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산의 시
2017. 12. 9. 07:36
통합 게시판
[김성중 12월 토론 작품]:종로에서 낙짓집 찾기 외 17편

단오작성시간2017.12.07 조회수4
0
 김성중-금시-2017-송년회.hwp
1. 종로에서 낙짓집 찾기
어제 저녁에 종로1가 르메이에르 스포츠센터
건물 2층에 있는 낙짓집을 찾아서 헤맸다.
교보문고 배움에서 열린 북콘서트가 끝나고
뒤풀이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아무리 여기저기 찾아봐도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안 보인다.
엘리베이터는 5층부터 서고
외부 계단은 막혀 있다.
서울 여자들과 함께 가는데
그녀들도 2층으로 가는 길을 못 찾는다.
다시 처음에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곳으로
돌아가서 눈을 부릅뜨고 보니까
계단으로 올라가는 문이 보인다.
숨을 헐떡이며 낙짓집을 찾아갔더니
일행은 벌써 좌정해 있다.
매운 낙지에 밥을 비벼먹으며
소주 말고 물만 마시다가
화장실에 가면서 보니까
대로변에 에스컬레이터가 떡 하니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2. 병뚜껑 돌리기
유리병에 담겨 있는 죽염을
작은 플라스틱병에 덜고 나서
유리병 뚜껑을 돌려서 닫는데,
아무리 돌려도 뚜껑이 닫히지 않는다.
뚜껑을 돌리고 돌려도 닫히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하여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플라스틱병 뚜껑을 돌리고 있었다.
이 세상에 짝이 맞지 않는 것들이 많다.
너와 나도 그렇다.
3. 신림역 회군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출판기념 토크쇼가 끝난 뒤에
매운 낙지에 찬물만 들이켜다가
신림동 애들 집으로 가려고
종각역에서 1호선 지하철을 탔다.
신도림역에서 환승하여 신림역으로 가다가
옛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어 있다가
급히 내리려고 보니 봉천역이다.
음악을 듣다가 신림역을 놓쳐버린 것이다.
다시 신림역으로 돌아가서
신림역 4번 출구를 나와 관악5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인 신림현대아파트 입구에서 내렸다.
조금 걸어서 내려오니 애들이 사는 골목길이다.
아는 얼굴이 보여서 반가웠다.
이제 안심이다.
4. 한가한 살구나무
늦가을 비바람에
살구나무 이파리가 모두 떨어졌다.
이제 살구나무는 겨울잠을 자리라.
살구나무는 지금 한가하다.
근심 걱정 다 털어버리고
교무실을 올려다보며 하품을 하고 있다.
지금 학생들은 전국연합학력평가
탐구영역 시험지를 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교무실에서
"내편 들어줘 고마워요"를 읽고 있다.
기말고사 출제도 해야 한다.
살구나무는 한가하다.
5. 월계동 골목길
임방울대로 아래쪽 월계동엔 다세대 주택이 많다.
5층짜리 아파트가 월계동 장고분 근처에 있고
대부분의 집들이 다세대주택이다.
규모가 큰 건물은 학교다.
월계초등학교,숭덕고등학교,천곡중학교,
산월초등학교,첨단중학교,첨단고등학교,
방송통신대학교,남부대학교,광주전자공업고등학교
무양서원도 있다.
주택이 많으니 골목길도 많다.
골목길을 다 둘러보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학교 주변이야 늘 보아서 익숙하지만
약간만 벗어나도 길을 잃기 십상이다.
학교 주변을 익힐 때쯤이면
어김없이 바람이 분다.
동남풍이 분다.
6. 복판과 가장자리
가운데, 한가운데, 복판, 한복판, 가, 변두리,
가장자리, 중심, 중앙, 핵심, 변방, 지방, 변경
처음, 중간, 끝, 시작, 종말, 마무리, 시초, 태초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처음과 끝이 똑 같아야 한다.
시종여일.
용두사미는 사절한다.
끝이 좋아야 한다.
냄비에 물을 담아 끓이면 어디부터 끓는가?
복판인가, 가장자리인가?
나무의 뿌리는 시작인가?
우듬지는 끝인가?
나뭇껍질은 가장자리인가?
나의 피부가 가장자리라면 나의 중심은 어디인가?
심장, 간, 뇌인가?
아니면 피인가?
나의 한복판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나라, 지구, 우주, 은하
중심은 어디이고, 무엇인가?
내 사유의 핵심은 무엇인가?
내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
7. 선생님, 처음 봅니다
오늘 3교시에 수업을 끝낼 무렵 한 학생이 나를 보며
"선생님, 처음 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도 본 적이 없는 학생이었다.
내가 2학기에 수업을 하는 학급이 매우 많다.
그래서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연결 짓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얼굴을 처음 보다니...
이 학생은 수업시간마다 잠을 잔 모양이다.
그렇게 잠을 자고도 또 잠을 자는
학생을 보면 기이하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는 참 기이한 곳이다.
8. 2차 후원금 중단
은행에 가서 여름에 이어서, 늦가을에,
2차로 후원금 자동이체(CMS) 여러 건을 해지하였다.
융자받은 학자금을 갚아야 한다.
이제는 마음밖에 없다.
세월이 빨리 흘러가기를 바란다.
