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산의 시 2018. 1. 12. 07:41
한새봉 청설모

김성중

 

 

한새봉을 걷다가 청설모 두 마리를 만났다.

산책로 옆 감나무에서 감을 따서는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렵하게 날아서는

산책로를 건너서 소나무 속으로 사라진다.

 

청설모는 나무타기의 달인이다.

아주 작은 가지를 밟고서도

다른 나무로 휙 날아간다.

청설모는 몸무게가 없다.

 

청설모는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먹는 모양이다.

그러나 인간을 매우 두려워한다.

인간은 자연계의 무법자니까.

 

신작로처럼 넓어져버린

한새봉 산책로 주변에서

청설모는 힘겹게

겨울을 지나고 있다.




겨울비

 

 

함박눈을 기다리는데

겨울비가 내린다

담양호반 물 빠진 자국 위로

소한 지나 겨울비가 내린다

겨울비가 포근히 내리는 날

대지는 겨우내 목마른 혀를 축이고

그리움에 마음 졸이던 내 가슴도

어느새 따뜻한 봄날을 꿈꾼다

 

 

어제는 비 오늘은 눈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으니

이제 겨울다운 겨울인가

차들도 엉금엉금 기어다니고

세상은 느림보가 되어버렸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송이들

한 송이 두 송이 세다가

아, 눈이 내려서 좋은 아이들 마냥

나는 벌써 눈썰매를 타고 있다

어제는 봄비 같은 겨울비가 내리고

오늘은 천지사방 은세계

각시방에 드리운 순백의 커튼 위로

하얀 눈이 내린다.



건우봉에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쑥고개길

현대아파트 바로 뒷산에 오르니

온갖 새들이 아침을 우지진다.

관악산 둘레길을 따라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고도 느긋하다.

나는 여기에 왜 왔는가?

나그네새인가?

바람 따라 흘러가는 구름인가?

이제 곧 부여로 가겠네.

신동엽과 김시습을 만나러...

 


매월당 만나러 가는 길

 

 

부여 만수산 무량사

떠돌던 김시습이 머물다 스러진 곳

생육신 김시습을

내일 만나서

회포나 풀어야겠다.

 

어제는 무량사 가려다가

서울로 와버렸다.

무량사 가는 길이 이리 멀 줄

매월당 선생은 귀띔도 안 해주고

봉천터널 지나 신림동 비탈길

기어기어 올라왔다.

 

내일 내설악 용대리 백담사에 가서

대청봉에서 흘러내린 웅덩이가

백 개인지 세어볼까나

매월당 김시습을 만나고

만해 한용운을 만나고

일해 전두환을 만나고

황태 명태 동태를 만나고

내 스무 살 군영시절을 만나고

 

오늘 옛날 사람을 만났다.

금오신화를 쓴 작가

김시습의 고독을 생각했다.

세상을 등지고 산에 들어

금오신화를 쓰던 시절

걷고 또 걸으며 인생을 곱씹던 시절

매월당의 허허로움을 만났다.

 



물병 잃어버리기

 


요즘 차를 담은 물병을 가지고 다닌다.

어제 연수를 갈 때도 가지고 갔다.

오동도를 걸을 때는 손에 들고 다녔다.

유람선을 탈 때도 가지고 갔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펜션에 갈 때도 가지고 갔을 것이다.

아침에 펜션을 나오면서 확인해보니까

물병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버스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리를 확인해보니까 물병이 없다.

어디로 갔을까?

물병을 담는 주머니가 예뻤는데...

그 물병과 나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앞으로 잃어버릴 것들이 많다.




월담

 

 

아침에 교정을 뛴다.

만보걷기의 시작이다.

 

우리 학교와 남부대 경계에 울타리가 있다.

첨단중과 방통대의 경계에도 울타리가 있다.

농구장과 텃밭 위 첨단2동 둘레길

경계에도 울타리가 있다.

사방이 울타리다.

 

오늘 아침에 급식실 옆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남부대 수영장 쪽에서 담을 넘으려고

울타리로 다가오는 남학생들이 보인다.

나는 소리친다.

"정문으로! 정문으로 돌아가라!!"

학생들은 똥씹은 얼굴로 정문으로 돌아간다.

 

오늘만이 아닐 것이다.

학생들은 지키는 이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담을 넘는다.

지름길이니까.

그러나 허락받지 않은 길이다.




나눔

 

 

누가 인터폰을 누른다.

"엄마가 어디 갔어요." 문을 열자

앞집 아이가 울면서 들어온다.

아이가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있는데

앞집에 인기척이 있다.

그 아이를 집으로 보냈다.

잠시 후에 누가 문을 두드린다.

그 아이의 엄마다.

