양 관방제림 아래
담세정이 나를 반긴다.
정자 앞 이파리를 다 떨궈버린
은행나무가 홀가분하다.
가을은 홀로움의 계절이다.
나를 직시하는 시간이다.
가을바람이 내 영혼을 맑힌다.
11.산수유
이른 봄에 노란 꽃망울 좁쌀만 하더니
따스한 봄볕 받아 노란 병아리로 깨어나
온 세상을 노랗게 물들인다.
노오란 꽃이 절정에 이를 때
파릇한 이파리 빼꼼 고개를 내민다.
벌과 나비들의 바지런한 날갯짓 뒤에
눈꼽 만한 열매가 맺혀서
여름날 폭풍우를 견디며
무더위 폭염을 양분 삼아
매미 울음소리를 응원가로 들으며
무던히도 열매를 키웠다.
산수유,
시월이 가는 게 아쉬워서
잘 익은 고추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12.종로, 재림예수
종로5가에서 용산역까지 걸었다.
광장시장, 세운상가를 지나
종묘에 들러서 왕들의 위엄을 보았다.
종묘 근처에서 짜장면을 먹고서
탑골 공원에 들렀다가
국보2호 원각사지 10층석탑을 구경했다.
차없는 종로거리를 걸어서
교보문고에 들렀지.
덕수궁 대한문에서 가을비를 맞기도 했다.
서울시청 부근에서 "재림예수를 믿으라"는 광신도들을 만났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살아서 가는 곳이라고 한다.
피켓 속 재림예수를 보니 한국인이다.
13.징계혐의자로 살아가기
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
징계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사람.
학교에서 사실확인서를 쓰고
감사관실에서 조사를 받고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여
최후진술을 하였다.
나와 같은 불행한 교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이 사건을 잘 정리하여 학교에 사례로 전파하기 바란다.
점수로만 남은 학교를 바꾸어야 한다.
나는 징계혐의자로
두 달을 살아왔다.
14.교무실 산수유
운동장가에서 따온
산수유가 교무실 창가에서
재미진 표정으로 마르고 있다.
교무실에 들르는 사람들은 눈동자가 커지고
산수유가 마르는 교무실은
산수유 향기로 가득하다.
1학년실 사람들이
항꾸네 씨를 빼서 말린
산수유차는 어떤 맛일까?
이 가을 교무실을
빨갛게 물들이며
항꾸네 씨를 뺀 산수유가
빠알갛게 마르고 있다.
15.남자 교직원 모임
오늘은 남자들이 만나는 날
학교에서 소수족으로 밀려난
남자들이 회포를 푸는 날
일이 바빠서 만날 짬도 못냈지
학교 앞 선술집이 그립기도 했지
퇴근길이 바빠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지
떡애기 키우느라 정신줄 놓았지
육아독박 무서운 말이 될 줄 몰랐지
오늘은 남자들이 만나는 날
지금껏 외로움 떨쳐내는 날
술잔을 부딪치면 도타운 정이 솟구치고
술김에 툭툭 부딪는 어깨가 정다웁고
오늘은 서로서로 에너지가 되는 날
16.고라니 새끼 한 마리
단오반텃밭에 물을 주고 있으니까 눈앞에 무엇인가가 잽싸게 지나간다. 가만히 보니까 고라니 새끼다. 족구를 하던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언덕으로 올라서자 고라니는 울타리 주변을 달리며 울타리를 넘어가려고 한다. 결국 울타리를 넘지 못 한 고라니는 급식실 쪽 울타리 쪽으로 달려간다. 조금 있으니까 다시 텃밭 쪽으로 달려 왔다가 다시 급식실 쪽으로 달려갔다. 고라니는 지금 제 정신이 아니다. 나는 고라니 새끼가 남부대쪽으로 달아나기를 바라며 교무실로 올라 왔다.
교무실에서 고라니 얘기를 했더니 어떤 선생님이 행정실에 구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한다. 고라니가 교문을 거쳐서 나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걱정이다. 도로 쪽으로 나간다면 자동차에 치이기 십상인데 말이다. 고라니가 무사히 숲으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17.집주인 고양이
모처럼만에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더니 고양이가 마루에 떡하니 앉아서 주인이 방문객을 맞듯이 나를 쳐다본다. 대문이 열리도록 파리똥나무를 톱으로 베어내고 보았더니 그 위풍당당한 고양이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몇 년 동안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살았던 고양이에게 나는 침입자가 분명하다. 나는 쥐똥나무 가지를 잘라내고 찔레나무를 베어내고 담쟁이 넝쿨을 걷어내면서 대충 길을 텄다. 마당을 점령해버린 찔레나무와 쥐똥나무를 하나씩 베어내다 보면 텃밭을 일굴 날이 오리라.
뭐든 그대로 두면 자연이 돼버린다. 집주인 행세를 해온 고양이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18.우측통행
조례에 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급하게 올라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는 계단 난간쪽으로 우측통행을 하며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있는데 올라오던 어떤 남학생이 내 발을 밟았다. 그 학생은 좌측통행을 하고 있었다. 그 학생(이름을 알지만)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똑바로 걸어라"고 말하고서는 교실로 급히 걸어갔다.
우측통행은 중요한 규칙이다. 복도에서 학생과 부딪쳐 부웅 날아가 버린 선생도 있었다. 그 선생은 쉬는 시간에는 복도를 걷지 않는다. 선생과 부딪쳐 골절상을 입은 학생도 있다.
19.얼굴 흉터
내 얼굴에는 흉터가 있다. 내가 이등병일 때 생긴 흉터다. 국가가 내 흉터를 지워줘야 한다.
내가 GOP 철책에서 보초를 설 때이다. 잠을 자다가 깨서 후반야 보초를 서러 가려고 교통호를 통해서 초소로 이동하는 도중에 발을 헛디뎌 넘어져서 교통호를 지탱하는 철항(U자형 쇠말뚝)에 얼굴을 찧었다. 나는 순간 정신을 잃었고 왼쪽 눈밑이 철항에 부딪쳐 찢어졌고 피가 철철 흘렀다. 나는 왼쪽 눈이 철항에 찔려서 실명을 한 줄 알았다. 다행이 눈을 떠보니 앞이 보였다. 위생병이 달려오고 소초에 비상이 걸렸다. 조선대 생물과 출신 위생병이 눈 밑 상처를 꿰맸다. 마취도 하지 않고 열한 바늘을 꿰맸다. 나는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1982년 봄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내 얼굴의 흉터는 세월이 흘러서 희미해졌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그 때의 아찔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20.핀셋과 배추벌레
아침에 단오반텃밭에서
배춧잎 위에 숨어 있는
애벌레를 발견하고서는
집에서 가져온 핀셋으로 녀석을
집어서 흙바닥에 던지고 나서
신발로 짓뭉개버렸다.
오늘 아침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졌다.
21.찌부까다
며칠 전 초등학교동창회에 가서 물어보았다. 찌부까다를 아느냐고. 전국에서 모인 동창생들 모두 알고 있었다. 찌부까다는 꼬집다의 담양 사투리다.
나는 추월산자락에 살다가 읍내로 전학을 갔다. 어떤 여학생이 꼬집길래 "너 왜 꼬집냐?"고 했더니 아이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쟤는 찌부까다도 모른다“고 하면서.
나는 어려서부터 추월산자락에서 표준어가 무엇인지를 생각했었다.
22.왜 나만 갖고 그래요!
무언가 잘못을 지적하면 학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요?" "나"만 그런게 아닌데 왜 "나"만 지적하느냐는 항변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나"만 재수가 없다는 얘기다. 많은 학생들이 교사의 눈을 속이며 규칙을 어기고 있다는 얘기다. 어쩌다가 학교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나"만 알고 "너"나 "우리"는 모르는 아이들이 주류인 학교풍경이다.
23.지금은 잊혀진
구라파-유럽
와사등-가스등
정말-덴마크
화란-네덜란드
토이기-터키
이태리-이탈리아
서반아-스페인
포두아-포르투칼
덕국,독일-도이칠란드
법국,불란서-프랑스
영국-잉글랜드
애란-아일랜드
나성-로스앤젤레스
화성돈-워싱턴
서서-스위스
서전-스웨덴
오지리-오스트리아
24.부여 정림사지
사비성이 함락되고 불타버린 잿더미에
정림사 오층석탑만 남았다.
치욕의 세월을 견디며 서 있는
저 오층석탑에는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했다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네.
하늘은 푸르디푸르기만 한데
망국의 서울 사비성은 오늘도
슬픔에 젖어 있는 듯
부여의자를 부르고 있다.
25.낙화암에 올라
부소산성을 오르다가 살짝 내려가
천사백년 백제의 한 서린 낙화암
망국의 궁인들 쫓기다 몸을 던진
작은 바위
난간을 붙잡고 그 바위 위에 서서
그날 여인들의 눈빛을 떠올린다.