내가 해직교사였을 때
나에게 후원금을 전해준
금호고 해직동료들에게 늦게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1989년부터 1994년 2월까지
후원금을 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9. 전공체험학습과 자판기
첨단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 40명이 광주보건대학교 응급구조학과와 물리치료학과에서 전공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캠퍼스를 이리저리 걷다가 다윗관에서 커피를 한 잔 뽑으려고 1,000원짜리 지폐를 투입하고 버튼을 눌렀습니다. 700원이 남아서 반환 손잡이를 돌렸지만 동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율무차를 눌렀습니다. 그래도 400원이 남길래 코코아를 눌렀습니다. 그러자 100원짜리 동전이 튀어나왔습니다. 갑자기 커피, 코코아, 율무차를 연달아 마시게 되었습니다.
10. 만남과 떠남
만나면 떠나야 한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물은 썩는다.
바람은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저녁에 만난 친구는 밤에 헤어져야 한다.
아침에 학교에 온 학생들은 방과후에 하교해야 한다.
나무나 풀은 뿌리를 내리고 한평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식물은 씨앗을 바람에 날리거나 물에 띄우거나
동물의 먹이가 되어 이동을 하는 것이다.
나는 바람처럼 떠도는 존재다.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는 않다.
때가 되면 떠나는 것이다.
11. 슬픈 쪽지
학생들이 써낸 쪽지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학생들 모두 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쪽지는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어떤 쪽지는 나를 슬프게 한다.
오늘 어떤 쪽지가 나를 슬프게 했다.
수업시간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내용의 쪽지는 나를 슬프게 한다.
수업 내용이 없다는 얘기다.
아니 이럴 수가!
수업이 재미가 없다는 쪽지도
나를 슬프게 한다.
어떻게 해야 수업이 재밌을까?
그래도 나는 쪽지를 사랑한다.
12. 교장선생님
오늘 아침에 교정을 산책하다가 교문 쪽으로 가니까 이름을 모르는 여학생들이 "교장선생님!"하고 부른다. 나를 부르는 소리다. 아이들이 장난을 치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농구장 근처 벤치에 앉아 있던 여학생들이 나를 교장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학생들은 날마다 만보걷기를 하는 내가 학교 여기저기를 점검하고 다니는 교장선생님처럼 보였나 보다. 아니면 담배를 피우고 싶은데 피우지 못하는 학생들을 대리하여 나를 놀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나는 "좀머 씨 이야기"의 좀머 씨처럼 걷고 걸을 뿐이다. 걷다가 담배꽁초를 보면 줍고 그럴 뿐이다. 나는 걷자 선생이다. 교정 선생이다.
13. 옷에 몸 맞추기
아침에 패딩을 입는데 팔이 답답했다. 나는 못 입겠다고 했다. 아내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작년에도 입은 옷이었다. 작년에도 답답했었다. 팔이 꽉 끼어서 답답한 옷을 판 의류업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홈쇼핑에서 구매했다고 한다.
내가 옷에 몸을 맞추어 입을 수는 없다. 옷을 입는 순간 숨이 가빠오는데 날렵하게 보인다고 그 옷을 입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고 패딩을 맞출 수도 없고.
소양강변 12사단 훈련소에서 288밀리미터 훈련화를 신고 훈련을 받다가 발뒤꿈치가 홀라당 까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1981년) 훈련화 하나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던 부패한 군대가 수십 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나를 분노하게 한다.
나는 옷에 내 몸을 맞출 수 없다.
14. 서울대 앞 큰 길에서
나는 그냥 길을 걷고 있었다.
어떤 여인이 강아지를 끌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까 강아지 인형이었다.
그 여인은 하이힐을 손에 들고 있었고
신발을 신지 않았다.
마침 근처 화원의 개는 인형개를 따라가려 하고
화원 주인은 개를 단속하느라 정신이 없고
나도 긴장하면서 흥미롭게 지켜보는데
그녀가 택시를 타고 떠난 자리에
금발 가발이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정신이 나간 여자였을까?
15. 안갯길
가을이 한창인데
진한 안개가
세상을 다 덮고 있었다.
안개 낀 출근길
앞 차 꽁무니를 따라 가면서
앞차가 서버린다면 어쩌나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용두동 사거리에서 승용차 한 대가 고장이 나서 서 있고
경찰관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영산강 첨단대교를 건너서
임방울대로를 힘겹게 달리면서
월계초 가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학교 주차장에 차를 대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2017년 10월 26일이었다.
16. 내 몸
몸은 쇳덩이가 아니다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는
용불용설을 믿었다
건강검진결과는 경고등
핏속에 기름기가 많고
혈압이 약간 높고
음주 적색경고 발령
금주는 필수
유근피차가 내 생명수
마늘죽염환은
장의 노폐물 가스를 빼주고
내 코는 비염을 달고
잠을 잘 때 숨쉬기도 곤란한데
내 몸은 쇳덩이가 아니야
혹사시켜서 미안해
내 몸
17. 얍삽하다
얄밉게도 재빠르게 이익을 챙기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얍삽한 사람이라고 한다. 좋은 말은 아니지만 경쟁사회에서는 비난만 할 것도 아니다.
-수능감독관 추천에서 2학년실 선생님들이 원하는 감독관을 선점했다고 했을 때 내가 한 말
-오늘 분회모임에 1학년실 선생님들이 참석하지 않았을 때 내가 한 말
-인생은 얍삽할 때가 있다
-나 중심으로 세상을 산다. 정말 그래야 한다. 내가 살아야 너를 보살필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야 한다. 너와 더불어.
