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산의 시
2019. 1. 1. 20:31
통합 게시판
[김성중 10월 토론작품] 부드러운 'ㄴ' 외 21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0.19 조회수:1
댓글0
 금시-2018-10-채선당.hwp
부드러운 'ㄴ' 외 21편
김성중
나는 난 네가 정말 좋아.
너는 넌 내가 정말 좋니?
'ㄴ'이 들어간 낱말을 찾는다.
나라 나리 놈 님 남 누리 눈 논 노리개
‘-ㄴ다’는 동사 현재형 산다 운다 논다 본다 잔다
형용사 활용형은 아름다운 고운 예쁜 사랑스러운
'ㄴ'이 엎어지면 'ㄱ'이 되고
혹이 하나 붙으면 'ㄷ'이 된다.
여자 이름에는 'ㄴ'이 많기도 많다.
민지 지민 지은 서윤 윤지 지윤 노라
시험 감독을 하면서 좌석표를 보니까
어느 여자반은 서른 한 명 중에서
스물 일곱 명의 이름에 'ㄴ'이 들어 있다.
남자 이름 중에도 'ㄴ'이 많다.
승권 안수 찬흠 성윤 선빈 선형 형선
만호 호만 민준 유준 민호 민수
수민 주민 우권 권호 호연 준태 태준
그래 그래 ㄴ을 넣으면
뭐든지 부드러워진다.
해직수첩 사진
어느 해직 선배가 보내온
해직교사 수첩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눈물이 난다.
서른 즈음의 사진
사진 속 사내의 얼굴
세상을 날카롭게 쏘아보는 눈
지금은 세파에 닳아서
두루뭉술해진 눈.
단오반텃밭 구억배추와 무
이슬을 머금은 이파리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다.
대지에 단단히 뿌리 박은
저 구억배추와 무의 당당함
벌레마저 범접하지 못 할
저 카리스마를 본다.
나의 다리는 흔들리는데
텃밭의 무와 배추는 강철 같다.
수다
너를 만나면
무슨 얘기든 하고 싶다.
네가 무슨 얘기를 해도
나는 재미가 있다.
내가 하는 얘기가 재미 없어도
너는 재미 있게 들어준다.
내 얘기는 늘 썰렁하지만
너는 늘 웃음보를 터뜨린다.
너를 만나면
늘 수다를 떨고 싶다.
첨단대교 풍경
바람이 서늘한 영산강에서
가을을 온몸으로 느낀다.
맑은 하늘과 맑은 공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진다면
내 걱정은 기우이리라.
강가 버드나무 옆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서
세월을 낚는 강태공을 보았다.
가을이 물든 강물을 보면서
가을 강처럼 말라야하리라
다짐을 한다.
친구가 운영하는 골프연습장을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내가 골프를 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복도 순회 감독
끊임없이 복도를 왔다 갔다 한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풀고 있다.
감독교사는 매의 눈으로 학생들을 감시한다.
불공정정행위를 없애려고 한다.
나는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복도를 걷고 또 걷는다.
끝종이 울릴 때까지
화장실에 가는 학생이 있는가?
시험지에 이상은 없는가?
OMR카드는 부족하지 않는가?
시험문제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러 다니는
출제교사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시험을 보는 동안 학교는 초긴장 상태다.
무사히 시험이 끝나기를 기도한다.
시험 종료 10분전임을 알리는 방송이 반갑다.
시험지를 넘기는 소리
마킹하는 소리
서술형 답을 고치는 소리
기침소리
한숨소리
드디어 시험 끝종이 울린다.
가을바람
어젯밤에 비가 내리고
지금 가을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창문 틈으로 들려오는
요란한 바람소리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
배롱나무꽃은 시들어 가고
금목서꽃도 가을비에 시들고
성급한 나뭇잎은 벌써 단풍으로 물들고
내 마음에도
가을바람이 불어오는가
왠지 허전한 마음
목련 열매와 새
전교조 분회모임 때 찾아간
담양 황금소나무 정원
백목련 자목련 나무에 빨간 열매가 열려 있다.
열매 꼬투리가 벌어진 사이로
빠알간 씨가 보인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얼른 씨를 빼물고
가지에 앉아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지난 봄날 화려하게 꽃피어
벌나비를 부르던 백목련과 자목련
이 가을에는 빠알간 열매로
빠알갛게 익은 씨로
새들을 유혹한다.
동백씨
빠알간 동백꽃이 지고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
동백 열매 붉게 익어서 마음이 설레는데
동백 열매의 꼬투리가 세 쪽으로
벌어지면 둥그렇게 모여 있던
까만 동백씨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동백 열매 하나에
까만 씨가 다섯 개에서 여덟 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있다.
밤
까만 밤이다.
등불을 훤하게 켜고 책을 읽는다.
텔레비전을 꺼버린 밤은 고요하다.
이 고요한 밤에 명상에 잠기리라.
대낮의 소음은 맹렬하다.
온갖 소리들이 귓청을 때린다.
그러나 밤이 되면 소음도 잠이 든다.
밤은 차분해지는 시간이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이다.
어떤 시화전
네모 반듯한 판넬이 아니고
이상한 모양의 판넬에 시를 적었다.
어떤 학생들은
엄마 몸빼에 시를 써서
세워 놓은 나무 가지에 걸었다.
설립자 묘소 앞에 전시한 작품들
국어과 출신 교감선생님은 오시지 않고
나는 문학써클 지도교사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았던
1988년 가을
시화전이 열리던
금호고등학교 교정
축시를 쓰던 시절
축하하는 마음이 넘쳐나거나
간절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나는 축시를 여러 편 썼지.
고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동창회 프로그램에
처음 축시를 썼지.
전교조 죽회분회 창립식 때
번창하라는 축시를 읽었지.
서울 미아리에서 선배 결혼식 때
다방에서 축시를 다듬었지.
서울 강남에서 친구 결혼식에서 축시를 읽었지.
KBC 방송국홀에서
후배인 미술교사 결혼식 축시를
읽으며 하객들을 웃겼지.
광주 어느 예식장에서
국어과 후배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의미심장한 축시를 읽었지.
2003년인가에는 신양파크호텔 홀에서
신부인 선배 국어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나마스테를 넣은
축시를 낭독해서
식장 분위기를 띄웠지.
의정부에서
선배 부친 팔순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가족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지.
광주일고 개교 70주년을 기념하여
'일고여,일고인이여'라는 장시를
학생들에게 낭독하게 하여
기념식장을 뜨겁게 달궜지.
2012년인가
전교조 성덕고등학교 분회 창립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행사를
빚나게 했었지.
나는 축시를 쓰고 낭독할 때마다
축하하는 마음과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뿍 담았지.
언제 축시를 쓸지
알 수 없는 요즘
축시를 쓰던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은행
출근길에 향토박물관 정류소로
시내버스를 타러 가는데
길바닥에 은행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은행을
사람들은 피한다.
나는 수억 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를
냄새가 난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그 놀라운 생명력 앞에서
겸허하게 고개를 숙였다.
한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내가 자랑스러울 수 있게 해주는
그리하여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언제라도 너를 불러내어 멋진 글을 쓸 수 있어서
나는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만약 내가 너를 몰랐다면
내 삶의 대부분은 어두운 터널
너와 더불어 나의 인생은 늘 즐거웠으니
이제 나는 너에게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하겠다.
내가 너를 만난 어린 꼬마였던 때부터
날마다 눈을 부릅뜨고 침발라 책장을 넘기는 지금까지
너에 대한 자부심이 무장 커졌고
너를 더 잘 쓰려고 노력했는데
날마다 아파하고 망가지는 너를 보면서
나는 더욱 더 너를 사랑할 것을 다짐한다.
생명력
가지가 사정없이 잘려나간
첨단우물살구나무가 잘려나간
가지 바로 앞에서 새로운
가지를 내밀었다.
잘려나간 가지를 그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살구나무는 이 가을에
새로운 가지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여리지만 올 겨울을
넘기고 새봄이 오면
가지에 화사한 꽃등을 달고
우리 앞에 환하게 웃으리라.
돌멩이 두 개
운명이었을까?