당나라 소정방 군대가 사비성을 짓밟을 때
터져나오는 울음 제대로 울지도 못 했으리라.
단풍이 붉게 물든 부소산성 낙화암에서
백마강 푸른 물에 꽃잎처럼 뚝뚝 떨어지던
백제여인들의 절규를 듣는다.
26.줄탁동시*(10.22)
너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함께 살 수 있다면
나는 너를 기다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네.
네가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한동안 우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고
파란 가을하늘처럼 웃을 수 있겠네.
네가 오지 않아도
나는 네가 온 것처럼 생각하려네.
*시교육청 2층 상황실 앞 대회의실에 걸려 있는 "줄탁동시" 액자다. 징계위원회에 출석하기 전에 대기하면서 보았다.
27.수업자료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
첨단고 산수유 열매는
계절에 어울리는 수업자료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산수유 열매를 나눠주고
맛을 보라고 하면
매우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씨까지 우두둑 씹다가는
정신없이 내뱉으며 세면대로
달려가서 입을 헹구는 학생
오만상을 쓰면서
보기에는 맛있어 보이는데
겉만 보고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학생
신맛 쓴맛 떫은맛 단맛을 즐기며
미소 짓는 학생
산수유 열매는
멋진 수업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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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11월 토론작품]:출발 외 26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1.23 조회수:2
댓글0
 출발(금시-등촌-2018-11).hwp
1.출발
김성중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행성이 잘 돌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그대와 어깨를 곁고 걸어간다는 것은
인생이 살 만하다는 것.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고
겨울나무가 이파리를 떨구듯
나는 이제 한 구비를 돌아서 간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
앞으로 걸어갈 길만 걱정할 뿐
길을 걸으며 만날 벗들이 궁금할 뿐
이제 나는 새로운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2.자유
내가 떠나도
살구꽃, 벚꽃, 산수유꽃은
피고 지고
살구가 열리고
버찌가 열리고
산수유가 열리고
살구가 익고
버찌가 익고
산수유가 익고
그리고
살구나무에 살구잼이 열리고
벚나무에 버찌젤리가 열리고
산수유나무에 산수유차가 열리고
내가 떠나도
산수유나무는 살구나무는 벚나무는
멋지게 살아갈 것이고
3.찔레나무 작전
강쟁리에서 네 번째 찔레나무 제거 작전을 펼쳤다. 몇 년 들여다보지 않았더니 찔레나무가 마당을 점령하고 덤불을 이루었다.
찔레나무 가시는 강하다. 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끼고 찔레나무를 잘라내는데 계속 내 손을 가시가 찌른다. 하지만 나도 독하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새들의 천국이었을 찔레덤불을 제거하게 되어 새들에게 살짝 미안하다. 그동안 찔레덤불을 보면서 혀를 찼을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제는 면목이 서겠다.
4.시를 쓰기 위한 메모
.종로 고시원 불
.양구 전방 초소(GP) 총상 일병 후송중 사망
.삼바 분식회계-삼성바이오로직스
.찔레덤불
.쥐똥나무-새들이 싼 똥
.파라칸사-빨간 열매가 매혹적이다.
.남천:이파리가 물드는 상록수, 붉게 익은 열매가 아름다운 나무. 조경수로 심는다. 울타리로 심어도 좋다. 열매를 말려서 달여 먹으면 감기 예방에 좋다고 한다. 나무는 알면 알수록 매력이 있다.
.느릅나무: 관방제림 끄트머리에서 만나다. 숱한 열매를 달고서 당당하게 서 있다. 약으로 쓰려고 껍질을 벗기고, 뿌리를 뽑이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수난을 당하는 나무. 전대사대부고 뒤에도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광주지하철 2호선:달랑 2칸 달고 달리는 지하철, 적자가 눈에 뻔한데도 추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얀 코끼리가 아닌가?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는 사람이 1일 몇 명인가?
5.산수유까기
산수유열매에서 씨를 빼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산수유열매를 일주일 정도 꾸들꾸들하게 말린 다음에 열매를 손바닥에서 살짝 돌린 뒤에 꼭지를 살짝 딴 뒤에 반대쪽 꼭지를 누르면 신기하게도 씨가 쑥 빠져 나온다.
산수유열매를 2-3일 말려서 꼭지를 살짝 따고 반대쪽 꼭지를 눌러도 씨가 쉽게 빠져 나온다. 산수유껍질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마르면 산수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겠지만 말이다.
산수유나무 한 그루에서 수확하는 산수유 열매가 몇 개나 될까?
파리똥나무 열매보다 작은 산수유열매 씨를 빼려면 인내의 화신이 되어야 한다.
6.일곡 파초의 안부
일곡배수지 가는 길 자미원 식당 건너편에서 일곡동의 명물 파초가 늦가을을 즐기고 있다. 겨울에 파초의 줄기는 얼어버린다. 구근은 추운 겨울을 지내고 따뜻한 봄에 새순을 밀어올린다. 온실이나 실내라면 겨울에도 푸르른 파초를 볼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이게 일곡 파초의 운명이다.
예전에 전남사대부고의 얼어버린 파초를 보면서 울먹이는 시를 썼는데 어느 시인으로터 감정의 과잉이라는 호된 비판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스러지는 자연을 보면서 겸허해질 일이다.
7.화살나무 열매
고서벌 곧서농원 쥔장이
일곡동으로 화살을 쏘았는데
쏜살 같이 빨간 화살촉이 도착했다.
나는 누구를 겨냥해서
화살을 날릴까.
빨간 화살나무열매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곧서:考ㄷ書
8.왜요?
네 자리로 돌아가라
왜요?
네 자리가 어디냐?
요-기요.
손가락으로 교실 바닥을 가리킨다.
어디?
요-기.
바로 뒤에 학생이 앉아 있다.
1학기말 시험이 끝난 다음날
자습 안 하냐는 학생들
수업을 진행하려는 교사
학생들은 짜증이 나 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네 자리가 어디?
-저-기요.(맨 뒤)
네 자리로 돌아가라.
-왜요?
한숨만 쉬는 선생
9.나목
이파리를 떨군
교정의 나무들이
홀가분하다.
수능시험장 준비로 분주한
교사 안과는 다르게
나무들은 느긋하다.
어디선가 깍깍대는
까치의 울음소리도
한가롭다.
내 마음도
한없이 늘어졌다.
10.담세정
늦가을 비를 맞으며
담양 관방제림 아래
담세정이 나를 반긴다.
정자 앞 이파리를 다 떨궈버린
은행나무가 홀가분하다.
가을은 홀로움의 계절이다.
나를 직시하는 시간이다.
가을바람이 내 영혼을 맑힌다.
11.산수유
이른 봄에 노란 꽃망울 좁쌀만 하더니
따스한 봄볕 받아 노란 병아리로 깨어나
온 세상을 노랗게 물들인다.
노오란 꽃이 절정에 이를 때
파릇한 이파리 빼꼼 고개를 내민다.
벌과 나비들의 바지런한 날갯짓 뒤에
눈꼽 만한 열매가 맺혀서
여름날 폭풍우를 견디며
무더위 폭염을 양분 삼아
매미 울음소리를 응원가로 들으며
무던히도 열매를 키웠다.
산수유,
시월이 가는 게 아쉬워서
잘 익은 고추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12.종로, 재림예수
종로5가에서 용산역까지 걸었다.
광장시장, 세운상가를 지나
종묘에 들러서 왕들의 위엄을 보았다.
종묘 근처에서 짜장면을 먹고서
탑골 공원에 들렀다가
국보2호 원각사지 10층석탑을 구경했다.
차없는 종로거리를 걸어서
교보문고에 들렀지.
덕수궁 대한문에서 가을비를 맞기도 했다.
서울시청 부근에서 "재림예수를 믿으라"는 광신도들을 만났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살아서 가는 곳이라고 한다.
피켓 속 재림예수를 보니 한국인이다.
13.징계혐의자로 살아가기
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
징계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사람.
학교에서 사실확인서를 쓰고
감사관실에서 조사를 받고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여
최후진술을 하였다.
나와 같은 불행한 교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이 사건을 잘 정리하여 학교에 사례로 전파하기 바란다.
점수로만 남은 학교를 바꾸어야 한다.
나는 징계혐의자로
두 달을 살아왔다.
14.교무실 산수유
운동장가에서 따온
산수유가 교무실 창가에서
재미진 표정으로 마르고 있다.
교무실에 들르는 사람들은 눈동자가 커지고
산수유가 마르는 교무실은
산수유 향기로 가득하다.
1학년실 사람들이
항꾸네 씨를 빼서 말린
산수유차는 어떤 맛일까?
이 가을 교무실을
빨갛게 물들이며
항꾸네 씨를 뺀 산수유가
빠알갛게 마르고 있다.