*얍삽하다:사람이 얕은 꾀를 쓰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려는 태도가 있다-국어사전
18. 몬네 몬네
이 걸 할까
저 걸 할까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확 저질러 버릴까
살짝 해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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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작성시간2017.12.07 조회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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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중-금시-2017-송년회.hwp
1. 종로에서 낙짓집 찾기
어제 저녁에 종로1가 르메이에르 스포츠센터
건물 2층에 있는 낙짓집을 찾아서 헤맸다.
교보문고 배움에서 열린 북콘서트가 끝나고
뒤풀이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아무리 여기저기 찾아봐도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안 보인다.
엘리베이터는 5층부터 서고
외부 계단은 막혀 있다.
서울 여자들과 함께 가는데
그녀들도 2층으로 가는 길을 못 찾는다.
다시 처음에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곳으로
돌아가서 눈을 부릅뜨고 보니까
계단으로 올라가는 문이 보인다.
숨을 헐떡이며 낙짓집을 찾아갔더니
일행은 벌써 좌정해 있다.
매운 낙지에 밥을 비벼먹으며
소주 말고 물만 마시다가
화장실에 가면서 보니까
대로변에 에스컬레이터가 떡 하니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2. 병뚜껑 돌리기
유리병에 담겨 있는 죽염을
작은 플라스틱병에 덜고 나서
유리병 뚜껑을 돌려서 닫는데,
아무리 돌려도 뚜껑이 닫히지 않는다.
뚜껑을 돌리고 돌려도 닫히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하여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플라스틱병 뚜껑을 돌리고 있었다.
이 세상에 짝이 맞지 않는 것들이 많다.
너와 나도 그렇다.
3. 신림역 회군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출판기념 토크쇼가 끝난 뒤에
매운 낙지에 찬물만 들이켜다가
신림동 애들 집으로 가려고
종각역에서 1호선 지하철을 탔다.
신도림역에서 환승하여 신림역으로 가다가
옛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어 있다가
급히 내리려고 보니 봉천역이다.
음악을 듣다가 신림역을 놓쳐버린 것이다.
다시 신림역으로 돌아가서
신림역 4번 출구를 나와 관악5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인 신림현대아파트 입구에서 내렸다.
조금 걸어서 내려오니 애들이 사는 골목길이다.
아는 얼굴이 보여서 반가웠다.
이제 안심이다.
4. 한가한 살구나무
늦가을 비바람에
살구나무 이파리가 모두 떨어졌다.
이제 살구나무는 겨울잠을 자리라.
살구나무는 지금 한가하다.
근심 걱정 다 털어버리고
교무실을 올려다보며 하품을 하고 있다.
지금 학생들은 전국연합학력평가
탐구영역 시험지를 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교무실에서
"내편 들어줘 고마워요"를 읽고 있다.
기말고사 출제도 해야 한다.
살구나무는 한가하다.
5. 월계동 골목길
임방울대로 아래쪽 월계동엔 다세대 주택이 많다.
5층짜리 아파트가 월계동 장고분 근처에 있고
대부분의 집들이 다세대주택이다.
규모가 큰 건물은 학교다.
월계초등학교,숭덕고등학교,천곡중학교,
산월초등학교,첨단중학교,첨단고등학교,
방송통신대학교,남부대학교,광주전자공업고등학교
무양서원도 있다.
주택이 많으니 골목길도 많다.
골목길을 다 둘러보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학교 주변이야 늘 보아서 익숙하지만
약간만 벗어나도 길을 잃기 십상이다.
학교 주변을 익힐 때쯤이면
어김없이 바람이 분다.
동남풍이 분다.
6. 복판과 가장자리
가운데, 한가운데, 복판, 한복판, 가, 변두리,
가장자리, 중심, 중앙, 핵심, 변방, 지방, 변경
처음, 중간, 끝, 시작, 종말, 마무리, 시초, 태초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처음과 끝이 똑 같아야 한다.
시종여일.
용두사미는 사절한다.
끝이 좋아야 한다.
냄비에 물을 담아 끓이면 어디부터 끓는가?
복판인가, 가장자리인가?
나무의 뿌리는 시작인가?
우듬지는 끝인가?
나뭇껍질은 가장자리인가?
나의 피부가 가장자리라면 나의 중심은 어디인가?
심장, 간, 뇌인가?
아니면 피인가?
나의 한복판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나라, 지구, 우주, 은하
중심은 어디이고, 무엇인가?
내 사유의 핵심은 무엇인가?
내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
7. 선생님, 처음 봅니다
오늘 3교시에 수업을 끝낼 무렵 한 학생이 나를 보며
"선생님, 처음 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도 본 적이 없는 학생이었다.
내가 2학기에 수업을 하는 학급이 매우 많다.
그래서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연결 짓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얼굴을 처음 보다니...
이 학생은 수업시간마다 잠을 잔 모양이다.
그렇게 잠을 자고도 또 잠을 자는
학생을 보면 기이하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는 참 기이한 곳이다.
8. 2차 후원금 중단
은행에 가서 여름에 이어서, 늦가을에,
2차로 후원금 자동이체(CMS) 여러 건을 해지하였다.
융자받은 학자금을 갚아야 한다.
이제는 마음밖에 없다.
세월이 빨리 흘러가기를 바란다.