그 돌멩이는 왜 내 손을 떠났을까?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나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페퍼포그차를 향해
돌멩이 두 개를 힘차게 던졌다.
1981년 9월 29일
중앙도서관 앞에서 시작된 시위는
엄청나게 격렬했다.
담을 넘어서 시내로 진출하기도 했다.
반제 반파쇼 민중 민주 결의대회
내가 던진 돌멩이는 분노하는 돌멩이였다.
나는 붙잡혀서 닭장차에 실려
서부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돌멩이 두 개는 운명이었을까?
뿌리
고추는 뿌리가 얕아서
비바람이 치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래서 반드시 지줏대를 세우고 고
춧대를 묶어주어야 한다.
가지는 뿌리가 깊어서
1미터까지 땅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짓대를 뽑으려면 몹시 힘이 든다.
식물도 사람도 뿌리가 다 다르다.
가지 뿌리
어제 베어낸 가지의
밑둥을 잡고
흔들어서
가지 뿌리를 뽑았다.
뿌리가 단단히
흙을 쥐고 있어서
뽑는데 애를 먹었다.
대지에 굳게
뿌리를 박은 가지는
숱하게 꽃을 피우고
가지를 매달았었다.
영산포장
영산포장에 갔다.
생조기가 싸다.
3만원에 30마리다.
다른 해산물도 싸다.
시장 앞 금강식당에서
조기매운탕에 점심을 먹었다.
2인분에 12,000원이다.
조기가 10마리나 들어있다.
점심상이 푸짐하다.
영산포 인심이 푸짐하다.
고추
오늘 저녁에 상추쌈밥을 먹었다. 학교 텃밭에서 따온 상추에 밥과 고추와 가지볶음과 김치를 싸서 먹었다. 아, 매워! 고추가 너무 매워서 눈물을 한참이나 흘렸다. 눈물을 흘리고 났더니 카타르시다. 정화다.
가끔씩 눈물을 흘려야 하겠다. 요새 울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 울고 싶을 때는 체면 차리지 말고 울어버리자.
오늘 매운 고추가 내 생의 감각을 살려놓았다.
노각
일곡동 한새봉 농업생태공원 단오텃밭에서 가지 두 주를 베어내고 오이 넝쿨을 옮기면서 노각을 만났다. 폭염이 대지를 달굴 때 오이 모종을 옮겨 심으면서 제대로 살 수 있을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가지 잎에 가려진 덕분에 이 오이는 노각이 되었던 것이다.
주목 받지 못 하면서도 착실히 내실을 다지는 존재들이 많다.
동백씨
교정을 산책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동백씨를 발견했다.
동백꽃이 피었다 지면서 열매가
붉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열매가 익고 벌어져서
씨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동백열매는 지난 폭염 속에서도
부지런히 익었던 모양이다.
오, 자연의 위대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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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10월 토론작품] 부드러운 'ㄴ' 외 21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0.19 조회수:1
댓글0
 금시-2018-10-채선당.hwp
부드러운 'ㄴ' 외 21편
김성중
나는 난 네가 정말 좋아.
너는 넌 내가 정말 좋니?
'ㄴ'이 들어간 낱말을 찾는다.
나라 나리 놈 님 남 누리 눈 논 노리개
‘-ㄴ다’는 동사 현재형 산다 운다 논다 본다 잔다
형용사 활용형은 아름다운 고운 예쁜 사랑스러운
'ㄴ'이 엎어지면 'ㄱ'이 되고
혹이 하나 붙으면 'ㄷ'이 된다.
여자 이름에는 'ㄴ'이 많기도 많다.
민지 지민 지은 서윤 윤지 지윤 노라
시험 감독을 하면서 좌석표를 보니까
어느 여자반은 서른 한 명 중에서
스물 일곱 명의 이름에 'ㄴ'이 들어 있다.
남자 이름 중에도 'ㄴ'이 많다.
승권 안수 찬흠 성윤 선빈 선형 형선
만호 호만 민준 유준 민호 민수
수민 주민 우권 권호 호연 준태 태준
그래 그래 ㄴ을 넣으면
뭐든지 부드러워진다.
해직수첩 사진
어느 해직 선배가 보내온
해직교사 수첩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눈물이 난다.
서른 즈음의 사진
사진 속 사내의 얼굴
세상을 날카롭게 쏘아보는 눈
지금은 세파에 닳아서
두루뭉술해진 눈.
단오반텃밭 구억배추와 무
이슬을 머금은 이파리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다.
대지에 단단히 뿌리 박은
저 구억배추와 무의 당당함
벌레마저 범접하지 못 할
저 카리스마를 본다.
나의 다리는 흔들리는데
텃밭의 무와 배추는 강철 같다.
수다
너를 만나면
무슨 얘기든 하고 싶다.
네가 무슨 얘기를 해도
나는 재미가 있다.
내가 하는 얘기가 재미 없어도
너는 재미 있게 들어준다.
내 얘기는 늘 썰렁하지만
너는 늘 웃음보를 터뜨린다.
너를 만나면
늘 수다를 떨고 싶다.
첨단대교 풍경
바람이 서늘한 영산강에서
가을을 온몸으로 느낀다.
맑은 하늘과 맑은 공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진다면
내 걱정은 기우이리라.
강가 버드나무 옆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서
세월을 낚는 강태공을 보았다.
가을이 물든 강물을 보면서
가을 강처럼 말라야하리라
다짐을 한다.
친구가 운영하는 골프연습장을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내가 골프를 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복도 순회 감독
끊임없이 복도를 왔다 갔다 한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풀고 있다.
감독교사는 매의 눈으로 학생들을 감시한다.
불공정정행위를 없애려고 한다.
나는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복도를 걷고 또 걷는다.
끝종이 울릴 때까지
화장실에 가는 학생이 있는가?
시험지에 이상은 없는가?
OMR카드는 부족하지 않는가?
시험문제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러 다니는
출제교사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시험을 보는 동안 학교는 초긴장 상태다.
무사히 시험이 끝나기를 기도한다.
시험 종료 10분전임을 알리는 방송이 반갑다.
시험지를 넘기는 소리
마킹하는 소리
서술형 답을 고치는 소리
기침소리
한숨소리
드디어 시험 끝종이 울린다.
가을바람
어젯밤에 비가 내리고
지금 가을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창문 틈으로 들려오는
요란한 바람소리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
배롱나무꽃은 시들어 가고
금목서꽃도 가을비에 시들고
성급한 나뭇잎은 벌써 단풍으로 물들고
내 마음에도
가을바람이 불어오는가
왠지 허전한 마음
목련 열매와 새
전교조 분회모임 때 찾아간
담양 황금소나무 정원
백목련 자목련 나무에 빨간 열매가 열려 있다.
열매 꼬투리가 벌어진 사이로
빠알간 씨가 보인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얼른 씨를 빼물고
가지에 앉아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지난 봄날 화려하게 꽃피어
벌나비를 부르던 백목련과 자목련
이 가을에는 빠알간 열매로
빠알갛게 익은 씨로
새들을 유혹한다.
동백씨
빠알간 동백꽃이 지고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
동백 열매 붉게 익어서 마음이 설레는데
동백 열매의 꼬투리가 세 쪽으로
벌어지면 둥그렇게 모여 있던
까만 동백씨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동백 열매 하나에
까만 씨가 다섯 개에서 여덟 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있다.
밤
까만 밤이다.
등불을 훤하게 켜고 책을 읽는다.
텔레비전을 꺼버린 밤은 고요하다.
이 고요한 밤에 명상에 잠기리라.
대낮의 소음은 맹렬하다.
온갖 소리들이 귓청을 때린다.
그러나 밤이 되면 소음도 잠이 든다.
밤은 차분해지는 시간이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이다.
어떤 시화전
네모 반듯한 판넬이 아니고
이상한 모양의 판넬에 시를 적었다.
어떤 학생들은
엄마 몸빼에 시를 써서
세워 놓은 나무 가지에 걸었다.
설립자 묘소 앞에 전시한 작품들
국어과 출신 교감선생님은 오시지 않고
나는 문학써클 지도교사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았던
1988년 가을
시화전이 열리던
금호고등학교 교정
축시를 쓰던 시절
축하하는 마음이 넘쳐나거나
간절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나는 축시를 여러 편 썼지.