15.남자 교직원 모임
오늘은 남자들이 만나는 날
학교에서 소수족으로 밀려난
남자들이 회포를 푸는 날
일이 바빠서 만날 짬도 못냈지
학교 앞 선술집이 그립기도 했지
퇴근길이 바빠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지
떡애기 키우느라 정신줄 놓았지
육아독박 무서운 말이 될 줄 몰랐지
오늘은 남자들이 만나는 날
지금껏 외로움 떨쳐내는 날
술잔을 부딪치면 도타운 정이 솟구치고
술김에 툭툭 부딪는 어깨가 정다웁고
오늘은 서로서로 에너지가 되는 날
16.고라니 새끼 한 마리
단오반텃밭에 물을 주고 있으니까 눈앞에 무엇인가가 잽싸게 지나간다. 가만히 보니까 고라니 새끼다. 족구를 하던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언덕으로 올라서자 고라니는 울타리 주변을 달리며 울타리를 넘어가려고 한다. 결국 울타리를 넘지 못 한 고라니는 급식실 쪽 울타리 쪽으로 달려간다. 조금 있으니까 다시 텃밭 쪽으로 달려 왔다가 다시 급식실 쪽으로 달려갔다. 고라니는 지금 제 정신이 아니다. 나는 고라니 새끼가 남부대쪽으로 달아나기를 바라며 교무실로 올라 왔다.
교무실에서 고라니 얘기를 했더니 어떤 선생님이 행정실에 구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한다. 고라니가 교문을 거쳐서 나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걱정이다. 도로 쪽으로 나간다면 자동차에 치이기 십상인데 말이다. 고라니가 무사히 숲으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17.집주인 고양이
모처럼만에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더니 고양이가 마루에 떡하니 앉아서 주인이 방문객을 맞듯이 나를 쳐다본다. 대문이 열리도록 파리똥나무를 톱으로 베어내고 보았더니 그 위풍당당한 고양이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몇 년 동안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살았던 고양이에게 나는 침입자가 분명하다. 나는 쥐똥나무 가지를 잘라내고 찔레나무를 베어내고 담쟁이 넝쿨을 걷어내면서 대충 길을 텄다. 마당을 점령해버린 찔레나무와 쥐똥나무를 하나씩 베어내다 보면 텃밭을 일굴 날이 오리라.
뭐든 그대로 두면 자연이 돼버린다. 집주인 행세를 해온 고양이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18.우측통행
조례에 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급하게 올라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는 계단 난간쪽으로 우측통행을 하며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있는데 올라오던 어떤 남학생이 내 발을 밟았다. 그 학생은 좌측통행을 하고 있었다. 그 학생(이름을 알지만)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똑바로 걸어라"고 말하고서는 교실로 급히 걸어갔다.
우측통행은 중요한 규칙이다. 복도에서 학생과 부딪쳐 부웅 날아가 버린 선생도 있었다. 그 선생은 쉬는 시간에는 복도를 걷지 않는다. 선생과 부딪쳐 골절상을 입은 학생도 있다.
19.얼굴 흉터
내 얼굴에는 흉터가 있다. 내가 이등병일 때 생긴 흉터다. 국가가 내 흉터를 지워줘야 한다.
내가 GOP 철책에서 보초를 설 때이다. 잠을 자다가 깨서 후반야 보초를 서러 가려고 교통호를 통해서 초소로 이동하는 도중에 발을 헛디뎌 넘어져서 교통호를 지탱하는 철항(U자형 쇠말뚝)에 얼굴을 찧었다. 나는 순간 정신을 잃었고 왼쪽 눈밑이 철항에 부딪쳐 찢어졌고 피가 철철 흘렀다. 나는 왼쪽 눈이 철항에 찔려서 실명을 한 줄 알았다. 다행이 눈을 떠보니 앞이 보였다. 위생병이 달려오고 소초에 비상이 걸렸다. 조선대 생물과 출신 위생병이 눈 밑 상처를 꿰맸다. 마취도 하지 않고 열한 바늘을 꿰맸다. 나는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1982년 봄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내 얼굴의 흉터는 세월이 흘러서 희미해졌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그 때의 아찔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20.핀셋과 배추벌레
아침에 단오반텃밭에서
배춧잎 위에 숨어 있는
애벌레를 발견하고서는
집에서 가져온 핀셋으로 녀석을
집어서 흙바닥에 던지고 나서
신발로 짓뭉개버렸다.
오늘 아침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졌다.
21.찌부까다
며칠 전 초등학교동창회에 가서 물어보았다. 찌부까다를 아느냐고. 전국에서 모인 동창생들 모두 알고 있었다. 찌부까다는 꼬집다의 담양 사투리다.
나는 추월산자락에 살다가 읍내로 전학을 갔다. 어떤 여학생이 꼬집길래 "너 왜 꼬집냐?"고 했더니 아이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쟤는 찌부까다도 모른다“고 하면서.
나는 어려서부터 추월산자락에서 표준어가 무엇인지를 생각했었다.
22.왜 나만 갖고 그래요!
무언가 잘못을 지적하면 학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요?" "나"만 그런게 아닌데 왜 "나"만 지적하느냐는 항변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나"만 재수가 없다는 얘기다. 많은 학생들이 교사의 눈을 속이며 규칙을 어기고 있다는 얘기다. 어쩌다가 학교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나"만 알고 "너"나 "우리"는 모르는 아이들이 주류인 학교풍경이다.
23.지금은 잊혀진
구라파-유럽
와사등-가스등
정말-덴마크
화란-네덜란드
토이기-터키
이태리-이탈리아
서반아-스페인
포두아-포르투칼
덕국,독일-도이칠란드
법국,불란서-프랑스
영국-잉글랜드
애란-아일랜드
나성-로스앤젤레스
화성돈-워싱턴
서서-스위스
서전-스웨덴
오지리-오스트리아
24.부여 정림사지
사비성이 함락되고 불타버린 잿더미에
정림사 오층석탑만 남았다.
치욕의 세월을 견디며 서 있는
저 오층석탑에는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했다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네.
하늘은 푸르디푸르기만 한데
망국의 서울 사비성은 오늘도
슬픔에 젖어 있는 듯
부여의자를 부르고 있다.
25.낙화암에 올라
부소산성을 오르다가 살짝 내려가
천사백년 백제의 한 서린 낙화암
망국의 궁인들 쫓기다 몸을 던진
작은 바위
난간을 붙잡고 그 바위 위에 서서
그날 여인들의 눈빛을 떠올린다.
당나라 소정방 군대가 사비성을 짓밟을 때
터져나오는 울음 제대로 울지도 못 했으리라.
단풍이 붉게 물든 부소산성 낙화암에서
백마강 푸른 물에 꽃잎처럼 뚝뚝 떨어지던
백제여인들의 절규를 듣는다.
26.줄탁동시*(10.22)
너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함께 살 수 있다면
나는 너를 기다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네.
네가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한동안 우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고
파란 가을하늘처럼 웃을 수 있겠네.
네가 오지 않아도
나는 네가 온 것처럼 생각하려네.
*시교육청 2층 상황실 앞 대회의실에 걸려 있는 "줄탁동시" 액자다. 징계위원회에 출석하기 전에 대기하면서 보았다.
27.수업자료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
첨단고 산수유 열매는
계절에 어울리는 수업자료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산수유 열매를 나눠주고
맛을 보라고 하면
매우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씨까지 우두둑 씹다가는
정신없이 내뱉으며 세면대로
달려가서 입을 헹구는 학생
오만상을 쓰면서
보기에는 맛있어 보이는데
겉만 보고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학생
신맛 쓴맛 떫은맛 단맛을 즐기며
미소 짓는 학생
산수유 열매는
멋진 수업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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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11월 토론작품]:출발 외 26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1.23 조회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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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금시-등촌-2018-11).hwp
1.출발
김성중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행성이 잘 돌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그대와 어깨를 곁고 걸어간다는 것은
인생이 살 만하다는 것.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고
겨울나무가 이파리를 떨구듯
나는 이제 한 구비를 돌아서 간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
앞으로 걸어갈 길만 걱정할 뿐
길을 걸으며 만날 벗들이 궁금할 뿐
이제 나는 새로운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2.자유
내가 떠나도
살구꽃, 벚꽃, 산수유꽃은
피고 지고
살구가 열리고
버찌가 열리고
산수유가 열리고
살구가 익고
버찌가 익고
산수유가 익고
그리고
살구나무에 살구잼이 열리고
벚나무에 버찌젤리가 열리고
산수유나무에 산수유차가 열리고
내가 떠나도
산수유나무는 살구나무는 벚나무는
멋지게 살아갈 것이고
3.찔레나무 작전
강쟁리에서 네 번째 찔레나무 제거 작전을 펼쳤다. 몇 년 들여다보지 않았더니 찔레나무가 마당을 점령하고 덤불을 이루었다.