내가 해직교사였을 때
나에게 후원금을 전해준
금호고 해직동료들에게 늦게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1989년부터 1994년 2월까지
후원금을 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9. 전공체험학습과 자판기
첨단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 40명이 광주보건대학교 응급구조학과와 물리치료학과에서 전공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캠퍼스를 이리저리 걷다가 다윗관에서 커피를 한 잔 뽑으려고 1,000원짜리 지폐를 투입하고 버튼을 눌렀습니다. 700원이 남아서 반환 손잡이를 돌렸지만 동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율무차를 눌렀습니다. 그래도 400원이 남길래 코코아를 눌렀습니다. 그러자 100원짜리 동전이 튀어나왔습니다. 갑자기 커피, 코코아, 율무차를 연달아 마시게 되었습니다.
10. 만남과 떠남
만나면 떠나야 한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물은 썩는다.
바람은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저녁에 만난 친구는 밤에 헤어져야 한다.
아침에 학교에 온 학생들은 방과후에 하교해야 한다.
나무나 풀은 뿌리를 내리고 한평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식물은 씨앗을 바람에 날리거나 물에 띄우거나
동물의 먹이가 되어 이동을 하는 것이다.
나는 바람처럼 떠도는 존재다.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는 않다.
때가 되면 떠나는 것이다.
11. 슬픈 쪽지
학생들이 써낸 쪽지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학생들 모두 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쪽지는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어떤 쪽지는 나를 슬프게 한다.
오늘 어떤 쪽지가 나를 슬프게 했다.
수업시간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내용의 쪽지는 나를 슬프게 한다.
수업 내용이 없다는 얘기다.
아니 이럴 수가!
수업이 재미가 없다는 쪽지도
나를 슬프게 한다.
어떻게 해야 수업이 재밌을까?
그래도 나는 쪽지를 사랑한다.
12. 교장선생님
오늘 아침에 교정을 산책하다가 교문 쪽으로 가니까 이름을 모르는 여학생들이 "교장선생님!"하고 부른다. 나를 부르는 소리다. 아이들이 장난을 치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농구장 근처 벤치에 앉아 있던 여학생들이 나를 교장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학생들은 날마다 만보걷기를 하는 내가 학교 여기저기를 점검하고 다니는 교장선생님처럼 보였나 보다. 아니면 담배를 피우고 싶은데 피우지 못하는 학생들을 대리하여 나를 놀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나는 "좀머 씨 이야기"의 좀머 씨처럼 걷고 걸을 뿐이다. 걷다가 담배꽁초를 보면 줍고 그럴 뿐이다. 나는 걷자 선생이다. 교정 선생이다.
13. 옷에 몸 맞추기
아침에 패딩을 입는데 팔이 답답했다. 나는 못 입겠다고 했다. 아내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작년에도 입은 옷이었다. 작년에도 답답했었다. 팔이 꽉 끼어서 답답한 옷을 판 의류업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홈쇼핑에서 구매했다고 한다.
내가 옷에 몸을 맞추어 입을 수는 없다. 옷을 입는 순간 숨이 가빠오는데 날렵하게 보인다고 그 옷을 입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고 패딩을 맞출 수도 없고.
소양강변 12사단 훈련소에서 288밀리미터 훈련화를 신고 훈련을 받다가 발뒤꿈치가 홀라당 까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1981년) 훈련화 하나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던 부패한 군대가 수십 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나를 분노하게 한다.
나는 옷에 내 몸을 맞출 수 없다.
14. 서울대 앞 큰 길에서
나는 그냥 길을 걷고 있었다.
어떤 여인이 강아지를 끌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까 강아지 인형이었다.
그 여인은 하이힐을 손에 들고 있었고
신발을 신지 않았다.
마침 근처 화원의 개는 인형개를 따라가려 하고
화원 주인은 개를 단속하느라 정신이 없고
나도 긴장하면서 흥미롭게 지켜보는데
그녀가 택시를 타고 떠난 자리에
금발 가발이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정신이 나간 여자였을까?
15. 안갯길
가을이 한창인데
진한 안개가
세상을 다 덮고 있었다.
안개 낀 출근길
앞 차 꽁무니를 따라 가면서
앞차가 서버린다면 어쩌나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용두동 사거리에서 승용차 한 대가 고장이 나서 서 있고
경찰관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영산강 첨단대교를 건너서
임방울대로를 힘겹게 달리면서
월계초 가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학교 주차장에 차를 대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2017년 10월 26일이었다.
16. 내 몸
몸은 쇳덩이가 아니다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는
용불용설을 믿었다
건강검진결과는 경고등
핏속에 기름기가 많고
혈압이 약간 높고
음주 적색경고 발령
금주는 필수
유근피차가 내 생명수
마늘죽염환은
장의 노폐물 가스를 빼주고
내 코는 비염을 달고
잠을 잘 때 숨쉬기도 곤란한데
내 몸은 쇳덩이가 아니야
혹사시켜서 미안해
내 몸
17. 얍삽하다
얄밉게도 재빠르게 이익을 챙기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얍삽한 사람이라고 한다. 좋은 말은 아니지만 경쟁사회에서는 비난만 할 것도 아니다.
-수능감독관 추천에서 2학년실 선생님들이 원하는 감독관을 선점했다고 했을 때 내가 한 말
-오늘 분회모임에 1학년실 선생님들이 참석하지 않았을 때 내가 한 말
-인생은 얍삽할 때가 있다
-나 중심으로 세상을 산다. 정말 그래야 한다. 내가 살아야 너를 보살필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야 한다. 너와 더불어.