고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동창회 프로그램에
처음 축시를 썼지.
전교조 죽회분회 창립식 때
번창하라는 축시를 읽었지.
서울 미아리에서 선배 결혼식 때
다방에서 축시를 다듬었지.
서울 강남에서 친구 결혼식에서 축시를 읽었지.
KBC 방송국홀에서
후배인 미술교사 결혼식 축시를
읽으며 하객들을 웃겼지.
광주 어느 예식장에서
국어과 후배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의미심장한 축시를 읽었지.
2003년인가에는 신양파크호텔 홀에서
신부인 선배 국어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나마스테를 넣은
축시를 낭독해서
식장 분위기를 띄웠지.
의정부에서
선배 부친 팔순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가족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지.
광주일고 개교 70주년을 기념하여
'일고여,일고인이여'라는 장시를
학생들에게 낭독하게 하여
기념식장을 뜨겁게 달궜지.
2012년인가
전교조 성덕고등학교 분회 창립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행사를
빚나게 했었지.
나는 축시를 쓰고 낭독할 때마다
축하하는 마음과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뿍 담았지.
언제 축시를 쓸지
알 수 없는 요즘
축시를 쓰던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은행
출근길에 향토박물관 정류소로
시내버스를 타러 가는데
길바닥에 은행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은행을
사람들은 피한다.
나는 수억 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를
냄새가 난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그 놀라운 생명력 앞에서
겸허하게 고개를 숙였다.
한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내가 자랑스러울 수 있게 해주는
그리하여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언제라도 너를 불러내어 멋진 글을 쓸 수 있어서
나는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만약 내가 너를 몰랐다면
내 삶의 대부분은 어두운 터널
너와 더불어 나의 인생은 늘 즐거웠으니
이제 나는 너에게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하겠다.
내가 너를 만난 어린 꼬마였던 때부터
날마다 눈을 부릅뜨고 침발라 책장을 넘기는 지금까지
너에 대한 자부심이 무장 커졌고
너를 더 잘 쓰려고 노력했는데
날마다 아파하고 망가지는 너를 보면서
나는 더욱 더 너를 사랑할 것을 다짐한다.
생명력
가지가 사정없이 잘려나간
첨단우물살구나무가 잘려나간
가지 바로 앞에서 새로운
가지를 내밀었다.
잘려나간 가지를 그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살구나무는 이 가을에
새로운 가지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여리지만 올 겨울을
넘기고 새봄이 오면
가지에 화사한 꽃등을 달고
우리 앞에 환하게 웃으리라.
돌멩이 두 개
운명이었을까?
그 돌멩이는 왜 내 손을 떠났을까?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나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페퍼포그차를 향해
돌멩이 두 개를 힘차게 던졌다.
1981년 9월 29일
중앙도서관 앞에서 시작된 시위는
엄청나게 격렬했다.
담을 넘어서 시내로 진출하기도 했다.
반제 반파쇼 민중 민주 결의대회
내가 던진 돌멩이는 분노하는 돌멩이였다.
나는 붙잡혀서 닭장차에 실려
서부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돌멩이 두 개는 운명이었을까?
뿌리
고추는 뿌리가 얕아서
비바람이 치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래서 반드시 지줏대를 세우고 고
춧대를 묶어주어야 한다.
가지는 뿌리가 깊어서
1미터까지 땅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짓대를 뽑으려면 몹시 힘이 든다.
식물도 사람도 뿌리가 다 다르다.
가지 뿌리
어제 베어낸 가지의
밑둥을 잡고
흔들어서
가지 뿌리를 뽑았다.
뿌리가 단단히
흙을 쥐고 있어서
뽑는데 애를 먹었다.
대지에 굳게
뿌리를 박은 가지는
숱하게 꽃을 피우고
가지를 매달았었다.
영산포장
영산포장에 갔다.
생조기가 싸다.
3만원에 30마리다.
다른 해산물도 싸다.
시장 앞 금강식당에서
조기매운탕에 점심을 먹었다.
2인분에 12,000원이다.
조기가 10마리나 들어있다.
점심상이 푸짐하다.
영산포 인심이 푸짐하다.
고추
오늘 저녁에 상추쌈밥을 먹었다. 학교 텃밭에서 따온 상추에 밥과 고추와 가지볶음과 김치를 싸서 먹었다. 아, 매워! 고추가 너무 매워서 눈물을 한참이나 흘렸다. 눈물을 흘리고 났더니 카타르시다. 정화다.
가끔씩 눈물을 흘려야 하겠다. 요새 울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 울고 싶을 때는 체면 차리지 말고 울어버리자.
오늘 매운 고추가 내 생의 감각을 살려놓았다.
노각
일곡동 한새봉 농업생태공원 단오텃밭에서 가지 두 주를 베어내고 오이 넝쿨을 옮기면서 노각을 만났다. 폭염이 대지를 달굴 때 오이 모종을 옮겨 심으면서 제대로 살 수 있을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가지 잎에 가려진 덕분에 이 오이는 노각이 되었던 것이다.
주목 받지 못 하면서도 착실히 내실을 다지는 존재들이 많다.
동백씨
교정을 산책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동백씨를 발견했다.
동백꽃이 피었다 지면서 열매가
붉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열매가 익고 벌어져서
씨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동백열매는 지난 폭염 속에서도
부지런히 익었던 모양이다.
오, 자연의 위대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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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송태웅 시인다음최승권 10월 토론작품 : 늦가을 일절(一節)
[김성중 10월 토론작품] 부드러운 'ㄴ' 외 21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0.19 조회수:1
댓글0
 금시-2018-10-채선당.hwp
부드러운 'ㄴ' 외 21편
김성중
나는 난 네가 정말 좋아.
너는 넌 내가 정말 좋니?
'ㄴ'이 들어간 낱말을 찾는다.
나라 나리 놈 님 남 누리 눈 논 노리개
‘-ㄴ다’는 동사 현재형 산다 운다 논다 본다 잔다
형용사 활용형은 아름다운 고운 예쁜 사랑스러운
'ㄴ'이 엎어지면 'ㄱ'이 되고
혹이 하나 붙으면 'ㄷ'이 된다.
여자 이름에는 'ㄴ'이 많기도 많다.
민지 지민 지은 서윤 윤지 지윤 노라
시험 감독을 하면서 좌석표를 보니까
어느 여자반은 서른 한 명 중에서
스물 일곱 명의 이름에 'ㄴ'이 들어 있다.
남자 이름 중에도 'ㄴ'이 많다.
승권 안수 찬흠 성윤 선빈 선형 형선
만호 호만 민준 유준 민호 민수
수민 주민 우권 권호 호연 준태 태준
그래 그래 ㄴ을 넣으면
뭐든지 부드러워진다.
해직수첩 사진
어느 해직 선배가 보내온
해직교사 수첩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눈물이 난다.
서른 즈음의 사진
사진 속 사내의 얼굴
세상을 날카롭게 쏘아보는 눈
지금은 세파에 닳아서
두루뭉술해진 눈.
단오반텃밭 구억배추와 무
이슬을 머금은 이파리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다.
대지에 단단히 뿌리 박은
저 구억배추와 무의 당당함
벌레마저 범접하지 못 할
저 카리스마를 본다.
나의 다리는 흔들리는데
텃밭의 무와 배추는 강철 같다.
수다
너를 만나면
무슨 얘기든 하고 싶다.
네가 무슨 얘기를 해도
나는 재미가 있다.
내가 하는 얘기가 재미 없어도
너는 재미 있게 들어준다.
내 얘기는 늘 썰렁하지만
너는 늘 웃음보를 터뜨린다.
너를 만나면
늘 수다를 떨고 싶다.
첨단대교 풍경
바람이 서늘한 영산강에서
가을을 온몸으로 느낀다.
맑은 하늘과 맑은 공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진다면
내 걱정은 기우이리라.
강가 버드나무 옆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서
세월을 낚는 강태공을 보았다.
가을이 물든 강물을 보면서
가을 강처럼 말라야하리라
다짐을 한다.
친구가 운영하는 골프연습장을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내가 골프를 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복도 순회 감독
끊임없이 복도를 왔다 갔다 한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풀고 있다.