찔레나무 가시는 강하다. 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끼고 찔레나무를 잘라내는데 계속 내 손을 가시가 찌른다. 하지만 나도 독하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새들의 천국이었을 찔레덤불을 제거하게 되어 새들에게 살짝 미안하다. 그동안 찔레덤불을 보면서 혀를 찼을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제는 면목이 서겠다.
4.시를 쓰기 위한 메모
.종로 고시원 불
.양구 전방 초소(GP) 총상 일병 후송중 사망
.삼바 분식회계-삼성바이오로직스
.찔레덤불
.쥐똥나무-새들이 싼 똥
.파라칸사-빨간 열매가 매혹적이다.
.남천:이파리가 물드는 상록수, 붉게 익은 열매가 아름다운 나무. 조경수로 심는다. 울타리로 심어도 좋다. 열매를 말려서 달여 먹으면 감기 예방에 좋다고 한다. 나무는 알면 알수록 매력이 있다.
.느릅나무: 관방제림 끄트머리에서 만나다. 숱한 열매를 달고서 당당하게 서 있다. 약으로 쓰려고 껍질을 벗기고, 뿌리를 뽑이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수난을 당하는 나무. 전대사대부고 뒤에도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광주지하철 2호선:달랑 2칸 달고 달리는 지하철, 적자가 눈에 뻔한데도 추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얀 코끼리가 아닌가?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는 사람이 1일 몇 명인가?
5.산수유까기
산수유열매에서 씨를 빼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산수유열매를 일주일 정도 꾸들꾸들하게 말린 다음에 열매를 손바닥에서 살짝 돌린 뒤에 꼭지를 살짝 딴 뒤에 반대쪽 꼭지를 누르면 신기하게도 씨가 쑥 빠져 나온다.
산수유열매를 2-3일 말려서 꼭지를 살짝 따고 반대쪽 꼭지를 눌러도 씨가 쉽게 빠져 나온다. 산수유껍질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마르면 산수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겠지만 말이다.
산수유나무 한 그루에서 수확하는 산수유 열매가 몇 개나 될까?
파리똥나무 열매보다 작은 산수유열매 씨를 빼려면 인내의 화신이 되어야 한다.
6.일곡 파초의 안부
일곡배수지 가는 길 자미원 식당 건너편에서 일곡동의 명물 파초가 늦가을을 즐기고 있다. 겨울에 파초의 줄기는 얼어버린다. 구근은 추운 겨울을 지내고 따뜻한 봄에 새순을 밀어올린다. 온실이나 실내라면 겨울에도 푸르른 파초를 볼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이게 일곡 파초의 운명이다.
예전에 전남사대부고의 얼어버린 파초를 보면서 울먹이는 시를 썼는데 어느 시인으로터 감정의 과잉이라는 호된 비판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스러지는 자연을 보면서 겸허해질 일이다.
7.화살나무 열매
고서벌 곧서농원 쥔장이
일곡동으로 화살을 쏘았는데
쏜살 같이 빨간 화살촉이 도착했다.
나는 누구를 겨냥해서
화살을 날릴까.
빨간 화살나무열매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곧서:考ㄷ書
8.왜요?
네 자리로 돌아가라
왜요?
네 자리가 어디냐?
요-기요.
손가락으로 교실 바닥을 가리킨다.
어디?
요-기.
바로 뒤에 학생이 앉아 있다.
1학기말 시험이 끝난 다음날
자습 안 하냐는 학생들
수업을 진행하려는 교사
학생들은 짜증이 나 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네 자리가 어디?
-저-기요.(맨 뒤)
네 자리로 돌아가라.
-왜요?
한숨만 쉬는 선생
9.나목
이파리를 떨군
교정의 나무들이
홀가분하다.
수능시험장 준비로 분주한
교사 안과는 다르게
나무들은 느긋하다.
어디선가 깍깍대는
까치의 울음소리도
한가롭다.
내 마음도
한없이 늘어졌다.
10.담세정
늦가을 비를 맞으며
담양 관방제림 아래
담세정이 나를 반긴다.
정자 앞 이파리를 다 떨궈버린
은행나무가 홀가분하다.
가을은 홀로움의 계절이다.
나를 직시하는 시간이다.
가을바람이 내 영혼을 맑힌다.
11.산수유
이른 봄에 노란 꽃망울 좁쌀만 하더니
따스한 봄볕 받아 노란 병아리로 깨어나
온 세상을 노랗게 물들인다.
노오란 꽃이 절정에 이를 때
파릇한 이파리 빼꼼 고개를 내민다.
벌과 나비들의 바지런한 날갯짓 뒤에
눈꼽 만한 열매가 맺혀서
여름날 폭풍우를 견디며
무더위 폭염을 양분 삼아
매미 울음소리를 응원가로 들으며
무던히도 열매를 키웠다.
산수유,
시월이 가는 게 아쉬워서
잘 익은 고추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12.종로, 재림예수
종로5가에서 용산역까지 걸었다.
광장시장, 세운상가를 지나
종묘에 들러서 왕들의 위엄을 보았다.
종묘 근처에서 짜장면을 먹고서
탑골 공원에 들렀다가
국보2호 원각사지 10층석탑을 구경했다.
차없는 종로거리를 걸어서
교보문고에 들렀지.
덕수궁 대한문에서 가을비를 맞기도 했다.
서울시청 부근에서 "재림예수를 믿으라"는 광신도들을 만났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살아서 가는 곳이라고 한다.
피켓 속 재림예수를 보니 한국인이다.
13.징계혐의자로 살아가기
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
징계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사람.
학교에서 사실확인서를 쓰고
감사관실에서 조사를 받고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여
최후진술을 하였다.
나와 같은 불행한 교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이 사건을 잘 정리하여 학교에 사례로 전파하기 바란다.
점수로만 남은 학교를 바꾸어야 한다.
나는 징계혐의자로
두 달을 살아왔다.
14.교무실 산수유
운동장가에서 따온
산수유가 교무실 창가에서
재미진 표정으로 마르고 있다.
교무실에 들르는 사람들은 눈동자가 커지고
산수유가 마르는 교무실은
산수유 향기로 가득하다.
1학년실 사람들이
항꾸네 씨를 빼서 말린
산수유차는 어떤 맛일까?
이 가을 교무실을
빨갛게 물들이며
항꾸네 씨를 뺀 산수유가
빠알갛게 마르고 있다.
15.남자 교직원 모임
오늘은 남자들이 만나는 날
학교에서 소수족으로 밀려난
남자들이 회포를 푸는 날
일이 바빠서 만날 짬도 못냈지
학교 앞 선술집이 그립기도 했지
퇴근길이 바빠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지
떡애기 키우느라 정신줄 놓았지
육아독박 무서운 말이 될 줄 몰랐지
오늘은 남자들이 만나는 날
지금껏 외로움 떨쳐내는 날
술잔을 부딪치면 도타운 정이 솟구치고
술김에 툭툭 부딪는 어깨가 정다웁고
오늘은 서로서로 에너지가 되는 날
16.고라니 새끼 한 마리
단오반텃밭에 물을 주고 있으니까 눈앞에 무엇인가가 잽싸게 지나간다. 가만히 보니까 고라니 새끼다. 족구를 하던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언덕으로 올라서자 고라니는 울타리 주변을 달리며 울타리를 넘어가려고 한다. 결국 울타리를 넘지 못 한 고라니는 급식실 쪽 울타리 쪽으로 달려간다. 조금 있으니까 다시 텃밭 쪽으로 달려 왔다가 다시 급식실 쪽으로 달려갔다. 고라니는 지금 제 정신이 아니다. 나는 고라니 새끼가 남부대쪽으로 달아나기를 바라며 교무실로 올라 왔다.
교무실에서 고라니 얘기를 했더니 어떤 선생님이 행정실에 구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한다. 고라니가 교문을 거쳐서 나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걱정이다. 도로 쪽으로 나간다면 자동차에 치이기 십상인데 말이다. 고라니가 무사히 숲으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17.집주인 고양이
모처럼만에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더니 고양이가 마루에 떡하니 앉아서 주인이 방문객을 맞듯이 나를 쳐다본다. 대문이 열리도록 파리똥나무를 톱으로 베어내고 보았더니 그 위풍당당한 고양이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몇 년 동안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살았던 고양이에게 나는 침입자가 분명하다. 나는 쥐똥나무 가지를 잘라내고 찔레나무를 베어내고 담쟁이 넝쿨을 걷어내면서 대충 길을 텄다. 마당을 점령해버린 찔레나무와 쥐똥나무를 하나씩 베어내다 보면 텃밭을 일굴 날이 오리라.
뭐든 그대로 두면 자연이 돼버린다. 집주인 행세를 해온 고양이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18.우측통행
조례에 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급하게 올라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는 계단 난간쪽으로 우측통행을 하며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있는데 올라오던 어떤 남학생이 내 발을 밟았다. 그 학생은 좌측통행을 하고 있었다. 그 학생(이름을 알지만)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똑바로 걸어라"고 말하고서는 교실로 급히 걸어갔다.