*얍삽하다:사람이 얕은 꾀를 쓰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려는 태도가 있다-국어사전
18. 몬네 몬네
이 걸 할까
저 걸 할까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확 저질러 버릴까
살짝 해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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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로에서 낙짓집 찾기
어제 저녁에 종로1가 르메이에르 스포츠센터
건물 2층에 있는 낙짓집을 찾아서 헤맸다.
교보문고 배움에서 열린 북콘서트가 끝나고
뒤풀이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아무리 여기저기 찾아봐도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안 보인다.
엘리베이터는 5층부터 서고
외부 계단은 막혀 있다.
서울 여자들과 함께 가는데
그녀들도 2층으로 가는 길을 못 찾는다.
다시 처음에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곳으로
돌아가서 눈을 부릅뜨고 보니까
계단으로 올라가는 문이 보인다.
숨을 헐떡이며 낙짓집을 찾아갔더니
일행은 벌써 좌정해 있다.
매운 낙지에 밥을 비벼먹으며
소주 말고 물만 마시다가
화장실에 가면서 보니까
대로변에 에스컬레이터가 떡 하니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2. 병뚜껑 돌리기
유리병에 담겨 있는 죽염을
작은 플라스틱병에 덜고 나서
유리병 뚜껑을 돌려서 닫는데,
아무리 돌려도 뚜껑이 닫히지 않는다.
뚜껑을 돌리고 돌려도 닫히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하여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플라스틱병 뚜껑을 돌리고 있었다.
이 세상에 짝이 맞지 않는 것들이 많다.
너와 나도 그렇다.
3. 신림역 회군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출판기념 토크쇼가 끝난 뒤에
매운 낙지에 찬물만 들이켜다가
신림동 애들 집으로 가려고
종각역에서 1호선 지하철을 탔다.
신도림역에서 환승하여 신림역으로 가다가
옛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어 있다가
급히 내리려고 보니 봉천역이다.
음악을 듣다가 신림역을 놓쳐버린 것이다.
다시 신림역으로 돌아가서
신림역 4번 출구를 나와 관악5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인 신림현대아파트 입구에서 내렸다.
조금 걸어서 내려오니 애들이 사는 골목길이다.
아는 얼굴이 보여서 반가웠다.
이제 안심이다.
4. 한가한 살구나무
늦가을 비바람에
살구나무 이파리가 모두 떨어졌다.
이제 살구나무는 겨울잠을 자리라.
살구나무는 지금 한가하다.
근심 걱정 다 털어버리고
교무실을 올려다보며 하품을 하고 있다.
지금 학생들은 전국연합학력평가
탐구영역 시험지를 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교무실에서
"내편 들어줘 고마워요"를 읽고 있다.
기말고사 출제도 해야 한다.
살구나무는 한가하다.
5. 월계동 골목길
임방울대로 아래쪽 월계동엔 다세대 주택이 많다.
5층짜리 아파트가 월계동 장고분 근처에 있고
대부분의 집들이 다세대주택이다.
규모가 큰 건물은 학교다.
월계초등학교,숭덕고등학교,천곡중학교,
산월초등학교,첨단중학교,첨단고등학교,
방송통신대학교,남부대학교,광주전자공업고등학교
무양서원도 있다.
주택이 많으니 골목길도 많다.
골목길을 다 둘러보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학교 주변이야 늘 보아서 익숙하지만
약간만 벗어나도 길을 잃기 십상이다.
학교 주변을 익힐 때쯤이면
어김없이 바람이 분다.
동남풍이 분다.
6. 복판과 가장자리
가운데, 한가운데, 복판, 한복판, 가, 변두리,
가장자리, 중심, 중앙, 핵심, 변방, 지방, 변경
처음, 중간, 끝, 시작, 종말, 마무리, 시초, 태초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처음과 끝이 똑 같아야 한다.
시종여일.
용두사미는 사절한다.
끝이 좋아야 한다.
냄비에 물을 담아 끓이면 어디부터 끓는가?
복판인가, 가장자리인가?
나무의 뿌리는 시작인가?
우듬지는 끝인가?
나뭇껍질은 가장자리인가?
나의 피부가 가장자리라면 나의 중심은 어디인가?
심장, 간, 뇌인가?
아니면 피인가?
나의 한복판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나라, 지구, 우주, 은하
중심은 어디이고, 무엇인가?
내 사유의 핵심은 무엇인가?
내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
7. 선생님, 처음 봅니다
오늘 3교시에 수업을 끝낼 무렵 한 학생이 나를 보며
"선생님, 처음 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도 본 적이 없는 학생이었다.
내가 2학기에 수업을 하는 학급이 매우 많다.
그래서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연결 짓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얼굴을 처음 보다니...
이 학생은 수업시간마다 잠을 잔 모양이다.
그렇게 잠을 자고도 또 잠을 자는
학생을 보면 기이하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는 참 기이한 곳이다.
8. 2차 후원금 중단
은행에 가서 여름에 이어서, 늦가을에,
2차로 후원금 자동이체(CMS) 여러 건을 해지하였다.
융자받은 학자금을 갚아야 한다.
이제는 마음밖에 없다.
세월이 빨리 흘러가기를 바란다.