감독교사는 매의 눈으로 학생들을 감시한다.
불공정정행위를 없애려고 한다.
나는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복도를 걷고 또 걷는다.
끝종이 울릴 때까지
화장실에 가는 학생이 있는가?
시험지에 이상은 없는가?
OMR카드는 부족하지 않는가?
시험문제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러 다니는
출제교사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시험을 보는 동안 학교는 초긴장 상태다.
무사히 시험이 끝나기를 기도한다.
시험 종료 10분전임을 알리는 방송이 반갑다.
시험지를 넘기는 소리
마킹하는 소리
서술형 답을 고치는 소리
기침소리
한숨소리
드디어 시험 끝종이 울린다.
가을바람
어젯밤에 비가 내리고
지금 가을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창문 틈으로 들려오는
요란한 바람소리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
배롱나무꽃은 시들어 가고
금목서꽃도 가을비에 시들고
성급한 나뭇잎은 벌써 단풍으로 물들고
내 마음에도
가을바람이 불어오는가
왠지 허전한 마음
목련 열매와 새
전교조 분회모임 때 찾아간
담양 황금소나무 정원
백목련 자목련 나무에 빨간 열매가 열려 있다.
열매 꼬투리가 벌어진 사이로
빠알간 씨가 보인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얼른 씨를 빼물고
가지에 앉아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지난 봄날 화려하게 꽃피어
벌나비를 부르던 백목련과 자목련
이 가을에는 빠알간 열매로
빠알갛게 익은 씨로
새들을 유혹한다.
동백씨
빠알간 동백꽃이 지고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
동백 열매 붉게 익어서 마음이 설레는데
동백 열매의 꼬투리가 세 쪽으로
벌어지면 둥그렇게 모여 있던
까만 동백씨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동백 열매 하나에
까만 씨가 다섯 개에서 여덟 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있다.
밤
까만 밤이다.
등불을 훤하게 켜고 책을 읽는다.
텔레비전을 꺼버린 밤은 고요하다.
이 고요한 밤에 명상에 잠기리라.
대낮의 소음은 맹렬하다.
온갖 소리들이 귓청을 때린다.
그러나 밤이 되면 소음도 잠이 든다.
밤은 차분해지는 시간이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이다.
어떤 시화전
네모 반듯한 판넬이 아니고
이상한 모양의 판넬에 시를 적었다.
어떤 학생들은
엄마 몸빼에 시를 써서
세워 놓은 나무 가지에 걸었다.
설립자 묘소 앞에 전시한 작품들
국어과 출신 교감선생님은 오시지 않고
나는 문학써클 지도교사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았던
1988년 가을
시화전이 열리던
금호고등학교 교정
축시를 쓰던 시절
축하하는 마음이 넘쳐나거나
간절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나는 축시를 여러 편 썼지.
고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동창회 프로그램에
처음 축시를 썼지.
전교조 죽회분회 창립식 때
번창하라는 축시를 읽었지.
서울 미아리에서 선배 결혼식 때
다방에서 축시를 다듬었지.
서울 강남에서 친구 결혼식에서 축시를 읽었지.
KBC 방송국홀에서
후배인 미술교사 결혼식 축시를
읽으며 하객들을 웃겼지.
광주 어느 예식장에서
국어과 후배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의미심장한 축시를 읽었지.
2003년인가에는 신양파크호텔 홀에서
신부인 선배 국어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나마스테를 넣은
축시를 낭독해서
식장 분위기를 띄웠지.
의정부에서
선배 부친 팔순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가족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지.
광주일고 개교 70주년을 기념하여
'일고여,일고인이여'라는 장시를
학생들에게 낭독하게 하여
기념식장을 뜨겁게 달궜지.
2012년인가
전교조 성덕고등학교 분회 창립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행사를
빚나게 했었지.
나는 축시를 쓰고 낭독할 때마다
축하하는 마음과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뿍 담았지.
언제 축시를 쓸지
알 수 없는 요즘
축시를 쓰던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은행
출근길에 향토박물관 정류소로
시내버스를 타러 가는데
길바닥에 은행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은행을
사람들은 피한다.
나는 수억 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를
냄새가 난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그 놀라운 생명력 앞에서
겸허하게 고개를 숙였다.
한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내가 자랑스러울 수 있게 해주는
그리하여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언제라도 너를 불러내어 멋진 글을 쓸 수 있어서
나는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만약 내가 너를 몰랐다면
내 삶의 대부분은 어두운 터널
너와 더불어 나의 인생은 늘 즐거웠으니
이제 나는 너에게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하겠다.
내가 너를 만난 어린 꼬마였던 때부터
날마다 눈을 부릅뜨고 침발라 책장을 넘기는 지금까지
너에 대한 자부심이 무장 커졌고
너를 더 잘 쓰려고 노력했는데
날마다 아파하고 망가지는 너를 보면서
나는 더욱 더 너를 사랑할 것을 다짐한다.
생명력
가지가 사정없이 잘려나간
첨단우물살구나무가 잘려나간
가지 바로 앞에서 새로운
가지를 내밀었다.
잘려나간 가지를 그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살구나무는 이 가을에
새로운 가지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여리지만 올 겨울을
넘기고 새봄이 오면
가지에 화사한 꽃등을 달고
우리 앞에 환하게 웃으리라.
돌멩이 두 개
운명이었을까?
그 돌멩이는 왜 내 손을 떠났을까?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나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페퍼포그차를 향해
돌멩이 두 개를 힘차게 던졌다.
1981년 9월 29일
중앙도서관 앞에서 시작된 시위는
엄청나게 격렬했다.
담을 넘어서 시내로 진출하기도 했다.
반제 반파쇼 민중 민주 결의대회
내가 던진 돌멩이는 분노하는 돌멩이였다.
나는 붙잡혀서 닭장차에 실려
서부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돌멩이 두 개는 운명이었을까?
뿌리
고추는 뿌리가 얕아서
비바람이 치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래서 반드시 지줏대를 세우고 고
춧대를 묶어주어야 한다.
가지는 뿌리가 깊어서
1미터까지 땅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짓대를 뽑으려면 몹시 힘이 든다.
식물도 사람도 뿌리가 다 다르다.
가지 뿌리
어제 베어낸 가지의
밑둥을 잡고
흔들어서
가지 뿌리를 뽑았다.
뿌리가 단단히
흙을 쥐고 있어서
뽑는데 애를 먹었다.
대지에 굳게
뿌리를 박은 가지는
숱하게 꽃을 피우고
가지를 매달았었다.
영산포장
영산포장에 갔다.
생조기가 싸다.
3만원에 30마리다.
다른 해산물도 싸다.
시장 앞 금강식당에서
조기매운탕에 점심을 먹었다.
2인분에 12,000원이다.
조기가 10마리나 들어있다.
점심상이 푸짐하다.
영산포 인심이 푸짐하다.
고추
오늘 저녁에 상추쌈밥을 먹었다. 학교 텃밭에서 따온 상추에 밥과 고추와 가지볶음과 김치를 싸서 먹었다. 아, 매워! 고추가 너무 매워서 눈물을 한참이나 흘렸다. 눈물을 흘리고 났더니 카타르시다. 정화다.
가끔씩 눈물을 흘려야 하겠다. 요새 울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 울고 싶을 때는 체면 차리지 말고 울어버리자.
오늘 매운 고추가 내 생의 감각을 살려놓았다.
노각
일곡동 한새봉 농업생태공원 단오텃밭에서 가지 두 주를 베어내고 오이 넝쿨을 옮기면서 노각을 만났다. 폭염이 대지를 달굴 때 오이 모종을 옮겨 심으면서 제대로 살 수 있을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가지 잎에 가려진 덕분에 이 오이는 노각이 되었던 것이다.
주목 받지 못 하면서도 착실히 내실을 다지는 존재들이 많다.
동백씨
교정을 산책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동백씨를 발견했다.
동백꽃이 피었다 지면서 열매가
붉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열매가 익고 벌어져서
씨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동백열매는 지난 폭염 속에서도
부지런히 익었던 모양이다.