우측통행은 중요한 규칙이다. 복도에서 학생과 부딪쳐 부웅 날아가 버린 선생도 있었다. 그 선생은 쉬는 시간에는 복도를 걷지 않는다. 선생과 부딪쳐 골절상을 입은 학생도 있다.
19.얼굴 흉터
내 얼굴에는 흉터가 있다. 내가 이등병일 때 생긴 흉터다. 국가가 내 흉터를 지워줘야 한다.
내가 GOP 철책에서 보초를 설 때이다. 잠을 자다가 깨서 후반야 보초를 서러 가려고 교통호를 통해서 초소로 이동하는 도중에 발을 헛디뎌 넘어져서 교통호를 지탱하는 철항(U자형 쇠말뚝)에 얼굴을 찧었다. 나는 순간 정신을 잃었고 왼쪽 눈밑이 철항에 부딪쳐 찢어졌고 피가 철철 흘렀다. 나는 왼쪽 눈이 철항에 찔려서 실명을 한 줄 알았다. 다행이 눈을 떠보니 앞이 보였다. 위생병이 달려오고 소초에 비상이 걸렸다. 조선대 생물과 출신 위생병이 눈 밑 상처를 꿰맸다. 마취도 하지 않고 열한 바늘을 꿰맸다. 나는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1982년 봄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내 얼굴의 흉터는 세월이 흘러서 희미해졌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그 때의 아찔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20.핀셋과 배추벌레
아침에 단오반텃밭에서
배춧잎 위에 숨어 있는
애벌레를 발견하고서는
집에서 가져온 핀셋으로 녀석을
집어서 흙바닥에 던지고 나서
신발로 짓뭉개버렸다.
오늘 아침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졌다.
21.찌부까다
며칠 전 초등학교동창회에 가서 물어보았다. 찌부까다를 아느냐고. 전국에서 모인 동창생들 모두 알고 있었다. 찌부까다는 꼬집다의 담양 사투리다.
나는 추월산자락에 살다가 읍내로 전학을 갔다. 어떤 여학생이 꼬집길래 "너 왜 꼬집냐?"고 했더니 아이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쟤는 찌부까다도 모른다“고 하면서.
나는 어려서부터 추월산자락에서 표준어가 무엇인지를 생각했었다.
22.왜 나만 갖고 그래요!
무언가 잘못을 지적하면 학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요?" "나"만 그런게 아닌데 왜 "나"만 지적하느냐는 항변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나"만 재수가 없다는 얘기다. 많은 학생들이 교사의 눈을 속이며 규칙을 어기고 있다는 얘기다. 어쩌다가 학교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나"만 알고 "너"나 "우리"는 모르는 아이들이 주류인 학교풍경이다.
23.지금은 잊혀진
구라파-유럽
와사등-가스등
정말-덴마크
화란-네덜란드
토이기-터키
이태리-이탈리아
서반아-스페인
포두아-포르투칼
덕국,독일-도이칠란드
법국,불란서-프랑스
영국-잉글랜드
애란-아일랜드
나성-로스앤젤레스
화성돈-워싱턴
서서-스위스
서전-스웨덴
오지리-오스트리아
24.부여 정림사지
사비성이 함락되고 불타버린 잿더미에
정림사 오층석탑만 남았다.
치욕의 세월을 견디며 서 있는
저 오층석탑에는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했다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네.
하늘은 푸르디푸르기만 한데
망국의 서울 사비성은 오늘도
슬픔에 젖어 있는 듯
부여의자를 부르고 있다.
25.낙화암에 올라
부소산성을 오르다가 살짝 내려가
천사백년 백제의 한 서린 낙화암
망국의 궁인들 쫓기다 몸을 던진
작은 바위
난간을 붙잡고 그 바위 위에 서서
그날 여인들의 눈빛을 떠올린다.
당나라 소정방 군대가 사비성을 짓밟을 때
터져나오는 울음 제대로 울지도 못 했으리라.
단풍이 붉게 물든 부소산성 낙화암에서
백마강 푸른 물에 꽃잎처럼 뚝뚝 떨어지던
백제여인들의 절규를 듣는다.
26.줄탁동시*(10.22)
너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함께 살 수 있다면
나는 너를 기다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네.
네가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한동안 우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고
파란 가을하늘처럼 웃을 수 있겠네.
네가 오지 않아도
나는 네가 온 것처럼 생각하려네.
*시교육청 2층 상황실 앞 대회의실에 걸려 있는 "줄탁동시" 액자다. 징계위원회에 출석하기 전에 대기하면서 보았다.
27.수업자료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
첨단고 산수유 열매는
계절에 어울리는 수업자료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산수유 열매를 나눠주고
맛을 보라고 하면
매우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씨까지 우두둑 씹다가는
정신없이 내뱉으며 세면대로
달려가서 입을 헹구는 학생
오만상을 쓰면서
보기에는 맛있어 보이는데
겉만 보고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학생
신맛 쓴맛 떫은맛 단맛을 즐기며
미소 짓는 학생
산수유 열매는
멋진 수업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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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11월 토론작품]:출발 외 26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1.23 조회수:2
댓글0
 출발(금시-등촌-2018-11).hwp
1.출발
김성중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행성이 잘 돌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그대와 어깨를 곁고 걸어간다는 것은
인생이 살 만하다는 것.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고
겨울나무가 이파리를 떨구듯
나는 이제 한 구비를 돌아서 간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
앞으로 걸어갈 길만 걱정할 뿐
길을 걸으며 만날 벗들이 궁금할 뿐
이제 나는 새로운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2.자유
내가 떠나도
살구꽃, 벚꽃, 산수유꽃은
피고 지고
살구가 열리고
버찌가 열리고
산수유가 열리고
살구가 익고
버찌가 익고
산수유가 익고
그리고
살구나무에 살구잼이 열리고
벚나무에 버찌젤리가 열리고
산수유나무에 산수유차가 열리고
내가 떠나도
산수유나무는 살구나무는 벚나무는
멋지게 살아갈 것이고
3.찔레나무 작전
강쟁리에서 네 번째 찔레나무 제거 작전을 펼쳤다. 몇 년 들여다보지 않았더니 찔레나무가 마당을 점령하고 덤불을 이루었다.
찔레나무 가시는 강하다. 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끼고 찔레나무를 잘라내는데 계속 내 손을 가시가 찌른다. 하지만 나도 독하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새들의 천국이었을 찔레덤불을 제거하게 되어 새들에게 살짝 미안하다. 그동안 찔레덤불을 보면서 혀를 찼을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제는 면목이 서겠다.
4.시를 쓰기 위한 메모
.종로 고시원 불
.양구 전방 초소(GP) 총상 일병 후송중 사망
.삼바 분식회계-삼성바이오로직스
.찔레덤불
.쥐똥나무-새들이 싼 똥
.파라칸사-빨간 열매가 매혹적이다.
.남천:이파리가 물드는 상록수, 붉게 익은 열매가 아름다운 나무. 조경수로 심는다. 울타리로 심어도 좋다. 열매를 말려서 달여 먹으면 감기 예방에 좋다고 한다. 나무는 알면 알수록 매력이 있다.
.느릅나무: 관방제림 끄트머리에서 만나다. 숱한 열매를 달고서 당당하게 서 있다. 약으로 쓰려고 껍질을 벗기고, 뿌리를 뽑이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수난을 당하는 나무. 전대사대부고 뒤에도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광주지하철 2호선:달랑 2칸 달고 달리는 지하철, 적자가 눈에 뻔한데도 추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얀 코끼리가 아닌가?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는 사람이 1일 몇 명인가?
5.산수유까기
산수유열매에서 씨를 빼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산수유열매를 일주일 정도 꾸들꾸들하게 말린 다음에 열매를 손바닥에서 살짝 돌린 뒤에 꼭지를 살짝 딴 뒤에 반대쪽 꼭지를 누르면 신기하게도 씨가 쑥 빠져 나온다.
산수유열매를 2-3일 말려서 꼭지를 살짝 따고 반대쪽 꼭지를 눌러도 씨가 쉽게 빠져 나온다. 산수유껍질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마르면 산수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겠지만 말이다.
산수유나무 한 그루에서 수확하는 산수유 열매가 몇 개나 될까?
파리똥나무 열매보다 작은 산수유열매 씨를 빼려면 인내의 화신이 되어야 한다.
6.일곡 파초의 안부
일곡배수지 가는 길 자미원 식당 건너편에서 일곡동의 명물 파초가 늦가을을 즐기고 있다. 겨울에 파초의 줄기는 얼어버린다. 구근은 추운 겨울을 지내고 따뜻한 봄에 새순을 밀어올린다. 온실이나 실내라면 겨울에도 푸르른 파초를 볼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이게 일곡 파초의 운명이다.