친정에서 김치를 담갔다면서

배추김치 반포기를 접시에 담아서 건넨다.

 

 


정보와 전언

 

 

수업중에 교실 바닥이 더러워서

"교실이 더럽다"고 얘기하면

학생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정보는 '교실이 더럽다'이고

전언은 '청소좀 해라'이다.

정보를 듣고 전언을 알아채고 있으면서도

학생들은 꼼짝하지 않는다.

왜?

내가 하는 게 귀찮으니까.

귀차니즘이다.

쓰레기가 보이면 줍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

"쓰레기를 주워라"고 말하면

"제가 안 버렸는데요."라고

대답하는 학생도 있다.

내가 버리지 않았는데

내가 왜 주워야 하냐는 얘기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각화동에서

 

 

향년 87세, 유족들의 표정이 밝다.

오랜 투병 생활을 마치고 육신의 옷을 벗은 고인

영정 사진에서 옛날을 읽어낸다.

상주의 모친과 동생, 누나 그리고 아들과 딸들

고인의 손자들이 부지런히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접객실

빈소 영정 사진은 한없이 평화롭고

한 시대가 저무는 시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허무는 곳

 

별세 소천 귀천 돌아가시다 사망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장례식장으로 갈 때마다

마음이 아프기도 하면서

어차피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영정 앞에서 큰절을 하고

상주와도 맞절을 하지만

그뿐 인사는 지나가고

일상의 대화로 복귀하는데...

 

오후 네 시에 집을 출발하여 저녁 일곱 시에 도착

산을 넘고 골목길을 지나고 건널목을 건넜지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나의 순례길

물만 마시며 문상하다가

홀연히 일어서서 배낭을 짊어지고

밤길을 걸어 걸어서

밤 열두 시

삼만 천 일백 걸음만에

귀소했다.




저기요

 

 

학기말 시험을 보는 시간

전광석화처럼 시험지를 나눠주는데

가운데 줄에서 "저기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시험지가 부족한데요?"

 

시험지 한 장을 뒤로 전달하며

시험을 보는 중이라

크게 말하지도 못하고

"여기가 시장이여? 식당이여?"

충격을 받은 내 마음을 다독이다가

시험이 끝나고 교무실에 와서

담임에게 얘기하니까

평소에도 거시기 한 애라고 한다.

 

교실에서

저기요

여기요

나를 부르는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첨부파일1

김성중

 

 

한새봉을 걷다가 청설모 두 마리를 만났다.

산책로 옆 감나무에서 감을 따서는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렵하게 날아서는

산책로를 건너서 소나무 속으로 사라진다.

 

청설모는 나무타기의 달인이다.

아주 작은 가지를 밟고서도

다른 나무로 휙 날아간다.

청설모는 몸무게가 없다.

 

청설모는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먹는 모양이다.

그러나 인간을 매우 두려워한다.

인간은 자연계의 무법자니까.

 

신작로처럼 넓어져버린

한새봉 산책로 주변에서

청설모는 힘겹게

겨울을 지나고 있다.




겨울비

 

 

함박눈을 기다리는데

겨울비가 내린다

담양호반 물 빠진 자국 위로

소한 지나 겨울비가 내린다

겨울비가 포근히 내리는 날

대지는 겨우내 목마른 혀를 축이고

그리움에 마음 졸이던 내 가슴도

어느새 따뜻한 봄날을 꿈꾼다

 

 

어제는 비 오늘은 눈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으니

이제 겨울다운 겨울인가

차들도 엉금엉금 기어다니고

세상은 느림보가 되어버렸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송이들

한 송이 두 송이 세다가

아, 눈이 내려서 좋은 아이들 마냥

나는 벌써 눈썰매를 타고 있다

어제는 봄비 같은 겨울비가 내리고

오늘은 천지사방 은세계

각시방에 드리운 순백의 커튼 위로

하얀 눈이 내린다.



건우봉에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쑥고개길

현대아파트 바로 뒷산에 오르니

온갖 새들이 아침을 우지진다.

관악산 둘레길을 따라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고도 느긋하다.

나는 여기에 왜 왔는가?

나그네새인가?

바람 따라 흘러가는 구름인가?

이제 곧 부여로 가겠네.

신동엽과 김시습을 만나러...

 


매월당 만나러 가는 길

 

 

부여 만수산 무량사

떠돌던 김시습이 머물다 스러진 곳

생육신 김시습을

내일 만나서

회포나 풀어야겠다.

 

어제는 무량사 가려다가

서울로 와버렸다.

무량사 가는 길이 이리 멀 줄

매월당 선생은 귀띔도 안 해주고

봉천터널 지나 신림동 비탈길

기어기어 올라왔다.