오, 자연의 위대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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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10월 토론작품] 부드러운 'ㄴ' 외 21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0.19 조회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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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시-2018-10-채선당.hwp
부드러운 'ㄴ' 외 21편
김성중
나는 난 네가 정말 좋아.
너는 넌 내가 정말 좋니?
'ㄴ'이 들어간 낱말을 찾는다.
나라 나리 놈 님 남 누리 눈 논 노리개
‘-ㄴ다’는 동사 현재형 산다 운다 논다 본다 잔다
형용사 활용형은 아름다운 고운 예쁜 사랑스러운
'ㄴ'이 엎어지면 'ㄱ'이 되고
혹이 하나 붙으면 'ㄷ'이 된다.
여자 이름에는 'ㄴ'이 많기도 많다.
민지 지민 지은 서윤 윤지 지윤 노라
시험 감독을 하면서 좌석표를 보니까
어느 여자반은 서른 한 명 중에서
스물 일곱 명의 이름에 'ㄴ'이 들어 있다.
남자 이름 중에도 'ㄴ'이 많다.
승권 안수 찬흠 성윤 선빈 선형 형선
만호 호만 민준 유준 민호 민수
수민 주민 우권 권호 호연 준태 태준
그래 그래 ㄴ을 넣으면
뭐든지 부드러워진다.
해직수첩 사진
어느 해직 선배가 보내온
해직교사 수첩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눈물이 난다.
서른 즈음의 사진
사진 속 사내의 얼굴
세상을 날카롭게 쏘아보는 눈
지금은 세파에 닳아서
두루뭉술해진 눈.
단오반텃밭 구억배추와 무
이슬을 머금은 이파리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다.
대지에 단단히 뿌리 박은
저 구억배추와 무의 당당함
벌레마저 범접하지 못 할
저 카리스마를 본다.
나의 다리는 흔들리는데
텃밭의 무와 배추는 강철 같다.
수다
너를 만나면
무슨 얘기든 하고 싶다.
네가 무슨 얘기를 해도
나는 재미가 있다.
내가 하는 얘기가 재미 없어도
너는 재미 있게 들어준다.
내 얘기는 늘 썰렁하지만
너는 늘 웃음보를 터뜨린다.
너를 만나면
늘 수다를 떨고 싶다.
첨단대교 풍경
바람이 서늘한 영산강에서
가을을 온몸으로 느낀다.
맑은 하늘과 맑은 공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진다면
내 걱정은 기우이리라.
강가 버드나무 옆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서
세월을 낚는 강태공을 보았다.
가을이 물든 강물을 보면서
가을 강처럼 말라야하리라
다짐을 한다.
친구가 운영하는 골프연습장을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내가 골프를 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복도 순회 감독
끊임없이 복도를 왔다 갔다 한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풀고 있다.
감독교사는 매의 눈으로 학생들을 감시한다.
불공정정행위를 없애려고 한다.
나는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복도를 걷고 또 걷는다.
끝종이 울릴 때까지
화장실에 가는 학생이 있는가?
시험지에 이상은 없는가?
OMR카드는 부족하지 않는가?
시험문제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러 다니는
출제교사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시험을 보는 동안 학교는 초긴장 상태다.
무사히 시험이 끝나기를 기도한다.
시험 종료 10분전임을 알리는 방송이 반갑다.
시험지를 넘기는 소리
마킹하는 소리
서술형 답을 고치는 소리
기침소리
한숨소리
드디어 시험 끝종이 울린다.
가을바람
어젯밤에 비가 내리고
지금 가을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창문 틈으로 들려오는
요란한 바람소리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
배롱나무꽃은 시들어 가고
금목서꽃도 가을비에 시들고
성급한 나뭇잎은 벌써 단풍으로 물들고
내 마음에도
가을바람이 불어오는가
왠지 허전한 마음
목련 열매와 새
전교조 분회모임 때 찾아간
담양 황금소나무 정원
백목련 자목련 나무에 빨간 열매가 열려 있다.
열매 꼬투리가 벌어진 사이로
빠알간 씨가 보인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얼른 씨를 빼물고
가지에 앉아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지난 봄날 화려하게 꽃피어
벌나비를 부르던 백목련과 자목련
이 가을에는 빠알간 열매로
빠알갛게 익은 씨로
새들을 유혹한다.
동백씨
빠알간 동백꽃이 지고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
동백 열매 붉게 익어서 마음이 설레는데
동백 열매의 꼬투리가 세 쪽으로
벌어지면 둥그렇게 모여 있던
까만 동백씨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동백 열매 하나에
까만 씨가 다섯 개에서 여덟 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있다.
밤
까만 밤이다.
등불을 훤하게 켜고 책을 읽는다.
텔레비전을 꺼버린 밤은 고요하다.
이 고요한 밤에 명상에 잠기리라.
대낮의 소음은 맹렬하다.
온갖 소리들이 귓청을 때린다.
그러나 밤이 되면 소음도 잠이 든다.
밤은 차분해지는 시간이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이다.
어떤 시화전
네모 반듯한 판넬이 아니고
이상한 모양의 판넬에 시를 적었다.
어떤 학생들은
엄마 몸빼에 시를 써서
세워 놓은 나무 가지에 걸었다.
설립자 묘소 앞에 전시한 작품들
국어과 출신 교감선생님은 오시지 않고
나는 문학써클 지도교사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았던
1988년 가을
시화전이 열리던
금호고등학교 교정
축시를 쓰던 시절
축하하는 마음이 넘쳐나거나
간절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나는 축시를 여러 편 썼지.
고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동창회 프로그램에
처음 축시를 썼지.
전교조 죽회분회 창립식 때
번창하라는 축시를 읽었지.
서울 미아리에서 선배 결혼식 때
다방에서 축시를 다듬었지.
서울 강남에서 친구 결혼식에서 축시를 읽었지.
KBC 방송국홀에서
후배인 미술교사 결혼식 축시를
읽으며 하객들을 웃겼지.
광주 어느 예식장에서
국어과 후배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의미심장한 축시를 읽었지.
2003년인가에는 신양파크호텔 홀에서
신부인 선배 국어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나마스테를 넣은
축시를 낭독해서
식장 분위기를 띄웠지.
의정부에서
선배 부친 팔순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가족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지.
광주일고 개교 70주년을 기념하여
'일고여,일고인이여'라는 장시를
학생들에게 낭독하게 하여
기념식장을 뜨겁게 달궜지.
2012년인가
전교조 성덕고등학교 분회 창립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행사를
빚나게 했었지.
나는 축시를 쓰고 낭독할 때마다
축하하는 마음과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뿍 담았지.
언제 축시를 쓸지
알 수 없는 요즘
축시를 쓰던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은행
출근길에 향토박물관 정류소로
시내버스를 타러 가는데
길바닥에 은행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은행을
사람들은 피한다.
나는 수억 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를
냄새가 난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그 놀라운 생명력 앞에서
겸허하게 고개를 숙였다.
한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내가 자랑스러울 수 있게 해주는
그리하여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언제라도 너를 불러내어 멋진 글을 쓸 수 있어서
나는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만약 내가 너를 몰랐다면
내 삶의 대부분은 어두운 터널
너와 더불어 나의 인생은 늘 즐거웠으니
이제 나는 너에게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하겠다.
내가 너를 만난 어린 꼬마였던 때부터
날마다 눈을 부릅뜨고 침발라 책장을 넘기는 지금까지
너에 대한 자부심이 무장 커졌고
너를 더 잘 쓰려고 노력했는데
날마다 아파하고 망가지는 너를 보면서
나는 더욱 더 너를 사랑할 것을 다짐한다.
생명력
가지가 사정없이 잘려나간
첨단우물살구나무가 잘려나간
가지 바로 앞에서 새로운
가지를 내밀었다.
잘려나간 가지를 그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살구나무는 이 가을에
새로운 가지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여리지만 올 겨울을
넘기고 새봄이 오면
가지에 화사한 꽃등을 달고
우리 앞에 환하게 웃으리라.
돌멩이 두 개
운명이었을까?
그 돌멩이는 왜 내 손을 떠났을까?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나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페퍼포그차를 향해
돌멩이 두 개를 힘차게 던졌다.