예전에 전남사대부고의 얼어버린 파초를 보면서 울먹이는 시를 썼는데 어느 시인으로터 감정의 과잉이라는 호된 비판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스러지는 자연을 보면서 겸허해질 일이다.
7.화살나무 열매
고서벌 곧서농원 쥔장이
일곡동으로 화살을 쏘았는데
쏜살 같이 빨간 화살촉이 도착했다.
나는 누구를 겨냥해서
화살을 날릴까.
빨간 화살나무열매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곧서:考ㄷ書
8.왜요?
네 자리로 돌아가라
왜요?
네 자리가 어디냐?
요-기요.
손가락으로 교실 바닥을 가리킨다.
어디?
요-기.
바로 뒤에 학생이 앉아 있다.
1학기말 시험이 끝난 다음날
자습 안 하냐는 학생들
수업을 진행하려는 교사
학생들은 짜증이 나 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네 자리가 어디?
-저-기요.(맨 뒤)
네 자리로 돌아가라.
-왜요?
한숨만 쉬는 선생
9.나목
이파리를 떨군
교정의 나무들이
홀가분하다.
수능시험장 준비로 분주한
교사 안과는 다르게
나무들은 느긋하다.
어디선가 깍깍대는
까치의 울음소리도
한가롭다.
내 마음도
한없이 늘어졌다.
10.담세정
늦가을 비를 맞으며
담양 관방제림 아래
담세정이 나를 반긴다.
정자 앞 이파리를 다 떨궈버린
은행나무가 홀가분하다.
가을은 홀로움의 계절이다.
나를 직시하는 시간이다.
가을바람이 내 영혼을 맑힌다.
11.산수유
이른 봄에 노란 꽃망울 좁쌀만 하더니
따스한 봄볕 받아 노란 병아리로 깨어나
온 세상을 노랗게 물들인다.
노오란 꽃이 절정에 이를 때
파릇한 이파리 빼꼼 고개를 내민다.
벌과 나비들의 바지런한 날갯짓 뒤에
눈꼽 만한 열매가 맺혀서
여름날 폭풍우를 견디며
무더위 폭염을 양분 삼아
매미 울음소리를 응원가로 들으며
무던히도 열매를 키웠다.
산수유,
시월이 가는 게 아쉬워서
잘 익은 고추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12.종로, 재림예수
종로5가에서 용산역까지 걸었다.
광장시장, 세운상가를 지나
종묘에 들러서 왕들의 위엄을 보았다.
종묘 근처에서 짜장면을 먹고서
탑골 공원에 들렀다가
국보2호 원각사지 10층석탑을 구경했다.
차없는 종로거리를 걸어서
교보문고에 들렀지.
덕수궁 대한문에서 가을비를 맞기도 했다.
서울시청 부근에서 "재림예수를 믿으라"는 광신도들을 만났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살아서 가는 곳이라고 한다.
피켓 속 재림예수를 보니 한국인이다.
13.징계혐의자로 살아가기
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
징계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사람.
학교에서 사실확인서를 쓰고
감사관실에서 조사를 받고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여
최후진술을 하였다.
나와 같은 불행한 교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이 사건을 잘 정리하여 학교에 사례로 전파하기 바란다.
점수로만 남은 학교를 바꾸어야 한다.
나는 징계혐의자로
두 달을 살아왔다.
14.교무실 산수유
운동장가에서 따온
산수유가 교무실 창가에서
재미진 표정으로 마르고 있다.
교무실에 들르는 사람들은 눈동자가 커지고
산수유가 마르는 교무실은
산수유 향기로 가득하다.
1학년실 사람들이
항꾸네 씨를 빼서 말린
산수유차는 어떤 맛일까?
이 가을 교무실을
빨갛게 물들이며
항꾸네 씨를 뺀 산수유가
빠알갛게 마르고 있다.
15.남자 교직원 모임
오늘은 남자들이 만나는 날
학교에서 소수족으로 밀려난
남자들이 회포를 푸는 날
일이 바빠서 만날 짬도 못냈지
학교 앞 선술집이 그립기도 했지
퇴근길이 바빠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지
떡애기 키우느라 정신줄 놓았지
육아독박 무서운 말이 될 줄 몰랐지
오늘은 남자들이 만나는 날
지금껏 외로움 떨쳐내는 날
술잔을 부딪치면 도타운 정이 솟구치고
술김에 툭툭 부딪는 어깨가 정다웁고
오늘은 서로서로 에너지가 되는 날
16.고라니 새끼 한 마리
단오반텃밭에 물을 주고 있으니까 눈앞에 무엇인가가 잽싸게 지나간다. 가만히 보니까 고라니 새끼다. 족구를 하던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언덕으로 올라서자 고라니는 울타리 주변을 달리며 울타리를 넘어가려고 한다. 결국 울타리를 넘지 못 한 고라니는 급식실 쪽 울타리 쪽으로 달려간다. 조금 있으니까 다시 텃밭 쪽으로 달려 왔다가 다시 급식실 쪽으로 달려갔다. 고라니는 지금 제 정신이 아니다. 나는 고라니 새끼가 남부대쪽으로 달아나기를 바라며 교무실로 올라 왔다.
교무실에서 고라니 얘기를 했더니 어떤 선생님이 행정실에 구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한다. 고라니가 교문을 거쳐서 나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걱정이다. 도로 쪽으로 나간다면 자동차에 치이기 십상인데 말이다. 고라니가 무사히 숲으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17.집주인 고양이
모처럼만에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더니 고양이가 마루에 떡하니 앉아서 주인이 방문객을 맞듯이 나를 쳐다본다. 대문이 열리도록 파리똥나무를 톱으로 베어내고 보았더니 그 위풍당당한 고양이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몇 년 동안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살았던 고양이에게 나는 침입자가 분명하다. 나는 쥐똥나무 가지를 잘라내고 찔레나무를 베어내고 담쟁이 넝쿨을 걷어내면서 대충 길을 텄다. 마당을 점령해버린 찔레나무와 쥐똥나무를 하나씩 베어내다 보면 텃밭을 일굴 날이 오리라.
뭐든 그대로 두면 자연이 돼버린다. 집주인 행세를 해온 고양이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18.우측통행
조례에 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급하게 올라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는 계단 난간쪽으로 우측통행을 하며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있는데 올라오던 어떤 남학생이 내 발을 밟았다. 그 학생은 좌측통행을 하고 있었다. 그 학생(이름을 알지만)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똑바로 걸어라"고 말하고서는 교실로 급히 걸어갔다.
우측통행은 중요한 규칙이다. 복도에서 학생과 부딪쳐 부웅 날아가 버린 선생도 있었다. 그 선생은 쉬는 시간에는 복도를 걷지 않는다. 선생과 부딪쳐 골절상을 입은 학생도 있다.
19.얼굴 흉터
내 얼굴에는 흉터가 있다. 내가 이등병일 때 생긴 흉터다. 국가가 내 흉터를 지워줘야 한다.
내가 GOP 철책에서 보초를 설 때이다. 잠을 자다가 깨서 후반야 보초를 서러 가려고 교통호를 통해서 초소로 이동하는 도중에 발을 헛디뎌 넘어져서 교통호를 지탱하는 철항(U자형 쇠말뚝)에 얼굴을 찧었다. 나는 순간 정신을 잃었고 왼쪽 눈밑이 철항에 부딪쳐 찢어졌고 피가 철철 흘렀다. 나는 왼쪽 눈이 철항에 찔려서 실명을 한 줄 알았다. 다행이 눈을 떠보니 앞이 보였다. 위생병이 달려오고 소초에 비상이 걸렸다. 조선대 생물과 출신 위생병이 눈 밑 상처를 꿰맸다. 마취도 하지 않고 열한 바늘을 꿰맸다. 나는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1982년 봄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내 얼굴의 흉터는 세월이 흘러서 희미해졌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그 때의 아찔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20.핀셋과 배추벌레
아침에 단오반텃밭에서
배춧잎 위에 숨어 있는
애벌레를 발견하고서는
집에서 가져온 핀셋으로 녀석을
집어서 흙바닥에 던지고 나서
신발로 짓뭉개버렸다.
오늘 아침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졌다.
21.찌부까다
며칠 전 초등학교동창회에 가서 물어보았다. 찌부까다를 아느냐고. 전국에서 모인 동창생들 모두 알고 있었다. 찌부까다는 꼬집다의 담양 사투리다.
나는 추월산자락에 살다가 읍내로 전학을 갔다. 어떤 여학생이 꼬집길래 "너 왜 꼬집냐?"고 했더니 아이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쟤는 찌부까다도 모른다“고 하면서.
나는 어려서부터 추월산자락에서 표준어가 무엇인지를 생각했었다.
22.왜 나만 갖고 그래요!
무언가 잘못을 지적하면 학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요?" "나"만 그런게 아닌데 왜 "나"만 지적하느냐는 항변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나"만 재수가 없다는 얘기다. 많은 학생들이 교사의 눈을 속이며 규칙을 어기고 있다는 얘기다. 어쩌다가 학교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나"만 알고 "너"나 "우리"는 모르는 아이들이 주류인 학교풍경이다.