내가 해직교사였을 때
나에게 후원금을 전해준
금호고 해직동료들에게 늦게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1989년부터 1994년 2월까지
후원금을 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9. 전공체험학습과 자판기
첨단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 40명이 광주보건대학교 응급구조학과와 물리치료학과에서 전공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캠퍼스를 이리저리 걷다가 다윗관에서 커피를 한 잔 뽑으려고 1,000원짜리 지폐를 투입하고 버튼을 눌렀습니다. 700원이 남아서 반환 손잡이를 돌렸지만 동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율무차를 눌렀습니다. 그래도 400원이 남길래 코코아를 눌렀습니다. 그러자 100원짜리 동전이 튀어나왔습니다. 갑자기 커피, 코코아, 율무차를 연달아 마시게 되었습니다.
10. 만남과 떠남
만나면 떠나야 한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물은 썩는다.
바람은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저녁에 만난 친구는 밤에 헤어져야 한다.
아침에 학교에 온 학생들은 방과후에 하교해야 한다.
나무나 풀은 뿌리를 내리고 한평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식물은 씨앗을 바람에 날리거나 물에 띄우거나
동물의 먹이가 되어 이동을 하는 것이다.
나는 바람처럼 떠도는 존재다.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는 않다.
때가 되면 떠나는 것이다.
11. 슬픈 쪽지
학생들이 써낸 쪽지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학생들 모두 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쪽지는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어떤 쪽지는 나를 슬프게 한다.
오늘 어떤 쪽지가 나를 슬프게 했다.
수업시간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내용의 쪽지는 나를 슬프게 한다.
수업 내용이 없다는 얘기다.
아니 이럴 수가!
수업이 재미가 없다는 쪽지도
나를 슬프게 한다.
어떻게 해야 수업이 재밌을까?
그래도 나는 쪽지를 사랑한다.
12. 교장선생님
오늘 아침에 교정을 산책하다가 교문 쪽으로 가니까 이름을 모르는 여학생들이 "교장선생님!"하고 부른다. 나를 부르는 소리다. 아이들이 장난을 치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농구장 근처 벤치에 앉아 있던 여학생들이 나를 교장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학생들은 날마다 만보걷기를 하는 내가 학교 여기저기를 점검하고 다니는 교장선생님처럼 보였나 보다. 아니면 담배를 피우고 싶은데 피우지 못하는 학생들을 대리하여 나를 놀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나는 "좀머 씨 이야기"의 좀머 씨처럼 걷고 걸을 뿐이다. 걷다가 담배꽁초를 보면 줍고 그럴 뿐이다. 나는 걷자 선생이다. 교정 선생이다.
13. 옷에 몸 맞추기
아침에 패딩을 입는데 팔이 답답했다. 나는 못 입겠다고 했다. 아내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작년에도 입은 옷이었다. 작년에도 답답했었다. 팔이 꽉 끼어서 답답한 옷을 판 의류업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홈쇼핑에서 구매했다고 한다.
내가 옷에 몸을 맞추어 입을 수는 없다. 옷을 입는 순간 숨이 가빠오는데 날렵하게 보인다고 그 옷을 입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고 패딩을 맞출 수도 없고.
소양강변 12사단 훈련소에서 288밀리미터 훈련화를 신고 훈련을 받다가 발뒤꿈치가 홀라당 까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1981년) 훈련화 하나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던 부패한 군대가 수십 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나를 분노하게 한다.
나는 옷에 내 몸을 맞출 수 없다.
14. 서울대 앞 큰 길에서
나는 그냥 길을 걷고 있었다.
어떤 여인이 강아지를 끌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까 강아지 인형이었다.
그 여인은 하이힐을 손에 들고 있었고
신발을 신지 않았다.
마침 근처 화원의 개는 인형개를 따라가려 하고
화원 주인은 개를 단속하느라 정신이 없고
나도 긴장하면서 흥미롭게 지켜보는데
그녀가 택시를 타고 떠난 자리에
금발 가발이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정신이 나간 여자였을까?
15. 안갯길
가을이 한창인데
진한 안개가
세상을 다 덮고 있었다.
안개 낀 출근길
앞 차 꽁무니를 따라 가면서
앞차가 서버린다면 어쩌나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용두동 사거리에서 승용차 한 대가 고장이 나서 서 있고
경찰관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영산강 첨단대교를 건너서
임방울대로를 힘겹게 달리면서
월계초 가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학교 주차장에 차를 대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2017년 10월 26일이었다.
16. 내 몸
몸은 쇳덩이가 아니다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는
용불용설을 믿었다
건강검진결과는 경고등
핏속에 기름기가 많고
혈압이 약간 높고
음주 적색경고 발령
금주는 필수
유근피차가 내 생명수
마늘죽염환은
장의 노폐물 가스를 빼주고
내 코는 비염을 달고
잠을 잘 때 숨쉬기도 곤란한데
내 몸은 쇳덩이가 아니야
혹사시켜서 미안해
내 몸
17. 얍삽하다
얄밉게도 재빠르게 이익을 챙기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얍삽한 사람이라고 한다. 좋은 말은 아니지만 경쟁사회에서는 비난만 할 것도 아니다.
-수능감독관 추천에서 2학년실 선생님들이 원하는 감독관을 선점했다고 했을 때 내가 한 말
-오늘 분회모임에 1학년실 선생님들이 참석하지 않았을 때 내가 한 말
-인생은 얍삽할 때가 있다
-나 중심으로 세상을 산다. 정말 그래야 한다. 내가 살아야 너를 보살필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야 한다. 너와 더불어.