1981년 9월 29일
중앙도서관 앞에서 시작된 시위는
엄청나게 격렬했다.
담을 넘어서 시내로 진출하기도 했다.
반제 반파쇼 민중 민주 결의대회
내가 던진 돌멩이는 분노하는 돌멩이였다.
나는 붙잡혀서 닭장차에 실려
서부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돌멩이 두 개는 운명이었을까?
뿌리
고추는 뿌리가 얕아서
비바람이 치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래서 반드시 지줏대를 세우고 고
춧대를 묶어주어야 한다.
가지는 뿌리가 깊어서
1미터까지 땅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짓대를 뽑으려면 몹시 힘이 든다.
식물도 사람도 뿌리가 다 다르다.
가지 뿌리
어제 베어낸 가지의
밑둥을 잡고
흔들어서
가지 뿌리를 뽑았다.
뿌리가 단단히
흙을 쥐고 있어서
뽑는데 애를 먹었다.
대지에 굳게
뿌리를 박은 가지는
숱하게 꽃을 피우고
가지를 매달았었다.
영산포장
영산포장에 갔다.
생조기가 싸다.
3만원에 30마리다.
다른 해산물도 싸다.
시장 앞 금강식당에서
조기매운탕에 점심을 먹었다.
2인분에 12,000원이다.
조기가 10마리나 들어있다.
점심상이 푸짐하다.
영산포 인심이 푸짐하다.
고추
오늘 저녁에 상추쌈밥을 먹었다. 학교 텃밭에서 따온 상추에 밥과 고추와 가지볶음과 김치를 싸서 먹었다. 아, 매워! 고추가 너무 매워서 눈물을 한참이나 흘렸다. 눈물을 흘리고 났더니 카타르시다. 정화다.
가끔씩 눈물을 흘려야 하겠다. 요새 울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 울고 싶을 때는 체면 차리지 말고 울어버리자.
오늘 매운 고추가 내 생의 감각을 살려놓았다.
노각
일곡동 한새봉 농업생태공원 단오텃밭에서 가지 두 주를 베어내고 오이 넝쿨을 옮기면서 노각을 만났다. 폭염이 대지를 달굴 때 오이 모종을 옮겨 심으면서 제대로 살 수 있을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가지 잎에 가려진 덕분에 이 오이는 노각이 되었던 것이다.
주목 받지 못 하면서도 착실히 내실을 다지는 존재들이 많다.
동백씨
교정을 산책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동백씨를 발견했다.
동백꽃이 피었다 지면서 열매가
붉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열매가 익고 벌어져서
씨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동백열매는 지난 폭염 속에서도
부지런히 익었던 모양이다.
오, 자연의 위대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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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송태웅 시인다음최승권 10월 토론작품 : 늦가을 일절(一節)
[김성중 10월 토론작품] 부드러운 'ㄴ' 외 21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0.19 조회수:1
댓글0
 금시-2018-10-채선당.hwp
부드러운 'ㄴ' 외 21편
김성중
나는 난 네가 정말 좋아.
너는 넌 내가 정말 좋니?
'ㄴ'이 들어간 낱말을 찾는다.
나라 나리 놈 님 남 누리 눈 논 노리개
‘-ㄴ다’는 동사 현재형 산다 운다 논다 본다 잔다
형용사 활용형은 아름다운 고운 예쁜 사랑스러운
'ㄴ'이 엎어지면 'ㄱ'이 되고
혹이 하나 붙으면 'ㄷ'이 된다.
여자 이름에는 'ㄴ'이 많기도 많다.
민지 지민 지은 서윤 윤지 지윤 노라
시험 감독을 하면서 좌석표를 보니까
어느 여자반은 서른 한 명 중에서
스물 일곱 명의 이름에 'ㄴ'이 들어 있다.
남자 이름 중에도 'ㄴ'이 많다.
승권 안수 찬흠 성윤 선빈 선형 형선
만호 호만 민준 유준 민호 민수
수민 주민 우권 권호 호연 준태 태준
그래 그래 ㄴ을 넣으면
뭐든지 부드러워진다.
해직수첩 사진
어느 해직 선배가 보내온
해직교사 수첩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눈물이 난다.
서른 즈음의 사진
사진 속 사내의 얼굴
세상을 날카롭게 쏘아보는 눈
지금은 세파에 닳아서
두루뭉술해진 눈.
단오반텃밭 구억배추와 무
이슬을 머금은 이파리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다.
대지에 단단히 뿌리 박은
저 구억배추와 무의 당당함
벌레마저 범접하지 못 할
저 카리스마를 본다.
나의 다리는 흔들리는데
텃밭의 무와 배추는 강철 같다.
수다
너를 만나면
무슨 얘기든 하고 싶다.
네가 무슨 얘기를 해도
나는 재미가 있다.
내가 하는 얘기가 재미 없어도
너는 재미 있게 들어준다.
내 얘기는 늘 썰렁하지만
너는 늘 웃음보를 터뜨린다.
너를 만나면
늘 수다를 떨고 싶다.
첨단대교 풍경
바람이 서늘한 영산강에서
가을을 온몸으로 느낀다.
맑은 하늘과 맑은 공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진다면
내 걱정은 기우이리라.
강가 버드나무 옆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서
세월을 낚는 강태공을 보았다.
가을이 물든 강물을 보면서
가을 강처럼 말라야하리라
다짐을 한다.
친구가 운영하는 골프연습장을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내가 골프를 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복도 순회 감독
끊임없이 복도를 왔다 갔다 한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풀고 있다.
감독교사는 매의 눈으로 학생들을 감시한다.
불공정정행위를 없애려고 한다.
나는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복도를 걷고 또 걷는다.
끝종이 울릴 때까지
화장실에 가는 학생이 있는가?
시험지에 이상은 없는가?
OMR카드는 부족하지 않는가?
시험문제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러 다니는
출제교사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시험을 보는 동안 학교는 초긴장 상태다.
무사히 시험이 끝나기를 기도한다.
시험 종료 10분전임을 알리는 방송이 반갑다.
시험지를 넘기는 소리
마킹하는 소리
서술형 답을 고치는 소리
기침소리
한숨소리
드디어 시험 끝종이 울린다.
가을바람
어젯밤에 비가 내리고
지금 가을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창문 틈으로 들려오는
요란한 바람소리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
배롱나무꽃은 시들어 가고
금목서꽃도 가을비에 시들고
성급한 나뭇잎은 벌써 단풍으로 물들고
내 마음에도
가을바람이 불어오는가
왠지 허전한 마음
목련 열매와 새
전교조 분회모임 때 찾아간
담양 황금소나무 정원
백목련 자목련 나무에 빨간 열매가 열려 있다.
열매 꼬투리가 벌어진 사이로
빠알간 씨가 보인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얼른 씨를 빼물고
가지에 앉아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지난 봄날 화려하게 꽃피어
벌나비를 부르던 백목련과 자목련
이 가을에는 빠알간 열매로
빠알갛게 익은 씨로
새들을 유혹한다.
동백씨
빠알간 동백꽃이 지고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
동백 열매 붉게 익어서 마음이 설레는데
동백 열매의 꼬투리가 세 쪽으로
벌어지면 둥그렇게 모여 있던
까만 동백씨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동백 열매 하나에
까만 씨가 다섯 개에서 여덟 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있다.
밤
까만 밤이다.
등불을 훤하게 켜고 책을 읽는다.
텔레비전을 꺼버린 밤은 고요하다.
이 고요한 밤에 명상에 잠기리라.
대낮의 소음은 맹렬하다.
온갖 소리들이 귓청을 때린다.
그러나 밤이 되면 소음도 잠이 든다.
밤은 차분해지는 시간이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이다.
어떤 시화전
네모 반듯한 판넬이 아니고
이상한 모양의 판넬에 시를 적었다.
어떤 학생들은
엄마 몸빼에 시를 써서
세워 놓은 나무 가지에 걸었다.
설립자 묘소 앞에 전시한 작품들
국어과 출신 교감선생님은 오시지 않고
나는 문학써클 지도교사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았던
1988년 가을
시화전이 열리던
금호고등학교 교정
축시를 쓰던 시절
축하하는 마음이 넘쳐나거나
간절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나는 축시를 여러 편 썼지.
