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산의 노변정담 2011. 5. 11. 16:13

비둘기가 교실에 똥을 쌌어요

며칠 만에 교실에 들어가 보니 비둘기가 똥을 싸놓았습니다. 토요일에 교실에 들어왔다가 아이들이 집에 갈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 비둘기는 5월 7일(토) 오후 1시부터 5월 11일(수) 오전 7시 10분까지 4박 5일을 교실에 갇혀 있었던 셈입니다. 4일 동안 교실 바깥으로 나가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겠지요. 허나 비둘기가 교실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습니다. 교실이 무너지기 전에는 말이죠. 몸부림을 치다가 여기 저기 똥을 싸질렀겠지요. 몸부림을 치다가 여기저기에 깃털도 빠뜨렸겠지요.

비둘기는 먹이를 찾아 복도를 어슬렁거립니다. 과거에는 아이들이 매점에서 과자를 많이 사먹었고, 부스러기가 많아서 비둘기들이 복도로 몰려들곤 했었죠. 그런데 올해 매점을 폐쇄하면서 비둘기들의 출입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가끔씩 눈에 띄는 녀석들은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 중에 한 녀석이 교실 문이 열려 있으니까 교실로 들어왔을 겁니다. 아이들은 체육대회 준비를 끝내고 부리나케 교실문을 닫고 나가 버렸을 겁니다.

비둘기는 이제 외롭습니다. 군것질을 하지 않는 아이들이 미워졌습니다. 비둘기도 이젠 습성을 고쳐야 하겠습니다. 스스로 벌레를 잡아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굶어죽을 것이 뻔하니까요. 아마 비둘기들은 훌륭하게 적응하겠지요. 학교를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겠죠. 아이들도 이젠 적응을 했겠죠, 매점이 없는 학교를요. 인간이나 동물이나 환경에 잘 적응해야 살아남는 법입니다.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황당했을 아이들은 벌써 비둘기쯤은 잊었을 겁니다.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으니까요. 청춘의 정열을 발산하느라 비둘기를 생각할 여유가 없을 겁니다. 교실을 빠져나간 그 비둘기는 다시는 학교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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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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