*얍삽하다:사람이 얕은 꾀를 쓰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려는 태도가 있다-국어사전
18. 몬네 몬네
이 걸 할까
저 걸 할까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확 저질러 버릴까
살짝 해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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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작성시간2017.12.07 조회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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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중-금시-2017-송년회.hwp
1. 종로에서 낙짓집 찾기
어제 저녁에 종로1가 르메이에르 스포츠센터
건물 2층에 있는 낙짓집을 찾아서 헤맸다.
교보문고 배움에서 열린 북콘서트가 끝나고
뒤풀이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아무리 여기저기 찾아봐도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안 보인다.
엘리베이터는 5층부터 서고
외부 계단은 막혀 있다.
서울 여자들과 함께 가는데
그녀들도 2층으로 가는 길을 못 찾는다.
다시 처음에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곳으로
돌아가서 눈을 부릅뜨고 보니까
계단으로 올라가는 문이 보인다.
숨을 헐떡이며 낙짓집을 찾아갔더니
일행은 벌써 좌정해 있다.
매운 낙지에 밥을 비벼먹으며
소주 말고 물만 마시다가
화장실에 가면서 보니까
대로변에 에스컬레이터가 떡 하니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2. 병뚜껑 돌리기
유리병에 담겨 있는 죽염을
작은 플라스틱병에 덜고 나서
유리병 뚜껑을 돌려서 닫는데,
아무리 돌려도 뚜껑이 닫히지 않는다.
뚜껑을 돌리고 돌려도 닫히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하여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플라스틱병 뚜껑을 돌리고 있었다.
이 세상에 짝이 맞지 않는 것들이 많다.
너와 나도 그렇다.
3. 신림역 회군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출판기념 토크쇼가 끝난 뒤에
매운 낙지에 찬물만 들이켜다가
신림동 애들 집으로 가려고
종각역에서 1호선 지하철을 탔다.
신도림역에서 환승하여 신림역으로 가다가
옛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어 있다가
급히 내리려고 보니 봉천역이다.
음악을 듣다가 신림역을 놓쳐버린 것이다.
다시 신림역으로 돌아가서
신림역 4번 출구를 나와 관악5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인 신림현대아파트 입구에서 내렸다.
조금 걸어서 내려오니 애들이 사는 골목길이다.
아는 얼굴이 보여서 반가웠다.
이제 안심이다.
4. 한가한 살구나무
늦가을 비바람에
살구나무 이파리가 모두 떨어졌다.
이제 살구나무는 겨울잠을 자리라.
살구나무는 지금 한가하다.
근심 걱정 다 털어버리고
교무실을 올려다보며 하품을 하고 있다.
지금 학생들은 전국연합학력평가
탐구영역 시험지를 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교무실에서
"내편 들어줘 고마워요"를 읽고 있다.
기말고사 출제도 해야 한다.
살구나무는 한가하다.
5. 월계동 골목길
임방울대로 아래쪽 월계동엔 다세대 주택이 많다.
5층짜리 아파트가 월계동 장고분 근처에 있고
대부분의 집들이 다세대주택이다.
규모가 큰 건물은 학교다.
월계초등학교,숭덕고등학교,천곡중학교,
산월초등학교,첨단중학교,첨단고등학교,
방송통신대학교,남부대학교,광주전자공업고등학교
무양서원도 있다.
주택이 많으니 골목길도 많다.
골목길을 다 둘러보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학교 주변이야 늘 보아서 익숙하지만
약간만 벗어나도 길을 잃기 십상이다.
학교 주변을 익힐 때쯤이면
어김없이 바람이 분다.
동남풍이 분다.
6. 복판과 가장자리
가운데, 한가운데, 복판, 한복판, 가, 변두리,
가장자리, 중심, 중앙, 핵심, 변방, 지방, 변경
처음, 중간, 끝, 시작, 종말, 마무리, 시초, 태초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처음과 끝이 똑 같아야 한다.
시종여일.
용두사미는 사절한다.
끝이 좋아야 한다.
냄비에 물을 담아 끓이면 어디부터 끓는가?
복판인가, 가장자리인가?
나무의 뿌리는 시작인가?
우듬지는 끝인가?
나뭇껍질은 가장자리인가?
나의 피부가 가장자리라면 나의 중심은 어디인가?
심장, 간, 뇌인가?
아니면 피인가?
나의 한복판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나라, 지구, 우주, 은하
중심은 어디이고, 무엇인가?
내 사유의 핵심은 무엇인가?
내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
7. 선생님, 처음 봅니다
오늘 3교시에 수업을 끝낼 무렵 한 학생이 나를 보며
"선생님, 처음 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도 본 적이 없는 학생이었다.
내가 2학기에 수업을 하는 학급이 매우 많다.
그래서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연결 짓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얼굴을 처음 보다니...
이 학생은 수업시간마다 잠을 잔 모양이다.
그렇게 잠을 자고도 또 잠을 자는
학생을 보면 기이하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는 참 기이한 곳이다.
8. 2차 후원금 중단
은행에 가서 여름에 이어서, 늦가을에,
2차로 후원금 자동이체(CMS) 여러 건을 해지하였다.
융자받은 학자금을 갚아야 한다.
이제는 마음밖에 없다.
세월이 빨리 흘러가기를 바란다.