고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동창회 프로그램에
처음 축시를 썼지.
전교조 죽회분회 창립식 때
번창하라는 축시를 읽었지.
서울 미아리에서 선배 결혼식 때
다방에서 축시를 다듬었지.
서울 강남에서 친구 결혼식에서 축시를 읽었지.
KBC 방송국홀에서
후배인 미술교사 결혼식 축시를
읽으며 하객들을 웃겼지.
광주 어느 예식장에서
국어과 후배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의미심장한 축시를 읽었지.
2003년인가에는 신양파크호텔 홀에서
신부인 선배 국어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나마스테를 넣은
축시를 낭독해서
식장 분위기를 띄웠지.
의정부에서
선배 부친 팔순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가족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지.
광주일고 개교 70주년을 기념하여
'일고여,일고인이여'라는 장시를
학생들에게 낭독하게 하여
기념식장을 뜨겁게 달궜지.
2012년인가
전교조 성덕고등학교 분회 창립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행사를
빚나게 했었지.
나는 축시를 쓰고 낭독할 때마다
축하하는 마음과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뿍 담았지.
언제 축시를 쓸지
알 수 없는 요즘
축시를 쓰던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은행
출근길에 향토박물관 정류소로
시내버스를 타러 가는데
길바닥에 은행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은행을
사람들은 피한다.
나는 수억 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를
냄새가 난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그 놀라운 생명력 앞에서
겸허하게 고개를 숙였다.
한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내가 자랑스러울 수 있게 해주는
그리하여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언제라도 너를 불러내어 멋진 글을 쓸 수 있어서
나는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만약 내가 너를 몰랐다면
내 삶의 대부분은 어두운 터널
너와 더불어 나의 인생은 늘 즐거웠으니
이제 나는 너에게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하겠다.
내가 너를 만난 어린 꼬마였던 때부터
날마다 눈을 부릅뜨고 침발라 책장을 넘기는 지금까지
너에 대한 자부심이 무장 커졌고
너를 더 잘 쓰려고 노력했는데
날마다 아파하고 망가지는 너를 보면서
나는 더욱 더 너를 사랑할 것을 다짐한다.
생명력
가지가 사정없이 잘려나간
첨단우물살구나무가 잘려나간
가지 바로 앞에서 새로운
가지를 내밀었다.
잘려나간 가지를 그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살구나무는 이 가을에
새로운 가지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여리지만 올 겨울을
넘기고 새봄이 오면
가지에 화사한 꽃등을 달고
우리 앞에 환하게 웃으리라.
돌멩이 두 개
운명이었을까?
그 돌멩이는 왜 내 손을 떠났을까?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나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페퍼포그차를 향해
돌멩이 두 개를 힘차게 던졌다.
1981년 9월 29일
중앙도서관 앞에서 시작된 시위는
엄청나게 격렬했다.
담을 넘어서 시내로 진출하기도 했다.
반제 반파쇼 민중 민주 결의대회
내가 던진 돌멩이는 분노하는 돌멩이였다.
나는 붙잡혀서 닭장차에 실려
서부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돌멩이 두 개는 운명이었을까?
뿌리
고추는 뿌리가 얕아서
비바람이 치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래서 반드시 지줏대를 세우고 고
춧대를 묶어주어야 한다.
가지는 뿌리가 깊어서
1미터까지 땅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짓대를 뽑으려면 몹시 힘이 든다.
식물도 사람도 뿌리가 다 다르다.
가지 뿌리
어제 베어낸 가지의
밑둥을 잡고
흔들어서
가지 뿌리를 뽑았다.
뿌리가 단단히
흙을 쥐고 있어서
뽑는데 애를 먹었다.
대지에 굳게
뿌리를 박은 가지는
숱하게 꽃을 피우고
가지를 매달았었다.
영산포장
영산포장에 갔다.
생조기가 싸다.
3만원에 30마리다.
다른 해산물도 싸다.
시장 앞 금강식당에서
조기매운탕에 점심을 먹었다.
2인분에 12,000원이다.
조기가 10마리나 들어있다.
점심상이 푸짐하다.
영산포 인심이 푸짐하다.
고추
오늘 저녁에 상추쌈밥을 먹었다. 학교 텃밭에서 따온 상추에 밥과 고추와 가지볶음과 김치를 싸서 먹었다. 아, 매워! 고추가 너무 매워서 눈물을 한참이나 흘렸다. 눈물을 흘리고 났더니 카타르시다. 정화다.
가끔씩 눈물을 흘려야 하겠다. 요새 울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 울고 싶을 때는 체면 차리지 말고 울어버리자.
오늘 매운 고추가 내 생의 감각을 살려놓았다.
노각
일곡동 한새봉 농업생태공원 단오텃밭에서 가지 두 주를 베어내고 오이 넝쿨을 옮기면서 노각을 만났다. 폭염이 대지를 달굴 때 오이 모종을 옮겨 심으면서 제대로 살 수 있을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가지 잎에 가려진 덕분에 이 오이는 노각이 되었던 것이다.
주목 받지 못 하면서도 착실히 내실을 다지는 존재들이 많다.
동백씨
교정을 산책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동백씨를 발견했다.
동백꽃이 피었다 지면서 열매가
붉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열매가 익고 벌어져서
씨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동백열매는 지난 폭염 속에서도
부지런히 익었던 모양이다.
오, 자연의 위대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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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송태웅 시인다음최승권 10월 토론작품 : 늦가을 일절(一節)
[김성중 10월 토론작품] 부드러운 'ㄴ' 외 21편

작성자:단오작성시간:2018.10.19 조회수:1
댓글0
 금시-2018-10-채선당.hwp
부드러운 'ㄴ' 외 21편
김성중
나는 난 네가 정말 좋아.
너는 넌 내가 정말 좋니?
'ㄴ'이 들어간 낱말을 찾는다.
나라 나리 놈 님 남 누리 눈 논 노리개
‘-ㄴ다’는 동사 현재형 산다 운다 논다 본다 잔다
형용사 활용형은 아름다운 고운 예쁜 사랑스러운
'ㄴ'이 엎어지면 'ㄱ'이 되고
혹이 하나 붙으면 'ㄷ'이 된다.
여자 이름에는 'ㄴ'이 많기도 많다.
민지 지민 지은 서윤 윤지 지윤 노라
시험 감독을 하면서 좌석표를 보니까
어느 여자반은 서른 한 명 중에서
스물 일곱 명의 이름에 'ㄴ'이 들어 있다.
남자 이름 중에도 'ㄴ'이 많다.
승권 안수 찬흠 성윤 선빈 선형 형선
만호 호만 민준 유준 민호 민수
수민 주민 우권 권호 호연 준태 태준
그래 그래 ㄴ을 넣으면
뭐든지 부드러워진다.
해직수첩 사진
어느 해직 선배가 보내온
해직교사 수첩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눈물이 난다.
서른 즈음의 사진
사진 속 사내의 얼굴
세상을 날카롭게 쏘아보는 눈
지금은 세파에 닳아서
두루뭉술해진 눈.
단오반텃밭 구억배추와 무
이슬을 머금은 이파리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다.
대지에 단단히 뿌리 박은
저 구억배추와 무의 당당함
벌레마저 범접하지 못 할
저 카리스마를 본다.
나의 다리는 흔들리는데
텃밭의 무와 배추는 강철 같다.
수다
너를 만나면
무슨 얘기든 하고 싶다.
네가 무슨 얘기를 해도
나는 재미가 있다.
내가 하는 얘기가 재미 없어도
너는 재미 있게 들어준다.
내 얘기는 늘 썰렁하지만
너는 늘 웃음보를 터뜨린다.
너를 만나면
늘 수다를 떨고 싶다.
첨단대교 풍경
바람이 서늘한 영산강에서
가을을 온몸으로 느낀다.
맑은 하늘과 맑은 공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진다면
내 걱정은 기우이리라.
강가 버드나무 옆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서
세월을 낚는 강태공을 보았다.
가을이 물든 강물을 보면서
가을 강처럼 말라야하리라
다짐을 한다.
친구가 운영하는 골프연습장을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내가 골프를 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복도 순회 감독
끊임없이 복도를 왔다 갔다 한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풀고 있다.