23.지금은 잊혀진
구라파-유럽
와사등-가스등
정말-덴마크
화란-네덜란드
토이기-터키
이태리-이탈리아
서반아-스페인
포두아-포르투칼
덕국,독일-도이칠란드
법국,불란서-프랑스
영국-잉글랜드
애란-아일랜드
나성-로스앤젤레스
화성돈-워싱턴
서서-스위스
서전-스웨덴
오지리-오스트리아
24.부여 정림사지
사비성이 함락되고 불타버린 잿더미에
정림사 오층석탑만 남았다.
치욕의 세월을 견디며 서 있는
저 오층석탑에는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했다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네.
하늘은 푸르디푸르기만 한데
망국의 서울 사비성은 오늘도
슬픔에 젖어 있는 듯
부여의자를 부르고 있다.
25.낙화암에 올라
부소산성을 오르다가 살짝 내려가
천사백년 백제의 한 서린 낙화암
망국의 궁인들 쫓기다 몸을 던진
작은 바위
난간을 붙잡고 그 바위 위에 서서
그날 여인들의 눈빛을 떠올린다.
당나라 소정방 군대가 사비성을 짓밟을 때
터져나오는 울음 제대로 울지도 못 했으리라.
단풍이 붉게 물든 부소산성 낙화암에서
백마강 푸른 물에 꽃잎처럼 뚝뚝 떨어지던
백제여인들의 절규를 듣는다.
26.줄탁동시*(10.22)
너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함께 살 수 있다면
나는 너를 기다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네.
네가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한동안 우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고
파란 가을하늘처럼 웃을 수 있겠네.
네가 오지 않아도
나는 네가 온 것처럼 생각하려네.
*시교육청 2층 상황실 앞 대회의실에 걸려 있는 "줄탁동시" 액자다. 징계위원회에 출석하기 전에 대기하면서 보았다.
27.수업자료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
첨단고 산수유 열매는
계절에 어울리는 수업자료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산수유 열매를 나눠주고
맛을 보라고 하면
매우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씨까지 우두둑 씹다가는
정신없이 내뱉으며 세면대로
달려가서 입을 헹구는 학생
오만상을 쓰면서
보기에는 맛있어 보이는데
겉만 보고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학생
신맛 쓴맛 떫은맛 단맛을 즐기며
미소 짓는 학생
산수유 열매는
멋진 수업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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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11월 토론작품]:출발 외 26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1.23 조회수:2
댓글0
 출발(금시-등촌-2018-11).hwp
1.출발
김성중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행성이 잘 돌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그대와 어깨를 곁고 걸어간다는 것은
인생이 살 만하다는 것.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고
겨울나무가 이파리를 떨구듯
나는 이제 한 구비를 돌아서 간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
앞으로 걸어갈 길만 걱정할 뿐
길을 걸으며 만날 벗들이 궁금할 뿐
이제 나는 새로운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2.자유
내가 떠나도
살구꽃, 벚꽃, 산수유꽃은
피고 지고
살구가 열리고
버찌가 열리고
산수유가 열리고
살구가 익고
버찌가 익고
산수유가 익고
그리고
살구나무에 살구잼이 열리고
벚나무에 버찌젤리가 열리고
산수유나무에 산수유차가 열리고
내가 떠나도
산수유나무는 살구나무는 벚나무는
멋지게 살아갈 것이고
3.찔레나무 작전
강쟁리에서 네 번째 찔레나무 제거 작전을 펼쳤다. 몇 년 들여다보지 않았더니 찔레나무가 마당을 점령하고 덤불을 이루었다.
찔레나무 가시는 강하다. 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끼고 찔레나무를 잘라내는데 계속 내 손을 가시가 찌른다. 하지만 나도 독하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새들의 천국이었을 찔레덤불을 제거하게 되어 새들에게 살짝 미안하다. 그동안 찔레덤불을 보면서 혀를 찼을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제는 면목이 서겠다.
4.시를 쓰기 위한 메모
.종로 고시원 불
.양구 전방 초소(GP) 총상 일병 후송중 사망
.삼바 분식회계-삼성바이오로직스
.찔레덤불
.쥐똥나무-새들이 싼 똥
.파라칸사-빨간 열매가 매혹적이다.
.남천:이파리가 물드는 상록수, 붉게 익은 열매가 아름다운 나무. 조경수로 심는다. 울타리로 심어도 좋다. 열매를 말려서 달여 먹으면 감기 예방에 좋다고 한다. 나무는 알면 알수록 매력이 있다.
.느릅나무: 관방제림 끄트머리에서 만나다. 숱한 열매를 달고서 당당하게 서 있다. 약으로 쓰려고 껍질을 벗기고, 뿌리를 뽑이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수난을 당하는 나무. 전대사대부고 뒤에도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광주지하철 2호선:달랑 2칸 달고 달리는 지하철, 적자가 눈에 뻔한데도 추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얀 코끼리가 아닌가?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는 사람이 1일 몇 명인가?
5.산수유까기
산수유열매에서 씨를 빼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산수유열매를 일주일 정도 꾸들꾸들하게 말린 다음에 열매를 손바닥에서 살짝 돌린 뒤에 꼭지를 살짝 딴 뒤에 반대쪽 꼭지를 누르면 신기하게도 씨가 쑥 빠져 나온다.
산수유열매를 2-3일 말려서 꼭지를 살짝 따고 반대쪽 꼭지를 눌러도 씨가 쉽게 빠져 나온다. 산수유껍질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마르면 산수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겠지만 말이다.
산수유나무 한 그루에서 수확하는 산수유 열매가 몇 개나 될까?
파리똥나무 열매보다 작은 산수유열매 씨를 빼려면 인내의 화신이 되어야 한다.
6.일곡 파초의 안부
일곡배수지 가는 길 자미원 식당 건너편에서 일곡동의 명물 파초가 늦가을을 즐기고 있다. 겨울에 파초의 줄기는 얼어버린다. 구근은 추운 겨울을 지내고 따뜻한 봄에 새순을 밀어올린다. 온실이나 실내라면 겨울에도 푸르른 파초를 볼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이게 일곡 파초의 운명이다.
예전에 전남사대부고의 얼어버린 파초를 보면서 울먹이는 시를 썼는데 어느 시인으로터 감정의 과잉이라는 호된 비판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스러지는 자연을 보면서 겸허해질 일이다.
7.화살나무 열매
고서벌 곧서농원 쥔장이
일곡동으로 화살을 쏘았는데
쏜살 같이 빨간 화살촉이 도착했다.
나는 누구를 겨냥해서
화살을 날릴까.
빨간 화살나무열매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곧서:考ㄷ書
8.왜요?
네 자리로 돌아가라
왜요?
네 자리가 어디냐?
요-기요.
손가락으로 교실 바닥을 가리킨다.
어디?
요-기.
바로 뒤에 학생이 앉아 있다.
1학기말 시험이 끝난 다음날
자습 안 하냐는 학생들
수업을 진행하려는 교사
학생들은 짜증이 나 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네 자리가 어디?
-저-기요.(맨 뒤)
네 자리로 돌아가라.
-왜요?
한숨만 쉬는 선생
9.나목
이파리를 떨군
교정의 나무들이
홀가분하다.
수능시험장 준비로 분주한
교사 안과는 다르게
나무들은 느긋하다.
어디선가 깍깍대는
까치의 울음소리도
한가롭다.
내 마음도
한없이 늘어졌다.
10.담세정
늦가을 비를 맞으며
담양 관방제림 아래
담세정이 나를 반긴다.
정자 앞 이파리를 다 떨궈버린
은행나무가 홀가분하다.
가을은 홀로움의 계절이다.
나를 직시하는 시간이다.
가을바람이 내 영혼을 맑힌다.
11.산수유
이른 봄에 노란 꽃망울 좁쌀만 하더니
따스한 봄볕 받아 노란 병아리로 깨어나
온 세상을 노랗게 물들인다.
노오란 꽃이 절정에 이를 때
파릇한 이파리 빼꼼 고개를 내민다.
벌과 나비들의 바지런한 날갯짓 뒤에
눈꼽 만한 열매가 맺혀서
여름날 폭풍우를 견디며
무더위 폭염을 양분 삼아
매미 울음소리를 응원가로 들으며
무던히도 열매를 키웠다.
산수유,
시월이 가는 게 아쉬워서
잘 익은 고추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12.종로, 재림예수
종로5가에서 용산역까지 걸었다.
광장시장, 세운상가를 지나
종묘에 들러서 왕들의 위엄을 보았다.
종묘 근처에서 짜장면을 먹고서
탑골 공원에 들렀다가
국보2호 원각사지 10층석탑을 구경했다.