 

내일 내설악 용대리 백담사에 가서

대청봉에서 흘러내린 웅덩이가

백 개인지 세어볼까나

매월당 김시습을 만나고

만해 한용운을 만나고

일해 전두환을 만나고

황태 명태 동태를 만나고

내 스무 살 군영시절을 만나고

 

오늘 옛날 사람을 만났다.

금오신화를 쓴 작가

김시습의 고독을 생각했다.

세상을 등지고 산에 들어

금오신화를 쓰던 시절

걷고 또 걸으며 인생을 곱씹던 시절

매월당의 허허로움을 만났다.

 



물병 잃어버리기

 


요즘 차를 담은 물병을 가지고 다닌다.

어제 연수를 갈 때도 가지고 갔다.

오동도를 걸을 때는 손에 들고 다녔다.

유람선을 탈 때도 가지고 갔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펜션에 갈 때도 가지고 갔을 것이다.

아침에 펜션을 나오면서 확인해보니까

물병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버스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리를 확인해보니까 물병이 없다.

어디로 갔을까?

물병을 담는 주머니가 예뻤는데...

그 물병과 나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앞으로 잃어버릴 것들이 많다.




월담

 

 

아침에 교정을 뛴다.

만보걷기의 시작이다.

 

우리 학교와 남부대 경계에 울타리가 있다.

첨단중과 방통대의 경계에도 울타리가 있다.

농구장과 텃밭 위 첨단2동 둘레길

경계에도 울타리가 있다.

사방이 울타리다.

 

오늘 아침에 급식실 옆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남부대 수영장 쪽에서 담을 넘으려고

울타리로 다가오는 남학생들이 보인다.

나는 소리친다.

"정문으로! 정문으로 돌아가라!!"

학생들은 똥씹은 얼굴로 정문으로 돌아간다.

 

오늘만이 아닐 것이다.

학생들은 지키는 이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담을 넘는다.

지름길이니까.

그러나 허락받지 않은 길이다.




나눔

 

 

누가 인터폰을 누른다.

"엄마가 어디 갔어요." 문을 열자

앞집 아이가 울면서 들어온다.

아이가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있는데

앞집에 인기척이 있다.

그 아이를 집으로 보냈다.

잠시 후에 누가 문을 두드린다.

그 아이의 엄마다.

친정에서 김치를 담갔다면서

배추김치 반포기를 접시에 담아서 건넨다.

 

 


정보와 전언

 

 

수업중에 교실 바닥이 더러워서

"교실이 더럽다"고 얘기하면

학생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정보는 '교실이 더럽다'이고

전언은 '청소좀 해라'이다.

정보를 듣고 전언을 알아채고 있으면서도

학생들은 꼼짝하지 않는다.

왜?

내가 하는 게 귀찮으니까.

귀차니즘이다.

쓰레기가 보이면 줍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

"쓰레기를 주워라"고 말하면

"제가 안 버렸는데요."라고

대답하는 학생도 있다.

내가 버리지 않았는데

내가 왜 주워야 하냐는 얘기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각화동에서

 

 

향년 87세, 유족들의 표정이 밝다.

오랜 투병 생활을 마치고 육신의 옷을 벗은 고인

영정 사진에서 옛날을 읽어낸다.

상주의 모친과 동생, 누나 그리고 아들과 딸들

고인의 손자들이 부지런히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접객실

빈소 영정 사진은 한없이 평화롭고

한 시대가 저무는 시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허무는 곳

 

별세 소천 귀천 돌아가시다 사망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장례식장으로 갈 때마다

마음이 아프기도 하면서

어차피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영정 앞에서 큰절을 하고

상주와도 맞절을 하지만

그뿐 인사는 지나가고

일상의 대화로 복귀하는데...

 

오후 네 시에 집을 출발하여 저녁 일곱 시에 도착

산을 넘고 골목길을 지나고 건널목을 건넜지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나의 순례길

물만 마시며 문상하다가

홀연히 일어서서 배낭을 짊어지고

밤길을 걸어 걸어서

밤 열두 시

삼만 천 일백 걸음만에

귀소했다.




저기요

 

 

학기말 시험을 보는 시간

전광석화처럼 시험지를 나눠주는데

가운데 줄에서 "저기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시험지가 부족한데요?"

 

시험지 한 장을 뒤로 전달하며

시험을 보는 중이라

크게 말하지도 못하고

"여기가 시장이여? 식당이여?"

충격을 받은 내 마음을 다독이다가

시험이 끝나고 교무실에 와서

담임에게 얘기하니까

평소에도 거시기 한 애라고 한다.

 

교실에서

저기요

여기요

나를 부르는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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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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