감독교사는 매의 눈으로 학생들을 감시한다.
불공정정행위를 없애려고 한다.
나는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복도를 걷고 또 걷는다.
끝종이 울릴 때까지
화장실에 가는 학생이 있는가?
시험지에 이상은 없는가?
OMR카드는 부족하지 않는가?
시험문제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러 다니는
출제교사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시험을 보는 동안 학교는 초긴장 상태다.
무사히 시험이 끝나기를 기도한다.
시험 종료 10분전임을 알리는 방송이 반갑다.
시험지를 넘기는 소리
마킹하는 소리
서술형 답을 고치는 소리
기침소리
한숨소리
드디어 시험 끝종이 울린다.
가을바람
어젯밤에 비가 내리고
지금 가을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창문 틈으로 들려오는
요란한 바람소리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
배롱나무꽃은 시들어 가고
금목서꽃도 가을비에 시들고
성급한 나뭇잎은 벌써 단풍으로 물들고
내 마음에도
가을바람이 불어오는가
왠지 허전한 마음
목련 열매와 새
전교조 분회모임 때 찾아간
담양 황금소나무 정원
백목련 자목련 나무에 빨간 열매가 열려 있다.
열매 꼬투리가 벌어진 사이로
빠알간 씨가 보인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얼른 씨를 빼물고
가지에 앉아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지난 봄날 화려하게 꽃피어
벌나비를 부르던 백목련과 자목련
이 가을에는 빠알간 열매로
빠알갛게 익은 씨로
새들을 유혹한다.
동백씨
빠알간 동백꽃이 지고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
동백 열매 붉게 익어서 마음이 설레는데
동백 열매의 꼬투리가 세 쪽으로
벌어지면 둥그렇게 모여 있던
까만 동백씨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동백 열매 하나에
까만 씨가 다섯 개에서 여덟 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있다.
밤
까만 밤이다.
등불을 훤하게 켜고 책을 읽는다.
텔레비전을 꺼버린 밤은 고요하다.
이 고요한 밤에 명상에 잠기리라.
대낮의 소음은 맹렬하다.
온갖 소리들이 귓청을 때린다.
그러나 밤이 되면 소음도 잠이 든다.
밤은 차분해지는 시간이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이다.
어떤 시화전
네모 반듯한 판넬이 아니고
이상한 모양의 판넬에 시를 적었다.
어떤 학생들은
엄마 몸빼에 시를 써서
세워 놓은 나무 가지에 걸었다.
설립자 묘소 앞에 전시한 작품들
국어과 출신 교감선생님은 오시지 않고
나는 문학써클 지도교사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았던
1988년 가을
시화전이 열리던
금호고등학교 교정
축시를 쓰던 시절
축하하는 마음이 넘쳐나거나
간절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나는 축시를 여러 편 썼지.
고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동창회 프로그램에
처음 축시를 썼지.
전교조 죽회분회 창립식 때
번창하라는 축시를 읽었지.
서울 미아리에서 선배 결혼식 때
다방에서 축시를 다듬었지.
서울 강남에서 친구 결혼식에서 축시를 읽었지.
KBC 방송국홀에서
후배인 미술교사 결혼식 축시를
읽으며 하객들을 웃겼지.
광주 어느 예식장에서
국어과 후배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의미심장한 축시를 읽었지.
2003년인가에는 신양파크호텔 홀에서
신부인 선배 국어교사의 결혼을 축하하며
나마스테를 넣은
축시를 낭독해서
식장 분위기를 띄웠지.
의정부에서
선배 부친 팔순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가족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지.
광주일고 개교 70주년을 기념하여
'일고여,일고인이여'라는 장시를
학생들에게 낭독하게 하여
기념식장을 뜨겁게 달궜지.
2012년인가
전교조 성덕고등학교 분회 창립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여 행사를
빚나게 했었지.
나는 축시를 쓰고 낭독할 때마다
축하하는 마음과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뿍 담았지.
언제 축시를 쓸지
알 수 없는 요즘
축시를 쓰던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은행
출근길에 향토박물관 정류소로
시내버스를 타러 가는데
길바닥에 은행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은행을
사람들은 피한다.
나는 수억 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를
냄새가 난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그 놀라운 생명력 앞에서
겸허하게 고개를 숙였다.
한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내가 자랑스러울 수 있게 해주는
그리하여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언제라도 너를 불러내어 멋진 글을 쓸 수 있어서
나는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만약 내가 너를 몰랐다면
내 삶의 대부분은 어두운 터널
너와 더불어 나의 인생은 늘 즐거웠으니
이제 나는 너에게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하겠다.
내가 너를 만난 어린 꼬마였던 때부터
날마다 눈을 부릅뜨고 침발라 책장을 넘기는 지금까지
너에 대한 자부심이 무장 커졌고
너를 더 잘 쓰려고 노력했는데
날마다 아파하고 망가지는 너를 보면서
나는 더욱 더 너를 사랑할 것을 다짐한다.
생명력
가지가 사정없이 잘려나간
첨단우물살구나무가 잘려나간
가지 바로 앞에서 새로운
가지를 내밀었다.
잘려나간 가지를 그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살구나무는 이 가을에
새로운 가지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여리지만 올 겨울을
넘기고 새봄이 오면
가지에 화사한 꽃등을 달고
우리 앞에 환하게 웃으리라.
돌멩이 두 개
운명이었을까?
그 돌멩이는 왜 내 손을 떠났을까?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나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페퍼포그차를 향해
돌멩이 두 개를 힘차게 던졌다.
1981년 9월 29일
중앙도서관 앞에서 시작된 시위는
엄청나게 격렬했다.
담을 넘어서 시내로 진출하기도 했다.
반제 반파쇼 민중 민주 결의대회
내가 던진 돌멩이는 분노하는 돌멩이였다.
나는 붙잡혀서 닭장차에 실려
서부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돌멩이 두 개는 운명이었을까?
뿌리
고추는 뿌리가 얕아서
비바람이 치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래서 반드시 지줏대를 세우고 고
춧대를 묶어주어야 한다.
가지는 뿌리가 깊어서
1미터까지 땅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짓대를 뽑으려면 몹시 힘이 든다.
식물도 사람도 뿌리가 다 다르다.
가지 뿌리
어제 베어낸 가지의
밑둥을 잡고
흔들어서
가지 뿌리를 뽑았다.
뿌리가 단단히
흙을 쥐고 있어서
뽑는데 애를 먹었다.
대지에 굳게
뿌리를 박은 가지는
숱하게 꽃을 피우고
가지를 매달았었다.
영산포장
영산포장에 갔다.
생조기가 싸다.
3만원에 30마리다.
다른 해산물도 싸다.
시장 앞 금강식당에서
조기매운탕에 점심을 먹었다.
2인분에 12,000원이다.
조기가 10마리나 들어있다.
점심상이 푸짐하다.
영산포 인심이 푸짐하다.
고추
오늘 저녁에 상추쌈밥을 먹었다. 학교 텃밭에서 따온 상추에 밥과 고추와 가지볶음과 김치를 싸서 먹었다. 아, 매워! 고추가 너무 매워서 눈물을 한참이나 흘렸다. 눈물을 흘리고 났더니 카타르시다. 정화다.
가끔씩 눈물을 흘려야 하겠다. 요새 울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 울고 싶을 때는 체면 차리지 말고 울어버리자.
오늘 매운 고추가 내 생의 감각을 살려놓았다.
노각
일곡동 한새봉 농업생태공원 단오텃밭에서 가지 두 주를 베어내고 오이 넝쿨을 옮기면서 노각을 만났다. 폭염이 대지를 달굴 때 오이 모종을 옮겨 심으면서 제대로 살 수 있을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가지 잎에 가려진 덕분에 이 오이는 노각이 되었던 것이다.
주목 받지 못 하면서도 착실히 내실을 다지는 존재들이 많다.
동백씨
교정을 산책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동백씨를 발견했다.
동백꽃이 피었다 지면서 열매가
붉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열매가 익고 벌어져서
씨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동백열매는 지난 폭염 속에서도
부지런히 익었던 모양이다.
오, 자연의 위대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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