차없는 종로거리를 걸어서
교보문고에 들렀지.
덕수궁 대한문에서 가을비를 맞기도 했다.
서울시청 부근에서 "재림예수를 믿으라"는 광신도들을 만났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살아서 가는 곳이라고 한다.
피켓 속 재림예수를 보니 한국인이다.
13.징계혐의자로 살아가기
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
징계혐의자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사람.
학교에서 사실확인서를 쓰고
감사관실에서 조사를 받고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여
최후진술을 하였다.
나와 같은 불행한 교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이 사건을 잘 정리하여 학교에 사례로 전파하기 바란다.
점수로만 남은 학교를 바꾸어야 한다.
나는 징계혐의자로
두 달을 살아왔다.
14.교무실 산수유
운동장가에서 따온
산수유가 교무실 창가에서
재미진 표정으로 마르고 있다.
교무실에 들르는 사람들은 눈동자가 커지고
산수유가 마르는 교무실은
산수유 향기로 가득하다.
1학년실 사람들이
항꾸네 씨를 빼서 말린
산수유차는 어떤 맛일까?
이 가을 교무실을
빨갛게 물들이며
항꾸네 씨를 뺀 산수유가
빠알갛게 마르고 있다.
15.남자 교직원 모임
오늘은 남자들이 만나는 날
학교에서 소수족으로 밀려난
남자들이 회포를 푸는 날
일이 바빠서 만날 짬도 못냈지
학교 앞 선술집이 그립기도 했지
퇴근길이 바빠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지
떡애기 키우느라 정신줄 놓았지
육아독박 무서운 말이 될 줄 몰랐지
오늘은 남자들이 만나는 날
지금껏 외로움 떨쳐내는 날
술잔을 부딪치면 도타운 정이 솟구치고
술김에 툭툭 부딪는 어깨가 정다웁고
오늘은 서로서로 에너지가 되는 날
16.고라니 새끼 한 마리
단오반텃밭에 물을 주고 있으니까 눈앞에 무엇인가가 잽싸게 지나간다. 가만히 보니까 고라니 새끼다. 족구를 하던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언덕으로 올라서자 고라니는 울타리 주변을 달리며 울타리를 넘어가려고 한다. 결국 울타리를 넘지 못 한 고라니는 급식실 쪽 울타리 쪽으로 달려간다. 조금 있으니까 다시 텃밭 쪽으로 달려 왔다가 다시 급식실 쪽으로 달려갔다. 고라니는 지금 제 정신이 아니다. 나는 고라니 새끼가 남부대쪽으로 달아나기를 바라며 교무실로 올라 왔다.
교무실에서 고라니 얘기를 했더니 어떤 선생님이 행정실에 구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한다. 고라니가 교문을 거쳐서 나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걱정이다. 도로 쪽으로 나간다면 자동차에 치이기 십상인데 말이다. 고라니가 무사히 숲으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17.집주인 고양이
모처럼만에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더니 고양이가 마루에 떡하니 앉아서 주인이 방문객을 맞듯이 나를 쳐다본다. 대문이 열리도록 파리똥나무를 톱으로 베어내고 보았더니 그 위풍당당한 고양이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몇 년 동안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살았던 고양이에게 나는 침입자가 분명하다. 나는 쥐똥나무 가지를 잘라내고 찔레나무를 베어내고 담쟁이 넝쿨을 걷어내면서 대충 길을 텄다. 마당을 점령해버린 찔레나무와 쥐똥나무를 하나씩 베어내다 보면 텃밭을 일굴 날이 오리라.
뭐든 그대로 두면 자연이 돼버린다. 집주인 행세를 해온 고양이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18.우측통행
조례에 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급하게 올라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는 계단 난간쪽으로 우측통행을 하며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있는데 올라오던 어떤 남학생이 내 발을 밟았다. 그 학생은 좌측통행을 하고 있었다. 그 학생(이름을 알지만)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똑바로 걸어라"고 말하고서는 교실로 급히 걸어갔다.
우측통행은 중요한 규칙이다. 복도에서 학생과 부딪쳐 부웅 날아가 버린 선생도 있었다. 그 선생은 쉬는 시간에는 복도를 걷지 않는다. 선생과 부딪쳐 골절상을 입은 학생도 있다.
19.얼굴 흉터
내 얼굴에는 흉터가 있다. 내가 이등병일 때 생긴 흉터다. 국가가 내 흉터를 지워줘야 한다.
내가 GOP 철책에서 보초를 설 때이다. 잠을 자다가 깨서 후반야 보초를 서러 가려고 교통호를 통해서 초소로 이동하는 도중에 발을 헛디뎌 넘어져서 교통호를 지탱하는 철항(U자형 쇠말뚝)에 얼굴을 찧었다. 나는 순간 정신을 잃었고 왼쪽 눈밑이 철항에 부딪쳐 찢어졌고 피가 철철 흘렀다. 나는 왼쪽 눈이 철항에 찔려서 실명을 한 줄 알았다. 다행이 눈을 떠보니 앞이 보였다. 위생병이 달려오고 소초에 비상이 걸렸다. 조선대 생물과 출신 위생병이 눈 밑 상처를 꿰맸다. 마취도 하지 않고 열한 바늘을 꿰맸다. 나는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1982년 봄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내 얼굴의 흉터는 세월이 흘러서 희미해졌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그 때의 아찔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20.핀셋과 배추벌레
아침에 단오반텃밭에서
배춧잎 위에 숨어 있는
애벌레를 발견하고서는
집에서 가져온 핀셋으로 녀석을
집어서 흙바닥에 던지고 나서
신발로 짓뭉개버렸다.
오늘 아침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졌다.
21.찌부까다
며칠 전 초등학교동창회에 가서 물어보았다. 찌부까다를 아느냐고. 전국에서 모인 동창생들 모두 알고 있었다. 찌부까다는 꼬집다의 담양 사투리다.
나는 추월산자락에 살다가 읍내로 전학을 갔다. 어떤 여학생이 꼬집길래 "너 왜 꼬집냐?"고 했더니 아이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쟤는 찌부까다도 모른다“고 하면서.
나는 어려서부터 추월산자락에서 표준어가 무엇인지를 생각했었다.
22.왜 나만 갖고 그래요!
무언가 잘못을 지적하면 학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요?" "나"만 그런게 아닌데 왜 "나"만 지적하느냐는 항변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나"만 재수가 없다는 얘기다. 많은 학생들이 교사의 눈을 속이며 규칙을 어기고 있다는 얘기다. 어쩌다가 학교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나"만 알고 "너"나 "우리"는 모르는 아이들이 주류인 학교풍경이다.
23.지금은 잊혀진
구라파-유럽
와사등-가스등
정말-덴마크
화란-네덜란드
토이기-터키
이태리-이탈리아
서반아-스페인
포두아-포르투칼
덕국,독일-도이칠란드
법국,불란서-프랑스
영국-잉글랜드
애란-아일랜드
나성-로스앤젤레스
화성돈-워싱턴
서서-스위스
서전-스웨덴
오지리-오스트리아
24.부여 정림사지
사비성이 함락되고 불타버린 잿더미에
정림사 오층석탑만 남았다.
치욕의 세월을 견디며 서 있는
저 오층석탑에는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했다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네.
하늘은 푸르디푸르기만 한데
망국의 서울 사비성은 오늘도
슬픔에 젖어 있는 듯
부여의자를 부르고 있다.
25.낙화암에 올라
부소산성을 오르다가 살짝 내려가
천사백년 백제의 한 서린 낙화암
망국의 궁인들 쫓기다 몸을 던진
작은 바위
난간을 붙잡고 그 바위 위에 서서
그날 여인들의 눈빛을 떠올린다.
당나라 소정방 군대가 사비성을 짓밟을 때
터져나오는 울음 제대로 울지도 못 했으리라.
단풍이 붉게 물든 부소산성 낙화암에서
백마강 푸른 물에 꽃잎처럼 뚝뚝 떨어지던
백제여인들의 절규를 듣는다.
26.줄탁동시*(10.22)
너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함께 살 수 있다면
나는 너를 기다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네.
네가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한동안 우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고
파란 가을하늘처럼 웃을 수 있겠네.
네가 오지 않아도
나는 네가 온 것처럼 생각하려네.
*시교육청 2층 상황실 앞 대회의실에 걸려 있는 "줄탁동시" 액자다. 징계위원회에 출석하기 전에 대기하면서 보았다.
27.수업자료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
첨단고 산수유 열매는
계절에 어울리는 수업자료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산수유 열매를 나눠주고
맛을 보라고 하면
매우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씨까지 우두둑 씹다가는
정신없이 내뱉으며 세면대로
달려가서 입을 헹구는 학생
오만상을 쓰면서
보기에는 맛있어 보이는데
겉만 보고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학생
신맛 쓴맛 떫은맛 단맛을 즐기며
미소 짓는 학생
산수유 열매는
멋진 수업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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