내가 해직교사였을 때
나에게 후원금을 전해준
금호고 해직동료들에게 늦게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1989년부터 1994년 2월까지
후원금을 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9. 전공체험학습과 자판기
첨단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 40명이 광주보건대학교 응급구조학과와 물리치료학과에서 전공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캠퍼스를 이리저리 걷다가 다윗관에서 커피를 한 잔 뽑으려고 1,000원짜리 지폐를 투입하고 버튼을 눌렀습니다. 700원이 남아서 반환 손잡이를 돌렸지만 동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율무차를 눌렀습니다. 그래도 400원이 남길래 코코아를 눌렀습니다. 그러자 100원짜리 동전이 튀어나왔습니다. 갑자기 커피, 코코아, 율무차를 연달아 마시게 되었습니다.
10. 만남과 떠남
만나면 떠나야 한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물은 썩는다.
바람은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저녁에 만난 친구는 밤에 헤어져야 한다.
아침에 학교에 온 학생들은 방과후에 하교해야 한다.
나무나 풀은 뿌리를 내리고 한평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식물은 씨앗을 바람에 날리거나 물에 띄우거나
동물의 먹이가 되어 이동을 하는 것이다.
나는 바람처럼 떠도는 존재다.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는 않다.
때가 되면 떠나는 것이다.
11. 슬픈 쪽지
학생들이 써낸 쪽지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학생들 모두 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쪽지는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어떤 쪽지는 나를 슬프게 한다.
오늘 어떤 쪽지가 나를 슬프게 했다.
수업시간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내용의 쪽지는 나를 슬프게 한다.
수업 내용이 없다는 얘기다.
아니 이럴 수가!
수업이 재미가 없다는 쪽지도
나를 슬프게 한다.
어떻게 해야 수업이 재밌을까?
그래도 나는 쪽지를 사랑한다.
12. 교장선생님
오늘 아침에 교정을 산책하다가 교문 쪽으로 가니까 이름을 모르는 여학생들이 "교장선생님!"하고 부른다. 나를 부르는 소리다. 아이들이 장난을 치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농구장 근처 벤치에 앉아 있던 여학생들이 나를 교장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학생들은 날마다 만보걷기를 하는 내가 학교 여기저기를 점검하고 다니는 교장선생님처럼 보였나 보다. 아니면 담배를 피우고 싶은데 피우지 못하는 학생들을 대리하여 나를 놀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나는 "좀머 씨 이야기"의 좀머 씨처럼 걷고 걸을 뿐이다. 걷다가 담배꽁초를 보면 줍고 그럴 뿐이다. 나는 걷자 선생이다. 교정 선생이다.
13. 옷에 몸 맞추기
아침에 패딩을 입는데 팔이 답답했다. 나는 못 입겠다고 했다. 아내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작년에도 입은 옷이었다. 작년에도 답답했었다. 팔이 꽉 끼어서 답답한 옷을 판 의류업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홈쇼핑에서 구매했다고 한다.
내가 옷에 몸을 맞추어 입을 수는 없다. 옷을 입는 순간 숨이 가빠오는데 날렵하게 보인다고 그 옷을 입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고 패딩을 맞출 수도 없고.
소양강변 12사단 훈련소에서 288밀리미터 훈련화를 신고 훈련을 받다가 발뒤꿈치가 홀라당 까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1981년) 훈련화 하나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던 부패한 군대가 수십 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나를 분노하게 한다.
나는 옷에 내 몸을 맞출 수 없다.
14. 서울대 앞 큰 길에서
나는 그냥 길을 걷고 있었다.
어떤 여인이 강아지를 끌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까 강아지 인형이었다.
그 여인은 하이힐을 손에 들고 있었고
신발을 신지 않았다.
마침 근처 화원의 개는 인형개를 따라가려 하고
화원 주인은 개를 단속하느라 정신이 없고
나도 긴장하면서 흥미롭게 지켜보는데
그녀가 택시를 타고 떠난 자리에
금발 가발이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정신이 나간 여자였을까?
15. 안갯길
가을이 한창인데
진한 안개가
세상을 다 덮고 있었다.
안개 낀 출근길
앞 차 꽁무니를 따라 가면서
앞차가 서버린다면 어쩌나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용두동 사거리에서 승용차 한 대가 고장이 나서 서 있고
경찰관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영산강 첨단대교를 건너서
임방울대로를 힘겹게 달리면서
월계초 가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학교 주차장에 차를 대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2017년 10월 26일이었다.
16. 내 몸
몸은 쇳덩이가 아니다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는
용불용설을 믿었다
건강검진결과는 경고등
핏속에 기름기가 많고
혈압이 약간 높고
음주 적색경고 발령
금주는 필수
유근피차가 내 생명수
마늘죽염환은
장의 노폐물 가스를 빼주고
내 코는 비염을 달고
잠을 잘 때 숨쉬기도 곤란한데
내 몸은 쇳덩이가 아니야
혹사시켜서 미안해
내 몸
17. 얍삽하다
얄밉게도 재빠르게 이익을 챙기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얍삽한 사람이라고 한다. 좋은 말은 아니지만 경쟁사회에서는 비난만 할 것도 아니다.
-수능감독관 추천에서 2학년실 선생님들이 원하는 감독관을 선점했다고 했을 때 내가 한 말
-오늘 분회모임에 1학년실 선생님들이 참석하지 않았을 때 내가 한 말
-인생은 얍삽할 때가 있다
-나 중심으로 세상을 산다. 정말 그래야 한다. 내가 살아야 너를 보살필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야 한다. 너와 더불어.
*얍삽하다:사람이 얕은 꾀를 쓰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려는 태도가 있다-국어사전
18. 몬네 몬네
이 걸 할까
저 걸 할까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확 저질러 버릴까
살짝 해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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